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비극이 40주년이 되었다. 40년이란 시간이 인간 개인에게 보자면 기나긴 시간이고, 역사라는 큰 틀에서는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40년을 보면 이제 중년의 반열에 든 사람이라면 참 길지만 짧게 지나간 시간이고, 젊은 층에게는 아주 오래되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이다. 518 당시 나이가 40살이던 사람들은 이제 노인이 되어 삶을 마감하거나 또는 마감하기 위해 마무리를 준비할 것이다.

 

518에 대해 생각하면 E.H.Carr<역사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역사는 현재의 인간이 과거와 끊입 없이 대화하는 것이라 한다. 대화하는 것은 무엇인가? 죽은자는 말이 없고, 오로지 기록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기록을 가지고 후대의 평가를 두고 우리는 계속 고민하게 된다. 한국의 대표인 사례가 바로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이다. 누군가에겐 정부에 반기를 든 폭도, 혹은 반자유주의 세력이라고 말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에게 민주화에 대한 열망, 죄 없는 양인학살 사건, 2가지가 복잡하게 묘하게 엮여있는 비극일 수 있다. 전에 같은 인터넷카페와 블로그 이웃 분이 적은 글을 보았다. 영화 <김군>에 대한 리뷰였다. 아직도 518에 대한 아픔이 끝나지 않으나, 극우대표 논객이 계속 518을 두고 왜곡하는 점에 대해 현실적 증거 또는 북한군이라고 지명된 사람을 찾아 그가 주장한 바가 틀렸음을 보여준다.

 

분명히 말하지만 51840년이 이미 지났고, 국방부 자료나, 광주 및 주변 사람들의 증언, 하다못해 외국기자와 미국극비문서까지도 518은 북한과 무관하다고 나온다. 오히려 헬기사격을 비롯한 폭격계획을 숨기려 한 자들이 북한개입설을 계속 주장한다. 그들에게 518은 부정하고 싶은 기록이고, 한편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이기도 한다. 여러 책을 읽다보니, 왜 그렇게 군인들이 518에서 잔혹한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여러 가지 서적에서 제시하고 있으나, 군부대 특성상 진압부대원인 육군은 일반병사들이 많으나, 병사를 지휘하고 통제하는 장교 이상으로 살펴볼 존재가 부사관 집단이다. 이들 중 부사관 계급 중 상위계급인 상사 직급자는 대부분 베트남 전쟁을 경험해보고, 베트남 전쟁에서 잔인한 전투를 수행한 자가 많았다. 그런 사람들이 있고, 그런 자가 상관이라면 군기를 잡히는 것 이상으로 광기로 잡을 것이다.

 

충정훈련, 단순히 진압훈련을 넘어 진압해야 할 대상에 대해 증오심까지 부여했다. 즉 진압되어야 할 대상은 단순히 진압을 넘어 죽이거나, 또는 죽음 그 유사성까지의 폭력행위를 휘둘러야 했다. 518 사진전을 인터넷을 보면 너무 슬프고 무서운 사진이 많다. 머리가 깨지거나, 얼굴이 아예 없거나, 목이 잘린 시신도 있다. 내장이 터져 나온 그림, 아버지 영정을 들고 멍하니 바라보는 어린상주 등등 이들만 그런가?

 

더운 날 친구들이랑 물놀이하기 위해 저수지에서 놀던 애들은 계엄군의 총에 맞고 머리 반쪽이 날라 갔다. 차갑게 식어가는 아이를 부여잡은 어머니의 통곡은 직접 보지 않아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렇게 518은 죽은 자의 비명으로 시작하여 40년이 지난 지금도 죽은 자를 기억하며 살아남은 자들이 비명을 지른다. 그들의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은 그들의 죽음이 은폐되어야 했고, 조롱당해야 하던 것이다.

 

누구는 말한다. 연평해전이나 군사훈련 중에 죽은 군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말이다. 물론 작전 중이나 또는 교전 중에 죽은 이들은 국가의 신으로 현충원에 모시고, 그들을 기려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적어도 우리에겐 영웅의 모습으로 남아있지, 그 이상으로 왜곡되지 않는다. 그들은 나라를 지켜야 할 의무로서 죽음을 당했다. 하지만 518 희생자는 나라를 지키는 사람으로부터 보호를 받은 게 아니라 오히려 죽임을 당했다.

 

같은 민족, 그것도 같은 국가의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게 비극인 것이다. 그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는 추모행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광주에서 열었다. 이날 대통령이 연설할 때 광주시민만 아니라 전남도민도 같이 언급했다. 518의 희생자는 거의 대부분이 광주 안에서 나왔지만, 왜 전남도민까지 포함한 것일까? 그것은 전북에서 전주, 경북에서 대구과 같은 것이다. 지방의 작은 시군에서 대구 또는 광주 등과 같은 광역도시에 많이 이주하기 때문이다.

 

서울이나 경기도, 지방에서 울산과 부산은 토박이 주민보다 외지 사람들이 이동이 잦다. 교통이 발달되고, 인구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주나 대구 같은 도시난 전남과 경북지역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전남이나 경북 지역의 가족이 많이 분포하기 때문이다. 이는 공업이나 상업이 중심이 아니라 농업과 어업이 중심되었기 때문이다. 소규모 핵가족보다 대가족의 문화가 아직 마을사회에 남아있는 점, 2차 또는 3차 산업보다 1차 산업이 중심이다. 1차 산업의 특성이 제법 개인화 되었다고 하나, 적어도 마을단위의 협조문화는 남아있다.

 

그래서 그런 도시에 무슨 문제가 일어나면 주변지역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나마 대구의 경우 경부선의 중심역사도 있고, 교통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광주의 같은 경우 다르다. 대구는 경북과 경남 중심적 교통교두보인 KTX를 비롯하여 각종 교통인프라가 갖추어졌지만, 광주는 조금 다르다. 광주의 교통인프라는 전남지역 군 단위 지역의 교통을 분산하는 기능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지역의 주민들이 학업이나 병원진료를 위해 광주를 찾는 경우가 많다. 광양과 순천 같은 지역은 조금 다르지만, 그 외의 지역은 광주가 중심이다.

 

518 당시 광주시민만이 아니라 전남지역의 주민들이 참변을 당한 이유가 그러하다. 전남지역 상권과 교육권 역시 광주가 중심이었고, 광주에 업무를 보러 주변지역사람들도 오고, 또한 광주에 전남지역 도민의 친척들이 많이 살았다. 그래서 518의 아픔은 광주만이 아니라 전남지역 전체의 아픔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러하다.

 

1980년대 광주전남은 아직까지 농경사회에 가깝다. 지금도 전남지역은 농축산업이 기반이다. 1980년대 전남지역에서 농업은 현대처럼 하우스나 트랙터를 이용하지 않았고, 농민들이 손이나 또는 농우(農牛)가 직접 논과 밭을 갈던 시절이다. 농경산업이 만연한 사회는 마을이 집성촌 또는 씨족부락이 근간이었다. 제사를 지내면 멀리 친척들도 찾아오고, 대규모 제사가 모이면, 촌수가 상당히 먼 사람들도 모인다.

 

518의 비극이 전남지역에 큰 아픔을 준 이유는 바로 이런 사유이다. 제사를 지내면 촌수가 먼 사람들이라도 어느 곳에 모여 다 같이 얼굴을 마주한다. 그런 시간은 1980년대 이전부터 시작했다. 조선시대부터 시작한 그런 행사에서 촌수가 10촌을 넘어 20촌을 넘는 사람들도 서로 알고 지내는 시대이다. 다 같은 고향사람들이고, 누구의 친구, 누구 아버지의 친구 등등 이런 인간관계가 매우 깊이 연결된 세상이다.

 

게다가 광주나 전남지역 인구는 다른 지역에 적었으며, 늘 일상에서 얼굴을 보던 사람들이 많았다. 광장에 나가니 어디서 많이 본 녀석이 계엄군의 몽둥이에 맞고, 총에 맞아 쓰러진다. 광주에 살던 친척이 그렇게 맞거나 죽음을 당했다. 광주의 비극은 그렇게 시작되고, 전남지역에도 그 비극이 퍼진 것이다. 지금도 518에 대한 이야기를 전남지역 친척들에게 물으면 당연히 날이 서는 이유는 그러하다.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으나, 외할아버지가 별세하고, 외갓집 문제로 시골에 갔다. 엄마시골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으나, 다행히도 옹벽 아래에는 어머니 사촌오빠가 사시고, 그 옆집에는 엄마 친구의 어머니가 사셨다. 광주 요양원에 있다가 고향집에 살고 싶어 내려오신 것이다. 어머니친구는 현재 광주에 사시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여동생, 고모도 광주에 사신다. 그래서 518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부산에 살아도 계속 접할 수밖에 없던 일이다.

 

광주전남에 518이라면, 제주지역에는 43학살이 있다. 언제 기념식을 보니 어떤 할머니가 외손녀가 전하는 사연을 들으며 통곡하고 있었다. 제주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방 어망이라 한다. 그 할머니의 사연은 43 당시 부모님이 군인에게 수장을 당해 죽었다. 그래서 그 할머니 그 이후로 바다생선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에서 43은 이제 70년이 지난 일이다. 70년이 지나도 그 할머니의 마음에 아방과 어망의 죽음은 늘 그늘이었고, 그 할머니의 외손녀에게도 학살의 비극은 계승된다.

 

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도, 외손녀는 할머니의 비극을 기억하고, 외손녀가 결혼하여 자녀와 손자손녀에게도 그 비극을 전할 것이다. 인간의 비극에 대해 518의 고통이 40년이 지나도 지울 수 없는 것은 그보다 더 오래된 학살의 비극을 지켜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는 광주 망월동 묘역은 총 3번을 갔다. 처음에 친구가 광주에 볼 일이 있어 같이 갈 때, 친구는 거래하는 분과 회의할 때 홀로 찾아갔다. 2번째는 결혼 전 와이프와 연애할 때 가보고, 3번째는 광주에 엄마를 엄마친구분집에 모셔드릴 때 가본 적이 있다.

 

1번째와 2번째 당시 묘역 위로 가지 않았지만, 3번째는 묘역에 잠든 사람을 찾아갔다. 아버지가 알고, 시골 작은아버지도 알던 사람이 거기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의 이름을 꺼내니 작은아버지는 조금 슬픈 목소리로 만일 망월묘역에 갈 일이 있다면 자기 대신 그 사람의 묘에 가달랐고 했다. 40년이 지났지만, 직접적으로 겪지 않고 주변 제3자의 입장에서 멀리 보던 이들도 518이란 여전히 아픔 일인 것 같다.

 

40주년 연설에서 조금 신경 쓰이는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대동세상이다. 대동(大同)이란 말은 자주 사용된다. 행사나 축재 때 대동제(大同祭)를 사용하는데, 대동세상(大同世上)은 조금 다르다. 이 말은 지금으로부터 약 430년 전 선조시대에 나온 단어이다. 기축옥사의 원인이 된 정여립이란 인물이 있다. 정여립이 만든 대동계(大同契)가 있고, 그는 대동세상을 부르며, 기존 권력에 맞서다 자살을 인물이다. 정여립 모반사건은 동인선비를 몰살시킨 사건이다. 어떤 책에서는 기축옥사를 두고 조선시대의 518이라고 말한다.

 

플라톤을 주장하던 귀족적 민주주의 이후 대중적 민주주의를 논한 것은 최근 300년 전 유럽이다. 공화정을 영국에서 주장했다고 해도, 진정한 민주주의, 즉 시민들에 의한 민주정을 논한 시점은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일 것이다. 하지만 신분과 성별 등 여러 차별에 관계없이 인간 그 자체에 평등을 주장한 것은 아마 정여립이 최초이지 않으냐는 글귀를 봤을 때 솔직히 나는 많은 충격을 받았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살고 싶다. 그것은 무엇인가? 타인 위에 군림하지 않고, 타인을 밟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주에서 인간적 삶, 더 나아가 민주주의란 어떤 것인가?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지식인과 대학생은 많이 있었으나, 광주의 518은 그런 정신보다, 오히려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야지. 사람이라면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라고 하는 게 시작인 것 같다. 광주전남지역은 친구와 친척 관계가 끈끈하고, 농경사회 특성상 이웃과 잘 지낸다. 지금 시골에 가면 담벼락은 콘크리트나 창살이 아니라 낮은 돌담이 아기자기하게 쌓여있다. 대문은 열려있고, 잠긴 것처럼 보여도 살짝 밀어도 문이 열린다.

 

가족이거나 가족이 아니더라도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던 이들, 그리고 그렇지는 않아도 가끔 지나가면서 보던 이들이 길에서 수난을 당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에는 민주화라는 이상적 가치보단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라는 감정이 우선이다. 민주화란 가치는 이성적 판단이 중요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인간의 행동력이다. 논리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것, 어떻게 보면 민주화란 가치는 이상적 가치고, 이성적 판단이 중요하나, 인간의 감정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민주주의 운동과 관련하여 프랑스대혁명은 제 아무리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자코뱅일원이 있었다고 한들, 프랑스 민중들의 분노가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다. 물론 그런 분노가 제대로 통제되지 않아 프랑스혁명은 실패했지만, 적어도 인간의 감정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논리로만 움직이면 자신의 이해관계에 치중하나, 감정으로 움직이면 이해관계보단 인간적으로 움직인다. 타인의 고통은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해결될 수 없다. 오히려 감정적으로 바라볼 때 가능하다. 민주화운동은 거대한 이상과 방향을 주지만, 그 시작은 이상보다 인간의 본연적 감정에서 시작된다. 왜 그렇게 투쟁하느냐 왜 그렇게 남을 위해 스스로 고생하느냐에 그들의 답변을 무엇일까? 거창한 연설보단 그저 어떻게 사람에게 그럴 수가 있냐고 말할 것이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시작점과 힘이 아닌가 한다.

 

물론 잘못된 인간성을 가진 인간이 가진 감정이라면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지만, 순박하거나 또는 선량하거나,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리 말할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졌기에 518에 대한 아픔과 상처는 더욱 큰 것이다. 어떻게 사람을 그리 할 수 있는지, 어떻게 그렇게도 하고서도 아직도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냐고 말이다. 하물며 주변에서 그런 일이 있다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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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킹덤>의 출현

 

넷플릭스에 제작한 <킹덤>은 매우 독특한 작품이다. 넷플릭스란 회사는 미국 콘텐츠 업체이고, <킹덤>의 배경은 조선이다. 조선시대라는 점에서 외국 특히나 서양문화에서 큰 힘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왜 조선의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선택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다. 물론 다양한 시라니오 또는 조건들이 있지만, 최근 좀비물에 대한 장르면세서 한국이 부상하기 시작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란 영화가 큰 여파를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흥행에 성공한 <부산행>, 그러나 뒤에 나온 애니메이션 장편영화인 <서울역>은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다. 제작비용이나, 또는 <서울역>에서 보여주는 작화나 욕설의 수준이 일반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지 어려웠을 것이다. 필자는 <부산행><서울역>을 보면서 느낀 점은 만일 연상호라는 감독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작품을 제작했는지를 안다.

 

특히 <셀마의 단백질 커피>를 보면 그가 <부산행>을 만들어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좀비물에서 왜 외국하고 차이가 나는가? 외국은 그로테스크와 액션에 크게 관심을 둔다면, <부산행>은 가족과 인간관계성에 대해 반영하기 때문이다. 괴물들이 나오면 칼로 목을 자르고, 총으로 심장을 파괴하는 것만이 좀비장르가 아니라, 탈출하는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는가 이다. 그런 맥락에서 <킹덤> 역시 일반적 좀비물과 다르다.

 

그들이 어떻게 좀비가 되고, 그 좀비들로 인해 어떤 상황에 처해져 있는가에서 액션만이 작품의 전부가 아니라, 서사적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좌우하고, 또한 작품 세계관에 살아가는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좀비로 인해 조선을 뒤집혔지만, 좀비만 잡는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게 아니다. 좀비로 인해 야기된 현상으로 조선은 어떤 상황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되어가야 하는지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2. 시기적 배경

<킹덤>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적 배경은조선시대 후기시대이다. , 조선시대 후기로 넘어가는 계기는 바로 임진왜란이다. 물론 정묘년과 병자년의 호란으로 인해 조선의 큰 위기가 닥쳐오나, 근본적으로 후기로 넘어서는 지점은 임진왜란이다. 7년의 전쟁으로 인해 조선팔도는 매우 열악하게 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은 물론이오, 식량문제와 겨울의 추위, 그리고 병마까지도 문제였다.

 

조선시대는 농업사회였고, 농업은 토지를 기반으로 수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마을이 파괴되면 인력이 모이지 못하고, 논밭은 잡초만 무성하세 자란다. 식량은 피난민과 조선 장병들도 필요하나, 일본 왜군 역시 필요하다. 그런 문제로 인해 사람들은 배고픔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인육을 먹는 방법을 택한다. 처음에는 길가에 시신을 먹던 것이 이제 서로의 자식을 남에게 바꿔주어 먹는 일도 있었다. 도적단은 아예 사람을 사냥하는 일까지 있었으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쟁 중 인육을 먹은 자는 큰 벌을 받아야 하나, 식량이 부족하니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킹덤>에서 사람을 감염시키는 좀비가 탄생한 시초는 바로 인육이었다. 이승희 의원은 제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영신의 제자는 바로 장례를 치루지 못한 채, 고깃국이 되어 지율헌 백성들의 식사거리가 되었다. 사람고기를 먹은 이들은 갑자기 죽게 되고, 사람을 공격하는 좀비가 되었다. 인육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인육을 먹더라도, 대부분 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많고, 시신이 들녘에 방치되면 전염병이 돌 수 있는 여건도 좋다. 시신이 부패하면 각종 세균들이 번식하고, 아무 생각 없이 먹게 되면 병에 걸린다. 보통 좀비물에서 최초의 좀비는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다. 갑자기 등장하고, 불의의 실험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킹덤>에서 좀비는 생사초에 서식하는 기생충이 원인이고, 이 기생충이 침투한 시신을 사람들이 먹게 되면 전염된다. 단지 최초 생사초에 의해 좀비가 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물게 되면 피해자는 좀비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시즌 1기와 2기에 밝혀지지 않았지만, 동래 지율헌의 좀비는 계속하여 사람을 공격하고, 공격당한 사람도 좀비가 되어 다시 또 사람을 공격한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전파되는 좀비속성은 군중사회에서 볼 수 있는 전반적인 집단적 현상과 유사하다.

 

3. 등장인물과 역사속의 관계성

임진왜란 당시 임금이라면 당연히 의주까지 몽진한 선조가 생각날 것이고, 선조의 아들 광해군이 떠오를 것이다. <킹덤>은 기본적으로 임진왜란 이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선조와 광해군의 모티브를 많이 활용했다. 특히 계비 조씨의 경우 인목왕후와 많은 유사성을 가진다. 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은 선조 말년에 태어나지만, 권력관계로 인해 어린 나이로 증살을 당한다. 인목왕후는 그 이유로 광해군은 증오하나, 광해군이 왕으로 등극하기 전에 광해군에 대한 정치적 견제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인목왕후 아버지인 김제남 역시 그렇다. 김제남의 모티브는 조학주와 닮아있다. 하지만 조금 차이나는 점은 광해군은 위로 임해군이 있었고, 이복형제들도 제법 많았다. 하지만 세자 중에서 왕의 서자로는 광해군만 있었다는 점, 선조는 명종의 조카인 점에서 왕권이 초기에 매우 약했다. <킹덤>에서는 선조시대와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임진왜란 이전에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있었다. 기축옥사로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리되어 대립하였고, 동인을 분리하게 만든 장본인은 서인과 선조였다. 하지만, <킹덤>에서는 서인, 남인, 북인의 관계는 없다. 오로지 조학주의 권력만이 살아있다.

 

이 모습은 마치 명종시대 간신 윤원형과 유사한 모습이다. 물론 왕후는 딸이 아닌 누이관계지만, 왕후를 이용하여 나라의 권력을 사로잡은 인물에서 그와 유사하다. 선조가 명종의 조카인 점에서 <킹덤>은 조선의 여러 시대에 대표하는 인물들은 모아 놓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임진왜란 후라는 점, 세자 이창의 스승인 안현 대감의 경우, 임진왜란 의병장으로 활약한 정인홍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점에서 여러 가지 속성이 있다.

 

물론 정인홍은 광해군의 스승이 아니나, 영남유림 중에 의병장으로 활약하여 살아남은 대유자로는 정인홍만 인물이 없었다. 선조가 죽기 전 광해군의 입지가 위태로울 때, 정인홍이 영남유림의 대표로서 광해군을 옹호했다. 물론 그 덕분에 영의정에 오르나, 추후 인조반정으로 인해 노년의 나이로 참형을 당한다.

 

<킹덤>을 보면 수수께끼 요소가 많다. 특히 왜 창궐했는지? 어디서 원인인지? 어떻게 하면 치료할 수 있는지? 여러 의문들을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좀비들이 밤에만 활동할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기온에 따라 활동한다. 이런 여러 가지 조건들을 확인하고 찾아내는 인물이 서비이다. 그녀는 이승희 의원의 제자지만, 이승희 의원의 모티브는 허준이란 점을 알 수 있다. 조선 최고의 명의지만, 작품에서 명의의 활약보다 그 제자로 풀어간다.

 

그 외 주요인물로 조범팔, 무영, 영신은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이들이 있기에 <킹덤>은 이야기의 복선을 그려낼 수 있었다.

 

4. 서사의 진행이 왜 극적으로 이루어지는가?

서사를 보면 상황이 상당히 극적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세자가 위기에 빠져 있을 때, 그가 어떤 식으로 위기를 헤쳐 가는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는 양반이란 계급에서 무반과 문반으로 구분된다. 훈련대장이나 어영대장은 무관이나, 병사들의 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다. 병조판서는 무관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고, 큰 병력과 관련된 병권을 관장하고 있다. 현재로 따지면 국방부장관이다.

 

전쟁에서 무관과 병사들이 싸우기는 하나, 지휘권은 장수에게 있다. 지휘권을 가진 자를 어떻게 포섭하는지 아니면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전황은 크게 좌우된다. 세자가 동래부로 내려갈 때 세자신분을 몰랐을 때 좀비들에 대항할 수 있는 지휘가 정립되지 않았다. 세자가 신분을 공개하자 모든 사람들이 그 말을 따른 점, 조학주 대감이 좀비로 된 안현대감에게 죽자 훈련대장이 세자에게 붙는다. 훈련대장의 지휘로 인해 훈련원의 병사들이 모두 세자의 휘하로 가게 된 것이다.

 

세자가 한양에 들어올 때 세자를 잡기 위해 병력이 출동하나, 병조판서의 명령에 의해 모든 성문이 통제되고, 병사들은 세자의 명령에 따른다. 조선시대 왕명이라 해도 바로 밑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승과 판서들과 논의하여 결정하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만일 왕의 자리가 비고, 세자가 모함으로 역적이 된 상태라면 당연히 판서들의 판단이 상황을 만들어 낸다.

 

또한 극적인 상황은 조학주의 음모도 있다. 좀비가 된 왕을 상주까지 데려간 점, 왕이 세자를 죽이면 정적을 없애는 것이고, 왕자가 왕을 죽이면 왕자를 역적으로 몰 수 있다. 계비 조씨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의 사저에 임신한 여성을 보살피는 구실로 아들을 만들려고 한다. 자신의 임신주기와 유사한 임산부를 순산하게 하여 여자아이면 산모와 아이 모두 살해하고, 아들일 경우 자신의 아들로 뒤바꾸려 한다.

 

그녀에게 어머니로서 아이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저 조선의 국모로써 왕자가 필요했다. 그러니 세자 이창은 그녀에게 큰 장애물이고, 자신의 불임은 아버지 조학주에게 알려서는 안 될 비밀이다. 하지만 그 비밀이 드러나자 계비조씨는 아버지 조학주를 독살한다. 아버지를 독살하기에 좋은 명분이 있었다. 좀비에게 물려 결국 병으로 사망했다는 점이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가족의 생명도 무참히 앗아가는 게 비정한 장면이고, 이것은 곧 극적인 전개로 이어진다.

 

마지막에 계비조씨는 이창에 의해 음모가 드러나고, 이창이 궁궐을 장악할 때, 감옥에 감금된 좀비를 해방한다. 자신이 가지지 못하면 그 누구라도 가질 수 없다고 말이다. <킹덤>은 상황에 몰리면, 그 상황에 대해 극적인 상황을 전개하고, 그로 인해 이야기의 전개를 필연적으로 진행시킨다. 무영의 아들은 왕좌에 앉지만, 그의 몸에는 좀비의 기질이 흐른다. <킹덤> 3기는 또 다른 위기에 빠진 조선이 나올 수 있다는 복선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5. 왜 조선은 망가지는가?

<킹덤>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인가? 바로 백성이고 민초이다. 계급사회의 모순은 안정적인 구조로 유지되면 될수록 커졌다. <킹덤>에서 임진왜란에 대한 원인과 전개과정은 잘 모른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방어벽은 약해지고, 금방이라도 영남은 무너질 것처럼 보여준다. 관군은 아무 힘도 없고, 의병대는 적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시간만 보낸다. 이때 조학주가 안현에게 제안을 한다. 좀비를 이용하면 좋지 않으냐고.

 

문제는 좀비가 되어야 할 백성이다. 백성 중에는 몸이 성한 사람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자도 많다. 수망촌(壽望村), 참으로 아이러니한 마을이름이다. 어찌 목숨을 원하는 마을이라니, 살기를 바라는 자들이 사는 모여 사는 곳은 사실 나병질환을 앓은 백성들이 모인 곳이다. 나병이 들면 제대로 살기 어렵다. 추위와 배고픔에 치료까지 못 받으면 결국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에 걸린 그들이 죄를 지은 것도 없지만, 작전을 위해 희생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희망이 없다면, 적어도 그들의 죽음에 대해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를 했어야만 했다. 안현 대감은 속으로 그들의 희생에 큰 빚을 지고 사나, 조학주에겐 없다. 등장인물 영신은 수망촌에서 희생당한 사람과 가족관계를 가진 사람이었다. 당연히 가족이 억울하게 죽은 것도 모자라, 시신마저 이용당했으니 그 분노가 어찌 감출 수가 있으랴. 하지만 안현 대감의 죽음에 그의 가노들도 분노를 느낀다.

 

인간의 분노란 참으로 무섭다. 자신의 죽음조차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현 대감이 조학주에 의해 살해당할 때, 그의 가노는 자신이 죽더라도 조학주만큼은 어떻게든 죽이고 싶다고 말한다. 만일 조정실세가 조학주가 아닌 안현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안현은 분명 왕자의 스승이었지만, 정치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학문으로 큰 인물이고, 유림에서 상당한 입지를 위치하나 막상 중앙권력에서 멀리 떨어진 인물이었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정치로 해결해야 하고, 정치적으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잡아야 한다. 문제는 권력을 잡아야 할 인물이 조학주처럼 흉악하거나, 임금처럼 무능력하다는 점이다. 조선의 왕이 죽기 전에 후사를 결정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세자로 책봉해야 한다. 이창이 세자로 책봉되어도 왕의 죽음조차도 몰랐으니 왕이란 인물이 자신의 왕권(王權)이 신권(臣權)보다 못한 형국이었다. 왕의 눈에 거슬려도 살아남을 수 있지만, 해원조씨의 눈에 거슬리면 살아남을 수 없는 형국이었다.

 

왕의 무능함과 신하의 권력욕, 그리고 거기에 일어난 전쟁의 폐해는 백성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조학주는 백성을 좀비로 만드는 것에 고민하는 안현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하와 종묘사직을 위해서라고 말이다. 왕실과 국가전체, 그러면 조선이란 국가는 임금이 법을 만들고, 행정을 관할하며, 사법의 권한도 있었다. 물론 혼자서 처리하지 못하기 6조의 대관들이 실무를 관장했지만, 국가가 왕인데, 국가는 왕으로 움직일 수 없다. 결국 왕을 중심으로 사대부들이 협력관계로 정국을 운영한다.

 

왕 옆에서 보좌하고 권력을 누비는 자들, 사대부의 기본정신은 여기서부터 틀린 것이다. 공자의 사상에서 선비란 존재는 정치적으로 백성을 편하게 하기 위해 있는 존재이다. 문무백관들이 있는 이유는 정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지만, 결국 정치는 권력과 연계되므로, 권력에 대한 이권이 무리를 만들고, 서로간의 특혜를 만든다. 누군가 몫을 챙기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몫을 덜거나 혹은 빼앗아가야 한다. 그래서 권력층의 상에 술이 올라가면, 백성이 먹을 수 있는 곡식이 사라진다.

 

술은 쌀로 빚으니, 권력층의 상에 술이 올라오면 올수록 백성들의 뱃속은 괴로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지위를 보전하고 높이기 위해 뇌물을 바치면, 뇌물을 바친 것 이상으로 백성들의 재물을 착복한다. 조선은 농업사회이고, 농업의 산물은 쌀과 곡식이다. 지율헌의 백성들은 약하고 병들었지만,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이창은 강화도에 찾아가 유배된 삼촌뻘 원유에게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말을 듣는다. 임금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먹는 것이라면, 조선은 그렇게 했어야 하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게다가 원유의 아버지는 사사된 인물이다. 조선 임금들의 권력관계에서 형제관계에 있는 자들을 라이벌로 여기고, 정치적 이해에 따라 유배를 보내거나 사약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가령 인평대군의 아들인 형제는 삼복의 옥을 당해 억울하게 죽는다. 그들은 숙종시대 노론의 권력정략으로 희생된 자이다. 왕족들은 왕의 후사라는 이유로 큰 대우를 받았지만, 정황이 좋지 못하면 언제라도 역적으로 몰릴 수 있는 처지였다.

 

원유가 바른 말을 하는 점에서 원유의 아버지 역시 바른 말을 할 가능성이 높다. 바른말을 하는 이가 왕족, 왕의 친척이라면 권력층에게 상당한 정적이 되고 만다. 아버지의 죽음과 아들의 귀양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바로 조선에서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모두 화를 당하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6.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

또한 김우명에 의해 복창군, 복평군 등의 역모 고변이 있었으나 김우명의 무고로 밝혀지면서 조야는 김우명을 처벌하라는 여론이 나왔고, 김우명의 처벌이 확실시되자 대비 명성왕후가 정청에 나타나 통곡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윤휴는 여인이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며 왕에게 대비를 조관(朝官)하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대비를 조관하라는 발언에 숙종의 비위가 상하게 된다.

 

숙종의 심기로 인해 대숙청이 시작된다. 명성왕후는 노론의 편이었고, 노론의 영향에 따라 남인을 숙청하는데 일조한다. 노론과 소론, 남인의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입김이 외척의 영향이 매우 컸다. 그 뜻은 왕의 어머니나 아내가 정치적으로 큰 입지를 차지한 셈이다. 여성이 정치를 하는 21세기 세계에서 암탉이 운다고 해서 세상을 망할 수 없다. 하지만 조선이나 역사는 달랐다. 정치란 외척의 영향을 받으면 안 되나, 외척이 곧 정치적으로 큰 입지를 차지하고, 외척과 관련된 정치세력이 주류세력이 되면 반대세력을 결국 숙청을 당한다.

 

대표적으로 핍박받은 인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있다. 영조의 어린계비는 정조로 인해 정치적으로 입지를 잃었으나, 정조의 붕어로 인해 권력의 중심이 되어 남인을 숙청했고, 신유사옥과 황사영백서로 인해 피바람이 일어난다. 외척의 영향이란 바로 정치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되나 정치적으로 개입하게 만드는 게 중전과 대비의 영향력이다. 본래 조선에서 중전과 대비는 정치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 세종대왕의 왕후인 소현왕후는 아버지가 분명 벼슬위치가 높아도 태종시기 역적으로 몰려 죽는다.

 

조선 초기 외척이나 인척이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매우 꺼려했으며, 이를 어길 경우 피와 살이 튀는 친국(親鞫)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조선은 외척세력에 의해 망했다. 직접적 영향은 아니나, 세도정치 역시 외척에 의한 영향이고,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 역시 외척의 부정부패로 국고를 탕진하게 만들었다. <킹덤>에서 외척은 바로 해원조씨 조학주를 비롯한 중전의 행동들이다. 처음 1화부터 유생들은 해원조씨의 사악한 행위를 고변한다. 유생들에게 오로지 세자만이 희망이었다.

 

하지만 세자의 입지는 약했다. 1화부터 강녕전에 아버지를 기다리지만, 아버지를 볼 수 없고, 중전은 임신한 배로 세자를 압박한다. 1화부터 이미 광해군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광해군이 선조에게 석고대죄하며 왕궁에서 정좌하고 있으나 선조는 그를 외면하고, 계비는 더욱 더 광해군에게 정치적으로 견제한다. 솔직히 생각하면 암탉이 울면 망하게 되는 외척도 문제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나이가 많은 임금이 자식보다 어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여 정치적 균형을 깨는 것이 더 문제이다.

 

조선은 나이가 중요하게 여긴다. 유교사회에서 충효(忠孝)는 중요하다. 하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자리 또는 위치 역시 중요하다. 대비가 중전보다 나이가 어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적으로 정적인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킹덤>에서 다행히 세자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혼례 시기는 보통 16세 전후인 것 같다. 정약용 선생은 16세 때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홍화보의 딸을 배필로 맞이했다. 족보를 봐도 선대 시대의 할아버지 역시 그렇던 것 같다. 그래도 나이보단 위치가 중요하다. 대비는 중전보다 위에 있고, 대비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왕이다.

 

하지만 중전이 실세를 가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더구나 세자가 후궁에서 태어나고, 중전이 출산가 원자가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킹덤>에서 이창이 세자로 책봉되어도 대군이 태어나면 세자의 자리에서 쫓기는 형국이 조선이란 나라의 한계였다. 정통성 이게 문제인 것이다.

 

7. 정통성, 피의 문제

대군(大君)과 일반 군()은 엄청난 차이를 가진다. 중전의 아들은 대군이나, 후구의 아들은 군이다. 대군은 왕으로 될 가능성은 높으나, 군은 왕으로 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역사적으로 대군이 아닌 왕들은 권력이 매우 취약했다. 중종의 경우 사림세력의 개혁을 원했지만, 결국 기존 권력층과 결탁하여 기묘사화를 일으키고, 선조 역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광해군은 영창대군과의 갈등이 있었고, 영조도 궁녀출신 아들이었고, 사도세자 역시 본래 후궁의 아들이었다.

 

적통을 이어받지 못한 이유로 조선의 임금들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고, 왕이 되어서도 핍박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피라는 그 적통성이 매우 중요했다. <킹덤>에서 피의 적통성은 조선의 한계였고, 어쩔 수 없는 명분이었다. 만일 누군가에게 누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적통성을 이어야 하는 것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명분이 없다면 실리를 취할 수 없지만, 실리와 무관하게 명분만 추구한 것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피를 중시하기 때문에 피를 갈망한다. 다른 분들의 글을 보면 그런 내용이 있다. 해원조씨 세력은 해원조씨의 피를 받은 왕을 원했지만, 그럴 수 없었고, 대신들은 중전에 의해 출산된 원자, 즉 적통의 피를 원했다. 그리고 좀비들은 자신의 본능에 따라 인간의 순수한 피를 원했다. 피라는 공통된 분모에서 피라는 것은 곧 속박이었다. 그러나 피가 존재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을 이어가지 못했다. 적통성을 이어 받지 못한 이창, 만일 그가 동생이 없다면 그의 핏줄은 인정받았을 것이다. 대신들도 왕이란 존재에 대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조선의 왕은 절대적이지만, 한편으로 그렇지 못했다. 스스로 제약을 걸지 않으면 많은 백관대신들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명분이 없다면 왕을 버리고 그들은 산천으로 가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왕이 모든 정치행정을 할 수 없고, 하물며 승지가 없다면 왕의 명령을 전달조차 어렵다. 왕이 마음이 들지 않으면 반정이 일어나고, 반정공신은 그에 따른 이권으로 권력을 보장받는다. 왕은 절대권력이나, 그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왕세자가 적통을 이어받지 못하면 대신들이 제대로 따를 리가 없다.

 

좀비들은 살아있지 않은 생명체이다. 그들은 오로지 인간의 피와 살을 탐하고, 그들에 의해 희생된 인간은 다시 좀비가 되어 또 다른 인간을 공격한다. 피를 노리는 존재, 한편으로 보면 좀비가 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계급이 서로 상관없이 동일한 존재로 변화하게 만든다. 처음 왕이 좀비가 되어도 절대지존이었지만, 왕의 정체가 안현대감의 죽음으로 밝히자, 좀비가 되면 신분이 그 무엇이 되든 상관없이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좀비가 되어버린 중전조차 좀비가 된다.

 

좀비는 모두 평등하고 동일하다. 하지만 평등한 좀비만 있다면 그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그러면 누군가 그 세상을 지켜야 한다면, 명분이 필요하고 그 명분은 왕족이어야 하고, 왕족 중에 적통을 이어받은 자만이 가능하다. 피가 피를 부르지만, 피가 없으면 새로운 피조차 만들 수 없는 아이러니가 발생된다. 결국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8. 누구를 위해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가?

화목(和睦)이란 단어를 우리 모두가 잘 알 것이다. 화목은 가정의 기본적으로 필요한 개념이다. 우리는 평화(平和)라는 말을 사랑해야 한다. 평화가 없다면 우리 삶은 폭력과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화()라는 단어가 무엇이냐 것이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란 문구가 있다. 이 문구가 중요한 이유가 화라는 단어는 입구()에 벼화()가 합친 회의문자이다. 곧 벼가 입으로 들어가는 게 곧 화()의 시작이다.

 

입에 먹을 것이 없다면 불화(不和)의 시작이다. 불화의 시작은 가정에서 사소한 다툼부터 유산상속 등 각종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본다면 백성의 배고픔과 안위가 그럴 것이다. <킹덤>에서 보이는 백성들은 늘 배고픔과 병으로 시달린다. 영신은 그런 백성들 사이에서 조정에 불만을 가진 부류이다. 가족마저 잃었으니 증오로 가득할 것이다. 배고파서 죽을 바에야 인육이라도 먹어야 했던 백성들의 아픔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권력을 위한 해원조씨 무리, 이상적 정치를 위해 꿈을 펼치고 싶으나 현실적으로 좌절하는 세자 이창,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인간들, 나는 개인적으로 <킹덤>에서 조범팔이란 인물에 흥미를 느낀다. 공포와 압박만이 가득한 작품에서 유일하게 개그코드를 가진 인물이다. 왜 조범팔이 중요한가? 그는 해원조씨 일가지만, 다른 부류와 다르다. 조학주와, 중전, 범일처럼 잔인하거나 간악하지 않고, 인간적인 인물이다.

 

비록 능력은 없고, 놀고 즐기는 것은 좋아하지만, 적어도 탐관오리(貪官汚吏)는 아니다. 백성들이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좋아하지 않고, 더구나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조차 마음이 아파 고뇌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전조차 다른 사람은 몰라도 범팔만이 어릴 적부터 자신을 위해 애쓴 것을 알고 있다. 조선에는 머리가 좋지만 인간적으로 냉혈한 인간보다, 차라리 머리가 조금 떨어져도 인간적으로 따듯한 인간이 필요했다. 물론 인간적으로 따듯하고 마음까지 따듯하면 좋겠지만, 그런 인물은 <킹덤>에서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나마 대제학만이 그런 모습을 보여지만, 너무 나약한 인물이었다.

 

머리가 좋으면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잘 판단하는 인물이고, 그만큼 자신의 이익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잘 아는 것이다. 무영의 경우 자신의 아내가 볼모로 잡혔기에 스파이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성적인 인간보다 나는 감성적인 인간이 좋다고 본다. 감성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은 어떻게 보면 순수하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은 그 인품이 어긋나면 그 피해를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9. 마무리하면서

<킹덤>에 대한 리뷰를 하면서 다소 다루지 않은 인물로 서비라는 의녀일 것이다. 서비는 다소 이상적인 인물상이다. 의술을 실천하고, 진실을 향해 찾아가는 인물, 다소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세자라면 왕의 자리를 받아야 하기에 이상적 가치관을 찾아가야 하나, 궁전에서 직접 근무하는 의녀도 아닌 이승희 의원 제자로서 지율헌에서 환자를 돌보는 그녀는 처음부터 이상적인 인간상이었다.

 

<킹덤>은 이런 이상적 인물과 감성적 인물 그리고 권력을 위해 타인을 희생하는 부류가 있다.

구도로 따지면 이창, 세비 영신, 범팔, 무영 조학주, 중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물은 현실 속에도 있다. 드라마란 현실속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현실에서 충분히 개연성 내지 필연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과 자신의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 그리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은 어디든 있다. 또한 좀비 역시 중요하다. 좀비는 군중의 무리이다. 즉 군중의 무리 속에 누구든 좀비처럼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좀비가 된 그들은 처음부터 좀비가 되길 원한 것이 아니다.

 

좀비로 될 수밖에 없던 운명이었다. 좀비가 되지 않으면 지율헌 사람들은 모두 굶주림과 병으로 죽고 만다. 설사 지율헌의 백성만 그랬을까? 상당수의 조선의 백성들은 그런 처지에 있었다. 최후의 상황, 버틸 수 없는 조건, 개선되지 않은 현실 이 모든 것들이 좀비를 만든 원인이다. 20세기 서양에서 좀비장르는 B급 장르로 인기를 유지했지만, 21세기에 좀비는 대중문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장르이다. 군중이란 존재가 과거에 하위에 머문 존재지만, 21세기에는 좀비가 흐름을 만드는 존재이다.

 

문화라는 조건에서 과거와 다르게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인해 정보는 홍수처럼 쏟아진다. 과거의 대중은 누군가의 통제에 의해 움직인다면, 지금은 수시로 움직이다. <킹덤>의 좀비는 초기에는 권력자에 의해 통제되었지만, 이제는 권력조차 좀비에 의해 침식되어 간다.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 말처럼, 대다수 좀비는 백성이다. 그들이 좀비처럼 되어가고, 좀비가 돼서도 구원을 받을 수 없기에 조선은 좀비에 의해 침식되어 간다.

 

그리고 작품에서 이창은 광해군이란 인물에 대해 많은 부분을 인용한 것 같다. 조선 국조인 태조와 그의 아들들을 제외한 나머지 임금들은 전쟁을 경험한 바가 없다. 전쟁이 일어나도 명종시대에 명재상 이준경이 직접 나선 것도 아니고, 선조처럼 도망친 것도 아니다. 하물며 고종처럼 러시아공관에 도망친 것도 아니다. 오직 광해군만이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생사를 건 운명을 경험했다. 왕세자로서 제일 완벽한 인물은 광해군인 것 같다. 하지만 왕으로 즉위한 이후는 그렇게 좋지 못한 기록만 남는다.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조차 숙종까지 그 업적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적 견제에 의해 계속 묻혀온 것처럼 광해군이란 인물 역시 그럴 것이다. 광해군 분조가 없었다면 수많은 의병장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관군 역시 조직적으로 군세를 갖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광해군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제일 큰 이유는 적통이 아닌 점이다. <킹덤>에서 이창은 분명히 대군의 지위를 받은 무영의 아들을 제거하고 왕으로 오를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영창대군을 죽일 수밖에 없던 광해군과 달리 오히려 동생을 왕으로 추대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좋았을까? 그 덕분에 <킹덤> 3기는 떡밥을 남기게 되었지만, 결국 왕은 핏줄보다 그 자질이 중요하다. 하지만 명분의 굴레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답답할 수 있겠지만, 명분이란 그런 것이다. 아버지가 이미 죽어 좀비가 되더라도 아버지의 목을 벤 사실을 분명하다. 우리 현실에서 끊임없이 명분과 현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떤 판단이 옳고 그른지를 당장 알 수 없다.

 

<킹덤> 역시 그런 명분과 현실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명분만 따르는 것도 실리만 따르는 것도 결국 파멸이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 책임을 억지로 떠맡긴 채 그 선택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다. 최선의 선택의 최악의 결과를 남기고, 때로는 최악의 선택이 최고의 결과로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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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분기 애니메이션 중에서 그렇게 깊은 내용은 아니나, 재미있게 작품이 있었다. 그것은 <최애가 부도칸에 가 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이었다. 부도칸, 무도관(武道館)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무대공간이다. 아이돌이나 혹은 스타들이 공연을 하는 무도관에서 한자를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무도회(舞蹈會)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무도관(武道館)이란 말이 다소 아이러니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연만 아니라 각종 행사, 운동회 등도 열리지만,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동경하는 자라면 동경하는 곳은 분명하다.

 

이런 곳을 동경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무명의 아이돌에서 시작하여 인지도를 올려 톱스타를 노리는 수많은 소녀들이 그러하다. 2000년대로 오면서 애니메이션 문화에서 많은 변화를 겪은 것 같다. 서사중심에서 특히나 영웅주의적 요소보단 일상적인 요소로 전환이 되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적이란 절대적 존재를 타도하는 것에서 떠나 개인적 목적, 취향, 생활 등이 주요 소재가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서 스포츠도 일상에 포함되나, 승부라는 세계에서 승패의 기로는 주인공이 경기장의 히어로로 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선택을 받는다.

 

그러나 단순히 이기는 것만이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이 하나의 결말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최애가 부도칸에 가 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는 그렇게 깊고 어려운 내용을 담은 작품은 아니다. 지역에서 무명의 아이돌인 Cham jam이 활동해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아이돌 작품 특성상, 주인공은 보통 아이돌 소녀 또는 아이돌을 지망하는 소녀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뭔가 조금 다르다.

 

아이돌 그룹 Cham jam이 주요인물이기도 하나, 이들이 활약하는 것 이상으로 이들을 지켜보는 팬들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스포트라이트란 화려한 세계에서 아이돌은 자신의 경쟁자들과 싸워 나간다. 그래서 언제나 고독하고 힘들지만, 같은 목표를 향하기에 서로의 결속력은 강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들의 싸움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그들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돌 장르는 이미 흔한 장르가 되었지만,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에서 관점이나 상황 등은 조금씩 변해간다. 가령 최근에 종영된 <좀비랜드사가>의 경우 메이지유신부터 버블경제를 지나 최근까지 다양한 시대의 소녀들이 죽음 이후 좀비로 태어나 아이돌을 결성하는 이야기이다. 처음부터 좀비소녀들을 아이돌로 내세우는 것도 엉뚱하나, 이들이 지역적으로 낙후된 사가현을 발전시키기 위해 활약하는 것은 더욱 엉뚱하다. 살아있지 않은 죽은 소녀들이 좀비가 되어 아이돌을 한다는 발상자체가 특이하다.

 

아이돌이란 장르는 단순히 꿈과 희망, 우정 등 외형적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과 상황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러브 라이브>처럼 학교가 폐교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돌 마스터>처럼 거대한 기획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최애가 부도칸에 가 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의 등장인물은 아주 작고 영세한 아이돌기획사에서 시작하여 애니메이션 마지막 장면까지 약소한 아이돌의 한계를 보여준다. 물론 조금씩 노력하고 진보하여 새로운 스테이지에 도전하지만, 결론적으로 무도관에 입성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묘미를 무엇인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 각자의 삶에서 최종목표가 자신이 스스로 이룩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이룩하는 것이 목적인 삶이 있다. 조선시대 많은 어머니들이 아들이 과거에 합격하여 어사화를 쓰고 고향에 오는 것이다.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아들의 성공이 곧 자신이 원한 삶인 것이다. 현대라도 그렇지 못한 법은 없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잡기를 원한다. 그런 점에서 <최애가 부도칸에 가 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 역시 보편적인 인간의 목적의식이 반영된 것은 분명하다.

 

단지 아이돌 그룹 Cham jam이 무도관을 가는 게 Cham jam만이 아닌 그들의 팬들의 목적이다. 특히 주인공 에리피요의 경우 평범한 직장여성이 우연히 Cham jam 멤버 마이나를 보게 되면서 아이돌 오타쿠가 된다. 직장도 퇴사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마이나 관련 상품은 구입한다.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도저히 납득이 어려운 행동이다. 그러나 에리피요나 Cham jam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다른 의미이다. 남들은 인정해주지 않아도 언제나 그들은 Cham jam를 바라보고, 그들이 더욱 더 성장하여 훌륭한 아이돌이 되는 게 인생의 목표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중심이 자신이 아닌 타인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은 Cham jam 멤버 역시 그렇다. 그들의 목표는 아이돌의 정점이고, 무도관에 입성하는 것이다. 인지도가 떨어지고, 팬들 숫자는 많지 않다. 팬들 대부분 외모가 단정치 못한 아저씨가 주를 이룬다. 그래도 그들은 실망하지 않는다. 자신을 좋아해주는데 싫어할 리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들이 이렇게까지 노력하고 힘내는 이유는 자신들을 응원하는 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애가 부도칸에 가 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점은 마지막 화였다. 만화책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지만, 평소 내가 가진 생각이 작품 내 대사로 나왔기 때문이다. “노력은 보답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노력을 해도 무명의 아이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도 일상에서 어떤 목적을 위해 시간과 열정을 받쳐도 얻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다고 그 과정이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그 시간과 노력이 보답을 받지 못할지라도 그 순간들이 결코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에리피요를 비롯한 아이돌 오타쿠들이 계속 Cham jam을 응원해준다. 마지막에는 오히려 Cham jam 멤버들조차 팬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나를 위해 무도관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 무도관을 간다. 경쟁이 심한 외로운 싸움이나,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 삶도 마찬가지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항상 경쟁해야 하며, 성과를 내야 하는 입장에 처한다. 거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했어도 당장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누가 봐준다면 어떨까? 다소 위안이 되어 힘이 나지 않을까?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나, 때로는 남을 위해 살아가는 것도 괜찮은 삶이다. 혼자 외로운 길을 걷는 것보다 옆에서 계속 지켜봐준다면 앞으로 한발 걸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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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언제부터 나에게 슬픔이 되었을까? 겨울에 태어난 나로선 겨울은 나에게 생일이 다가오는 계절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겨울은 나에게 슬픔의 계절이 되었다. 2월 어느 목요일, 이날은 나에게 매우 슬픈 날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 금요일이 더 슬픈 날일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이제 3년째이다. 3년 상이란 옛날 말이 있다. 지금이야 근대문화에 따라 3일장만 하지만, 과거 조선시대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 동안 움막을 짓고 거기서 추모하던 것이 사대부의 도리였다. 분명 나는 사대부의 후손으로 사대부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이란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세상이나, 부모 아래 자식 있고, 자식 위에 부모가 있는 게 법이다. 그 법이란 사회법이 아니라 자연법이란 인간사회를 넘어 우리 전체 세상에서 보는 관점이다. 겨울은 나에게 슬픔만 주는 계절이라고 했다. 이번 겨울은 나에게 너무 참혹했다.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물론 나이가 100, 생신 기념을 하고. 작년 201910100돌 행사를 했다. 그리고 201911월 말에 세상을 떠났다. 2019121일 발인을 했다. 2019년의 겨울계절이 되던 121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외할아버지는 1919년에 태어나신 분이다. 그때는 31 운동이 일어난 해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가 창설된 해이기도 하다. 외할아버지는 키가 작고 왜소하나, 매우 몸이 튼튼했다. 나이가 80이 넘을 때 20대인 나와 팔씨름을 하면 내가 언제나 지고 만다. 그 정도로 몸이 튼튼했다. 할아버지가 20대 시절, 일제가 우리를 어둠으로 가둘 때, 태평양전쟁이 터졌다. 할아버지는 강제로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을 당했고, 어디서 고생했는지 모르지만, 무척이나 고생을 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 주변 친척과 이웃에게 그 이야기를 엄마가 들었다고 한다. 심한 노동과 구타 속에 여기 있다간 결국 죽겠다고 생각해서 할아버지는 탈출을 했고, 결국 살아남았다.

 

주민등록증으로 53년생이나, 실제 생일이 51년생인 엄마는 할아버지와 추억이 많은 분이다. 격담이나 인생이야기를 하면 외할아버지가 했던 이야기를 자주 한다. 외할아버지가 탈출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터이다. 뉴스나 인터넷에서 징용당한 분이나, 특히 군함도 이야기가 나오면 외할아버지가 생각날 때가 많았다. 국가에서 매년 80만 원 정도 보상금을 받았던 것 같았다. 일본정부가 노동의 대가를 주지 않으니 배상금일 리가 없으니 말이다. 최근에 No-Japan 운동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던 사람이 외할아버지였다.

 

그렇게 일제에 의해 착취당하고 고통 받았으니 말이다. 이제 그분이 세상을 떠났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아픔이 잊어지기 전에 친구의 기일을 맞이했다. 바보 같은 녀석이었고, 남에게 나쁜 짓을 하는 것조차 생각을 못하던 친구였다.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되었다. 시간이 빠른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이 너무 무심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버지 납골당에 찾아가고, 친구가 묻힌 수목장에 올라갔다. 정권이 바뀌어도 아직 노동자의 슬픔은 계속 되었고, 정권이 바뀌면 더더욱 큰 일이 터질 것 같은 세상이었다. 싸늘한 한파가 찾아오던 그 추운 겨울날 대학동기와 외롭게 둘이서 친구의 유골이 든 무덤에서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1월이 되자, 또 다른 슬픔이 찾아왔다. 경기도 요양병원에서 치매로 입원하던 작은할머니가 타계했다. 친가 쪽으로 어른 중에 마지막 어른이고, 어릴 적 내 기억에 남은 분들이 이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작은할머니는 돌아가기 전 치매엘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기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을 떠났다. 많이 슬픈 것까지는 아니나, 외할아버지 49제로 폐가로 남은 외갓집에 들린 후, 시골 친구에 들렸다. 그때 작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잠든 묘소에 참배했다. 그곳을 가면서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아주 어릴 적애 형이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뜨거운 물로 인해 팔에 지우지지 않은 화상을 당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 화상자국은 지워지지 않은 형의 상징이다. 형이 화상을 당한 후 시골에 왔는데, 작은할머니가 어머니를 무척이나 야단을 쳤다고 한다. 아기를 어떻게 관리했기에 그런 흉터를 남겼냐고 말이다. 나로서는 처음 듣는 애기, 그때 산소에 들려 성묘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3번째 제사를 맞이했다. 평생 고생하고 불우하게 사신 분이다. 노동착취, 인간소외, 가난이 무엇인지 나에게 지독하게 한을 남긴 사람이다.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 모습을 세상에 대한 증오만 가득했다.

 

아버지가 떠나도 그때의 슬픔과 증오는 지울 수가 없었다. 내 생일이 분명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인데, 왠지 모르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슬픔으로 가득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아직도 마음을 정리할 수 없었는지 전혀 모르겠다. 내 생일을 축하한다고 처갓집에 갔을 때 모두가 좋아해주었지만, 옆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떠나간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언제나 후회를 하는 동물이다. 지금 나는 언제나 후회하고 있다. 그때 만일 그랬다면 아버지가 더 살 수 있을 것인데, 그때 조금 더 알았다면 외할아버지가 말하지 않았던 한을 세상 밖으로 풀어갈 수 있었을 것인데, 인간은 후회하는 동물인 것 같다. 지금도 아버지 일만 생각하면 내 마음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고, 일본 아베정권이 하는 행동을 보면 외할아버지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온다. 왜 역사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끊임없이 계속 현재와 대화하는 것일까? 그것은 E.H. Carr가 강조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인간은 매우 개인적 영역에서 사는 존재이다. 자기가 활동하고 접할 수 있는 공간에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설사 미디어가 자신이 접하고. 혹은 선택하여 포커스에 맞추는 게 인간이다. 인간이 객관적 존재일 수 있는 것은 수치로 명확하게 제시할 수밖에 없을 때라고 여긴다. 역사는 년도로 매기고, 호응 및 거부감도 %로 매기지 않은가? 주관적으로 살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 가는 데로 행동한다. 자기가 느낀 그 가치관이 자신의 삶에서 지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타인의 삶을 함부로 말할 수 있는가?

 

자신이 그런 비극적 삶을 당하지 않았다면, 드라마란 그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TV속의 드라마의 이야기보다 더 기구한 게 어느 한 개인의 삶이 아니던가? 아니면 그 개인의 삶조차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배제되는 것인가? 내 삶의 드라마는 누구나 겪을만한 일이지만,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물론 아닌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겪은 슬픔을 타인이 객관적 볼 때, 슬픈 일이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나는 그 감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슬픈 일이라고 여긴 것과 슬픈 일이라고 생각만 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이야기다.

 

영화에서 슬픈 장면은 생각만 하고 그대로 끝날 일이지만, 여기는 것은 그 자체가 관객에게 하나의 가치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의 슬픔은 그저 생각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생각의 동물로 살아가기에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고,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 어느 순간 망각의 선율로 젖어든다. 하지만 슬픔을 여기는 것은 다를 것 같다. 내 친구가 억울하게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나도 나는 매년 그 친구의 무덤에 국화와 맥주를 바친다. 4년이 지나도 그렇다. 인간은 생각 중에서 논리로만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논리란 생각보다 그 이상의 가치관이 숨을 쉬기 때문이다. 인간 본연적 존재,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과 무의식이 있기에 그렇다고 본다.

 

문득 글을 적기 전에 나는 국회의원 선거를 생각했다. 415,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했다. 세월호 어린 친구들이 세상을 떠난 날을 말이다. 416일을 말이다. 415일은 왠지 모르게 논리적으로 달력 속에 휴일 또는 투표 날이나, 416일은 조금 다른 느낌이 난다. 기분이 더럽고 화가 나고, 정말 뭔가 몰라도 내 속에 그 무엇을 토해내고 싶은 마음이다. 내 외할아버지는 일제에 의해 고통을 당했고, 내 친구는 자본주의 시장의 어두운 논리에 의해 죽음에 대한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고, 한 평생 노예처럼 일한 아버지는 암 때문에 너무 힘들게 불쌍하게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작은할머니의 죽음이라고 억울하지 않을 것 같을까? 작은할아버지도 징용에 끌려가고, 그 후유증으로 불편하게 사셨다. 큰할아버지도 징용에 다녀온 후 해방 다음해 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세상은 이렇게 불우하게 사신 분들을 조롱하고 외면하고 억지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즐겁게 살고 싶다. 웃으면서 재미있게 살고 있다. 삶에서 모든 일상이 그렇지 않으나, 적어도 올해 1번 이상은 정말 폭소를 터뜨리고 싶다. 415일 그날이 온다면 그렇게 하면 안 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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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06: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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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한민국 정치와 역사 속에서 20세기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파란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1세기란 100년에서 조선이란 국가가 멸망하여 타국의 지배를 받고, 그 식민지 아래 설움을 받던 그 국가의 민족은 어느 순간 해방을 맞이하고, 얼마 후 동족끼리 서로 죽이는 비극을 맞이했다. 한국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했다. 마을과 도로 그리고 같은 민족이란 역사적 동질감마저 파괴했다. 그리고 공화국이란 미명 아래 각종 사건과 사고가 터진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이던 대한민국은 오늘날에는 선진국 대열에 올라가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군사정권, 독재정권에 대한 희비가 엇갈린다. 정책적 요소에서 자유주의 진영이라고 해도 실제 국가경제 시스템은 국가자본주의에 가까웠다. 정부가 대기업을 위주로 경제개발을 앞세우고, 그 아래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시스템을 내세웠다. 기계에 의한 생산력보단 단순 기계에 노동인력을 이용한 공장들이 많았다. 그 유명한 전태일이 남긴 기록을 본다면, 당시 국민에 대한 인권은 국가권력에 의해 조롱당하고, 특히나 노동인권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경제를 살린 점에서 그가 세운 업적은 어느 인정할 수 있어도, 거기에 희생된 사람에 대한 예우는 처참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을 국민에게서 나오나, 그 국민을 강압적으로 납치하여 고문하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큰 오점이다. 장점만 혹은 단점만을 강조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경제가 성장한 수준만큼 국민에게 조금 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권리를 나누어주고, 노동자에겐 조금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본권을 보장해주었다면 후대의 평가는 다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독재자란 칭호는 역사에서 지울 수가 없다.

 

최근 국회에서 현 정부가 독재라고 했다. 과거의 독재는 좋은 독재고, 지금의 독재는 나쁜 독재라고 한다. 사람을 납치하여 때리고 죽이고, 그 가족까지 사찰하는 게 좋은 독재라고 한다면 그것은 코미디가 따로 없을 것이다. 독재자란 영원할 수 없다. 독재자 자신도 인간이고, 그 독재자가 다른 독재자를 육성하여 다시 독재가 이어지지 않은 이상 쉽게 독재는 지속되기란 어렵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보여준 독재자의 죽음은 바로 그러한 이유이다. 독재자는 18년 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했다. 하지만 독재자 자신은 여전히 자신이 이 국가 위에 존재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것이 문제였다. 자신이 모든 존재 위에 있다면 자신의 주변에 있는 자들에 대한 시선이 그만큼 바뀌기 때문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실제 역사를 토대로 만들어진 소설을 다시 각색한 작품이다. 이름은 다른 식으로 바꾸어 제시했지만, 각각 맡은 배역에 대한 인물에 대한 은유성은 필요 없을 정도이다. 여기서 문제적 인간 중앙정보부 김부장의 행동이다. 왜 그는 자신이 그동안 모신 상관, 그리고 대통령에게 총을 겨누었을까? 영화에서 인간이 권력을 가지면 어떻게 변하는지 잘 보여준다.

 

대통령 자신은 변화의 흐름을 모른다. 단지 주변이 변화했다고 여긴다. 김부장이 왜 그리 행동하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대통령이 사단장일 때, 중앙정보부 김부장, 김부장 선임자인 박부장은 연대장급인 대령이었고, 경호실 곽실장은 김부장이 대령일 때 후임인 중령이었다. 다들 육군사관학교 선후배 관계였고, 같은 부대 선임과 후임이었다. 군대 기수보다 더 엄격하고 강력한 사관학교 출신자였으니, 선배기수의 명령이 곧 자신의 사명이었다.

 

영화에서 군사혁명을 일으킨 그날을 회상한다. 한강대교를 넘어가는 그 시점에 다리 너머 방위대 병사들이 기관총을 발사했다. 직접 총알은 맞지 않으나 그 총알이 마치 옆에 스쳐가는 듯했다. 목숨을 걸고 한강대교를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 영화 속에 김부장은 패배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충성을 다해 사단장이었던 대통령을 보좌한다. 그런 그가 왜 총을 내밀었는가? 우리는 김부장 본인이 아니므로, 실제 그 느낌을 알 수 없다. 영화의 모티브가 되던 김재규 부장과 그 주변 사람들이 남긴 증언과 기록만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선 그런 김재규 부장의 심리를 현대적 감각으로 살린 작품이다. 영화는 파격적인 영상보다는 미장센적 요소에 많은 것을 의미한다. 화면 구도, 심리적 상태를 소품과 빗물까지 이용한다. 화면 구도 내에는 몽타주적인 요소도 있다. 어렵게 몽타주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영상편집으로 의미부여가 아니라 단어적 요소나 사물의 배치로서 그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왜 김부장이 총을 쐈을까? 영화 시나리오에서 배경적 조건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이란 국가는 북한과의 긴장관계가 있으며, 더욱이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란 강대국에 의한 외교적 갈등이 있었다.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미국 CIA가 대통령을 교체하기 위한 설이 말이다. 영화에서 그런 요소가 보인다. 미국에서 대통령은 2선까지 가능하지만, 한국에서 3선을 넘어 영구 독재까지 가능하게 하려 했다. 한국이 미국의 우방이고, 군사적으로 통제를 받는 국가라면,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 정치권의 의중을 잘 따르지 않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일이다. 미국 대사관은 미국 정치권과 CIA의 흐름을 김부장에게 끊임없이 전달한다. 소설과 영화적 발상일 수 있겠지만, 국민에 대한 독재정치를 청산하지 않으면 미국이 한국정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청와대가 도청당하고, 중앙정보부 박부장은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불리한 증언과 기록물을 남긴다. 김부장은 박부장의 동기이고, 김부장에 의해 박부장의 책은 회수해온다. 하지만 왜 박부장은 자신이 그동안 충성한 사람에게 배신의 칼날을 들이댄 것인가? 위에서 말하듯이 독재자가 통치하는 국가가 그 자신만의 세상인지 아니면 본인 자신만 아니라 그 이상의 독재정치의 연속성을 이어가는지가 관건이다. 중앙정보부장은 대한민국 권력 넘버2였다. 서열 2위가 바로 중앙정보부장이다. 막강한 권력, 마음만 먹으면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국가조직상 대통령이 최고 수장이라면 다음은 국무총리이지만, 총리란 그저 행정업무만 맡은 관료에 불과했고, 사실상은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정국을 지배한 셈이다. 독재자는 권력만 집착하는 게 아니다. 여자와 재물에도 큰 욕심을 부렸다. 박부장이 김부장에게 말한 것 중에 하나가 대통령의 비밀 비자금이 있는데, 이 돈을 중앙정보부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그동안 충성을 다해 모셨는데, 충성을 다한 자를 믿는 게 아니고, 제삼자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독재자인 대통령은 부하를 믿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에게 피곤한 상황을 부하에게 해결하게 만들고, 그것으로 인해 야기된 문제를 모두 그 부하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를 잡았으니 사냥개를 이제 필요 없다. 그러니 당연히 잡혀먹는 게 권력이란 순리였다. 영화에서 술자리가 자주 나온다. 대통령은 비싼 양주보단 막걸리에 사이다를 섞어 마시는 막사를 좋아했다. 김부장과 같이 술을 마시며, 일본어 그때가 좋았다(その時期かった)”고 말하자 김부장 역시 그때가 좋았습니다(その時期かったです).”라고 대답한다. 권력을 추구하던 사단장이던 대통령이 옛날이 좋았다는 점은 과거의 김부장은 좋았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막사를 나누던 모습에서 경호실 곽실장은 그렇지 않았다.

 

비 오는 날 경호실장과 막사를 마시던 대통령은 김부장에 대해 심한 험담을 한다. 게다가 더 이상 필요 없으니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하는 발언을 한다. 문제는 이 대화를 옆에서 몰래 김부장이 도청하고 있었다. 비를 맞고 몰래 올라간 그의 머리를 빗물로 흠뻑 젖었고, 대통령이 자신을 더 이상 믿지 않을 때 그의 안경 빗물이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비통해한다. 영화에서 김부장과 곽실장은 계속 충돌을 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곽실장 편을 든다.

 

김부장은 시대가 변했고, 게다가 미국의 개입을 확인한 상태에서 현재 상태로 정치를 이끌면 분명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 여겼다. 여기에 반해 곽실장은 시대의 변화는 필요 없고, 미국이 뭐라 하든지 현재 상황에 충실하면 된다고 여겼다. 도청사건을 두고 곽실장은 탱크를 청와대 앞으로 배치하게 하나, 김부장은 이것을 두고 크게 반발한다. 이 일로 청와대 주변에 사는 노인들이 크게 놀라 병환이 났다는 보고도 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변하지 않는다. 김부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대통령을 위해 친구인 박부장을 살해하니, 대통령은 그를 두고 친구마저 죽이는 인간도살자로 취급한다.

 

영화에서 김부장은 혁명을 무엇을 위해 일으켰고, 그 혁명에 왜 자신들이 동참했는지에 대해 묻는다. 박부장의 책에서도 대통령은 혁명을 시작한 자이나, 혁명을 망친 사람이라고 한다. 혁명이란 의미는 헤게모니의 전도이다. 어려운 말을 쉽게 풀이하면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해 피지배자가 저항하여 그것을 전복하고 새롭게 정치적 권력을 쟁취하는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군사혁명에서 혁명의 가치를 가난에 찌든 국가를 부유하게 해보자, 혹은 부패한 정치를 청렴하게 하자라고 하는 여러 가지 슬로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재자로 군림하여 스스로 부패하고, 민주주의 국가 주인이야 할 국민이 피지배계급으로 계속 억압한다면 김부장 스스로가 생각한 혁명이란 단어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박부장은 김부장에게 정치보단 작가에 어울린다고 했다. 힘으로 억압하기보단 문화적으로 사람들을 통치할 수 있을만한 사람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 시대는 그렇게 하기에는 어려웠다. 김부장이 처음 로비스트를 만나면서 그녀에게 가족 이야기를 한다. 협조적으로 대해주지 않으면 고국에 있는 가족들의 신변에 큰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이다. 국내 산업화가 발전하면서 대통령과 경호실장은 TV 이야기를 한다. 경호실장은 국내 기술력이 좋아졌으니 칼라TV가 나와 대통령의 모습을 제대로 국민에게 보여주는 게 좋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아직까지 흑백TV가 더 좋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칼라TV는 다양한 색으로 보여주므로, 다양한 사상과 가치관이 전파될 수 있으나, 흑백TV는 흑과 백이란 2가지로 구분된다. 즉 이분법적 가치관에 따라 자신을 따르는 자는 백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모조리 흑이 된다. 하얀색이 흑색이 들어오면 오염되기 때문에 제거한다. 이게 바로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부마항쟁이 계속 증폭되고, 국민은 반독재 운동으로 이어간다. 그런 시기에 대통령은 총으로써 국민을 지배하려 한다. 그리고 김부장은 초심과 변한 대통령에게 권총을 들이댄다.

 

 

영화의 연장선이나 보안사령관은 그 모습을 잘 이해했다. 박대통령은 주변 사람을 제대로 믿지 못해 살해당했다면, 보안사령관은 그 반대로 주변 사람에게 잘해주었다. 국민에게 큰 독재자였으나, 적어도 주변 사람에게 독재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대신 2사람의 차이점은 마지막 임기였다. 전자는 국민을 탱크로 밀어버리려 했다면, 후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원인과 조건이 있었지만, 역시 CIA의 개입이 있었다는 여러 가지 설도 있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우리나라 국가의 기밀정보도 접근이 어려운데, 타국의 기밀은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은 <남산의 부장들>에서 박부장은 사냥을 마친 후 잡혀 먹힌 개라면, 김부장은 사냥을 마친 후 도리어 물어뜯긴 개라는 점이다.

  

 권력이란 거대한 신기루에 현혹되어 자신의 주변 사람을 믿지 않은 대가는 배신이다. 영화는 김재규란 인물을 김규평이란 인물로 재해석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늘 느끼는 바는 인간은 왜 배신하는가?라는 점이다. 첩보원이나 정보원들은 자신의 상관에게 철저히 충성한다. 실제로 경호실장과 중앙정보부장 부하들은 각각 자신들의 상관에게 충성을 다 한다. 죽음의 길임을 알면서도 위험이 도사린 것도 알면서도 충성을 다 한다. 그들이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자신의 상관이 자신들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박부장에게 했던 말은 김부장에게도 하고, 곽실장에게도 했다. 경호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의 2인자 다툼으로 보였겠지만, 사실 대통령에겐 누가 먼저 제거되어야 할 대상인지 순번만 정해놓았을 뿐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자질 중에 가장 큰 실수는 국민을 믿으려 하지 않은 점이다. 야당 총수를 대화로 풀어나가지 못한 채 오히려 정치적 압박만 가했고, 국민들에겐 손을 내민 것이 아니라 총을 내밀었다. 만일 국민에게 손을 내밀고 야당 총수에게 대화로 해결하려 했다면 김부장은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을까?

  

역사란 만약이란 단어가 없다. 단지 역사적 사례를 통해 반성하여 깨닫고,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 답이라고 알려준다. E.H.Carr<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언급한 것처럼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 한다. 신군부 집권 이후 김규평으로 묘사된 김재규 부장은 경호실장과 알력 다툼, 거기에 대통령이 자신에게 대하는 행동에 대한 불만으로 인하 살인사건을 일으켰다고 재판에서 판결된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변론 겸 유언은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보여주고, 오히려 재판 과정에서 자신에게 알맞은 형을 선고하기를 원했다.

  

미디어에서 보인 그는 속이 좁아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인간이라면, 역사의 증언과 현재의 시각에서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스스로 희생한 인간으로 보인다. 남에게 그 어떤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살인이란 죄를 짊어진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든 타인을 살해한 것은 정당하지 않다. 하지만 살해된 자가 많은 사람을 살해한 사람이라면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미국이란 국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다시 생각했다. 군부독재나 쿠데타에서 CIA가 모를 리가 없고, 신군부가 정권을 잡을 때도 CIA의 묵인을 받았다. 하지만 독재정권이 지속되자 CIA가 압력을 가하고, 미국 하원에서도 큰 문제를 제기한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국이나, 그 우방은 역시 미국의 이익에 반대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독재정권이 미국 정부에 이익이 된다면 미국의 편이 되겠지만, 때에 따라 미국의 우방이기에 반인권적 행위는 미국이란 민주주의 국가 측근 동맹국으로 가지는 위상을 깎아내린다. 명분과 실리에서 그 실리가 국가 내 국민에게 주는 것인지 아니면 그 권력층에게 주는 것인지에 따라 명분의 가치가 변모된다. 김부장은 대통령에게 권총을 겨누며 이렇게 말한다.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결국 명분이 없는 정치는 대국적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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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8 08: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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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8 11: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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