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의 나무 일기
리처드 히긴스 엮음, 허버트 웬델 글리슨 외 사진, 정미현 옮김 / 황소걸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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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눈으로 나무 읽기

숲으로 난 길을 걸었다계곡도 있고 큰 나무 작은 나무침엽수와 활엽수초본식물과 바위가 서로 어우러진 곳이다매주 일정한 시간을 정해두고서 계절이 바뀌는 사계절 1년 동안 같은 숲을 걸었다숲으로 난 길을 조심스럽게 걷던 것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이미 알고 있는 소나무와 같은 키가 크거나 덩치가 큰 나무들만 보이던 것이 참나무도 종류별로 구분하게 되고 발밑 풀들도 종류와 차이를 알게 되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나무의 모습과 그 나무들이 모여 이룬 숲의 변화를 볼 수 있다는 것숲을 구성하는 각기 다른 생명들의 어우러짐식물의 계절나기를 통해 순환되는 생명의 구조 등이 그렇게 1년 사계절 동안 숲을 주기적으로 나들이하며 알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숲을 더 친근하게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일상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주는 행복을 찾아 누리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자연과 더불어 사는 일상을 구릴 수 있는 것도 그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본다.

 

이런 삶의 대표적인 사람이 윌든으로 널리 알려진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이 책은 그의 일기가 바탕이 되었다. '소로와 나무의 깊은 관계'를 탐구한 리처드 히긴스가 소로의 일기와 짧은 에세이 가운데 100편을 엄선해 이 책을 엮었다허버트 웬델 글리슨의 사진 6자신이 찍은 사진 72컷을 붙였다소로가 직접 그린 스케치 16점도 들어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주목하였던 나무에 관심을 갖는다소나무느릅나무참나무가 그것이다이보다 아름다운 나무는 없는 소나무나 가사 작위를 수여한 느릅나무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나무다하지만 소로가 주목했던 참나무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참나무와는 다소 다른 나무를 이야기하고 있어 보인다.그가 언급하는 백참나무나 적참나무는 우리나라의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나무라 조금은 혼란스러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번역과정에서 우리가 흔하게 보는 참나무와 어떻게 다른지를 확인하여 부가설명이 되었으면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어떤 장소가 특별한 까닭은 단순히 지리적 위치 때문이 아니라 그곳이 각자의 마음속에 간직되는 방식 때문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만의 나무를 감지하는 소로의 명민한 지각력나무가 그에게 준 기쁨그가 나무에서 발견한 시적 감흥나무가 그의 영혼을 살찌운 과정을 히긴스는 깊이 있는 해설과 사진이 있어 소로가 숲과 나무를 이해하는 방식과 주목했던 점을 알게 되면서 소로를 더 깊게 알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 책으로 여겨진다소로의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으로 공존할 수 있는 상생의 길을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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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복 - 누릴 복을 아껴라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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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오늘을 살게 하는가

연말이면 늘 빼놓지 않고 듣거나 하게 되는 말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 “여러 가지로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음을 뜻하니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아 그렇다는 말일 것이다결국 오늘에 중심을 두고 그 실체를 보자는 의미가 숨어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그런 의미에서 연말에 접한 책 한 권이 오래 남는다.

 

정민 교수의 '석복惜福'이 그것이다. '석복惜福', 누릴 복을 아껴라채우지 말고 비우고움켜쥐는 대신 내려놓는다공존으로 이해한다승자독식이 아니라 함께 누리자는 말이다석복의 중심에 겸손과 공경을 두어야 사람을 대해야 한다지금의 내 삶에 긍정적인 가치를 두자는 의미라고도 이해한다.

 

돌아보고 오늘의 가치를 높혀 내일로 함께 가자는 의미로 이해하기에 본질에는 성찰이 있다이 성찰을 이끌어내는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자성어 100편을 모았다이를 마음 간수공부의 요령발밑의 행복,바로 보고 멀리 보자라는 네가지 테마로 엮어 놓은 책이다이미 발간된 책 일침’, ‘조심’,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와 비슷한 유형으로 보인다이들 책을 유심히 살펴왔기에 다시 귀한 만남을 한다.

 

이 책 석복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지 못했던 낯선 사자성어가 많이 등장한다하지만 그 어원이나 해석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며 공감하는 이야기들로 연결되니 어렵지 않게 읽어갈 수 있고옛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간을 건너와 지금의 현실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좋은 운을 타고나지 못했고외모도 별 볼 일 없다이렇다 할 재주도 없고문장 솜씨도 없다특별한 능력과 재물도 없다지위나 말재주도 없고글씨도 못 쓰고품은 뜻도 없다."

無星無貌無才無文無能無財無地無辯無筆無志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다오대五代의 풍도馮道(882~954)가 스스로를 일컬어 '십무낭자十無浪子'라 했다.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나 자신을 스스로를 돌아보는 마음이 이렇다면 자신을 무척 아꼈을 것임은 알겠다많은 이야기들 중에 유독 마음에 남은 구절을 옮겨왔다추사 김정희의 소창다명 사아구좌 小窗多明 使我久坐와 함께 오랫동안 머물렀던 글이다.

 

'십무낭자十無浪子'의 이야기는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오늘 지금의 스스로를 인정하여 그 바탕에 내일을 꿈꿀 수 있는 힘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책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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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 탁자 나비클럽 소설선
공원국 지음 / 나비클럽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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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모랑마에 오르는 법

손에서 책을 놓고도 꽤 긴 시간을 요구한다각기 다른 삶의 경로를 걸어온 사람들이 한 곳에서 만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이야기 속 주인공들만은 아니다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보다는 독자인 내가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본다.

 

시한부 도시’ 강녕이 예정된 운명을 맞이한다강녕에 부여한 이미지는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의 집약이다자연과 인간과거와 현대인간의 욕망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현장이다이곳에 다른 길을 걷는 듯 하지만 한 방향을 향한 사람들이 시차를 두고서 모여든다모두 살고자하는 몸부림이다영혼이 사는 것과 육체가 죽은 것은 다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무엇이 사는가는 차후의 문제다.

 

네 명으로 집중된 사람들의 모습은 겉모양만 다를 뿐 속내는 흔하게 접하는 유형이다일면서도 모른척하거나 암묵적인 동의 속에서 관행으로 인정된 일상과 다르지 않다그러기에 작가는 사람들은 소설을 허구라 한다하지만 21세기에는 소설만이 진실이다.” 라고 이야기 한다집약된 현실을 직면하는 내면의 불편함의 무게만큼 소설이 말하는 진실에 가가워지는 것이다.

 

주목했던 키워드는 세 가지다소설의 제목으로 등장한 가문비 탁자가 만들어 낸 공간이다단단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강한 나무와 그 나무로 만든 탁자가 만들어 준 공간이 주는 희망이 하나다시한부 도시와 대별되는 이미지로 읽힌다그것은 지난 세대의 목수가 집을 지을 때의 고집과 연결되며 모래땅 위에 고층건물을 짓는 것과 대척점에 서 있다생명을 살려낸 공간과 가문비나무가 갖는 이미지와 조화롭다.

 

다른 하나는 허지우 · 왕빈 · 체링 · 장인우’ 네 사람으로 집중된 이야기 속에서 이들을 내용적으로 연결 짓는 인물로 페마를 보는 일이다. “어떤 이들은 남의 마음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가르치죠그러나 남의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은 영혼은 자기 가죽 안에 갇혀 있는 포로 아닌가요그래서 남의 마음속으로 여행하지 않는 영혼은 말라비틀어지죠물을 벗어난 물고기처럼.” 페마가 허지우에게 했던 이 말에 주목한다자신의 삶이지만 그 삶에서 겉도는 이들의 내면이 고스란히 담겨진 문장으로 읽힌다.

 

마지막으로 에베레스트 산의 다른 이름인 초모랑마이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티베트의 고원에서 초모랑마가 담고 있는 대지의 여신이라는 이미지와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궁극적으로 지향점을 잡아야한다면 이 초모랑마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다음 물음에 무엇이라 답할 수 있을까.

 

너 초모랑마에 오르는 법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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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창
최옥정 지음 / 예옥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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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한순간도 아름답지 않은 날이 없었다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옛글에 관심이 많다글을 찾아 읽어가는 동안 만났던 독특한 이력의 사람들이 있었다황진이이옥봉매창홍랑 등 신분적 한계를 넘어서 당대에 주목을 받았던 여류시인들이 그들이다그 중에서도 가슴 절절한 사랑의 마음을 노래했던 매창에 주목했다.

 

매창’(1573 ~ 1610)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관계매창을 중심으로 유희경과 허균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이들 관계의 무게 중심을 무엇으로 삼고 이해해야하는가가 그 중심에 있었다매창과 유희경매창과 허균의 중심엔 여인인 매창이 있다이 관계는 보고자 하는 이의 필요에 따라 무게 중심이 각기 달라진다매창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심적인 시각은 매창과 유희경에 있지만 한발 물러서서 매창과 허균의 관계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최옥정의 소설 매창을 읽으면서도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유희경과의 관계에서의 중심은 매창이 확실하지만 허균과의 관계로 옮아가면 그 중심이 흔들린다매창과 허균은 상호 동등하든지 아니면 허균에게로 무게 중심이 약간 이동한 것처럼 읽힌다는 점이 그것이다최옥정의 소설 매창도 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한 여자가 있었다아전의 서녀로 태어나 기생이 되었지만 시와 거문고에 뛰어난 재주가 있어 그 이름을 한양까지 떨친 부안의 기생 매창이다매창에게 천민 출신의 이름난 여항시인 유희경 찾아온다둘은 첫눈에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짧은 만남 후 긴 이별이다다른 남자가 곁에 머문다은일한 삶을 꿈꾸면서도 현실을 떠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세상과 불화하는 백 년 일찍 세상에 태어난 사람 허균이다유희경에게는 소외된 자가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이귀에게는 두루 세상과 노니는 법을 배웠다허균에게는 세상에 자기가 가진 것을 내보이고 더불어 변화를 만들어내는 패기를 배웠다.”

 

너를 잃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너를 놓아 주었다는 허균의 말로 매창의 유희경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한다면 작가의 말에서 남긴 일생 동안 누군가를무언가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며 산다면 그 삶의 샅에는 죽음의 씨알이 뿌리를 박고 자라고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를 짐작할 수더 있을 듯싶다각자가 살아가는 삶의 감당할 몫은 오롯이 제 목숨을 담보로 할 때 기능해지는 것은 아닐까.

 

이 소설을 한 여인이 한 남자에 대한 애절함만으로 읽는다면 매창의 삶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것이 아닐 것이다삶의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으로 그려가는 작가의 마음속에 이 책이 사랑을 잃었던 사람,사랑을 의심하는 사람사랑에 붙들려 있는 사람의 잠을 축내며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행간에 흐르는 무겁고 깊은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만 같은데도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데 유연하다작가가 대상에 몰입한 결과가 주인공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글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한다간결하고 담담한 짧은 문장이 주는 글의 힘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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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 허난설헌 시선집
나태주 옮김, 혜강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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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이 부끄러웠답니다

 

가을날 깨끗한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흘러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어두었지요.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이 부끄러웠답니다.”

 

난설헌허초희(1563~1589)의 시 '연밥 따기 노래전문이다풀꽃시인 나태주의 편역으로 발간된 시집을 만났다. "시문의 영원함이여영광이여난설헌시인은 죽었어도 여전히 오늘에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난설헌에 대한 나태주 시인의 시각이 그대로 나타난 문장에 멈춘다.

 

여인의 속내가 고스란히 담긴 시에서 연꽃 피어나듯 저절로 미소가 피어오른다반나절 부끄러웠다는 그 마음에 깃들어 있는 연꽃향기를 무엇으로 다 짐작할 수 있을까읽고 또 읽으며 반복한다.

 

익히 알다시피 난설헌은 허균의 누이로 조선을 대표하는 여류시인이다스물일곱 송이 꽃이 책 다 피기도 전에 지고만 안타까움을 뒤로하고라도 그 삶을 반영하듯 애달프기 그지없는 시를 온전히 읽어낼 모진 마음이 서질 않는다시마다 맺힌 아픔이 읽는 이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힘을 거스를 수 없기에 한 편의 시조차 온전히 읽어낼 힘이 없다시인이 살았던 시대의 한계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여인이 감당해야할 몫이 얼마나 큰 무게로 다가왔을지 상상을 불허한다겨우 시에서 풍기는 느낌으로 짐작할 뿐이다.

 

남편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했던 부인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시대를 앞서간 여인의 삶을 각기 다른 영역으로 분리할 수 없듯이 난설헌의 시에 담긴 감정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지극한 슬픔이 한 인간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만큼 큰 무게로 안겨왔으면 이토록 진한 슬픔으로 넘칠까.

 

페이지마다 흘러넘치는 애달픔을 만회하려는지 화려하기 그지없는 그림으로 치장된 책은 그것으로 인해 더 큰 슬픔을 불러온다과유불급일까화려함의 극치가 지나쳐 시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방해하기도 한다그림만 보면 나무랄데 없는 작품이나 왠지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나태주 시인의 감성이 난설헌의 마음과 만나 훨씬 깊고 풍부한 슬픔을 불러온 것은 아닐까. 50여 편의 시 하나하나가 모두 절창이다그 중심에 한과 슬픔을 폭로하는 감정의 극한을 표출한 것은 난설헌의 시가 갖는 특정인지 편역자의 적극적인 개입인지 의문이다쉬이 넘길 수 없는 페이지를 붙잡고 오랫동안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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