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응!”
환자복을 입고 누워 있는 모습이 익숙하지 않아서였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정신이 들었는지 알고 싶어서 불러 보았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소리로 내뱉은 대답을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올해 아흔둘. 아버지 연세에 비해 너무 정정하시다는 말을 그동안 들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한테 작년 6월에 한번, 호흡 곤란 증상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는 위기가 있었다. 가족의 크나큰 걱정과 달리 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꿋꿋이 이겨 내셨다. 평소 아버지는 건강에 자신하였고 이를 증명해 보이는 것 같았다. 얕은 밤잠과 낮잠으로 이어지는 수면장애 말고는 예전처럼 건강을 회복하였고, 아버지는 다시 고령의 일상을 이어 나갔다.

지난 주 월요일에 아버지는 기력 보강을 위한 영양제 주사를 맞고자 병원을 찾았다고 하셨다. 평소 병원행을 꺼리던 아버지여서 얼마나 불편했으면 그리 하였을까. 병원에서 폐렴 치료를 권하는 의사 말을 듣고서 아버지는 입원을 결정하였다. 그런데 목요일 한 번 더 검사한 결과에서 검출된 결핵균 때문에 1인 병실로 옮겨서 격리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서 일이 갑작스럽게 벌어지다 보니 무엇보다 간병인을 구하지 못해서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날 밤에 동생이 아버지 곁을 지켰다. 다음날 밤에 동생과 교대하여 내가 병원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여태껏 아버지와 단둘만 하룻밤을 보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도 드라마틱 할 수 있을까.

설에 뵈었던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은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침대에 누운 아버지의 코에 달린 투명한 줄을 따라 가니 눈높이보다 높은, 병실 벽에 달린 산소발생기와 한몸처럼 엮여 있었다. 저 가느다란 줄에 의지한 호흡이라니. 마지막 남은 희망 또한 가늘어 보였다.

“아버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걱정이 하나 있다…”
“말씀해보세요!”
“… (생략)”
“아버지 말씀을 명심할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

토요일. 새벽 5시에 아버지 몸에 달린 소변 주머니를 비우고 소변량을 확인하였다. 기록지에 적었다. 아침 7시에 맞춰 식전에 먹는 약을 드시도록 시중을 들었다.
“아버지, 숨쉬기는 어때요?”
“편하다”
“숨쉬기가 더 힘들어지면 인공호흡기를 달고 끝까지 치료하고 싶어요?”
“…”

아버지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산소 마스크를 벗어야 했다. 화장실에서도 그랬지만 화장실을 나와서도 아버지는 너무 힘들어 하였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지다시피 누웠다. 산소 마스크를 다시 씌였지만 산소포화도는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연명치료가 싫다고 하셨던 아버지한테 병원 당직 의료진의 CPR 같은 응급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 8시.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너무나 갑작스럽다. 그리고 황망하였다.

아버지 유택을 고향에 마련하였다. 오늘 삼우제를 지냈다. 그런데도 지난 주말부터 일어났던 일들이 마치 봄날 햇살 속에서 꿈처럼 낯설다. 상주로 빈소를 지키는 동안에도 현실감이 거의 없었다. 믿어야 하니까 믿는 수 밖에 없는, 지금보다 나중에 더욱 슬퍼지려나.

지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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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0 20: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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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0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20 2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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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1 07: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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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0 2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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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1 07: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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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04-20 2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3-04-21 0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21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21 0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유적 2023-04-21 0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3-04-21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21 0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21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21 1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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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1 19: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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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1 17: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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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2 09: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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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2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록인 《논어》 첫 단락에는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인데 왜 벗을 ‘우友’라고 하지 않고 ‘붕朋’이라고 표현했는지 궁금해서 한자 어원 사전을 찾아본 적이 있다. ‘우’는 ‘죽마고우’라는 고사성어에서 알 수 있듯 어린 시절 함께 뛰놀았던 친구를 주로 가리키고, ‘붕’은 같은 선생님에게서 배운 학우들을 주로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니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는 동창생을 오랜만에 다시 만난 기쁨을 표현한 말인 동시에, 같은 선생님에게서 배우는 학우들을 소중히 여기라는 인생 조언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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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만남이었다. 초면이라 누구인지 모른다. 이강룡, 그리고 <과학의 위로>.

첫만남의 어색함을 이겨내고자 저자 소개를 보았다. 저자 프로필을 요약하면 이렇다.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고,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였다. 한겨레신문사 등을 거쳐 2004년부터 전업 웹칼럼니스트, 작가,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남다른 수상 이력도 있다. 정보통신문화신서 공모전에 당선(작가로 데뷔), 그리고 ‘우리말글 바로쓰기 운동’을 기획한 성과로 문화부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저자는 문과 출신 지식인이다. 그러나 마흔 무렵부터 스스로 과학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과학 만학도가 되는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 자못 궁금하다.) 인문학적 시선으로 깨달은 과학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을 책에 담아냈다. 그래서 <과학의 위로>를 만날 수 있게 되었구나.

이런 과학 책을 읽고 싶었다!

“인생의 반고비에 어두운 숲속에 있었다.”

단테가 지은 <신곡>의 첫 문장. 저자는 빛의 속성과 관련되는 과학의 원리를 설명하기 앞서 이를 인용한다. 세상살이가 복잡다단하니 역경이 있음이 즉각 이해된다. <거울과 등불>이라는 책을 꺼내보이며 빛은 깨달음이나 진리의 상징임을 상기시킨다. 빛과 어둠의 대조, 계몽(enlightenment), 가시광선, 광자, 마이크로파, 열 등으로 이어진다. 빛이 직진한다고만 알고 있었지만, 빛이 꺾이는 현상(투명한 유리잔 속 빨대는 수면에서 꺾인다)을 체감할 수 있음을 말한다. 빛이 꺾이면 허상이 생긴다. 그래서 신기루라는 착시를 보게 된다. 빛이 휘는 성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른 예를 또한 든다.

“”“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가 있다. 이 아스팔트 양쪽은 모래밭이라고 해보자. 잘 달리던 자동차의 오른쪽 앞바퀴가 갑자기 모래밭에 닿으면 자동차의 진행 방향은 어떻게 될까?
”“”

물음표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에 정답이 있다. 그러나 나는 물음표에서 멈췄다. 잠시 책을 덮었다. 정답에 눈길이 닿기 전에 스스로 먼저 생각해보고 싶었다. 답이 맞으면 기쁨 두 배가 된다. 맞히지 못하더라도, 공자의 가르침대로, 새로 배우는 기회로 삼으면 된다.

“”“
영국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은 1919년의 개기일식 때 휘어진 별빛을 관측하여,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맞는다는 것을 입증했다. 무거운 물체는 주변의 시공간을 움푹 패게 하므로, 그 옆을 지나는 빛도 그 굴곡을 따라 휘게 된다는 것이 일반 상대성 이론의 내용이다. 태양 뒤에 있으므로 지구에서는 관측될 수 없다고 여겼던 별이 우리 눈에 보인 것은 빛이 샛길로 휘어져서 왔기 때문이었다.
”“”

저자가 예시하는 과학의 원리를 복습하듯이 이해하면서 더불어 과학사의 주요 사건을 알게 된다. 어려운 문제를 단순하게 만드는 과학 이론과 중요한 발견이 있었다. 이론을 증명하려는 노력의 실패 사례가 있었고, 실험 방법을 달리하는 성공 사례가 따랐다는 사실을 알았다.

“”“
빛은 직진하지만, 공간이 휘어져 있을 때는 굴곡을 따라 움직인다. 이것을 ‘페르마의 원리’ 또는 ‘페르마의 최소 시간 원리’라고도 부른다.
”“”

영화 <컨택트>의 원작인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페르마의 원리를 설명하는 구절이 있다고. (“광선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 즉 ‘지금 여기’를 소중히 여기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며 빛의 속성을 연구한 페르마의 원리를 통해 저자는 지식뿐 아니라 위로를 안겨준다.

과학 책을 읽고 싶다. 앞으로 더 많이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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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3-04-12 1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븐 유투브도 운영하시는데, 정말 추천드립니다. 저도 이 책 너무 재밌게 읽었네요. 저도 이렇게 열심히 과학 공부해보고 싶어지고

오거서 2023-04-12 19:37   좋아요 1 | URL
유투브를 찾아보려는 생각을 못했어요.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yamoo 2023-04-12 1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과학의위로.. 좋은책소개 감사합니다!!

오거서 2023-04-12 19:38   좋아요 1 | URL
천만의 말씀입니다. ^^;
좋은 책을 써주신 작가님께 감사를 돌려 드리겠습니다. ^^

그레이스 2023-04-14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읽고 싶네요!
 
알라딘 커피 기프트 세트 - 드립백, 드립백 홀더, 내열 머그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3월
평점 :
품절


알라딘 버라이어티 팩(5종)과 모비딕 모양 드립백 홀더 은 마음에 든다. 홀더는 아주 쓸만 하다. 하지만 내열유리 머그 잔은 약해 보여서 그런지 쉽게 깨질 것 같다. 겉포장 박스를 장식하는 예쁜 그림이 선물의 호감도를 조금이나마 올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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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년 4 월 1 주 (4/3 ~ 4/9) 신간 적바림.

매주 신간 목록을 정리하는 일은 고되고 반복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신간 목록을 정리하면서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기도 하는데 나만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신간 목록을 공유한다면 좀더 보람 있겠다 싶다.

TOP 10 선정된 목록을 정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마인드맵 역시 크게 도움이 된다. 그리고 노션 페이지와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는 방법을 시험하였지만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 투비컨티뉴드 플랫폼이 제공하는 글쓰기 기능으로 신간 목록을 정리하는 방법을 시험 적용해 보았다.

https://tobe.aladin.co.kr/n/55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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