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방 안에는? 타인의 취향 2
이주미 지음 / 씨드북(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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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만큼이나 주제가 너무 귀여워서 호기심이 생기는 그림책이다. 누군가의 가방 안에 담긴 것들로, 그 사람의 하루를, 그 사람의 관심을 알 수 있다는 게 재밌다. 언젠가 지인의 가방 안에서 쏟아지는 물건들로 놀란 적이 있다. 반짇고리, 손톱깎이, 수건 등 평소 사람들의 가방 안에서 보기 어려운 물건들이 가득했다. 어쩌자고 가방 무겁게 이런 것들을 다 가지고 다니냐고 물었더니, 혹시 밖에 있을 때 필요할까 봐서 가지고 다닌다나. 갑자기 바지나 셔츠 단추가 떨어졌다거나, 깜빡하고 손톱 정리를 못 해서 지저분해 보일까 봐. ,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실과 바늘, 손톱깎이까지 가지고 다니는 사람 흔하게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순간적으로 놀라기는 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방 안을 채우고, 자기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다니기 마련이다. 그게 무엇이든, 내가 필요하고 관심 있으면 된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 가방 안이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넣을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 말이다.


주인공 소년에게 새 가방이 생겼다. 자기 가방 안에 무엇을 넣을까 고민하던 차에, 다른 사람들은 가방에 무엇을 넣고 다니는지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동생의 가방 안에는 유치원 원아 수첩, 애착 인형, 물통 같은 유치원에 가져가야 할 게 담겨 있다. 엄마의 가방 안에는 사원증, 태블릿, 텀블러, 화장품 파우치 등 회사에서의 하루가 그대로 보였다. 담임 선생님의 가방 안은 하트 사랑이 넘쳤다. 열쇠고리, 안경, 다이어리 등 모든 게 하트 모양이다. 태권도 사범님의 가방 안에는 태권도복, 파스, 달콤한 간식이 있다. 열심히 태권도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주려고 간식까지 넣어서 다니시나? 겉모습만 보면 호랑이처럼 무섭게 생겼는데, 의외의 면이 있다.


누군가의 가방 안을 들여다보면서 알게 되는 건,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것 정도? 털털해 보이는 사람의 가방 안에 의외로 필요한 소지품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담겨 있다거나, 화난 표정으로 다니시는 할아버지 가방 안에 길고양이 간식이 들어 있다거나 하는. 누군가의 다른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관심이나 직업, 성격이나 생활의 단면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많은 사람의 다양한 면을 확인하는 시간이었고, 사람마다 가지는 하루의 모습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안에서 나만의 하루와 취향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는 건 당연하다. ^^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열면, 다양한 용도의 가방이 등장한다. 커다란 여행용 가방, 어르신의 허리에 찬 힙색, 털실로 짠 가방, 손수레형 장바구니 등 그 크기나 용도가 다양하다. 이 가방들은 저마다 자기 용도에 맞게 쓰이고 있고, 그렇게 사용하는 이의 하루를, 삶을 엿볼 수 있다. 나에게도 있고, 필요할 때 적절하게 사용하는 가방들이라 새삼스럽지 않다. 집안의 구석에 박혀 있는 여행용 가방, 어깨가 무겁다며 메고 다니던 크로스백, 얼마 전까지 뭘 배운다며 등에 메고 다녔던 백팩, 몇 개의 손가방, 뚜벅이라 장을 볼 때나 쓰레기 버릴 때 꺼내곤 하는 접이식 폴딩 카트 등. 짐 늘어나는 거 싫다며 최소한의 것만으로 생활하자고 다짐했는데, 말하면서 보니 내 가방의 종류도 다양하긴 하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작은 가방을 가지고 다니지 못한다. 작고 귀여운, 딱 카드지갑이나 휴대폰 정도만 들어갈 것 같은 가방이 얼마나 많은가. 예쁜 원피스 입고 앙증맞은 그런 가방 하나 딱 챙겨 들면 귀염 폭발이겠지만(미안, 내 덩치나 외모는 귀염 폭발 절대 안 되니까 이런 상상이라도. ㅠㅠ), 그렇게 들고 나가면 불안해서 잠시도 밖에 있기가 어렵다. 언제나 내 가방 안에는, 지갑, 휴대폰, 화장지(밖에서 급한 일 생길까 봐), 화장품 파우치(화장 안 해도 들고 나감), 간단한 필기도구(뭘 쓸 일이 없는데도 챙김), 작은 생수 한 병(진짜 나이 들었나 봐, 자꾸 목이 말라), 그리고 제대로 읽지도 못할 책 한 권. 대충 챙긴 것만 이 정도다. 여기에 그때의 외출 목적에 따라 챙길 게 더 늘어나기도 하니, 내 가방 크기가 어때야 할지 상상이 되려나? 이러다가 정말 장바구니 캐리어를 끌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루를 채우는 사람들의 가방 속 물건들과 다양한 가방의 역할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이야기다. 주인공의 가방 안에는 꼬마 탐정의 추리 도구가 가득하다. 아마도 이 아이는 주변의 많은 것에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이 꼬마 탐정 덕분에 나도 타인의 가방 속 일상과 호기심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이미 내 가방 안에 가득한 것들 말고도, 또 무엇을 채울 수 있을지, 채우고 싶은지 상상하는 고민까지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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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책리뷰 #호기심 #관찰 #가방을보면그사람의하루가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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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는 우리는 각각 자신의 재능대로, 자신의 기질대로 열심히 삶을 견뎌 내는 중이었다. 어떻게 견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놀든 일하든 배우든 실패하든 모든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하지 않은가. (초보 노인입니다 195페이지)


누군가가 나에게 나이를 물어보면,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아서 당황스럽다. 내 나이를, 내가 모른다. 금방 계산이 안 된다. 그래서 태어난 해를 말한다. 몇 년생이요. 그때마다 화들짝 놀란다.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높게만 보였던 엄마의 나이를 훌쩍 넘어 벌써 이 나이라고? , 많이 늙었구나. 나보다 더 나이를 드신 분이 들으면 뭐라고 한마디 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어쩌나, 내 마음이 그런 것을. 나의 늙음을 더 확실하게 실감할 때는 주변의 아이들이 커갈 때다. 겨우 걸음 떼고 말을 할 줄 알면서 어린이집 다닐 때가 엊그제인데, 금방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오랜만에 만나니 훌쩍 커버린 아이가 놀랍기만 했다. 이제는 그 아이가 수능시험을 준비한다고 할 때 놀란 건 말할 것도 없고. 이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수시로 놀라다가, 그때마다 내 나이를 한 번씩 생각한다.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구나 하는.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아직도, 늙지 않았는걸.


이 책을 읽다가 보니 아직은이라는 마음이 자꾸만 짙어진다. 나이 들어간다는 걸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60세가 넘었으니 노인이라는 영역 안에 들어가는 건 당연할 걸까? 글쎄, 당연한지는 모르겠지만, 저자 역시 처음에는 너무 이상했다고 한다. 여전히 젊은 채로 늙음을 맞닥뜨린 것이 당황스러웠겠지. 특히나 노인이 모인 주거공간에 속하게 되니 더 어색하기만 했을지도 모른다. 퇴직하고, 더는 도시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지자 주택을 동경하다 실행에 옮겼는데, 그마저도 완벽한 선택은 아니었나 보다. 몇 달 만에 다시 주거지를 옮기며 선택한 곳이 실버아파트다. 이 아파트의 입주 조건은 딱 하나. 60세 이상만 입주할 수 있다는 것. 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어차피 노인의 삶으로 진입하는 나이이니 뭐 얼마나 다를까 싶었다. 삼시 세끼 음식이 제공되고, 대형 병원으로 이어지는 전용 통로가 있다. 단지 내 사우나와 헬스장부터 바둑, 탁구, 기타 같은 취미 활동까지 가능하니, 노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시설이 있을까 하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저자가 들려주는 실버아파트의 일상으로 알게 됐다.


물리적인 나이가 말하는 노인과 자기가 부딪치는 노인의 마음은 달랐다. 입주민의 평균 연령이 80대인 실버아파트는 노인을 위한 최적의 맞춤형 주거지였지만, 저자 스스로 아직 노인이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 노인의 세상에 뛰어드는 게 쉽지 않았던 거다. 처음부터 이 아파트에서의 삶이 부담스러웠던 건 아니다. 저자가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은 완전히 흡수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60세가 넘었다는 나이의 숫자와 노인이라는 자각이 별개의 문제라는 걸 인식했다. 저자는 이곳에서 초보 실버의 실체를 만나고, 생각과 실체의 차이가 크기에 오는 혼란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노년의 현실을 마주한 혼란이 저자에게 노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곳에서 그저 나이가 표현하는 노인과 마음이 말하는 노인의 차이만 발견한 것은 아니다. 실버아파트의 노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우연히 만나는 이웃과 대화하고, 뒷산을 오르면 산책하면서 비슷한 듯 다른 노인의 삶을 본다. 이웃에게 먼저 살갑게 다가오는 할머니, 현관문에 채소가 든 봉지를 걸어놓는 이웃, 아픈 아내를 돌보며 기타를 배우겠다는 할아버지, 예쁘게 치장하고 커피를 마시러 나오는 할머니, 고운 옷에 아름다움을 뽐내는 할머니까지. 누구 한 사람 똑같은 노인이 없었다. 노인은 다 똑같다고 생각했던 마음에 경고를 들은 기분이었다. 80대로 보이는 어느 노인이 60대의 저자에게 한 말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지금이 제일 고울 때라는, 젊은 사람이 멋 좀 내고 다니라고, 이렇게 예쁠 때는 금방 지나간다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향기는 여느 쌍과 비슷하나 한없이 조용하고 담담한 곳. 왈칵 울음을 터트릴 만큼 서러운 일도, 울화통을 건드릴 만큼 화나는 일도, 이치를 따져 가며 목청을 높일 일도, 견딜 수 없이 기쁘거나 슬픈 일도 모두 숙성되는 이곳. 늙는다는 게 이런 건가? 그러나 단순히 늙음이 답은 아니었다. 실버아파트에 살면서 만난, 기도서 여인과 비슷한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각각 다른 방식이었으니 남을 이해하고 생각하며 결구에는 사랑하는 마음마저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초보 노인입니다 114페이지)


60대의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은 내가 50살만 됐어도.”였다. 하고 싶은 게 많고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이 나이가 되니 제약이 너무 많아서 못 하고 있다고 말이다. 혹자는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분명 나이가 주는 제약이 있다는 걸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최근에 뭘 좀 배우고 있는데, 내가 이걸 배워서 어디에 써먹나 하는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어차피 배우려고 했으니까 시간 될 때 배우고 있는데, 이걸 다 배운 후의 일이 막막하다. 조금 더 일찍 할 걸, 내가 30대에 했어도 더 할 수 있는 게 많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끊이질 않는다. 그래도 막상 시작했으니 끝을 보긴 해야 하는데, 불안한 마음이 항상 남아 있다. 내 마음의 나이와 공식적인 나이 사이의 차이가 점점 벌어질 때마다, 이 불안의 크기는 커질 것 같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내가 늙어 가고 있다는 거다. 노인의 초입에서 낯설기만 했던 저자의 감정과 다를 바 없을 테다. 버스에서 자리 양보를 받을 수도 있고, 회복 불가능하게 머리숱이 적어지는 것도 슬프고,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의 베개 자국이 없어지는 시간이 길어지고, 병원에 갈 일은 점점 많아지고. 계속 생각해보니 노인이 되어서 좋은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노인이 되지 않을 것도 아니니, 에휴. 남편이 항상 하는 말처럼,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마음을 좀 내려놓으라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우면 두통이 왜 생기냔 말이지.


마치 노인의 세계에 들어가는 예행연습을 지켜본 기분이다. 자신이 노인인지 거듭 되물으면서, ‘늙음을 마주한 이의 푸념처럼 들리지만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노인이 모여 사는 아파트의 입주민의 관찰 기록이면서, 이 세계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 준다. 평온하면서도 역동적인 노인들의 모습이 마냥 새로우면서도, 조용하고 쓸쓸하면서도 놓치지 않는 일상의 활기를 마주한다. 솔직히 이 이야기를 다 듣고도 나는 아직 적응하지 못한 노인의 모습이 있다. 갑자기 이사를 온 옆집에 불쑥 들어온다거나, 지나가는 이에게 차를 마시라고 붙잡고,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며 인사하는(치매 노인) 일들처럼, 많은 상황이 낯설고 두렵다. 동시에 궁금해진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그 시간의 삶을, 느리고 불편해지는 노년의 일상을, 수시로 마주하게 될 주름진 육체의 고단함을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잡아야 할지 말이다. 그 나이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조금은 미리 엿보는 마음에, 저자의 표현대로 초보 노인의 세계에 입성하게 되는 과정이 그래도 조금은 덜 낯설고 적응하기 쉽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도 생긴다.


혹시나 하는, 저자의 실버아파트 경험을 어둡게만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자가 실버아파트를 떠난 것이, 노인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 실패를 말하는 건 아니다. ‘아직온전한 노년에 들어서진 못한 젊은 노인의 귀한 경험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2장이 실버아파트에서의 적응과 기록이라면, 3장은 초보 노인 저자의 솔직한 일상이 그려진다. 저자의 일상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오랫동안 유지한 지인들과의 교류, 꾸준한 취미생활로 다져져 은퇴 후에도 계속되는 활발한 외부 활동으로 일상을 유지하는 거였다. 보통 젊은 시절에 활발하게 움직이다가도 나이 들고 은퇴하면서 점점 그 활동이 줄고,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일도 많은데, 외부 활동을 더 늘리지는 않더라도 기존 활동을 계속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활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다. 나이 들고 아픈 곳이 늘어나기도 하지만, 아이들도 떠난 집에서 외로울 수도 있지만, 자신을 들여다보며 때로는 절망하고 위로하면서, 담담하게 죽음을 이야기할 수도 있는, 늙어 가는 그 시간이 싫지만은 않을 듯하다. 태어나서 살아가고, 또 나이 들어가는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상당히 괜찮은 일이었다. 죽음을 기뻐할 것까진 아니어도 슬퍼할 일도 아니라는 것. 죽음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접근해 간다는 것과, 나름 계획까지 세워 볼 수 있다는 것. 심지어 나를 죽게 하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죽음인 것은 알지만. 하여간. (나는 초보노인입니다 163페이지)


누구에게나 똑같지 않을 노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준비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저자 역시 초보 노인으로 노인의 삶을 아직은 온전하게 적응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 시행착오 같은 시간으로 노인의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자의 세대가 아니어도, 누구나 언젠가 만날 그 시기의 삶을 미리 엿본 시간에 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노인의 시간 한가운데 있는 엄마가 생각나고, 5060대의 시간으로 들어갈 우리 부부에게 무슨 준비가 필요할지 고민하게 된다. 한 개인의 사소한 기록이라고 하기에는 의미가 크다. 보고 듣는 게 많았고, 주변의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며 가까운 가족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무엇보다 계속해서 늙어 갈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무엇이든, 덜 외롭고 덜 아프게, 일상의 존재감이 무너지지 않게,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게 말이다.










#초보노인입니다 #고독사워크숍 #늙는다는건우주의일 #나는죽을때까지재미있게살고싶다

#나이듦의신세계 #노인의삶 #노년적응기 ##책추천 #문학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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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8-31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치게 노인에 매몰된다면 행복한 삶을 누리기가 어려워질 듯해요. 노인도 동일한 사람임을.

구단씨 2023-09-04 12:40   좋아요 0 | URL
그래서 노력하고 있는데, 생각처럼 간단하게 마음이 정리되지가 않네요. ^^
그래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거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요. 다행이에요.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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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넘나드는 소재가 새로울 것은 없었다. 이꽃님의 소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역시 무한한 기대로 새로운 느낌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처음에는 시간을 거스른 공간에 있는 두 주인공이, 잘못 배달된 편지로 어떤 이야기를 이어나갈까 궁금했다. 소설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결코 식상하다거나 익숙한 설정이라는 말로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어떡하지?’ 하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누군가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게 이렇게 새로울 수가 없다.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보려 시도했던 호기심은 차마 말을 꺼낼 수 없는 사랑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서로의 마음을 모른 채로 지내온 수많은 관계의 시선까지 아우르는, 적어도 누군가의 마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면서 읽고 싶은 바람을 남긴다.


재혼을 앞둔 아빠는 은유에게 느리게 가는 편지를 쓰자고 제안한다. 아빠와의 외출 자체가 낯설고 흥미 없는 은유에게, 난데없는 펴지 쓰기는 더 어색하고 심통이 난다. 단 한 번도 자기의 마음을 제대로 봐주려 하지 않은 아빠였는데, 그래서 더 서운하고 화만 나게 했던 아빠였는데. 아마 이렇게 은유와 보내는 시간도 그 여자(아빠의 재혼 상대)가 시켜서 억지로 만들었을 것만 같다. 은유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틀린 건 아니다. 존재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엄마의 부재에 관해 아빠는 설명해준 적도 없다. 은유의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냉랭했던 아빠였다. 열여섯의 은유는 오직 한 가지 바람으로 중2를 견디는 중이었다. 독립하는 것. 어떻게 해서든 독립해서 집을 나가는 게 은유의 바람이다. 그 정도로 아빠와의 시간은 무의미했다. 은유가 느리게 가는 편지를 쓴 것도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아빠와의 외출에서, 어쩔 수 없이, 아빠가 원하니까 동참한 것뿐이다. 1년 후 자신에게 도착할 편지의 내용 따위 지금 이 순간 진지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보낸 편지가 잘못 배달되었던 거다. 2016년을 사는 은유의 편지가 1982년의 은유에게 배달되었으니, 이런 대형 사고가 또 있을까. 세기를 건너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두 사람의 환경이 다른 것은 당연하고, 2016년의 은유의 말이 1982년의 은유에게 쉽게 이해될 리 없다. 그런데도 무슨 인연인지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는 계속된다. 다만, 시간의 흐름이 조금 달랐다. 2016년의 은유가 사는 시간은 현재의 속도로 흐르지만, 1982년의 은유의 시간은 흐르는 속도가 더 빨랐다. 2016년의 은유가 보내는 1년여의 세월은, 1982년의 은유가 보내는 30여 년과 같았으니까. 두 사람의 편지가 계속될수록 희미하게 안개가 낀 것만 같았던 뭔가가 서서히 드러난다.


성장한다는 건 뭘까, 계속 고민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성장하는 순간을 바라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 성장은 외모가 아닌 마음이 먼저였다. 나 자신과 타인에게 내 마음이 좀 더 너그러워지기를 바라는 일.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기에,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성장해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성장이란 단어를 유독 아이들에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어른보다 더 많은 것을 쌓을 기회가 주어진 시간을 살고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은유의 이야기가 성장에 더 가깝게 다가간 것만 같은 느낌은 오가는 편지가 계속될수록 더 선명해진다. 처음 편지의 수신인은 초등학생이었다가, 은유의 또래였다가, 은유보다 연장자가 된다. 서로 다른 나이, 살아가는 순간 겪어야 할 일이 다른 환경,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자신의 고민이 다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편지는 거리감 없이 계속된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는,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나이가 아니라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나이, 사는 곳, 배경이 달라도 마음을 이야기하는데 장애가 되는 건 없었다. 어른이 되어 점점 더 많은 것을 눈에 담으면서, 상대방을 계산하는 눈도 키워야 한다고 무언의 학습이 시작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바탕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마음이라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셈이다. 너무 다른 우리가 고민하고 갈등하며 아파하는 것은 너무도 똑같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더 많이, 더 자주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137페이지)


왜 우린 행복하게만 살 수는 없는 걸까. 왜 이 지독하고 끈질긴 불행은 계속 찾아오는 거냐고. (177페이지)


물론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사랑일 것이다. 성장을 보듬어 안은 사랑. 편지 형식으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너무 다르고 너무 먼 거리의 존재로 시작되었지만, 결국은 닿고야 마는 우리 마음의 이야기다.


잘못 배달된 편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라서 어렵다는 말만 계속 입안에서 맴돌고 있다. 독립을 빙자한 가출을 꿈꾸던 여중생이 누군가의 진심을 알고 이해하며 사랑을 알아가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뭉클했다. 이 소설을 읽어가는 순간들의 묵직함이 내 안의 어느 곳까지 파고들었는지 모르겠다. 은유의 편지가 잘못 배달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너무 완벽해서, 그 누구도 어떤 잡음도 끼어들 틈이 없다. 서로에게 가 닿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옆에 있지만 존재감을 모르고, 어쩌다 묻는 안부에 진심은 들어있지 않고, 이기적으로 이해만 갈구하는 존재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다면, 마지막에 은유가 듣게 된 진심 앞에서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두 명의 은유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걸 보면서, 어느 시간에서 결국 만나고야 마는 두 사람의 표정까지 상상하게 된다. 그들의 시간이 엮어낸 순간에 우리의 감정도 빠질 수가 없다. 은유뿐만 아니라, 우리도 여전히 성장해야 하는 존재일 테니. 일상의 소소한 순간이 오고 갈 때 만들어지는 건 이해와 공감이고, 그런 시간이 겹겹이 쌓일 때 사랑은 저절로 생겨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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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도감 - 목욕탕 지배인이 된 건축가가 그린 매일매일 가고 싶은 일본의 대중목욕탕 24곳
엔야 호나미 지음, 네티즌 나인 옮김 / 수오서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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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을 그렇게 오래 다녔어도, 목욕하고 나와서 바나나우유 하나 입에 무는, 그런 추억이 내게는 없다. 그냥 본전 뽑고 가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피부가 빨개지도록 때를 밀던 기억은 있다. ^^ 지금도 비슷하다. 목욕탕의 후끈한 분위기와 실컷 때 밀고 나오면 축 늘어지는 그 노곤함을 즐기는 정도. 그것마저도 이제는 귀찮아서 잘 안 다니게 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한 달에 두세 번은 다니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 혼자서는 아니고 엄마랑 항상 같이 다녔는데, 문제가 생겼다. 엄마와 계속 다니던 엄마 집 근처의 오래된 목욕탕이 지난봄에 마지막 영업을 하고 폐업했다. 다른 사람이 인수하기를 기다렸지만, 적당한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결국에는 문을 닫고 말았다지. 어쩌나. 다른 목욕탕을 뚫어야지. 곧 서늘해지는 계절이 올 텐데, 벌써 걱정이다.

 

일상에 너무 가깝게 닿아 있는 목욕탕을 이렇게 그릴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펼쳤다. 일본의 온천 문화를 들어보긴 했어도, 실제로 그 문화에 스며들지 못한 터라 막연했다. 저자가 그림과 세세한 소개로 들려주는 목욕탕 이야기는 너무 신기했고, 너무 자세해서 마치 내가 그곳에 다녀와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목욕탕이나 사우나에 친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일본 사람의 목욕탕 진심에 새삼 놀랐다. 거창하고 고급스러워서 접근하기 어려운 문화라기보다는, 생활의 일부 같은 느낌이 좀 더 진했다.

 

이미 부제에서 말해주었듯이, “목욕탕 지배인이 된 건축가가 그린 매일매일 가고 싶은 일본의 대중목욕탕 24의 이야기다. 저자가 추천하는 순서는, 처음 초심자 코스부터 상급자 코스, 마스터 코스, 인간미 코스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목욕탕이 처음이어서 서먹한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초심자 코스,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즐거움으로 목욕탕 애호가를 만족시킬 상급자 코스, 궁극의 최고 목욕탕을 만날 마스터 코스, 목욕탕 주인의 열정까지 느껴지는 인간미 코스. 하지만 굳이 이 단계나 코스를 마음에 두지 않아도 목욕탕을 즐기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보다는 소개해주는 각 목욕탕을 얼마나 더 잘 즐길 수 있을지 저자가 전달하는 팁을 눈여겨보는 게 좋겠다.

 

저자가 소개해준 24곳의 목욕탕 중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곳이 있다. 첫 번째는 목욕 후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닛포리 사이토유이다. 주인이 삼대째 이곳을 경영하고 있으며, 2015년 낡은 건물을 개축하면서 더 정성을 쏟았다. 냉온욕을 반복하면서 몸이 풀어지고 기분 좋을 때, 카운터로 향해 맥주를 마시는데, 이미 노곤해지고 뜨끈해진 몸 안으로 꽁꽁 언 맥주잔에 따라진 시원한 맥주가 몸 안을 그대로 통과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시원함이 이 더위에 허덕이는 나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진다. 상상만 해도 시원해 죽을 것 같다. (이 부분 읽다가 냉장고로 달려가 캔맥주 한 개 당장 꺼내왔다) ‘닛포리 사이토유목욕탕에는 여성 한정 이벤트도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기를.

 

두 번째는 도심 속의 오아시스 유가 와고코로 요시노유이다. 녹음이 우거진 공원 가까이에 있다는 게 끌린다. 우리나라에서 웬만한 온천으로 검색해서 찾다 보면 도시의 외곽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던데, 나처럼 뚜벅이나 대중교통으로 찾아간다고 생각하면, 전혀 도심 속에 있지 않을 것 같은 이 목욕탕을 만나면 더 반가울 것 같다. 그리고 역시, 이곳에서도 시원한 생맥주를 판매한다. 생맥주를 주문하면 작은 안주도 함께 나온다고. ^^ 로비에 마사지 코너도 있다고 하니, 뜨끈한 물에 씻고 나와서 시원한 생맥주 한잔 들이켜고, 마사지 받으며 누워있으면 잠이 솔솔 올 것 같다.




 

어쩌다가 저자는 목욕탕을 탐방하며 그리게 되었을까. 저자에게도 일상의 피폐함이 찾아왔다. 건축 관련 일을 하다가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극복하려 애쓰던 중, 목욕탕을 알게 되고 그 매력에 푹 빠져버린 거다. 목욕탕의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풀어지는 몸에 감탄하지는 않았을까. 이 즐거움에 빠진 저자가 SNS에 한 장씩 올린 목욕탕 그림은 좋은 반응을 일으켰고, 좋아서 즐기던 게 일이 되어버렸다. 200곳이 넘는 목욕탕을 찾아다니고, 줄자로 목욕탕 내부를 재어가며 실제처럼 그려낸 정성에 반했다. 위에서 내려보는 듯 그려낸 목욕탕 그림을 보고 있자니 너무 생생해서, 마치 내가 그 목욕탕에 다녀온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목욕탕 지배인으로 취직했다는 이야기에 한참을 웃었다. 읽는 내가 다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이 원망스러웠을 수도 있는데, 그때 경험한 회복의 방법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준 게 아닌가. 얼마나 즐거운 인생 이야기란 말이야.

 

리뷰에 다 담을 수 없는 다양한 목욕탕의 매력과 특징이 가득하다. 대중목욕탕 이용하는 방법부터 가격, 몸을 건강하게 하는 목욕법, 대중목욕탕 문화 같은 정보가 알차다. 저자 본인이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에 더 신뢰 가는 소개였다. 나중에 어느 날 일본에 가게 된다면 목욕탕 투어 일정을 짜도 좋을 것처럼, 일본 도쿄 근방의 숨은 보석 같은 목욕탕을 소개하는 안내서면서, 목욕탕에서 얻은 휴식과 안정에 관한 이야기이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을 찾은 여정이다. 미치도록 목욕탕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목욕탕에 가게 된다면 내 앞의 온탕에 퐁당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독자로서, 이 책은 반가웠고 읽는 내내 즐거웠다. 무엇보다 저자가 그려놓은 목욕탕 도면 같은 그림에서 풍기는, 독자를 그 목욕탕 안으로 데려다 놓은 마법을 부린 시간에 감사한다. 책을 한 권 읽었는데, 더위에 지치고 피곤한 내 몸이 확 풀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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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제부터 북플이 안열립니다.
오늘은 알라딘 앱도 안열려요.

무슨 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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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8-19 1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돼요 ㅠㅠ 어젯밤부터요 알라딘앱으로는 되네요 왜 그럴까요???

구단씨 2023-08-19 22:04   좋아요 1 | URL
저는 이제 알라딘 앱은 되는데 북플은 여전히 안되네요.

황후화 2023-08-19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되다가 이제 되네요 ㅠㅠ

구단씨 2023-08-19 22:04   좋아요 2 | URL
저는 북플이 여전히 안되고 있어요.
앱 삭제하고 다시 설치해도 안되네요. 뭔일인지...

황후화 2023-08-19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 저도 삭제하고 다시 하긴했는데요.....
그러게요 뭔일일까요?

구단씨 2023-08-21 19:10   좋아요 2 | URL
이유를 저도 잘.... ^^
다행히 오늘 오전에 복구가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