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 철학자가 번역한 고대 희랍어 원전 완역본 인문학 클래식 6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김동훈 옮김 / 민음사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에 읽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민음사 인문학 클래식 버전으로 다시 읽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년)는 로마제국의 16대 황제(161~180년)이다. 그가 재위하던 시기의 로마제국은 전쟁에 전염병까지 덮쳐 대내외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고통과 질병, 상실과 분노가 일상이었고, 한 명의 인간이자 한 나라의 군주로서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살피고 돌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꾸준히 일기를 썼다. 그가 남긴 12권의 일기를 후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 것이 <명상록>이다. 민음사 인문학 클래식은 이를 다시 '철학 훈련(관찰력)', '선택 훈련(결단력)', '관리 훈련(절제력)'으로 분류해 소개한다. 각 권의 마지막에는 서양 고전학자이자 철학자이기도 한 김동훈 번역자가 직접 만든 질문들과 일종의 내용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명상 포인트가 실려 있어 이해를 돕는다. 


<명상록>은 짧은 길이의 잠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기보다는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읽기에 좋다. 제1권 '본보기'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 직, 간접적으로 배우고 익힌 것들이 나온다. 할아버지에게는 "성내지 않는 좋은 습관"을, 아버지에게는 "염치와 사내다움"을, 어머니에게는 "경건하면서도 관용 있는 태도"와 "부자들이 벌이는 헛돈질을 멀리하는 소박한 삶"을 배웠다는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제2권 '철학훈련(관찰력)'에선 "내 몸을 노예처럼 대하지 말고 윗사람처럼 여기며 관리하십시오."라고 쓴 대목에 공감했다. "당신이 3000년을 산다 한들, 3만 년을 산다 한들, 다른 인생을 버려서 지금을 사는 것이 아니고, 지금을 버려서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라는 대목에도 밑줄을 그었다. 내세나 이상이 아닌 현실을 중시하는 이러한 태도 때문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후기 스토아 학파 철학자 중 한 명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 


제3권 '선택훈련(결단력)'에선 "무엇이든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항상 그것을 정의하고 표현하십시오. 그래서 그것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하십시오."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그는 인생은 짧고,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헛된 일에 신경을 쓰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선택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을 때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보류 조건'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최대한 찾아보라는 조언이 인상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부작 - 잠 못 드는 사람들 / 올라브의 꿈 / 해질 무렵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일곱 살인 아슬레와 알리다는 연인 사이다. 아슬레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될 예정이고, 알리다는 엄마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알리다가 덜컥 임신을 한다. 알리다의 엄마는 결혼도 하지 않은 딸이 임신을 했다며 알리다를 집에서 내쫓는다. 때마침 아슬레의 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죽는 바람에 아슬레도 집을 잃는다. 당장 잘 곳도 없는 두 사람은 배를 타고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로 간다. 


다른 도시에 도착한 아슬레와 알리다는 며칠이라도 머물 수 있는 여관을 찾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두 사람을 묵게 해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동안 언제 출산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부푼 알리다의 배를 보고 겁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아슬레가 두 사람이 잘 곳을 마련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알리다의 배가 신호를 보내서 아슬레는 산파를 구해온다. 얼마 후 알리다는 아들인 시그발을 낳는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의 <3부작>은 2007년에 발표한 1부 <잠 못 드는 사람들>, 2012년에 발표한 2부 <올라브의 꿈>, 2014년에 발표한 3부 <해질 무렵>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이다. 1부와 2부 초반을 읽을 때만 해도 나는 이 작품이 먼저 읽은 <아침 그리고 저녁>처럼 노르웨이 해안 마을 출신의 가난한 젊은 부부가 주인공인 휴먼 드라마 풍의 소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2부 중반을 넘어가면서 의외로 범죄 소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부 마지막에 시그발을 낳은 아슬레와 알리다는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간다.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기념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고향 사람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함이었고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올라브로 이름을 바꾼 아슬레를 어떤 노인이 알아봤고, 노인 때문에 가족 모두의 삶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아슬레는 노인을 따돌리려고 애를 쓰지만 좀처럼 노인의 감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3부는 아슬레가 떠난 후 혼자 남은 알리다의 이야기가 나온다. 알리다는 아슬레 없이 혼자서 시그발을 부양하느라 고생하던 중에 자신을 알아본 고향 어른의 도움으로 또 다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알리다는 고향 어른 덕분에 시그발도 잘 키우고 새로운 딸을 얻지만,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도 알리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아슬레뿐이다. 문장에 마침표가 없어서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지만, 한 번 몰입하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내용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르웨이의 어느 해안 마을. 어부인 올라이는 아내 마르타의 출산을 기다리는 중이다. 올라이는 이제 곧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기대감보다 자칫하면 마르타와 아이 모두 잘못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어쩐지 이 순간에는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기도를 시작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마르타와 아이가 무사하기만 하면 좋겠다고. 그리고 아들이 태어난다면 아버지의 이름을 따 요한네스라고 짓겠다고.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가 2000년에 발표한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은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이 아들의 탄생을 기다리는 올라이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두 번째 장은 올라이의 아들 요한네스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장에서 거의 내내 엄마 뱃속에 있었던 요한네스는 두 번째 장에서 이미 노인이 되어 있다. 아버지 올라이의 바람대로 어부로서 평생을 보냈고, 사랑하는 아내와 친구를 먼저 보내고 막내딸에게 의지해 살고 있다. 


언제나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밤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확인한 요한네스는 평소처럼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빵을 먹는다. 하지만 왠지 어제와 다르게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어도 위장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지 않고 담배를 피우기 전이나 후나 몸과 머리가 개운하다. 밖으로 나가니 오랫동안 소식이 뜸했던 친구의 모습이 보인다. 혼자 사는 아버지가 잘 있나 보러 온 막내딸과 마주치지만, 웬일인지 막내딸의 표정이 평소에 비해 어둡고 뭔가 걱정하는 것이 있어 보인다. 


이 소설은 분량도 길지 않고 복잡한 서사도 없다. 하지만 두 번째 장의 요한네스가 어떤 상황에 놓인 건지 알고 나면 내용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진다. 올라이와 요한네스라는 아버지와 아들, 두 남자, 두 인간의 이야기가 영혼의 생성과 소멸을 기록한 거대하고 근원적인 신화가 된다. 첫 번째 장과 두 번째 장 사이에 생략된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독법이 될 듯하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욘 포세의 전작 읽기를 이 책으로 시작하길 잘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버뷰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버뷰>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등을 쓴 첩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유작이다. 저자 후기에 따르면 존 르 카레는 2020년 12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들이자 작가인 닉 콘웰에게 원고의 존재를 알렸고, 미완성된 부분을 아들이 대신 완성해 출간해 주기를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존 르 카레의 이전 작품에 비해 길이가 짧고 내용이 소프트한 감이 없지 않지만, 거장을 추억하는 마지막 작품으로서는 괜찮았다. 


소설은 런던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줄리언 론즐리가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이스트앵글리아에 작은 서점을 열면서 시작된다. 줄리언은 서점에 찾아오는 손님은 적지만 조용하고 단조로운 생활에 만족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신사가 줄리언의 서점에 찾아와 이런저런 참견을 한다. 알고 보니 노신사는 줄리언의 아버지와 같은 학교 출신으로, 줄리언의 아버지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친구를 막 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줄리언은 노신사에게 잘해준다. 


노신사의 이름은 에드워드 에이번. 그는 이 동네에서 유명한 '실버뷰'라는 저택에서 암 말기인 아내 데버라와 단둘이 살고 있다. 줄리언은 에드워드와 데버라가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깊은 부유한 노인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 두 사람은 영국 정보부에서도 알아주는 정보원들이다. 그 중에서도 에드워드는 폴란드인으로 태어나 영국 정보부의 첩보원이 되어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투입된 복잡한 이력의 소유자다. 


처음에 줄리언은 에드워드와 데버라가 여느 부부들처럼 가끔 싸우기는 해도 대체로 사이 좋은 부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영국 정보부에서는 첩보원들끼리 결혼하는 일이 흔한데, 이는 사랑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서다. 데버라는 평생 에드워드를 감시했고, 에드워드 역시 평생 데버라를 감시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첩보원들이란 '더 위대한 사랑'을 위해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견디는 족속인 것이다. 


소설은 줄리언의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한 인물은 에드워드이다. 에드워드는 약소국인 폴란드에서 태어나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고, 영국 정보부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출세 가도를 걷는 듯했으나 오래지 않아 그것이 지옥으로 가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첩보국이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라는 표현도 하는데, 이는 첩보국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의 의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녕의 의식>은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처음으로 선보인 SF 소설집이다. 미야베 미유키가 미스터리 한 장르만 고집하지 않고 오컬트, 판타지, 시대물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온 건 알고 있지만 이번에는 SF 소설에 도전하다니. 미야베 미유키의 오랜 팬으로서 매우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첫 번째 단편부터 매우 만족스러웠다. (장편 소설로 써주시면 안 될까요?) 


첫 번째 단편 <엄마의 법률>은 '마더 법'이라는 법이 제정된 근미래가 배경이다. 마더법은 아동이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면 정부가 바로 구제해 학대당한 기억을 지우고 최적의 입양처를 찾아주는 법 제도다. 16세 여고생 후타바는 4살 때 마더법에 따라 겐이치 아빠, 사키코 엄마에게 입양되어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사키코 엄마가 죽자 마더법에 따라 '그랜드 홈'이라는 시설에 돌려보내진다. 사랑하는 가족과 강제로 헤어지게 된 후타바는 불만이 많다. 


소설 초반에는 법을 적용당하는 개인의 의사에 반해 정부가 친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을 보고 작가가 의문을 제기한 것은 부모와 정부 중에 어느 쪽이 친권을 가져야 하는지가 아니라 친권 자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권(親權)은 단어 뜻 그대로 부모의 권리인데, 후타바의 부모처럼 자식을 학대하고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부모에게도 부모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는 걸까. '인권은 인간에게 과분한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어쩌면 친권도 어떤 부모들에게는 과분하지 않나. 


두 번째 단편 <전투원>은 녹내장을 앓는 80대 노인 후지카와 다쓰조가 우연히 같은 동네에 사는 소년이 방범 카메라를 훼손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시작된다. 후지카와는 소년의 '장난'을 막으려고 동네에 설치된 방범 카메라를 주의 깊게 보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도 방범 카메라 위치가 자꾸만 바뀌고 그때마다 동네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 소설도 반전이 있는데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세 번째 단편 <나와 나>는 40대 독신 여성인 '나'가 오랜만에 본가에 방문했다가 10대 시절의 '나'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미래에 닥쳐올 불행을 모르는 철부지 여고생인 과거의 '나'는 마흔이 넘었는데 결혼도 안 하고 직장도 변변찮은 미래의 '나'를 한심하게 여긴다. 타임 슬립물은 대체로 미래에 사는 사람이 과거로 가는데, 이 소설은 과거에 사는 사람이 미래로 오는 점이 특이하다.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는 과거의 자신과 사이좋게 지낼 생각은 없다"라는 미래의 '나'의 대사가 좋았다. 


표제작 <안녕의 의식>은 폐기된 로봇을 수거하는 일을 하는 로봇 기사와 노후된 로봇 '하먼'을 가져온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먼'은 "수다 비즈니스"로 돈 버는 데 한계를 느낀 정보통신업계가 살림과 육아, 간병 등을 지원하기 위해 개발한 가정용 로봇이다. 갓난아기 때부터 하먼이 키운 것이나 다름 없는 소녀는 하먼을 감정 없는 기계로 여기지도 않고, 여기저기 고장도 많고 더 이상 수리할 수도 없으니 폐기시키자는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반면 고아로 자라서 친구도 없고 연인도 없는 로봇 기사는 로봇이면서 인간에게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하먼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폐기되기 직전까지도 소녀에게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받는 하먼을 보며 급기야 로봇 기사는 "나는 로봇이 되고 싶다."라고 읊조린다. 인간이지만 기계를 부러워 하는 로봇 기사를 보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