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 - 안대회가 선택한 152편의 한시
안대회 지음 / 산처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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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시의 다양한 맛

무엇을 '대신 읽어 주는 이'들이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동서양의 옛 그림이 그렇고음악이 그렇고건축물을 포함한 문화유산이 그렇고나무와 풀이 그렇다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문 고전이다이는 다른 것들과는 또 다르게 대신 읽어주는 이가 없으면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그분들의 수고스러움이 고맙다.

 

이 책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 역시 대신 읽어주는 이가 있기에 내게는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분야를 담았다바로 옛 사람들의 시를 음을 달고 훈을 풀어내어 뜻을 새긴 저자의 안대회의 소회를 밝히고 엮은 책이다. "옛 시인들의 숱한 한시들과 그에 관련된 자료들 중에서 시인이 살아가면서 겪은 희로애락을 시인만의 절실한 체험으로 녹여낸 작품을 가려 뽑아 모은" 152편의 한시에 해설을 붙였다.

 

이 책의 멋진 제목은 어디서 왔을까 하고 찾아보니 조선 영조 때 문인인 홍신유(洪愼猷1724-?)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었다그 시를 옮기며 천천히 음미한다옛 사람들의 글에 관심이 있어 늘 주목하며 찾아보는 분야이기에 책을 선택한 것이 맞지만 중요한 다른 이유는 책의 제목 때문이었다.

 

閒中한중

墻角槐花灑地斑 장각괴화쇄지반 晴空一解駁雲頑 청공일해박운완

人方偃臥羲皇上 인방언와희황상 月亦徘徊斗牛間 월역배회두우간

天外無邊東海水 천외무변동해수 人間何處漢陽山 인간하처한양산

有才豈有不忙客 유재개유불망객 惟喜無才我獨閒 유희무재아독한

 

한가하다

담 모퉁이 회화나무는 땅바닥 여기저기 꽃을 뿌리고

억세던 구름장이 걷혀 하늘도 모처럼 활짝 갰다

태평성대 사람인양 비스듬히 누워 보니

남쪽 하늘 별 사이로 달도 함께 배회한다

하늘 밖이라 끝없이 동해바다 넘실대니

이 세상 그 어디에 서울이란 데가 있나?

재주 있는 사람 치고 바쁘지 않은 이가 있던가?

다행이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

 

이 책에는 이 閒中한중을 비롯하여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의 시 獨行독행처럼 제법 오랫동안 마음을 붙잡는 시들이 있다익히 아는 시도 있지만 대부분 생소한 시들이 많아서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 또한 제법 크다.

 

이러한 옛사람들의 글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양하다옛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며 세상을 살아가는 근본 바탕에 무엇을 두어야 하는지벗들과 사귐의 있어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또 무엇이 있는지 등을 살펴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의 잣대를 세우고 점검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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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위로 - 깊은 밤, 달이 말을 건다
안상현 지음 / 지식인하우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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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궂이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세상 속에서 철저히 외톨이가 된 날, 사랑에 아파 눈물짓는 날, 사무치는 그리움에 잠들지 못하는 날"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 와도
지금처럼만 걸어가기로 해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내가 묵묵히 비춰 줄게요."


달, 보이지 않은 낮에도 그곳에 있는 줄 익히 알기에 '달'이라 가만히 중얼거림 만으로도 충분하다. 달에 기댄 사람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달의 차고 기우는 모습처럼 긴 여운으로 남은 사람을 기다린다. 가슴의 온기가 하늘에 닿아 달은 달마다 새로이 눈을 뜨는 것을 안다. 


달이 예쁘지 않은날이 없다는 것은 여전히 내 가슴에 자리 잡고 빛나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달을 보듯 너를 보고 달을 품듯 나를 품는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으로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오늘 쓸데없이 달은 참 예쁘다."


달빛에 비춘 그림자에 스스로 놀란 어느날 누눈가에게 달로 남을 이야기들을 만난다. 길지 않아 담백하며 울림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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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19세기 연행록 낭송Q 시리즈
김영죽 풀어읽음 / 북드라망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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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올라 만나는 사람들

예나 지금이나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사람들의 주요한 관심사 중 하나다열린 세상지구촌이라고 불리는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다양한 제약 조건으로 막혀있던 시대라고 덜하지는 않았다그 반증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남겨진 유산록이나 기행문표류기 등 이름은 다르지만 가보지 못한 세계를 글로 그려놓은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발품 팔아 다녀온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그것이 꿈인 사람들이나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충족해주며 실속 있는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 주목을 받았고 널리 유통되기도 했다.

 

그런 부류의 기록물 중에서 비교적 익숙한 것이 연행록燕行錄이다연행록은 조선시대 청나라를 다녀오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대표적이지만 이 외에도 다양한 종류와 많은 양의 연행록이 있다.

 

이 책 '낭송 19세기 연행록'은 이해응의 '계산기정', 이영득의 '연행잡록', 박사호의 '연계기정등 19세기에 쓰인 연행록들 중 20편을 가려 뽑아 일반인이 이해하고 낭송하기 쉽도록 주제별로 엮고 옮겼다.

 

저자 김영죽은 한문학을 전공하고 조선의 중인들이 연행 기록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학자다역관도 아니면서 여섯 차례나 연경에 다녀 온 특이한 인물 조수삼을 통해 조선 지식인의 이웃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담은 책 조선 지식인이 세상을 여행하는 법’(위즈덤하우스, 2016)을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이 책 낭송 19세기 연행록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저자 김영죽이 주목한 19세기 연행록은 18세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청나라의 상황의 변화와 조선 사회의 분위기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추측이 가능하다. “19세기로 접어들면연행의 의미는 그 무게 중심이 점차 북학에서 교유로 옮겨 가고, ‘개인적 체험’ 위주로 기록하는 성향이 뚜렷해진다.”라는 저자의 시각으로부터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 것인지 확인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연행 길에서 만났던 기생처음 본 서양 여자유리창 거리의 책방공중목욕탕사진 찍은 경험 등 이방인의 눈에 비친 이국의 일상적이 장면들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고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설명되어 당시 청나라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기회다더불어 낭송 19세기 연행록에 나오는 연행록과 기록자인 인물의 정보를 제공해주어 보다 폭넓게 연행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조선 특유의 기록문화가 전하는 200여 년 전의 시대상황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전하는 메시지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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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줄 꽂아놓고 - 옛사람의 사귐
이승수 지음 / 돌베개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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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간에 홀로 서는 사람들

살아가는 동안 늘 함께하는 주제 중 하나가 벗의 사귐이다옛사람들도 지란지교芝蘭之交관포지교管鮑之交수어지교水魚之交문경지교刎頸之交단금지교斷金之交지기지우知己之友백아절현伯牙絶絃 등 수많은 고사성어로 그 귀함을 나타내고 있다이들 고사성어의 공통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벗의 사귐은 지극히 어렵다는 점이다어려우니 더 강렬한 열망이 생기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이도 한 이 주제에 관한 흥미로운 시선을 발견했다. ‘거문고 줄 꽂아놓고의 저자 이승수가 옛사람의 사귐에 관한 사례를 모아 놓고 이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을 드러낸다사람 사귐의 기본을 물리적 심리적으로 교류의 빈도로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인데 이와 사뭇 다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나옹화상과 이색정몽주와 정도전김시습과 남효온성운과 조식이황과 이이양사언과 휴정이항복과 이덕형허균과 매창김상헌과 최명길임경업·이완과 녹림객이익과 안정복나빙과 박제가

 

옛사람들의 이 조합에서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잘 어울릴 같지만 다시 보면 부자연스러운 조합이기도 하다저자 이승수는 이 관계를 주목하면서 진정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들만이 벗의 사귐의 본질에 가까운 교류가 가능하다는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시대를 주요 배경으로이익과 권력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의 사유와 삶을 존중했던 옛사람들의 아름다운 사귐을 담았다저자는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기록에 남은 감동적인 일화들주고받은 편지와 시그림 등을 재료로 스물네 사람의 사귐을 흥미롭게 풀어내었다.

 

여전히 벗의 사귐 대한 생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그러던 중 발간된 지 한참이나 지난 이 책의 저자 이승수의 머리말에서 아주 흥미로운 문장을 접한다. ‘벗의 사귐에 주목하면서 늘 무엇인가 빼놓고 살아가는 것 같은 아쉬운 내 속내를 짐작케 하는 문장이다.

 

실체가 없는 참다운 우정의 회복을 부르짖고 싶은 마음도 없다옛날에는 참다운 우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는 둥세상이 황폐해져 우도友道를 찾기가 어렵다는 둥옛일을 낭만적으로 떠올리며 내가 사는 이 시대를 개탄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완벽하고 영원한 우정의 모델을 제시해변변한 친구 하나 없는 대다수 사람들을 압박할 마음도 없다나는 다만 내 삶을 성찰하고 싶었다자랑스럽게 내세울 벗 하나 없는 내 삶을 위로하고 싶었다누구에게도 따스한 벗이 되어주지 못하는 내가 우정을 이야기하는 이 불일치와 아이러니에 삶의 진실이 있다.”

 

어쩌면 내 속내를 그대로 담은 듯싶어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던 문장이다이 책에 등장하는 스물네 명의 사연 깊은 이야기보다 더 오랫동안 머물렀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마침섬진강에 매화 피었다는 소식에 문득 그리운 이를 떠올리는 것과 이들의 사귐이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천지간에 홀로 서는 사람들사이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벗의 사귐'에 대해 다시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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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알비 문학 시리즈 2
에곤 실레 지음, 김선아 외 옮김 / 알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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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더해지는 그림

그림이 먼저 눈에 들었다직설적인 표현간략하지만 상황에 정확한 묘사화려한 색감 등으로 독특한 모습과 색감으로 한눈에 봐도 그린이가 누군가를 알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화가다굳이 감출 이유가 없다는 듯 우울한 속내가 투명한 옷을 걸친 듯 보일 듯 말 듯 한 그림들에 홀려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 ‘인간의 실존을 둘러싼 모든 것들’ 혹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투쟁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다 28세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화가다대표작에는 자화상Self-Portrait’(1910), ‘죽음과 소녀 Death and the Maiden’(1915), ‘가족 The Family’(1918) 등이 있다.

 

4점의 자화상만이 아니라 책에 실린 50여 점의 작품을 배경으로 열네 편의 편지가 실렸다돌아가신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삼촌 레오폴드 지하체크화가 동료이자 의지하는 친구였던 안톤 페슈카불편한 속내가 그대로 담긴 어머니를 비롯한 자신의 가족에게 보낸 글이 중심이다.

 

글은 그림만큼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중요 수단이었고그림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솔직하고 세밀한 감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그림보다 오히려 글에서 그의 감정은 여과 없이 드러난다.” 특히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속에 드러나는 어머니와의 갈등의 요소가 무엇인지그것이 그의 작품에 어떻게 반영된 것인지에 궁금증을 더해간다.

 

편지글을 통해 감추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을 만나면서 작품 속에 담긴 에곤 쉴레 만의 독특한 방식의 그림을 다시 눈여겨본다찾아보니 에곤 쉴레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이 20여 종이나 된다그만큼 주목받고 있는 화가임에 틀림없다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작품의 매력에 강한 끌림이 있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내게는 어떤 이의 휴대폰 배경화면에서 보았던 그림으로 기억되는 에곤 쉴레다이 책을 계기로 작품을 하나하나 유심히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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