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으로 간 성폭력
김보화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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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도 이 책을 읽으면서 '문해력'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이 책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문해력 부족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문해력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


문해력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듣기'를 떠올렸다. 듣기가 문해력과 연결이 된다는 사실. 잘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요즘 처절하게 깨닫고 있는 중인데, 듣기를 못하면 제 말만 한다. 제 말만 한다는 것은 제 이익만 챙긴다는 말이다.


왜 성폭력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문해력과 듣기를 떠올렸을까? 우리는 과연 성폭력 피해자들의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또 그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나 생각해 보면, 내 관점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말을 판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는 것도 문제가 되는데,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 들으면, 문해력과 듣기 능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나? 그러면 엉뚱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성폭력 사건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성폭력으로 고소를 당하면 가해자는 명예훼손죄나 무고죄로 역고소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재판과정에서 성폭력은 묻히고 다른 쟁점들이 떠오르고, 피해자의 태도 등을 문제삼기도 하고, 권력과 자본이 부족한 피해자에게 이중 부담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한 이중부담으로 소송을 하기 힘든 피해자들이 발생하면 그들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가해자들이 (억울하게 죄를 덮어쓰는 사람은 없어야 하겠지만) 자신의 죄를 벗어나거나 경감하기 위해서 돈을 들여 변호사를 사고, 각종 고소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것이 시장으로 간 성폭력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시장으로 간 성폭력에 관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최근 성폭력 역고소는 과거에 비해 더 많은 법을 활용하면서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피해자뿐 아니라 피해자를 지원하거나 지지하는 가족, 주변인에게까지 확장되고 있다. 37


명예훼손은 이제 약간 산업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피해자의 말) 43


성폭력 역고소가 강화되는 이유 중 하나는 성폭력 피해를 더는 참지 않고 법의 안팎에서 고소나 공론화 등으로 실천하는 피해자들의 문제제기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공적제도들은 실효성이 부족한 반면, 역고소와 관련된 법의 구성은 이미 가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45


성폭력상담소를 찾는 피해자들은 가해자보다 자원이 적거나 법적으로 유리하지 않은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 67

가해자의 방어와 피해자의 권리는 불안감을 강조하는 성범죄 전담법인의 홍보와 고객유치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성폭력의 법적 해결 과정은 자원의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74


성폭력은 법적 해결 과정에서 현실과 괴리된 최협의설과 관행화된 감형,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를 신뢰하지 않는 통념, 무고에 대한 의심, 재판부에 따라 결과에 큰 차이가 나타나는 특징 등을 보인다. 75


민주적 정치의 공공 영역이 약화되는 맥락에서 사법적 수위는 점점 더 높아진다. 78


가해자들을 조력함으로써 금전적 이윤을 얻는 법인, 그러한 법인들을 조력하는 (전직) 경찰-검찰-판사 및 학자들, 심지어 심리상담소,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진술분석센터와의 연계, 이들의 전략을 승인하는 법원은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성촉력 가해자 지원산업을 확장하고 있다 137


성폭력은 경제적인 것으로 재구성되고 있다(138) ... 탈범죄화된 가해자 남성성을 만들어내고 있다(139) ... 재판부는 법시장화를 촉진하고 있다(139)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의심, 가해자를 중심으로 한 억울함의 서사, 미투운동에 대한 거부감 등이 확산된 것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140)


이런 내용들을 보면 성폭력 사건에 이윤을 추구하는 법인들이 개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인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쥐고 있는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피해자는 이중으로 힘든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의 피해자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고, 또 가해자에게 여러 가지로 감형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피해자들은 스스로를 법적 주체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언행을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재판부는 피해 상황에서 피해자가 처할 수밖에 없었던 무력함과 법적 공간의 주체로서 피해자의 모습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181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해자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피해자는 그것을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에 그런 문화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듣기와 문해력 아닐까 한다.


이런 듣기와 문해력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 이 책에서는 그것을 성인지감수성이라고 하는데, 재판부가 아닐까 한다. 판사를 비롯한 경찰, 검찰들. 이들에게는 피해자의 말을 잘 들을 듣기 능력과 그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문해력이 필요하다. 이것들의 바탕이 바로 성인지감수성이고.


마찬가지로 억울한 가해자가 나오지 않게 해야겠지만 법인도 이윤만을 위해서 활동을 하면 안 된다. 그들이 이윤을 위해서 일을 하는 순간, 성폭력은 시장으로 가게 된다. 그러니 억울한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 활동을 했으면 한다.


더 많은 조치들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확립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사회,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이 책은 공감과 지지의 기록이고 앞으로의 연대와 투쟁의 결의문이다.'(355쪽)라고 하고 있다. 공감과 지지, 연대와 투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듣기와 문해력' 아닐까 한다. 

성폭력의 법적 해결 과정은 피해자의 치유를 산업화하고 가해자의 보복성 역고소를 용인하면서 법인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탈정치화되고 있음을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 - P221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란 가해자가 합당한 징계/처벌을 받고 반성/성찰하고, 피해자는 피해의 경험을 재구성하는 가운데 일상으로 회복하고, 그로 인해 공동체/사회의 인식과 문화, 때로는 구조적 틀과 내용이 피해자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 P223

성폭력은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에서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분야 중 하나로서, ‘성적인 폭력을 둘러싸고 사람의 몸과 인격, 기억과 정체성, 감정과 합리성, 자율성과 관계성, 제도와 문화에 대한 총체적 접근 속에서구조화되는 개인적 경험이자 한 시대의 담론적 형성물이며, 집단적으로 이해되고 구성되는 정치적 구성물로 재정의하고자 한다. - P332

성폭력 정치란 성폭력을 탈정치화하는 담론적 질서에 저항하는 정치적인 페미니즘 투쟁으로서 성폭력 사건 해결의 공공성을 확장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과 역동적 실천의 양식들로 개념화하고자 한다. - P333

실천적 제안

첫째, 변호사 시장의 무분별한 홍보와 고소 남용에 대한 변호사 업계 차원의 규제와 노력이 필요하다. 337
둘째,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시장화에 저항하기 위한 제도의 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 339
셋째, 법조인들의 성인지감수성 훈련이 필요하다. 339
넷째, 성폭력 역고소 수사와 판단의 과정에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340
다섯째, 성폭력 피해자가 수사-재판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341
여섯째, 조직 및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 해결을 공유된 책임으로 인식하면서 사건 해결 과정을 조직문화의 변화를 위한 과정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342
마지막으로, 여성운동에 대한 국가의 통치 질서에 강력한 저항이 필요하다. 343-344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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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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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어로 시작해야 한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주장했던 철인 정치... 거의 완벽한 사람인 철인이 정치를 해야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이런 철인 정치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는 철인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해서 그 중 가장 낫다는, 또는 가장 현실적이라는 의견을 받아들여 실행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세계에서 민주주의가 대세인 지금은 철인 정치는 해서는 안 될 정치다. 전체주의는 당연히 철인 정치가 불가능한데, 민주주의에서도 철인 정치를 이야기하면 안 된다. 특정한 개인에게 우리들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이 있다고 해도. 


하지만 지금 세상에 그런 철인이 있을까? 철인은 없다고 봐야 한다. 급변하는, 엄청나게 분기된 분야가 편재한 현대 사회에서 철인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래야만 하는 세상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느 한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아직도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다. 삼권분립이라고, 권력이 분산되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민주적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가라고 물으면, 답을 그렇다라고 쉽게 할 수가 없다. 그만큼 대통령의 권한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권한을 십분 활용하는 사람은 제왕적 대통령이 된다. 


그런데 자신을 제왕이라고 하지 않고 민주적 운영자라고 생각하면? 대책이 없다. 이를 유시민은 주관적 철인왕이라고 부른다. 아니면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완성형 권력자라고도 하고.


주관적 철인왕이든, 완성현 권력자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런 존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로 정치를 이끌어가는 사회가 바로 민주주의 사회다. 민주주의 국가다. 이런 말에 비추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보고, 그것에 대한 비평을 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유시민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담아서. 그가 '정치 잡문'이라고 해야 좋을 글이 되었다(6쪽)고 하고, '인상 비평'이 많다(7쪽)고 할 정도이니. 


이렇게 이 책은 유시민의 주관적인 생각을 쓴 책이니 받아들여도 그만, 안 받아들여도 그만이다. 다만 끝까지 읽어볼 필요는 있다. 그런 태도가 백가쟁명을 이루는 민주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유시민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은 어떤가를 살펴보자.


그는 말한다. '윤석열은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와 같다.'(7쪽)고. 그가 잘못된 장소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그러니 잘못을 윤석열에게만 전가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그랬다고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는다. 그런 분위기를 바꾸지 못한 책임이 있다. 어느 정도는.


그래서 박물관에 코끼리가 들어가면 내보내야 한다. 빨리. 내보내기 전에 조용하게 더 큰 사고를 치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유시민의 말을 빌리면 '민주주의는 선을 최대화하는 제도가 아니라 악을 최소화하는 제도'(23쪽)라고 하니, 악을 최소화할 수 있는, 코끼리가 박물관에서 사고를 치지 않게 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최소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현명하고 유능한 권력자가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받고 야당과 대화해 가면서 사회적 선과 미덕을 최대한 실현하는 민주주의를 '최대 민주주의', 선과 미덕을 실현하지는 못해도 사악하고 무능한 권력자가 마음껏 악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민주주의를 '최소 민주주의'라고 하자.'(26-27쪽)


이런 최소민주주의나마 유지해야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정치가와 정치업자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구분할 수 없으면 적어도 정치가들이 정치를 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내 생각이 아니라 유시민의 생각이다.


유시민은 정치가와 정치업자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정치를 위해 사는' 사람과 '정치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 편의상 전자를 '정치가', 후자를 '정치업자'라고 하자. 정치인은 누구나 '대의(大義)'에 헌신하는 동시에 '소리(小利)'를 추구한다. '대의'는 정치적 이상과 사회적 선을 실현하는 것이고, '소리'는 공직과 당직 등 이익과 지위를 챙기는 일이다. '대의'와 '소리'가 충돌할 때 대의를 앞세우면 '정치가', '소리'를 먼저 챙기면 정치업자가 된다. (197쪽)


그렇지만 정치가는 대의를 위해 일을 한다고 해도, 완벽할 수 없다. 그도 실수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위선이라고 한다. 악인이 이득을 취하는 행동을 하면 위선이라고 안 한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일한다고 하는 사람이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하면 위선이라고 비난한다. 그에게 수모를 준다. 이때 유시민은 정치가는 그런 수모를 견뎌내야 한다고 한다.


오직 정치를 해야만 이룰 수 있는 이상을 품었거니, 정치 말고는 달리 충족할 수단이 없는 욕망에 사로잡혔거나, 둘 중 하나라야 정치의 남루한 일상을 감내할 수 있다. (36-37쪽)

대중에게 정치가로 인정받으려면 대의를 위해 헌신하면서도 정치판에서 오래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수모를 견디지 못하면 리더가 될 수 없다 (199쪽)


정치가들에게 수모를 견뎌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정치가들이 어느 정도 수모를 이겨내고 계속 대의를 위해서 정치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제도다. 대의와 소리(小利 ). 정치가가 취한 소리만을 보고, 그를 재단하고, 그를 몰아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철인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가는 더한 도덕적 잣대를 스스로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민주주의 정치는 '전쟁의 문명적 버전'이다. 권력투쟁을 할 때도 정책경쟁을 내세운다.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 선거에서 이기는 데서 멈'추어야 한다. (264쪽)


이런 그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대통령에 대한 유시민의 개인적인 생각을 알 수 있다. 철인이 아닌데 철인인양 정치하는 사람. 국민보다는, 대의보다는 자신을 위해서 정치를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판단한다. 그러니 지금대로 나가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그래봤자 3년 뒤면 바뀌겠지만...


3년이 짧은가? 길다면 엄청 긴 시간이다. 우리나라가 거꾸로, 과거로 돌아가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아무리 퇴행했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는 '최소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 가능성이 있다. 우리 사회는 절대로 독재 사회가 아니다. 전제 왕정도 아니다. 제도가 살아 있고, 시민의식이 살아 있다. 유시민은 거기에 기대를 건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한번 읽어볼 필요는 있다. 적어도 우리 사회를 보는 다른 눈을 가질 수는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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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사이언스 - 아름다운 기초과학 산책
나탈리 앤지어 지음, 김소정 옮김 / 지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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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학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정말 어려운 방정식이나 수식이 나오지 않고, 과학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하는 책이다.


왜 우리는 천문관측소로 여행을 가면 안 되는가? 과학박물관은? 기껏 공룡화석박물관은 아이들 데라고 가본 적은 있을지라도, 그것은 아이들이 한껏 공룡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지, 어른인 우리가 관심을 가져서는 아니다.


그런데 우리 생활이 과학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데, 또 과학(수학)을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과학을 멀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 생활과 별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나 과학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부터 별을 보는 하늘까지, 우리가 먹는 음식부터 우리 몸까지, 또 눈에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모두 과학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 과학은 곧 우리 삶이다.


이렇게 과학이 우리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데 어찌 과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랴. 관심을 가져라. 말만 한다고 관심을 갖게 되지는 않는다. 무언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것을 충족시켜 주어야 관심을 갖는다.


이 책은 그런 역할을 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부터 시작한다. 과학적 지식이 있음에도 착각하는 경우, 잘못 알고 있는 경우를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사례들을 통해 과학이 그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착각에 이어서 확률과 척도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라고 해서, 확률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고, 무언가를 하기 전에 고민하고 계산하는 것도 확률과 관련이 있다. 마지막 장에 나오는 생명체가 있는 다른 행성이 있을까란 질문에 대한 답도 확률로 말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니, 그것을 파악하는 척도도 필요하다. 큰 것부터 아주 작은 것까지. 이렇게 과학에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한 다음에 물리, 화학, 진화생물학, 분자생물학, 지질학, 천문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설명을 한다.


나같이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읽으면서 과학이 다만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차분히 한 분야씩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과학을 멀리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단 생각을 하게 한다. 


아직도 과학의 아름다움을 잘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과학이 필요함을, 과학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정도로 이 책은 과학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과학이 어렵다고만 생각하는 사람, 이 책을 읽으면 과학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은 그릴 수 없을지 몰라도 전반적인 윤곽이 잡힌 그림은 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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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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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고등학교에 가면 문과와 이과로 나눠서 공부를 한다. 사실 공부라기보다는 진학을 위해서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 요즘은 통합이라고 해서, 문이과 구분을 없앴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찐 문과, 찐 이과'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과는 과학에 약하고, 이과는 문학에 약하다고 주로 말하면서 자신들이 약한 분야를 문과니까, 이과니까라는 말로 합리화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래야 할까?


이 책은 '운명적 문과'라는 말로 시작한다. 운명적이라는 말을 쓴 것은 자신이 원하기보다는 수학을 하지 못해서, 또는 수학을 어려워해서 문과로 진학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 말에 대한 짝으로 '운명적 이과'가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 들어보지는 못했다. 누군가는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수학에 약하다고, 그래서 문과를 지원했다고 하는 유시민은, 그럼에도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사실 문과 중에서 수학과 관련이 깊은 분야가 경제학 아닌가. 물론 유시민은 경제학을 배우는데 수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런데 자신과 같은 운명적 문과들은 경제학에 나오는 수학에 쩔쩔매는 반면 부전공으로 듣는 수학과 학생들이 너무도 쉽게 거의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장면을 보았다고 한다. (21쪽)


그렇다면 문과는 태생적으로 수학을 못한다.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논외로 하고, 문과가 수학을 못한다고 수학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수학은 유시민이 언급하듯이 범용 학문이고, 우주적 언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수학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하다는 듯이 과학도 못한다는 말이 따라온다. 또 그렇게 과학에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 수학과 과학이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듯이, 문과들은 수학과 과학을 멀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과연 그럴까? 우리 세상이 문과와 이과로 나뉘고, 어느 한쪽만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의 학문이 발달하면서 여러 분야로 갈라져서 지금은 너무도 많은 분야가 있지만, 학문도 진화처럼 처음에는 하나로 시작했을 것이다.


처음으로 시작한 학문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것이 수학이고 과학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인식을 하는, 언어를 지닌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서술하려는 욕망을 지니고, 그것을 실현하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관찰과 추론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기술하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밝히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노력들이 수학과 과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그것들을 기반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나'를 궁금해하고 '나'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나를 둘러싸고 세계와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찾는 과정, 그 과정에서 많은 학문들이 나왔을 것이고... 그러니 학문을 문과와 이과로, 인문학과 과학으로만 나눌 수는 없다. 인문학과 과학이 합쳐지지 않을 영원히 분리된 학문이라는 말도 성립이 되지 않을 것이고.


이런 내용이 파인만의 말을 빌려 이 책의 처음에 나온다. '거만한 바보'라는 말이다. 자신의 분야에 정통하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다른 분야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학문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존재들. 그런 존재들에게 융합이란, 통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에 하나였던 학문이라고 한다면, 그 학문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진화를 보면 그렇지 않은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생명체들도 유전지 분석을 해보면 공통적인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속속 밝혀지고 있으니. 이를 과학과 인문학에 적용한다면 이 학문들도 공통점이 분명 있으리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니 통섭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통섭이 당연한 것이 되어야 한다. 


인문학자는 과학을 공부해야 하고, 과학자는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러면서 서로의 학문을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서 상호보완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해야 할 일 아닌가 한다.


유시민의 이 책을 읽으면서 '운명적 문과'라고 했던 그가 '거만한 바보'였음을 깨닫고, 과학 공부를 하면서 인문학이 과학을 배제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가 과학자가 아니니 과학자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이 책에서는 할 필요가 없었을 듯하고)


그러면서 자신이 공부한 과학을 '운명적인 문과'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너희들이 문과라고 과학을 멀리해도 된다고, 수학을 멀리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아예 그들을 제쳐두면 안 된다고, 그러면 너희들은 '거만한 바보'가 된다고...


놔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에 관한 여러 글들을, 자신이 읽은 책들을 명료하게 정리해서 알려주고 있다. 자신의 경험과 관련지어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운명적 문과'들이 이해하기 쉽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문적인 과학 지식을 습득할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많은 과학 지식들이 나오지만 그것들이 인문학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통섭'을 느낄 수 있다. 


학문적 통섭이 아니라 우리가 생활에서 문과 이과를 나누고, 그것들이 교류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니라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문과 이과를 넘나들며 살고 있고, 그런 지식들을 배우고 있는데 그것들을 어떻게 정리할지 모르고 있었을 뿐이라는 점을 이 책은 생각하게 해준다.


이 책 덕분에 문과라고 과학을 멀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해줄 말이 생겼다. 그러면 바보가 된다고. 그것도 '거만한 바보'가. 자신이 바보인지도 모르는 바보가 된다고, 그러니 문과 이과 나누지 말고, 다양하게 공부하라고. 우리들의 삶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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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9-05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샀는데 귀하게 모셔 두고 있어요. 다른 책 읽느라고요...ㅋ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품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가보지 못했다. 미국에 있다는 것만 알았지. 미술관에서 작품들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알았다. 우리나라에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들을 경비원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다. 경비원이라고 해도 좋고, 관리인이라고 해도 좋겠지.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눈에 잘 안 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도 경비원들을 만나기 쉽지 않다. 무언가를 물어보기 힘들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미술관이라고 해도,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이런 곳을 봐도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과천현대미술관도 마찬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경비원들이 있지는 않을 테고.


경비원 하면 또 어떤 편견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단지 관람객들이 작품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존재, 작품에 손대지 못하게 하고, 규정에 어긋난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존재.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아니다.


메트로폴리탄 경비원들은 작품 관리를 하는 역할도 하지만 작품 안내도 한다. 질문하는 사람도 꽤 있나 보다. 이 책을 보니, 물어보는 사람에게 안내를 해주는 일도 다반사로 나오니. (이 미술관은 이 책만 읽어도 규모가 어마어마함을 알 수 있다. 경비원들의 숫자에도 압도되고, 그들의 다양성에도 놀라게 된다. 또 당연하다는 듯이 정식 직원이 되었을 때 노조원이 되는 것도 놀랍다.)


그러니 그들이 작품에 대해서 문외한일 수가 없다. 특히 이 글을 쓴 패트릭 브링리는 작품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 그 작품들이 어떻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앞으로는 이 책을 따라서 '메트'라고만 하겠다) 오게 되었는지도 공부한다. 또 작가에 대해서도. 그러니 그는 메트 경비를 하면서 작품을 지키는 역할도 하지만 작품을 설명하는 역할, 메트를 알리는 역할도 한다.


그런 과정이 이 책에 잘 드러나 있다. 왜 자신이 메트에 오게 되었는지, 메트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근무하게 되었는지, 메트에서 근무하는 장점이 무엇인지, 또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함꼐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형의 죽음으로 상실에 빠진 그가 메트에 근무하면서 다양한 작품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치유해 가는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예술이 위로를 준다는 말을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치유성, 위대함을 강조하지 않는다.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을 읽는 사람이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그 작품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자신이 그 작품을 어떻게 보는지를 이야기해준다. 그냥 들려주는 것이다.


말 없는 작품이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건네듯이, 그는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메트에 대해서, 메트의 작품들에 대해서, 메트에 근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또 메트에 온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이야기 한다. 그냥 들려준다. 


소곤소곤. 한번 들어봐. 하는 식으로. 그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아, 메트의 이곳에는 이런 작품들이 있고, 또 저곳에는 저런 작품들이 있으며, 그 작품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느낄 수가 있다.


메트의 경비원들은 조용히 있는 듯하나, 그 조용함 속에서 작품과 대화하고, 관람객들과도 대화를 한다. 그런 이야기를 그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 메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번 방문해서 작품들을 보고, 또 푸른색 옷을 입은 경비원들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메트에 근무하면서 형의 죽음에서 자신의 아이들의 탄생과 자람까지, 세월이 흐를 동안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에 들어서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많은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작품들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도 하는 책이니...무엇보다도 꼭 메트가 아니더라도 우리들도 힘들 때 이와 비슷한 치유의 과정을 거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니, 이 책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읽으면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홈페이지를 열어두고, 그곳에서 작품들을 찾아 함께 보면서 읽는 재미도 있었다. 핸드폰으로 찾아도 되지만, 책상에서 컴퓨터 모니터로 조금 더 크게 보는 재미도 좋았다고나 할까.


작품을 찾을 수 있게 정리도 잘 해놓았고, 또 부록도 있어서 좋지만, 그것들이 없더라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홈페이지에 방문해도 된다. 그래서 검색을 이용해 찾아보면 책에 언급되지 않은 더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으니, 그런 즐거움을 누려도 된다.


무엇보다도 천천히 읽으면서 - 경비들이 하는 일이 전시실에 오랫동안 서 있는 일이니 - 작품을 내 삶에 받아들이는 일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런 점을 일깨워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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