알래스카 한의원
이소영 지음 / 사계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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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운영하는 회사에 8년째 다니고 있는 이지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오른손과 팔에 통증을 느낀다. 주요 업무가 사진 보정인데 마우스조차 잡을 수 없게 되자 통증을 치료하려고 용하다는 병원, 한의원, 물리치료실을 전부 다녀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지와 똑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을 고친 한의원이 딱 한 군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제는 그 한의원이 알래스카에 있다는 건데, 이러다 일을 못해서 굶어죽게 생긴 이지는 전 재산을 털어 알래스카로 간다. 


알래스카에 도착해 보니 과연 소문의 한의원이 있기는 했다. 이 한의원의 원장은 고담이라는 남자인데, 고담은 이지에게 그동안 다른 병원에선 하지 않은 질문을 한다. "교통사고가 일어난 날 무슨 일이 있었죠?" 그 전까지 통증의 원인이 교통사고 후유증인 줄로만 알았던 이지는 이때 처음으로 그 날 있었던 일을 천천히 되짚어 보기 시작한다. 그 날이 평소와 달랐다면 <시차 유령>이라는 동화책을 산 것 정도인데, 그 동화책이 이지의 통증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소영 작가의 소설 <알래스카 한의원>은 일단 알래스카에도 한의원이 있는지 궁금했고(소설을 다 읽은 지금도 궁금하다), 주인공이 병을 고치려고 알래스카에 있는 한의원까지 간다는 설정이 재미있어서 읽게 되었다. 평범하게 직장 다니던 여자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해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외국에서 생활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한 이야기인 <카모메 식당> 같은 전개를 상상했는데, 의외로 미스터리 소설에 가깝고 판타지 소설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아 신선했다. 


이지는 몇 달 동안 자신을 괴롭힌 통증이 사실은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안다고 해서 곧바로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원인으로 짐작되는 <시차 유령>이라는 책의 작가는 유명하지도 않다. 어떻게 보면 물리적인 문제보다 심리적인 문제가 치료하기가 훨씬 어렵다. 이지는 이대로 영원히 치료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지, 통증이 여전한 손과 팔을 가지고 앞으로 뭘 해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같은 고민에 시달린다. 


다행인 건 낯선 외국 땅인 줄로만 알았던 알래스카에도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고담을 비롯해 여러 이웃과 친구들이 이지의 사연을 듣고 안타까움을 표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알고 보면 이들에게도 알래스카로 올 수 밖에 없었던 각자의 사연이 있는데, 서로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들어주며 조금씩 상처를 치유하고 살아갈 기력을 회복한다. 영상화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배우들이 어떤 연기로 이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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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왕 형제의 모험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장편동화 재미있다! 세계명작 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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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기고 병약한 소년 카알의 우상은 잘생기고 건강한 형 요나탄이다. 카알은 요나탄처럼 씩씩하게 뛰어놀고 싶지만 날이 갈수록 카알의 병세는 심해진다. 죽음을 앞둔 카알에게 요나탄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은 죽으면 '낭기열라'라는 곳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선 아무도 아프지 않고 매일 즐겁게 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얼마 안 되어 요나탄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 불이 난 집에서 카알을 업고 뛰어내렸다가 죽은 것이다. 


요나탄의 뒤를 이어 카알도 죽고, 형제는 낭기열라에서 만난다. 카알은 요나탄을 다시 만난 것이 기쁘고, 당장이라도 요나탄과 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요나탄은 카알에게 지금 놀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낭기열라에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자가 나타났으니 지금 당장 그와 싸우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죽어서 건강한 몸을 되찾았는데도 놀지 못한다니. 카알은 아쉬웠지만 요나탄을 따라 나서고, 그렇게 형제는 긴 모험을 떠나게 된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장편 동화다. 이 책은 여느 동화와 다르게 '죽음'을 다룬다. 주인공 형제가 첫 장면부터 죽고 마지막 장면에서도 죽는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인데 주인공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죽다니. 근데 다음 생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주인공이 죽을 때마다 슬프기보다는 다음 생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죽음은 또 다른 삶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믿게 된다. 


이 책에는 소설가 한강의 추천사가 실려 있는데, 이 글을 읽고 책을 다시 읽으면 느낌이 새롭다. 추천사에서 한강 작가는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나오는 두 형제가 어리지만 용감하게 독재자에게 맞서는 모습이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 계엄군에 맞섰던 시민들의 모습과 닮았다고 썼다. 죽음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은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이라도 해야 나도 바뀌고 세상도 바뀐다.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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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돌보다 -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
린 틸먼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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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대상이었던 시절에는 돌봄의 무게를 잘 몰랐다. 돌봄이란 한없이 다정하고 사려 깊고, 너무나 가깝고 친근해서 때로는 귀찮기도 하다는 식의 서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돌봄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어가면서, 이제는 돌봄이 한때는 미미했으나 점점 더 분명하게 느껴지는 오물의 냄새나 환부의 통증처럼 인식된다. (오물을) 치우든 (환부를) 치료하든 결국에는 끝장(!)을 내야 하고 그 전까지는 견뎌야만 하는 그 무엇 말이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린 틸먼의 에세이 <어머니를 돌보다>는 저자가 어머니를 11년 간 돌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세 딸 중 막내다. 아버지는 먼저 세상을 떠났고, 혼자 남은 어머니는 뉴욕에서 싱글 라이프를 즐겼다. 그러다 여든여섯 살 때 어머니가 처음으로 이상 징후를 보였다. 저자와 언니들은 처음에 알츠하이머병을 의심했다. 어머니의 단골 내과의 역시 알츠하이머병이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평소 <뉴욕타임스>의 과학 섹션 기사를 즐겨 읽고, 화제가 된 의학 서적을 열심히 읽어온 저자의 눈에는 어머니의 증상이 알츠하이머병의 증상과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른 의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환자는 동일한데 의사들의 진단은 각기 달랐다. 어머니의 MRI를 본 의사 네 명 중 세 명의 해석이 일치하지 않았다. 이 경험을 통해 저자는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려면 의사에게 맡기지 말고 자신이 직접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는 이런 식으로 저자가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은 교훈과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들이 자세히 나온다. 같은 돌봄이라도 아이를 돌보는 것과 노인을 돌보는 것은 다르다. 아이와 달리 노인은 성장하지 않고, 자립하게 될 가능성도 없기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부담이 더 크다. 미국에서 간병인으로 고용되는 계층이 주로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유색인종 여성인 점도 지적한다. 


엄마와의 관계가 좋았는지 나빴는지에 따라 자식에게 간병의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언급한다. 저자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안 좋은 편이었다. 저자의 어머니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세 딸들을 경쟁자로 인식했다. 저자는 어머니를 간병하는 동안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신도 좋아하지 않았던 어머니를 왜 자신이 돌봐야 하는지(돌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를 더 잘 돌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나는 어머니를 몰랐다. 그 모든 일을 겪었음에도, 이 글을 썼음에도 나는 여전히 짐작만 할 뿐이다. 왜 어머니가 어머니 같은 사람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247쪽) 


저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인생은 고달프고 살다 보면 끔찍한 일도 일어나잖아요. 그런데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자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럼. 삶에는 아름다운 것들도 있으니까." 어머니는 그 '아름다운 것들'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고 저자 또한 물어보지 않았다. 나의 어머니라면 어떻게 답할까. 당신의 인생에서 '아름다운 것들'이 무엇이었다고 말할까. 너무 늦기 전에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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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문학동네 플레이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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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시험에 응시한 지 5년에 넘었지만 이번에도 불합격한 은미는 이제 그만 포기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운영하는 갈빗집에 나와 일하라는 말을 듣는다. 속이 상한 은미는 죽으려고 결심하고 죽는 방법을 알아보는데, 우연히 은미의 노트를 본 할머니가 은미에게 뜻밖의 제안을 한다. 할머니가 그동안 할아버지 몰래 모아둔 돈이 있으니, 그 돈으로 친구 민이와 함께 오래 전 미국으로 간 고모를 만나고 오라는 것이다. 


학창 시절 내내 이과 1등이었고 대학에서는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던 고모는 당시에는 드물었던 여성 과학자로서 장래가 촉망받는 인재였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임신하고, 아이 아버지가 되어주겠다는 미국인 남자를 만나 도망치듯 이민을 가면서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은미는 그 후로 고모에 대한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는데, 할머니만은 편지로 고모의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고모는 무려 NASA에 취직해 우주비행사가 되었다고! 


얼마 후 은미는 할머니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반, 취업이고 뭐고 다 잊고 놀고 싶은 마음 반으로 미국으로 떠난다. 은미의 여행 파트너인 민이는 은미의 오랜 남사친인데, 사실 요즘 은미와 민이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 전에는 성별을 의식하지 않고 무엇이든 공유하며 노는 친구 사이였는데, 최근에 민이가 정신과 상담을 받고 트랜지션(성전환)을 결심하면서 은미는 민이와의 관계가 그저 친구인지 아니면 그 이상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정한아 작가의 <달의 바다>는 2007년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다. 16년 전에 출간된 소설이지만 지금 읽어도 낡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5년째 낙방한 기자 시험을 계속 볼지 말지 고민 중인 은미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요즘 청년들의 모습과 닮았다. 2대에 걸쳐 갈빗집을 운영하는 은미의 가족은 겉보기에는 화목하고 유복해 보이지만, 사실은 강압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인 가부장(할아버지) 때문에 식구들 모두 오랫동안 고통받아 왔다. 


할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난 유일한 인물인 고모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이고, 이는 고모의 자식인 찬이 아니라 조카인 은미에게 전해진다. 고모와의 만남을 통해 어떤 이야기는 현실보다 아름다울 수 있고, 어떤 거짓말은 진실보다 참될 수 있다는 걸 배운 은미는 여행의 마지막에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깨닫는다. 결말은 다소 씁쓸하지만, 억지로 움켜쥐기보다 마음을 비우고 놓아줄 때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 같아서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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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마감식 : 내일은 완성할 거라는 착각 띵 시리즈 22
염승숙.윤고은 지음 / 세미콜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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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라디오 <윤고은의 EBS 북카페>를 종종 듣는다. 모든 코너를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소설을 소개해 주는 <소설 북클럽> 코너를 가장 좋아한다. <소설 북클럽> 코너지기 중 한 분이 염승숙 작가님인데, 윤고은 작가님과 염승숙 작가님이 함께 쓴 책이 나와서 읽어보았다. 제목은 <소설가의 마감식 : 내일은 완성할 거라는 착각>. 같은 음식도 소설가가 먹으면, 그것도 마감을 앞두고 먹으면 뭔가 다른지 궁금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이 책은 공복, 차, 식탁, 펑크, 작업실, 전투식량, 냉장고, 만찬 - 이렇게 총 8개의 키워드에 대해 두 명의 작가가 각각 한 편씩 글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염승숙 작가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즐겨마시는 음료는 차, 그중에서도 보이차다. 보이차는 카페인 함량이 미미해서 물 대용으로 마시기에 좋고, 마시면 허리부터 아랫배까지 따뜻하게 데워져 오랫동안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도 이제 커피 대신 보이차를 마셔볼까. 


윤고은 작가가 아침에 거르지 않는 습관은 따뜻한 물 한 컵 마시기이다. 그다음에는 유산균, 홍삼, 들기름, 블루베리, 꿀, 오트밀 등등 그 계절에 나고 몸에 좋다는 음식을 '공복 친구' 삼아 먹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애정하는 '친구'는 포도다. 포도철이 되면 매일 아침 한 송이씩 먹는다. 무항생제, 유기농, 무설탕 같은 단어에 약하지만, 마감이 가까워지면 정크푸드도 잘 먹고 배달 주문할 때 디저트도 꼭 챙기는 모순적인 식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고...(작가님 저도요 ㅎㅎㅎ) 


염승숙 작가는 공복을 선호할 정도로 음식을 잘 안 드시는 분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건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윤고은 작가는 지방에 있는 맛집도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찾아가서 먹을 만큼 음식을 좋아하는 분 같은데, 웬만해선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아 큰맘 먹고 산 냉이를 냉장고에서 키웠을(?) 정도다. 비슷한 나이대의 같은 소설가라도 다른 점이 재미있다. 다른 소설가분들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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