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어 찍은 사진, 보여줄 수 없어 쓴 글 - 힘껏 굴러가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
최필조 지음 / 알파미디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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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 앞에서

조심스럽다받자마자 손에 든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큰마음 먹은 사람처럼 천천히 첫 장을 넘긴다사진에세이라 중심인 사진부터 보는 것이 당연할지 모르지만 사진과 함께 들판을 건너는 바람처럼 함께 있는 온기 넘치는 글맛에 보고 또 보는 사진이다.

 

"한때 나는 스스로 관람자가 되었다는 착각으로 유랑하듯 세상을 떠돈 적이 있다그러나 이제 나는 결코 구경꾼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나름의 깨달음이라고나 할까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좀 많은 시간이 걸릴듯하다사진에 한번글에 또 한번글과 사진이 어우러져 만든 감정에 붙잡혀 제법 오랜 시간동안 이 사진에세이와 함께할 것 같다그 시간동안 내내 훈풍으로 따스해질 가슴을 안고서 말이다.

 

말할 수 없어 찍은 사진보여줄 수 없어 쓴 글’ 책 제목이 담고 있는 간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120가지 사진 이야기에는 어느 한 장면도 놓칠 수 없도록 만드는 몰입도가 있다모두가 엄마아버지를 떠올리며 친근하고 진솔하며 아득한 감정을 불러오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다손짓눈매표정 하나하나에서 실루엣으로 담긴 아득한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 어느 순간의 한 장면을 붙잡아 놓은 듯한 모습은 숨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사진이 가진 힘에 더하여 구경꾼이 아닌 주인공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담겨있는 사진에 어울리는 저자의 글은 또 다른 막강한 힘으로 작용한다짧고 때론 긴 글을 읽으며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에 담긴 저자의 가슴 속 온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사진이 나에게 묻습니다에서 지나간 시간이/진심으로 남겨준 것이/무엇인지 알게 되었느냐고” 묻는 물음에 나는 저자의 사진과 글을 통해 무엇을 보았을까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아무리 봐도 그저 지극히 정직한 시선이다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피어나는 온기는 사진을 보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와 감동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무엇을 인위적으로 더하거나 빼고자 하는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기에 진정성이 전해진다정직한 시선이 갖는 힘에 사람을 향한 온기가 더해지니 저자의 사진은 우리들의 일상을 비춰보게 하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들은 사진에 익숙한 일상을 살아간다셀카음식풍경개나 고양이? 등등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는다그렇게 찍는 사진으로 비슷한 감정을 가진 이들과 교류를 통해 서로의 일상을 나눈다그런 사진을 찍으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사진 속에 투영한 스스로의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며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자문해 본다사진작가 최필조의 사진이 갖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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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로 피어
손남숙 지음, 장서윤 그림 / 목수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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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전하는 우리의 이야기

한적한 국도변을 다니다 보면 마을 입구나 인근에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들을 제법 많이 만난다특별한 일이 없는 한 차를 멈추고 나무를 돌아보며 그 이력을 확인해 본다느티나무은행나무가 주를 이루지만 간혹 팽나무나 푸조나무회화나무도 있다이들 나무는 대부분 마을의 당산나무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사람들과 더불어 살았던 이야기를 품고 있을 나무주목하는 것들 중 선두에 있다.

 

이 책 나무 이야기로 피어는 나무와 관련된 책이기에 선 듯 손에 들었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선택의 이유가 있다창녕 우포늪에서 자연환경해설사로 일하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손남숙 시인이 쓴 책이라는 점이다페이스북에서 손남숙 시인이 전하는 우포늪 이야기에서 시인의 자연을 바라보는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짐작되는 바가 있기에 더 주목한 책이기도 하다.

 

벚나무느티나무산수유회화나무대나무은행나무오동나무밤나무소나무버드나무무궁화진달래 등 우리 일상과 친숙한 50여 종의 나무들이 나온다나무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각이 식물학이나 생태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나무와 얽힌 시인과 우리 이웃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어린 시절 마을 어른들의 일상이 있다어디에서 주어들은 이야기가 아닌 겪고 느끼며 함께 살았던 나무들의 이야기다여기에 더하여 잔잔한 미소를 떠올리는 나무 이야기에 온기를 더해주는 것이 나무를 주제로 한 삽화가 또 다른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나무는 그저 산과 들에 존재하며 사람이 바라보며 이용하는 대상으로서의 존재만은 아니다. “오랜 세월 나무는 먹을 것입을 것머물 곳을 제공하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온 존재로 인식이 그것이다시인은 친구이자 이웃 같은 존재로써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한 잎의 물은 나무에게로 가서 크고 탐스러운 꽃이 된다한 방울의 나는 다른 사람에게로 가서 작고 더 작은 사람이 된다한 나무의 꽃에서 사람의 일생이 피고 지는 것을 본다.”

 

시인이 나무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사람들의 삶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지만 굳이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친구이자 이웃의 든든함으로 자리 잡고 있는 나무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비춰볼 기회를 제공한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시인의 손을 빌려 나무가 전하는 따스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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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김인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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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 들꽃처럼 살다가 사람

나는 그를 모른다다만그를 기억하고 기리고자 하는 이들의 밝고 따뜻한 마음을 알기에 기꺼이 나눴고 나도 이제 손에 들었다누군가를 기억하고 시시때때로 그리워 한다는 것이 주는 고요한 울림은 크다기억하고자 하는 이들과 공감되는 순간순간을 만날 때마다 기억된 그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는 것은 먼저 간 이와 남은 이가 엮어내는 이야기의 따스함에 매료된 까닭이라 여긴다. 2018년 급환으로 홀연 세상을 떠김인선(1958-2018), 그를 이제야 만난다.

 

이 책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는 그의 사후 저자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발견된 산문과 그가 온라인에 남겼던 글출판을 계획하고 집필하던 괴담 형식의 글을 선별해 한 권으로 엮어 세상에 선보인,그의 첫 책이자 마지막 책이다.

 

그의 글은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동식물과 어울려 살아가는 즐거움농촌의 인간군상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함께 곤궁한 생활을 버티게 하는 허풍삶과 죽음에 대한 독특한 철학현실과 꿈의 경계를 뛰어넘는 기이한 이야기들이다특히자연 속에서 만나는 하나하나를 무심코 지나치지 않아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계절별로 엮어져있지만 딱히 계절이 주는 의미는 없어 보인다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되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자연이 순한 하는 것처럼 떠난 그의 삶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여기는 것으로 추측해 본다.

 

김인선글로 만나 첫인상은 천상의 이야기꾼이라는 점이다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일들을 자신만의 톤으로 무심한 듯 이야기를 펼쳐간다제법 심각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소를 짓게 되거나 때론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게 된다글 속에서 공유하는 싫지 않은 순간순간이 지나가면 마음 한구석 묵직하게 따스함이 머물게 된다다음 글을 서둘러 읽게 되는 이유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모두 달아 난다.”는 그는 억지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있다그렇다고 주장이 넘치지도 않는다비꼬는 듯 하지만 속내는 따스함이 넘친다내가 글을 쓴다면 이런 글맛을 전하는 글쓰기가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느긴 달팽이의 삶에서 건저올린 글이 독특한 맛으로 남았다그 따스함에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이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그를 모르지만 그가 서둘러 떠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자리에 무엇이 있을지 짐작하는 바가 있다한철 찬란하게 피었다가 이내 쓰러지는 들꽃처럼 먼저 간 그곳에서는 한결 가벼운 마음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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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을유사상고전
묵자 지음, 최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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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墨子로 시대의 벽을 넘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다오래 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인류는 인간의 삶의 근본과 그 인간들이 구성한 사회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심도 깊은 사유의 결과물을 도출했다그로부터 2500여 년이 흘렀지만 인간의 사유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어떤 측면에서 후퇴한 모습을 보여준다그 긴 시간 인간의 역사는 무엇으로 이해해야 할까공자를 필두로 제자 백자들의 사유의 결과물은 사람의 본성과 사회구성원 간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살피는데 여전히 유효하며 때론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류 사상 가장 활발했던 사상 논쟁은 춘추 전국 시대의 제자백가일 것이다이 중에서 유가와 더불어 쌍벽을 이룬 철학 사상이지만 공자의 유가 사상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가 묵자의 묵가다묵자(墨子)출생 시기나 활동했던 나라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기록으로 서술되어 있어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지만 대략적으로 노동 계급에 속한 장인 출신이지만 학습과 실천을 통해 스스로 일가를 이뤄 위대한 스승으로 거듭난 것으로 모아진다고 한다.

 

최환 선생이 번역하고 을유문화사 발행한 묵자를 통해 묵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책의 두께만큼이나 멀리 있었던 '묵자'를 손에 들었다책의 두께에서 오는 부담감은 첫 장을 펼치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으로부터 사라진다나름 운율까지 있어 쉽게 읽히니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우선 읽어보자뜻을 이해하는 것은 나중에 일이다.

 

묵자의 주요 사상은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으며 현명하고 첫째재능 있는 사람들을 등용하고 숭상해야 한다는 상현(尙賢)’, 둘째상급자와 하급자의 의견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상동(尙同)’, 셋째서로 사랑하며 차별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겸애(兼愛)’, 넷째전쟁에 반대하는 비공(非攻)’ 등을 들 수 있다.

 

을유문화사의 묵자를 다른 번역본과 비교가 불가하니 이 책에서 만나는 묵가가 다라고 할 수밖에 없지만 초보자인 나에게 이 책만으로도 충분함이 있다비슷한 내용의 반복이 주는 학습효과가 있으며 앞에서 이해하지 못한 내용이 계속 읽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측면이 많다편집체계가 원문에 음을 달아 한자에 익숙하지 못한 이도 원문을 읽어갈 수 있으며 번역된 글만을 읽어도 그 뜻을 따라가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여기에 세심하게 주석까지 달았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관심이 있어도 멀리 두었거나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도 유용한 이 책을 통해 묵자의 혁신적인 사상을 접한다사람을 중심에 두고 지위나 신분에 맞는 역할 규정으로 사람과 사회의 개혁이 어떻게 가능해지는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이 책을 통해 시대의 벽을 넘어 여전히 유효하고 때론 오히려 강력한 도구가 되는 동양철학의 세계를 다시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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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말이 좋아서
김준태 지음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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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숲이다

숲을 걷는 동안 만나는 풀과 나무들 때론 너무 사이를 건너는 새들과 다람쥐에게까지 말을 건넨다나무 수피를 만지고 토닥거리며 그동안 잘 있었는지 높은 곳에서 보는 세상은 어떤지 꽃은 언제 피울 것인지... 언제나 질문하고 대답하는 주체는 나다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대답이 오는가 싶더니 이제는 가끔씩 질문도 받는다.

 

숲과 나의 무언의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공감이다숲을 이루는 나무의 삶이나 그 숲을 찾는 나의 일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라 여긴다이런 숲의 놀라운 모습을 잘 보여주는 책을 만났다.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생태융합과 생명철학 분야를 탐구하는 데 몰두해온 학자이자 교육자인 김준태의 나무의 말이 좋아서가 그 책이다.

 

"무채색 단조를 벗고 살갗을 트며 꽃을 피우는 봄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잎사귀로 하늘을 채우는 여름단풍으로 이별을 알리고 열매로 미래를 여는 가을배려와 존중으로 가지를 뻗어 숲을 사랑장으로 만드는 겨울까지."

 

저자가 숲을 따라가는 방식은 자연의 흐름과 동일하다봄에서부터 겨울까지 4계절 12달을 숲 속을 거닐 듯 이야기를 건넨다자연스럽게 계절이 바뀌듯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숲과 자연스럽게 동화되면서 숲 속에 있는 듯 고요와 평화를 함께 누릴 수 있다. “다양한 시와 노래로 버무린 문학적 감성특유의 관찰력과 풍부한 자료인간과 자연에 대한 심도 깊은 통찰이 더해진 우리 숲 안내서다.”

 

조금 아쉬운 점은 계절에 피고 지는 식물에 대해 폭을 너무 넓게 잡았다는 점이다산수국은 여름에 피는 꽃으로 봐야 하는데 봄 편에서 설명하고 있다또 하나는 본문에 등장하는 이쁜 식물 사진의 이름표를 잘못 붙였다는 것이다꿩의바람꽃을 홀아비바람꽃으로청노루귀와 매발톱 사진과 다른 이름이며신나무 열매를 산나무 열매로의 표기된 곳도 있다.


그렇더라도 저자의 숲에 대한 시각은 대단히 매력적이다숲은 생동하는 온갖 생명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지만 무엇이든 품어주는 넉넉함을 지녔다이 힘으로 인해 숲에 드는 모든 생명에게 위안과 휴식을 준다나무를 중심으로 숲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이야기 속에서 숲의 경이로움을 체험하게 된다. “생명과 환경의 변화가 우리와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또한 장엄한 대자연의 섭리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비로소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숲은 거기에 있고 나는 여기에 있어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자연 속에서 모든 생명이 하나 되는 공간으로 숲을 바라본다. ‘나무의 말이 좋아서는 사람을 숲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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