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맨 8 - 초능력 올챙이들의 공격 도그맨 8
대브 필키 지음, 노은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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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조차 푹 빠져서 읽게 된다는 마성의 그래픽노블 <도그맨> 시리즈 8권이 나왔다. 이 시리즈는 개 머리에 사람 몸을 한 경찰관 도그맨과 못된 짓만 일삼던 고양이 피티의 아기 고양이 '리를 피티', 그리고 그들의 로봇 친구 애디에칭디까지... 세상의 모든 악당들로부터 도시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기자인 세라와 그녀의 푸들 주주, 그리고 서장도 이들의 친구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함께 싸운다. 이번 작품에서는 초능력 올챙이들이 나타나 도시를 공격한다고 해서 또 어떤 재미를 보여줄 지 기대가 되었다.

 

 

우르르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기는 쉬워.
덩달아 미워하고 화내기는 더욱 쉽지.
하지만 홀로 맞서는 데는 용기가 필요해.
그리고 착한 일을 하는 데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큰 용기가 필요하지.               p.184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뇌 좋아 알약'을 도그맨이 시내에 있는 약국을 모두 돌아다니며 전부 수거한다. 그런데 그렇게 잔뜩 모아 둔 약 수레를 놓치는 바람에 그 약들이 전부 올챙이들이 있는 연못에 빠지게 된다. 결국 올챙이들에게 염력이 생기고, 마친 방송국에서 해고 당해 세상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던 요망한 요정과 만나 일이 커지기 시작한다. 뇌 좋아 알약에는 '으르렁 콱'이라는 화학 물질이 들어 있어서 너무 많이 먹으면 억수로 화를 내게 되는데, 그 '화'가 고스란히 세상을 향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요망한 요정과 엄청난 초능력이 생긴 22마리 올챙이들이 한 편이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으로부터 도그맨과 왕대박 슈퍼히어로들은 어떻게 도시를 지켜낼 수 있을까.

 

 

"플러피가 어린 올챙이 몇 마리 돌본다고 해서 실제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들의 세상은 바뀔 거예요!"           p.221

 

시리즈가 시작될 즈음엔 악당으로 등장했던 피티 또한 사랑스러운 리를 피티덕분에 점점 더 변화하는 중이다. 온통 진흙탕인 세상 속에서도 반짝이는 별들과 꽃이 아름답다고 느낄 줄 아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고, 먼저 사랑이 담긴 행동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아무리 나쁜 사람도 누구나 다 가슴속 깊이 착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리를 피티덕분에 피티는 나쁜 마음과 착한 마음 사이에서 늘 오락가락하는 중이다. 너무도 천진무구한 표정과 행동으로 가슴이 뜨끔해질 정도로 중요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데,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는 리를 피티가 아빠를 속이고 탈옥한 할버지를 은근히 골탕먹이는 장면이나, 쪼그만 강아지 주주의 중요한 역할, 교도소에서 나오게 된 플러피가 왕대박 슈퍼히어로 편에서 도움을 주는 등 작은 존재들의 활약이 빛을 발한다.

 

 

그깟 아기 고양이가 뭘 어쩌겠어? 쪼그만 올챙이 한 마리와 작은 푸들 한 마리가 감히 뭘 어쩌겠어? 하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건 이 작은 존재들이다. 사랑과 친절한 마음씨가 세상 무엇보다도 강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게 생겨 먹었지만, 이 작은 마음들이 그런 세상을 조금은 살 맛나게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기발하고, 엉뚱하고, 재미있지만, 그냥 한번 웃어 넘기고 덮어 버리는 책이 아니라, 깔깔대고 웃는 이야기 속에 뭉클한 진심과 감동까지 담겨 있는 도그맨 시리즈! 전 세계 45개국에 6000만부 판매되었으며, 아마존 어린이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빛나는 작품이다. 2025년에 드림웍스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도 개봉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도그맨은 사람 말을 못할 뿐만 아니라 개의 본능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툭하면 사람들을 핥아 대고 심지어는 오줌과 똥을 아무 데나 싸는 경찰서의 골칫덩어리이기도 해서, 보통의 영웅 캐릭터와는 꽤 다르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따뜻하고 선한 마음을 가졌고, 매 사건마다 놀라운 기지와 용기를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고야 만다. 그 점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이다. 유쾌한 상상력이 빚어낸, 색다른 영웅과 함께 단순함이 만들어 내는 통쾌함을 만끽해 보고 싶다면 도그맨 시리즈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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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다듬기
이상교 지음, 밤코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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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기도 하고, 무쳐 먹기도 하고, 국물을 내는 데도 사용하는 멸치. 우리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 중 하나다. 짭쪼름한 멸치 볶음, 매콤한 멸치 고추장 볶음, 달콤한 견과류 멸치 볶음, 그리고 시원하고 깊은 국물을 내는 데 사용하는 다시팩과 멸치 김밥, 멸치 튀김, 멸치 무 조림... 많기도 하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멸치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한번쯤 멸치를 다듬어 보거나, 멸치를 다듬는 것을 구경해 본 적도 있을 것이다.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반복되는 손놀림으로 어느새 수북이 쌓인 멸치들은 깔끔하고, 맑은 국물 요리를 위한 훌륭한 재료가 되어 준다.


 

 

이번에 만난 귀여운 그림책은 바로 그 멸치 다듬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상교 작가의 동시에 밤코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멸치를 다듬을 때 부스러기를 받쳐 주는 신문지를 다채롭게 재구성해 재미를 더해준다. '멸치'를 주인공으로 도심 한가운데서 멸치 떼 목격, 마른 하늘에 멸치 떼, 멸치란 무엇인가, 토막상식, 멸치네컷, 메루치의 꿈 등등 오늘의 특종과 기상 예보, 구인 구직 공고 등 아기자기하고 유쾌하게 신문지 속 세상을 멸치의 세계로 색다르게 만들었다. 멸치들은 철새 대이동의 계절에 철새 떼를 따라 이동하기도 하고, 발레리나가 되어 무대 위를 종횡무진 활약하고, 미술관에서 명화의 모티브가 되어 관객들을 만나기도 한다.

 

 

가끔 멸치 조림을 먹다 보면 수북한 멸치들 사이에 정말 손톱만큼 작은 게나 꼴뚜기 등을 만날 때가 있다. 그제야 내가 먹고 있는 것이 바다에 사는 물고기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어쩐지 마른 멸치를 많이 접하다 보니, 멸치가 물고기라는 사실을 자꾸 잊어 버리게 되는데 말이다.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신문지에 누워 차례를 기다리던 멸치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세상 속으로 향하는 여정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마른 멸치들만 보다가, 비로소 생생하게 살아 있는 멸치들의 움직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늘을 날고, 무대 위와 명화 속을 거쳐, 우주 공간을 통과해 휴가철 해변까지 정말 세상 곳곳을 종횡무진하는 멸치들의 여정은 귀엽기도 하고, 웃음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멸치의 존재를 피부로 와닿게 만들어 준다.

 

 

아빠와 아들이 사이좋게 앉아서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반복 작업을 하는 과정도 만화처럼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고양이가 와서 방해를 하기도 하고, 끝난 줄 알았는데 한 번 더 한 가득 담겨서 일거리가 오기도 하고, 기지개도 켜고, 몸도 풀면서 부지런히 반복 작업을 한다. 대가리와 똥을 모은 곳과 몸통을 모은 곳을 구분해야 하는데, 반복 작업을 하다 보면 헷갈리기 일쑤다. 그럴 때 짜증도 나지만, 서둘러 다시 옮겨 놓는다. 그렇게 열심히 다듬은 멸치 한 가득은 과연 어떤 요리로 재탄생하게 될까. 엄마는 멸치들을 가지고 어떤 맛있는 한 상 차림을 만들어 줄까. 기대가 되는 시간들이다.

 

읽고 나면 누군가와 함께 멸치를 다듬고 싶어 지는 이 그림책은 우리가 무심코 먹는 식탁 위 맛있는 한 끼를 위한 과정을 사랑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함께하면 두 배로 즐거운 멸치 다듬기의 세계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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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브라이언 에븐슨 지음, 이유림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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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들려줬던 여러 이야기 속에서 부모님은 이주민이자 개척자였고 이곳에 처음 발을 내디딘 사람들이었지만, 어떤 실패를 겪으며 이곳에 남은 유일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어떨 때 언니는 우리가 있는 곳이 남쪽 대륙 외진 곳 어딘가이며, 부모님은 그곳에서 침몰한 배의 유일한 생존자들이었다고 말했다. 또 어떨 때는 부모님이 완전히 동떨어진 다른 세계에서 공기를 타고, 일반적인 세상의 질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또는 거울을 통해서 이쪽으로 건너왔다고 말했다.              - '두 번째 문' 중에서, p.66~67

 

앞쪽에도 뒤쪽에도 머리카락뿐이어서 어느 쪽이 앞모습인지 구별할 수 없는, 얼굴이 없는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해 딸이 사라진 방에서 들려오는 딸의 노랫소리에 시달리는 남자와 영화 촬영을 위해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르는 영화감독, 인간의 살아 있는 몸을 탐하는 우주 괴물, 돌연변이 생명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생존자들, 부모님이 어디론가 사라진 텅 빈 집에 남겨진 두 자매, 아내가 실종된 남편의 비극 등 짧게는 단 두 페이지, 길어도 이십 여 페이지 분량의 단편들은 모두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드라고는 얇은 벽 너머로 들려오는 딸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딸을 깨우러 갔지만 방에는 딸이 있었던 흔적 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방을 정리했으며, 어디로 간 것일까. 게다가 딸의 침실은 그가 전날 밤 그 방을 떠났을 때 그대로 밖에서 잠겨 있는 상태였다. 그는 딸이 방 어딘가에 숨어 있는게 아닐까 싶어 찾아 봤지만, 방은 물론 집 안 어디에도 딸은 없었다. 딸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집 안의 모든 곳을 뒤졌지만 아이는 없었고, 어떻게 봐도 불가능할 것 같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딸아이가 밖으로 나간 게 분명했다. 그는 이웃집으로 가서 혹시 딸을 보지 못했느냐고 묻는다. 예순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는 산소 튜뷰를 연결한 마른 몸으로 걸쇠가 걸린 사이로 그를 바라본다. 그녀는 여자아이를 보지 못했다며, 아이가 실종되었다면 집마다 돌아다닐 게 아니라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건 드라고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까. 그는 과연 딸을 찾을 수 있을까. 평범한 미스터리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점차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당신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빌라드는 그렇게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살아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제가.. 엄밀히 말하다니요?
"당신은 무언가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당신의 몸은 선체가 부서진 이후에 얼어붙었는데, 꽤 온전한 상태로 보전될 만큼 그 과정이 빠르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뇌를 스캔할 수 있었죠. 당신의 생각을요." 제가 스캔본이라는 말인가요?
"그날 목숨을 잃은 건 당신뿐만이 아닙니다... 혹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목격했습니까? 우리는 그 원인을 알아내야 합니다."           - '마지막 캡슐' 중에서, p.213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가 등장하고, 낮에 마주하는 상담사가 밤에 집에 나타나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행동하고, 현실의 조각난 틈에서, 숨고 싶은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진다. 우리는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지켜볼 뿐이다. 작가는 분노와 수치심, 그리고 강박과 집착에 집어삼켜진 삶들을 그려 보이며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은 균열로 가득한 부서진 세계를 창조해낸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스물두 작품은 환상과 호러 SF 등의 여러 장르를 보여준다. 미국 언론에서 '스티븐 킹의 팬들이 반길 상당히 유능하고 조금 덜 다작한 작가가 여기 있다'라고 했을 정도로 오싹하고, 강렬한 이야기들이다. 대담하고, 독창적이고, 파격적이며, 특히나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인상적이다.

 

일상 속에 교묘하게 감추어진 공포와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환상이 잘 버무려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다. 미국 사변소설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브라이언 에븐슨은 이 작품으로 2019년 셜리 잭슨상과 2020년 월드 판타지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섬뜩하고, 기괴하고, 오싹하다.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어떤 사악한 존재가 어디선가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유혈이 낭자하기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등장하기도 하며, 누군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가스라이팅처럼 공포의 종류도 매우 다각도로 보여진다. 극중 한 인물의 대사처럼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 데에 이유가 없다'는 점이 가장 공포를 자아낸다. 혹시나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어떠한 차이도, 변화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다. 돌이킬 수 없으며,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 극중 인물들은 자주 혼란스러워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들의 마음은 고스란히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도착한다. "세상은 이상한 곳이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이 말은 극중 인물들뿐만 아니라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스티븐 킹과 히치콕, 러브 크래프트와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들을 좋아한다면 꼭 만나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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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애에 이름을 붙인다면
시요일 엮음 / 미디어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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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잊지 마세요/꽃말을 만든 첫 마음을 생각한다/꽃 속에 말을 넣어 건네는 마음/꽃말은 못 보고 꽃만 보는 마음도 생각한다/나를 잊지 마세요/아예 꽃을 못 보는 마음/마음 안에 꽃이 살지 않아/꽃을 못 보는 그 마음도 생각한다              - 이문재, '꽃말' 중에서, p.65

 

시요일 앱을 처음 만났던 것이 5년도 더 넘었는데, 어느새 다섯 번째 시선집이 나왔다. 하루 한편씩 그날에 어울리는 시를 손안에 배달해준다니,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국내 최초의 시(詩) 큐레이션 앱 ‘시요일’은 시를 자유롭게 감상하고, 원하는 시를 검색할 수 있고 추천도 받고, 공유해서 나누기도 할 수 있는데, 24년 1월 기준으로 누적 회원 수가 54만 명에 달한다. 이번에 나온 책은 시요일 기획위원인 안희연, 최현우 시인이 사랑의 시작을 테마로 엄선한 시 67편을 엮은 것이다. 시의 편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매력과 컬러를 가진 시인 67인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어 아주 버라이어티한 시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므로, 상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가 사랑에 관해 읽었거나 배운 것은 대부분 실전에선 적용되지 않는다. 그건 우리가 열아홉에 사랑을 경험하든, 서른에 사랑을 하든, 마흔이 넘어서 사랑을 만나든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누구나 자신만의 사랑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여전히 잊지 못할 첫사랑이든, 고백도 못해본 짝사랑이든, 처참하게 배신당한 지독한 사랑이든 간에.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는 타인의 연애 경험에 대해 궁금해한다. 사랑의 시작과 끝이 모두 다른, 그 과정은 우주만큼 경우의 수가 많은 각자의 이야기말이다.

 

 

 

면을 불리면 공간이 되고, 그 공간에는 면을 불려 먹는 것을 좋아하던 네가 있었고, 면을 덜 익혀 먹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있었고, 덜 익히는 것과 불리는 것 사이에는 시간이 좀 필요했고, 그 시간이 끝났을 때, 버릇처럼 문밖을 나가는 네가 있고, 습관처럼 "올 때 메로나"라고 말하는 내가 있고, 냉장고 속에는 서로 다른 공간들이 있고, 들어온 시점이 다른 시간들이 있고, 앞으로 그 공간 속에서 견딜 수 있는 시간들이 있고, 원 플러스 원으로 샀던, 메로나가 있고,             - 권창섭, '완벽한 사랑' 중에서, p.169~170

 

'열렬히 사랑하다 부서져 흰 가루가 될 때까지 당신 속의 나를 사랑했다(p.112)'는 시의 문장처럼 지독한 사랑은 상대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로 향하기도 한다. '땅이 꺼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끝까지 모두 다 당신 때문(p.115)'이라는 문구처럼 사랑에 빠져 있는 순간에는 오로지 상대밖에 보이지 않는다. 부글거리는 시간들이 지나가고 나면 사랑이 끝이 나기도 하고, 함께 하는 잔잔한 일상으로 다음 단계가 시작되기도 한다. 서로에게 영혼을 보여준 날부터 싸우는 경우도 있고, 앞면과 뒷면처럼 한 몸이 된듯한 일체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갈피를 잡지 못해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권태와 고독으로 점철되기도 한다.

 

사랑에 빠져서 정말 좋았던 건 세상 모든 순간들이 무언가 되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이고, 새의 노래를 함께 들을 때면 우리는 마치 한명인 것 같았고, 가장 아름다운 꿈은, 그 애와 함께 있는 꿈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 눈동자 속의 당신과 당신 눈동자 속의 내가 있고, 마음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듯한 감정과 한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잠들 수 있도록 이마를 쓰다듬어주는 순간이 있으며, 서로 같은 아침을 바라보며 미래를 사랑이라 믿는 시간들이 펼쳐진다. 누구나 하는 사랑, 흔하고 익숙한 만큼 또 어렵고 복잡한 사랑, 누군가에게는 숨쉬는 것처럼 쉬운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생 최대의 난제이기도 한 것이 사랑이다. 우리가 사랑 때문에 겪었던 그 모든 설렘과 열정, 고통과 기쁨, 후회와 오해, 열정과 고독의 순간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 속에 수록된 시들을 한 편씩 천천히 읽으며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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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 지음 / 열림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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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에서 우리는 ‘가진 자’잖아요. 우리는 이미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발자국 하나까지 신경 쓰면서 내디뎌야 해요. 곰도 막 걸어 다니는데, 인간이 걸어 다니는 것까지 시비 걸면 어떡하나, 하실 수도 있어요. 시비 걸어야 마땅하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인간은 이미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내딛어야 하는 막강한 존재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이런 노력을 해야 자연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97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 사회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25년 동안 100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고, 해마다 100회 이상 강연을 해왔다. 이 책은 2013년부터 2021년까지 강연 녹취록과 편집부와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사회생물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부터,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던 시기의 에피소드와 거의 알려진 바 없던 ‘민벌레’를 최초로 연구하며 그 분야의 1인자가 된 비결, 다윈의 성선택 이론부터 다양한 동물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며 전 생명의 진화사를 살펴본다.

 

그는 이 책이 '그동안 관찰한 호모 사피엔스의 기이한 행동에 관한 보고서'라고 말한다. 자연계에서 호모 사피엔스보다 탁월한 두뇌를 가진 동물은 아직 발견된 바 없지만, 사실 인간은 제 꾀에 넘어가는 아주 어리석은 동물이라고 말이다. 인간이 진짜 현명했으면, 이렇게 미세먼지 만들어놓고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살겠냐고, 모든 물을 다 더럽혀놓고 개울에서 물도 제대로 떠먹지 못하면서 현명하다고 말할 수 있냐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이라도 자연계의 다른 생물과 공생하겠다는 뜻에서 '호모 심비우스symbious'로 거듭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생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연을 곁에 두고 배우며 그들로부터 삶의 방식을 재정립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곤충이 사라지기 시작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생태적 전환'이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전환은 생태적 전환밖에 없습니다. 기술의 전환도 아니고, 정보의 전환도 아닙니다. 죽고 사는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생태적 전환을 해야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현명한 인간이라는 자화자찬은 이제 집어던지고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로서 다른 생명체들과 이 지구를 공유하겠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공생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기 때문입니다.             p.279

 

곤충이 너무 많아 방제를 걱정하던 시절을 거쳐 이제는 모든 사람이 곤충이 사라지는 걸 걱정해야 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을까. 꽃을 피우는 식물은 지구 전체를 뒤덮고 있기 때문에 자연계에서 무게로 가장 성공한 존재이고, 곤충은 숫자로 가장 성공한 존재인데, 이 둘은 서로 공생하는 관계이다. 그런데 식물 생태계가 지금 이상기후 때문에 엄청난 진통을 겪고 있다. 식물계가 사라진다는 것은 먹이사슬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맨 밑바닥이 없어진다는 것이고, 그 결과 식물계 바로 위에 있는 가장 대표적인 곤충계부터 엄청난 붕괴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간 정말 6차 대멸종이 머지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기존 다섯 번의 대멸종이 전부 천재지변으로 인해 벌어진 것이라면, 곧 맞이하게 될 6차 대멸종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류의 동물로 인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대 최대 규모일 거라고 예측되는 대멸종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최재천 교수는 개미와 민벌레 등 곤충에서 시작해 거미, 민물고기, 개구리를 거쳐 까치, 조랑말, 돌고래, 그리고 영장류까지 다양한 동물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해오며 그 속에서 자연스레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인간과 가장 비슷한 사회성을 가지고 있는 개미에 대한 부분들이 특히나 흥미로웠다. 인간과 가장 닮았으나 인간보다 기꺼이 희생하며 자가 조직 사회를 꾸리는 일개미들의 사례와 다른 듯 닮은 흰개미와 꿀벌의 진사회성에 대한 부분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들의 삶을 가져와서 열심히 베끼고 연구하라고 말한다. 자연에 있는 아이디어들은 수천만 년의 자연선택이라는 혹독한 검증을 이미 다 거쳤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뭘 갖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그걸 가져다가, 그냥 주워다가 우리의 삶에도 적용해 보라는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들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야말로 다른 모든 생명과 이 지구를 공유하는 공생인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는 길이기도 하다. '지구의 동식물 절반이 사라질 때 과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 보길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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