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바보라서 할 수 있었다

 

 

엄마는 바보인 자식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하직했다.

 

엄마 : 내가 너를 계속 지켜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너는 바보가 아니란다.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한 우물만 파다보면 반드시 먹고 살길이 생길 것이다.

 

바보 : 응! 한 우물만 열심히 팔게!

 

 

보통사람이었으면 한 가지 일을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아들었겠지만 바보는 정말 말 그대로 열심히 한 우물만 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한 우물만 열심히 팠다. 이를 지켜본 동네 사람들은 ‘저런 바보 같으니라고! 우물을 뭐 저리 죽자고 파는 건지? 누가 바보 아니랄까봐서 한 우물만 죽자 살자 파요! 엄마가 한 우물을 열심히 파란다고 정말 우물 파라는 줄 알고 지금까지 파다니 정말 바보도 저런 바보가 없어!’라고 수군댔다. 하지만 바보는 그런 말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우물을 팠다. 그러다가 가뭄이 찾아왔다.

 

 

몇 달 동안 비도 오지 않아서 논밭이 거북이등 껍질마냥 쩍쩍 갈라지면서 사람들이 먹을 물도 모자랐다. 물을 모아둔 저수지며 모든 것이 다 말라버린 것이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당장 먹을 물도 없는데 이대로는 사람들이 모두 죽을 거야! 빨리 비가 와야 하는데 내 평생을 살았지만 이런 지독한 가뭄은 처음이네! 다른 마을에서는 벌써 물이 없어서 죽는 사람이 나오는데 우리 마을도 멀지 않았어! 무슨 좋은 수가 없나?’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딱 하나가 생각났다. 바로 우물이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우물을 여기저기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이 나오지 않았다. 어지간히 파서는 물 구경도 못할 정도로 땅속의 물도 모두 말라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동네에서 어떤 사람이 바보네 집에 가서 물을 얻었다고 했다. 그 소문에 동네 사람들은 너도 나도 물을 얻겠다고 바보네 집 앞에 줄을 섰다.

 

바보 : 물이 없으면 우물을 파면 될 것을 뭘 그리 호들갑이시오?

주민 : 우리도 우물을 파보았지만 그래도 물 구경하기 힘드니 제발 우리 목숨 좀 살려주게나!

바보 : 좋소! 물은 걱정하지 마시고 길러도 좋소이다.

 

 

그러고 나서 바보가 마을로 내려가 보니까 동네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우물을 파놓은 흔적들이 있었다. 주민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바보의 언행이 궁금했다. 그래도 가뭄 속에서는 바보가 은인 중 은인이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바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바보 : 이런 바보들, 한 우물을 파야지! 이렇게 여기저기 다 파면 물이 나오나!

주민 : 우리도 해봤는데 잘 안 나오는 것을 어떻게 하나?

바보 : 바보들아, 나올 때까지 파야지! 잘 봐! 내가 파볼 테니까!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 아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바보가 몇 주일을 더 파니까 물이 콸콸 나왔다. 사람들은 여기 저기 조금 파고는 안 나온다고 이내 포기만 했지 바보처럼 한 우물만 나올 때까지는 파지는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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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명필의 노력

 

한 시대에 뛰어난 명필이 있었다. 그의 글씨체를 본 사람들은 저 마다 ‘아! 내 평생에 이런 아름다운 글씨체는 처음 본다! 내가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글씨체다!’ 하고들 감탄의 탄성을 내지를 정도로 빼어났다. 그러나 감탄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꼭 그 명필의 비결을 물어보았다. 명필은 자신의 비결을 자식 대대로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흔쾌히 공개를 했다.

 

 

명필 : 10년! 앞으로 10년만 열심히 연습하면 저처럼 됩니다.

 

그 당시에는 모두가 감동에 젖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을 했지만 집에 가서는 3일 정도 연습하다가 말았다. ‘미쳤지! 나더러 10년간 연습하라고? 난 못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그렇게 하겠어!’ 이런 식으로 말하며 사람들은 이내 포기를 했었다. 그동안 명필을 만났었던 모든 사람들이 그 비결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실천을 하지는 않았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도 길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내 ‘마루’는 10년간 묵묵히 정진을 했다.

 

마루 : 친구도 없는데 이거라도 열심히 해야지! 할 만한데,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하지만 그렇게 10년을 정진했는데 아무리 해도 발전이 없었다.

마루 : 속았다! 그놈의 명필의 말에 속아서 내가 10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했어! 그놈을 당장 찾아가서 요절을 내고 말 거야!

 

 

명필을 찾는 것은 의외로 너무 쉬웠다. 보자마자 마루는 명필의 멱살을 잡고 이리저리 쥐고 흔들었다.

 

 

마루 : 이 사기꾼! 10년만 열심히 하라고 했잖아! 그런데도 10년간 한결같이 열심히 했는데도 글씨가 전혀 늘지를 않아! 너도 눈이 있으면 보면 알 것 아니야!

그러고는 명필 앞에 자신이 연습한 두루마리를 던졌다. 명필은 조용히 두루마리에 써진 글을 펼쳐보더니 말했다.

명필 : 정말 죄송합니다. 그 대신 내가 당신의 잃어버린 10년을 보상할 만한 명필을 선물로 주겠소.

 

명필은 마루의 두루마리를 들고 자신의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액자에 자신의 고이 아끼던 글씨체를 선물로 마루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본 군중들과 마루는 너나 할 것 없이 보자마자 감탄을 자아냈다.

 

 

마루 : 아, 이런 귀한 것을 ……

.

마루는 10년간의 분노도 한순간에 싹 사라졌다. 평생 부자로 살 수도 있는 가치가 있는 명필 중에 명필이었다. 명필이 그를 불렀지만 명필의 마음이 변해서 다시 돌려달라고 할까봐서 마루는 걸음을 바삐 집으로 재촉했다. 그러나 입구에서 경비병에게 잡혔다.

 

명필 : 당신이 가지고 온 두루마리는 어디 있소?

마루 : 그것은 나도 잘 모르겠소.

명필 : (액자를 뺏어들고는) 이 액자가 마음에 드시오?

마루 : 그럼요, 명필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명필 : 만약에 이 글씨를 당신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고 보시오. 그래도 명필이오?

마루 : (적잖게 놀라면서) 예? 그게 제가 적은 글씨체라고요?

 

 

명필 : 그렇소! 당신은 10년간 서서히 글씨체가 완성되어 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미 완성되었는데 정작 당신만 그 사실을 몰랐던 거요.

마루 : 아,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았던 거군요!

명필 : 10년은 당신을 바꾸고, 세상을 능히 바꿀 수 있는 시간입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모두가 못한다고 했지만 안 되는 것은 자신의 의지였고, 못하는 것 또한 자신의 의지였습니다. 노력은 한계가 없지만 사람의 의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긋는 것은 바로 자신입니다. 나의 시대는 가고 이제 당신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새로운 명필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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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재상 아들

 

한 동네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이 그치지 않자 무슨 구경이라도 났는지 동네사람들이 그 집을 에워쌓았다. ‘뚝 그쳐! 울면 계속 매질을 할 거야!’ 하면서 무식한 아버지는 자신이 때리면서 오히려 아이를 울린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아이가 울어서 자신이 때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아이의 고집을 어릴 때부터 꺾겠다는 심사도 갖고 있었다. 그 아버지라는 사람의 고집과 성질이 하도 대단해서 ‘저러다가 애를 잡지, 잡아!’ 하면서도 동네사람 그 누구도 말리지를 않았다. 그렇게 아무도 성질 더러운 백정의 앞에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스님이 그 집 앞을 지나가다가 누군가에게 떠밀려서 무식한 백정 아버지 앞에 나서게 되었다.

 

 

백정 : 뭐야! 당신은?

순간 스님은 산적 같은 고약한 인상의 백정 앞에서 아이를 구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말을 했다.

스님 : 그 아이는 장차 재상이 될 재목입니다.

 

그제서야 백정 아버지는 아이에 대한 매질을 멈추고 대우도 달라졌다. 그 당시 스님이란 사람들이 존경하는 직업이었다. 물론 아버지는 백정으로 자신의 직업을 한탄하면서 자신이 받는 천대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몰랐는데 그래서인지 자식이 보물단지처럼 감사했다. 그리고는 재상이 될 재목이라면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뒷바라지를 해서 꼭 재상으로 만들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맞춤식 교육으로 재상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30년 후에 정말 아이는 재상이 되었다. 백정 아버지는 감사한 마음에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스님을 찾아왔다.

 

 

백정 : 스님, 어떻게 그리 사람의 앞날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추십니까? 스님의 말씀대로 저의 자식이 재상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 감사는요. 당신의 노력이 그렇게 만든 것을요.

백정 : 아무튼 조촐하게 잔치를 벌이니까 다른 분은 몰라도 스님께서는 그때 꼭 참석을 해주십시오!

스님 : 그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백정 아버지는 돌아갔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동자승이 어떻게 앞일을 그렇게 잘 맞추었는지 궁금하여 물었다.

 

 

스님 : 알기는 뭘 알아! 그냥 애 잡겠다는 생각에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말했었던 것뿐인데 진짜 재상이 될 줄은 나도 꿈에도 생각 못했다.

초대날짜에 스님은 그 재상의 집으로 갔다. 그랬더니 한눈에 척 봐도 재상의 자태와 위용이 돋보이는 사내가 있었다.

스님 : 재상님, 감축드립니다.

사내 : (손사래를 치면서) 큰일날 소리이십니다! 제가 재상이 아니라 저의 동생이 재상입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스님 : 아, 제가 결례를 했습니다.

 

동생을 축하하러온 형님이라는 사내의 관상을 보고 그렇게 판단을 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관상만은 재상도 저런 재상감이 없는데 거 이상하다고 스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생각도 잠시, 인기척이 났다.

 

재상 : 스님께서 저를 재상으로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아마도 스님 덕분에 제가 재상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스님 : 별말씀을요. 재상님의 노력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재상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겠습니까? 다 노력한 결실이 아니겠습니까?

재상 : 아무쪼록 즐거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관상만으로 보자면 형이 틀림없는 재상감인데 왜 재상이 동생 몫이 되었는지, 동생은 벼슬길에 오를 관상이 전혀 아닌데 자신이 배웠던 관상학은 다 부질 없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스님이 여태껏 40년 이상 배운 관상학에 허무함을 느끼던 찰나에 백정이었던 아버지의 관상을 보고는 생각했다.

 

 

스님 : 백정도 마음먹기에 따라 저렇게 인상이 변화할 수도 있구나! 아무리 백정이라도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는데 어찌 사람들이 백정이라고 경계를 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노력이 없었다면 재상 아들은 결코 없었을 것을! 재상 아버지가 있기에 재상 아들이 있는 법! 백정은 그날 죽고, 재상으로 다시 태어났구나! 재상의 관상을 갖고 태어났어도 재상이 되지 못한 것도, 재상의 복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어도 재상이 된 것도 다 부모하기 나름인 것을 ……. 내 말 한마디가 이렇게 운명을 바꾸어 놓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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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모방하라! 원작을 뛰어넘을 생각으로

 

불과 50년도 안 된, 같은 시대에 두 사람의 뛰어난 모방꾼이 살았었다. 두 사람은 사제지간으로 제자는 항상 스승의 그림자에 가려 빛을 잃었었다.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그리는데 감탄했다며 사람들은 항상 스승을 칭찬했다. 반면에 제자는 실제와 다르게 그림을 그렸다. 비슷한 듯하면서 무언가 하나 더 추가되어 있는 그림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모방이 아닌 새로운 창작그림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물을 바로 앞에 두고도 똑같이 못 그리다니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며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다름 것을 먹으면 죽는다고 사람들은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제자는 자신만의 고집이 있었던지 항상 사물과 다르게 그리려고 애를 썼다. 스승은 모방하는 것에 만족을 했지만 제자는 모방만으로 끝나는 것에 만족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스승은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지만 제자는 사람들의 비난 속에 급기야 일거리가 끊겼다. 그렇게 제자는 10년을 전전긍긍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갔다. 비난 속에서도 똑같이 그리는 것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그림을 창조해나갔던 것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프린터’라는 것이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복사기’도 나왔다. 그로 인해 스승은 더 이상 일거리를 찾기 힘들어졌다. 프린터하고 복사를 하면 되는 것을 굳이 비싼 돈을 주면서까지 모방꾼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제자는 자신이 그린 모방을 뛰어넘은 작품들이 서서히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돈도 벌 수 있었다. 어느 날 그 제자는 스승을 찾아갔다.

 

 

제자 : 스승님, 잘 지내시고 계시죠?

스승 : 말도 마라! 요즈음은 복사기인지 뭔지 때문에 일거리도 없다. 너는 일거리가 있니?

제자 : 저는 그럭저럭 일거리가 좀 있는 편입니다.

스승 : 일을 그만두었는지 알았는데 여전히 계속하고 있었구나! 그만두고 싶었을 텐데 꾸준히 하니까 나름대로 먹고 살길이 열리는구나!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더니 제자가 울분을 토해내자 스승은 갑자기 그때의 심정이 궁금했다.

 

제자 : 저더러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

스승 : 그래, 그런 이야기를 나도 들었는데 너는 그때 기분이 어땠느냐?

제자 : 그런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중간에 그만둘까도 생각을 했지만 속으로 나는 송충이가 아니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스승 : (얼굴빛이 별로 안 좋아지면서) 그러면 너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었느냐?

제자 : 저는 송충이가 아니라 나비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를 송충이로 짓밟는 사람에게 꼭 성공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를 악물고 칼을 갈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저를 이렇게 채찍질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스승 : 그래,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니까 다행이다. 아무래도 내가 송충이였나 보구나!

제자 : (적잖게 놀라는 표정으로) 스승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승님이 송충이라뇨?

스승 : 사람들이 너를 송충이라고 비아냥거릴 때 사실 나도 같이 웃었던 것은 알고 있느냐?

제자 : 다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스승님도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웃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승 : (강하게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 아니! 겉으로는 분위기 때문에 마지못해 웃었지만 속으로도 쾌재를 부르면서 웃었다. ‘그래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뽕잎을 먹으면 너처럼 죽는 거야!’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 거짓된 칭찬에 중독되어서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던 거야! 너는 모방을 하면서 만족을 했느냐?

제자 : 저는 만족을 했던 적이 없습니다.

 

 

스승 : 나도 모방을 하면서 만족했던 적이 많이는 없단다. 너는 모방을 하면서 행복했느냐?

제자 :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만족을 합니다.

스승 : 그렇다면 너는 행복한 삶을 살았구나! 나는 모방을 하면서 불만을 가졌지만 마음속에서는 항상 따라쟁이라는 오명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송충이처럼 솔잎을 먹으면서 편안하고 익숙하게 살면서 너처럼 껍질을 벗고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갈 용기가 없었던 것이지. 번데기가 되어서 숨죽이는 듯이 참아낼 자신도 없었다.

너처럼 10년 정도 버틸 수 있는 용기가 없었던 것이지. 나는 항상 어떻게 하면 더 똑같이 할 수 있을까 하는 모방만 생각을 했다. 그런데 너는 모방 말고 어떤 생각을 했느냐?

 

 

제자 : 저는 항상 원작을 뛰어넘을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은 모방을 생각했습니다. 모방에서 시작을 하지만 모방으로 끝나지 않고 항상 원작을 앞서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승 : (깨달음을 얻었는지 자신의 무릎을 치면서) 그래, 바로 그것이다! 나는 모방에 만족을 해서 더 이상 발전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이런 결과가 왔고, 너는 모방을 하면서도 모방을 뛰어넘을 생각을 했던 그 한 가닥의 생각이 너와 나의 미래를 이렇게 갈라놓았구나!

말을 마친 후 스승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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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관상은 심상을 이기지 못한다

 

스님이 시주를 하러 큰 기와집에 문을 두들겼다. 목탁을 두들기고 염불을 외니 잠시 후에 누군가 나왔다. 그런데 얼굴에 복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쌀을 건네주고 돌아서려고 하는데 옷을 보아하니 이 집에서 일을 하는 하인은 아닌 듯해서 스님이 말을 걸었다.

 

 

스님 : 보아하니 이곳에서 일하는 하인은 아닌 듯한데 혹시 주인 되시오?

주인 : 어떻게 아셨소? 모두가 하인으로 알던데.

스님 : 옷만 기품이 없었다면 저도 하인으로 알았을 것이오.

주인 : 네, 옷이 날개인 것 같습니다. 옷 아니면 저를 아무도 주인으로 보지 않지요.

스님 :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주인 : 무슨 말씀이신데 그러시오?

스님 : 그게 좀 말씀드리기가 참 민망합니다.

 

 

주인 : 피차 민망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소?

스님 : 그래도 실례지만 사실은 제가 관상을 30년간 공부를 했는데도 당신의 관상에 복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좋은 집에서 살게 되었는지 도저히 저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주인 : 내 얼굴이 그렇게 복이 눈곱만큼도 없는 것이오?

스님 : 거짓말을 원하면 제가 거짓으로 복이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관상책에는 당신의 얼굴에 복은 전혀 없는 것으로 나옵니다.

 

 

주인 : 거짓말이라도 복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

 

주인은 잠시 신세한탄 같은 푸념을 해서 스님도 괜한 말을 했나 하는 생각에 민망한 빛이 얼굴에 스치려는 순간 주인이 말했다.

 

주인 : 괜찮습니다. 하도 복이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요.

스님 : 저 말고도 그런 소리를 많이들 하는군요.

주인 :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자주 들었습니다.

스님 : 그러면 복이 없는데도 왜 복 있는 자만이 살 수 있는 이런 좋은 집에 살고 있습니까?

주인 :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사연도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네요.

스님 :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으니 다 들려주시오!

 

 

주인 : 몇 해 전 엄청난 태풍이 오지 않았습니까?

스님 : 아마도 50년 만에 찾아온 큰 태풍이었지요.

주인 : 그때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무지 많았었죠.

스님 : 그랬죠, 정말 대단했죠.

주인 : 그때 나무들이 강으로 무지 많이 떠내려갔습니다.

스님 : 그런데요? 그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으신지?

주인 : 그 당시 나무에 시커먼 것들이 득실득실 했었습니다.

 

 

스님 : 그게 뭔가요? 벌레들인가요?

주인 : 네, 마치 개미들이 득실득실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 : 말 못하는 미물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겠네요.

주인 : 그때 떠내려가는 나무에 다른 나무를 걸쳐서 개미들이 땅으로 건너올 수 있도록 해주었는데 얼마나 많은 개미들이 득실거리든지 아마도 몇 시간 동안 땅으로 건너왔었을 겁니다. 그리고는 다른 나무들에도 그런 것이 있나 싶어서 찾으러 다니면서 몇 개 나무들에 있는 개미들도 다 살려주었었죠. 그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그게 내가 살아오면서 했었던 최고의 좋은 일이었습니다.

 

 

스님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관상은 심상을 절대 따라갈 수가 없군요. 당신의 관상은 비록 복이 없게 태어났지만 마음으로 베푼 복은 반드시 좋은 결과로 다가옵니다. 관상이 아무리 뛰어나도 좋은 일을 베풀지 않으면 복이 굴러들어오지 않지만 관상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좋은 일을 베풀면 좋은 일은 반드시 열매를 맺죠. 관상은 절대 심상을 이길 수 없는 이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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