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한옥에 살다
이상현 지음 / 채륜서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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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정말로 아름다운가?

아파트의 편리함을 뒤로하고 불편할 수도 있는 살림집 한옥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오랜 도시생활에서 몸에도 익숙한 아파트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랫동안 찾아다닌 끝에 선택한 곳이 지금 사는 조그마한 살림집 한옥이다. 아마도 살림집 한옥에서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깊숙한 곳에 내재해 있다가 발현된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눈만 돌리면 자연의 다양한 변화를 볼 수 있고 무엇보다 넉넉한 생활공간과 그 안에서 쌓인 추억이 나이 들어가며 시골의 살림집 한옥으로 주거공간을 옮긴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한옥 생활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특히, 겨울철 난방이 문제다. 보일러가 해결해 준다고는 하지만 요즘같이 눈이 내리고 찬바람이 부는 겨울은 도시의 따뜻한 아파트의 실내를 저절로 떠올리게 한다. 그렇더라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살림집 한옥이 주는 매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마당이 있어 넉넉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며 조그마한 텃밭이라도 가꾸게 된다면 채소 따위를 키워가는 제미 또한 쏠쏠하다. 삶의 근거지를 옮기고 한옥에서의 생활에 대체로 만족한다.

 

요사이 지자체들의 노력과 개인들의 귀촌에 대한 열망이 모여 곳곳에 한옥마을이 들어서고 있다. 지나가는 길에 들어간 본 한옥은 썩 내키지 않은 점이 많다. 우선 그 크기부터가 사람을 압도한다. 집이 주인인지 사람이 주인인지 모를 정도로 위압적인 건물 위용에 주눅이 든다. 또한 겉모양만 한옥의 형태를 빌려왔을 뿐 주변 환경과의 어울림도 실내를 꾸미는 모양세도 전통 주거공간인 살림집 한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주거환경도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양세가 썩 좋지만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통 생활공간으로써 한옥은 우리들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이 질문은 서양의 가치관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쉽지 않은 질문이 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책을 만난다. 한옥하면 우선 떠올리는 이미지가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이나 전주 한옥마을 등에서 볼 수 있는 기와지붕의 멋들어진 외관을 가진 집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또는 궁궐이나 사찰의 건물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한옥이 가지는 이런 외향적인 측면 뿐 아니라 구조적인 면과 한옥을 구성하는 주변의 자연경관이나 마당까지 생각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이상현의 ‘인문학, 한옥에 살다’는 바로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써진 책으로 보인다.

 

‘인문학, 한옥에 살다’는 한옥이 아름답다고 할 때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각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지, 한옥이 지금 모양세로 변화되어 온 근저에는 무엇이 있는지, 건축인 한옥은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등 한옥을 떠올릴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우선 우리들의 시각이 우리가 살아오며 형성된 가치관에 따라 그것을 바라보고 평가하는지를 반문한다. 무엇보다 사양의 미적 시각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놓치지 쉬운 부분이다. 한국 사람이 서양의 시각으로 한국 사람들이 수많은 시간을 걸쳐 살아오며 만들어 온 삶의 문화를 우리들의 시각이 아닌 서양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아진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을 벗어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서양의 시각이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해 왔으며 동양 특히 우리나라와 어떤 차이를 가지는지를 밝히며 한옥에 담긴 우리들의 삶과 정서를 바탕으로 한 한옥 바로보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다소 어렵게 생각되는 서양 미학에 대한 설명이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서양미학이라고 하는 낯선 환경을 접해보지 못한 독자들에 대한 배려로 애써 풀어쓰며 우리들의 생활에서 접근하기 쉬운 예를 찾아 설명하고 있기에 본질인 한옥을 이해하는데 저절로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즉 ‘숭고라는 개념과 예술과 생활과의 관계를 통해 한옥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아주고’ 있다. 하여, 건물 이상의 의미를 가진 한옥에 대해 올바른 시각으로 그 진면목을 바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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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빗물처럼 - 시 속에 살아 있는 조선의 일곱 빛깔 옛 사랑
이상국 지음 / 대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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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랑은 없는 걸까?

사랑이야기의 중심에는 그리움이 있다. 그리움은 함께하지 못한 이별을 전재한 가운데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사랑에 그리움이 있다는 것은 곧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중심이라는 이야기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회자되는 사랑이야기의 대부분이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역대 대부분의 사랑은 그렇게 이별을 겪으며 그 속에서 가슴 타는 그리움이 함께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여, 사랑이라는 것 속에 원래 그런 속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져 본다.

 

우리 선조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ffm 대표하는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황진이와 서경덕, 매창과 유희경, 두향과 이황, 홍낭과 최경창, 김삼의당과 하립, 김부용과 김이양, 이옥봉과 조원 등이다. 이 사랑들의 공통점은 슬프고 외롭고 그리운 사랑에 대한 인간의 감정이 애타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조선이라는 사회적 특성에서 자유롭게 사랑을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며 특히, 남성 중심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으로 사랑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사랑을 주장하기란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사회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그들의 마음을 담은 시를 통해 사랑의 모습을 재구성한 책이 있다.

 

이상국의‘눈물이 빗물처럼’(淚如雨)은 바로 조선시대 일곱 명의 사랑의 주인공들과 그들이 남긴 시를 통해 사랑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현대인들에게도 익숙한 황진이나 매창을 비롯하여 홍낭, 김삼의당, 김부용, 이옥봉 등의 여성과 남자로써 유일하게 임제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관심의 대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니 주목 받을 수 있을 소재이며 특히 시를 통해 사랑이야기를 펼치니 그 사랑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증을 일으킬만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저자의 이야기 솜씨가 여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두려움 없는 사랑 - 홍낭, 평생 기다린 사랑 - 매창, 자존심 강한 사랑 - 황진이, 맹렬 치맛바람 사랑 - 김삼의당, 끝내 쟁취하는 사랑 - 김부용, 죽음을 넘은 사랑 - 이옥봉, 사랑할수록 허한 사랑 - 임제’로 제목만으로도 이미 짐작이 가는 이야기들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황진이의 이야기와 매창의 사랑의 상대자로 대부분 유희경을 지목하는데 여기서는 허균에게 초점을 모았다는 점이다. 또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지아비를 성공시키기 위한 열혈부인 김삼의당에 관한 이야기도 주목된다.

 

이들의 사랑은 대부분 짧은 시간 사랑하고 긴 이별을 겪으며 오랫동안 그리움을 간직한다. 그 긴 시간동안 그리워하는 대상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시를 짓는다. 이런 시가 남아있기에 그들의 삶과 사랑을 그려볼 수 있다. 저자는 바로 그렇게 남겨진 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하거나 주인공들을 불러 인터뷰 형식으로 그들의 당시 심정을 알아보기까지 한다. 이들의 사랑이야기와 그들이 남긴 시를 통해 사랑을 본 모습을 따라가 볼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의 화두일수도 있는 사랑이 유독 비극으로 그려지는 것은 왜일까? 이쁘고 달콤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사랑이 그려질 때는 슬프고 안타까운 비극으로 그려지는 것이 현실이다. 사랑이라는 그 과정 어딘가에 분명하게 비극적인 요소가 담겨 있지만 그런 비극적 요소를 뛰어 넘는 것이 사랑이며 짧은 순간의 행복이 긴 이별을 이겨낼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저자가 주인공들을 현대로 불러 모아 한바탕 파티를 꾸민다. 모인 이들이 다음 모임을 기다린다는 것에서 착한 사랑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보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시작도 끝도 다 좋은 착한 사랑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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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귀신의 노래 -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
곽재구 지음 / 열림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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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

화려한 꽃, 향기 좋은 들풀, 저녁노을, 찬란한 일출, 살랑거리는 바람, 포근하게 내리는 눈...... 이 모두의 공통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듯 자연은 사람들에게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깊고 오래가며 따스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과 공유하며 소통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얻는 아름다움이다. 이것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귀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을 알고 나누며 누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아니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기준에서는 이러한 아름다움을 모두 누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단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감동을 전하지 못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다고 한다. 이 말을 다시 한다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무엇을 하든 주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스며들게 하는 사람인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도중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가슴의 따스함을 전한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을 일이지만 그들은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들 살아간다.

 

글을 통해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은 책을 보는 재미 중 빼놓을 수없는 즐거움 중 하나다. “사평역에서”라는 시로 우리들에게 익숙한 시인 곽재구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 중 한 명으로 다가온다.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라고 부제를 단 “길귀신의 노래”라는 그의 산문집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다. 시인 곽재구는 전작 ‘곽재구의 포구기행’, ‘곽재구의 예술기행’ 등의 산문집을 통해 널리 독자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시세계를 그려가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전작들이 모두 길 위를 걸어가는 동안 만날 수 있는 것을 매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처럼 이번 신작 “길귀신의 노래”역시 길 위에서 만났던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길귀신의 노래”는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 자신이 걸어온 삶의 여정, 자신이 좋아하는 바닷가인 순천만 와온 마을과 여수 바다, 해외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신의 시 ‘사평역에서’에 대한 작가노트라 할 수 있는 이야기까지 따스한 마음이 담긴 이야기들이다. 자신의 대표시 ‘사평역에서’는 존재하지도 않은 역 이름인 사평역이 왜 사평역인지를 비롯하여 시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어 시인의 이 시에 대한 속내를 알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또한 순천만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바닷가 풍경이 눈에 그려질 듯 섬세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을 그 바닷가로 이끄는 매력이 있다. 그곳을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으로 만들지만 발걸음은 그리 쉽게 옮기지 못할 것 같다. 시인의 감성으로 바라본 바닷가의 마을들에서 담은 그 따스함을 내 가슴에 담아야만 가능한 여행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길귀신이라는 말을 듣고 조금 움찔했을 이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냥 길동무라고 해도 좋겠지만 이들이 이 지상에 머물렀을 시간을 생각하면 동무라는 말이 한없이 친근하고 포근해도, 그냥 귀신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은 것입니다. 길 위에 서면 나는 이 셋의 사랑스런 길귀신들에게 내 마음의 혼을 모아 다정하게 인사하는 것입니다.”

 

삶은 여행길이라고도 한다. 지구라는 공간에 세월이라는 시간이 더해지며 자신의 삶이 곧 여행인 샘이다. 그렇게 본다면 누구라도 여행자이며 그 길에서 만나는 모든 풍경과 사람들이 길동무일텐데 길귀신이라고 한 이유가 뭘까? 그 이유가 바로 시인 곽재구를 곽재구이게 만드는 것이라 여겨진다. “길귀신의 노래”는 자연이 만들어 낸 풍경과 그 속에서 자신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벌 줄 아는 사람, 시인 곽재구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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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당신이 좋아서 - 내 생애 최고의 '사랑 고백'을 꿈꾸는 그대에게
천양희 외 지음 / 곰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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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꿈꾸는 이들의 고백

내겐 말할 때도 듣게 될 때도 여전히 어색하기만 한 말이 있다. ‘사랑’이 그 말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사랑에 대한 아픈 경험이 있어 ‘사랑’이라는 말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색한 것은 무슨 연유일까?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서도 모르겠다. 하여,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즐겨 읽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궁금함에 내가 알 수 없는 그것에 대한 대리만족에 원인규명까지 다용도로 말이다. 그렇다 보니 ‘첫사랑’이라고 하는 말에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누구나 성장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겪게 된다는 그 첫사랑조차도 내게 있었는지 없었는지 가물가물하다.

 

내겐 그렇게 어려운 사랑과 첫사랑에 대한 애틋함이 물씬 풍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을 만난다. 시인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에다 그것도 사랑에 대한 편지라고 하면서 제목도 그럴싸하게 붙인 책이 있어 보자마자 손에 들었다. 그 이름도 거룩한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라는 책이다. 이 말이 주는 느낌이 어찌나 좋던지 막상 손에 들고서도 내용보다는 제목에 꽂혀 한동안 페이지를 넘기지도 못하고 있었다. 별이 유난히 반짝이던 밤에 손에 들고 잠을 이루지 못하며 읽어갔다. 세상을 남다르게 보는 시인들의 이야기라 더욱 더 몰입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시인들의 사랑에 대한 편지글 모음인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에 참여한 시인들로는 천양희, 김경주, 이근화, 박정대, 유형진, 조용미, 윤성택 등 20명이다. 시인들이 제 각기 털어 놓는 ‘사랑고백’이다. 이 책이 특이한 것은 시인들의 사랑고백의 육필을 실었다는 것이다. 활자화된 이야기보다 손수 쓴 편지글에서 느껴지는 개성 넘치는 글씨의 매력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만든다.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가 담고 있는 느낌상의 이야기는 아픔이 묻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처럼 세월이 한 참이나 지난 후에 옛사랑에 대한 편지를 쓰다 보니 가슴 속 가만히 놓아두고 애써 다독이던 감정이 살아나 어쩌면 과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편지가 옛 그 시절을 함께 공유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애틋함이 살아 있다. 지금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랑에서부터 소년 소녀 때 가슴 설레던 그 풋풋함과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세월의 무게를 안고 있기에 가능한 자기 성찰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사랑고백을 접할 수 있다.

 

당신과 함께했던 봄은 단 한 번뿐이었지만 혼자서 보낸 봄들도, 나머지 봄들도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해마다 봄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애틋했습니다.(조용미, 「봄의 묵서」 중에서)

과연 그럴까?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모든 사랑은 첫사랑일까? 첫사랑이 처음사랑이 아닌 지금 사랑하는 그 사람과 당면한 사랑이니 첫사랑이라 해도 될 듯도 싶다. 그 첫사랑이라고 하는 말에 담긴 가슴 진솔함을 나눌 수 있다면 말이다. 여기 20명의 사랑도 지나간 사랑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사람으로 읽힌다. 하여, 자신을 떠난 연인에게 여전히 ‘잘 있지 말아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슴 아린 시간이었더라도 공유한 무엇이 있었기에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 애틋할 것이다.

 

시인들의 사랑에 관한 정의 중‘우리가 알 수 없는 아득한 그 무엇을 서러움 없이 툭, 하고 만졌다가 그리워하고 또 서러워졌다가 후회도 하고 안도도 하며 그렇게 열렬히 자기 마음의 불꽃을 태우는 것’(박정대), ‘여전히 안녕하지 못한 채 비바람 속에 서 있는 일’(유형진), ‘전 생애를 비밀에 걸었을 때에만 이루어지는 것’(윤성택), ‘덜컹이는 눈물 너머 당신에게 오래오래 손을 흔드는 것’(윤성학) 이 긴 여운을 남긴다. 시인들은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에 낭만도 사랑도 시들해진다고 서러워 하는 사람이라면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라는 기막힌 스무 명의 시인들의 가슴 속을 들여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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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이중섭 - 전2권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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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서

삶의 무게를 견디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 가족 또는 그 무엇. 사람마다 각기 자신을 추스르고 오늘 보다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두 눈 질근 감고 모든 것이 제 탓이라며 안으로만 삭이는 사람들 속에 혹시 나도 한자리 차지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삶의 무게는 이름 없는 사람이나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이나 상관없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는 가슴으로 쌓이는 무게가 더 큰 것이기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면한 문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천재화가로 기억되는 이중섭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현실로 다가오는 삶의 무게가 무엇인지 가늠해 본다.

 

‘소’또는 ‘군동화’로 기억되는 천재화가 이중섭의 삶을 그린 ‘이중섭1, 2’(다산책방, 2013)를 읽어가는 내내 쉽사리 넘어가지 않은 책장을 탓하며 그의 삶의 궤적을 더듬는다. 학생시절 교과서를 통해 보았던 ‘소’라는 작품으로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화가 이중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도 그를 그린 소설가 최문희의 글로 만나는 이중섭은 눈이 오다 햇볕 나고 어느 사이 검은 구름으로 휩싸인 오늘 하늘처럼 답답하고 을씨년스러우며 불투명하기만 하다. 무엇이 당대 화재의 중심에 서 있었으며 천재소리를 듣던 예술가의 삶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일제강점기인 1916년 평안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오산학교를 다녔고 일본으로 유학생활 중 일본화단으로부터 주목을 받았고 일본인 여자를 만나 사랑했으며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했지만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만 했던 이중섭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본다.

 

소설은 일본인인 이중섭의 아내 남덕이 서귀포 이중섭 기념관에 그의 유품을 기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오며 시작된 이야기는 이중섭이 살아온 행적을 쫒아 그려지고 있다. 일본 유학생활과 그림으로 주목받는 전도유망한 화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갈등하는 모습과 국내활동에서 이중섭이 그의 벗들과의 만남, 그를 떠났던 아내의 일본 생활과 남편의 최후를 지키지 못했던 아내의 심정이 그려진다.

 

“내 생을 관통한 주제는 성(誠)이라는 딱 하나의 가치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들, 하잘것없는 작은 동물이나 식물들 그 각각의 생명에 맥이 있고 혼이 있다는 자연 부동성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소설가 최문희는 이중섭의 이야기를 그려가는 중심에 이중섭의 삶과 예술세계를 성(誠)으로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깊은 무게로 다가오는 것이 있다. “외롭고 서글프며 그리운”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천재화가였을망정 일상에서는 무력한 생활인이었고 무능력한 가장이었으며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도 도망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본, 원산, 부산, 통영, 진주, 제주도 서울, 대구를 떠돌다 결국 적십자병원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던 이중섭 그렇기에 소설속의 이중섭은 변화무쌍한 한 겨울 날씨처럼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그렇더라도 이중섭의 삶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중섭이 살았던 시대상황과 성장하는 과정에서 길들여진 소심함, 현실보다는 이상을 품고 살았던 성품까지 두루 살펴 그를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그를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공감하고 소통하고자 헸던 어쩔 수 없는 몸부림으로 읽힌다면 그나마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그림을 통해 민족혼을 불러온 것에 주목한다. 그의 작품 속에 담긴 친근한 사람들의 모습과 ‘소’로 상징되는 이미지의 속에 깃들어 있는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만약에 화가 이중섭이 일상생활에서 능력 있는 생활인으로 살았다면 오늘날 주목받고 있는 그의 그림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의문이기는 하지만 삶의 무게를 이겨내며 힘겹게 한발 한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전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렸다…사랑해서 그렸고, 그리워서 그렸다”그림밖에 다른 무엇을 할 수 없었기에 그릴 수밖에 없었던 화가의 일상이 무거움을 더해가며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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