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고함 - KBS 국권 침탈 100년 특별기획
KBS 국권 침탈 100년 특별기획 '한국과 일본' 제작팀 지음 / 시루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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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양국이 공존할 수 있는 출발점은?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인간에게는 유전자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해져오는 민족감정이라는 것이 있다. 국경을 맞대고 살아가는 이웃나라 중에서 한국과 일본처럼 이 민족감정에 휘둘리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두 나라사이는 뭔가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민족감정의 극대점을 보여주는 것이 스포츠 경기 바라보는 양국의 국민들이다. 가까운 역사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 기억과 최근에 벌어지는 독도를 둘러싼 일본의 억지주장에서 이웃나라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나라가 됨을 확인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처럼 민족감정 속에 흐르는 적대적인 모습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것일까? 한국과 일본의 교류의 역사는 2000년이 넘어선다, 그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양국 간의 역사에서 이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 ‘일본에 고함’은 국권침탈 100주년을 맞아 한국방송이 기획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책으로 만든 것이다.  

 

기획 의도는 분명하다. 이웃나라 일본과 지금의 관계로는 양국 모두에게 실익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양국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하여, 한국과 일본 역사 2000년을 ‘인연, 적대, 공존, 변화, 대결’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살펴 미래 한국과 일본의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중심 키워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한국과 일본의 상호관계를 중심으로 살핀다. 우선, 인연은 ‘백제’와 ‘왜’가 교류하는 출발이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거치며 그동안 역사적 사실로 이야기된 배경을 찾아 당시 시대적 상황과 국제적 역학관계를 살피고 있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인연을 그렇게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중국대륙의 정치적 변화와 한반도 상황 그리고 일본 열도 내 정치상황이 밀접하게 영향을 미쳐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적대적 관계로 빠진다. 하지만, 이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여 모색한 것이 양쪽 모두가 살 수 있는 공존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이런 공존이 틈이 생기는 시대가 일본 열도에서 정치적 변화가 이뤄진 때론 맥을 같이한다. 사무라이 막부가 정권의 중심에서 있었던 일본 열도는 천황을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집권 정치체제를 수립하며 그런 과정에서 소외된 세력의 혼란을 내부에서 외부로 시선을 돌리는 과정이었다. 바로 한반도에 대한 전쟁준비가 그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200여년 유지되었던 공존이 무너지고 일제에 의해 조선이 국권을 침탈당한 일제강점기에 이른 것이다.  

 

‘인연, 적대, 공존, 변화, 대결’의 관점에서 살핀 한국과 일본의 관계사에는 200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양쪽 모두에게 결코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긴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민족감정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민족문제는 각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물러설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답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달라진 시대상황에서 양국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다가올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획 의도 에 부합하는 내용의 흐름을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송 원고를 책으로 편찬하다보니 너무 간략하게 정리해 글의 흐름이 단절되는 측면도 있다. 그렇더라도 한반도와 일본의 2000년 역사를 특정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살펴 그 흐름을 정리한 점과 이를 통해 양국은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사돋보기’는 중요한 핵심사항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민간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부의 정책은 심히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독도를 둘러싼 공방에서 그간 한국정부의 조용한 외교가 얼마나 실효를 가져왔는지 심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목적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상대방의 심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대응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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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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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터전을 사랑하는 법
철들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생활근거지는 한 곳이었다. 출퇴근하는 길 마주대하는 풍경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마음에 늘 새로운 모습으로 대하며 살아가지만 막상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만큼 잘 알고 있는 것 또한 그리 많지 않음을 알고 있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게으른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답사기가 주목받기 이전부터 전국을 돌며 살폈던 우리 것에 대한 관심보다 가까이 내 주변을 살피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살았던 도시를 떠나 시골로 보금자리를 옮기면서 다짐한 일이 있다. 옮겨간 지역의 역사를 비롯한 산재한 문화재와 현재의 모습을 재대로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마을 인근에 보물로 지정된 탑도 있고, 유서 깊은 사찰도 있으며, 미술관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먼저 둥지를 틀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흔적이기에 앞으로 살아갈 곳에 대해 애정을 가지려는 마음에 옛사람들과 교감하는 삶이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렇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지역이 가지는 의미를 더해 의미 있는 작업을 진행한 사람이 있다.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한 후 저작활동도 하고 있는 이장희가 그다. 그가 마음을 담아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서울 시간을 그리다’를 발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중심무대는 서울이다. 한 왕조 500여년의 도읍지였으며 현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의 현재의 모습을 오랜 시간 발품 팔아가며 스케치한 그림과 함께 담았다. 

1000만이 넘게 살고 있는 도시, 서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주목한 것은 역사의 숨결이 명맥을 잇고 있는 곳의 모습과 현재 살아가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이 겹치는 현장이다. 그곳이 어딜까? 조선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담고 있는 경복궁을 중심에 두고 북한산, 서울성곽, 낙산, 남산, 숭례문, 경교장, 딜큐샤,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외곽을 이였을 때 고스란히 담기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궁궐 영역과 광화문, 청계천 효자동, 인사동, 혜화동 등이 위치한다.  

우리는 서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가 발품 팔며 살펴본 서울은 정체성 혼란에 휩싸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역사는 무분별한 개발과 정책의 부재로 사라지고 있으며 새로운 서울은 훗날 모습이 어떻게 될지 상상을 불허하는 난개발이다. 하지만, 역사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어울려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현재의 모습 역시 역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남겨 후손에게 전해야 할지 성의 있는 고민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서울은 그저 그런 한 도시의 위상을 넘어선 무엇이 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수도이기에 한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하여, 각 나라를 대표하는 도시로 그 나라의 수도를 선택해 그곳의 모습을 통해 그 나라를 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500여년을 이어온 왕도와 현대가 조화롭게 어울려 우리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과감하게 후손의 몫으로 남기더라도 조상의 삶이 담긴 역사의 현장이 사라지게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발끝에 체이거나 도로를 향해 있는 표지석을 바라보는 마음이 무거운 것이 이 때문이리라.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무게감은 크다. 그 무게감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현장의 모습을 담은 스케치와의 결합은 이를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케치는 현장의 모습을 온전히 전해주기엔 부족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실감나는 스케치와 저자의 애정이 담긴 시각은 조화를 이룬다. 어느 점에선 사진이 담을 수 없는 정서까지 담아내는 장점이 있다고 보여 진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든 방문자에게든 서울을 훌륭하게 안내하고 있다. 

저자가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힘에서 가능한 것일까? 현장을 스케치하고 이야기를 조사하며 글로 남길 수 있는 바탕엔 천천히 느리게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 했다는 것이 아닐까? 독자들도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천천히 오랫동안 바라본다면 그때 바라보는 것은 이처럼 다정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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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동양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1
정약용 지음, 노태준 옮김 / 홍신문화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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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은 목민(牧民)을 알까?
서울특별시장이 사퇴했다. 예부터 서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시이자 국가행정의 축소판으로 그 의미를 부여하며 한 나라를 대표하는 중요한 도시다. 조선시대 한양이 그러했다. 하여, 한성부 판윤은 정2품의 관직으로 중앙요직과 더불어 그 위상이 대단히 높았다. 현장 목민관으로 대표되는 자리이기에 그만큼 그의 행보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늘날도 그 지위는 여전하여 여야를 막론하고 기필코 차지하고 싶어 하는 자리다. 하지만, 2011년 서울시장은 불명예스럽게 자신 사퇴한 것이다. 이 사퇴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지만 박수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그를 사퇴하게 만들었을까? 한 지방의 행정책임자로써 자신의 한계를 느꼈기에 그랬다고 본다면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지방행정의 책임자에 대한 조선후기 한 학자의 저서 ‘목민심서’는 우리시대 다시금 지방행정 책임자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경계하는 바를 살펴봐야할 의무감 같은 것이 생기게 된다. 

‘목민심서’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신유사옥으로 유배를 가 20여년 가까이 살았던 전남 강진에서 해배되기 바로 전에 집필한 저작이다. 방대한 정약용의 저작들 중에서도 주목받는 저작으로 꼽히는 목민심서는 지방행정책임자인 목민관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조선후기 관리들이 자행하고 있었던 각종 불법과 파행적인 모습을 심도 있게 비판하며 철저히 백성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고 올바른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지침서라 할 수 있다. 

목민심서는 12편 72조로 구성되어 있다. 목민관으로 임명되고부터 부임하고 업무를 펼치며 이임할 때까지 각각에 해당하는 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포함되는 것으로 12편은 부임, 율기, 봉공, 애민에 이어 육전에 해당하는 이, 호, 예, 병, 형, 공 그리고 진황과 해관이다. 이 12편을 다시 6조로 세분화하여 총 72편이 된 것이다. 정약용은 자서에서 집필 동기를 밝히며 목민에만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덕을 쌓기 위한 것이며 유배자인 자신의 처지를 반영해 목민할 마음을 담아 심서라 했다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정책이라도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정약용이 살았던 조선 후기는 급작스런 정조왕의 죽음으로 인해 개혁이 좌절된 시기라고도 한다. 하여 이후 조선은 겉잡을 수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을 맞았으며 정조왕의 개혁적인 정책은 수포로 돌아갔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바로 이러한 시대를 반영한 것으로 당시 무엇이 올바른지 넘어야할 산은 또 어떤 것이 있는지를 지방 목민관의 현실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렇기에 위로는 조선의 법전이었던 경국대전이나 속대전 등의 법률로의 집행에서부터 아래로는 각 지방에서 관행적으로 행해졌던 관례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밝히고 있다.  

그 밝힘의 정도가 목민관이 지방행정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며 아주 풍부한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바로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지침서의 성격이다. 특히, 조선 후기 부패의 극에 달한 지방의 정치의 실제와 민생 문제 및 수령의 본 업무와 결부시켜 소상히 밝히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이 모든 정책의 중심에 백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목민심서가 저술된 시점과 현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많기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올바로 보고 이를 개혁하고자 했던 마음만은 올바로 이어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한문으로 작성되어 있다. 이를 현대어로 번역하고 72조 각 항목에 역해자의 해설이 실려 있어 원문을 접하기 어려운 현대인에게 아주 유용하게 읽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문을 해석하며 주요한 단어들은 따로 설명해 둔 점이 원문을 읽어가며 한자에 대한 이해가 약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있을 때는 혁혁한 명예가 없고 떠나간 뒤에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오직 공을 자랑하지 않고 남몰래 착한 일을 한 자일 것이다.”(목민심서 12 해관 6조 유애의 일부) 

2011년 하반기를 포함하여 계속되는 선거는 바로 행정책임자들을 뽑는 절차다. 마지막 여름의 더위를 더하게 만들고 있는 서울시장 선거 물마 예상자들의 행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들에게 자진사퇴를 결정한 전임 서울시장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행정책임자로써 의무와 역할보다는 그 자리가 주는 위상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조선 후기 유배자의 신분으로 목민심서를 저술한 정약용의 마음은 찾아 볼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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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이 하하하 - 뒷산은 보물창고다
이일훈 지음 / 하늘아래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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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서 찾는 희망
생활의 공간을 도시주변 시골로 옮겼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이 아침 풍경이다. 도시에선 잠에 빠져있을 시간인데 어김없이 눈이 떠지면서 먼 산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중첩되어 보이는 고만고만한 산이지만 하루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을 정도다. 그 시간에 일어나 가꾸기 시작한 텃밭도 돌아보고 아침공기를 마시는 시간이 제법 쏠쏠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이사한지 어느덧 두어 달이 되어가면서 기분으로는 정착해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난 일요일, 일찍 눈을 뜨고 그대로 길을 나섰다. 마을 논과 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뒷산으로 이어진 길을 걸어보기 위해서다. 일찍 밭에 나온 할머니와 인사도 나누며 처음으로 걸어보는 길이다. 어디로 이어진 길인지 그 길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 설레는 마음이다. 5분여를 걸어 갈림길을 만났다. 산길로 이어진 곳과 마을을 감싸고도는 길 중 어느 길로 가볼까? 이번엔 마을 외곽을 둘러싼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논과 밭, 대나무 숲 길가에 핀 여러 가지 들풀들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자주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엔 산길로 들어서 뒷산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아직 길이 있는지 모르기에 뒷산 아래 저수지로 이어진 길이 있다면 마을 둘레길 과는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앞산은 멀다. 멀기에 멀리 조망하며 느끼는 느낌이 좋다. 하지만, 뒷산은 그런 앞산과는 사뭇 다른 맛을 전해준다. 하여 뒷산은 가까이 느껴진다. 거리상으로도 가깝기에 더 가까이 하고 싶은 산이다. 달뜨는 밤이면 달이 지는 산이기도 하기에 그 뒷산으로 산책이라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뒷산에 깃든 넉넉함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가보지 않아 모르지만 등산로도 없어 보이고 약수터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뒷산이 정겨운 것은 가까이 있어 금방이라도 오를 수 있을 것처럼 만만해 보이기도 해서다. 

도시에 살던 때, 가끔 오르던 뒷산은 제법 시끌벅적했다.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곳이어서 사람이 많고 가까이 있는 뒷산엔 등산로가 있어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할 이야기가 많다는 말로도 통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바로 ‘뒷산이 하하하’다. 저자는 이런 저런 글로 이미 지명도가 있는 중견 건축가 이일훈이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뒷산은 서울과 경기도 경계를 이룬 만만한 동네 뒷산이다. 자그마한 산에 약수터가 여럿 있어 그 터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곳은 ‘지양산’이다. “앞산은 보는 산이지만, 뒷산은 동네를 품은 산”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뒷산은 나를 품고 있기에 ‘아늑함’을 느끼고 때론 ‘만만함’ 마저 일어난다. ‘만만하다’는 말은 거리감이 덜하며 언제 어느 때 찾아도 반겨줄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기분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도 할 수 있다. 

“아무 일 없을 것같이 겉모습 조용한 약수터도 사람이 꼬이는 곳이라 별별 일이 다 있다. 하긴 모이는 사람 없이 물만 나오면 약수터가 아닐 것이다. 근본적으로 약수터는 사람의 터다” 

그런 곳에 약수터가 있다. 그것도 세 곳이나 말이다. 저자는 그 약수터를 중심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는 주변 환경을 살피고, 자연환경에 눈길을 주며, 시간을 거슬러 사람들의 흔적을 담아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으뜸이다. 그곳은 사람들의 삶의 공간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그곳 역시 사람 사는 모습을 그대로 닮았고 또 담고 있다. 단연, 약수터를 중심으로 이뤄진 곳이기에 약수와 관련된 이야기가 중심이다. 약수터 풍경은 곧 사람 사는 모습의 축소판인 것이다.  

그런 뒷산에서 저자가 찾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약수터를 찾는 사람들의 속내가 무엇인지가 우선일 것이다. 약수터는 물이 목적인 것처럼 보이는 외양이지만 물이 전부는 아니다. 저자가 뒷산 약수터를 주목하는 이유가 그곳에 있는 것이다. 음용수로 부적합이라는 판정을 받는 순간 몰렸던 사람들이 사라진 것, 그 약수터가 부적합을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약수터가 존재하는 뒷산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욕심까지 저자는 그 속에서 사람의 미래를 내다보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자연과 멀어지며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에게 찾아온 것은 각종 현대병이다.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감이며 이를 가장 만만하게 보여주는 곳이 뒷산이고, 뒷산에 있는 약수터다. 이렇게 사람이 만만하게 찾는 곳에서부터 오늘을 치유하고 미래의 희망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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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절밥 한 그릇 - 우리 시대 작가 49인이 차린 평온하고 따뜻한 마음의 밥상
성석제 외 지음 / 뜨란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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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닌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생각하자
걸어서만 갈 수 있는 곳에 암자가 하나 있다. 현대인처럼 편리성과 빠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는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나 보다. 건장한 사내의 걸음으로도 한 시간여 산길을 올라야 비로써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절집은 오롯이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곳에 어떤 인연이 되어 화창한 봄날 오후 한나절을 꼬박 그곳에서 보냈다. 숲속 여기저기 피어나는 들꽃, 절 집을 지키는 전나무 사이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스님의 귀한 차 한 잔보다 발아래 펼쳐진 세상이 더 눈에 들어오는 마당에서 서성이는 마음을 다독여주는 시간이 더 좋은 하루였다. 

하지만, 아직 내 마음을 절집으로 이끄는 것을 따로 있었다. 절집을 나서기 전 소박한 이미지의 주지스님과 함께한 저녁공양시간은 그간 여러 절집에서 맛보았던 절밥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깔끔한 식단에 몇 가지 음식이 놓이고 차분한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유독 손길을 잡는 것은 장아찌였다. 맵고 짠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나로썬 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맛깔 나는 음식에 스님과 함께하는 공양시간의 어려움도 잊고 자꾸만 손이 간 것이다. 절집을 나서는데 스님의 미소가 자꾸 뒤통수를 간지럽던 기억이 생생하다. 

먹을 걸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비례하며 절집의 절밥에 대한 관심은 더해만 간다. 무엇이 절밥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것일까? 맛, 의미, 추억 등 제각가의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우리민족의 역사와 맥을 같이해온 오랜 시간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런 절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우리 시대 작가 마흔 아홉 명의 절밥에 대한 기억을 담아내고 있는 책이 ‘내 인생의 절밥 한 그릇’이다. 2006년부터 ‘불교문화’에 연재된 원고를 모아 엮은 책이다. 성석제, 구효서, 윤후명, 권지예, 윤대녕, 이순원, 공선옥, 김영현, 임철우, 김사인, 안도현, 신달자, 박남준, 곽재구 등 시인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이해인 수녀와 김진 목사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발표하는 시가 한 가지가 아니듯 이들의 종교 역시 불교로 다 같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저런 인연으로 절집에 머물고 절밥을 나누었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불교에서 밥에 대한 의미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공양계이다. 공양에 앞서 함께 외우며 공양하는 동안 밥의 의미를 마음속으로 세기는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를 내 놓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를 겹쳐 말하고 있다. 그만큼 공양계에 담긴 의미가 공감 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먹을 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무엇을 먹든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의 의미를 맛에 앞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마흔 아홉 명이 절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놓치지 않고 있다. 또한 ‘밥’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뿐 아니라 세상과 자연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수단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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