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음악 - 날마다 춤추는 한반도 날씨 이야기
이우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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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이맘때쯤 찾아오는 장마가 낯설지는 않았다. 매해 그렇듯, 이 꿉꿉함을 좀 참고, 우산을 챙겨야 하는 불편함을 며칠 견디면 끝날 것을 알기 때문에 괜찮았다. 올해의 장마는 다른 것 같다. ‘극한을 붙인 폭우가 등장했다. 비가 와도 너무 많이 온다. 쉴새 없이 안전안내문자가 온다. 집에서 한 블록 내려가면 보이는 사거리는 차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물에 잠겼다. 해마다 비가 많이 오면 어느 정도 발목을 적시는 정도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언젠가부터 폭우가 쏟아지면 위험한 곳이 됐다. 맨홀 뚜껑이 날아가 사고가 난 차가 있을 정도다. 수시로 일기예보 확인이 습관이 됐다. 비단 비 오는 날 뿐만 아니다. 너무 더워도, 폭설이 쏟아져도, 미세먼지가 심해도 살펴보게 된다. 갑자기? 아니다. 늘 그랬지만, 새삼 요즘의 날씨가 변덕이라 더 챙겨보게 되는 거였다.


날씨에 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날씨는 대기와 땅, 햇볕이 만들어내는 음악 같다는데, 오늘 날씨는 어떤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굉장히 어둡고, 거칠고, 심란한 음악 무엇일까 찾아보게 될 정도다. 저자는 장맛비에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듣고 싶다고 말하더라. 폭풍우에 갇혀 밤새 돌아오지 못한 연인 조르주 상드를 걱정하며 이 음악을 만들었다는 쇼팽. 응어리진 가슴을 쓸어내리듯 맨홀로 빨려 들어가는 빗물을 얘기한다. 이렇게 듣고 보면 참 분위기 있어 보이는데, 미안하지만 오늘의 장맛비는 분위기만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위험을 동반하기에, 솔직히 좀 밉다. 어쨌거나, 단순히 불편하고 싫다는 마음으로만 말하는 날씨가 아니라, 기상학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날씨의 과학과 음악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절로 날씨에 맞는 음악을 상상하게 되면서, 다양한 날씨의 모습을 설명하는 문장은 또 어떻게 들려올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대륙의 동쪽 끝에 있다는 한반도. 북쪽의 육지와 남쪽의 바다 영향을 받는다는 건 이미 지도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북반구의 중위도 온대 지방에 위치하며 저기압과 고기압의 영향을 반복적으로 받고 있고, 이 기압의 이동으로 날씨의 변주가 이루어진다.


변화무쌍한 한반도의 봄 날씨는 강물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단다. 시베리아 적도를 흐르던 찬 공기가 양쯔강 자락의 따뜻한 기운과 만나 요란한 비를 쏟아낸다고. 잔잔하게 내리는 봄비를 연상하면 봄날의 건조함을 사라지게 해줄 적당한 비가 생각나는데, 이미 문장에서 들려오듯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만나 비구름을 만들 때 얼마나 무서운 분위기로 비가 내리는지 안다. 기상 현상에 대해 잘 몰라도, 이 정도는 우리가 많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럴 때 빠른 리듬의 음악이 저절로 생각나는 건 당연하다. 둔탁하고 무겁고 세게 두드리는 악기를 연상하게 된다. 아마도 지금 내리는 비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는 수시로 끼어드는 효과음에, 경쾌함이 아닌 운명이 바뀔 것 같은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 딱 맞는 시기인 여름 장마철.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로 오면서 그 가장자리의 수증기가 비구름대가 만들어진다. 이때 많은 비가 내리는데, 북태평양고기압이 확장되어 한반도를 덮는다면 수증기 물길이 한반도를 피해가고 열대야가 온다는데. 생각해보니 장마철 폭우도 싫고 열대야도 싫은데, 여름을 견디는 게 참 힘든 일이구나. 들으면 들을수록 날씨에 관한 예측과 현상은 신기하면서도, 지구의 기후변화에 더 민감하게 다가가게 된다.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고 그 자리를 다른 공기가 채우고, 태양의 높이에 따라 열의 양이 달라지고, 육지와 바다의 분포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날씨를 우리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자연이 그러하니,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기후변화 문제가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짧은 듯, 있는 듯 없는 듯 지나는 가을을 생각하면 괜히 울적해진다. 겨울의 추위가 오기 전, 가을 특유의 서늘함을 좋아했다. 한반도에 북풍이 불어오면서 북쪽의 찬 공기가 높은 구름을 만들어내고 구름층이 엷어진다고 한다. 가끔 우박이나 소나기가 가을의 운치를 위협하면서 대기 불안정을 만들기도 한다. 농작물의 우박 피해 뉴스를 보다 보면, 날씨는 우리 삶에 너무 밀접하다. 농사뿐만 아니라 식량과 관련된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기후 문제가 중요하다. 적당히 물이 찬 논에 모내기하고, 뜨거운 햇살에 잘 자랄 때 풀이 나지 않게 한 번씩 관리해주고, 가을바람 불어오면 추수하면서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는 게 농업인만의 일은 아니다. 농산물은 농업인의 수입이기도 하지만, 그 농산물로 만들어지는 가공식품과 다른 업계에까지 하나로 연결된 것을 생각하면, 날씨 문제는 단순히 날씨의 문제가 아닌 게 된다. 이쯤 되니 이 책이 새롭게 보인다. 날씨와 음악, 서정적인 문장이 들려올 거로 생각했던 건 착각이고, 조금 더 관심 두어야 할 분야가 되었다.


몇 년 전에 겪었던 혹한을 떠올린다. 지독하게도 추웠던 날, 기차를 타려고 역 플랫폼에 서 있는데, 어떤 어르신의 말이 생생하다. 8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이런 추위는 처음 겪어본다고. 대기의 방향이 바뀌어 시베리아 고기압이 세력을 키워 한반도를 지나가면서 추위가 찾아온다. 예전에 들었던 말인데, 삼한사온. 기억하는 이가 있을까? ‘온대저기압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한반도 주변을 지나갈 때, 저기압이 접근하기까지 나흘 정도는 남풍 계열의 바람이 불면서 기온이 조금 오르다가, 저기압이 통과하면 북풍을 타고 한기가 내려오면서 사흘 정도 기온이 떨어지는 현상이라고.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이라고 배우고 겪으면서 자랐는데, 어느새 대한민국의 사계절은 거의 두 계절로 변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변했다. 지독한 더위 아니면 추위. 그사이에 낀 봄과 가을은 월급이 통장을 찍고 지나가듯 잠깐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는 느낌이다.


날씨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저자의 시선을 그대로 옮길 수 없어서 유감이다. 하나하나 다 적자니, 날씨의 변화를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다만, 우리가 느끼는 기후변화의 문제를 저자도 인식하고 전달하려 애쓰는 모습이 확인된다. 계절을 클래식 음악의 악장과 같다고 느꼈던 거에 비하면, 가속하는 지구온난화는 악장의 길이가 바뀌고 있음을 설명한다. 그래서 저자는 짧은 1악장의 봄이나 점점 길어지는 2악장의 여름처럼, 다양한 변주곡으로 날씨를 이야기한다. 날씨의 음악이 얼마나 더 다양하게 들려올까 기대되면서도 걱정되는 건, 지금 지구의 기후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기는 건 어느 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날씨로 전하려는 음악을 듣는 건 즐거웠지만, 그 음악이 자연의 현상에서 들려오는 거로 생각하면 내가 되돌려줄 음악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요즘의 폭우가 아름다운 음악을 망가뜨린 것처럼 여겨지는 건 나뿐인 걸까.


저자의 이력 때문인지 이 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의 지식과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테고, 여러 가지 기후변화를 지켜본 이가 전문적인 시선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게다가, 날씨를 예측하고 전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껴진다. 특히나 어느 순간부터 예측에서 벗어나는 기후 문제가 등장하면서 정확한 날씨 전달은 더 어려워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혹시라도 일기예보가 빗나가더라도 구라청이라는 오해보다 그 어려움을 먼저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아직도 우리 삶은 날씨에 따라 일과가 달라지기도 하고, 마음의 리듬이 달라지기도 한다. 무엇을 하든 날씨를 살피며 하루를 계획하기도 하니까. 며칠 전에도 엄마는 이 더위가 힘들다며 달력을 들추었다. 처서가 언제냐며, 이 폭염이 좀 사그라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하루를 견디고 계셨다. 개인의 생활과 우리나라의 많은 것을 살피는 날씨, 크게는 이 지구상에서 연주되는 날씨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날씨나 기후의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다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흐름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조금 더 깊게 집중해서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는 살면서 겪는 다양한 날씨와 우리 살아가는 기후 환경을 거의 다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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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물이 샌다. ㅠㅠ

오전에 발코니 바닥으로 물 고이는 거 보고 멘붕 왔다.

어떡하지?


에어컨 호스 밑으로 물이 고여 있고, 닦아도 계속 물이 고이고 있어서

에어컨 틀지도 않았는데 물이 샌다고 AS 불렀다.

다음주로 예약했는데, 다행히 기사님이 중간에 뜬 시간이 있어서 와서 봐준다고.

와서 보더니 에어컨의 문제가 아니라, 발코니 창 아래로 바닥에서 물이 새고 있더라.

5분도 안 되는 사이에 출장비 2만원 나갔다.


오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누수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혹시라도 아랫집에 문제 생길까봐 심장이 막 뛴다.


3년 전에 집 수리하고 들어왔는데, 그때 담당했던 곳에 전화했더니

자기가 그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회사 서비스센터에 연락하라고 서비스 접수 링크 알려준다.

일단 접수하고 물 새는 곳을 계속 살펴봐도, 나는 당췌 뭐가 뭔지 모르겠다.

샷시 시공의 문제가 아니라, 혹시라도 타일 업자 새로 알아보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또 생긴다.


다시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해서 문의했다.

발코니 물이 새고 있는데, 한번 살펴봐 달라고.

관리실 과장님이 오셔서 보더니,

샷시는 잘 시공되었는데, 

비가 많이 와서 샷시 하단 부분으로 물이 못 나가고 안으로 새고 있는 거 아닌가 말씀하신다.

10년 AS 해준다고 해서, 아는 샷시 업자 있는데도 일부러 돈 더주고 큰 회사에서 했는데,

이럴 때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된다. 일단 와서 봐주기는 할 거 아닌가. 

그래도 지금 바로 해결 안 되니까 머릿속에 걱정만 한 가득.


혹시 외부 크랙이나 바닥 타일 시공 문제는 아닐까 관리실 과장님께 여쭤보니,

그건 아닌 듯하다는 말씀. 일단 믿고 샷시 서비스 기다려야 할 듯하다.

그나마, 확장된 거실이 아니어서 이럴 때는 얼마나 다행인지...

처음 공사할 때 거실 넓게 쓰고 싶어서 확장 고민을 살짝 했는데, 

차라리 분리된 공간이어서 낫다. 정신 건강에 좋은 게 가장 좋은 거...


계속 비 소식이 있고, 그냥 비도 아니고 미친듯이 내리고,

계속 안전안내문자 오고 있어서 더 무섭고,

이 지역은 오늘도 호우경보, 내일은 더 심한 경보가 내릴 듯한데, 어쩌고 있어야 하는지...


나, 잠 못 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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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7-14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년 전에 물 들이차서 코킹인가를 다시했는데 샤시 하신지 얼마 안 되셨으면...as받으셔야 겠네요... 물 생기는 대로 잘 닦거나 우수관쪽으로 돌리셔서 아랫세대 누수 안 되는 것도 신경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거 변상이 더 크고 골치 아픈 거 같더라구요...) 무사한 여름 되시길...

구단씨 2023-07-14 16:33   좋아요 1 | URL
네. ㅠㅠ
저희집 물 새는 건 저희집 문제니까 골치 아파도 해결하면 되는데,
아랫집과 연결되어 문제 생길까봐 걱정되는 게 더 심해요.
관리실에서는 아랫집 영향은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지금은 뭐든 불안하네요.

적당히 내리는 비가 아니면, 반갑지 않네요. 에휴.
님도 여름 무사히 지내시길요...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 -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통해 예민함을 나만의 능력으로
전홍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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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하다는 한마디로 그 감정을 다 설명할 수 없어서 막막할 때가 있다. 지금 내가 보이는 이 태도를 설명해야 하는데, 참 어렵기만 하다. 나는 예민함이 성격의 한 종류로 여겼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거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예민함에 관해 정신의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설명한다. 불안, 우울, 분노, 트라우마 등 4가지로 나누어 사례를 들려준다.


저자는 전작에서 매우 예민한 사람의 특징을 보여주고, 그 예민함을 잘 극복한 사람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예민함의 정신의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사례를 들려주면서, 예민함에 관련한 여러 감정의 근원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 예민함을 나만의 능력으로 바꿔보는 실천법을 제시하며,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예민함이 장점으로 작용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니. 쉽게 상상이 되지 않지만, 기대되기도 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를 제거할 수 없다면, 이를 극복하고 싶어지는 건 당연하다. 특히 예민함은 대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보니, 나 역시 이 성향을 더 잘 파악하고 장점으로 만드는 방법이 많이 궁금하기도 하다.


특히 사람마다 생각하는 속도의 차이가 있다라는 저자의 말을 많이 생각했다. 아마도 예민함은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 속도의 영향은 더 크다. 저자가 소개하는 사례들 속에서 이 문제가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어떤 상사는 성질이 너무 급해서 내 마음을 쪼그라들게 한다. 나의 마음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좋은 평가를 받고자 애쓰던 사람에게 찾아온 위기는 또 어떤가. 갑자기 사망한 남편의 빈자리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갑자기 찾아온 무기력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다가 소리를 지르거나 온몸으로 폭력을 표현하는 남자의 사연은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불안, 우울, 분노, 트라우마 4가지 내용이 다 특별했다. 읽으면서 나는 이 중에서 어디에 해당하는 예민함인가 찾아보기 바빴다. 감정 기복이 심하지는 않지만, 특히 소리에 민감해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그 소리에 반응하기도 한다. 여러 명이 대화하면서 유독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과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 나와 다른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에 무수히 많은데, 그에 관해 격한 반응을 보이면 감당하기 어렵다. 상대의 반응을 받아들이지 못해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한다. 아마 정식으로 진료를 받는다면 어떤 병명이 나올까 두렵기도 하다. 불안과 우울은 어떤 면에서 같은 근원을 가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닮았기도 했다. 감정의 불안은 점점 우울을 같이 불러오기도 하고, 이는 타인을 의식하는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완화할 수도 있다.


많이 놀라웠던 건 트라우마였다. 혀가 아픈 영주 씨의 이야기는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한 심한 우울증신체화 장애’, ‘감정표현 불능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녀가 느끼던 육체적 통증은 어딜 가고, 이름마저 낯선 이 병명들 앞에서 혹시 더 깊은 우울증을 겪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사연을 듣고 보니 영주 씨에게는 큰아들을 잃은 사건이 있었고, 이 충격으로 영주 씨는 마치 아들이 계속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에 이른다. 남편은 이런 영주 씨를 보다 못해 아들의 죽음을 아내 탓으로 돌렸다. 그때부터 영주 씨는 아들을 야단쳤던 자기 혀에 죄책감을 느끼고 혀의 마비 증상이 시작됐다. 이 상태에서 중요한 건 영주 씨의 혀를 마비시키고 통증을 느끼게 한 원인을 제거하는 거였다. 아들의 죽음이 영주 씨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고, 남편과 함께 소통하며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하는 게 치료의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예민함은 그 사람의 단점이 되는 것일까? 아니다. 그저 성향의 하나로 인정하고, 예민함이 나의 일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예민함으로 나를 피폐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예민함을 잘 활용해 능력으로 만드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예민한 사람들이 보는 세상이 고성능 카메라와 마이크를 장착하고 매우 복잡한 프로그램이 많이 설치된 컴퓨터와 같다고 말한다. 다른 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도 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기 때문에, 기발한 생각들도 빛을 발한다고 말이다. 특히 섬세함을 요구하는 부분에서 그 역량을 뽐내기도 한다. 자기가 느끼는 예민한 만큼이나 타인의 감정을 더 잘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는 것을 싫어해서 많은 사람과 관계 맺고 함께 해야 하는 조직 생활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 남들이 나에게 했을 때 싫은 행동을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하기 싫어지는 것과 같다. 자기의 예민함을 잘 조절한다면 삶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가장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부분이 예민함을 장점으로 만드는 방법이었다.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하다고, 트라우마의 원인을 찾아 극복하고, 좋은 생활 리듬을 만들어 무력감에 빠지지 않게, 자꾸만 파고드는 나쁜 기억을 끊어내는 방법 등으로 일상생활에서 혼자 해결 가능한 시도로 전환을 시킨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 타인의 예민성을 이해함으로써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와 타인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의 심각성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민함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무슨 걱정인지도 모를 걱정부터 하면서 이 책을 펼쳐 들었다. 나의 예민함에 도움이 될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다짐은 어디로 가고, 이 책과 관계없는 불안함이 먼저 밀려왔던 거다. 내일부터 시작될 운전면허 시험은 어떻게 할지, 학원 등록해야 하는데 원하는 수업이 없어서 어떻게 상담받아야 할지, 다음 주부터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자꾸 비가 와서 거슬린다는 등 그냥 주어진 대로 하면 되는 일을 걱정부터 한다. 피해갈 수도 없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어떤 상황에서도 불안이 먼저 나에게 달려든다. 오늘 하루 이 책에서 들려주는 나를 안심하게 하는 말들을 되새겨보고 있다. 하나씩 차근차근하면 된다고, 잘못해서 누가 뭐라고 할까 봐 걱정하기보다는 차분하게 하면 된다고. 이제는 예민하다는 성향에 불시로 끼어드는 불안이 문제의 시작이라는 걸 알고 나니, 나를 더 차분하게 하는 생각들을 찾게 된다.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일 아침 컨디션을 위해서라도, 이제 잠을 좀 자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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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누수 일지
김신회 지음 / 여름사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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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집에 물이 새기 시작했다.’

이 한 마디로 이미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 , . 누군가 내는 소음은 아니었다. 살펴보니 갑자기 거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 이미 젖어서 내려앉은 천장 벽지와 바닥은 적신 물 때문에 받쳐놓은 그릇. 한밤중에 발견한 게 문제라면 문제다. 나는 이미 이 상황에서 저자에게 빙의되었다. 잠을 잘 수 없는 건 당연했고,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하느라 머리카락이 줄줄 빠지기 시작했다.


밤이라는 시간이 문제다. 이걸 발견했을 때 바로 문제 해결의 시작을 달려야 하는데, 이 늦은 시간에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것부터 문제였고, 밤새 물 떨어지는 걸 보고 그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한다는 게 스트레스였다. 아파트 같은 경우 천장에서 물이 샐 때 거의 윗집의 문제인데, 윗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이미 아는 상황에서 말도 섞고 싶지 않을 때 더 큰 문제가 나를 감싸 안고 있었다. 저자 역시 윗집이 이사 왔을 때부터 안 좋은 대면을 했고, 그러다가 누수까지 발생했으니 더 껄끄러웠을 테다. , 저절로 상상된다. 안 그래도 엘리베이터에서조차 마주치기 싫은 사람과 이 민감한 문제로 얼굴 보고 대화해야 한다는 게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도대체 얘네는 뭘 했기에, 어디에서 이렇게 물이 줄줄 떨어지게 하는 거야!


고요한 일상에 일어난 이 일은 단순히 누수라는, 물이 새니까 안 새게 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누수를 발견한 순간부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고, 이게 해결될 때까지 몸과 마음이 불편해야 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짜증이 난다. 어쩌랴, 이미 벌어진 일. 일단 해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저자의 위층은 이미 이사 오기 전부터 갈등을 일으켰던 관계라 원만한 대화가 되지 않았다. 우리 집 천장이 샌다고 말했는데도, ‘그래서 뭐?’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과 좋은 대화가 될 리 없다. 적어도, 우리 집 때문에 다른 집에 피해가 생겼다면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먼저 아닌가. ‘그래, 네가 하는 말 알아들었어. 그러니까 가 봐.’ 뭐 이런 분위기로 말하는 상대와 계속 마주하는 사람이 있을까? 피해자는, 피곤하다. 원래대로 되기 전까지 집에서 매일 그 피해를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게 스트레스다. 빨리 마무리 짓고 이 문제를 더 생각할 일이 없어야 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이걸 내가 해야 하는 게 아니라, 피해를 준 이가 해결해줘야 하는 거다. 그래, 이게 문제였구나. 내가 아니라 누군가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더 짜증이 나는 거였구나.


,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저자의 집에 생긴 누수가 해결되긴 했지만, 그 해결 과정에서 겪었던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인간의 심리도 알게 되었고, 원만하게 해결이 되지 않을 때 어떤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도 배웠다. 그 시간 동안 자기를 발견하는 의미도 있었다. 난데없는 누수가 일상을, 삶을 확 바꿔놓은 거다.


몇 년 전부터 SNS에서 자주 보이는 말이 있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조금 어른이 된다고 믿는다. 알고 싶지 않았던 걸 알게 될 때, 이제껏 모르고 살았던 걸 해야만 하는 시간들이 쌓여 연륜이 된다. 어쩌면 이번에야 비로소 나는 어른이 되는 중인지도 모른다. (105페이지)


골치가 아픈 일에 일상이 평온하지 못했을 텐데, 성난 파도가 밀려와 물을 한 바가지 퍼붓고 가듯 다 젖어있던 순간에 새로운 생각이 파고든다. 글을 쓰는 이가 글을 쓰지 못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사건은 발생했다. 일상의 위기는 쓰지 못하던 날들에 불을 붙인다. 아마 분노의 순간을 가라앉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나중에 더 크게 당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매일 시끄러웠던 누수의 과정을 기록한다. 마음이 급해 두서없이 써 내려가도 그걸 확인할 사이도 없었다.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는 모든 상황과 사람에게 화가 났을 테니까. 하지만 윗집과의 누수 분쟁을 해결하는 동안 깨닫는다. 윗집을 탓하던 모든 순간을 돌이켜본다. 내가 꼭 좋은 이웃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내가 정말 피해자인가, 하는 물음은 그동안 미처 보지 못한 나를 마주하게 한다.


누수로 시작된 이야기는,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는 일로 변하면서, 오늘을 사는 한 사람의 또 다른 일상이야기가 된다. 글을 쓰는 게 좋아서 업으로 삼고 먹고 살아왔는데 쓰지 못하던 시간을 힘들어했던 순간은 잊힌 듯하다. 신경 쓰이는 누수 문제에 전투적인 자세로 변하고 자판을 두드리게 된 게, 오히려 글 쓰는 일상으로 전환된 거다. 누수 문제를 대하는 자세가 일상의 모든 순간을 불러온다. 혼자 사는 여성 가구여서 과거에 겪었던 일이 생각나면서, 이럴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까지 생각이 퍼진다. 반려견을 돌보며 살기에 누수 문제는 저자 혼자만을 위한 일이 아닌 게 된다. 말 그대로, 집에 누수가 되면 인생이 누수된다는 저자의 외침이 글 곳곳에 묻어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생이 물에 젖고 축 처져 있을 것 같은데, 피식 웃음이 나는 건 왜냔 말이지.


저자가 아니라 읽는 내가 전투적으로 되어버렸다. 성격 탓인지 속이 좁아서 그런지, 만약 내가 사는 집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좋은 말 안 나간다. 그래, 나 예민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자체부터 처리 과정, 마무리되었어도 가라앉지 않을 짜증이 내 마음에 가득하다. 혼자 사는 단독주택에 누수가 생겼어도,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해결해야 할 주인이었어도 피곤하긴 마찬가지인데, 누군가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저자가 내용증명까지 보내던 순간에는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 피해자의 피폐해진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가해자에게 더는 대화할 의지가 생기지 않으니, 서로 얼굴 보면서 언짢은 말 오고 갈 필요 없이, 그래, 법으로 해결하자, 싶었다.


아니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런지, 그렇게 외치던 법만으로는 마음까지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곳곳에서 끼어든 생각들은 그동안의 를 마주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돈 때문에 힘들었는데, 돈이 생기고 집을 마련하고 보니 이 변화에 안심하지 못하는 인간이, ‘였던 거다. 집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생기는 걱정을 놓지 못하고 살게 된 것을, 살면서 점점 선택의 순간이 많아지는 것을, 그때마다 얼마나 잘 선택(?)하고 옳게만 살아왔는지 되짚는다.


나이가 들수록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다. 경험과 시간이 쌓일수록 직관에 따르는 게 뒤탈이 없다. ‘해야 할 것 같은 것이 이성적인 판단이라면, ‘마음의 소리는 직관적인 선택이다. 이성적인 판단의 기준이 세상이라면, 직관적인 선택의 기준은 ’. 내가 이제껏 쌓아온 경험과 시간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 일은 고집이나 뒤처짐이 아니다. 살면서 몸과 마음으로 만들어온 과학을 존중하는 것이다. (178페이지)


앞으로 사는 동안, 지금보다 더 많은 문제를 마주할 거고 그때마다 해결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 모르면 모른 채로 살아가는 인생도 좋긴 하다만, 뭔가를 알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저자의 이야기로 새삼 확인한다. 항상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나. 그게 아니니까 고민이 생기고 갈등이 일어나는 거겠지. 그때마다 또 생각하게 될 테다. 이게 맞는 건지, 이 마음을 향해 가는 게 옳은 건지.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좋은 건지,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애써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선택을 나무라지는 말자. 누구의 선택이든, 왜 그랬냐고 핀잔을 주지도 말자고. 당신의 선택은 언제나 옳았다고, 당신은 언제나 피해자였다고, 당신의 인생은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싶어서 말이다. 어떤 순간은 내가 선택해서일 수 있고, 어떤 인생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놓여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얼마나 나이를 더 먹고 많은 일을 겪어야 어른이 되는 건지, 인생의 매 순간 다 잘하는 걸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이 의문은 지금보다 어렸을 적에도 있었고, 지금도 가끔 나를 멍 때리게 하는 생각인데, 이제 확실히 알았다. 내가 앞으로 더 많은 일을 어떤 식으로 겪는다고 해도, 언제나 다 잘하는인간이 될 수 없을 거고, 항상 옳은선택만 하지도 못할 거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튀어나와 나의 인생에 누수를 만드는지 모른다는 거다. 몰라도 되는 삶은 안락할 수 있지만, 그게 꼭 만족스럽고 부러운 인생이 아닐 수도 있다. 일상이 너무 순조로운 것도 마냥 좋은 인생은 아닐 것만 같은 이 이상한 느낌은 뭔지. 아버지의 병원 생활 몇 년은 다음에 이어지던 엄마의 병원 생활에 당황하지 않게 해줬다. 몇 년의 병원 생활과 그로 인해 처리해야 했던 많은 일을 발품 팔아가며 해결하다 보니, 처리 담당자보다 더 많이 알게 되어 오히려 내가 그 직원에게 알려주는 웃픈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시골집의 오래된 땅 문제로 골치가 아팠는데, 그 문제 역시 여기저기 확인하며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들이 나의 인생 경험치를 ‘+1’ 해줬다.


오래 묵었거나 갑자기든 튀어나와 일상을 지치게 했던 이런저런 일들, 피해갈 수도 없고 마주쳐야만 했던 일을 또 그렇게 해결하면서 하나씩 건너가다 보니, 적어도 이제 같은 일에는 더 당황하지 않게 되겠지 싶다. 마음을 그렇게 먹으니 짜증은 가라앉고, 순서대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더라. 그래, 그거면 됐지. 그렇게 하는 것 말고는 방법도 없다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더 있겠어 하는 마음. ‘몰랐던 걸 하나하나 깨치며 단단해지는 어른’(105페이지)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금도 겪고 있다. 이러다가는 죽기 전에는 어른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어쩌겠나, 어른이 되겠다고 계속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면 또 그렇게 살아가야지 뭐.


뭐든 의심부터 하고 나의 피로함을 앞세워 날을 세웠던 것을 누그러뜨리게 하는 이야기에 내 일상이 얼마나 각박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세상을, 사람을 조금은 더 믿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살아가고 싶어지게 하는 글이었다. ‘누수 때문에 죽을 것 같았는데, 누수 때문에 결국 살았다라는 작가의 마음을, 딱 알겠어.



#나의누수일지 #김신회 #여름사람 ##책추천 #문학 #에세이 #한국문학

#본격누수체험기 #나도알고싶지않았습니다 #어른은어떻게되는가 #죽기전에는어른안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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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독서력을 찾아야 할 건 청소년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거의 1년 반을 책 제대로 읽지 못하고 살았다. 뭐 그전에도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독서력이긴 했다만, 그것보다 더 안 읽고 있다는 게 괜한 고민이 되는 요즘이다. 날씨도 덥고, 다른 생각에 빠져 책표지만 바라본 지 오래다. 저자 김경민의 다른 책을 읽어본 적 있기에, 이 책도 아마 '책을 부르는 책'이 아닐까 생각하긴 했다. 솔직히 이 책도 나보다는 조카 때문에 펼쳐 들었던 책인데, 이건 뭐 나이 구분 없이 가까이해야 할 독서 지도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 읽기 숙제를 내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교 수업과 숙제에 학원 수업과 숙제까지, 솔직히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계속 책 읽기를 놓지 않아야 하는 건, 숙제인 것도 있지만 책 읽기 하나로 파생하는 장점들이 많다는 걸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전직 국어 선생인 엄마와 청소년 아이가 같이 책을 읽고 기록한 독서담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공부를 1등 하는 것보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마는, 어디 그게 현실에서 마냥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희한하게 조카들이나 주변의 아이들을 지켜보면, 거의 모든 과목에서 독서력이 바탕이 되는 걸 느꼈다. 모든 과목의 시험에서 문제를 제대로 읽고 파악하면 답을 절반은 맞은 셈이 되었다. 서술형 문제에서도 이미 아는 답을 어떻게 잘 표현하며 쓰느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기도 했다. 다른 방식으로 글쓰기를 배울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배워야 한다면 책도 재밌게 읽고 다른 이의 글에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쓰고 표현하는 것까지 습득할 방법이라면, 책 읽기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만. (? 이게 아닌가? 책 읽기가 재미없으니 시험과 상관없다고? 뭐 그렇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저자는 게임에 빠진 아들에게 게임 시간을 늘려준다는 당근을 내밀며 같이 책을 읽고 대화하고 기록하기에 이른다. 전에도 아들은 책을 곧잘 읽는 아이였지만, 그놈의 코로나 19’가 문제다. , 이 얘기하니까 정말 숨이 막힐 정도인데, 이 감염병은 대한민국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라는 방식의 새로운 수업 형태를 선사했고, 집중력 저하는 물론이고 집에서 수업 듣다 보니 긴장감이 거의 사라졌다. 주변의 아이들이 이 방식의 수업을 들으면서 흐트러진 것도 있다. 부모는 직장에서 일하고, 아이들은 집에서 온라인 수업 듣는다고 세수도 안 한 얼굴로 모니터 앞에 앉아서(바지는 잠옷 차림), 선생님이 틀어준 온라인 영상을 보면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던 시간. ‘코로나 19’ 시기를 잘 활용해서 오히려 성적이 오른 아이도 있다던데, 내 주변의 아이 대부분은 이 시기를 보낸 모습은 비슷했다. 온라인 수업 모니터 아래로 수업 듣는 척 게임 하는 건 비일비재했다. 저자의 아이도 이 시기에 게임 하는 시간이 늘었으니, 단순히 잔소리하고 다그치는 건 먹히는 방법이 아니었으리라. 그래서 게임 시간 늘려준다는 달콤한 속삭임에 서로가 덜 피곤한 시간을 만들었다.


책을 읽고 싶은데 도대체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땐 누가 추천해주는 목록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독서 재미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총 24편을 소개하고 있는데, 문학 12, 인문 사회 과학 각 4편씩 구성되어 있다. 책의 초반부에 적힌 목록을 보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중에서 나는 몇 권을 읽었던가 하는 거였다. (다들 나랑 비슷할 걸?) 기세등등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목록 세어보다가 말았다. ~의 안 읽었기에 할 말은 사라지고, 이 책 속의 목록은 청소년이 아니라 나의 목록이 되어버렸다. 이 책에서 어떤 책을 소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목록을 살펴보면 된다. 굳이 어떤 책으로 어떤 얘기를 했다고까지 말하기보다, 나는 이 책이 써진 이유에 더 집중하고 싶어졌다. 소개된 24권의 목록은 누구나 아는 고전도 있고, 기발한 발명의 느낌을 주는 과학도 있다. 사회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책도 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는 책도 있다. 그 안에서 발견해야 할 기본적인 게 문해력이 아닐까 싶은데, 이 책의 소개 글에서 언급했던 심각했던 바로 그 문제인 기초 문해력을 쌓는 방법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모르는 문장이나 단어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때 어느 정도의 분위기로 단어의 뜻을 파악하기도 하는데, 그마저도 안 되면 뜻을 찾아보면서 알아간다. 나는 아이들이 그 과정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 읽기를 권장한다. 단순히 숙제여서, 시험에 나오니까 읽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책을 읽고 내용을 아는 것 이상을 남기는 게 책 읽기의 좋은 효과 중 하나라고 말이다.


개인별로 환경의 차이는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코로나 19 상황이 장기간 지속하면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디지털 매체 의존이 높아진 것도 사실.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에서 멀어지는 위험에 빠진 거다. 몰라도 괜찮지만, 알아가는 과정을 놓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책 읽기 숙제에 고통스러워하는 조카들을 봐도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 것 같다. 줄임말 표현, 모바일 검색에 영상으로 확인하는 일, 이게 옳은 정보인지 확인하는 것조차 생략한 채로 습득하는 게 익숙해진 것을 눈앞에서 보고 나니 무서울 정도였다. 책 읽기 숙제를 받으면 검색으로 줄거리 확인부터 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이 책을 직접 읽지 않았으니 그 안의 메시지를 자기가 찾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니 점점 책 읽기가 어려워지고 싫고,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말할 수 없어지는 것. 이건 누구 탓도 아니다. 그저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렸으니, 이걸 자기만의 방식으로 되돌려 놓을 수밖에 없다. 저자가 아이에게 보상처럼 내 건 게임 시간 추가와의 거래도 괜찮은 방법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아이가 책 읽기 습관을 되찾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며 엄마와의 공동 작업도 완성했으니까 말이다.


단순히 책 읽기에서 멈추지 않고, 읽고 난 후의 독서 토론 같은 시간을 만들어주는 과정이 좋았던 책이다. 읽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 느낌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줬다. 내가 읽은 느낌과 다른 이의 생각이 같은 지점에서는 공감하고, 다른 지점에서는 다양한 생각을 흡수하는 기회였으니까. 생각의 가지를 뻗는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그렇다면 책 읽기 시작을 위한 방법도 중요하다. 문해력 욕심에 무조건 유명한 고전이나 어렵고 두꺼운 책을 고를 이유는 없다. 어차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어렵다고 생각되면 첫 페이지에서부터 덮어두기 쉬우므로, 자기 수준과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읽기 시작하면서 저절로 배우는 게 독후감이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질문이 생겨나는 과정의 중요성을 독후감을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면서, 이 과정에서 생각의 확장을 불러온다. 이 질문들은 개인의 사소한 일상부터 과거의 경험, 미래의 방향까지 고민하게 한다. 청소년기에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공부가 우선이 되는 일상이 맞는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게 ?’ 필요한지 알게 된다면 공부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 온라인에서 본 얘기가 잊히지 않는다. 어느 부모가 초등 아이와 심청전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단다. 심청이가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했다는 그 기본적인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고. 그러면서 아이가 하는 말은, 그 얘기를 왜 자기에게 하는 거냐고, 심청이가 누구냐고, 그 애가 자길 안다고 하더냐고. 실제인지 웃으라고 만든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얘기가 낯설지 않은 건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거기에 최근에 매체에서 들었던 이야기 하나 더.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질문이 유행처럼 이어진다고 한다. 어느 날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자기가 벌레로 변해 있다면 엄마(아빠)는 어떻게 하겠냐고 묻는 일.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부모는 선뜻 대답을 못 하기 일쑤였다고. 이 내용이 카프카의 변신이야기라는 건 너무 잘 안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내용, 이 질문이 왜 나왔는지 이해하지 못했겠지. 소설 변신속 가족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는데, 그 질문을 여기에서 다시 맞닥뜨리니 다시 들어도 어려운 질문이긴 하다. 어쨌거나, 아이는 이 질문으로 부모와의 대화가 시작될 것이고, 벌레로 변한 게 자기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어도 이 질문은 많은 답과 또 다른 질문을 만들 거라는 것을 알게 됐겠지.


책이 단순히 읽는다는 것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고민과 생각, 질문을 만들면서, 점점 더 넓은 시야를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일상의 소소한 시간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더 크게는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정하는 것까지 관여하고 고민하게 했으면 좋겠다. 덩달아 나도, 읽어야 할 목록이 늘어났다. 필독서처럼 보이는 이 책들을 거의 안 읽었다는 게 너무 익숙해서 이상해. ㅠㅠ







 

 

 


#책읽기는귀찮지만독서는해야하는너에게

#멋진 신세계 #파리대왕 #꽃들에게희망을 #필경사바틀비 #죽이고싶은아이 #한중록 

#피그말리온아이들 #키르케 #맥베스 #오이디푸스왕 #영원한유산 #구운몽 #정의를찾는소녀 

#죽음의수용소에서 #철학자와늑대 #논어,사람의길을열다 #팩트풀니스 #자본주의할래?사회주의할래

#잠깐애덤스미스씨,저녁은누가차려줬어요#선량한차별주의자 #과학이가르쳐준것들 #떨림과울림 

#다정한것이살아남는다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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