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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읽는다.

온기를 품기에는 다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는지 홀로 빛나지만 그 품엔 서늘함이 깃들었다. 주변을 둘러싼 나무들이 서로를 기댄 그림자 속에서 자연스럽게 베어나오는 그늘이니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정성껏 생을 살아온 시간의 마지막이 이처럼 홀로 빛나지만 자신을 키우고 지켜온 무리가 안고 사는 아우라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일생을 볕을 받아 제 일을 해왔다. 마지막까지 남아 볕에 의지한 잠깐의 시간이 생의 터전이다. 몸에 스민 냉기를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겨우 벗어나 환하게 빛난다. 그 빛으로 자신을 키워온 터전이 밝아진다.

제법 길어진 햇볕이 헐거워진 옷깃 사이로 스며든다. 바람도 잠시 잠들었고 볕이 품어온 온기가 납매의 향기를 닮은 미소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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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컴맹 2024-02-05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러지는 낙엽 하나에 이다지도 깊다니요
 

얼음도 녹아내리는 겨울 숲속, 언 땅을 뚫고 막 올라온 새순이다. 여리디여린 생명의 기특함을 어루만지는 볕의 손길에 온기가 가득하다.

초록이 빛을 만나니 서로 마주하는 경계에서 생명의 찬란함이 가득하다. 경계에서 만나 온기를 나누며 서로를 빛나게 하는 자연의 기운을 닮고자 애써 겨울 숲으로 간다.

서로를 품는 볕과 새순의 어울림만으로도 이미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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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빛나는건ᆢ'

사이를 두고 마주봄이다.

겨울을 건너오는 복수초가 불을 밝혔다. 자신을 키워준 숲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키워온 꿈이다. 산마루를 넘어가는 햇살에 몸을 맡기고서 태연자약이다. 자신의 미래 역시 숲의 의지에 맡긴다는 것이리라.

빛난다는 것은 자신을 빛내줄 존재와 마주서는 일이다. 그러기에 몸과 마음에 내재한 자신만의 빛을 오롯히 발휘할 수 있도록 빛과 그림자가 되어주는 존재와의 마주봄은 내가 살아가야할 삶의 또다른 이유이며 가치다.

더불어 빛나는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당신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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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의 매화로 시작한 탐매행이다. 포근한 날이 이어지니 마음이 더 바빠진다. 꽃 피었다는 소식이 기쁜 것은 꽃 보는 자리에 함께할 벗들이 있기 때문이다. 주목하는 것은 '친교의 매화'다. 꽃 피니 벗부터 생각나고 그 향기를 나누고 싶어 먼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折梅逢驛使 절매봉사역

寄興嶺頭人 기흥농두인

江南無所有 강남무소유

聊贈一枝春 요증일지춘

매화 가지를 꺾다가 마침 인편을 만났소.

한 다발 묶어 그대에게 보내오.

강남에서는 가진 것이 없어,

가지에 봄을 실어 보내오.

*육개陸凱와 범엽范曄이 꽃 한가지를 통해 나눈 우정이 매향梅香처럼 고매하다. 육개는 멀고도 먼 강남에서 매화 한 다발을 친구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 꽃이 가는 도중 시든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범엽이 꽃을 받을 때쯤이면 이미 여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함께하지 못한 벗들에 대한 아쉬움을 유독 크다. 봄이 도착하기 전 만남을 기약하기에 그 아쉬움을 다독이지만 여전히 무엇인가 남는다.

"강남에서는 가진 것이 없어, 가지에 봄을 실어 보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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蟾江春約 섬강춘약

南國佳期逐日還 남국가기축일환

有誰菅領好江山 유수관령호강산

五龍臺古碧蘿裏 오룡대고벽라이

孤鶩島遙殘照墾 고목도요잔조간

一字詩安吟點首 일자시안음점수

三杯神快笑開顔 삼배신쾌소개안

須臾歲月滄桑改 수유세월창상개

此世無多此會閒 배세무다차회한

섬진강의 봄 약속

남쪽의 좋은 약속 그날따라 들어오니

누가 있어 이 좋은 강산을 차지하느냐

오룡대는 오래되어 푸른덩굴 속에 있고

외로운 목도는 석양 사이에 있네

시 한 자 적어 읊으며 머리 끄덕이니

술 석 잔에 상쾌해져 온 얼굴에 웃음이라

잠깐 만에 세월은 상전벽해로 변했으니

세상에 이런 한가한 모임 많지 않으리

*안희제(安熙濟, 1885~1943)의 시다. 경남 의령 출신으로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하였다.

해가 바뀌면 어김없이 찾는 곳이다. 섬진강 따라 깊숙히 들어온 바다의 온기가 매화를 깨워 이른 꽃을 피우는 곳이다. 한해를 맞이하는 의식을 행하는 마음으로 혼자라도 좋고 벗이 있으면 동행하고 원근의 벗들이 찾아오면 무리지어서라도 빼놓지 않는다.

꽃놀이 여정의 시작을 매화로 하는 특별한 이유를 열거하자면 열손가락도 부족하지만 굳이 물을 까닭이 필요할까. 굳은 약속이라도 한듯 때가 되면 궁금하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날을 정하게 된다. 올해는 진주와 울진에 사는 벗하고 함께 찾았다.

蟾江春約 섬강춘약

함께하지 못한 벗들에게 소학정 매화 향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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