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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냥년 - 역사소설 병자호란
유하령 지음 / 푸른역사 / 2013년 10월
평점 :
우리는 화냥년을 만든 나라의 후손들
G2 시대, 우리는 병자호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역사적으로 뗄 수 없는 중국과 한국의 관계를 벗어나 오늘날 중국과 한국의 관계정립을 할 수 있을까? 고조선 이후 고구려,발해, 고려 그리고 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에서 중국을 빼놓고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하기에는 뭔가 중요한 부분이 빠진 것처럼 미완성의 역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중국과의 관계를 현대사회에서 그동안 역사과정에서 살핀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 경로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K-POP를 선두로 한국드라마의 열풍 등 중국과의 문화교류는 그 주도권이 한국에 있는 듯싶다. 그간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 아닌가 한다. 언제 우리가 중국에 이렇게 당당하게 설 수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그 모습은 좋아 보인다. 하지만,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지위에 그나마 우위를 지켜가는 것까지 한꺼번에 잃어버릴 수도 있다. 지난 역사에서 겪은 비극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현명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가 아닐까 반문해 본다. 하여, 비교적 가까운 우리 역사인 조선사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조선의 27명의 왕 중에 현대에 들어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그 중심에 왕좌에서 쫓겨난 광해군도 한 몫 차지한다. 광해군을 왕좌에서 몰아내고 등장한 왕이 인조다. 인조반정의 중요한 기반 중엔 명과 청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광해군의 청에 대한 외교노선이 잘못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인조는 어떠했을까? 우리는 양대 호란을 대하는 인조의 태도에서 그 속사정을 확인할 수 있다. 병자호란을 치루고 난 후 인조는 분명 변했다. 그렇기에 병자호란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역사평설 ‘병자호란1, 2’는 바로 그러한 시각을 반영하여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중심으로 중국과 조선의 관계뿐 아니라 각 나라의 내부 장치정세를 꼼꼼하게 따져보고 있다.
하지만, ‘병자호란1, 2’는 역사평설이다 보니 병자호란을 집적 몸으로 겪었던 백성들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것으로 자기 역할을 할 역사소설을 함께 출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병자호란으로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던 당시 백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는 소설이 역사평설 병자호란과 함께 출간된 말해지지 않았던 병자호란 당시 조선인 포로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는‘화냥년’이다.
소설 ‘화냥년’은 병자호란 당시 붙잡혀 끌려간 포로들의 이야기다. 포로로 잡힌 이들이 50만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청군에게 맞아 죽고, 강간당해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고, 압록강에 뛰어들어 죽었다. 열에 여덟은 죽었다고 한다. 그렇게 죽어간 백성들을 중에 여자들에게는 형벌보다 무서운 화냥년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화냥년의 유래를 “성종 때 이득을 취하기 위해 간음하는 것을 ‘화냥’이라 불렀다면 임진왜란 이후에는 조선 남자와의 혼인관계를 제외한 여자들의 통정을 모두 ‘화냥’으로 부르는 풍조가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소설 속에 사용된 화냥년은 병자호란 때 포로로 잡혀간 남자와 여자 모두를 지칭하고 있다. 조선에서 버림받은 그들의 처지를 그렇게 부른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강과 선이라는 남자와 여자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붙잡혀 청으로 끌려가 속한가를 치르고 조선에 온 사람이나 도망친 사람, 포로로 머물며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았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다. 여기에는 조선의 포로정책과, 전쟁이라는 틈바구니에서 약삭빠르게 이득을 취하는 세력과 대의명분을 위해 목숨을 내 던지는 사람들이 함께 나온다. 이는 심양의 세자와 인조 사이의 갈등을 비롯한 당시 조선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
병자호란이 끝난 지 370년이 넘었다. 끌려간 사람이 50만 명이라고 하니 그 후손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자신이 조선인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혹, 자신이 조선인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 조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포로에서 도망쳐 온 자기 백성을 붙잡아 되돌려 보냈던 조선은 그들의 물음에 무슨 답을 할 수 있을까? 병자호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