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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속의 사람들
마가렛 로렌스 지음, 차윤진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일일드라마를 본 것 같다. 평범한 주부의 권태로운 일상과 불장난 같은 일탈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
서른아홉의 네 아이들 둔 주부 스테이시의 일상을 보여준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유독 튀는 부분이 있다면 그녀의 속마음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분명 소설로 읽고 있는데도 마치 지킬과 하이드 같은 다중성격의 여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는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녀의 속마음은 적나라하다. 알 게 뭔가, 스테이시의 속마음은 아무도 모르는데.
남편 맥, 열네 살 딸 케이티, 열 살 아들 이안, 일곱 살 아들 덩컨, 두살배기 딸 젠 그리고 이웃사람들이 등장한다. 마치 잘 짜여진 세트장에서 현모양처의 모습을 연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스테이시는 일상과 속마음이 늘 엇갈린다. 그녀는 20년 가까이 살아온 이 도시가 여전히 편하지도 않을 뿐더러 싫지만 아무에게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괜히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시골 출신이라서 그런 거라는 놀림을 받을지도 모른다. 시골 촌년. 키 작고 뚱뚱한 아줌마.
그녀는 시시때때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 마나와카와 풋풋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종종 주변 사람들과 모든 것이 자신에게서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말 싫은 상황에서도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반대로 말하는 자기자신이 한심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모든 게 다 잘 되고 있다는 듯 말하고 행동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남편 맥은 늘 늦은 시각에 지쳐서 들어오고, 그녀가 건네는 말들에 대해 기계적인 답변만 한다. 더이상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남편 앞에서 그녀 역시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삶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어쩌면 그녀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다고 느끼는 자기자신인지도 모른다.
스물네 살의 스테이시와 스물아홉 살의 맥이 결혼하여 16년간을 함께 살았고 네 명의 아이가 생겼다.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고 그녀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 다른 여자들처럼 예쁜 옷이나 헤어스타일에 신경쓰고, 3킬로그램을 한 번에 뺄 수 있는 각종 다이어트를 계획한다. 이제까지 평범하게 별다른 불만없이 살아온 그녀에게 왜 갑자기 불편하고 깨름직한 것들이 들썩거리는 것일까?
" - 당연하죠. 당연한 거예요. 오, 세상에. 나는 왜 한때 진실만을 말해야지 마음이 놓인다고 착각했을까?
그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이다. 진실은 집을 불태웠을 것이다." (418p)
<불속의 사람들>은 스테이시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며, 그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진실은 위험한 다이너마이트가 아니라는 걸 모르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마흔 살이 되는 전날 밤에 원하던 답을 스스로 찾게 된다.
" - 불은 안에서도 밖에서도 계속 타 오를까? 나한테 있어 불이 꺼질 때, 그제야 비로소 세상의 불도 꺼지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나는 알지 못할 것이다." (457p)
서른아홉 살의 스테이시가 마흔 살이 되는 아침은 그 전날 아침과 다를 게 없겠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과 곁에 있는 가족들 그리고 이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야 이 소설이 1969년 출간되었다는 걸 떠올렸다. 이럴수가, 스테이시가 타임머신을 타고 2015년에 온 줄로 착각했다. 세월이 흘러도 아이를 키우는 아줌마의 일상은 놀랍도록 변함이 없구나...... 위기의 아줌마를 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실한 마음을 나누려는 작은 용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