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전기 - 세계 사랑을 위하여
엘리자베스 영 브륄 지음, 홍원표 옮김 / 인간사랑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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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의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온 지도 꽤 오래되었고, 그의 거의 모든 저서가 번역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물론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있다. 그러나 그의 주요 저작들은 이미 다 번역되었다고 봐야 한다.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정신의 삶과 같은 책들을 우리는 한글로 읽을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아렌트는 영어보다도 독일어로 사유하고, 독일어로 글을 썼다고 봐야 하는데, 그의 사상들이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이 될 때도 많은 과정을 거쳤을텐데, 이 저작들이 다시 한글로 번역이 될 때 우리는 아렌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나 하는 의문.

 

워낙 고대 그리스 사상부터 로마, 그리고 중세, 또 칸트, 헤겔에 맑스에 이르기까지 사상의 편력이 다양한 사람이라서 어느 한 면으로 아렌트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인데, 우리나라 학문 풍토에서 이들 서양철학자들을 전면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서양철학에 서양정치사상사까지 훑은 학자는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공부가 아니라 그 정도는 공부해두어야 아렌트 사상의 핵심을 이해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하여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이는 읽는 나 자신의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에, 한글로 된 책을 읽으면서도 글자는 한글이되, 그 글자들이 모여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렌트 전기도 마찬가지다. 전기문이라서 쉽게 생각하고 덤벼든 것이 우선 잘못이었다. 우리는 전기문을 학생들에게 권할 정도로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하지 않나. 그냥 그 사람의 일생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접어든 이 책은 우선 분량에서부터 주눅들게 했다. 아니 무슨 책이 이렇게 두꺼워.

 

여기에 만만치 않은 가격. 이렇게 비싼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책에 매겨진 값만큼은 읽고서 남겨야 하지 않나 하는 부담감. 전기문을 집어들었는데, 가격과 분량에서 우선 부담을 지니고 들어갔으니...

 

내용도 만만치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 읽기가 힘들다. 이건 전기문이 아니다. 굳이 전기문이라고 한다면 출생에서 죽음까지 다루었다는, 전기문의 시간적 형식을 갖추었다는 점에서만 전기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기문 중에 평전이라고 하면 된다.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는 전기문.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평전과 또 전기문과 자서전과 다르게 다가온다. 아렌트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일생에 대해 알기 위해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그것은 실수다. 곧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망설이게 된다. 끝까지 읽을 것인가, 중간에 그만둘 것인가?

 

전기문이라고 하기보다는 아렌트 사상 해설서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이 전기문 자체가 아렌트 사상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고, 아렌트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러한 사상을 지니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려 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렌트 사상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나온다. 따라서 아렌트의 책을 미리 읽지 않았다면 이해하기가 힘들다. 아니, 읽었다고 하더라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것은 아렌트 자신의 해설도 아니고, 아렌트의 책을 읽은 우리들의 해설도 아니고, 이 전기문을 쓴 영-브륄의 해설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읽으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해내었다는 마음. 그런 마음이 든다. 정치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은 도전해볼 만한 책이다.

 

나는 여기서 아렌트의 삶이 사회 전반의 문제에서 인간의 문제, 그리고 사유의 문제로 계속 더욱 정교하게 발전되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직접 자신이 겪었던 무시무시한 세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나타난다면, 그 세계에서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인간의 조건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다면 세계속의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이 정신의 삶. 즉 사유-의지-판단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아렌트는 결국 무국적자였다는 생각. 무국적자였기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관찰하는 사람에 가까웠고, 관찰하는 사람이었기에, 사유-의지-판단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런 고민이 결실을 맺었으면 우리가 그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기문이 아니라, 철학사상서를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이 두꺼운 책은, 끊임없이 우리의 머리를 괴롭힌다. 제발 생각 좀 하라고. 그냥 따라 읽지 말라고. 네 생각을 정립하면서 따라오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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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경쟁 - 패자 부활의 나라 스위스 특파원 보고서
맹찬형 지음 / 서해문집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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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따뜻한과 경쟁이 함께 어울릴 수 있을까? 웬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낱말이 하나로 묶였다. 경쟁이란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과정이기에 따뜻하기보다는 차갑다는, 냉정하다는 생각이 더 드는데, 이 책에서는 따뜻한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우리가 선의의 경쟁이라고 하는 그런 경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선의의 경쟁이라고 하면 의도만을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주는데, 따뜻한이라고 하면 의도뿐만이 아니라 결과까지도 이야기를 하고 있단 생각이 들게 하기에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보다는 따뜻한 경쟁이라는 이 책의 제목이 더 마음을 편하게 하고, 더 마음에 다가온다.

 

경쟁이 없다면 좋겠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경쟁이 없을 수는 없다고 전제한다면, 경쟁을 통해 다른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않고,  함께 더 나은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러한 경쟁은 우리가 장려해야 할 경쟁이 되리라.

 

이런 경쟁이 되기 위해서는 큰 틀을 공유해야 한다. 즉 경쟁보다는 협동이 더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협동, 더 나은 공존을 위해 경쟁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스위스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스위스는 경쟁을 배척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경쟁 만능주의에 빠져 있지도 않다고 한다. 경쟁을 하되, 처음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 또 다른 경쟁에서 탈락을 한다면 또 다른 기회를 주는 사회, 그것이 바로 스위스 사회라고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승자독식주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번다면 그는 세금을 더 많이 내서 사회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기여를 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으며, 굳이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자신의 적성과 재능에 맞는 일을 한다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여기고,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회가 스위스 사회라고 한다.

 

여기에 인간만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자연과 다른 동물들과의 공존도 고려하는 사회. 개발 개발을 외치지 않고, 함께 조화를 이루는 삶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회, 당장의 교통 편의보다는, 자연이 그대로 있음으로서 더 많이 줄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사회. 하여 70킬로미터가 넘는 강에도 다리가 달랑 하나뿐이라는 사회.

 

금융업이나 기술업으로 번 돈을 상대적으로 취약한 농업분야에 투자하는 사회. 그래서 사회의 균형을 이루려고 하는 사회. 그것이 바로 스위스 사회라고 한다.

 

스위스 이야기를 하는데, 스위스 이야기보다는 우리나라 이야기가 더 많다. 아니, 지은이는 스위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치 우화처럼. 우화에서 사람보다는 토끼나 여우, 사자 같은 동물들이 나오지만, 우리는 우화를 동물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화를 재미있게 읽으면서 자연스레 우리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고, 어떤 삶이 바람직한가를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습득하게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얘기, 스위스 얘기, 그리고 다른 나라 얘기가 혼재되어 나오지만, 결국은 우리나라 얘기다. 바로 우리 얘기다. 우리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을까 하는 얘기를 스위스에 빗대어 하고 있다.

 

승자독식사회. 자연과의 공존보다는 자연을 파괴하는 시멘트가 지배하는 사회. 함께 일을 줄여가기 보다는 나만이라도 돈을 벌어야겠다고 하는 사회. 교육이 국민의 의무라고 하면서, 사실은 국가의 의무가 교육이고, 따라서 당연히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데, 이를 사교육에 맡기는 책임방기의 사회. 민주주의 보다는 아직도 구태의연한 정치가 만연한 사회.

 

이런 우리사회를 바로 보라고, 스위스라는 거울을 들이대고 있다. 그 거울을 보면 우리 사회의 모습이 비친다.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일그러져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스위스라는 거울을 통해 나타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싫다고 눈을 감으면 사실이 사라지는가? 아니다. 우리는 눈을 감으면 안된다. 오히려 더 자세히 보아야 한다. 알아야 고칠 수 있으므로. 거울에는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어느 정도 나타나 있으므로.

 

특파원으로 직접 스위스에 가서 생활한 기자가 쓴 글이라, 전문적인 사회과학 서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다.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누구나 어, 그래 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공연히 학술서에 주눅이 들었다면, 그래서 사회 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겨야지 하고 있었다면, 이 책을 읽자.

 

사회 문제는 전문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우리 누구도 사회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자, 스위스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자. 보고, 우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부터 하자.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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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팔다 - 우상파괴자 히친스의 마더 테레사 비판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정환 옮김 / 모멘토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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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라고 한다. 평생을 가난하고 힘든 사람을 위해 살았던 사람.

 

그에 대한 이야기를 좋은 쪽으로밖에는 들어보지 못했다.

 

봉사의 화신.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 다들 테레사 수녀를 존경하고 본받으라고 한다.

 

그처럼은 살 수 없어도 그처럼 사는 사람은 존경해야 하고, 그처럼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그런데 이 책은 아니다. 테레사 수녀처럼 살면 안된다고 한다. 테레사 수녀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고 있는 책이다. 어두운 면이라고 해도, 테레사 수녀의 개인적인 비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한 것은 사실이고, 그렇게 산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은 테레사 수녀의 그러한 삶이 어쩌면 또 하나의 왕국을 건설하는 모습이지 않았을까 하는 비판을 제기한다.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 많은 돈을 기부받았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도움을 받으면서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최신 의료 시설이나 더 나은 시설을 만들 수 있는 기부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데서 의심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녀가 함께 사진을 찍은 사람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다른 용도로 이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성스러운 수녀인 그녀가 몰랐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부도덕한 사람들과도 함께 어울린 그녀의 행동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고 하지만, 좋은 일을 할 때에는 동기도 중요하고, 재원을 어디서 확보하느냐도 중요한데, 이에 대해서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하는 비판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어쩌면 자신의 배경으로 활용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내비치는데...

 

이 책이 테레사 수녀에 대한 다른 면을 부각시켜주는 의미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테레사 수녀의 긍정적인 면이 존재하는 것도 또한 사실이니, 어느 한 쪽만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테레사 수녀의 평소 행적과, 그리고 이 책을 종합해서 읽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만, 우리는 어느 누구라도 우상화해서는 안된다는 사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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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선언 - 탈핵부터 프레카리아트까지, 녹색당이 필요한 7가지 이유
녹색당 기획, 김종철.하승수.이보아 외 지음 / 이매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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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고 나왔는데... 진정성이 느껴져야 하는데, 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생각이 드는지...

 

정당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그 많은 정당들이 서로 다른 공약을 걸고 경쟁을 한다면 좋겠는데, 이들의 공약도 보면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거대 정당들은 이미 기존의 관성에 젖어 더 이상의 변화를 이끌 힘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지금껏 존재해왔던 군소정당들은 자신들이 존재기반을 살리기 위해 전전긍긍해 왔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정당이 만들어졌다. 밑에서부터 자신들의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었다. 왜 지금, 오히려 분열만을 초래한다고 우려의 말들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 녹색당이라는 당을.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정당을 만들고, 이 정당을 통해 정책을 실현시키려고 노력을 한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녹색당 선언이라는 책으로 펼쳐 보인다.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하는 공산당 선언을 연상시키는 제목이지만, 녹색당은 마르크스가 주창했던 공산주의가 유령처럼 두려움으로 자본가를 떨게 했다면, 이 녹색당 선언은 누구도 떨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맞아,맞아, 우리가 원하는 삶은 이런 삶이야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들은 결코 하나가 되자고 하지 않는다. 하나가 되자는 말에 얼마나 위험한 강제가 담겨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하나가 되자고 하지 않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내가 지향하는 삶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자고 한다. 옳음을 위해, 그 옳음이 하나가 아니라는 인식을 지니고 함께 하지고 한다.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를 보이면서 함께 하자고 한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이제껏 존재해왔던 사회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회라고, 그 사회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우리가 만들어가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따뜻하다. 어떤 위협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함께 해야 한다. 이 책에서도 나오는 말이지만, 지(知)에서 행(行)까지 가는 길이 가장 멀다고 했는데, 그 먼 길을 가자고 한다. 먼 길로 놓아두지 말고, 가깝게 하자고, 우리의 머리에서 생각한 것들을 발로 움직여 실천하자고 한다. 그러면 세상은 변한다고. 아니, 변해야 한다고. 변하지 않으면 우리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도 힘들어진다고.

 

각자 자신이 왜 녹색당에 참여하는지 그 이유를 드러낸 책이다. 서로 다른 이유로 참여했지만, 큰 틀은 같은 사람들. 세상을 좀더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의 자기 고백서라고 할 만하다.

 

굳이 녹색당원이 아니더라도 이 선언에 나와있는 이야기들,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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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 우리가 알고 있던 만들어진 아프리카를 넘어서
윤상욱 지음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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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도발적이다.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누군가 농담식으로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고 하던데, 이것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무언가 씁쓸함을 자아낸다.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니, 앞의 아프리카와 뒤의 아프리카가 분명 다르게 쓰였을테고,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는 앞의 아프리카라고 할 수 있고, 우리가 모르고 있는 아프리카는 뒤의 아프리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담, 이 책의 지은이는 무엇을 알려주려고 할까? 바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아프리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아프리카, 타잔의 고향으로 기억하든지, 아니면 부시맨으로 기억하든지, 그렇지도 않으면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피의 대륙으로 기억하든지, 뿌리에서 느꼈던 노예의 고향으로 기억하든지, 하여튼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일부를 가지고 우리는 아프리카를 다 아는 양 하지 않았던가 반성이 되게 하는 책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고, 얼마전에 세상을 쓴 이태석 신부로 인해 더욱 알려지기도 했던 대륙이 바로 아프리카다.

 

검은 대륙으로, 또는 붉은색의 대륙으로 아프리카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아프리카에 대해서 차근차근, 하나하나 알려주고 있다. 기존에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아프리카에 대해.

 

서구의 관점에 치우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프리카주의에 치우치지도 않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아프리카의 역사와 환경과 정치사황, 경제 상황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덕분에 아프리카에 대해서 알고 있던 기존의 지식들에 새로운 지식들을,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지식들을 추가할 수 있게 된다.

 

총 5개의 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1장 왜곡된 정체성에서는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 지니고 있던 인식을 새롭게 해주고 있으며, 2장 빈곤과 저개발에서는 왜 아프리카가 그많은 자원들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기 힘든 대륙이 되었는가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알려주고 있다.

 

3장 독재와 폭력에서는 아프리카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는데, 이 대륙에서 왜 이토록 독재자가 많은지, 국경선은 왜 이렇게 형성이 되어 종족간의 갈등이 심화되는지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지금까지 먼 대륙으로만 느껴졌던 아프리카가 우리의 삶과 그리 멀지 않음을, 이 장에서 알 수 있다. 얼마 전에 우리도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고통을 받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 일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이 해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음을, 또 무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

 

4장에서는  심성과 편견이라고 해서 아프리카를 아프리카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 그럼에도 아프리카도 자신들이 변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고 한다. 아무리 아프리카 전통이라고 인권이라는 관점에 맞지 않는다면 고쳐야 한다는 사실. 이것은 보편적인 사실이다. 이를 잘 말해주고 있는 장이다.

 

5장에서는 그럼에도 아프리카의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려움을 겪은 대륙답게, 이제는 그 어려움을 서서히 극복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제는 지구촌이 된 세상에서 어느 대륙이 힘들게 살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하고. 이 장에서는 자원뿐만이 아니라, 식량 문제에 대해서도 아프리카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해주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은 바로 식량이기 때문이고, 이를 슈마허의 중간기술(우리들은 적정기술이라고도 한다)과 연계시키면 검은 대륙, 붉은 대륙인 아프리카가 다시 녹색 대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에게 아프리카는 언제나 녹색 대륙이다. 검은 대륙은 서구의 관점에서 바라본 대륙이라고 하고, 붉은 대륙은 내전으로 점철된 아프리카 과거-현재의 대륙이라면, 녹색 대륙은 과거-미래가 결합된 앞으로 우리 앞에 전개될 대륙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에 아프리카에 대해 지니고 있던 단편적인 생각을 수정할 수 있고, 또 아프리카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 찬 책.

 

그래, 우리가 알고 있던 아프리카가 과연 아프리카였을까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덧글

 

내용 이해와는 별 상관이 없지만 211쪽은 글의 내용과 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글 내용에서는 르완다애국전선과 무세베니 대통령은 투치족이라고 나와있는데, 표에서는 후투족으로 나와 있다. 그리고 1994년에 투치족 정부 수립이 이루어졌다고 했는데, 표에서는 후투족 정부수립으로 나왔다. 글 내용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표의 내용이 수정되어야 한다.

 

350쪽에 1970년대 말 모택동의 흑묘백묘론을 연상시킨다고 했는데, 흑묘백묘론은 등소평(덩샤오핑)의 이론이라고 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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