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수요일

또 겨울

생애의 오래된 길을 무더기로 밟고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몽매한 새떼들 그에게로 갔다

되돌아오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아주 쓸쓸하게

생각하고 생각하고 했을 뿐이다

*권경인 시인의 시 "또 겨울"이다. 나무와 마주서서 긴 눈맞춤을 한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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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 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신경림 시인의 시 "낙타"다. 별과 달과 해와 모래를 벗 삼아 살아온 낙타와 벗하여 한쪽 눈 감고 살아가도 좋으리라.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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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나목(裸木)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 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밴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이
한밤에 내려 몸을 덮는 눈 따위
흔들어 시원스레 털어 다시 알몸이 되겠지만
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트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신경림 시인의 시 "나목(裸木)"이다. 겨울숲이 좋은 이유 중 하나다. 민낯이 어색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때에 그곳에 서서 함께 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구례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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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든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신경림 시인의 시 "길"이다. 나의 길을 돌아본다. 나는 내 길을 걷고 있나.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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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다시 느티나무가

고향집앞 느티나무가
터무니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한 때가 있다
그때가지는 보이거나 들리던 것들이
문득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잠시 의아해하기는 했으니
내가 다 커서거니 여기면서
이게 다 세상 사는 이치라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고향엘 갔더니
고향집 앞 느티나무가 옛날처럼 커져 있다
내가 늙고 병들었구나 이내 깨달았지만
내 눈이 이미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진 것을
나는 서러워 하지 않았다

다시 느티나무가 커진 눈에
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

*신경림 시인의 시 "다시 느티나무가"다. 출근길 눈맞춤하는 느티나무를 다시 본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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