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스페셜 에디션 홀로그램 은장 양장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김수영 옮김, 변광배 해설 / 코너스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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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20세기 전반 프랑스의 요절한 문학가, 저널리스트, 비행사였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남긴 작품 중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새삼 어떤 소개가 필요없는 명작입니다.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지만 특히 한국에서도 세대를 초월하여 사랑 받고 널리 읽힙니다. 웬만한 큰 도시의 적당한 장소에서 이 <어린 왕자>의 어느 한 구절(번역)이 새겨진 걸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 코너스톤에서 나온 이 책은 예쁘게 홀로그램이 입혀졌으며 겉표지에 한글 인쇄 부분 없이 Le Petit Prince, Antoine de Saint-Exupery라고 작품명과 저자명이 불어로 적혔을 뿐이라서 마치 외국 책 같은 인상을 줍니다. 혹은, 책이 아니라 고급 팬시 상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생텍스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배경으로 입혀져 더욱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양은 보이는 거면 무엇이든 먹어버려. 가시가 있는 꽃도 먹지." "그럼 가시가 대체 무슨 소용이지?(p36)" 마치 동양 고사에서 모순(矛盾)의 고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순간순간을 비연속적으로 잘라놓고 보자면 아킬레우스도 거북을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아마 양은 가시가 돋힌 꽃을 먹을 수 없다가, 어느 순간부터 가시에도 대응할 수 있었을 겁니다. 거꾸로, 지금 이 순간에도 꽃은 양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기만 한 게 아니라, 양이 자신을 먹을 수 없는 방법을 연구하는 중입니다. 그리하여 아주 먼 훗날, 어느 특이점이 지나면, 양은 이제 그 꽃을 먹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다만 우리 인간이나, 저 꽃, 양 모두, 개체로서는 너무 짧은 삶을 살기에 그 결과를 볼 수 없습니다. 왕자에게 "나'는 이미 무언으로 그 답을 전했으며, 왕자도 답을 아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 가시가 소용이 없겠습니까. 지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은 존재 이유(raison d'etre)가 있습니다. 

꽃은 호랑이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지만 바람만은 두려워합니다. 어린왕자는 꽃을 사랑하면서도, 그 말과 행동에 괴리가 생기는 걸 보고 당혹했으며, 마침내 꽃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에로스는 자신을 의심한 프쉬케에게 "의심이 깃든 곳에 사랑도 더 이상 자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사랑하던 두 연인도, 여전히 사랑하지만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서로에게 더 머물 수 없을 때가 있으니 이런 모순(p46)이 또 없습니다. 자신이 꽃을 올바로 사랑하기에는 너무 어렸다며 왕자는 꽃의 말이 아니라 그 행동을 보고 선택했어야 했다고 자책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꽃은 거짓말쟁이는 아니지만 너무 약했고 그러면서도 허세가 강했습니다. 차라리 왕자에게 자신은 바람도 호랑이도 심지어 왕자도 무섭다고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왕자는 아마 그런 꽃을 바르게 파악하고 더 알맞은 방법으로 보살펴 주었을 것입니다. 

왕은 권위와 군림을 위해 사는 존재입니다. 더 이상 그의 명령을 받을 신민(subject)이 없어도 그는 끊임없이 명령을 내립니다. 왕자(물론 자신의 아들은 아닙니다)에게도 그는 터무니없는 명령을 내리는데, 사실 법무부장관은 누구를 심판하는 직위가 아닙니다. 어린 왕자가 이 점을 지적하자 그는 엉뚱하게도 "그럼 너 자신을 심판하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p56)"라고 합니다. 말이야 맞는 말입니다만 그게 이 왕자가 직분을 수행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하니 말입니다. "이치에 맞는 명령을 내리시면 바로 이행이 됩니다." 그래도 왕은 이치에 맞길 좇기보다, 자신의 명령 권위를 세우기 위해 애써 이치를 맞춥니다. 선후가 거꾸로 되었습니다. 

"작은 종이에 별들의 수를 적고, 그 종이를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근다는 뜻이지.(p68)" 사업가가 자신의 직분을 정의하는 방식입니다. 어린왕자는 그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듣고 잠시 술꾼의 논리(이 사람의 말도 상호순환모순이었죠)와 같다고 생각하더니, 이내 "매우 시적(詩的)"이라며 애써 좋은 방향으로 정리합니다.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무엇이 중요한 일인가. 어린왕자는 내가 하는 일이 상대한테 유익한지 아닌지가 "중요성"의 기준이라고 하는데, 여기 대해 사업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뻔뻔스럽게 상대의 말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왕자의 말에 답할 논리가 생각이 안 나 당황해서인 듯합니다. 그나마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위인입니다. 

예쁜 외관과 달리 생텍스의 <어린왕자>는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진 동화인지 그 묵직한 메시지가 독서를 마친 후에도 내내 독자의 가슴을 지긋이 누릅니다. 사람의 양심은, 초심은 그만큼이나 소중하며 우리가 먼 곳 먼 시간에 안타깝게 분실하고 온 소중한 자산이라서인기 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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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지옥을 건너는 70가지 방법 - 어제의 불행이 오늘의 행복이 되는 쇼펜하우어의 지혜
이동용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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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가 사거한지 근 180년이 가까워오는데도 여전히 그의 철학, 그의 지혜는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힐 뿐더러 한국에서는 꾸준히 베스트셀러의 반열에까지 오릅니다. 이 책은 독일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한 이동용 저자의 책인데, 우리의 기존 상식과 신조에 넉넉하게 호소도 하면서 동시에 미처 살피지 못했던 삶의 여러 국면에서 숨겨진 진실을 들춰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의 문이 닫히면 삶은 또하나의 문을 열어 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고, 이제 죽음에 임하면 모든 문들이 닫힌 듯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감동적인 일화를 인용하는데, 문호 괴테는 조금 다른 말을 했다고 합니다. "두번째 창도 열어라. 더 많은 빛이 들어올 수 있게" 여기서 저자는 두번째 창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새기지 말라고 합니다. 생이 끝나도 우리가 몰랐던 그 무엇이 있어 다른 문을 열어 줄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원래 괴테의 유언은 아주 짧은 "Licht, mehr Licht!"일 뿐이지만 친우 실러에게 임종 자리에서 빛이 더 들어오게끔 두번째 창을 열어 달라는 부탁을 한 게(den zweiten Fensterladen zu öffnen, damit mehr Licht in's Zimmer komme) 이렇게 윤색되어 전합니다. 물론 저자의 주장대로, 괴테 역시 그런 두번째 뜻을 담아 한 말이겠습니다. 

동물은 그저 동물적 직관에만 의존하지만(물론 단기적으로 그 정확도가 매우 높긴 합니다) 인간은 직관도 직관대로 가지면서 이성의 통제를 받습니다. 물론 비교 불가의 장점이 있어서 이렇게 진화했습니다만 때로 이 통제 때문에 "버젓이 두 눈을 뜨고서도 보지 못하는" 일이 간혹 발생합니다. 이 역시도 이성이 아주 정밀하게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안 빠질 함정입니다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가르침을 다시 새겨서 이렇게 말합니다. "눈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만 보지 말고, 나 자신에게도 향할 때 비로소 바로 볼 수 있다(p150)." 이 말은 사실 쇼펜하우어 시대 천 수백 년 전에 고대 라틴 속담도 하던 말이며, 더 멀게는 소크라테스가 비슷한 취지의 가르침을 남겼었습니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 카타르시스라는 말을 감정의 정화라고 배웠습니다만 사실 이는 그 개념(체험)의 결과, 효과에 가까우며 그 원래 뜻은 "배설"입니다(p175). 무엇을 배설하느냐, 공포라는 감정입니다. 공포는 인간의 생존에 아무 도움도 안 되면서 의지와 희망을 갉아먹기만 하는 해로운 녀석입니다. 그래서 FDR도 "가장 두려워해야 할 건 두려움 자체"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쇼펜하우어는 그래서 삶이 본래 지옥이니 회피한다고 부정한다고 뭐가 달라지지 않으며 그저 훈련, 단련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으며 저자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다는 아스케제라는 개념을 인용하여 이 "훈련"의 의의를 강조합니다. 독일어의 Askese는 고대 그리스어 ἀσκέω(딴짓않고 운동에 전념하다)에서 유래했습니다. 영어의 ascetic(금욕적인) 같은 형용사도 어원이 같습니다. 

p222에도 또 "연습'이란 개념이 나옵니다. "연습, 오로지 연습만이, 정신을 망각의 늪에 빠지지 않게 도와 줄 것이다." 불행마저도 의미를 따로 품게 하는 것이 연습의 바람직한 결과 중 하나라고도 강조합니다. 확실히 이 책은 여태 독자가 알지 못했던 쇼펜하우어 철학의 많은 이면을 조명합니다. 삶은 본디 많은 모순, 부조리에 가득합니다. 정의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삶을 그대로 수용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동물은 삷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잔인하게 사자에 잡아먹히는 어린 사슴, 물소 등도 "대체 왜 이렇게 약하게 태어났지?"라며 신세를 한탄하지 않습니다. 물론 맹수에 의해 숨통이 끊어질 때 극한의 고통을 느끼겠지만 그때조차 염세적 태도를 새삼 드러내지 않습니다. 시니컬하게나마 진지한 답을 제시하는 쇼펜하우어더러 염세주의라 규정하는 건 피상적이고 부당합니다. 

"순간을 알고 있기에 인간은 (그와 반대되는) 영원도 상정할 수 있다(p278)." 고통이 없다면 쾌락이 뭔지도 인간은 알 수가 없습니다. 저자는 이런 말도 합니다. "희망은 신이 인간에게 준 고통이지만 그 희망을 거머쥔 건 인간이다." 세상에 마구 던져졌을 뿐 의지대로 태어난 게 아니지만 여튼 태어난 후 대부분의 결정은 우리 자신이 하며 그 책임은 우리 스스로가 져야 합니다. 책임을 지고 기꺼이 고통스러운 길도 걸어갈 수 있기에 인간은 존엄하며 참된 자존에서 일어나는 쾌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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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오타니처럼 -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
한성윤 지음 / 써네스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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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2015년 프리미어12 대회에서 이 선수를 TV 중계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국대는 지금과 달라서 훨씬 실력 좋고 이름값도 높은(빅리그 소속) 선수들이 많았는데, 이제 스무 살을 넘긴 오타니 쇼헤이, 대곡상평 투수의 공을, 이대호 선수를 포함해서 단 한 명도, 배트를 제대로 공에 갖다 대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투수 관리 차원에서 다른 투수를 상대팀에서 올린 후에야 공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는지 공략을 시작했는데, 겨우 이기긴 했지만 오타니에 한해선 아예 손을 대지도 못하는 처량한 모습이었는데, 그 정도로 차원이 다른 선수였고 나이가 저렇게나 어렸다는 점도 충격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대로 오타니는 이도류(二刀流)입니다. 이도류란 일본 무사들 중에 양손으로 칼 하나씩을 휘두르는 부류를 가리키는데, 손이 둘이라고 누구나 양손잡이가 가능한 게 아니라 대부분은 칼 하나도 두 손으로 핸들링해야 합니다. 칼 한 자루도 힘에 부치는데 두 손으로 두 칼을 휘두른다면 일단 정밀도는 둘째치고라도 타고난 힘부터가 남달라야 합니다. 이도류 자체가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며, 동네 야구도 아닌(동네 야구라도 해도 드물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미국 프로야구에서 한 선수가 투구(그것도 선발)와 타격을 겸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반쯤은 신화화한 미야모토 무사시가 그 대표적인 중근세 일본 칼잡이였다고 하며, 미국인이긴 하지만 20세기 초의 조지 허먼 루스가 투타 모두에서 두각을 드러낸 야구 선수였지만 그 역시도 젊었을 때는 투수 전업에 가까웠으며 홈런왕 커리어를 이어갈 때는 투수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마야구의 박노준 선수, 프로야구 원년에 김성한 선수 정도가 투타겸업을 했었으며 둘 다 야구천재라고는 불렸지만 이 역시도 투타 모두에서 성적이 압도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리그의 수준이 낮았다는 것도 감안해야 합니다. 

평소에 야구에 관심없던 여성들도 작년 아시안게임에서 오타니를 TV에서 보고 깜짝 놀라는 걸 봤는데 유명한 선수인 건 알았지만 저렇게 키도 크고 잘생긴 줄은 처음 안 데서 온 충격으로 보였습니다. 이 선수의 만찢남 신화는 사실 그 외모에서 방점을 찍는 건데, 실력이 그렇게나 좋으면서 외모까지 비현실적이니 여성들이 열광하는 게 당연합니다. 이 선수는 인성마저도 최고로 평가받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2015년 한국 선수들을 향해 눈빛을 번득이며 이를 악물고 던지는 걸 보고 애가 아주 못됐겠구나 하고 잘못된 선입견을 가졌더랬습니다. 선수가 경기에 최선을 다해 임하고 전의를 불태우는 건 너무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며칠 전 한국에 와서도 한국 팬들을 향한 립서비스도 잊지 않고 좋은 말들을 해 주는 걸 보고 적어도 매너는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인성은 여러 일화를 통해 이미 주변에서 호의적인 증언이 넉넉하게 나옵니다. 

사람은 노력으로 커버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오타니도 일단 그 큰 신장, 운동신경, 파워 등이 타고난 DNA에 크게 기대는 선수입니다. 물론 노력의 힘은 숭고하지만 이렇게 애초에 타고난 사람을 평범한 사람이 노력한다고 능가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p43을 보면 오타니 선수는 양친 모두가 운동선수라고 하는데, 책에 보면 흥미로운 서술이 있어서 잠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일본에 2세 야구 선수는 많지만 그 대부분이 부친의 퍼포먼스에는 못 미치는데, 운동과 관계 없는 여성과 결혼한 이가 많기 때문이다." 약간 웃음도 나오는 구절인데, 젊은 남자들이야 일단 외모가 아름다운 여성에게 끌리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책이 쓰일 시점에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사항이겠는데, 오타니 선수가 현재의 배필을 그분으로 고른 건 그렇다면 2세도 운동선수로 키우려는 치밀한 계획(?)도 한몫 했다는 뜻이겠습니다(농담입니다). 

그라운드에서 온갖 욕 들어가며 고생하는 직종이 바로 심판입니다. 선수가 공에 맞으면 관중들이 걱정하는 반응을 보이지만, 심판이 공에 맞으면 손뼉을 치며 웃는다고도 했었습니다(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라운드에서 각광을 받는 건 어디까지나 선수이며 심판은 조연으로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직분입니다. 이런 심판들에게도 일일이 이름을 기억하며 인사를 깍듯이 하는 게 오타니라고 하니(p127) 그 인성의 훌륭함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타니 선수는 프로 첫 팀에 입단할 때부터 "사과"를 해야했다고 나오는데(p182), 아직 얼굴에 솜털도 안 가신 어린 선수가 뭘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야 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워낙 뛰어난 선수라서 LA 다저스가 일찌감치 관심을 두고 접촉했었는데 기어이 일본 국내 팀에 입단했으니 그 미국 구단에 미안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과는 마음을 먹는다고 아무 처지에서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다. 선택 받은 인생이라야 할 수 있는 종류의 사과이겠는데, 그렇다고 이런 행동을 할 꿈도 안 꾸는 한심한 운동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면 여전히 그의 인성은 경외의 대상입니다. 

위대한 선수가 그 실력뿐 아니라 이처럼 경기 외적인 요소로부터까지 높은 평가를 받고 일종의 현상까지 일으키는 건 매우 드물게 봅니다. 그에게서 풍기는 일종의 선한 영향력이 그만큼 볼륨이 크다는 뜻이며, 앞으로도 그가 많은 팬들에게 계속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 주고 영감과 의욕을 북돋우는 존재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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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글쓰기의 발견 - 헤밍웨이, 글쓰기의 '고통과 기쁨'을 고백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박정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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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게 글을 쓰면서도 그 안에 백 마디 뜻을 담은 명문장으로 유명한 헤밍웨이. 많은 이들이 그의 모던한 스타일을 찬양했지만 그가 직접 글쓰기와 삶에 대한 여러 상념, 소회를 담담히 적은 걸 보는 느낌은 또 색다릅니다. 지금 이 책은 언론인, 평론가 래리 W 필립스가 솜씨 좋게 헤밍웨이의 여러 에세이, 서간문에서 엮어 펴낸 책이며 읽다 보면 마치 헤밍웨이의 글쓰기 강의, 지론을 직접 듣는 느낌이 들 만큼 잘 편집되었습니다. 이 책의 초판은 1999년에 나왔었으며 이 한국어판도 여러 해 전에 간행되었으나 같은 출판사에서 리커버판으로 이렇게 다시 나왔습니다. 

D H 로렌스는 우리가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잘 아는 20세기 초의 작가입니다. 이 사람은 헤밍웨이보다 십여년 더 연상이고 문단 데뷔도 빨랐습니다. 헤밍웨이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이들을 거명하면서 D H 로렌스에게서는 전원(田園)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D H 로렌스가 그저 관능적이고 외설적인 효과만을 노린 작가는 아니었으며 오히려 서정적이고 우회적이며 사람 심리의 깊은 구석 절절한 정서를 잘 묘파했기에 그런 문명(文名)을 얻었던 것입니다. 바로 앞에 보면 제임스 조이스를 놓고는, 그룰 숭배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다만 그를 친구로서 좋아하며 기술적으로 그만큼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없다고도 합니다. 조이스는 오히려 로렌스보다 몇 살이 더 많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뜻이 통하는 문우(文友)끼리는 열 살, 스무 살이 차이 나도 격의없이 소통했었습니다. 이 부분은 아놀드 깅그리치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췌했다고 나옵니다(p76). 

아치볼드 매크리시에게 버낸 편지에서 헤밍웨이는 투르게네프를 두고 지상 최고의 작가라고 평가합니다. 희곡의 체홉과 더불어 확실히 투르게네프는 근대 문학의 형식적으로 완성한 공이 너무도 큽니다. 이 대목에서 헤밍웨이 특유의 어떤 열정도 감지됩니다. 헤밍웨이는 또한 문장으로 예술로, 앞선 시대의 거장들을 능가하려, "때려눕히려" 열심히 노력했다고 합니다. 문학의 재능 또한 우열이라는 게 있을 수 있으며 후배가 선배를 능가하려는 의욕을 보이는 건 자연스럽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승부욕을 드러내는 것도 참 재미있는 모습입니다. 그는 참 젊은, 혈기넘치는 영혼이었습니다. 물리적 나이에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런 말들은 찰스 스크리브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인데, 확실히 이런 말들을 보면 그가 아메리카의 문인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유럽이나 브리튼의 점잔빼는 위신이 아닌, 마치 무하마드 알리가 상대를 몇 분 안에 누이겠다는 허풍을 애교 가득히 떨어대던 스타일과도 닮았습니다. 무하마드 알리도 표현이 다채로웠으며 아무한테도 지지않겠다는 듯 패기와 쾌활함을 마음껏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살짝 불은 말이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챔피언이 되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p80)" 내 말을 너무 문자 그대로로만 받아들이지 말라는 신중함으로도 들립니다. 

헤밍웨이는 저널리스트였고 그 현장을 누비던 경험이 작품들에도 잘 묻어납니다. 이때 조지 플림프턴은 그에게 묻길 "젊은 작가들에게도 언론인 경험을 권하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헤밍웨이는 주저하지 않고 그렇다고 답하는데, 단서를 하나 붙입니다. "적당한 때에 그만둘 수만 있다면." 그게 작가가 되기 위한 전초적 과정이라면 모르겠으나, 그를 넘어 전업이 되면 오히려 작가로서의 완성을 기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그가 일했던 지역 캔자스시티는 당시에 지금보다 상공업으로 훨씬 번영한 도시였습니다. 

헤밍웨이가 생쥐들(mice)과 마치 대화를 나누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글들은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에도 p119 등 여러 군데에 인용되는데 "작가가 되려면 필요한 것은?"이라는 생쥐의 질문에 "불행한 어린 시절"이라고 terse하게, 시니컬하게 짧게 답하는(헤밍웨이의 트레이드마크) 대목은 아주 유명합니다. 물론 행복한 어린시절이 훨씬 가치있으며 헤밍웨이처럼 위대한 작가가 설령 된다 해도 함부로 바꿀 일이 아닙니다. Y.C는 your correspondent의 약자입니다. 헤밍웨이는 의문의 죽음을 한 일로도 유명한데, p135에서는 예술가의 응보(artist's reward)라며 작가의 우울증에 대해 얘기합니다. p117에서는 "책 한 권 끝내고 나면 감정적으로 탈진 상태가 된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많은 성취를 이룬 이런 거인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숙명적인 고뇌, 고통이 있었다 생각하면 다소 숙연해집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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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격 한국어 : 사자성어·상용속담
전광진 지음 / 속뜻사전교육출판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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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보다 자연스럽고 품위 있게 구사하려면 아무래도 속담이나 (중국 고전 등에서 유래한) 사자성어를 많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자성어는 비록 그 출전이 중국 저서라고 해도, 우리 조상들이 일찍부터 일상과 문헌에서 우리 것으로 받아들여 한국인의 언어 생활 깊숙이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속담은 그 전하고자 하는 바를 우스개와 해학 안에 함축적으로 잘 녹여 내어, 의사 소통을 부드럽게 하며 발화자의 의도를 증폭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따라서 사자성어와 속담을 잘 쓰면 확실히 대화의 품격이 높아진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은 한국인이 읽어도 좋지만, 한국어를 더 멋들어지게 말하거나 작문하고 싶은 외국인들에게 유용하게 잘 쓰일 것 같습니다. 책 뒤표지에는 three in one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 책 한 권 안에 한국어, 영어, 그리고 한자가 두루 포함되었다는 뜻입니다. 속담과 사자성어가 영어로 풀어졌기 때문에, 그동안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런 표현을 알았던 외국인들은 비로소 그 정확한 유래와 깊은 뜻을 깨우칠 것입니다. 또 한국인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이런 표현들의 속뜻까지 이해한다고는 못하므로, 이 책을 읽고 그간 놓쳤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영어 공부도 적절히 진행할 수 있겠습니다. 

p64를 보면 난신적자(亂臣賊子)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전 KBS 사극 <무인시대>에 보면 자주 나오던 표현인데,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가 책에서 풀어주는 정확한 뜻입니다. 여기서 "자"를 놈 자(者)로 잘못 쓰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듯 아들 자(子)가 맞습니다. 여기서 적(賊)은 물론 도적 적 자이지만, "해치다, 해롭게 하다(harm)"라는 뜻으로 풀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전을 찾아 보면 과연 그런 뜻이 나옵니다. "a wicked subject or a bad son" 이것이 책에서 영어로 풀어 주는 구절입니다. 

p109를 보면 束手無策이 나오는데, 손이 묶여 있어 어찌할 방책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hands, tied, there is no way to solve anything 등으로 네 글자 하나하나에 대응시킵니다. 외국인 입장에서 이처럼 정확하게, 글자 하나하나의 뜻을 알 기회는 드물 듯합니다. 예를 들어, 라틴어 고사성어나 관용구의 경우 무슨 뜻인지 정도는 사전을 찾으면 나옵니다. 그러나 각 단어가 문법적으로 정확히 무슨 격(格. case)인지, 그 문법적 격과 활용(conjugation)이 어떤 뜻인지까지 풀어 주는 사전은 거의 없습니다. 이 책은 외국인 입장에서, 대단히 알쏭달쏭할 수 있는 관용구의 정확한 속뜻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특장점(特長點)입니다. 

p351에는 계명구도(鷄鳴狗盜)가 나옵니다. 하찮은 재주처럼 보여도 결정적인 순간에 그 어떤 재사현학의 능력보다 더 요긴히 쓰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사자성어의 경우 왜 하필이면 닭이나 개의 재주가 예시되었는지 그 배경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생경할 텐데,  책에서는 특별히 사마천의 <사기> 등에 나오는 맹상군의 고사를 인용합니다. 이 배경고사가 곁들여졌기 때문에, 몰랐던 독자는 무릎을 치며 납득할 수 있죠. 사실 닭울음소리도 다른 닭들이 따라울게 할 만큼 완성도를 높이려면 대단히 어렵고, 몰래 잠입하여 물건을 훔치는 건 본래부터가 전시에 요긴하게 쓰이는 고급 기술인력입니다. 우연히 그런 상황에 처하여 효과가 난 게 아니라 맹상군이 예견하여 양성했다고 봐야 하며, 지도자란 본래 남들이 못 보는 국면을 통찰해야 합니다. 

이 책에서 특히 높이 평가할 부분이, p173 이하에 앞에서 다뤘던 모든 사자성어에 대해 가나다순으로 색인을 붙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권중 색인을 보고, 어느 페이지에 무슨 성어가 나왔는지 바로 찾아찾서 다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사자성어는 큼직하게 정자체 한자가 각각 정사각형꼴 안에 제시되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 위에 트레이싱으로 따라 써 보면서 바른 글씨를 익힐 수도 있습니다. 

책의 후반부는 속담 편입니다. 서로 뜻이 비슷한 속담은 아예 표제에서부터 같이 다뤄, 대화나 작문 중에 요긴하게 쓰고 싶은 학습자들이 호환하여 쓸 수 있게 돕습니다. p221의 "벽에도 귀가 있다" 같은 속담은 공교롭게도 영어에도 거의 같은 뜻의 관용구가 있습니다. 책에는 이 말을 영어에서 널리 쓰는 대로 "Even walls have ears." 라고 풀고, 그 해설도 영어로 다시 달았습니다. 제가 잠깐 해석해 보자면, "이 비유적 표현은, 누구라도 경솔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며, 아무도 듣지 않는 것 같아도 말이란 쉽게 퍼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가 되겠습니다. 한국어 학습자들은 이걸 다시 공부하면서 영어 공부를 부수적으로 행할 수도 있겠네요. 

또 이 책에서 놀라운 점은, 편집자께서 사자성어들을 같은 글자가 포함된 것끼리 한데 모아 놓아, 첫말이 같은 것, 끝말이 같은 것, 첫자와 끝자가 같은 것 등 세 유형으로 분류하여 암기의 편의를 도모했다는 점입니다. 공통된 한자는 같은 색상으로 강조하여 눈에 더 빠르게 들어옵니다. 혹 이 사자성어들을 다 아는 학습자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모아서는 공부해 본 이들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매우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후반부에는 50개의 성어를 주제로 삼아, 일정 길이의 이야기를 풀컬러 만화로 표현하여 더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게끔 배려했습니다. 이러니 외국인이나 심지어 나이 어린 학습자라고 해도 더 오래 머리에 남는 공부가 가능하겠습니다. 저자 전광진 교수님은 이미 "우리말 속뜻 사전" 등을 통해 품격 있는 한국어 구사를 돕는 좋은 책을 많이 펴냈고 저도 개인적으로 몇 권 소장 중입니다. 이 책은 분량이 보다 슬림하면서도 알짜 정보를 담아 멋진 언어생활로 독자를 기분 좋게 이끕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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