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 상처받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는 관계의 심리학
양창순 지음 / 센추리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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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 많게는 수백번씩 다른 사람을 본다. 지하철 안에서 서서 갈 때 내 앞에 앉은 사람의 정수리를 보기도 하고, 앞서 가는 사람의 등을 보기도 하고, 고개 숙인 사람의 목 뒷덜미를 보기도 한다. 얼굴은 수없이 많이 본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무슨 수를 써도 '온전하게' 볼 수가 없다. 자기 정수리를 온전히 본 일이 있는가? 내 등, 내 뒷덜미를 바로 본 적이 있는가? 사진을 찍어서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진이라는 물체를 통해 만들어진 '상[image]'이고, 거울로 본다 해도 그것은 역상, 즉 반전된 이미지다. 얼굴 역시 마찬가지. 내 얼굴을 바로 보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내 마음은 바로 볼 수가 있을까?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본다. 하지만 내 마음을 보는 것은 어색하고 불편하다. 마치 내 정수리, 등, 뒷덜미, 얼굴을 바로 보는 것처럼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으면서 악한 사람도 자기 스스로를 착하다고 생각한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뒤에서 험담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저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우리가 남을 보듯이 자기 스스로를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대인관계클리닉 원장 양창순이 쓴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그랬다. 남들은 다 욕하는데 저 혼자 잘난 맛에 취해 사는 사람도 있고, 남들이 보기엔 아주 괜찮은 사람인데 부정적인 자아상에 갇혀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 은근히 주변에 많다. 나는 그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눈치를 주어도 캐치를 못 하는 사람, 내가 보기엔 아주 괜찮은 사람인데 만나면 늘 자책하고 하소연만 하는 사람... 어느쪽이든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사람들 모두 스타일은 다르지만 자기 모습과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자신을 들여본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다면 세상은 얼마나 편해질까? 스스로 편해지는 것은 두말 할 필요 없다.

 

+

 

저자는 이 책에서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는 바로 '과거 들여다보기'.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에 관한 책을 읽으면 어김없이 나오는 주제가 바로 과거, 그 중에서도 가족, 그 중에서도 부모님에 관한 것이다. 부모님을 비롯해 가정환경, 어린시절, 학교생활 등 과거에 있었던 일과 그로 인한 기억들은 그 사람을 만든 밑거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고, 족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과거를 무심하게 끌어안고 갈 수만도 없고, 아예 잊어버릴 수는 더더욱 없다. 대신 과거를 미래의 자산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인 것 같다.

 

또한 부정적인 자아상으로부터 벗어나 긍정적인 자아상을 만드는 방법도 소개가 되어있다. 그 중 하나는 '긍정적인 말 하기'.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불렀던 노래 '말하는 대로'의 노랫말처럼, 사람은 평소에 말하는 대로 된다. 평소에 부정적인 말만 하고 심지어 욕까지 하는 사람 치고 좋은 사람 없고, 잘 되는 사람 없다. 반면 같은 내용이라도 공손하고 예쁘게 말하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스스로도 자신에 대해 더욱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고 자신감이 생긴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매너 지키기'. 저자의 말로 하면 '머리 나쁜 사람은 매너도 나쁘다'. 머리 나쁜 사람은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고, 매너 없이 굴었던 것도 바로 까먹어서 결국 계속 매너 없는 사람이 된다. 반면 머리 좋은 사람은 남들이 나 때문에 상처 입지는 않는지 잘 캐치할 수 있고, 행여 실수를 했더라도 바로 고치기 때문에 매너 좋은 사람이 된다. 그러니 머리가 좋다면, 아니면 머리가 나빠도 조금만 머리를 쓰면 얼마든지 매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

 

저자 양창순 선생님은 정신의학뿐 아니라 심리학, 자기계발, 경제경영 서적에도 자주 인용되는 분이셔서 (바로 어제 읽은 경제경영 서적에도 이 분 글이 많이 인용되어 있었다.) 전부터 저작을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읽어보았다.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 이분의 저작을 계속 찾아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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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 경제지표 50 - 경제신문 속 암호같은 경제지표를 해독하고 미래를 예측하라!
사이먼 컨스터블 & 로버트 라이트 지음, 김숭진 옮김, 송경헌 감수 / 위츠(Wits)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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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뜻하는 'Economics'라는 말의 어원에는 '살림', '생활'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돈을 주고 물건을 사고 팔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경제학의 중요한 이론들은 체득하고 있다. 가령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수요가 줄어들면 가격이 내려간다는 '수요의 법칙', 생활에 필수적인 물건의 수요는 가격 변화에 덜 민감한 반면, 명품 같은 사치성 수요는 민감하다는 '가격탄력성' 개념 등은, '수요의 법칙', '가격탄력성' 같은 용어를 몰라도 그 원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경제학을 어려워 하는 이유는 수식이나 통계가 어렵고, 용어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경제지표는 경제뉴스나 신문에 자주 등장하지만 이름 자체가 어렵고, 어떤 뜻을 가지고 있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래서 기사전체의 내용을 오해하거나, 아예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나 또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경제지표는 자주 보는 몇 가지만 알고 있을뿐, 대부분은 모른다.

 

그래서 <월스트리트저널 경제지표 50>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주 반가웠다. 선행지표, 금리, 국가부채 등 경제지표를 통해 경제를 예측하는 방법이라니. 게다가 전세계 구독률 1위, 영향력 1위 매체 월스트리트저널이 실제로 경제를 예측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하니 더욱 믿음이 갔다. 사실 경제 소식, 투자 정보는 언론에 공개될 즈음이면 이미 전문기관이나 소위 큰 손들 사이에서는 대응이 다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그걸 그대로 믿고 투자하면 안 된다는 말도 있다. 그걸 믿고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보는 개미투자자들도 많이 보았다. 정말 똑똑한 투자자라면 공개되기 전에, 전문기관이나 큰 손들이 예측하는 방법을 알고 투자를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하루를 먹고 살게 하려면 고기를 낚아주고, 평생을 먹고 살게 하려면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읽어보니 책에 소개된 경제지표들 중에는 미시 경제학 시간에 배운 경제지표들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지표들도 매우 많았다. 무엇보다도 지표별로 특징과 장단점이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고, 그저 설명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 투자자들이 투자를 할 때 필요한 내용, 즉 투자수익률과 위험도 등이 제시되어 있어서 투자자들에게도 매우 유용할 것 같다. 거기에 각 경제지표를 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 인터넷 사이트, 업데이트 일자 - 까지 나와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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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애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사이드 애플 Inside Apple - 비밀 제국 애플 내부를 파헤치다
애덤 라신스키 지음, 임정욱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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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핫'한 기업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단연 애플이다. 애플은 산업적인 측면뿐 아니라 여러가지 면에서 가히 '세상을 바꾸었다'고 부를 수 있을만큼의 혁신을 일으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기술적인 혁신이다. 매킨토시에 이어 2000년대에 내놓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이른바 '아이(i)시리즈'는 휴대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자판에서 터치스크린으로,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에서 쌍방향,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으로의 전환을 가져왔다.

 

애플의 혁신은 이뿐만이 아니다. 프레젠테이션과 마케팅, 홍보 등 기업 스토리텔링에도 다양한 변화를 일으켰고, 소비자들의 관심을 최신 기술에서 심플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이동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혁신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은 단연 타계한 전 CEO 스티브 잡스다. 그의 사망 소식은 기업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전세계, 전계층에 걸쳐 충격을 가져다 주었고, 우리나라에서도 한동안 그에 대한 추모 열기가 식지 않았다.

 

그의 사망 이후 애플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예측도 끊이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가 워낙 카리스마 있는 CEO였기 때문에 그의 사망이 애플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애플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앞으로 몇 년 후, 길면 십 년, 이십 년 후에도 애플의 입지가 지금과 같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

 

<인사이드 애플>은 애플을 조직, 비즈니스, 경영 차원에서 분석한 책이다. 이제까지 애플을 IT기업의 측면에서, 또는 CEO 리더십의 측면에서 분석한 책은 많았지만 비즈니스, 경영 측면에서 분석한 책은 많지 않았다. 저널리스트나 학자들이 게을러서 그런 것은 아니고, 애플이 기업에 관한 모든 정보를 철저히 비공개에 붙이는, 이른바 '비밀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은 여러 측면에서 현대 경영학 이론과 다른 경쟁 기업들과는 다른 기업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알다시피 요즘은 투명경영, 권력분산, 정보공유 등이 유행이라면 유행인데, 애플은 앞서 말했듯이 기업 정보를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적어도 스티브 잡스 체제 하에서는) CEO 1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형태의 경영 전략을 보여왔다.

 

이렇게 대세를 거스르는 전략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고나서 얻은 답은 역시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는 기업 내 모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조직 내부, 외부 할 것 없이 자신과 다른 의견은 전부 말살했다. 오죽하면 최측근은 물론 가장 말단에 있는 사원까지 '잡스라면 어떻게 했을까?(What would Jobs do?)'를 끊임없이 되뇌이도록 세뇌시켰다는 말이 있을 정도일까. 스티브 잡스가 범인(凡人)이었다면, 최악의 경우 부정이나 재산 축재를 저지르는 리더였다면 이런 시스템이 기업을 넘어 사회 전체적으로 악영향을 가져다 주었겠지만, 다행히도 스티브 잡스는 트렌드에 대한 감각과 기술에 관한 집착은 가히 천재의 수준이었고, 일 외의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 덕분에 그러한 혁신과 성공이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애플의 미래가 불투명한 이유도 역시 잡스다. 잡스처럼 최대 권력을 가진 CEO가 잡스만큼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기업의 미래는 결코 밝다고 할 수 없다. 권력을 악용해 기업내 소통을 막고, 부정을 방지하기는커녕 양산하게 되기 쉽다. 진시황이 그러했듯이 선대의 리더가 강력한만큼 후대의 리더가 부실해보이는 악영향도 있을 수 있다. 잡스가 만든 시스템을 잡스 없이도 잘 굴러갈 수 있게 체질 개선을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진통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리스크를 과연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

 

나는 속칭 '잡스빠'도 아니고, 아이(i)자가 들어간 물건은 단 한 개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제까지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관해 막연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애플은 스탠포드 대학에서의 감동적인 연설부터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들, 스티브잡스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화법 등, 언제나 신선하고 혁명적인 행보를 보여왔던 점이 좋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이미지는 그저 수면위에 올라와 있는 '이미지'에 불과하고, 그 속에 감춰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애플의 진짜 모습이 더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이 이 책에 나온 것처럼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겠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고 애플이라는 기업이 스스로 그려온대로 마냥 무지개빛인 것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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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 MIT 경제학자들이 밝혀낸 빈곤의 비밀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이순희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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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카스 스와루프의 대표작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빈민가 출신의 주인공 소년은 종교 싸움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을 살게 되지만, 수많은 역경을 딛고 결국 퀴즈쇼의 영웅이 된다. '고진감래' 식의 줄거리만 들으면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 같지만 찬찬히 보면 생각해 볼 거리가 많다. (원작 소설을 읽으면 더 도움이 된다.) 영화 속에서 빈민가 사람들은 오늘 당장 먹을 밥도 없으면서 영화는 죽어라고 열심히 본다. 조금이라도 더 일해서 돈을 벌면 좋으련만, 종교적 차이, 문화적 차이를 이유로 싸움을 벌이기에 더 급급하다.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조차 기껏해야 얻을 수 있는 일자리라고는 선진국 대기업이 아웃소싱하는 회사의 저임금 일자리뿐. 고개를 들면 (부자들의 소유임이 분명한) 고층 빌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세워지고 있다. 이 사람들이 하나같이 열광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퀴즈쇼. 그들의 눈에는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퀴즈쇼의 우승자가 되는 것이, 열심히 일해서 제 힘으로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승산이 있고 이치에 맞게, 즉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일까?

 

+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는 이같은 빈민들의 생활양식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라니?'. 제목만 보고 사실 처음엔 의아했다. 원제를 찾아보니 'Poor Economics'. 우리말로 풀이하면 '빈곤 경제학,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학' 정도가 되는데, 우리말로 번역되면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라는 다소 파격적이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으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이 왜 더 합리적일까? 책을 읽은 사람으로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글자 그대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학자나 정책가, 넓게는 부자들과 다른, 나름의 판단 기준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빈민들을 위한 경제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기준에 맞는, 그들의 판단을 고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가령 책에 제시된 의료 문제를 보자. 선진국 출신의 학자, 정책가 대부분은 빈국의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품을 제공하거나 예방접종을 하는 식의 안일하고 막연한 대안을 내놓는다. 하지만 빈민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신념과 문화가 있고, 또한 사람마다 심리적인 반응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대안은 한계가 있다. 그보다는 행동경제학에서 나온 그 유명한 '넛지(nudge)', 즉 '찔러넣기' 개념을 활용하여 아주 기초적인 의료 활동은 따로 선택할 수 없는, 주어진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낫다. 

 

 

학교를 중퇴하거나 학교에 아예 발도 들여놓지 못한 아이들 가운데 태반은 누군가의 잘못된 판단으로 희생된 것이다. 부모가 너무 일찍 포기했거나 교사가 가르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경우 혹은 학생 자신이 자신감을 잃은 경우다. 이들 중에는 경제학 교수나 대기업 대표가 될 잠재력이 있는 아이도 있지만 결국에는 일용직 노동자나 소매점 주인, 약간 운이 좋은 경우 하급 사무직원이 된다. 그들이 잃어버린 빈자리는 대개 입신의 기회를 제공할 여력이 있는 부모의 평범한 아이들로 채워진다. (p.140)

 

 

교육 문제를 보면, 대부분의 빈국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걸쳐 타국의 식민지였던 역사적인 경험이 있다. 이로 인해 교육 제도가 제국의 상층부를 위한 엘리트를 양성하는 엘리트 위주의 교육, 그리고 필연적으로 입시와 결과 위주의 교육으로 변질되었다. (식민지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이로 인해 선진국 교육이 당장 잘 하지 못해도 장기간 아이의 잠재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는 것과 달리, 빈국의 교육은 소수의 - 집이 부자이거나, 비록 집은 가난하지만 똑똑한 - 아이들만 혜택을 보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 교육은 19세기 학교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사는 언젠가 과거의 일이 되고, 경제는 나아질 수 있지만 제도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고치지 않는 한 계속 남는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빈국이 아니지만, 빈국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도 백년지대계라는 교육 시스템을 고치지 않느다면 언젠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체현상을 겪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미국에는 자식이나 손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노인이 많다. 그러나 사회보장연금이나 노인의료보험처럼 자식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갈 방도를 갖추는 것은 노인이 존엄성과 자신감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노후를 대비하는 사람은 자신을 부양해줄 것을 기대하며 자녀를 많이 낳을 필요가 없다. 자신을 부양할 의사나 능력이 있는 자식이 없어도 의지할 수 있는 공적 대비책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효율적인 인구 억제책은 자녀(그중에서도 특히 아들)를 많이 둘 필요가 없게 하는 것이다. 건강보험, 노령연금 같은 효율적인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거나 수익성 높은 노후 대비 금융상품을 개발하면, 출산율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딸을 차별하는 의식도 사라지게 된다. (pp.182-3)

 

 

인구 문제도 있다. 6,70년대에 유행한 산아제한 구호 중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자녀수와 경제력은 반비례 관계라는 인식이 높다. 인구가 줄면 경제력이 높아진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사실일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그로 인해 여아 살해 같은 인권 차원의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또한 자녀수와 경제력이 반드시 인과관계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책은 전통적인 사회적 기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잘 운영되도록 서포트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각국의 사회 문화를 (선진국의 그것으로) 획일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문화는 유지하면서 나쁜 점은 개선하고 좋은 점은 살릴 수 있도록 정책가들이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

 

 

+

 

 

빈곤층, 또는 빈국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 이전에 왜 지원해야 하느냐, 지원하면 어떤 효과가 있느냐 하는 원조의 이유와 효과에 대한 논란도 있다. 더 나아가면 '과연 빈곤이라는 것이 존재하느냐' 라는, 빈곤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품는 학자들도 있다. 이 책 초반에도 그러한 논의가 나온다. 어쩌면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격일 수도 있고, 빈곤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인간이 스스로 헤집고 나올 수 없는 덫과 같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눈을 감고 완전히 등을 돌리는 것은 답이 될 수 없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빈곤 문제에 관해 의료, 교육, 인구, 금융 등 다양한 측면으로 접근하여 보다 심도있게 빈곤문제를 고민할 수 있게 한 점이 좋았다.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의 사례가 등장하여 읽는 재미도 있었고, 담비사 모요나 아마르티아 센 같은 유명 학자들의 빈곤에 관한 입장과 이론들을 자세하게 정리한 점도 좋았다.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통념을 뒤집고 비판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비합리성을 강조하는 경제학의 최근 경향과도 맞아떨어지고, 행동경제학과 심리학에 관한 논의까지 들어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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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줄 하나가 인생을 바꾼다 - 인생을 바꾸는 노트술
요시자와 유카 지음, 이인애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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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웃님 블로그에서 서평을 보고 읽고 싶어져서 위시리스트에 적어두었다가 이제서야 읽었다. (이놈의 게으름...-_-;;;)

 

일본 자기계발서 중에는 유난히 노트 필기나 정리, 시간 관리에 관한 책이 참 많다.  이런 책들은 '~~을 하라'고 막연한 조언을 던지지 않고 구체적인 활용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된다. '메모를 하라', '정리를 하라', '시간을 아껴 써라'. 이런 조언을 사람들이 몰라서 안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이 책을 읽은 것도 필기하고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습관을 좀 더 계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필기를 잘 한다고 친구들한테 노트를 빌려준 적도 많고, 상도 받고, 학급회의나 학생회의에서 서기를 도맡기도 했을 만큼 필기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나서 그런 생각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학생 때는 예쁜 글씨로 깔끔하게 받아적기만 해도 필기를 잘 하는 축에 속했지만, 성인이 되고나서 보니 필기한 내용을 실제 시험과 업무에 적용할 수 있어야 진짜 잘 하는 것이었다.

 

책을 보아 하니 저자 요시자와 유카도 나와 비슷한 학생이었던 것 같다. 저자는 비서 양성 학교를 거쳐 비서로서 여러 회사에서 재직한 후, 1994년 '뫼비우스'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여 컨설팅, 카운슬링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마냥 성공적인 인생을 보낸 사람 같지만, 한때는 저자도 가정 불화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 충동에까지 휩싸였다고 한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책장을 정리하다가 비서 학교 시절에 작성한 비서용 속기 노트를 발견했다. 잘 정리된 노트를 보다가 그 때 배운 속기노트 필기법을 비즈니스에 응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아이디어가 그녀의 인생을 바꾸었다.


저자가 제안하는 노트 필기법은 매우 간단하다. 오로지 노트에 세로줄 하나를 긋는 것뿐이다. 세로줄 왼쪽에는 업무나 세미나에서 배웠거나 책에서 읽은 내용을 적고(입력), 오른쪽에는 깨달은 점, 생각난 점, 행동 계획 등을 적는다(출력). 일반적인 필기법은 듣거나 배운 내용을 노트에 죽 적고, 그때 그때 생각하거나 느낀 점은 같이 적거나 아예 적지 않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나중에 필기를 봤을 때 어떤 내용이 남이 얘기한 것이고 내가 생각한 것인지 구별하기가 어렵고, 알게 된 내용을 어떻게 행동으로 실천하여 나의 성과로 연결할지는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된다. 하지만 이 세로줄 필기법을 이용하면 입력과 출력을 빨리 구분할 수 있고, 생각한 내용을 생각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행동으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이다.

 

이 책을 읽고 나도 사용하고 있는 노트와 수첩, 다이어리를 모두 세로줄 형식으로 바꾸었다. (따로 구입할 필요는 없고, 그저 자를 대고 한 줄을 찍- 하고 그어주면 된다!) 아직은 세로줄 필기법에 익숙하지 않아서 입력란만 빽빽하고 출력란은 텅 비어있는 경우도 많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필기법에 익숙해지면 입력과 출력의 비중이 점점 비슷해지고, 속도도 빨라진다고 하니 믿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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