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본주의가 온다 - 경제위기 이후 딜레마에 빠진 세계경제를 되살릴 윈윈 솔루션 워튼스쿨 경제경영총서 33
스튜어트 하트 지음, 정상호 옮김 / 럭스미디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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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변화된 모습이 인류의 미래일까?
한국 문학의 거장 조정래의 ‘허수아비춤’은 현재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파헤친 소설이다. 그는 소설에서 자본과 권력이 집중된 사회적 강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강조한다. 가진 자에게 집중되는 것이 자본의 논리라면 그 논리에 의해 사회 경제적 부의 창출과 사회적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간과하거나 일부러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과를 이룰 수 있는 배경에 작용하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역할이 축소 평가된 점을 올바로 평가하자는 이야기다. 그 점을 인정할 때 이후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가는 단초를 만들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극복해 가는데 대단히 시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고도성장을 이룩한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인류사에서 가히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룩한 인류문명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문제 또한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부의 편중, 빈부의 격차, 인간의 도구화와 인간소외문제, 국제적 부의 불균등, 자원의 고갈 등이 그것이다.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재화의 총합은 인류가 먹고 살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하지만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는 대단한 모순이지만 자본주의라는 사회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고자 새롭게 등장한 것이 ‘지속가능성’이며 이에 대해 정부, 기업, 지식인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이는 한 국가 내에서의 문제는 이제 한 국가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과 인류 생존과 직결되는 지구환경의 문제와 결부되어 적극적인 대안 모색을 불러오게 한 것의 일환이라 보인다.

스튜어트 L. 하트의 ‘새로운 자본주의가 온다’는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출발하여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해가는 적극적 대안의 한 축을 이룬다고 보여 진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경제위기를 비롯하여 국제적인 빈곤의 해결, 지구환경의 변화 등에 있어 문제제기로부터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 대안에 대한 모색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는 갈림길에 서 있다.’는 의식의 출발이 모든 출발점이라고 보인다. 사회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직시하고 그 새로운 대안에 대한 모색인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실제 경험을 통해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의 2부 ‘그린을 넘어서서’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창출해 가는 방글라데시 ‘마을 전화’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또한 다국적 기업이 현지에서 펼치는 사업의 방향성의 변화가 현지국가의 기본 경제를 살려가는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음도 확인시켜 준다. 이 모든 것은 그동안 자본주의의 파괴적이며 단속적인 모습이 ‘지속가능성’으로의 변화되어가는 변화를 말해주고 있다.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지구환경에서 인류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지속가능성’으로 인식의 전환 곧 이윤추구가 전부였던 것에서 전 인류의 운명공동체의식으로의 확대를 말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며 지속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기 위해 ‘대기업’, ‘다국적기업’이 바로 그 선두에 설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들이 그동안 축적했던 자본, 기술 등을 바탕으로 인류 공동의 문제를 극복하는 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국제적인 거대자본과 이를 대변했던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고통 받았던 경험이 있는 국가와 민족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미 세계의 중심에 선 선진국, 자본과 기술, 경험의 축적이 완료된 사회, 그 중심에 선 대기업과 다국적 기업이 그들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던 사회를 바라보며 인류공동의 선을 실행하자는 제안이 실현가능성을 바탕으로 한 설득력을 가지려면 무엇이 전재되어야 할까? 우리사회의 현실을 직시해야할 필요가 여기에도 있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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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조진국 지음 / 해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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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지만 결국 혼자인 사랑
손에 잡히지도 않은 인간의 감정이 어쩌면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부인지 모른다. 울고불고 때론 분노하면서도 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짧은 순간 느끼는 행복한 감정이 있기에 삶이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감정의 본질에는 ‘사랑’이 있다. 이 사랑은 성을 달리하는 남녀 간의 사랑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간절하게 원하면서도 막상 자신 앞에 닥치면 한발 물러서게 만드는 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젊은 생각을 담고 있는 이야기를 만난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이 제목처럼 사랑은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동반하면서 오랜 시간 당사자에게 머물러 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살아가는 한 여자가 선배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고 이 둘 사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파도처럼 넘나들고 있다. 그 파도의 중심에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있고 그 여자의 마음 속 이야기들을 그려놓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사랑하게 되면,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빛이 된다. 푹 꺼지고 그늘져 있던 자리가 그 사람이 들어오면서부터 양지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사라지면, 그 사람이 있던 자리는 투명해 진다.’

사랑은 개별 존재인 두 사람이 만나 하는 것이지만, 그 두 사람의 무게중심은 똑같지 않다. 늘 한 사람이 다른 한사람을 더 사랑 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바로 이 점에서 사랑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파도를 넘나들며 한 사람의 가슴은 파도에 의해 멍이 들어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잘못이나 배신을 ‘한 번’은 용서해주겠다는 마음은 과연 진실일까?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는 둘 사이에 존재하는 이방인의 확인되지 않은 문자를 접하며 다짐하는 마음이다. 한 사람을 향한 지고지순한 마음이 상처를 받는 순간부터 그 상처는 오랜 시간 가슴에 남아 두고두고 그 사람을 괴롭히는 도구가 된다는 것을 이미 알기에 ‘한 번의 용서’가 가지는 유용성은 이미 출발부터 한계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놓지 못하는 마음은 바로 ‘더 사랑한 사람이 감내해야할 무게’인 샘이다.

‘겨울 끝에는 봄이 오듯이 내 끝에는 항상 네가 있다.’는 말이 유효한 사랑의 감정이 되려면 현재진행형의 사랑일 때 가능한 것이리라. 이미 사랑이 떠난 뒤 남은 사람의 마음에 남는 것이 봄이 아닌 겨울의 잔재가 남아 오랫동안 오지 않을 봄을 가다리게 만들곤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된다. 언제나 사랑만 받는 사람은 없다. 내가 네 뒤에 서 있듯이, 그 사람은 나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 거겠지. 우리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데 쓰는 거겠지.(중략) 사랑이 존재하는 한, 돌고 돌며 역할이 바뀌는 그 경주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 현재 진행 중인 사람들 사이에 이 말을 인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 말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지금 사랑이 끝나가고 있거나 끝난 사람이 다른 사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기 합리화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때론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타인의 말과 행동에서 확인 받고 싶어 하는 자기 욕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책은 이제 막 사랑을 꿈꾸는 청춘이나 사랑의 아픔으로 다른 사랑이 내게 있을까하는 마음을 가진 청춘들에게 사랑하는 동안 마음속을 넘나드는 파도 같은 너울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설레지만 두렵고, 안타깝지만 황홀한 사랑의 순간순간을 넘나드는 청춘들의 마음이 여실하게 들어나고 있다.

사랑은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 늘 공존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하지 않는 마음 이 양자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자기합리화를 통해 위안 받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지고지순한 사랑을 꿈꾸는 청춘들이 막 시작하는 사랑의 불꽃에 물을 붓는 경우가 될까? 그렇더라도 마법 같은 행복을 꿈꾸게 만드는 사랑은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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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커피
원재훈 지음 / 늘푸른소나무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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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한 잔의 커피가 되고 싶은 사람
습관처럼 찾게 되는 기호품에 자신만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의미를 부요 한다는 것은 별의별 사연이 다 담겨있을 그 기호품으로 결국 담아내는 것은 사람이고 그 사람과의 지난 시간 함께 만들었던 추억일 것이다. 현대인에게 기호품의 일 순위는 커피일 것이다. 커피 잔에 커피를 채워가듯 좋아서 찾고 습관적으로 마시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시간을 채워가는 훌륭한 동반자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이 바로 커피다.

커피에 빠진 사람이 커피와 인간의 궁극적 본능인 사랑을 엮어냈다. 커피와 사랑사이에 바다가 존재한다. 이 절묘한 조합을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격상시킨 사람이 ‘바다와 커피’의 소설가 원재훈이다. 원재훈은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와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냈다. 

원재훈의 ‘바다와 커피’는 두 가지 이야기가 공존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우선 커피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의 인생을 한 잔의 커피로 규정할 만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커피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다. 커피나무의 시원, 커피의 향과 맛, 대륙별 커피 생산지를 비롯하여 생두에서 원두로 원두에서 한 잔의 커피로 잔에 담겨 사람과 만나는 과정에 대한 총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커피향이 스미듯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애잔한 사랑의 이야기가 조용하게 흘러간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다빈과 누리는 섬마을에서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다. 그 섬에는 조그마한 병원과 등대 그리고 등대지기가 지은 통나무집이 있다. 병원의사인 다빈의 아버지와 해군기지에 부임한 누리의 아버지, 등대지기가 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람들이다. 그 속에 누리의 어머니가 바다와 함께 이들 사이를 떠돈다.

다빈과 누리는 섬마을에서의 추억을 간직하며 성장과정에서 서로의 사랑을 키워간다. 젊은 사랑이 그렇듯 이 둘은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데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 다빈과 누리로 인해 섬마을의 은둔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과 세상을 향해 닫힌 마음을 열었던 커피전문점 운영자 아저씨다. 다빈은 그 아저씨로부터 커피의 모든 것을 전수 받는다. 누리의 불치병으로 인해 다빈과 누리의 사랑이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게 된다. 죽음을 앞둔 누리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싶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커피를 만들어 누리에게 주는 것에 누리를 향한 사랑을 담아낸다.

기호품일 뿐일지도 모를 커피에 자신의 모든 마음을 담아 누리에게 바치는 마음, 어쩌면 이런 다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때 사랑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작가 원재훈은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단 한사람을 향해 매일 매일 만드는 커피한잔. 다빈은 그렇게 누리에게 한 잔의 카피이고 싶었다.

일상적인 무엇에 자신만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것은 곧 신앙일지도 모른다. 의미가 부여된 커피는 이미 기호품을 넘어선 그 무엇이 된다. 흔해빠진 커피 그것도 인스턴트커피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삶이 기호품의 범위를 넘어 사람관계로까지 넓혀져 인스턴트 사랑이 난무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는 이 마음을 한 잔의 커피에 담아 타인에게 전하고 싶은 지고지순함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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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한 사회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지음, 노택선 옮김, 신상민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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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오늘의 현실사회를 봐야 하는가?
한 사회의 가치를 판단할 때 중요한 기준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경제력에 의한 판단일 것이다.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다른 모든 상황을 미루고 선진사회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우리나라 역시 모든 경제정책의 방향이 경제적 부를 최우선으로 하는 선진사회를 지향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경제적 부의 정도가 사람과 사회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고 할 수 없지만 중요한 판단의 기준임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사회는 선진사회로 가는 과정의 어느 수준에 있을까?

한 사회가 처한 조건을 명확하게 판단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점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 사회의 수준을 파악하는 기준을 선정하고 그 기준에 의해 판단하게 될 때야 비로써 한 측면일지라도 그 사회에 대한 규정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풍요는 우선 경제적 용어다. 풍요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빈곤을 찾는다면 보다 명확한 규정이 되지 않을까 한다. ‘빈곤의 사회에서 탈출하여 풍요한 사회로의 진입’은 그렇기에 현대사회에서 모든 국가들의 화두가 될 것이다.

‘풍요한 사회’는 존 갤브레이스의 저작으로 1958년에 출간되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읽혀오고 있으며 2006년 출간 40주년을 맞아 새롭게 발간한 책이다. 저자 존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는 케나다 출신으로 케나다를 비롯하여 미국, 영국 등에서 수학하고 하버드대학에서 강의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진보적 경제학자로 경제학뿐만 아니라 경영학, 역사학, 사회학 등에도 업적을 남겼다. 주요 저서로 ‘풍요로운 사회’와 ‘불확실성의 시대’가 있다.

저자는 풍요한 사회는 빈곤을 제거해야하는 지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점을 기본 전재로 출발하고 있다. 자본주의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분명 경제적 가치의 생산과 그 결과물의 분배에 있을 것이다. 그는 대량소비 시대의 미국을 비판적 시각으로 분석하면서 주류경제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는 생산과 소비의 이론이 일정한 한계에 봉착했음을 지적한다. 자본주의의 문제 중 하나인 개인의 탐욕이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로 귀결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강력한 정부의 역할을 제기한다. 높은 세금과 큰 정부, 정부의 개입, 그리고 사회복지 강화 등이 그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 사회를 본다면 지금처럼 풍요로운 사회는 없었다. 그 풍요가 일부에 편중되고 그 비중이 날로 극대화되어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혼자 살지 않는 사회이기에 이점은 상대적 빈곤과 그로인한 박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로 내몰고 있다고 보여 진다. 자본주의 사회는 부의 편중은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빈곤층에 대한 생산된 재화의 분배는 그만큼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딜레마가 될지라도 사회 구성원 사이 양극단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진다면 ‘풍요로운 사회’로의 진입은 불가능한 목표일 것이다. 

이 책에서 사회를 분석하는 다양한 기준들을 통해 우리 사회 현주소를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된 점이 다소 어려움을 느끼더라도 끝까지 읽어간 독자들에게 소중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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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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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이 운명일까?
모든 사람의 로망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랑을 이루는 것이리라. 하지만 지금 사랑이 바로 그 사람인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람이 사랑이라는 구체적 증거를 찾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에는 그 사람이라고 확신할만한 구체적 증거가 있기나 한 것일까? ‘포기하지 않는다면 운명의 짝은 반드시 나타난다.’ 고 믿고 싶은 것이 사랑을 찾는 사람들이 거는 기대일 것이다.

자신에게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는 일본 작가 시라이시 가즈후미의 중편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와 ‘둘도 없이 소중한 너에게’라는 두 편의 연애소설을 엮은 책이다. 당연히 두 소설의 중심주제는 사랑이다. 

첫 번째 소설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는 명문 가문 출신이지만 잘 나가는 가족 구성원과 비교해 심각한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가는 남자가 가족으로부터 정해진 약혼자와는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결혼한 여자 다른 사람을 잊지 못하고 가출하면서 자신의 사랑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그 남자는 운명 같은 사랑에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남자는 직장 상사와 자신의 이러한 고민을 나누는 과정에서 상사와 결혼한다. 폐암의 재발로 재혼한 사람도 그 남자의 곁을 떠나가고 혼자 남은 그 남자의 기억 속에 ‘향기’가 남아 있다. ‘그녀의 향기’가 어쩜 운명 같은 사랑의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두 번째 소설 ‘둘도 없이 소중한 너에게’는 속칭 불륜 사이의 남녀의 사랑을 그려간다. 유부남 직장 상사를 만나 사귀다가 헤어진 여자는 약혼자와 결혼을 앞두고 다시 그 유부남을 만난다. ‘나는 사실 이런 관계가 제일 좋아.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하고 싶을 때 하고, 그러면 후회도 안 하고, 질투나 집착도 없지’라고 말하는 유부남 상사와의 변태적인 육체적 사랑이 주를 이룬다. 다니던 회사의 합병과정에서 유부남 상사는 사직하고도 그 관계는 지속된다. 여자는 결혼식 전날 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만남을 위해 남자 집을 찾아가지만 그 남자는 이미 이사를 가고 없다. 그들이 진정으로 찾는 것은 자유로운 영혼인지도 모르겠다. 

부인의 불륜을 바라보는 남편의 우유부단한 마음상태나 약혼자가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약혼자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 등을 그려가는 저자의 섬세한 심리변화가 돋보이는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증거를 찾고자하는 운명 같은 사랑이나 육체적 사랑의 쾌락을 즐기면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랑이나 결국 그 사랑을 느끼고 확신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그 사랑의 중심은 남녀 양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이 규정해 놓은 사랑이라는 울타리를 상대방을 통해 확인해가는 것이 어쩜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된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의 감정은 아닐까? 그렇기에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라고 하는 한 사람을 사랑으로 확인할 증거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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