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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17

오늘의정진:  喚取機關木人問 (환취기관목인문) 기관목인을 불러서 물어 보아라


- 100일 정진, 13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열두 번째 구절은

<誰無念誰無生, 若實無生無不生/수무념수무생, 약실무생무불생

누가 생각이 없으며 , 태어남이 없는가?  만약 진실로 태어남이 없다면 태어나지 않음도 없다.> 였다.


無念(무념) '생각이 없다' 는 뜻보다는 생각이 끊어진 상태가 더 적합한 것 같다.

무념은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또 일부러 생각을 안하는 상태도 아니다.

생각이 저절로 끊어져야 한다.

() 의 최종 경지인   空寂靈智(공적영지)眞空妙有(진공묘유) 의 상태는 무념에서 시작 되기 때문이다.

공적영지는 텅 비어 고요하나 신령하게도 아는 자리 이고, 진공묘유는 참으로 비었으나 묘하게도 있는 자리를 말한다.

이것이 불성(佛性) 이며 바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한 상태이다.


오늘은 열세 번째 구절

喚取機關木人問 (부를 환, 취할 취, 베틀 기, 빗장 관, 나무 목, 사람인, 물을 문 ) 환취기관목인문 

기관목인을 불러서 물어 보아라

求佛施功早晩成 (구할 구, 부처 불,베풀 시, 공덕 공, 일찍 조, 저물 만, 이룰 성) 구불시공조만성 

부처를 구하고 공덕 베푸는 일을 조만간 이루리다.


기관목인은 나무로 만든 사람 모양의 로봇을 말한다.

고대 중국에서 전쟁을 할 때 일반 병사를 대신하여 적을 속이는 용도로 쓰였었고,또 현대의 로봇처럼 단순한 작업을 하는데 이용할 목적으로 만든 나무 인형인 것이다.

기관목인은 사람의 형상이지만 생명이 없다.

말도 못 하는 기관목인에게 물어 보라고 한다.

"누가 생각이 끊어지고 태어남이 없는가?" 라는 심오한 깨달음에 대한 질문을 기관 목인에게 물어 본다고 기관목인이 답을 해 줄까?

선문답(禪問答)이다.


달마서래의 (達磨西來意),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

정전백수자 (庭前栢樹子), 뜰 앞의 잣나무 이다.

조주(趙州 778~897) 선사(禪師)의 답이다.

기관목인에게 물으라는 것과 조주선사의 뜰 앞의 잣나무는 선문답이다.

나무는 말을 할 수 없다.  기관목인이든 뜰 앞의 잣나무든.

나무가 무념을 알고, 무생을 알며, 또 불무생을 알겠는가?

또한 달마가 서쪽에서 온 이유를 알고 있겠는가?

그런데 영가스님은 기관목인에게 물어 보라고 한다.

물으면 곧 부처를 구하게 될 것이고 공덕을 베푸는 일을 이룰  것이란다.

깨닫지 못한 나를 놀리시는 것인가?

아니다. 그러실리가 없다.


공덕(功德) 은 복()과 비슷 하지만 전혀 다른 뉘앙스가 있다.

일반적으로 복은 '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덕은 '쌓는다'고 표현한다.

복이 온다는 것은 내 의지로 오게 하는 게 아니다. 복이 스스로 와야 한다.

복은 행운과 비슷하다. 복이 나를 찾아 오는 것이다.

하지만 공덕은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다. 요행을 바랄 수가 없다.

내가 만들어야 한다. 남들에게 좋은 말을 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

나만을 위해서 사는게 아니라 남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 즉 선업(善業)을 쌓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덕이다. 덕을 베풀어야 한다. 즉 이기심보다 이타심, 자비의 마음을 가지게 될 때 공덕을 쌓게 된다.

그렇게 쌓인 공덕을 이제는 베풀어야 한다. 공덕을 쌓고 쌓인 공덕을 마지막에 가서는 또 베풀어야 한다

쌓는 것과 베푸는 것이 사실 다르지 않다.


공덕을 쌓는 것이 바로 베품이요, 공덕을 베푸는 것이 바로 쌓는 것이다.

이제 곧 부처를 구하고 공덕을 베풀게 되는 시점이 온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기관목인에게 물어보면.

그럼 기관목인은 답을 해주는가?

모른다.

그런데, 기관목인에게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기관목인을 기관목인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물을 수 있는데?


분별이 끊어진 사람, 즉 절학무위휴도인(絶學無爲休道人) 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기관목인에게 물을 수 있다. 무념, 무생, 불부생에 대하여.

또 조주선사는 잣나무에게 물을 수 있다. 달마서래의?

기관목인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내 말이 아니다. 영가스님과 조주스님이 말씀 하신 것이다.


喚取機關木人問, 求佛施功早晩成 /환취기관목인문, 求佛施功早晩成

기관목인을 불러서 물어 보아라 , 부처를 구하고 공덕 베푸는 일을 조만간 이루리다.


<일일 소견>

음력 12 8일은 약 2600년전 부처님이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새벽 별을 보고 깨우친 날이다.  성도절(成道節) , 혹은 성도재일(成道齋日)이라고 한다.

(보리수? 기관목인, 뜰앞의 잣나무 등 모두 나무와 연관 되었네, 뭐야.... 깨달음은 나무와 인연이 깊은 것 같은데....)

우리나라 전국의 선원에서 붓다가 이루신 깨달음에 도달하고자 오늘 새벽까지 철야정진과 용맹정진(勇猛精進) 을 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도 부처님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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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16

오늘의정진:  誰無念誰無生(수무념수무생)  어느 누가 무념하고 무생하는가?


- 100일 정진, 12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열 한번째 구절은

<比來塵境未曾磨, 今日分明須剖析/ 비래진경미증마, 금일분명수부석

예전엔 때 낀 거울 미처 갈지 못했 더니, 오늘에야 분명히 닦아 내었도다.> 였다.

나의 본래 청정한 성품은 닦을 것 조차도 없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분명히 닦아 내었다면 닦을 것 조차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열두 번째 구절

誰無念誰無生 (누구 수, 없을 무, 생각 념, 누구 수, 없을 무, 날 생 ) 수무념수무생

어느 누가 무념하고 무생하는가?

若實無生無不生 (같을 약,열매 실,날 생,없을 무, 아닐 불, 날 생) 약실무생무불생

만약 무생이 진실이라면 불생 또한 없다.


이건 무슨 말인가?

無念(무념) , 생각이 없고, 無生(무생) , 태어남이 없다니?

그리고 무생이 진실()이라면 不生(무불생) , 안 태어남도 없다라니?  

무념, 무생, 무불생 같은 간단한 단어이지만 그 속 뜻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누가? ? (중국어로 발음하면 '쉐이'? (shéi))

도대체  누가? 무념, 무생, 무불생 한단 말인가?

사실은 이건 증도가(證道歌) 전체 노래에 흐르는 변주 된 멜로디에 불과 하다.


바로 증도가에서 가장 핵심 구절인 두 번째 구절

<絶學無爲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절학무위휴도인, 불구망상불구진)

배움이 끊어진 한가한 도인은, 망상을 추구하지도 참됨도 구하지 않나니>

의 서곡을 변주했다.

누가 어떻게?  바로 배움이 끊어진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참됨도 구하지 않는 바로 그 자가 바로 무념, 무생, 무불생 하다는 것이다.

생각이 끊어지고, 태어남이 없고, 또한 안 태어남도 없는 그 자리를 증득한 사람이 바로 증도가를 노래하고 있다.


본래 우리의 성품(性品)은 태어남도 태어나지 않음도 없고, 생각이 있다, 없다도 없다.

이는 반야심경의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물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垢不淨, 不增不減) "이 모든 법은 공()하여 태어남도 없고, 멸 함도 없고, 더러운 것도 깨끗함도 없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과 같은 뜻과 상통(相通) 한다.

다시말해 우리의 본 성품은 공() 하다는 것이다.


본래 우리의 자성(自性)은 태어남도 죽음도 없는 불생불멸의 자리이고, 더럽고 깨끗함도 없으며, 또한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증도가는 시종일관 도의 본체, 자성의 본체를 노래하고 있다.

오로지 내 본성(本性)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닦아도 닦을 것 조차 없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면서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한 그 자리, 바로 본성품을 노래하는 것이다.


증도가의 첫 구절이 군불견() 이었다.

그대 보이지 않는가의 첫 물음, 당신의 마음의 눈에는 보여지지 않는가 하는 묻는 것은 그냥 묻는 물음이 아니다.

誰無念誰無生, 若實無生無不生 / 수무념수무생, 약실무생무불생

누가 생각이 없으며 , 태어남이 없는가?  만약 진실로 태어남이 없다면 태어나지 않음도 없다.

그 누가는 바로 깨달은 사람, ()과 무()의 자리를 깨달은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데 그런 깨달음을 얻은 도인(道人)이 특별한 사람이란 말인가?

아니다. 바로 그대()여야 한다. 바로 그대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대와 나는 다르지 않다.

군불견(), 그대 보여지는가? 나는 보았다. 이제 그대 또한 보여질 것이다.

"내가 노래하는 깨달음의 노래는 그대에게 곧 들릴 것이고 그대에게 보여질 것이다" 라고 영가현각 (永嘉玄覺스님(674~713)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엄청난 비약(飛躍)같지만 바로 진실이기도 하다. 무념(無念) 해야 들린다.

()은 비약이며 진실이기 때문이다.


<일일소견>

업식에 끌려다니지 말고 , 업식의 주인이 되려면

내 근본 마음 , 자성에 맡겨야 한다. 믿지 못하니 맡기지 못한다.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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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없는데이터 2025-01-06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업식에 끌려다니지 말고, 업식의 주인이 되라˝는 문장은 우리의 행동과 선택을 좌우하는 과거의 습관적 사고와 행동에서 벗어나, 이를 주체적으로 통제하며 살아가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현대 사회에서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외부의 기준과 환경에 휩쓸리며 자신의 본질을 잃고 살아가지만, 이 글은 내면의 자성과 본질로 돌아가라는 진지한 요청처럼 느껴집니다. 한 해의 시작에 깊은 울림을 주는 글로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마힐 2025-01-06 16:36   좋아요 0 | URL
제가 업식에 많이 끄달려서요. 더 이상 끌려 다니면서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 내 자성의 목소리에 좀 더 귀기울여 할 것 같아서요. 함께 자각하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 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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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년 15

오늘의정진 比來塵境未曾磨(비래진경미증마 예전엔 때 낀 거울 미처 갈지 못했더니


- 100일 정진, 11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열 번째 구절은 

<無罪福無損益寂滅性中莫問覓

무죄복무손익적멸성중막문멱

죄와 복도 없고 손해와 이익도 없으니적멸한 성품 가운데 묻고 찾지말라였다.

분별심이 사라지면 그 세계가 바로 무위의 세계이다.

 

오늘은 열한 번째 구절

比來塵境未曾磨 (아닐 비올 래먼지 진경계 경아닐 미거듭 증갈 마 )

비래진경미증마

예전엔 때 낀 거울 미처 갈지 못했 더니

今日分明須剖析 (이제 금날 일나눌 분모름지기 수쪼갤 부쪼갤 석)

금일분명수부석

오늘에야 분명히 닦아 내었도다.

 

선()에서  거울은 내 마음 자리를 비추는 것을 상징 한다.

가만히 놔두어도 거울에 먼지가 끼듯이 내 마음에도 시시때때로 먼지가 낀다.

먼지가 낀 거울에 비춘 내 얼굴이 깨끗히 보이지 않듯이내 마음의 거울에는 번뇌와 분별심이 먼지처럼 달라 붙는다

거울 닦듯이 내 마음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예전에 즉깨닫기 전에는 내 마음의 때를 닦으려 했으나 미처 닦지 못했다.

어쩌면 때가 너무 많이 껴서 잘 닦이지도 않았을 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닦을 생각 조차 안 할 수 도 있었다

때긴 상태가 오히려 습관이 되어 그냥 그런 상태로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닦아 보면 안다깨끗한 거울에 비춘 본래 청정한 나의 모습이 얼마나 깨끗한 지를


이제야 깨닫고 보니 본래 나의 자성 마음은 더럽고 깨끗함이 없는 청정한 자리이다

때가 낀 거울에 비춘 내 자성이 본래 더러운 게 아니었다.

나의 자성에 때가 낀 것이 아니다본래 내 자성은 청정하다.

거울이 더럽다 하여 내 자성이 더러운 게 아니었다.  

내 마음의 거울에 낀 분별 망상으로 인해 내 본래 마음자체가 더러운 것 인줄 알았는데 본래 나의 마음은 때가 낀 적이 없다

비춰 보는 마음의 거울을 보지 말고 그대로 내 본래 청정한 마음을 봐야 한다.

거울에 낀 먼지를 보지 말고 내 본래 청정한 마음 자리를 보야야 한다.


그러면 육조혜능(六祖慧能638~713) 선사가 말 했던 본래무일물의 뜻이 명확해 진다.


<菩提本无树(보리본무수)明镜亦非台(명경역비대)

  一物(본래무일물),  何处惹尘埃(하처약진애)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거울 또한 대가 아니라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어디에 티끌이 일어나리까?> 


성품은 드러나야 한다. 저절로 비춰져야 한다깨달음은 보여지는 것이다.

내 마음의 거울도 닦으려고 해서 닦아 지는 게 아니라 닦아진 상태가 되야 한다.

'본래무일물' 은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 닦을 먼지 조차도 없는 경지가 되어진 것이다.


그래서  신수(神秀606~707) 대사가 쓴 시는 깨닫기 전의 일이 되는 것이다


身是菩提树(신시보리수)心如明镜台(심여명경대)

  时时勤拂拭(시시근불식)勿使惹尘埃(물사야진애)

  몸은 보리수요마음은 명경대(거울대)

  부지런히 털어내고먼지가 앉지 않도록 해야 함이다.> 


아직 본래무일물’ 임을  알기 전까지는 부지런히 내 마음 거울을 닦아야 한다.

거울을 닦는 것그것이 바로 수행이자 정진이다.

 

 

<일일소견>

거울의 먼지는 쉴 새 없이 들러 붙는다

아직도 올라오는 분별심속지 말고 지켜본다.

지켜 보는 것그것이 바로 닦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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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년 14

오늘의정진 無罪福無損益 (무죄복무손익 죄와 복이 없고 이익과 손해도 없나니


- 100일 정진, 10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아홉 번째 구절은 

<夢裏明明有六趣覺後空空無大千

몽리명명유육취각후공공무대천

꿈 속에선 밝고 밝게 육취가 있더니, 깨달은 후에 비고 비어 대천 세계가 없어진다>였다.


꿈 속에 있으면 아직 깨닫기 전이다

깨닫기 전에는 육도윤회(六道轮回)속에서 돌고 있기에 실체가 있고 밝은 줄 안다

하지만 깨닫고 난 후 꿈에서 깨어나니 본래 육도윤회는 없으며 우주 대천세계가 모두 텅 비어 없다는 뜻이 된다

증지소지비여경(证智所知非余境), 오직 깨친 지혜로만 알 수 있는 경지일 뿐 이다

 

오늘은 열 번째 구절

無罪福無損益 (없을 무죄업 죄복 복없을 무덜 손더할 익 )

무죄복무손익

죄와 복도 없고 손해와 이익도 없으니

寂滅性中莫問覓 고요할 적멸할 멸성품 성가운데 중없을 막물을 문찾을 멱)

적멸성중막문멱

적멸한 성품 가운데 묻고 찾지말라


깨달으면 죄도 없고복도 없다그리고 손해와 이익도 없다

깨달음은 분별과 망상이 사라진 상태라 여기에 무슨 죄와 복이 있고 손해와 이익이 있는가?  

그러니 적멸한 성품 가운데서 묻지도 찾지도 말라고 한다

적멸寂滅은 고요할 적멸할 멸 이다분별망상이 전부 남김없이 사라져버리고 난 후 고요해진 상태를 뜻한다

성품(性品)은 나의 본래 마음 자리를 말한다.

분별이 사라지면 고요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데 어찌 따로 묻고 찾는가


삼조승찬스님(三祖僧璨 ?~606의 신심명<信心銘>에서도 이러한 경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지도무난유혐간택단막증애통연명백(至道無難唯嫌揀擇但莫憎愛洞然明白)

도에 이르는 일은 어렵지 않나니오직 간택하는 마음을 꺼려야 한다

단지 미워하고 좋아하는 마음만 없다면 통연히  밝게 드러난다.>


바로 통연명백 (洞然明白) 즉 모든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내 본래 성품이란 것이다.

오로지 대상에 대하여 분별하는 마음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만 없앨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도(깨달음 이란 것이다.

유위법의 세계에서는 밖으로 보이는 대상에 집착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외부의 상황에 따라 내 마음이 휩쓸린다

죄와 복을 따지고손해와 이익을 따지며 밖의 대상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그 모든 분별은 전부 ’ 라는 아상(我相) 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라는 상을 없애지 않고는 늘 분별하는 세상을 돌며 살게 된다

그게 바로 육도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본래 무아 임을 안다면 자연히 내 본래 성품이 드러난다.

그러니 무아와 진아는 둘이 아니다

 

無罪福無損益寂滅性中莫問覓 / 무죄복무손익적멸성중막문멱

죄와 복손해와 이익은 모두 본래 없는 것이니

본래 적멸한 성품으로 돌아가면 따로 묻고 찾을 일도 없다.

그저 분별하는 내 마음만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일일소견>

혼란스러운  우리나라육도윤회가 따로 없다.

밖의 현상에 분별 말고 내 마음만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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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1-04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힐님께서 독실한 불자이신가 봐요.
저는 가톨릭교도인데 엄마가 불자시라 절에서 49재를 지내는데 불교 의식이 가톨릭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요.
참회와 기원, 그리고 나를 낮추는 것들이 비슷했어요.
정진이란 말에 많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매일 올려주시는 구절을 마음에 새기는게 정진의 시작 같아요^^

마힐 2025-01-04 20:38   좋아요 1 | URL
아, 전 독실한(?) 신자는 아니에요. ㅎㅎ 신심있는 보살님들이 엄청 많으세요.
아마 페네로페 어머님이야 말로 신심이 돈독 하셨을 것 같습니다.
저도 예전에 교회에 따라 가기도 했었는데요, 의식을 함께 하면서 절에서 하는 의식과는 겉으로는 다르면서도 의미는 비슷한 것 같았어요.
100일 정진이란 말을 쓰는게 부끄럽지만 그래도 도전해 보려고요.
지금 한국의 전국 절에서는 동안거 기간이라 선방의 스님들과 신심있는 재가 불자들도 함께 정진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저는 집에서 잠시 틈을 내서 흉내만 내는 거랍니다.
페넬로페님 주말 저녁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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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2513

오늘의정진:  夢裏明明有六趣 (몽리명명유육취) 꿈 속에선 밝고 밝게 육취가 있더니


- 100일 정진, 9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여덟 번째 구절은

<頓覺了如來禪, 六度萬行體中圓

돈각료여래선, 육도만행체중원

여래선을 단박에 깨치니, 육도만행이 본체 속에 둥글게 돌아간다> 였다.


본체는 곧 내 근본 마음이요, 나의 근본 마음 속에서 육도윤회(六道輪廻)도 돌아가고 육도만행(六度滿行)도 함께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오직 내 마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은 아홉 번째 구절

夢裏明明有六趣 (꿈 몽, 속 리, 밝은 명, 밝은 명, 있을 유,재미 취 )

몽리명명유육취

꿈 속에선 밝고 밝게 육취가 있더니

覺後空空無大千 (깨칠 각, 뒷 후, 빌 공, 빌 공, 없을 무, 큰 대, 일천 천)

각후공공무대천

깨달은 후에 비고 비어 대천 세계가 없도다


오늘은 어제의 육도만행(六度滿行)에서 육취()로 이어진다.

육취는 어제 설명했던 육도윤회(六道輪廻)의 육도(六道)를 뜻한다.

육도(六度)와 육도(六道), 분명 한글은 같은 발음이지만 한자(漢字)는 다르다.

그러니 의미하는 뜻도 다르다. 한자를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어제 육도(六度)는 육바라밀(六波羅蜜) 이라고 했다

육바라밀은 보살이 닦아야 할 수행 여섯가지 즉 보시, 지계, 인욕, 정진, 반야, 선정 (布施,持戒,忍慾,精進,,禪定) 를 뜻한다

육도의 도 '건널 도' 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피안으로 건너는, 정토로 건너가는 도를 뜻 한다

수행을 통하여 유위법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무의 세계로 건너가는 것이다.


오늘의 육취는 곧 육도(六道),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말한다.

육도(六道)는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도(人道), 천도(天道)를 뜻한다고 했다. 육도의 도() '길 도' 이다.

우리는 어떠한 길로 가고 있는가? 사람다운 인간의 길인가? 늘 다투고 분열하는 아수라의 길인가? 아니면 이성이 없이 사는 축생의 길인가?


우리는 늘 윤회(輪廻)한다. 불교를 믿든 안 믿든 윤회 속에서  우리는 늘 돌고있다.

나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차를 타고, 직장에 가고, 일을 하고, 마치면 집에 오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씻고 난 후 다시 잠을 자게 될 것이다.

늘 매일 이렇게 산다.   죽을 때 까지 이렇게 반복하며 살 것이다이 또한 윤회다.

결국 우리에게 윤회를 벗어나느냐 못 벗어나느냐의 문제만 남는다

죽으면 끝난다고?

아니다. 다시 또 업식에 따라 육도(六道)를 돌게 된다. 또 윤회를 한다.

태어 나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만 윤회가 아니다.

그건 엄밀히 말하면 환생(還生) 이다.


윤회의 범위는 넓다. 내 현재 생활과 삶에서 부터 환생까지 포함한 세계관이다.

수행은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길이며 무의 문에 들어서는 순간 윤회는 멈추게 된다.

깨닫고 난 후 보면 지금껏 헤메고 돌았던 육도 윤회는 없어져 버린다.

돌고 도는 육도윤회가 실제와 같고 또한 하도 밝아서 그게 전부 인줄 알았는데 깨닫고 보니 그저 한낱 꿈이었다

윤회의 꿈에서 깨는 것이 깨달음이다.

그 꿈속에서 깨어나 보니 대천세계(大千世界)마저 텅 비어 없어진다.


불교의 우주관은 광활하다.

태양계를 중심으로 한 우리가 사는 지구가 있는 우주를 두고 불교에서는 소 ()세계라 한다

그것이 1000개 모인 것이 소천(小天)세계라고 부른다.

하나의 소천세계가 다시 1000개 모인 것이 중천세계(中天大千世界)가 된다.

다시 중천세계가 1000개가 모인 것이 대천세계(大千世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는 소천, 중천, 대천이 모두 합해진 불교식 우주관이다.

그런 광할한 우주에 비하면 인간은 아주 티끌 같은 존재와 같다.

금강경<金剛經>에는 항하사(恒河)라는 표현이 나온다.

즉 갠지스 강의 모래 알이란 뜻으로 우리 인간은 대천세계 우주에 비하면 마치 갠지스강의 모래 한 알과도 같이 너무나도 작다.

그러나 갠지스강의 모래 한 알과도 같이 작은 사람이라도 깨닫게 되면 바로 삼천대천세계의 실체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夢裏明明有六趣, 覺後空空無大千

몽리명명유육취, 각후공공무대천,

꿈 속에선 밝고 밝게 육취가 있더니, 깨달은 후에 비고 비어 대천 세계가 없어진다.


깨닫고 보니 육도윤회가 실제인 줄 알았는데 꿈속의 세계였고대천세계 마저 텅 비어 없어졌다

영가 현각스님(永嘉玄覺665~713)  증도가(證道歌)는 꿈에서 깨어나라고 하지만 나는 언제쯤 눈을 떠 없음을 보게 될까?


<일일소견>

새해라 하지만 새해 같지 않은 새해. 이놈의 윤회....

가고 가고 돌아 돌아 다시 또 근본으로... 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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