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4 이문열 - 이문열 편 - 시대와 불화하다, Biograghy Magazine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음 / 스리체어스 / 2015년 5월
평점 :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에 휘둘리지 말자.
뭔가를 규정하는 순간, 그것은 감옥에 갇혀 버린다.
소설가 이문열님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그저 이문열님이 쓴 소설 몇 권을 읽었을 뿐이다. 세간에 떠도는 이런저런 이야기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소설이 아닌 사람에 대한 평가는 나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은 참 독특한 잡지다. 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80년대와 90년대에는 소위 인기작가들이 몇몇 있었다. 소설가의 이름만 대면 그들의 작품을 줄줄 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소설책을 읽었던 것 같다. 소설책은 일종의 유희였고 가끔은 위안을 주는 친구였던 것 같다.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금시조>, <황제를 위하여>, <영웅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삼국지> 등등.
지금 나의 책장에도 그의 책들이 몇 권 꽂혀져 있다. 내게는 '이문열'이라는 이름 석자가 곧 그의 소설로 인식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은 이문열의 작품을 소설로 받아들이지만 특정한 소수는 소설을 정치적 도구로 해석한다. 그리고 특정한 정치 색을 운운하며 칼날을 휘두른다.
솔직히 우리나라는 편가르기가 너무 심한 것 같다. 오죽하면 사람들끼리 만나서 대화할 때는 지역, 정치, 종교 얘기는 피하라고 하겠는가. 같으면 상관없겠지만 다르면 만나자마자 원수지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르다'는 곧 틀린 것이고 나쁜 것이 되는 경향이 있다. 오랜 세월을 단일민족이라고 세뇌를 당해서일까.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화합하고 공존할 수 있겠는가.
이번 호에서는 '이문열'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시대와의 불화'를 통해 비극적인 근현대사를 조명하고 있다.
6·25 전쟁 때 아버지가 월북하면서 남한에 남겨진 어머니와 5남매는 대공형사의 감시를 받으며 살게 된다. 연좌제가 폐지되는 1981년까지 그들에게는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어있었고 감시를 피해다니느라 이사를 자주 다녀야했다. 이문열은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하지만 그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중퇴하여 고향에 돌아간다. 연좌제에 걸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많지 않았다. 결혼하고 나서는 생계를 위해 고시 학원 강사를 하다가 매일신문사에 가까스로 입사하게 된다. 일하면서 틈틈히 쓴 원고를 응모하지만 여러 번 낙방한다. 그러다가 큰 기대 없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것이 드디어 1979년 1월, <새하곡>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장하게 된다.
한국 문단의 대표 작가에서 '보수 괴물'로 비난을 받게 된 것이 1990년 대 후반부터다. 인터넷을 통해 그에 대한 비방이 빠르게 퍼졌고 안티세력까지 등장하게 되면서 2001년에는 극단적인 '책 장례식'까지 벌어지게 된 것이다.
겨우 몇 줄로 누군가의 인생을 요약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문열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보는 것 같다. 빨갱이에서 보수괴물까지, 그에게 붙여진 딱지들이 너무나 소름끼친다. 도대체 누가, 한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규정지을 수 있는가. 중세의 마녀사냥처럼 현대 사회의 왜곡된 여론몰이를 경계해야 하며 동조해서는 안 된다. 이쪽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말한다고해서 저쪽을 옹호하는 건 아닌 거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무지개빛이 존재하는데 왜 굳이 한 가지 색만으로 규정지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에서는 한 인물에 대한 객관적 사실과 인터뷰를 통한 주관적인 목소리를 함께 보여준다. 또 하나, 인상적인 건 그 인물의 배우자까지 인터뷰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누군가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배우자가 아닐까 싶다. 그냥 인간 '이문열'을 말해줄 수 있는 한 사람.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문열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그냥 박필순님에 대한 매력이 느껴진다. 짧은 인터뷰지만 "그 부인을 알면 이문열을 미워할 수가 없다."라는 소개글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모든 수식어를 떼어내고 그냥 '이문열'이라는 한 사람을 탐구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