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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지능 - 미래의 속도를 따라잡는 힘
정두희 지음 / 청림출판 / 2017년 11월
평점 :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존의 모든 일자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인공지능이 대체하며, 인간보다 나은 지성과 연산 능력, 정확성, 신뢰도로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꽤 우세하죠.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인간은 그 절대다수가 고유의 존엄을 인정 못 받던 노예제, 봉건제 사회에서조차도, 인간이 행하는 노동과 기여가 없으면 사회가 기능할 수 없는 체제를 일구고 살아 왔습니다. 한정된 지표면에 인구가 너무 많이 사는지도 모르며, 이 때문에 드디어 절대 다수는 무능력, 비효율성 등의 이유로 도태해 버리고, 창의적이거나 선대로부터 큰 부를 물려받아 대규모의 생산 시설을 장악할 수 있는 소수만 살아남아, 너른 공간과 부를 향유하며 깨끗한 환경에서 대를 이어 생존할 수도 있습니다. 이 역시 인류가 여태 경험만 못했을 뿐, 앞으로 그런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처럼 낯선 미래가 펼쳐지기보다, 지금까지의 패턴과 더 닮은 방식으로, 창의력과 혁신 의지가 더 뛰어난 이들이 보상을 받아가며, 인공지능만을 부려서는 사회의 부가가치 창출과 문제 해결이 이뤄질 수 없는 영역에서 인간만의 고유한 기여를 이어나가며 생존, 진화를 이어간다고 보는 편이 더 무난하고 설득력 있는 미래 예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상당수가 도태되는 건 맞으나, 능력 유무에 불과하고 모조리 기계에 밀려나는 게 아니라, 자기 가려운 등 못 긁는 부분이 분명히 있듯, 고도로 효율화한 시스템 속에서 반드시 자체 해결이 어려운 버그를 집어 내고, 인간만의 비약적 상상력으로 단계의 혁신을 꾀하는 "기여"는 미래에도 여전히 대접받지 않겠냐는 전망 말이죠. 사실 지금도 "육체노동 기여"는 서서히 도태되어 가는 중입니다. 제가 몇 달 전에 리뷰한 <박스>라는 책에서도, 비능률적이고 심지어 부도적하기까지 했던 부두 노동 패턴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컨테이너 자동화 시스템이 차지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삼류, 사이비"인 정신 노동이나 사무직은 기계에 밀려나고, 진짜 창의력 있고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는 분석가들만 조직 안에서 대접받는다는 뜻입니다.
기술 지능(TQ)란, 암기 지능이나 단순 계산 지능이 아닌, "기술"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갖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관점에서 세상을 재설계하거나, 기술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세상에 여태 없던 상품, 서비스"를 창조해 내는 지능을 말합니다. 예술가의 창조성과도 유사하지만, 그 수단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기하급수적 패턴으로 진화하는 기술"이라는 게 차이점입니다. 화가가 색과 선과 면 구성의 조합으로 기발한 그림을 만들어내듯, 작곡가가 8도의 음정으로 영혼을 정화하는 듯 신이하고 고아한 음률을 창조하듯, "기술지능"이 뛰어난 이는 갖가지 기술을 창의적으로 결합하여 보통 사람이 생각도 못 하던 도구를 만들고, 기업을 조직하며, 사람들이 그 수요를 채 깨닫지도 못하던 상품(쉽게 말하면 스마트폰이라든가)을 제시하여, 없던 시장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일론 머스크를 드는데, 물론 가장 대표적인 "기술 지능 천재"이긴 합니다만, 우리 독자들도, "아 그럼 그 사람도 이런 데 끼겠네" 싶은 여러 인물들이 떠오를 겁니다.
지난시대에는 국지적 재능, 지능이 뛰어난 이들이 제한된 영역에서 업적을 남기고 부와 명성을 쌓았습니다. 크게 성공한 사업가들은 꼭 자신이 뛰어난 공학자라든가 남다른 학문적 소양이 있어서 성공한 게 아니라, 때로는 뻔뻔스러운 사기, 무력 탈취, 정치적 협잡술로 거대한 부를 움켜쥔 이들도 많았을 겁니다. 헌데 미래에는, 앞서 말한 대로 기술 지능이라는 특별한 재능, 적성을 발전시킨 이라야, 자아 실현도 하고 거대한 부(富)를 획득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시대에는 부분적 지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저런 전근대적 패턴의 사업가에게 고용, 종속되어 부분적 과실을 분배 받으며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 "기술 지능"을 남달리 발전시킨 이라면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자신의 계좌에만 차곡차곡 쌓아, 재능의 과실을 자신만이 오롯이 맛볼 수 있을 겁니다. 또, 방대한 인공지능 서버만 잔뜩 구축해 놓고 그에 대한 소유권을 대대로 물려받은 소수만 풍요를 누리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시스템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갖추고("기술지능"의 일부입니다), 어디서건 반드시 버그와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보완, 개선, 향상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야 사회적 지위와 부를 장악할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과거에는 노동 자본이 부를 창출했다. 일한 만큼 돈을 벌었고, 노동자가 많은(=노동자를 많이 고용한) 회사가 더 많은 수익을 거뒀다." 실제로 어떤 기업의 사세를 규정할 때, "종업원 OOO만 명을 고용한 회사"라는 설명이, 매출액 몇백억, 순이익 몇십억 같은 지표와 동렬에서 취급되었습니다. 지금 구글 같은 회사가 그 고용한 종업원 수효로 평가받지는 않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제안한 "법칙", 소수 20이 전체 80의 부를 차지한다는 원리는, 이제 "거듭제곱의 수익률이 세상을 지배하는(p31:6 등 이 책 여러 군데) 국면에서 더욱 심화되어, 극단적으로는 1:99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기술은 동시다발적으로 발전합니다. 어느 시대에나 그랬습니다만 지금은 그 양상이 특히나 복합적, 다면적, 총체적입니다. 이 기술 발전상이 폭발적이라서 언젠가는 불꽃 같은 상호 작용, 상승 국면에 접어들어 대 도약을 이루리라는 점은 이미 레이 커즈와일 같은 이가 지적했습니다. 저자는, 아직도 그 폭발성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현재에조차 이처럼 기술 진보의 템포를 따라가기가 벅찬데, 앞으로 거듭제곱의 법칙이 본격 현실화하는 세상에서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럼 저자가 말하는 "기술 지능"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다음의 다섯 가지 요소를 꼽고, 이어지는 여섯 챕터들에서 구체적으로 예를 들며 각각의 팩터를 독자에게 납득시킵니다.
1) 감지의 영역
2) 해석의 영역
3) 내재화 영역
4) 융합의 영역
5) 증폭의 영역
어쩌면 요즘 각광받는, 인공지능(만)이 갖춘(혹은, 그렇다고 하는) 미덕이나 장점과도 통합니다. 작금의 현실에서 혁신은 인공지능이 이끌어갈 전망인데, 사람의 재능, 적성, "지능" 역시 그 구조를 배우고, 나아가 이를 선도하는 모습이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지"는 보이지 않는 걸 찾아내는 능력입니다. 이런 성공적인 기업은 과거의 패턴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정도가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축적되는 정보에 의존하여 의사를 결정합니다. 에어비앤비는 세계적인 호텔 체인 "포시즌즈"보다 압도적인 성장세를 기록하는 중인데, 저자는 "비로 이 순간에도 유저들이 올리고 표현하는 욕구, 정보가 기하급수적으로 쌓이고", 이 기업의 핵심 자산은 바로 이에 기반하는 구조이니, 기하급수적으로 시장의 과실을 쓸어담는 미래의 승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정당하고 유의미한 신호와 노이즈를 구별하는 능력이야말로, 감지 영역의 핵심입니다.
신호가 감지되어도 올바른 해석이 뒤따라주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전통적인 마케팅론에서 강조하던 포지셔닝 역시 "해석"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현상으로부터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은, "기술지능"의 5요소 중 가장 중요할 뿐 아니라, 나머지 네 요소가 제 기능을 발휘하게 돕기까지 한다고 저자는 단언합니다.
"내재화"는 내 것으로 만드는 능력입니다. 독자로서 제 생각은, 이 내재화야말로, 족보 보고 적당히 남 흉내나 내는 삼류 기술자들과, 진정한 창조자를 구분하게 결정 짓는 팩터라고 생각합니다. 매뉴얼이나 교과서를 수시로 커닝하며,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비슷한 부분을 참고나 해야 수습이 가능한 사람은, 이 내재화가 전혀 이뤄지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런 건 흉내내기에 불과하지, 참된 적성이나 능력, 지능으로 승화되지 못했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뭘 근거도 없이 우기는 건 잘하는데, 나도 우기고 남도 우기니 결국 목소리 큰 사람(혹은 제정신을 잃고 난장판을 만드는 사람)이 이기는 낙후된 판에선 무슨 건전한 혁신이 있을 수가 없죠. 저자는 인공지능의 경우, 알고리즘은 시간이 지날수록 학습 능력이 좋아지므로, 이를 선점하는 자가 시장을 파레토적으로 지배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내재화가 못 된 지성은 알고리즘을 못 만들고, 알고리즘 하나가 시장 하나를 만드는 세상에서 이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융합의 미덕은 이미 혁신의 아이콘인 잡스가 세계를 향해 선보인 바 있습니다. 헌데 작금의 "융합"은, 다양한 기업들에 의해 더 섬세한 방식으로 구현되며, 이 과정에서 자신만이 뽐낼 수 있는 섬세한 개성이 드러나는 융합이 또 대세를 탑니다. 융합은 여기저기서 훔쳐 누더기처럼 이어붙이는 표절, 구걸, 사취가 아니라, 그 자체로 혁신과 창조라 부를 만한 또하나의 정신 작용입니다.
융합, 결합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이어진 모든 섹터는 시너지 효과를 내어야 하며, 부분의 합보다 커야만 합니다. 이렇게 폭발적인 증폭, 사이즈 업을 이루려면, 모든 걸 걸고 판에 뛰어들어 베팅을 하는 결단의 순간이 필요한데, 이런 요소는 사실 전통적인 기업가 정신에서 아주 핵심덕인 것으로 간주되던 자질입니다.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로컬 재벌을, 글로벌 콘글러머레이트로 키워낸 이건희 회장도 이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죠. 다만 종전의 "베팅"과 차이라면, 무모한 도박을 하라는 게 아니라, 현대에 충분히 유리하게 조성된 환경 중 하나인 "네트워크 효과"를 자기 것으로 선용하라는 게 저자의 주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