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록 - 죽어서 가는 길, 증보판
하순천 지음 / 대도대한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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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죽음이후 보다 현실의 삶이 충실하자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은 피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생명이 끝나는 죽음이 그것이다.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다양할 것이지만 대부분 피하지 못하는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것도 죽음 이후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그 중심에 있는 것이다. 또한, 알 수 없기에 두렵고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감감한 현실이 죽음이후 에 대해서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배경이 되었다. 

종교를 비롯한 무속이나 사이비로 표현되는 많은 집단들이 등장하고 알수 없어 두려운 사란들의 마음을 이용 물의를 일으키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물질문명의 발달이나 과학의 진보로 인해 인간이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 많은 분야에서 확장되었지만 여전히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한 분야는 미지수로 남아 있어 종교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역시 사람에 따라 선택하는 종교도 다르고 각 종교마다 배타적인 분위기는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알 수 없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보고 지금의 삶에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들이 제법 눈에 띄게 출간되기도 한다. 이 책 ‘인비록’ 역시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책이다. 

이 책은 우선 종교와는 차이가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을 ‘감찰사’라고 부르고 있는 저자는 유불도의 가르침에 통달하여 정관법으로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은 세계와 죽음이후 세계에 대한 자신의 진솔한 경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선, 저자는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하늘도라고 하는 수련을 접하게 된 배경과 수련의 과정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담아내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을 밝힌다.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경험과 더불어 성장과정에서 겪은 정신과 육체의 혼란스러움을 극복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을 하늘법 수련으로 이끌어준 도사와 스승님에 대한 이야기, 사후세계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전생과 현생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자신의 체험한 이야기를 차례로 펼쳐놓고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살아가는 사람 누구나 관심을 갖는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펼쳐 놓고 있기에 더 흥미로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가 펼쳐내는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마치 무협지의 한 장면 같은 이야기들의 연속은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하고 내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하는 생각이 공존한다. 

또한, 유불도, 삼도의 가르침을 통달했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늘도에서 이야기하는 기도와 수도방법이 마치 유불도의 다양한 이야기와 민간신앙의 부분을 차용하여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물론 목자들의 몫일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분명 인간의 수명은 늘었다. 이대로 간다면 100년은 거뜬하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죽음을 맞이할 순간에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바도 있지만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더 큰 관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런대로 잘 살았다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다면 사후세계도 그리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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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과학을 탐하다 - 우리가 궁금해 하는 그림 속 놀라운 과학 이야기
박우찬 지음 / 소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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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과학자들의 발명품이나 예술가들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 사고의 전환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하나 둘 따지고 보면 그 새롭기만 한 것은 앞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심혈을 기울려 만들어 온 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처럼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 말이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분야가 예술분야가 아닌가 한다. 예술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시간과 싸움하며 만들어내는 예술품 모두는 순수하게 그 예술가의 새로운 시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예술가가 살았던 그 시대의 모든 학문의 총화가 모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질적 전환을 이룬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하면 서양미술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시각은 미술사를 따로 거론하지 않더라도 서양미술이 차지하면 지위와 무관하지 않다. 서양미술이 오늘날처럼 이러한 독보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다양한 사조를 형성하며 눈부신 예술작품을 남긴 서양의 예술가들이 그런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점은 무엇보다 특출한 예술가의 독창적인 노력도 물론 중요한 것이 되지만 더불어 서양의 물질문명의 변화와 발달이 큰 몫을 하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미술, 과학을 탐하다’는 서양미술에 근간을 두면서 미술작품에 담긴 과학의 성과를 찾아내고 미술이 다양한 사조를 형성하며 발달해온 배경과 과정을 살피고 있다. 이야기의 순서는 미술과 과학의 상호관계를 바탕으로 유명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그 이야기의 중심이 미술표현기법의 변화과정이다. 저자는 ‘현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화면에 옮기는 일’을 미술의 꿈으로 보았다. 하지만,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표현기법이 당시의 과학의 성과와 결합하여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 내고 그 꿈을 화폭에 담을 수 있었다. 

책의 이야기 흐름은 미술사조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새로운 표현기법의 필요성이 과학을 원하고 있었다는 점, 그런 미술가들이 과학의 성과와 만나 당시까지 실현할 수 없었던 한계를 차례로 극복해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삼차원의 현실공간을 이차원의 평면에 실감나게 옮기란 대단히 어려운 점이었지만 이를 해결해간 것이 바로 과학의 성과를 도입한 결과 때문이다. 

원근법, 해부학, 명암법의 도입으로 눈에 보이는 현실을 화폭에 담아내기에 성공한 화가들은 그것에 멈추지 않고 이차원의 평면을 실체감을 불어넣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이 있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의 재현이 아니라 이상화 시킨 것이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현실의 직접적인 재현을 이룰 수 없었다. 

여기에서 미술이 과학을 꿈꾸게 된다. 수학, 사진, 역동학, 광학 등의 힘을 바탕으로 실재하는 것을 만지듯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대 관건은 질감의 표현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빛에 대한 탐구가 요구되었다. 나아가 순간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운동성과 시간을 평면에 재현하기에 이른다. 이후 미술과 과학의 만남은 분석과 상대성이론, 정신분석을 넘어 구조와 속도, 사차원, 무의식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도 표현하기에 이른다. 

오랫동안 미술의 꿈이었던 현실의 재현이 실현되는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처럼 미술과 과학의 만남은 현대 사회의 화두가 되는 통섭이나 융합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시각에서 저자의 의도와는 동떨어지지만 내가 주목하는 점은 서양미술이 이렇게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며 꿈을 이뤄가는 동안 동양의 미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점이다. 이를 저자의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찾아본다. 산업혁명을 비롯한 급속한 사회의 변화가 이를 담고 표현하려고 했던 미술로 이어져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쳤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동양은 그러한 변화를 겪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양 미술에 대한 번역서가 넘쳐나는 시대에 보기 드물게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인 저자가 미술의 지평을 넓히고자 집필한 저술이다. 저자의 글쓰기는 어려운 이야기를 그림과 더불어 알기 쉽게 표현하고 있다. 미술에 관심 있고 서양 미술사조의 흐름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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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인의 향기 - 스물여섯 가지 향기를 간직한 사랑이야기
이수광 지음 / 미루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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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사랑을 통해 조선을 보다
인간의 영원한 화두는 사랑이다. 역사 이래 사랑으로 인해 사람의 목숨까지 좌지우지하는 경우를 볼 때 분명 그 특별한 힘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다양한 사랑의 모습 중에서 단연코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남녀 간의 사랑일 것이다. 수도 없는 문학작품 역시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대신할 위안거리로 삼기도 한다. 

남녀 간의 사랑 중에서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이뤄지지 못한 애절한 사랑이나 사랑으로 인해 목숨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례가 아닐까? 그렇게 이루지 못한 사랑의 모습은 대부분 남자들에 의해 초래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남성중심주의 사상이 의해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는 여성들이 많았다는 역사적 경험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을 것이다. 

이 책 ‘조선 여인의 향기’는 바로 조선이라는 사대부,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신분사회를 살았던 여인들의 사랑을 담고 있다. 조선에서 여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조선 신분사회의 팔천으로 구분되어 사회적 멸시와 냉대를 받았던 천민의 삶 그것과 비교해도 많은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험난한 삶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회를 살아가는 중에도 인간이 가지는 본성일 이성에 대한 마음을 있었으며 사회적 한계로 인해 더 애절함을 담기도 했던 것이다. 

여인들의 사랑을 매난국죽(梅蘭菊竹)으로 표현하며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이 책은 매화의 은은한 향기를 간직한 여인, 난초의 그윽한 향기를 간직한 여인, 국화의 깨끗한 향기를 간직한 여인, 대나무의 푸르른 향기를 간직한 여인을 각종 문헌이나 설화 등을 조선의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이나 용재총화, 청파극담, 문소만록 등 기록한 다양한 책에서 가져와 출처를 밝히며 저자 이수광의 상상력이 더해진 이야기들이다. 신분이나 나이 등을 초월한 모두 스물여섯 여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조선의 여인은 어떤 삶은 살았을까? 조선 여인의 삶을 관통했던 것은 조선을 유지했던 기본 사상인 유학이었다. 유학의 기본이념은 효와 예였다. 이는 조선이라는 사회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었기에 남성과 가부장적인 의식을 배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곧 여인들의 삶에 그대로 관철되어 부모와 남편, 자녀에 자신을 희생하도록 강요하게 된다. 이러한 삶이 여인들의 생활을 구성하였기에 조선 여인들의 사랑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난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애절함이나 애틋함은 이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조선이라는 사회의 근간을 벗어난 사랑을 꿈꾼 사람도 있고, 남편을 향한 마음이 넘쳐나는 이야기, 천한 신분이지만 남성을 향한 마음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버렸던 사람, 기생으로 천하를 호령하며 이름을 떨쳤던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또한 이야기 중 등장하는 남성이지만 주인인 여인이지만 그 여인을 향한 마음이 임금을 감동시킨 남자이야기도 있다. 저자는 이러한 여인들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조선 여인들의 구구한 삶을 조명하고 싶어하고 있다. 사랑을 이루었던 이루지 못했던 간에 그 사랑의 모습 속에서 당시를 살았던 부인, 노비, 기생, 애인들의 삶을 얽어매었던 사회구조적 모순을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또한 그 어떤 사랑도 당사자 외에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그 무엇이 있다. 이는 시대를 불문하고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땔 수 없는 인간 본성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환경이나 조건 등을 따지며 지고지순한 사랑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사랑의 근본에는 변함을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여인들의 사랑에서 역설적이지만 그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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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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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늦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후회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그 일은 나이나 성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늘 늦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양 사상에서 으뜸이라고도 하는 부모에 대한 마음이 그것이다. 가까이 있을 때, 생존해 있을 때는 알지 못하던 것이 부모가 돌아가신 후 그분들에 대한 마음으로 주체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효라고 한다. 부모의 몸을 빌어 세상에 태어난 자식이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일찍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그렇게 다가오는 것일까?  

한때, 나 역시 ‘내리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부모에게 받은 가없는 사랑을 자식에게 쏟아 붙는 것으로 위안 삼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 삼더라도 가시지 않은 마음속 무게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태어나면서부터 안고 있는 원죄처럼 부모를 가슴에 담은 속내와는 다르게 나타나는 모습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꼭 돌아가신 후에야 다하지 못한 마음을 부여잡고 통곡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답은 없는 것일까? 

인간의 이러한 마음을 헤집는 작품을 만난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작품을 통해 애써 외면해왔던 마음속 불편함을 끄집어낼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내 마음에 담긴 부모에 대한 애뜻함을 다 하고 있는 것인지...를 아프게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지하철 서울역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친 엄마가 사라진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가족 구성원의 간절한 마음과 그들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는 엄마와의 새로운 만남을 절절하게 그려가고 있다. 잃어버린 것인지 잊어버린 것인지 일상에서 엄마의 존재는 크지 않았다. 굳이 엄마를 찾게 될 때는 무슨 일이든 일어나 엄마라는 존재가 필요할 때였다. 그런 딸, 아들이 엄마는 엄마로 세상에 나타나 그런 존재로 함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말에 다 담긴 듯하다. 둘째딸의 고백 속에는 우리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던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가족 구성원 중 큰아들과 큰딸, 작은딸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의 고백이 담겨 있다. 그들은 제 각각의 방식으로 엄마를 가슴에 담아두었고 그렇게 담긴 엄마라는 존재는 늘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것이 당연시되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사라진 후, 하나 둘 되살아나는 기억 속에 그들이 놓치고 지나왔던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그들뿐 아니다. 엄마의 태를 자르고 내어난 모든 인간이 놓치고 살았던 것을 대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자식이든 남편이든 그들이 토해놓는 절망의 몸부림은 그나마 이해가 간다.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리라. 엄마 자신이 떠나지 못한 이승의 마지막을 들르듯 둘째딸의 집을 찾아 막내에 대한 엄마의 또 다른 마음을 털어놓고 있다. 이 역시 상황이 변화된 이후 엄마 자신이 스스로를 찾는 과정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시점에만 머물고 있지 않는다. ‘그 남자’라는 존재를 드러내는 엄마는 엄마라는 존재를 벗어나 여인이며 한 인간으로써의 자신을 보이고 있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그 남자에게 조차 드러낼 수 없었던 마음에서 엄마는 비로써 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소설의 완성은 독자의 몫입니다. 소설의 마침표는 작가가 찍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독자의 마음에 어떤 무늬를 그리면서 찍혀진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이 말이 현실로 와 닿는 것이 나 혼자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작품을 접하는 모든 사람뿐 아니라 이 순간 부모를 생각하는 사람 모두가 이야기 속 ‘너’가 되어 지금 당장 자식의 마음을 전할 그 어떤 것이든 찾는 것이 작품을 대한 사람이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이리라. 작가와 독자 그리고 문학 작품 상호간의 교감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가 그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여, 누구나 후회하는 일일지라도 누구도 늦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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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즐거움 -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는 나만의 행복 찾기
사라 밴 브레스낙 지음, 신승미 옮김 / 토네이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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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무것도 안해도 되?
현대인들에 대한 일면을 나타내는 말로 군중속의 고독이 있다. 얽히고 얽힌 무수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한순 돌릴 틈도 없이 바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리 속에서 고독을 느낀다는 아이러니가 실재하는 것이다. 고독하고 외로워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허전함을 채워가기에는 뭔가 빠진 것이 있다. 무엇일까? 

사람들 사이 관계에 치이고 일에 묻히고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정작 챙기고 보듬어야할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 현대인의 삶이 아닌가 한다. 하여, 일상의 무게를 벗을 수 있는 나이에 들고 현직에서 물러난 후에야 자신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꼭 그 이유만이 아닐지라도 나이 들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고 그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을 볼 때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사라 밴 브레스낙의 ‘혼자 사는 즐거움’은 사회적 존재라는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혼자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 자식, 배우자, 직장동료, 친구, 선후배 등 이런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그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을 때 삶의 진정한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일상과 밀접한 이야기를 근거로 세계 각국 예술가, 사상가, 문학가, 철학자 등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얻은 삶의 지혜를 예로 들며 ‘혼자 사는 즐거움’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사소한 감정에서 출발할 때도 있고 때론 제법 무거운 주제라 할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이야기도 포함된다.  

주변을 둘러봐도 자신만이 무거운 짐을 지고 버겁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과 어울려 봐도 일 속에 묻혀 봐도 시간을 내 여행을 다녀와도 내려놓을 수 없는 마음의 무게를 줄일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럴 때 저자는 말한다. 과감하게 일상을 벗어나 혼자 있어보라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혼자 있을 비로써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진정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렇게 혼자 있으려면 커다란 용기가 필요함도 말하고 있다. 사회적 관계에서 소외되는 두려움이나 주어진 임무를 방기하는 책임감 등을 내려놓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라고 한다. 

인적이 드는 공원 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볼 때, 한적한 숲길을 걸으며 보고 느끼는 자연, 혼자 찾는 영화관, 혼자 운전하다 문득 바라본 저녁노을이 주는 감동 ...... 이러한 것들은 느끼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 중 하나이다. 누구라도 느낄 수 있지만 누구나 느끼는 것은 아니다. 순간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에 마음을 열고 느낄 준비를 해온 사람만이 느끼는 것이리라. 

이처럼 저자는 혼자일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소중한 추억 수집하기, 정지하는 법 배우기, 불평하고 잊어버리기, 하루에 하나씩 모험하기, 행운 심어놓기, 희망상자 만들기, 좋아하는 색깔 만들기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 누군가는 하고 있는 방법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즐거움을 누리기 어려운 것은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엇이든 습관이 되려면 21일은 계속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을 해야 비로써 자신이 원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늘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기에 혼자임을 느끼게 되면 두렵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 놀던 사람도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혼자 마음속에서 울리는 감동을 스스로 느낄 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물질적 풍요, 넓은 평수의 집, 높은 사회적 지위가 진정한 내 삶의 의미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제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내 인생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자신을 인정하며 사는 것이리라. 삶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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