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도시 SG컬렉션 1
정명섭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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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공단은 북한 땅에 있고, 대한민국의 자본으로 세워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유통되는 돈은 원화나 북한 돈이 아닌 미국 달러였다."

 

가끔 분명 소설을 읽는 중인데 영화를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그려지는 때가 있다. 흔히 '페이지 터너'라 불리며 다음 장을 궁금하게 만드는 마성의 소설이 오랜만에 나를 찾아왔다. 얼마 전 정명섭 작가의 강연을 들으면서 추리와 살인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에 발을 들였던 나. 역사 추리 소설을 많이 써온 작가지만 우리와 멀지 않은 개성공단을 소재로 한 이번 신작에 관심이 가는 건 당연지사다.

 

《제3도시》는 개성공단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외삼촌 원종대는 공장의 물건을 누군가가 빼돌려 골치를 앓고 있다. 이에 전직 헌병 수사대였던 강민규를 찾아 사건을 의뢰한다. 강민규는 CCTV를 설치하거나 의심 가는 사람을 불러 수사하면 되지 않냐고 쉽게 말했지만 작은 북한인 개성공단에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우리나라 자본이 들어가 있지만 '개성공단 증후군'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그곳에 가면 답답함과 두통 등을 앓는 이가 많았다.

 

이에 원종대는 위장취업해 직접 사건을 해결해 주길 간곡히 부탁하고, 묻고 더블로 가도 되는 금액 앞에 위험부담이 크지만 강민규는 승낙한다. 일은 술술 진행되는 듯 보였다. 원종대는 직원들에게 민규를 소개하고 잘 지낼 것을 말하지만, 그 민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직된 분위기가 팽배하다. 사람들의 의심과 적개심을 뒤로하고 사건을 수사하던 중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소설은 급 반전을 맞이한다.

 

그 과정에서 민규는 범인으로 몰리고, 억울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사건을 해결해야 만한다. 시간은 단 사흘, 그 안에 담판 지어야 하는 민규는 애가 닳는다. 제한되고 삼엄한 특수 상황 속에서 무죄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숨 막히게 돌아간다. 살해당한 사람은 한국 사람이지만 혹시 자신들에게 해가 될까 입을 꾹 다문 개성공단 사람들의 답답함이 솔직히 기록되어 있다.

 

무엇보다 소설이 흥미진진했던 것은 잘 다뤄지지 않는 영역 '개성공단'에 마치 다녀온 듯 선연한 모습이다. 정명섭 작가가 직접 다녀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사전 조사를 철저히 했다는 게 느껴졌다. 또한 위에서 찍어 누르는 숨 막히는 북한 체제 안에서도 본성은 드러나며, 삶이 진행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살인이란 인간의 말초적인 욕망이다. 겉으로 보이는 바, 평등한 북학의 사회주의 체제가 진작 썩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소설은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작은 북한의 폐쇄성과 파주 전력망을 쓰고, 달러를 화폐로 쓴다는 말로 가깝고도 먼 북한의 아이러니를 대변한다.

 

*본 도서는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의견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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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온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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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우리는 '잡념'이라고 한다. 잡념, 몽상, 공상을 어른들은 "쓸데없음"이라고 치부하지만 귀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대표작 《있으려나 서점》을 지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가 자신의 일상과 창작 과정을 담은 그림 에세이를 발표했다. 작가를 쏙 닮은 캐리커처가 평범해 보이면서도 은근한 매력이 있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평소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무심코 떠오른 생각'을 그리는 버릇이 있다. 책은 무심코 생각한 것들, 아빠로서 아이를 돌볼 때 생각한 것들, 오랜 시간 고민하며 생각한 것들을 모은 3부작이다. 1,2부는 여백의 미와 그림이 많아 만화책 보듯이 읽을 수 있다. 그러나 3부는 제법 긴 글로 채워져 있으며 고민들이 모여 있는 고민 무덤처럼 느껴진다.

 

늘 걱정거리를 달고 사는 나에게도 이런 상품이 출시되길 바란다. '걱정거리를 흡수하는 종이'. 생긴 거는 기름종이처럼 생겼지만 이마에 붙여서 걱정거리를 흡수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걱정거리가 더욱 많아진 요즘, 이런 기름종이가 절실해진다.

 

'내일 할 거냐. 왕창 할 거야'를 자기 전에 큰 소리로 세 번 외치면 효과가 있을까. 부제로 '하지만 오늘은 그만 잘 거야'를 조그 많게 읊조려 본다. 오늘 못다 한 관계로 잠자리에 들 때 내일 기필코 하겠다는 의지 '왕창'을 강조하면서 자는 거다. 그렇게 외치면 아쉬움이 꾹꾹 위로가 된다.

 

아이를 키우며 든 생각들은 귀여움이 폭발한다. 떼를 써서 사준 인형이 금세 질린 아이. 저 구석에 처박혀 힘겨워 보이는 인형을 두고 아빠 요시타케 신스케는 묻는다.

 

"푼 짱이 여기 깔렸는데?". 아이는 대답한다 "괜찮아, 푼 짱은 아픈 거 엄청 좋아해" 웃음이 절로 난다. 내팽개치나 싶지만 언젠가 마음이 바뀌면 푼 짱을 다시 찾을 것이다. 어른이 양쪽에서 손을 잡아주면 언제나 대롱대롱 매달리기 좋아하고, 흔들린다는 말에 흔들림 타냐고 대꾸하는 아이다움이 마음을 움직인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어른이 되어서도 사소한 감정과 순간을 짧게나마 기록하는 습관을 버리지 않았다. 이런 습작노트, 창작 노트가 모여 지금의 자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것도 훗날 몇 배로 당신에게 찾아올 황홀한 날이 될지도 모른다. 그의 생각 노트를 빌어 생각하는 법,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본 도서는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의견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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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달고나 만화동화 1
황선미 지음, 박정섭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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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문학이라고 얕볼 게 아니다. 성인이 읽어도 충분한 감동과 주제관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 많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황선미 작가가 쓰고 박정섭 작가가 그린 《세상에서 제일 달고나》가 앞서 말한 예이다.

 

 

이야기는 드디어 1학년이 된 새봄이가 학교에서 같은 반 장갑순 할머니를 만나는 이야기다. 코로나19로 엉망이 된 일상이 반영되어 현실감이 크다. 새봄의 아빠는 여행작가인데 국내로 들어오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코로나로 멈춘 일상은 복구되지 못하고 새봄이네 집에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이 오지 않아 미술 학원을 열었던 엄마도 형편이 어려워져 임대 표지판을 붙였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본다. 면접 때 준비한 비장의 카드 '달고나 커피'를 선보여 단번에 붙었다는 후문이다.

 

 

무엇보다도 드디어 학교에 간다는 설렘보다 지켜야 할 수칙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새봄이의 생활이 격하게 공감된다. 새봄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안타깝게도 '매일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급식을 먹는 것'. 코로나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당연한 일상이 갑자기 특별해지는 순간이다.

 

 

'달고나'는 새봄이가 먹고 싶어 하는 주전부리기도 하지만 엄마를 일으켜 주기도 했던 꿈의 원동력이다. 또한 60년 간극의 할머니와 새봄이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기도 하다. "라떼는 말이야 달고나가 5원이었다"라고 말하는 할머니와 불량식품에서 이제는 고급 커피의 재료로 탈바꿈한 달고나의 변신도 재미있다.

 

며칠에 한 번 가는 학교지만 새봄이는 너무 좋다. 마음대로 마스크를 벗고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수업 시간에 화분에 심어 놓은 강낭콩처럼 매일 조금씩 자라난다. 학교 교실에는 할머니 학생이 있는데,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러 학교에 온 만학도다. 장갑분 할머니의 꿈은 학교 공부를 마치는 것이고 나아가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란다.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고 했던가.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할머니, 손녀뻘 되는 새봄과 친구가 되는 할머니와의 우정도 귀엽다.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이 소환되기도 했다. 동생과 국자에 달고나 만들어 먹겠다고 하다가 집 홀랑 태워먹을 뻔했던 기억, 까맣게 국자가 탔던 기억 있었을 것이다.

 

 

이제 나이를 먹어 그 달달한 맛과 부풀어 오르는 갈색의 설탕 덩어리를 그리워할 나이가 되었다. 새삼 학교와 친구, 가족의 소중함, 동심까지 달달하게 일깨워 주는 어린이 동화다.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고 일상을 되찾길 바라는 염원을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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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는 결혼생활 - 세상이 만든 대본을 바꾼 특별한 가족 이야기
샌드라 립시츠 벰 지음, 김은령.김호 옮김 / 김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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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평등한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 내용은 단순하지 않았다. 평등한 관계와 페미니스트적인 자녀 양육을 실천한 자전적인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아내와 남편에서 '파트너'가 되고, 아들과 딸이 '아이'가 되는 일과 가사 및 양육이 50:50인 결혼생활. 뿌리 깊은 가부장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책이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판타지가 현실에서 가능했다는 사실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오로지 나를 위한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위로를 얻었던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1960년대 여성성과 남성성의 새로운 척도를 제시한 '벰 성 역할 검사'를 개발했으며, 《나를 지키는 결혼생활》은 젠더 양극화 연구에 업적을 남긴 페미니즘 학자가 1998년 쓴 결혼 회고록이다.

 

저자 '샌드라 립시츠 벰'이 1965년 스무 살에 당시 카네기 공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였던 여섯 살 연상 '대릴 벰'과 평등한 결혼 형태를 만들어 낸 뒤, 27년의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법적으로 이혼한 것은 아니지만 이내 헤어져 각각 동성 상대와 사귀기도 했다.

 

따라서 두 사람은 단순히 사회가 정한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로 규정할 수 없음을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길 섹슈얼리티나 젠더에 있어 문화적 구분에 딱 맞출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저자는 2009년 알츠하이머를 알게 된 뒤 2014년 대릴이 보는 앞에서 독이 든 와인을 먹고 사망했다. 죽음마저도 오롯이 자신이 결정하는 삶, 가족을 위한 희생이나 눈치를 보지 않는 인생이 '나를 지키는 결혼생활'이라 생각했다.

 

부부간의 평등이 지켜지고 성 역할이 고정되지 않은 결혼생활, 그리고 젠더 고정관념 없이 키우는 양육방식,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체계화되지 않았을 무렵에 목숨처럼 지켜왔고, 1967년부터는 공동 강연을 통해 미국 전역에 전파했다.

 

특히 두 사람의 완전히 다른 가풍으로 만들어진 인격은 서로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고, 사랑에 빠진다는 개념으로 상응할 수 없는 파트너십 관계를 만들어 냈다. 저자 샌드라는 엄격한 유대교 집안에서 자라며 부모님의 잦은 싸움으로 어린 시절 불안한 유년 시절을 겪었다. 그로 인한 성격은 사춘기를 지나며 악화되었고, 독립의 욕구를 크게 불태운다. 하지만 독립하기에는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 선택한 학교에서 큰 마찰이 있었고, 따라서 대릴의 존재는 자신을 구해 줄 생명줄 같았다고 회고한다. 그는 가족들이 주지 못했던 안전한 토대를 제공해 주면서도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부분을 채워주었다는 것이다.

 

대릴은 남성의 성공 때문에 여성의 커리어가 망가지게 놔두지 않았다. 일주일에 3일씩 나눠 집안일을 하고 샌드라의 커리어를 위해 대릴이 직장을 옮기기도 하며, 샌드라와 일하기 위해 엄청난 제안을 거절하기도 하는 등. 우리 사회에서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일들을 벌인다.

 

두 사람은 이론과 강연으로만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일종의 실험이라 말해도 좋을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꾸리면서 겪었던 감정과 주변 상황을 정리해 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음으로써 독박 육아 및 가사, 시월드와의 갈등, 여성의 전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의 틀이 얼마나 견고한지 깨닫는 계기도 된다. 진정한 실천으로 완성했던 샌드라의 삶을 통해, 여러 형태의 가족이 존재하는 긍정적 미래와 다수와 달라 배척당하는 소수가 생기지 않는 사회를 잠시나마 꿈꿔 볼 수 있었다.

 

어차피 결혼하고 가족을 꾸리는 일은 나의 인생이다. 이를 두고 누구도 강요하거나 참견할 수 없지만 어쩐지 우리는 너무 쉽게 남의 말을 듣고 스스로 검열한다. 이것은 꼭 해야 한다, 결혼은 격식을 차려야 한다며 수백, 수천만 원 대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의 세태. 내 결혼식인지 부모님 결혼식이지 알 수 없는 보여주기 식 관행. 결혼 해서도 아내와 남편, 시가와 처가에서 서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온전히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아니기도 한 상황에서 이 부부의 실천기는 통쾌한 쾌감을 선사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결혼에 관한 다른 생각, 해보지 못한 관념들을 각성하며 다음 세대는 내 세대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길 고대하는 바이다.

 

 

*본 도서는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의견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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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
고칸 메구미 지음, 오시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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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죽음을 좀 더 의미있게 보낼 수 있는 지침서. 읽으면서 삶을 더 바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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