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장의 참극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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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는 뭘까요.

일상에서 흔히 쓰는 '제자리'는 물건을 놓아두는 장소인데, 사람에게 있어서 제자리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존재의 의미, 혹은 맡은 임무나 역할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물건이든 사람이든, 제자리에 있어야 아름다운 법이에요. 문득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쫓는 추리 미스터리 소설을 읽다가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추악한 자리를 보고야 말았네요.

《미로장의 참극》은 일본 본격 추리소설의 거장으로 알려진 요코미조 세이시 작가님의 추리소설이에요.

일본의 국민탐정으로 불린다는 긴다이치 코스케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미로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일단 시작부터 흥미로운 것이 장소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풀어놓고 있어요.

"명랑장은 도카이도선 후지역에서 도후쿠 쪽으로 1리 남짓 떨어진 곳에 있다. 처음 이곳을 만든 이는 메이지의 권신 후루다테 다넨도 백작이라는 사람이었다. 이 부근은 북쪽으로 후지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다고노우라가 있어 경치가 맑고 아름다운 거야 두말하면 잔소리고, 근처에는 와카의 소재가 된 명승지나 사적도 많은 장소다." (11p)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슬슬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들을 던지고 있어요. 명랑장(名琅莊)이라고 하면 우리말 발음으로는 매우 쾌활한 공간처럼 느껴지지만 여기에선 완전 다른 분위기의 건축물이에요. 메이지 천황이 재위하던 시기에 권세를 누렸던 후루다테 다넨도 백작이 직접 만든 매우 비밀스러운 저택인데, 본가 저택과는 구분되는 공간으로 특별히 설계된 은신처라고 볼 수 있어요. 백작은 주변인들이 피의 숙청을 당하거나 자객의 손에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신변 보호 차원에서 이 저택을 설계했다고 해요. 그래서 저택 내에 회전 벽이나 도주용 탈출구, 몰래 들어온 자객의 저격에 맞설 수 있는 사각지대 등 비밀 설계가 많고, 줄줄이 이어진 방 구조 때문에 명랑장이라는 명칭 대신에 미로장(迷路莊)이라고 불리게 되었대요. '미로'를 일본식 발음으로는 '메이로', 영어식 발음으로는 '메이즈'라고 하는데 비슷한 발음이라서 신기해요. 미로는 인위적으로 만든 복잡하고 헷갈리는 길이라서, 괜히 잘못 들어갔다가는 미로 안에 갇힐 수 있어요. 본디 '길'이란 누구나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장소인데, 미로와 같이 어지럽게 갈래가 져서, 한번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기 어렵게 만든 것은 진짜 길이 아닌 거죠. 그런 의미에서 미로장은 우리에게 참혹하고도 씁쓸한 교훈을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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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클래식 - 눈과 귀로 느끼는 음악가들의 이야기
김호정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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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한결같은 감동을 주는 것들이 있어요.

그 중에서 음악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어요. 장르 구분 없이 음악의 세계는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있지만 클래식 음악은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이들만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분위기랄까요. 근데 요즘은 달라졌어요. 이전과는 달리 대중들을 위한 클래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마 제가 바뀐 건지도 모르겠네요. 클래식 음악의 매력에 눈을 뜬 느낌?

《더 클래식》은 중앙일보 문화부의 클래식 담당 기자인 김호정 님의 책이에요.

이 책은 중앙일보의 구독 서비스인 더중앙플러스에 연재했던 '김호정의 더 클래식'을 모으고 덧붙여 다듬은 것이라고 하네요. 단편적으로 접했던 내용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어서 좋네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피아니스트 4인, 백건우,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의 이야기와 함께 QR코드로 연주곡을 청취할 수 있어요. 그냥 들어도 '와, 좋다~'라고 느끼지만 피아니스트만의 개성과 특징에 관해 알고 난 다음에 들으니까 더 신기하고 놀랍네요.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음악가의 내면을 살짝 엿볼 수 있어요. '흑건(연습곡 10의 5번)을 연주할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느냐는 질문에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개인적으로 동양적인 그런 느낌이 있어요. 근데 그게 왜인지는 저도 잘 몰라요. 그리고 딱 들었을 때 오른손들은 그게 사실 자연이에요. 흑건의 오른손은 자연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은 '작품번호 25의 6번에서 오른손 3도 화음은 그냥 바람이 아니라 좀 쓸쓸한 바람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10의 5번은 뭔가 반짝이는 무언가가 하늘에서 보이는데 그게 약간 태양 빛 같은 건 아니고 약간 이렇게 뿌려져 있는 빛이라고 해야 할까요. 밤하늘의 별은 아니고 아침에 더 밝은 그런 빛들이 이렇게 나는 거예요. 또 왼손 엄지는 선생님이 바순 소리가 나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왼손은 또 시적인 노래 같아요. 그것도 매번 바뀌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런 이미지가 저한테 있어요." (91-92p) 어쩐지 귀로 듣는 음악만이 아니라 특별한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신세계 같다고 느꼈네요. 뮤지션 파트에서는 세계적인 음악가인 정경화, 정명훈, 진은숙, 조수미, 클라우스 메켈레, 그리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10대 음악가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레전드 파트에서는 천재적인 음악가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레너드 번스타인, 마리아 칼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삶과 음악을 만날 수 있어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음악가들이라서 안타깝지만 이제라도 그들의 연주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어요. 똑같은 악보를 연주하는데 어쩜 이토록 매혹적인 소리가 만들어지는 것인지, 참으로 경이롭네요. 숨죽인 채 감상하다 보면 음악의 선율을 따라 심장 박동이 뛰는 느낌이 드네요. 눈과 귀뿐만이 아니라 심장으로 느끼는 음악, 그 음악의 세계로 이끄는 멋진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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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들
최유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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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것 같은데 모르겠고, 모를 것 같은데 아는 것들 있어요.

알쏭달쏭, 그게 삶인 것 같아요. 사는 모습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저마다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각양각색이네요.

《환상들》은 최유수 작가님의 감성 에세이집이네요.

"피아노를 치듯이 지붕 위를 두드리는 몸집이 작은 것의 발걸음 소리.

침대에 누워 그것을 듣는다. 꽤 한참동안.

나는 원래 일단 한 번 침대에 누우면 잘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세상을 듣기만 한다." (15p)

첫 문장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봤어요. 침대에 누워 가만히 세상의 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은, 너무 흔한 일상의 모습이라서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어요. 처음엔 누군가를 바라보는 입장이었다면 조금씩 타인에서 나 자신으로 옮겨가고 있어요. 마치 대화를 나누듯이.

"지금 여기 내가 있지만, 내가 없는 세계.

사라질 세계.

'연결'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 진정한 연결이란 서로 간의 긴밀한 무엇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둘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선명해지는 시간과 공간들인지도 모른다." (29p)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없는 세계'와 '연결'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을 떠오르게 만드네요. 우리가 속해 있는 세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사실 사춘기 이후로 쭉 해왔던 생각이라서 너무 익숙하네요. 어릴 때는 나중에 더 크면 알게 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흘러도 풀리지가 않네요. "나라는 환상, 허상인 경계를 꿰뚫어 전체를 인식하고 마음을 깨끗이 비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직시할 수 있다." (47p) 라는 저자의 말처럼 본인이 인식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환상이라면 그걸 깨뜨려야만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거예요. 세상 모든 것들이 변화하듯이 우리 자신도 시시때때로 변하고 있어요. 그러니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이 흘러간다. 사람들은 흘러간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나를 아는 사람들이.

우리는 서로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밀물과 썰물처럼, 일식과 월식처럼,

만나고 헤어지고 떠올리고 잊어버리고, 굽이치는 강물처럼, 흘러간다." (180p)

유독 연말이 되면 잊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고, 안부 전화나 문자를 하게 되네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흘러간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도 지나가고 흘러가고 있었네요. 어느 날 아침에 들려오는 새소리처럼 익숙한 듯 신선하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함께 나의 일상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네요.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이고, 은은하게 퍼지는 향을 따라 마음을 놓아두기,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법을 배워야겠어요.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인 것을, 늘 마음에 되새기며 다짐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인센스 스틱이 다 타버릴 때까지, 그 향기가 머무르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조금씩 나아가 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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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머더 클럽
로버트 소로굿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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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아줌마 무시하지 말라고요!

집에서 요리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바쁘게 살고 있구만, 개념 없는 사람들은 '집에서 논다'라고 표현하대요.

그러니 나이 든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오죽할까요. 왠지 슬슬 불만이 터져나올 거라고 짐작했다면 틀렸네요. '오히려 좋아!'라며 반전의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을 소개할 참이거든요. 일흔일곱 살의 주디스 포츠도 한때는 바쁜 일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템스강 근처 대저택에 혼자 살고 있어요. 외롭겠다고요? 아니죠, 저녁 식사 메뉴가 뭔지, 어디를 나가는지, 돈을 얼마나 쓰는지 묻고 참견할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누가 뭐랄 것도 없으니, 자유롭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에요. 남들이 전혀 주목하지 않는, 마치 투명인간 취급하는 할머니라는 점을 제대로 잘 활용하고 있어요. 이건 비밀인데, 주디스는 매일 밤, 비가 오든 화창하든 옷을 다 벗고 망토로 몸을 감싼 후 밖으로 나가 템스강으로 풍덩, 신나게 수영을 즐기고 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총성을 듣게 됐고, 지체없이 집으로 달려와 신고를 했어요. 주디스는 창을 통해 스테펀의 집으로 경찰관이 출동한 모습을 봤어요. 경찰이 알아서 잘 할 거라고 믿었는데, 대충 수색하더니 그냥 가버린 거예요. 너무 이상하죠? 분명히 이웃집에 나는 총소리를 들었는데 경찰은 왜 스테펀이 무사한가를 확인하지 않는 걸까요. 답답한 마음에 스테펀의 집 주변과 템스강 부근을 서성이게 되었고 연못 물이 강으로 흘러가는 지점에서 물속에 잠겨 있는 스테펀 던우디를 발견했어요. 그의 이마 한가운데에 작고 검은 구멍이 나 있었어요. 어쩌다 히어로, 아니 그녀는 자신만 몰랐을 뿐 탐정 DNA를 타고난 슈퍼히어로였네요.

《말로 머더 클럽》는 로버트 소로굿의 장편소설이에요. 평화로운 마을 말로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요. 그 중심에 주디스가 있어요. 주디스는 이웃에 살고 있는 벡스 부인과 수지를 설득해서 살인범을 추적하게 되는데, 각자 숨겨둔 능력들을 멋지게 발휘하면서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무시무시한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의외의 인물들 덕분에 유쾌하고 따뜻한 재미를 느꼈어요. 말로 사람들은 절대 짐작도 못할, 슈퍼히어로 삼총사의 활약상이 펼쳐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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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머더 클럽
로버트 소로굿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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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멋져요~ 세 여성의 추적,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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