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캄페시나 - 세계화에 맞서는 소농의 힘
아네트 아우렐리 데스마레이즈 지음, 엄은희 옮김 / 한티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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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농의 힘이 국가의 미래를 담보 한다
텃밭을 마련하고 계절에 맞는 씨앗을 뿌렸다. 농사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기에 누구에게 내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밭을 일구고 거름을 주며 씨앗을 뿌린 후 새싹이 나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선 듯 떠오르지 않는다. 자그마한 밭이지만 무, 배추, 상추, 부추, 당근에다 마늘까지 심어 놓고 하나씩 따먹는 즐거움이 시장에서 사다먹는 채소 맛과 비교할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이 농사짓는 시기에 따라가면서도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일궈가는 텃밭농사를 통해 농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는 것이 조그마한 소망이다. 

삶의 터전을 시골마을로 옮겨 이제 한 계절을 보냈다. 마을 구성원들 대부분이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기계화된 농사를 짓는다고는 하지만 힘에 부쳐하는 모습들이 보일 때 마다 우리의 농촌과 농업 환경에 안타까움이 있다. 거창하게 ‘식량 주권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버지 세대가 지나면 농촌은 더 이상 사람 사는 곳이 아닐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환경의 변화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들 중 하나는 맥도날드처럼 먹을거리와 밀접하게 관련된 산업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한 나라의 기업이 더 이상 한 나라에 국한된 기업이 아니고 이미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막상 각 나라의 농업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음도 현실이다. 다국적 기업이나 선진국의 공격적인 시장 확대는 인정사정없이 파고드는데 이에 대응하는 농민들의 움직임이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면 향후 경쟁이나 대결의 결과는 어떨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답은 뻔하다.  

이러한 현실에 대처하는 농민들의 움직임이 조직화되면서 생존과 직결되는 농업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눈물겨운 걸음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한 나라의 국경 안에 머물러 있기에는 돌아가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러한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조직된 농민들의 국제적인 조직이 ‘비아캄페시나’다 우리들에게 낫선 이름이지만 농민 조직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조직이다. 비아캄페시나에서 주장하는 식량주권주의에는 소농을 중심으로 먹을거리와 관련된 지식, 연구, 기술, 과학, 생산, 무역의 목적과 조건을 규정하고 좌우하는 주체가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각 대륙에 분포되어 있는 비아캄페시나의 가입 조직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파괴되는 공동체를 지키며 그 안에서 산업화된 농업이 아니라 소농들이 중심이 된 운동 조직이다. 전통적 가치관이 남아 있는 곳이기에 성차별에 의해 남자와 여자의 노동 강도가 다른 것이 사실이지만 이 조직에서는 이러한 차별을 극복하고 여성 농업인들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갖추고 있다. 

이 책은 아직 생소한 조직인 비아캄페시나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책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커지고 빠르며 세계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농촌공동체를 건설하고 이에 맞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조직인 비아캄페시나의 사람들의 활동을 지나온 활동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지금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활동보고서는 이 조직을 처음 대하거나 잘 알지 못한 현실을 감안한 저작으로 보인다. 해체되어가는 농업과 농민들의 삶의 터전만이 문제는 아니다. 식량주권에 밀접하게 관계되며 향후 국가의 존폐와도 직결되는 식량의 무기화에 대처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어 의미 있게 다가오는 내용들이다. 

2003년 칸쿤에서의 우리나라 이경해이라는 농민이 자결했다. 고 이해경의 이런 결단이 반WTO를 외치고 반세계화의 선두에 서도록 만들었다. 우리나라 농민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이 단체의 활동이 이토록 생소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 일까? 
 

세계인권선언 25조는 “인간은 누구나 의식주와 관련하여 본인과 그 가족의 안녕을 위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구에서 한 해 동안 생산되는 식량은 지구인이 먹고도 남는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 도처에는 먹지 못해 삶을 그만두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넘쳐나지만 부족하다는 현실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 우리가 맞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비아캄페시나’ 운동을 통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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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벳 - 세상을 바꾼 1천 번의 작은 실험
피터 심스 지음, 안진환 옮김 / 에코의서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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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방식의 전환, 나도 리틀 벳의 주인공이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구멍을 뚫는 것을 보곤 한다. 작고 힘없는 물방울이지만 지속적으로 반복된 힘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다. 처음부터 돌에 구멍을 내기위한 마음이었다면 시도조차 할 엄두를 내지 못했으리라. 자주 반복해서 같은 일을 하다보면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도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일상의 다양한 경험이 알려주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자신이 하는 일에 이러한 경험을 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한 번의 시행으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수한 기업들의 경험을 보거나 세간에 화재가 되는 특정한 사업의 성공 뒤에 숨어 있는 계기를 본다면 결코 단 한 번에 커다란 성과를 얻는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피터 심스의 ‘리틀 벳 : 세상을 바꾼 1천 번의 작은 실험’은 바로 그러한 사례를 확인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리틀 벳’이란 ‘어떤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발전시키고 테스트하기 위해 리스크 부담 없이 해봄직한 시도’라고 말한다. 리스크 부담이 별로 크지 않기에 곧 바로 시행가능한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출발은 미비하지만 그 출발이 있었기에 커다란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 이는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지나가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역사에서 창조적인 성공을 이뤄낸 사람들의 경험이나 현대 기업의 신화적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까지 이들의 사업에서 찾아낸 공통점이 바로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작지만 혁신적인 실험들을 시도하여 의미 있는 성공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휴렛팩커드가 ‘어둠’ 속을 더듬다가 세계 최초의 휴대용 계산기를 개발하게 된 과정, 픽사가 독창적 스토리보드를 이용해 수많은 영화를 히트시킨 비결,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디즈니 콘서트홀을 완성시키기까지 걸었던 활기찬 탐색의 여정, ‘새’의 눈이 아닌 ‘벌레’의 시각으로 빈민 문제를 해결한 그라민 은행장의 혁신적 접근방식 등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핀다. 단순하면서도 반직관적인 일련의 실험들이 상투적인 계획과 분석적 사고의 고정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열린 사고와 행동으로 예상치 못한 연관성을 찾고 귀중한 사실들을 간파하는 돌파구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위대한 창조와 혁신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아이디어 개발과 실험 과정을 치밀하고 심도 깊게 연구한 결과 이들에게 나타나는 공통 요소를 발견했다. 이를 8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의 특징을 설명한다. 그것은 타고난 재능이 아닌 노력과 시도만이 탁월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성장 사고관’, 빠른 실패가 빠른 배움을 낳는다는 ‘실패 견본 만들기’, 다양한 피드백을 거치며 최고의 창조성을 이끌어내는 ‘더하기 피드백’, 거대한 프로젝트일수록 잘게 나누어 순차적으로 해결하는 ‘문제의 축소화’, 문화인류학자의 치밀한 ‘관찰력’과 ‘호기심’으로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는 ‘제대로 질문하기’, 열린 마음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 다양한 통찰력을 얻는 ‘다수로부터 조금씩 배우기’, 위대한 혁신은 소수의 적극적 사용자에서 시작한다는 ‘소수로부터 많이 배우기’, 작은 승리는 완벽하게 실행된 결과의 압축이며 아이디어를 증명하는 명확한 결과를 확보한다는 ‘승리 축적하기’로 압축된다.  

 

 “1만 가지의 방법을 시도했는데 모두 효과가 없다고 해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한 가지 방식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때마다 한 발짝 전진한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꿈꾸기 시작했다. 해도 해도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단번에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 강하다. 하지만, 일상에서 사소한 것들로부터 사고의 전환을 할 수 있다면 성공한 CEO들이 보여준 성공의 출발점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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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긴 편지 열린책들 세계문학 170
마리아마 바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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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속에서 찾아야 하는 정체성
급격한 사회적 변화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을 뒤흔들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생각에 혼란을 거듭하게 만드는 일로는 전통적 가치관과 변화된 사고 사이에서 오는 갈등이 클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대 역시 이러한 전통적 가치관과 달라진 상황 속에서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전쟁과 가난을 몸으로 경험해온 할아버지 세대와 그런 상황을 눈으로 보면서 자라며 현대적 교육의 영향 속에서 자란 아버지 세대 그리고 이들과는 판이한 환경 속에서 자란 청소년들 사이에는 분명하게 달라진 생각이 존재한다. 

달라진 환경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며 다음 세대들의 몫으로 남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무시하지 못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은 아직 강하게 남아 있다. 이렇게 혼란스런 생각의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현 시대는 하여, 각 세대마다 저들만의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경험하고 믿는 바대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볼 때 좁혀지지 않은 생각의 차이를 무엇으로 극복해야 할까?  

우리도 경험한 것처럼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오랜 식민지 지배를 경험한 3세계 국가들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이토록 긴 편지’는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세네갈이 해방 후 격변하는 사회에서 전통적 가치와의 충돌의 최전방에 서 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남편의 죽음을 맞이하고 40일간의 복상 기간을 보내는 동안 50대 여성 라마툴라이가 친구 아이사투에게 쓴 편지 형식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이후 성장과정을 함께 보냈으며 비슷한 삶의 여정을 보낸 친구에게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삶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 형식이지만 그 이야기 중심에는 이슬람의 율법에 의해 인정된 일부다처제를 둘러싼 두 여인의 고통과 선택, 새로운 삶에서의 번민 등이 담겼다.  

친구 사이인 라마툴라이와 아이사투는 일부다처제의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선택은 달랐다. 아이사투는 바로 이혼하고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삶을 택하지만 라마툴라이는 일부다처제의 현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나서 남편이 죽자 다시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아이사투처럼 자신의 삶에 주인공으로 나선다. 이 사이 아프리카 여성들이 겪는 이야기의 핵심이 들어 있다. 전통적 가치관에 의해 숙명처럼 여성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1세대 해방과 더불어 새로운 교육을 접하며 자신의 삶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2세대 그리고 보다 자유로운 이들의 자녀들인 3세대 사이에 나타나는 세대 간의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녀들은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지는 듯 보이지만, 거듭되는 선택의 기로에 서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여성의 사랑과 결혼, 육아, 결혼제도, 이슬람식 장례의 풍경, 재산 상속 등 다소 낫선 모습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 속에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특수성도 보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안고 있는 현실의 모습이 중첩된다. 전통과 근대화의 사이에서 생겨나는 가치관의 혼란과 남녀 성차별, 세대 간의 갈등, 교육 문제 등 우리도 익히 경험한 일이며 지금도 변하지 않고 우리의 사고 속에 꿈틀대고 있는 혼란스러운 것들이다. 

시대가 바뀌면 그에 따라 당연히 사람들의 의식도 변하기 마련이다. 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변해가는 과정에서 오는 혼란을 어떻게 극복해 가는가가 문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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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벗과의 대화
안대회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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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꿈을 이루어 줄까?
우리 선조들이 남긴 옛글을 보면 부러운 것이 있다. 내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와는 사뭇 다른 시대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하지만 어디 사람 살아가는 근본에 차이가 있을까 싶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그 부러움을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옛 사람들의 사람 사귐에 대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의 옛글은 대부분 한문으로 되어 있기에 현대인들이 접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아무리 좋은 뜻을 담고 있는 글이라도 읽기 못한다면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이런 어려움을 적절하게 해결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정민 선생을 비롯하여 안대회가 바로 그러한 분들이다. 이분들의 노력에 의해 옛 사람들의 주옥같은 글들이 현대인들의 마음에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것이다. 

‘천년 벗과의 대화’는 바로 우리 옛글과 현대인들을 이어주는 안대회의 글로 그동안 옛글을 읽으며 저자의 마음에 남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감회를 담은 책이다. 저자가 옛글에서 주목하는 이야기는 선인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일상에서 소소하게 가슴으로 다가서는 이야기들이다. 그렇기에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으며 오랫동안 잔잔한 울림으로 남는다. 

옛글에 담긴 것이 바로 그렇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아등바등 생활에 메어 하고 싶은 것 다하지 못하는 것이나 사소한 일들로 감동받고 사람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글에 담긴 것에서 보면 우리 살아가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옛글로 사람들을 부르는 것일까?  

“공교롭고도 오묘하지오. 이다지도 인연이 딱 들어맞다니! 누가 그런 기회를 만들었을까요? 그대가 나보다 먼저 나지 않고, 내가 그대보다 뒤에 나지 않아서 한 세상에 같이 태어났고, (중략) 그렇기는 하지만 주고받는 대화가 구차하게 같거나 행하는 일이 구차하게 맞아떨어진다면, 차라리 천 년 전 옛사람과 벗하고, 백 세대 뒤에 사람을 미혹시키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내가 옛글에서 찾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벗과의 사귐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박지원의 글이다. 이는 박지원만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는 점이다. 옛글은 바로 이렇게 사람 도리에서부터 시시콜콜한 한 사람의 특별한 버릇까지 다 담겨 있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그 속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깨우침이 있다.  

모두 다섯 가지 분류로 구성된 이야기는 옛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옛 책들에서 시선을 끌고 마음을 사로잡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것으로, 모두 53편이 있다. 고려, 조선을 비롯해 당나라, 베트남, 일본의 이야기도 있다. 이런 글 속에 담긴 이야기를 저자는 자신의 일상으로 풀어내고 있다. 우리가 무엇에 주목하고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옛날과 현대를 이어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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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 - 다윈의 자연선택론과 적자생존의 비밀
프란츠 M. 부케티츠 지음, 이덕임 옮김 / 이가서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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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적자의 달팽이집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사회 문화적 규범에 의해 살아간다. 옳고 그름의 판단에서 자신의 행동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 적용된다. 마치 이를 따르는 것이 순리이며 사회적으로 성숙한 인간임을 강요받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지극히 개인적인 특징은 사회적 분위기나 사람들에 의해 무시되기 일쑤다. 때론, 그러한 사회적 규범의 작용에 앞서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범위를 설정하기도 한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들은 이렇게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가치관의 척도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예전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못했던 행위들이 지금은 묵인되거나 은근히 조장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러한 것들 중에는 개인의 명예나 자존심과 같은 개념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필수요소로 이를 통해 한 인간의 표상을 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상은 개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세계적으로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프란츠 M. 부케티츠(Franz M. Wuketits)의 저서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바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 때론 강요되는 사람들의 표상에 대한 도발적인 제안을 하고 있는 책이다. 모두가 긍정의 요소로 보고 있는 ‘용감함’과 ‘비겁함’에 대해 역발상의 제안을 하고 있다. 살아있는 겁쟁이들에 대한 변명처럼 보이는 그의 주장은 다윈의 적자생존의 법칙을 근거로 다양한 생물들의 이야기를 비교검토하며 인간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러한 행동의 근거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우선, 저자의 주장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가 주장하는 이론의 근거가 되는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자는 다윈의 자연선택에 따른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말하는 "적자(適者)"란 가장 용검하거나 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삶과 생존을 위한 전략을 갖추고 있는 개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자연에서 "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동물은 어떤 의미에서 생존에 유리한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강한 동물의 선두로 꼽히는 호랑이나 상어, 공룡 등의 예를 통해 자연법칙에서 강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핀다. 강함은 유전에 의해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절대적 강함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는 행동의 범주로 보은 편이 강하다. 또한 이러한 강함은 다른 종과의 문제라기보다는 같은 종 내부의 문제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이 바로 그것을 중심으로 밝혀낸 자연법칙이라고 보는 범주에 속한 것과 같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러한 개념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죽은 영웅은 너무나 많고 살아 있는 겁쟁이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조장되는 영웅적인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나 성원은 극에 달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보여준 용기 있는 행동의 의미를 축소할 마음은 전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속하는 범주는 사회적으로 기피하는 표상인 ‘겁쟁이’에 속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올바로 바라보고 사회적 인간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닌가 싶다. 저자의 이러한 시각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면서 다른 사람이 강제로 설정한 수많은 종류의 사회적 이념에 희생되어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 편견을 돌려놓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가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우선에 두는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규범에 의해 강제되는 시각과는 다른 시각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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