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붓 - 붓장 유필무에게서 듣는 우리 붓 이야기
정진명 지음 / 학민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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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계승

생각만 있고 다양한 이유로 여전히 머뭇거리는 것이 있다필요성이 내면에서 덜 익었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기회는 언제고 올 것이다그때 놓치지 않고 하면 된다그렇게 다독이던 마음에 솔솔 불을 지피는 일이 있었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알고 지내는 분이 내 거처를 방문하면서 우연한 갖게 된 그분의 붓글씨 쓰는 모습을 지켜봤다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현장감 넘치게 붓글씨를 쓰는 매력적인 모습과 세필로 쓴 사람들의 이름에서 붓글씨가 갖는 힘을 마주한 것이 바로 불씨가 된 것이다.

 

마침 붓과 붓을 만드는 붓장의 이야기를 담은 책 한국의 붓을 만났다이 책의 출발은 붓의 역사가 수 천년이 되었고 여전히 유효한 문방사우 임에도 붓에 관한 자료가 거의 없는 현실로부터 출발하고 있다이 책을 쓴 정진명은 그 안타까운 전후 사정을 밝히며 첫발을 내딛는다.

 

글을 쓴 이는 저자 정진명이지만 글의 내용은 충청북도무형문화재 제29호 필장筆匠 기능 보유자 유필무의 붓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붓장 유필무는 서울의 전통 붓 매는법을 배운 이후증평으로 내려가 지금까지 그것을 고집스럽게 실천하는 공예 장인이다.

 

이 책은 붓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붓을 매는 자세한 과정을 담았다붓을 매는 과정을 사진에 고스란히 담아 하나의 붓이 탄생하기까지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붓을 보는 철학과 붓의 역사붓에 관한 용어까지 정리하고 있어 붓에 관한 일반적인 이해와 붓이 우리 겨레의 삶 속에 녹아든 전통문화의 영역으로서 중요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된다.

 

마침 책 속의 주인공 '유필무 붓장'의 붓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충북 증평군은 2018년 5월 12일부터 오는 12월 31일까지 증평읍 남하리 증평민속체험박물관 문화체험관에서 충청북도무형문화재 제29호 필장筆匠 기능 보유자 유필무씨의 붓 이야기를 주제로 기획전시회를 연다."

 

손으로 쓰는 글씨가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붓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관심을 얻을지 의문이지만 바로 그 지점이 이 책이 필요한 까닭이라 여긴다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공통된 부분이 전통이라면 이를 계승한다는 것은 계인의 창작과 연결되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를 어떻게 계승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에서 주목해 본다.

 

한국의 전통 붓이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것은 1993년 한중 수교이후의 일이라고 한다여전히 그리고 쓰는 분야에서 중요한 도구 중 하나인 붓이 전통의 계승으로 이어져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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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꽃시
김용택 엮음 / 마음서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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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시린 엄마들이 들려주는 따뜻한 위로

우선부끄러운 고백이 앞선다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는 단어가 문해학교검색을 해보니 전국에문해학교라는 이름을 가진 학교가 수없이 많다이 문해학교의 기반이 되는 문해교육의 사전적 의미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이다효과적으로 말하고쓰고경청하는 능력과 일상생활에서 요구되는 문해 능력 기술을 사용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런 목적을 가진 교육기관이 전국적으로 수없이 많다는 것은 그 대상이 그 만큼 많다는 반증이리라어쩌면 읽고 쓰는 것을 당연시하는 동안 잊고 있었던 내 어머니들의 삶의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가난해서여자는 학교 가는 거 아니라 해서죽어라 일만 하다가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이름 석 자도 못 써보고 살다 가는 줄 알았는데황혼녘에 글공부를 시작하니 그동안 못 배운 한이 시가 되어 꽃으로 피어났다손도 굳고눈도 귀도 어둡지만배우고 익히다 보니 이제 연필 끝에서 시가 나온다."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을까아니 지나온 시간이 얼마나 답답하고 원통했을까한편 한편의 시가 전하는 먹먹함으로 인해 가슴 절절하게 다가오는 어머니들의 가슴 속 이야기는 한없이 더디고 느리게 읽힌다.

 

김용택 시인이 엮은 '엄마의 꽃시'는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관한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수상한 작품들 가운데 엮었다시 한편 한편에 김용택 시인의 감성을 덧붙여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세상으로 첫발을 내딛는 심정이 이러했을까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쌓인 가슴 속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지며 글자로 옮기는 모든 말이 시가 된다읽고 쓰는 것에 한이 맺힌 어머니들이 가족과 세상 속에서 스스로 상처로 안았던 아픔이 고통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유쾌하게 웃음을 자아내고 가슴 뭉클한 울림으로 기어코 먹먹해진 가슴으로 읽던 책장을 덮고 한순 돌리게 만들기까지 한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올까현학적 수사나 특별한 시어로 묘사된 시가 결코 담아내지 못하는 가슴 뭉클한 감동과 삶의 지혜가 주는 깊은 울림의 근원을 생각하게 만든다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묵묵히 견뎌온 시간이 알게 한 노년의 통찰이 있기에 동반되는 감동일 것이다.

 

기회가 있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어머니들의 이야기다여전히 기회마저 갖지 못한 어머니가 많을 것이다그분들에게 밝고 따뜻한 세상으로 안내하는 희망보고서가 될 것이다이 시집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여전히부끄러운 고백으로 책장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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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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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추사를 만난다

글씨금석학고증학그림주역차 이 모든 것의 공통분모에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있다.우리나라 사람으로 추사 김정희를 모르는 사람을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막상 추사 김정희하면 무엇을 이야기해야하는지 막막한 것이 현실이다. ‘완당평전을 출간 후 다시 추사 김정희의 일대기를 따라 추사의 전기를 쓴 저자 유홍준은 이 책의 이 말로 머릿말을 산숭해심山崇海深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로 마무리 한다한마디로 추사의 삶을 요약하는 말로 이해된다.

 

유홍준이 들려주는 김정희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책 '추사 김정희'는 어쩔 수 없이 더디게 읽고 일부러 느리게 읽었다저자의 전작완당평전과 이상국의 추사에 미치다등으로 영역을 달리하여 접근하는 몇몇 사람들의 시각에 의지한 채 만났던 추사 김정희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일천하다.

 

전공자가 읽으면 학술이 되고 일반 독자가 읽으면 문학이 되는’ 교양서로 추사 김정희 일대기를 담은 것이라는 이 책에는 저자의 김정희 연구에 쏟은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보인다일대기를 조명한다는 것과 남긴 예술세계를 비롯하여 학문적 업적을 밝히고 기린다는 것이 서로 조화를 이뤄 추사 김정희를 이해하는데 한층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이 책을 더디고 길게 읽었던 주요한 이유는 수록된 수많은 글씨와 편액을 찬찬히 들여다보아야했기 때문이다.그 중에서 유독 오랜 여운을 남기는 것이 '유재'글씨가 주는 느낌과 그 의미를 풀어내는 글이 모두 좋다. '유재留齋', '남김을 두는 집'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유재留齋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로움으로 돌아가게 하고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하라.

留不盡之巧以還造化留不盡之祿以還朝廷留不盡之財以還百姓留不盡之福以還子孫

 

추사 김정희가 제자로 이조참판을 지냈던 천문학자 남병길(18201869)에게 그의 호인 '유재'를 써준 현판이다유재의 출전은 명심보감 성심편으로 그 내용이 아주 좋아 옛 선비들이 달달 외우던 글귀 중 하나였다고 한다이 유재를 결과로 판단하기보다는 출발과 과정의 마음가짐으로 이해한다면 추사로 나아가는 한걸음 더 걸어간 듯싶다살아가는 동안 시간과 공간에 머무르는 것에 남김의 여유를 챙길 수 있다면 스스로의 가치를 더해갈 기회가 아닐까盡 속에 유가 있어 성이 머무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는 유홍준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본다아는 것은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른 채 책장을 열었고 여전히 아는 것은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른 채 책장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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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순공주 - 조선이 버리고 청나라가 외면한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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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느냐

'조선이 버리고 청나라가 외면한수식어가 주는 아픔에 앞서 '의순공주'가 어떤 인물인지가 궁금하다역사 속의 기록된 문헌을 찾아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행간을 읽어내는 스토리텔링의 탁월한 묘미를 보여주는 작가 설흔을 통해 만난다.

 

"의순공주(義順公主, 1635~1662)는 조선 효종의 양녀이다종친 금림군 이개윤의 딸로 본명은 이애숙(李愛淑)이다순치제의 섭정왕이자 계부였던 도르곤의 계실 대복진이다. 1650년 12월 31일에 도르곤이 사망하여 도르곤의 조카이자 부하 장수였던 친왕 보로에게 재가하였지만 보로 또한 1652년 2월에 사망하여 홀로 지내다가, 1656년 4월에 청 연경에 봉명사신으로 온 아버지 금림군이 순치제에게 요청하여 그녀를 다시 조선으로 데려왔다. 1662년 8월에 사망하여 경기도 양주군 양주면 금오리에 안장되었다."

 

-'의순공주'에 대한 위키백과의 설명이다. "종친의 딸에서 조선의 공주중국 황실의 부인그리고 화냥년이 되기까지조선시대 비극의 역사가 담긴 의순공주의 일생"을 담았다여전히 역사 속 의순공주 보다는 작가 설흔이 펼쳐갈 시각과 문장에 담긴 이야기에 대한 강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병자호란 이후청나라는 조선에게 왕의 누이나 딸혹은 왕의 근족(近族)이나 대신의 딸 가운데” 참한 여자를 청황실에 시집보내라고 요구한다오랑캐 나라에 딸을 보낼 수 없다고 여긴 효종은 이내 금림군 이개윤의 딸 애숙을 양녀로 삼아 의순공주라고 작위를 내리고 진짜 공주를 대신해 시집보낸다.

 

삼전도 굴욕의 여파일지도 모른다북벌을 이야기하지만 뜻은 없어 보이는 북방정책과 국내정치의 혼란 속에서 국왕과 근족대신에 이르기까지 지켜야할 명분과 실리를 두고 치른 한바탕 소동의 결과가 의순공주로 나타났다.

 

역사적 팩트를 실마리로 국제 관계국내 정치정세 속 세력이나 개인들의 역학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전개방식이 독특하다이야기의 중심에 서서 이끌어 가는 듯 싶지만 늘상 본질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듯 풀어가는 이야기의 전개방식에서 설흔의 작가적 상상력을 다시 한 번 확인 한다.

 

조선시대 왕과 근족으로 대표되는 조선 남자들의 비겁함과 유교의 도리라고 불리는 덕목들의 부조리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라고 읽히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바가 없지는 않으나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보여주는 희극적 요소가 오히려 아픔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보면 유교적 도리를 강조하나 그것이 지향하는 바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되묻고 있다그 질문에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었던 유민주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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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서, 조선을 말하다 - 혼란과 저항의 조선사
최형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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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과 나라의 안위를 위해

삶에서 쉬운 길이 어디있으랴마는 유독 어려운 길을 가는 이들이 있다남들이 관심두지 않은 일에 매진하며 지향하는 바와 소소한 일상 사이의 간극이 그리 크지 않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그렇다한국 전통무예를 연구수련하는 저자 최형국에 대한 관심이 수원화성에서 보여주는 무예시범에 그치지 않고 반듯한 학자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가 그의 저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병서조선을 말하다'는 바로 최형국의 근간이다.

 

왕조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살피는 기존 시각에서 한 발 벗어나 다양한 테마로 접근하는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역사인식의 지평이 확대된 것은 사실이다여기에는 문화민중외교 등으로 분야 나누어 살피는 것도 있고 소나무를 중심으로 산림정책을 살피거나 소고기의 유통 과정을 통해 농업관련 정책을 살피는 것 등이 그것이다.

 

최형국의 '병서조선을 말하다'는 '전쟁과 병서'를 키워드로 하여 조선의 전쟁에 대한 정책과 제도를 살핀다전쟁이란 현대사회도 마찬가지지만 한 사회를 송두리째 몰락시키거나 때론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치명적인 사건이기에 이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하는가는 그 시대를 이해하는 핵심 사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법역대병요국조정토록무예제보병학지남무예신보무예도보통지행동명장전융원필비,무비요람훈국총요무예도보신지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의 진법부터 광복 후인 1949년 곽동철의 무예도보신지에 이르는 병서들이다. “병서라는 것은 크게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연관되어 있고 작게는 뭇 백성의 삶과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그러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이는 선조실록에 기록 된 병서의 의미다군대의 조직과 군사의 편재를 포함하는 병서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잘 나타낸 것으로 이해된다저자 최형국은 이 책에서 조선시대의 주요 병서들을 소개하며병서에 반영된 조선의 모습을 생생하게 읽어낸다.

 

조선 후기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영정조시대는 문무겸전론과 다양한 병서 편찬을 기반으로 가능했던 분석은 흥미롭게 읽힌다정조의 문치규장무설장용(문은 규장각으로무는 장용영으로 다스린다)’은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처럼 시대의 흐름에 맞춰 그 당시 군사를 바라보는 정책이 반영된 병서를 살펴 시대상을 이해하고자 시도한다. “조선 건국부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정조의 개혁 정치쇄국과 문호 개방 등 조선 500년의 굵직한 사건들과 조선 내외의 정치·사회 변화의 맥을 짚어보고시대에 발맞추어 등장한 병서들을 소개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대결의 모습은 조선시대와 현대사회가 크게 달려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최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남북한의 지도자가 만나 65년 만에 종전선언을 이끌어내기 위한 중요한 합의를 했다이러한 일련의 과정 역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걸린 중요한 일이라는 점에서 병서를 통해 조선 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그 중심에는 백성과 나라의 안위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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