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아저씨 2
남궁문 지음 / 시디안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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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결국 사람의 따스한 정이다
어떤 사람은 ‘죽을 맛’이라면서도 끝내 해내는 일은 또 다른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런 일들 중에 분명 여행도 포함된다. 요즘엔 여행이라는 것도 살아가던 터전을 떠나 낯선 곳으로 나아가는 것에 다양한 의미를 붙여 여행이라고 하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더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분명하게 구분이 되면서도 애써 ‘별 건 없다. 그저 개인적인 내 얘기일 뿐이다.’이라 사람도 있다.

‘자전거 아저씨 1’에 이어 자전거로 떠나는 여행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정착(?)되어진 일상처럼 보이면서도 ‘자전거 아저씨 2’에는 훨씬 개인적인 부분이 더 많은 느낌이다.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다음 여행길을 결정하지만 그전처럼 곧 떠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생활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그 죽을 것 같았던 지난 여행을 통한 깨달은 바가 있어서라는 것이 분명한 것이다.

‘자전거 아저씨 2’에는 저자의 여유로움이 보인다. 여행의 패턴도 그렇지만 여행길에 만나는 세상에 대한 저자의 불만이 훨씬 줄어들었다. 불만이라고 해 봤자 불편한 세상에 대한 넋두리와 이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오염시키는 몰지각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글을 따라가는 독자도 훨씬 너그러운 마음이다. 

2편에서는 1편에 담았던 여행의 그 후 과정을 담았다. 못가 본 곳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다시 간 곳,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는 고향 가는 길, 봄 꽃 향기 찾아 나선 길에서 복사꽃 잘려나가는 허허로움, 군 시절 쫄병 집인 제주도에 이르기까지를 담았다. 이 자전거 아저씨의 든든한 여행 후원자와 친구들과의 가슴 따스한 정이 담긴 것은 물론이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본문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진이 궁금하다. 자전거를 타고가는 장면이 많은데 이것을 연출하기 위해 혼자 이리저리 카메라 놓을 자리를 살피는 모습을 상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기에 자신의 작업에 필요한 지극히 의도적인 시각이지만 책 속에 나타내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다. 또한 선으로 표현되는 사람모습도 퍽이나 인상적이다. 1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간 중간 등장하는 저자의 그림에는 풍경과 중첩되고 그런가하면 사라진 모습이 언젠가 사라질 자신을 상징한다고 하는 마음의 표현이라지만 상징하는 바가 크게 다가온다. 

저자는 이 책을 읽고 혹시나 자신과 같은 여행길에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과 같이 준비 덜된(?) 여행은 권장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준비 안 된 여행이 주는 위험성이 그것일 것이다. 지나가는 트럭에 치인 경험, 수로에 넘어진 것 등도 있지만 무엇보다 도로를 달리는 차와 무리한 여행이 주는 위험이 더 클 것이라 본다. 

이제 저자는 이러한 여행은 멈출 것이라고 하면서도 자전거 할아버지를 상상해보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훗날 준비 안 된 평범한 모습으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리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그가 아닐까 싶다. 별 건 없는 그저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그가 자전거와 함께 달려온 그간의 행적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스한 정을 확인했고 친구들의 마음에 우리 강산이 주는 아름다움까지 넉넉해 담았기에 그가 그만의 가슴으로 그려나갈 작품과 삶이 더욱 넉넉해질 것으로 믿는다.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결국 사람을 품어 안아주는 것은 사람의 따스한 정임을 확인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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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아저씨 1
남궁문 지음 / 시디안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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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도 자전거 한 대 살까?
살다보면 마음이 홀려서 하고 싶은 일에 푹 빠질 때가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강한 충동이 일고 앞 뒤 생각할 틈도 없이 저지르게 된 그런 일 말이다. 하지만 그 일을 시작하기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만용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나이 먹을수록 용기라는 것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다 보니 더 그렇다.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사로잡는 그것을 하지 못하고 늘 아쉬움으로만 남기고 만다. 

그렇게 마음 홀리는 것도 그때그때 다르다. 인생에 굴곡이 있듯 마음 가는 것도 세월따라 변하는 것인가 보다. 긴 세월이 아니지만 살아오는 동안 내가 겪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문화유적이라는 옛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것, 신앙보다는 학문적 매력에 빠져 다녔던 불교대학도 그렇고 나무와 숲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신을 찾아보고자 했던 숲해설가 교육도 지금 빠져 있는 대금공부도 그렇다. 뭐든 그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와 한동안 정신을 빼놓고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상황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그때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을 것들이다.

미술을 전공하고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개인전도 여러 차례 열었으며 나이도 만만치 않은 50대 화가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누빈다는 것은 그리 상상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나선 길이 아니라 '해볼까?' 하는 조금은 단순한 출발이 6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나라를 한 바퀴 다 돌도록 이어졌고 그 결과물을 모아 발간한 책이 ‘자전거아저씨’다.

그림을 직업으로 하는 화가의 글이라는 점과 자전거로 전국을 누볐다는 점에 이끌려 접한 이 책의 저자는 이미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걷고 그 기록을 책으로 남긴 전작이 있었던 사람이라고 한다. 단순한 호기심은 적잖은 분량의 글을 완성하고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까지 곁들어 만들어 낸 이 책은 읽어갈수록 궁금증을 불러오게 하였다. 바로 저자의 그림과 그 사람 머릿속에 담긴 세상이 궁금해 진 것이다. 알고 지내는 몇몇 화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삶의 방식을 나름대로 이해하는 방식을 터득하고 있었기에 더 호기심이 일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자전거 아저씨’는 낯선 여행지에서 저자를 부르던 역시 낯선 사람의 호칭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을 태릉을 벗어나 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찾아 나선 길을 시작으로 강원도 산중으로 난 고갯길을 힘겹게 넘나드는 과정,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만나러 과감한 도전을 했던 무주와 장수에 이르는 길, 중학교 친구의 친절에 힘입어 나선 남도여행 그리고 이어진 남해안의 섬들 사이를 떠돌던 길을 지나 이제 부산에서 동해의 바다와 아란히 이어진 길을 거슬러 통일전망대에 이르고 나서도 마치지 못한 길은 자신이 나고 자랐으며 이제는 먼 길을 떠나신 부모님이 쉬고 계신 고향으로까지 이어진다. 그곳에서 단순한 시작으로 일이 커졌으며 때론 죽을 것 만 같았던 자전거 여행의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저자 남궁 문에게 자전거 여행은 무엇이었을까? 이미 다양한 여행으로 낯선 곳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을 저자에게 온전히 자신의 힘에 의해 앞으로 나아가는 고행 같은 자전거 여행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을 아직 우리 곁에 남아 따스함을 전하는 정(情)이라고 했다. 힘든 자전거 길을 가는 동안 불친절한 사람들로부터 속앓이를 하기도 하지만 그 서운함을 떨치게 했던 것이 길가에서 얻어먹은 점심, 소주 한잔, 과일 한 조각에 녹아있는 사람의 정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자전거 여행이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 힘든 과정을 당당히 이겨냈다. 이제 그는 이 힘으로 남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것처럼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리라 기대해 본다.

머뭇거리면서도 기어이 하고야 마는 끝나지 않은 그 길을 따라가 볼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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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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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허수아비춤을 출 것인가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슴에 담긴 빛으로 세상을 보게 마련이다. 그가 담아둔 빛의 범주에 들어오지 않은 세계는 겨우 상상만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을 가르는 기준이 그 사람의 가치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그 가치관을 늘 흔들게 만든다. 그것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삶의 가치를 높이려는 기본적인 욕망이 내재한 것에 연유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의 굴곡을 긴 호흡으로 담아온 작가 조정래의 최근 작품 ‘허수아비춤’은 욕망의 근저에 흐르는 권력과 돈에 대한 사람들의 모습을 자본주의 최선두에 선 대그룹의 현실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의 작품이 지울 수 없는 민족의 아픔을 작품 속에 담아온 것이라면 허수아비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를 담아내고 있다. 

정치민주주의에 빗대어 이제는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해야할 절박함이 다가오는 미래를 희망으로 가꿔갈 기반이라 전재한 작가는 경제민주주의를 이뤄갈 주체 중 하나인 재벌의 현재 모습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의 실현을 주제로 하고 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 꿈에도 그 정도를 측정하지 못하는 돈의 크기, 돈에 굴복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돈 잔치의 행태는 어쩌다 접하게 되는 텔레비전 뉴스 속에서만 보던 일을 재현하고 있다.

재벌 회장 직속 기구인 ‘문화개척센터’의 무소불휘의 권력은 속한 그룹 내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비자금의 조성과 은익, 경영권 불법 승계를 목표로 사회 각계각층에 로비 대상을 선정하고 무차별적인 금품의 살포와 상상을 뛰어넘는 뇌물의 액수는 자본주의의 그늘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돈으로 물고 물리는 그들의 그물은 법조계를 비롯하여 언론, 대학, 관공서 등 재벌들의 이해요구에 직결된 분야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펼쳐져 있다. 당연히 지금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머리말에서 노신의 말을 인용하여 ‘불의를 비판하지 않으면 지식인일 수 없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작가일 수 없다’고 했다. 또한 ‘나랏일을 걱정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어지러운 시국을 가슴 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는 정약용의 말을 인용한다. 작가 조정래가 걸어온 작가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 아닐 수 없다. 

허수아비 춤을 추는 존재는 누구일까?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로얄 패밀리들의 생활은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가치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그들 눈에는 비친 국민들의 생활에 지친 모습은 깊어가는 가을 단풍보다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허수아비의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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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을 말하다 -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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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시대, 왕의 무엇을 봐야 하는가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을 사실로 믿고 싶어 한다. 이 점이 사실에 대한 왜곡과 혼란스러움을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일 때는 파장이 별로 크지 않겠지만 그 범위가 넓어지면서부터는 감내하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경우는 자신이 살고 있는 당대에 벌어진 일이나 잘 알려진 사건이라도 그 진실에 접근했는가의 여부는 미지수일 때가 많다. 하물며 오랜 시간이 지난 역사적 사전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적 사건을 바라볼 때는 같은 누가 무엇을 보고자 함인가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사료에 접근이 쉽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는 역사연구가들의 눈으로 본 평가가 대부분이며 이 또한 그들의 눈으로 걸러진 사료와 그에 대한 평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라 본다.

조선시대에 대한 나의 관심은 우선 정치적인 사건에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에 덧붙여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었다. 조선의 선비들로 그들이 지향했던 학문과 사상을 삶과 일치시키려 했던 흔적을 찾아보는 것이 그 중심에 있다. 그중 정치적 사건의 흥미로운 세계로 안내한 사람이 있다. 조선시대의 역사를 현대인에게 흥미롭게 알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역사 연구가 이덕일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가 발간한 대부분의 저작물을 보면서 조선시대에 벌어졌던 정치적인 사건들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저자 이덕일의 관심은 지금 우리가 사실로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 얼마나 정확한 자료에 근거하며 그 사건의 평가가 정당하게 평가 받고 있는가? 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가 발간한 일련의 책들은 ‘사도세자의 고백’,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조선 왕 독살사건’.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등 대부분 자극적인 제목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또한 그 책들에서 제기하는 저자의 의문도 기존의 역사 평가에서 볼 수 없었던 흥미로움이 많았다. 그러한 영향으로 일약 스타 역사연구가의 한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다. 

‘조선 왕을 말하다’는 조선의 왕들 가운데 역사적인 고비에서 힘겹게 넘었던 왕들을 선정하여 그들의 속내를 들려다보는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이 책 역시 자자의 독특한 시각과 글을 이끌어가는 힘 있는 필력으로 단숨에 읽어갈 수 있었다. 조선 왕 26명 중 8명의 왕을 ‘악역을 자처한 임금들-태종과 세조’, ‘신하들에게 쫓겨난 임금들-연산군과 광해군’, ‘전란을 겪은 임금들-선조와 인조’, ‘절반만 성공한 임금-성종과 영조’ 등으로 구분하고 그들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부터 제위기간 중 벌어졌던 다양한 정치적 사건에 자임하거나 떠밀려서 했던 왕들의 역할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사료를 충분히 살피며 자신의 의견 제시는 되도록이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 책 역시 다른 저서들과 비슷하게 저자의 시각이 충분히 반영된 역사해석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의 시각으로 볼 때 가장 안타까운 평을 받고 있는 왕은 사후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패역무도한 왕이라는 연산군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저자가 연산군을 성군이나 업적이 뛰어난 왕으로 평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역사적 사실로 미루어 봐 그렇게까지 혹독한 평을 들을만한 왕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승리한 자의 눈으로 기록된 사료와 그에 대한 해석이라고 보고 있다. 즉 조선시대 왕들에 대한 평가는 사관의 시각과 당파적 관점이 크게 반영되어 있어, 이 두 가지 관점을 배제하지 않으면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역사는 흥밋거리가 아니다. 흥미위주의 텔레비전 드라마의 지대한 영향으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이 넘쳐나는 시대에 무엇이 역사를 보는 올바른 관점인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고 생각된다. 이 책을 통해 역사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로 하여금 당시 정국을 시끄럽게 했던 사건의 본질에 접근할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현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고 미래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저자가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되도록 자제한다면서도 매 주제마다 ‘모든 군왕은 성군으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역사는 때로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절차의 투명성은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명분과 현실의 괴리는 비극을 초래한다’, ‘현실에 참여해 활동하는 것 못지않게 때를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다’ 등의 간략하게나마 강한 어조를 펼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의 일선은 늘 시끄럽기 마련이다. 오늘날 그것이 당략이나 개인적 치부의 목소리로 가득한 시끄러움이기에 국민들의 시선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시끄러움에 시대정신을 올바로 반영하고 대의를 위한 목소리로 채워지기를 바란다면 과욕일까? 그렇더라도 이는 정치라는 기능의 올바른 역할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의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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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을 길들이다 과학과 사회 10
베르나르 칼비노 지음, 이효숙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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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뭘까? 그것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랫동안 사는 것이 아닌가 한다. 모두 무병장수를 소망하게 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질병에 걸리거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아파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안다고 했다. 아픔에는 물론 심리적 요인에 의한 것도 있지만 주요한 대상이 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아픔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 아닌가 한다.

심신에 병이 찾아와 치료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동반하는 것이 통증이다. ‘죽어도 좋으니 아프지만 않게 해주세요’라는 망처럼 거부할 수 없는 이 통증을 완화하고 치료하는 과정이 의술행위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통증은 사람마다 그 심한 정도를 느끼는 차이가 있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로부터 얼마나 아픈가 하는 것에 대한 일반화가 어려운 까닭이기도 하다. 알마출판사의 이 책 ‘통증을 길들이다’는 바로 그 통증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부터 통증에 접근하는 다양한 분야의 종합적인 관점 그리고 현재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한 현실적인 환경까지를 살피고 있다.

이 책은 통증을 식별하고 치료하기, 통증을 밝히다, 통증에 대한 환자의 권리 등 크게세 가지 분류로 통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통증에 대한 원인과 분석의 과학적 접근은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부분도 있지만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철학, 신학, 문학 등에서 통증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살핀 ‘통증을 밝히다’ 라는 2장이 아닌가 싶다. 통증에 대한 이러한 분석은 인류가 통증을 인식한 시간만큼 오래되었고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병과 동반하는 통증에 대해 과학적인 접근이 이뤄진 시기는 놀랍게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1947년 존 보니카에 의해 출발했으며 이 책이 발간된 프랑스의 경우로 보더라도 1986년 통증의 임시적 완화를 담당하는 치료진들을 구성하고 이러한 치료를 장려하는 보건부 공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본격으로 통증치료에 진정한 출발은 1993년 8월에 와서야 프랑스 통증학회 이름으로 개최된 제7회 국제통증학회 파리 학술대회를 연 때를 시작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지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밝혀놓지 않고 있다. 다만, 추천글을 보면 1983년 설립된 대한통증연구학회가 그 출발이 아닌가 한다.

이 책에서는 통증에 대한 의학적 접근 뿐 아니라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관심을 끈다. 그것은 환자의 정서 상태나 주변 사람들의 환자에 대한 인식 등 환자의 통증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심리학적, 환경과 문화적 요인을 살펴 진심으로 환자의 고통을 줄여가려는 노력이 통증을 바라보는 현대적 시작임을 알게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몸과 마음이 고통 받고 있는 현대인들이 통증의 원인과 그 해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하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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