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독서력을 찾아야 할 건 청소년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거의 1년 반을 책 제대로 읽지 못하고 살았다. 뭐 그전에도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독서력이긴 했다만, 그것보다 더 안 읽고 있다는 게 괜한 고민이 되는 요즘이다. 날씨도 덥고, 다른 생각에 빠져 책표지만 바라본 지 오래다. 저자 김경민의 다른 책을 읽어본 적 있기에, 이 책도 아마 '책을 부르는 책'이 아닐까 생각하긴 했다. 솔직히 이 책도 나보다는 조카 때문에 펼쳐 들었던 책인데, 이건 뭐 나이 구분 없이 가까이해야 할 독서 지도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 읽기 숙제를 내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교 수업과 숙제에 학원 수업과 숙제까지, 솔직히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계속 책 읽기를 놓지 않아야 하는 건, 숙제인 것도 있지만 책 읽기 하나로 파생하는 장점들이 많다는 걸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전직 국어 선생인 엄마와 청소년 아이가 같이 책을 읽고 기록한 독서담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공부를 1등 하는 것보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마는, 어디 그게 현실에서 마냥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희한하게 조카들이나 주변의 아이들을 지켜보면, 거의 모든 과목에서 독서력이 바탕이 되는 걸 느꼈다. 모든 과목의 시험에서 문제를 제대로 읽고 파악하면 답을 절반은 맞은 셈이 되었다. 서술형 문제에서도 이미 아는 답을 어떻게 잘 표현하며 쓰느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기도 했다. 다른 방식으로 글쓰기를 배울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배워야 한다면 책도 재밌게 읽고 다른 이의 글에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쓰고 표현하는 것까지 습득할 방법이라면, 책 읽기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만. (? 이게 아닌가? 책 읽기가 재미없으니 시험과 상관없다고? 뭐 그렇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저자는 게임에 빠진 아들에게 게임 시간을 늘려준다는 당근을 내밀며 같이 책을 읽고 대화하고 기록하기에 이른다. 전에도 아들은 책을 곧잘 읽는 아이였지만, 그놈의 코로나 19’가 문제다. , 이 얘기하니까 정말 숨이 막힐 정도인데, 이 감염병은 대한민국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라는 방식의 새로운 수업 형태를 선사했고, 집중력 저하는 물론이고 집에서 수업 듣다 보니 긴장감이 거의 사라졌다. 주변의 아이들이 이 방식의 수업을 들으면서 흐트러진 것도 있다. 부모는 직장에서 일하고, 아이들은 집에서 온라인 수업 듣는다고 세수도 안 한 얼굴로 모니터 앞에 앉아서(바지는 잠옷 차림), 선생님이 틀어준 온라인 영상을 보면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던 시간. ‘코로나 19’ 시기를 잘 활용해서 오히려 성적이 오른 아이도 있다던데, 내 주변의 아이 대부분은 이 시기를 보낸 모습은 비슷했다. 온라인 수업 모니터 아래로 수업 듣는 척 게임 하는 건 비일비재했다. 저자의 아이도 이 시기에 게임 하는 시간이 늘었으니, 단순히 잔소리하고 다그치는 건 먹히는 방법이 아니었으리라. 그래서 게임 시간 늘려준다는 달콤한 속삭임에 서로가 덜 피곤한 시간을 만들었다.


책을 읽고 싶은데 도대체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땐 누가 추천해주는 목록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독서 재미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총 24편을 소개하고 있는데, 문학 12, 인문 사회 과학 각 4편씩 구성되어 있다. 책의 초반부에 적힌 목록을 보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중에서 나는 몇 권을 읽었던가 하는 거였다. (다들 나랑 비슷할 걸?) 기세등등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목록 세어보다가 말았다. ~의 안 읽었기에 할 말은 사라지고, 이 책 속의 목록은 청소년이 아니라 나의 목록이 되어버렸다. 이 책에서 어떤 책을 소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목록을 살펴보면 된다. 굳이 어떤 책으로 어떤 얘기를 했다고까지 말하기보다, 나는 이 책이 써진 이유에 더 집중하고 싶어졌다. 소개된 24권의 목록은 누구나 아는 고전도 있고, 기발한 발명의 느낌을 주는 과학도 있다. 사회 문제를 고민하게 하는 책도 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는 책도 있다. 그 안에서 발견해야 할 기본적인 게 문해력이 아닐까 싶은데, 이 책의 소개 글에서 언급했던 심각했던 바로 그 문제인 기초 문해력을 쌓는 방법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모르는 문장이나 단어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때 어느 정도의 분위기로 단어의 뜻을 파악하기도 하는데, 그마저도 안 되면 뜻을 찾아보면서 알아간다. 나는 아이들이 그 과정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 읽기를 권장한다. 단순히 숙제여서, 시험에 나오니까 읽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책을 읽고 내용을 아는 것 이상을 남기는 게 책 읽기의 좋은 효과 중 하나라고 말이다.


개인별로 환경의 차이는 있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코로나 19 상황이 장기간 지속하면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디지털 매체 의존이 높아진 것도 사실.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에서 멀어지는 위험에 빠진 거다. 몰라도 괜찮지만, 알아가는 과정을 놓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책 읽기 숙제에 고통스러워하는 조카들을 봐도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 것 같다. 줄임말 표현, 모바일 검색에 영상으로 확인하는 일, 이게 옳은 정보인지 확인하는 것조차 생략한 채로 습득하는 게 익숙해진 것을 눈앞에서 보고 나니 무서울 정도였다. 책 읽기 숙제를 받으면 검색으로 줄거리 확인부터 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이 책을 직접 읽지 않았으니 그 안의 메시지를 자기가 찾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니 점점 책 읽기가 어려워지고 싫고,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말할 수 없어지는 것. 이건 누구 탓도 아니다. 그저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렸으니, 이걸 자기만의 방식으로 되돌려 놓을 수밖에 없다. 저자가 아이에게 보상처럼 내 건 게임 시간 추가와의 거래도 괜찮은 방법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아이가 책 읽기 습관을 되찾았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며 엄마와의 공동 작업도 완성했으니까 말이다.


단순히 책 읽기에서 멈추지 않고, 읽고 난 후의 독서 토론 같은 시간을 만들어주는 과정이 좋았던 책이다. 읽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 느낌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줬다. 내가 읽은 느낌과 다른 이의 생각이 같은 지점에서는 공감하고, 다른 지점에서는 다양한 생각을 흡수하는 기회였으니까. 생각의 가지를 뻗는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그렇다면 책 읽기 시작을 위한 방법도 중요하다. 문해력 욕심에 무조건 유명한 고전이나 어렵고 두꺼운 책을 고를 이유는 없다. 어차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어렵다고 생각되면 첫 페이지에서부터 덮어두기 쉬우므로, 자기 수준과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읽기 시작하면서 저절로 배우는 게 독후감이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질문이 생겨나는 과정의 중요성을 독후감을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면서, 이 과정에서 생각의 확장을 불러온다. 이 질문들은 개인의 사소한 일상부터 과거의 경험, 미래의 방향까지 고민하게 한다. 청소년기에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공부가 우선이 되는 일상이 맞는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게 ?’ 필요한지 알게 된다면 공부가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얼마 전에 온라인에서 본 얘기가 잊히지 않는다. 어느 부모가 초등 아이와 심청전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단다. 심청이가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했다는 그 기본적인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고. 그러면서 아이가 하는 말은, 그 얘기를 왜 자기에게 하는 거냐고, 심청이가 누구냐고, 그 애가 자길 안다고 하더냐고. 실제인지 웃으라고 만든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얘기가 낯설지 않은 건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거기에 최근에 매체에서 들었던 이야기 하나 더.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질문이 유행처럼 이어진다고 한다. 어느 날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자기가 벌레로 변해 있다면 엄마(아빠)는 어떻게 하겠냐고 묻는 일.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부모는 선뜻 대답을 못 하기 일쑤였다고. 이 내용이 카프카의 변신이야기라는 건 너무 잘 안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내용, 이 질문이 왜 나왔는지 이해하지 못했겠지. 소설 변신속 가족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는데, 그 질문을 여기에서 다시 맞닥뜨리니 다시 들어도 어려운 질문이긴 하다. 어쨌거나, 아이는 이 질문으로 부모와의 대화가 시작될 것이고, 벌레로 변한 게 자기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어도 이 질문은 많은 답과 또 다른 질문을 만들 거라는 것을 알게 됐겠지.


책이 단순히 읽는다는 것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고민과 생각, 질문을 만들면서, 점점 더 넓은 시야를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일상의 소소한 시간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더 크게는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정하는 것까지 관여하고 고민하게 했으면 좋겠다. 덩달아 나도, 읽어야 할 목록이 늘어났다. 필독서처럼 보이는 이 책들을 거의 안 읽었다는 게 너무 익숙해서 이상해. ㅠㅠ







 

 

 


#책읽기는귀찮지만독서는해야하는너에게

#멋진 신세계 #파리대왕 #꽃들에게희망을 #필경사바틀비 #죽이고싶은아이 #한중록 

#피그말리온아이들 #키르케 #맥베스 #오이디푸스왕 #영원한유산 #구운몽 #정의를찾는소녀 

#죽음의수용소에서 #철학자와늑대 #논어,사람의길을열다 #팩트풀니스 #자본주의할래?사회주의할래

#잠깐애덤스미스씨,저녁은누가차려줬어요#선량한차별주의자 #과학이가르쳐준것들 #떨림과울림 

#다정한것이살아남는다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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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생각 10 - 기후위기 탈출로 가는 작지만 놀라운 실천들
박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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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일 오늘은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 환경과 자연보호를 위해 스페인의 국제 환경단체 가이아가 제안해 만들어진 날이라고 한다. 오늘 하루의 시간을 돌이켜보니, 다행히(?) 일회용 봉투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건, 일회용 비닐봉투보다 더한 낭비를 한 것 같아서 말이다. 주방 뒤쪽에 분리수거를 위해 공간을 마련해두었는데, 큰 비닐에 대충 담아두다 보니 지저분해 보이던 걸 참고 있었다. 나름 정리한다고 선택한 게, 분리수거함을 주문하는 거였다. 이것도 나중에 필요 없어지면 버리게 되고, 또 쓰레기가 될 텐데. 쓰레기를 버리겠다고 쓰레기가 될 물건을 사버렸다. 이런 반복이 지구를 죽이는 일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왜 자꾸 까먹고 반복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미 이 책의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우리의 지구가 망가지고 무너져가는 이 상황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해야 할 일을 말한다. , 솔직히 말하면 몰라서 못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알면서도 귀찮아서 안 하는 경우가 많고, 또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해서 환경문제 해결에 더디게 다가가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기발한생각에 더 눈길이 간다. 이미 우리가 아는 방법으로 환경문제 해결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더 나은, 더 기발한 그 생각에 집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저자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것도 있고 기발한 다짐으로 약속을 지키는 방법도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고, 보이는 것보다 마음을 더 보게 하는 선물 포장에, 물건 재활용은 습관이 되어야 한다. 오래된 도시의 방치가 아니라 재생에 관심 두고, 생태 도시와 생태 환경 만들기에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다. 전자폐기물 늘리기에 힘쓰지 말고, 공정무역 등장의 의미를 새기고, 친환경 경제로 가치 소비에 참여해야 한다. 탄소 중립 사회에 더 관심 두고 우리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게 당연한 과제였다. 듣고 보니 어려운 말은 아니다. 너무 많이 들어와서 귀에 익숙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더욱더 기발한 생각에 빠져들어야 하는 이유에 오늘 날씨가 증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루, 한 해가 다르게 더워지는 여름과 이런 추위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라웠던 한파를 기억한다. 혹은 이게 겨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 포근해서 한겨울에 벌레와 해충이 자주 보이던 때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뚜렷한 4계절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으니, 뭔가 많이 변했다는 건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러니 저자의 설명과 공동의 과제처럼 주어진 다짐이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소비 행동이, 귀찮음으로 생긴 습관이 우리의 지구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몇 번을 들어도 지나치지 않는다.


소개해준 여러 가지 현상과 방식이 다 중요하지만, 두 번째 장에서 들려준 포장지 없는 가게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천연 수세미나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 같은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알맹 상점. 개인 용기를 가져와서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담아서 사가는 시스템이 좋았다. 번거롭긴 하지만 쓰레기를 줄이는 확실한 방법이다. 요즘에 음식 포장하러 갈 때 일부러 집에 있는 밀폐 용기를 가져갈 때가 있다. 처음에는 포장 용기 값을 따로 받는 매장이어서 돈을 아끼려고 가지고 다녔는데, 그렇게 개인 포장 용기 가지고 다니니 내가 분리수거할 때 버리는 쓰레기도 줄어서 편해졌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음식 포장하러 갈 때 포장 용기 챙기는 일이 번거로워서 그냥 가면 그 후에 생기는 쓰레기는 앞에서 편했던 내 몸을 뒤에 불편하게 하는 일이 되니 똑같은 거 아닌가. 게다가 쓰레기가 생기니 지구가 병드는 속도에 내가 한몫하는 게 된다. 별 것 아닌데, 이게 습관이 된다면 일거양득이 되는 건 당연한 결과인 듯하다.


특히 포장지 없는 가게 이야기에서 더 반성하게 되는 건,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자는 틀에 박힌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가 보내는 경고를 그대로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코로나 19 영향으로 음식 배달과 택배의 증가로, 쓰레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바이러스 전파를 막겠다고 쓰레기를 늘린 셈이다. 그래서 더 각성하게 된다. 제로웨이스트숍이 익숙해지고, 뉴질랜드 기업의 식용 그릇(먹을 수 있는 컵)이나 독일의 리컵시스템 등은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물론 가게로 포장지를 되돌려주는 방식이 생기기까지 했다. 우유 팩을 재활용해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만들고, 폭탄을 재활용하여 액세서리도 만든다. 생각하지도 못한 것에서 우리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생활용품들이 많아서 놀랐다. 찾아보고 생각하고 노력하면 되는 일을 왜 이렇게 안 하고, 모른 척하고 살아왔는지 반성의 시간이 참, 깊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환경문제들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는 걸, 이제는 잘 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도 안다. 일상의 불편함이 지구를 살리는 아이디어로 변한다는 게 이 책이 전하는 놀라움이다. 사실 아는 것도 있었지만 몰랐던 것도 많았기에, 이 책에서 소개해주는 기업이나 나라의 방법들이 신기하기도 했다. 미니멀리즘으로 지구의 쓰레기를 줄이는 참신한 방법들,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친환경 소비 생활, 재활용으로 쓰레기가 예술이 되는 놀라움과 상상력, 늘어나는 전자폐기물에서 광물을 뽑아내 재활용하는 방법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방치된 산업시설을 도시재생으로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생태여행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배우게 한다. 세계 환경문제를 우리 공동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걸 설명하면서, 일단 무엇이든 시도해 보는 게 우리의 과제임을 말한다.


며칠 전에는 비 오는 날씨에 꿉꿉함을 견디지 못해서 신상 제습기를 주문했다. 몇 년 동안 고민하다가 이제 겨우 주문했으니 충동 구매가 아니라고 정당화하면서, 몇 시간 틀어놨다고 방안이 뽀송뽀송해지는 걸 경험하고 신세계에 빠진 듯했다. 이걸 왜 이제야 샀을까 하며 신났었는데, 이 책 읽다 보니 진짜 내가 편해지자고 샀던 이런 제품들이 지구를 얼마나 힘들게 하고 있을까 고민하게 되더라. 비가 오고 날씨 흐리고 겨울의 흐린 날씨에 잘 사용할 것 같아서 좋더라만, 생각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옷장을 열고 입을 옷이 없다고 말하는 건 이제 금지어가 됐고, 예쁜 그릇에 눈길이 가면 그냥 남의 것 보는 것으로 만족, 일회용 물티슈가 아니라 걸레를 빨아서 청소하는, 작은 습관들이 나를 살린다는 교훈을 오늘 머릿속에 새겨 넣는다. 내가 조금 불편하면 되는 일이 지구를 구한다.


#지구를살리는기발한생각10 #박경화 #한겨레출판 #지구를살리는일 #환경살리기

#리사이클 #재활용 #생태도시 #미니멀라이프 #탄소중립 #포장지없는가게 #환경문제

##책추천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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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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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제들은 요양병원에 모셨어. 매달 돈 걷어 병원비 내고 시간표 짜서 주말마다 들르고. 간병이란 게 그렇잖아. 해도 해도 티도 안 나고. 누가 혼자 독박 쓰다간 화병 나고 말지. 화병뿐이야? 집안이 다 작살나는데. 그래서 우린 딱 엔분의 일로 해.”

예순 살 반장이 똑 부러지게 말했다. 명주는 협동이 잘되는 반장 형제들이 부러웠다.

말이 그렇지. 그렇게 할 수 있는 집이 몇이나 되겠어요. 다 자기들 먹고살기 힘들다고 부모고 형제고 외면하는 세상에.”

맞아. 병원비는 별도로 하고 하루 간병인 쓰는 것만도 10만 원, 11만 원 하는데, 거기에 기저귓값 삼사십 들지, 잘 봐달라고 간병인한테 몇만 원씩 찔러줘야지. 웬만한 벌이로는 요양병원도 못 보내요.” (87페이지)


이 책을 읽다가 본문의 이 문장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가족을 돌보는 일, 그것도 부모를 돌보는 일이 당연하면서도 피하고 싶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몸도 힘들고 내 시간이 없고, 무엇보다 끝을 모를 일에 마음이 더 지쳐갔다. 사람이 뭔가를 할 때 결과를 기대하면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어떤 결과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도대체 어떤 결과를 기대해야 옳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도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게 있다. 내 몸이 그래도 좀 쉬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 꼬박꼬박 병원비가 나가고, 시간 내서 병원에 가봐야 하고, 환자가 아니라 돌보는 이들을 위한 간식도 들고 가고. 마음은 여전히 지친 상태였는데, 돈까지 들어가는 시간을 견디기 힘든 게, 어쩌면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다. 주변에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이들도 있었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는 친구네는 집안에 가스레인지 사용도 안 하고 있던 정도였다. 가족을 돌본다는 건 이런 불편함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여겼다가 금방 후회했다. 머지않은 시간에 그 돌봄의 역할을 내가 하고 있었으니까. 오래된 아파트에 살면서 치매에 걸린 친정엄마를 돌보는 50대의 명주와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린 20대 청년 준성의 현재에 미래를 생각하는 건 사치였다. 그런데도 다가올 내일을 기다리고 싶은 건, 오늘의 절망이 절망으로만 남아 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준성이 치매 걸린 아버지를 돌보며 야간에 대리운전하고,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물리치료 자격증을 준비하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이대로 머물러 있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아버지를 돌보는 게 준성의 몫이라면, 더 안정된 환경에서 아버지와 준성 둘 모두가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만드는 게 좋을 테니까.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오늘을 살았다. 문제는 돈이었다.


언제나 돈이 필요했다. 먹고 자는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아픈 부모를 돌보는 일에도 돈을 필수인데, 돌봄을 하고 있으면 돈을 누가 버나?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최소한의 일상을 유지하는데 연금이 있었다. 명주에게는 엄마의 연금이 엄마의 병원비며 이들의 생활비가 되었고, 준성에게는 대리운전과 아버지의 연금이 생활비를 채워줬다. 외출에서 돌아온 명주가 죽은 엄마를 발견했을 때, 간병의 고단함과 함께 그녀의 삶도 더 유지할 이유를 찾지 못했으니 끝내려고 했다.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녀는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죽은 엄마를 미라로 만들고, 엄마의 공식적인 삶을 끝내지 않은 채로 연금을 받는다. 화상 때문에 통증을 이기지 못하는 그녀가 일하기는 어려웠으니까. 이 비밀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싶었던 그때, 옆집 청년 준성에게도 명주에게 일어났던 것과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명주와 준성, 이들은 같은 경험과 고통에 공감할 수밖에 없던 관계이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자기 인생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이들이었다.


언젠가 뉴스에서도 봤던 이야기가 이 소설에 등장한다. 부모가 죽은 것을 숨긴 채로 부모의 연금을 꾸준히 받아왔던 자녀의 이야기 말이다. 글쎄, 그 뉴스의 주인공과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얼마나 같은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이들이 부모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부모의 연금을 계속 받아야만 했던 순간의 선택이 이해가 된다고 해야 하나. 모든 건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고, 돌봄이 남겨진 누군가의 몫이 되었던 것처럼, 그렇게 남겨진 이가 살아가고자 발버둥을 치던 모습이 눈에 그려질 정도다. 간병은 누구도 예상하지 않은 순간에 시작되고, 끝이 없는 터널을 통과하는 시간이 되고, 그 터널의 끝에서 마주하는 게 행복만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돌봄의 대상이 되었던 이가 죽거나, 이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생계를 위해 불법적인 선택을 하거나, 오랜 시간 빚에 시달리다가 인생이 끝나거나. , 그런 결말이 저절로 그려지는 게, 나만의 생각은 아닐 테다.


현대 사회의 문제를 개인에게만 부담하는 구조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한꺼번에 바꾸지 못하는 것도 모르지 않기에 답답하게 읽히기도 했다. 그렇게 두 주인공에게 한없이 감정을 이입하며 읽다가도, 심장 쫄깃해지는 긴장감 또한 놓치지 않게 그려내는 소설이기도 하다. 명주가 관을 사다가 엄마의 시신을 숨기기 시작했을 때, 한겨울에도 에어컨을 틀어 공기를 건조하게 하고 수시로 방을 소독하며 시신의 부패를 늦추려는 노력을 볼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누군가는 알아채지 않을까? 생활 흔적이 없으면 의심하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생기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들이 있다. 명주도 몰랐던 엄마의 남자친구 진천할아버지, 오랜 세월 연락도 없이 살다가 엄마의 인생을 갉아먹으려 나타난 딸 은진. 수시로 엄마의 안부를 묻는 진천할아버지는 호의가 가득했지만, 명주의 딸 은진은 이 소설의 빌런이다. 어쨌거나 명주에게 이들은 이 순간 예상하지 않았던 복병들이다. 방법은 하나, 방안에 둔 엄마의 시신을 이제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만 한다.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이 어땠으리라는 건 짐작되기에, 명주와 준성의 행동과 선택에 누가 돌을 던지며 욕할 수 있을까 싶다만.


눈이 쏟아지던 고속도로를 지나는 이들의 내일은 어떨까. 겨울이 이렇게 지나고 있으니 좀 괜찮아지지는 않을까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그다지 밝아 보이지만은 않지만, 그런대로 또 살아가면서 오늘 행복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까? 명주와 준성이 연대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간병도 각자의 몫이고, 남겨진 이의 삶도 다 자기가 꾸려나가야 하니까. 그런데도 이들이 느끼는 공포나 죄책감이 더는 이들을 감싸지 않기를 소망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오늘 즐거웠으면 좋겠다. 간병을 단순하게 돌보는 일로 여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되는 이 소설에 많은 이가 관심 두기를.



#우리가겨울을지나온방식 #문미순 #나무옆의자 #세계문학상 #소설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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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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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 있지만 정작 읽어본 적이 없는 유명한 이야기 중의 하나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었다. 항상 다짐하면서도 정작 읽을 시간이 없다고 밀어두었던 책을 이제야 읽었다. 그레고르 잠자는 갑자기 왜 곤충으로 변했는지, 그의 변신 후 가족들은 또 어떻게 변신했는지 궁금했던 것도 컸지만,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그 질문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아이들이 자기 부모에게, 자기가 아침에 일어났는데 곤충으로 변해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한 번쯤은 묻는다고 한다. 아마 이 책의 내용에서 시작된 질문인 듯하다. 갑자기 내 아이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는데, 순간 말문이 막히고 버벅거리지 않을까 싶더라.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 사랑을 가득 담아 가족이란 이름의 따뜻함만을 말해야 할지 몰라서 말이다. 내 가족이 곤충으로 변했을 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의 한계를, 이미 한 번쯤은 작게나마 경험한 것 같아서 그 순간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자신의 몸이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게 된다. (후반부에 하녀의 말로 판단하자면, 아마도 말똥구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옆으로 돌아눕는 것도 힘들다. 병가를 내고 하루 쉬지 그러냐고 생각하던 찰나, 출장영업사원으로 일하는 그는 그날 아침에 시간 맞춰 기차를 타야 했다. 월급쟁이의 비애가 이런 건가. 아프거나 사정이 생겨도 마음대로 쉬지도 못하고, 몇 분의 지각에도 밥줄이 흔들릴 수 있는 현실이여.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가 방에서 나오지 않자 식구들은 돌아가면서 그의 방문을 두드린다. 그가 잠긴 문을 열지 않고 알겠다며 대답만 하자, 식구들은 그 대답(?)을 듣고 돌아간다. 잠시 후, 지배인이 그의 집을 찾아온다. 그가 기차를 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왔겠지. 잠긴 방문 사이로 그가 아무리 말을 해도 그의 가족들과 지배인은 알아듣지 못하고, 어쩌다 열린 방문을 사이에 두고 모두가 얼어붙는다. 인간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상하게 생긴 벌레 같은 존재가 있을 뿐이었다. 놀란 지배인은 뒷걸음질 치면서 그의 집을 떠났고, 가족들은 이 사태에 대해 놀랄 사이도 없이 적응해야만 했다.


그가 벌레의 외모로 변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열심히 말한다고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가족의 말을 들을 수 있지만, 가족들에게 그가 하는 말은 그저 동물의 소리로 들렸다. 소통이 안 되는 건 당연했다. 그는 힘껏 그의 사정, 마음,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받고 싶었으나, 가족들은 변한 그의 존재를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기만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가족의 수입원인 그가 일을 못 하게 되었으니, 당장 이들의 생계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그도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벌레의 몸으로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기 방 안에서 열심히 걷고 매달리고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그의 방문은 처음 그가 벌레로 변한 날부터 꽉 닫혀 있었다. 그가 방 밖으로 나와 할 수 있는 게 없었을뿐더러, 가족들은 아직도 그의 변한 외모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동생이 그의 방안으로 그의 음식을 갖다 주거나, 그의 방을 청소해주는 게 전부였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쉽다. 그가 돈을 벌지 못하니 다른 가족이 생계에 뛰어들면 된다. 하지만 이들이 일하지 못하는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 아버지는 과거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던 은행의 제복을 입은 채로 앉아 있기만 하고, 어머니는 천식으로 건강 때문에 일을 못 하고, 여동생은 뭐, 그냥 처음부터 일을 안 해서? 어쨌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던 그는 가족의 돌봄이 필요한 대상이 되었다. 거기에 누가 볼까 두렵고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존재로 남았을 뿐이고. 누군가를 돌보는 일도 갑작스럽게 생계를 걱정하게 되는 것도, 지치고 막막할 테다. 이 과정에서 왜 이 말이 생각났는지 모르겠지만, ‘오래된 병 앞에 효자 없다라는.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힘들지만 누군가는 해야 했고, 좋게든 나쁘게든 언젠가는 끝이 있을 테니 지금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치는 건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이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 일인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게 내 인생에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인지 답을 찾고 싶기도 했다.


처음 이 소설에서 가족들이 벌레로 변한 그를 돌보는 상황 자체가 혼란스러웠지만,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언젠가 그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동안 가족을 돌봐왔던 수고를 생각해서라도 그를 돌봐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의 여동생이 더 참을 수 없다고, 그를 내쫓아야 한다고 외치던 순간, 알았다. 그 어느 것도 당연한 건 없다고,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은 해야 하는 일이면서도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물론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이 변하기 전부터 그의 가족이 보여준 행태는 너무 이기적이기도 했다. 가족의 빚을 그 혼자 감당하는 게 맞는 건가 싶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가 벌어온 돈으로 생활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건가 싶어서. 그의 모습이 변하고, 그가 더는 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니, 이 가족은 변한다. 소파에 앉아 늘어진 뱃살을 보여주기만 했던 아버지는 외모를 말끔하게 갖추고 외출을 한다. 아프다던 어머니는 하숙인을 챙길 정도가 된다. 착하게만 보였던 여동생은 오빠를 챙긴다는 이유로 이 가족의 꼭대기에 군림하려고 한다. 이 가족이 이렇게 활동적인 사람들이었나 싶을 정도로,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음에도 그의 등에 빨대 꽂고 살아왔던 건가.


이 가족에게 그레고리 잠자의 존재는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이었을 텐데, 그 역할을 잃자 그의 존재도 사라져간다.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로까지 추락한다. 여동생에게는 혐오의 대상으로, 어머니에게는 안쓰러운 아들이지만 부담스러움으로, 아버지에게는 이 집안에서 별 쓸모없어 사과를 막 던져도 되는 벌레쯤으로. 도대체 인간은 어떻게 인정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그 역할과 능력을 떠나서 기본적으로 가족 안에서 존중받는 건 당연한 게 아니었나 싶었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당연함은 사라졌다. 가족 관계에서도 분명하게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이 있고, 그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필요한 기본 예의였다. 부모가 아이를 낳았으니 키우는 게 당연한 책임이고 역할인 것처럼, 자녀나 다른 구성원에게도 각자의 책임과 역할이 있다. 모두가 함께 자기 자리에서 상호협조했을 때 가족의 이름은 힘을 가진다. 일방적으로 누구 한 사람의 희생이 당연하지 않은 게, 맞는 거였다. 새삼스럽게도, 그걸 이렇게 다시 알게 된다.


별것 아닌 사과 한 알을 맞고 죽어가는 그를 보면서, 인간의 삶이 이렇게 허무할 수 있나 싶어서 우울해지기까지 하더라. 살면서 직업이란 생계와 연결되기도 하지만, 자기 존재를 그리는 일이기도 하다. 변신하고, 직업을 잃고, 자기 기능이 멈춰버린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잃기 쉬웠다. 가족의 생활비를 벌고 있을 때 그의 존재는 인정받지만, 그의 빈자리는 곧 채워지고 그의 존재 의미는 희미해져 버리거나 사라진다. 이 상황이 그레고르 잠자만의 일이 되는 걸까? 바로 1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로 살아가는 게 우리 현실인데, 매 순간 불확실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엇을 장담하며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삶의 모든 순간 우리는 불안을 함께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 불안은 카프카의 변신과 같은 상황을 만들지도 모른다. 이때의 기회를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 어떤 것도 완벽하게 확신하며 살아갈 수 없는 게 삶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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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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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으로 들어가는 큰길에는 짓다가 만 건물이 있다. 도로변에 있어서 못 보고 지나칠 수 없는 위치인데, 이렇게 방치된 상태가 10년이 넘었다. 좋은 자리여서, 건물이 들어서기만 하면 뭘 해도 손해는 안 볼 거로 생각했다. 동네 사람들 누구도 이 건물이 이 상태로 머물러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건물은 1층과 2층 사이의, 철근이 위험하게 솟아 있는 회색의 콘크리트 상태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치 누가 와서 미완성의 그림을 완성해주길 기다리는 것처럼.


저자는 이 책으로 모든 버려진 장소에 남겨진 이야기를 전한다. 말 그대로 한때 화려함을 자랑했으나 이제는 누구도 찾지 않는 장소.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아무 위험요소가 없어도 그냥 겁부터 나게 하는 말이다. 황량하고 스산한, 사람도 없고 건물도 사라져가는, 지금 여기에 사는 이가 없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대로 보여주는 장소가 됐다. 여기에서 소개된 장소들은 어쩌다가 지금의 악명을 남기게 된 걸까. 저물어가는 곳이 되고, 마지막에는 누구도 찾지 않는 장소가 되어간 과정을 들려주면서 꽤 쓸모 있는 교훈을 전한다. 인간이 만든 이 흑역사 속에서 어떤 교훈을 발견할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읽게 된다.


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장마다 다른 이유에서 시작된 장소들의 역사를 들려준다. 예정된 운명이 이루어진 곳, 세상의 변화에서 끝내 도태되어버린 곳, 시간의 무게에 잠식되어버린 곳, 찬란했던 영광의 잔해로 남은 곳, 그리고 오래된 이야기의 마침표가 된 곳. 그런 곳들이 모여 인간 역사의 쓸쓸함을 더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많은 고아를 돌봤던 뷔위카다 보육원은 튀르키예와 그리스의 싸움으로 문을 닫아버렸다. 그 많은 아이는 어디로 가야 했을까. 1964년 보육원이 문을 닫고 아무도 돌보지 않은 그곳은 방치를 거듭하며 시간의 흔적으로 남았지만, 흉물이라 불리며 역사의 한 장면으로 박제되었다.



영국의 해외영토 몬트세렛은 비틀즈의 프로듀서가 만든 AIR 스튜디오가 생겨나면서 많은 가수가 찾아오곤 했다. 어느 순간 유명한 곳이 되었지만, 최악의 허리케인 휴고가 몬트세렛을 덮쳤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로 도시의 회복은 더뎠고, 더 끔찍한 악몽이 시작되었다. 휴화산 수프리에르힐스가 폭발했고, 녹아 흐르는 용암은 섬을 집어삼켰다. 거듭된 화산 폭발은 이곳을 금지구역으로 만들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곳은 무너져가기 마련, 위험한 곳으로의 사람 발길은 끊겼고 폐허가 되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 정책으로 나라 밖으로 나가기 어려웠던 일본인은, 60년 전만 해도 하와이에 가고 싶어도 쉽게 갈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의 패한 여파로 일본 내에서는 전후 경제 지원을 위해 현금이 국내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었고, 외국 여행과 관광을 억제했다고 한다. 그에 하와이 대신으로 하치조지마는 일본의 대표 관광지가 되었고, 하치조로열 호텔은 화려함을 자랑하며 일본 내 관광객을 흡수했다. 하지만 일본이 부유해지면서 해외여행은 쉽고 저렴해지면서, 일본인들은 더는 하와이를 닮은하치조지마를 향하지 않았다. ‘진짜 하와이를 갈 수 있었으니까. 그 후로 1990년대 일본의 거품 경제가 붕괴하고 경기 침체가 계속될 때도 이름을 바꿔가며 영업해나갔던 하치조로열 호텔은 2006년 문을 닫았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정원의 나뭇가지가 제멋대로 자라나면서 나뭇잎이 진입로의 표지판을 가렸고, 덩굴이 건물을 뒤덮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자연이 이 호텔의 폐업안내판이 되어버린 듯하다.


어느 여행작가의 글로 관심 두었던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 넓게 뻥 뚫린 시원함으로 기억했는데, 그곳에는 열차들의 무덤이 있다. 영국이 초석 등 천연자원 운송 목적으로 철도를 세우고 우유니에 환승역을 건설했지만, 인공 질산염의 등장은 이 자원들의 수요를 줄게 했다. 기차역이 폐기되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은 자연스럽게(?) 소외되고 잊히기 마련이다. 녹슨 증기기관과 객차가 모여 앉아 우유니 기차 폐기장을 만들었다. 한때 번영의 상징이 되고 희망을 주었을 그곳이 지금은 쇠락을 보여주는 곳이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예전에 어떤 어른의 왕년에~’로 시작하는 말을 정말 듣기 싫어했는데, 어떤 건물, 장소, 사람 등 모든 것이 한때의 화려함과 자신만만함을 뒤로하고 오늘의 씁쓸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이 살짝 읽히기도 한다. 어느 것이든 누구든, 소멸해가고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정말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가족과 수치는 어떤 관계일까 하는 의문을 잠깐 가졌던 장면이 우간다의 아캄펜섬의 이야기다. 처녀성을 잃지 않은 딸이 결혼 시장의 우수한 상품으로 매겨지는 가능했던 시대. 그러니 결혼 전 처녀성을 잃었거나 아이까지 가진 여성이라면 얼마나 큰 비난을 받았을지 가늠하고도 남는다. 아캄펜섬은 그런 이유로 가족과 사회에서 밀려난 여성이 갇히는 곳이었다. 이 섬을 나가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가난해서 아내를 얻지 못하는 남자들이 구세주로 나타나거나. 이 관행은 19세기에 아프리카에 선교단이 들어오면서 금지되었다고는 하나, 아캄펜섬 유배 관습은 20세기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아캄펜섬에서 유배되었던 여성이 오늘날에도 생존해 있으면서 그 증언을 생생하게 이어간다고 하니, 산 증인이 된 거다. 그런데 해마다 분요니 호수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이 섬이 곧 물 아래로 사라질 위험에 빠졌다고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젊은 여성을 사라지게 했으니 쌤통이라고 해야 할지, 역사의 증거가 된 곳이 사라진다고 하니 잊힐까 봐 걱정해야 할지 말이다.


폐허가 된 많은 도시, 장소, 건물이 정말 폐허로 그 생을 마감해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세상의 변화로 물 흐르듯 그 쓰임이 다해버렸다는 게 안타깝고, 한 시대의 중심이 되었던 사실들이 역사에 그대로 박혀있다는 것에 존재를 유지해야 하는 건 아닐까. 자연스럽게 쓸모없어졌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남아서 쓸모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세월의 덧없음을 지켜본 것 같고,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빚어낸 결과가 이렇구나 인정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미래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것은 고민하게 하는 이야기인 듯하다.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산업화나 환경의 파괴보다 무분별한 발전을 앞세우는 방식들이, 지금 우리가 숨 쉬는 이 시간을 폐허로 만드는 건 아닐까 염려해야 할 때이다. 흑역사라기보다는 씁쓸한 역사의 한 장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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