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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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집행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 부분을 모르겠어욤………. 기분이 찝찝해욤……. 토끼의 간을 주세욤." 이렇게 지적 옹알이를 할 수 있는 때는 지났다. 순간의 통찰이니 뭐니 하는 ‘지랄병’ 하지 말고, 연구자들이 누적해온지식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연구자의 길을 가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 객관성을 위해 도덕적 결단을 하는 일까지포함한다. 그러한 도덕적 결단 없이는 탐구와 인식의 객관성이 확보될 리 없다. 자칫 자기가 보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기고, 자기가 못하면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기 쉽다. 인식론적 객관성을 존중하는 자세가몸에 익으면, 누가 봐도 못생긴 아이를 두고 예쁘다고 강변하는 부모에게 엄연한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머릿속 모든 것을 입 밖에 내야할 필요는 없다. - P58

노년이 되면 체력이 현격히 저하된다. 그때 가서 새삼구해야 할 나라 같은 게 있으면 너무 피곤할 것 같다. 꾸준히 공부해왔다면, 공부가 이미 습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매번 결단을 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결단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하여,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배우는 거다. 수중에 돈이 있으면 기꺼이 지불하면서.
그리고 마침내 때가 온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사놓고 그때까지 안 읽은 책들은 이제 포기하겠다. 이 단계가되면 내 삶에 들어왔다가 나간 동학들이 남긴 흔적들을천천히 치우겠다. 부고는 들리지 않고, 다만 근황을 듣기어려울 것이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작은 응접실의 불을끄는 거다. 이것이 삶이었나요? 이미 다 지난 일이군요. - P60

잔인한 것은 이 우주만으로도 충분하다. 중국 쓰촨성 루구호 주변에 사는 모소족 사람들은, 상대가 싫으면, "너는나에게 이 나뭇잎처럼 가볍다"는 뜻으로 손바닥 위에 나뭇잎을 올려놓는다고 한다. 이제부터 논문 발표장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형편없는 논문이 발표되면, 그에 대해 폭언을 퍼붓는 대신, 손바닥 위에 나뭇잎을 올려놓는 거다.
나뭇잎이 없다면 무말랭이라도 올려놓는 거다.
끝으로, 자신의 주장이나 비판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상심할 필요는 없다. 활자화된 주장은똑똑함이나 멍청함을 대대로 홍보하는 최고의 수단이니,
언젠가는 자신의 똑똑함이나 멍청함을 제대로 이해해줄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김선재의 시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읽는다. "단수와 만난 단수는 복수가 된다/단수와 헤어진 단수는 여전히 단수다/그러니 아무것도 잃은 것은 없다/구름과 어제가 지나갔을 뿐" - P52

시가 아니며, 따라서 나는 일본에 도착한 이래 아직 스시를 먹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당신은 회전 스시를 먹은 것서, 품위 없이일 뿐, 스시를 먹은 것이 아니다." 이어서 이런저런 공부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지면서, 그는 나의 초라한 식도락을 다시 한번 확인 사살했다. "당신은 아직 스시를 먹지못했다. 진정한 스시를.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기억하는가/우리가 처음 만나던 그날/환희처럼슬픔처럼/오래 큰물 내리던 그날/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므로/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네가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으므로/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최승자, 기억하는가> 중에서). 나도 노래한다. "기억하는가 우리가 만났던 그날/네가 회전 스시를 능욕한 그날/네가 내 취향을 부정했으므로/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러고도 네가 스시를 사주겠다고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실로 그날 밤, 나는 여러 가지 질문으로 머리가 복잡했던 기억이 있다. 회전 스시는 과연 스시인가, 고래상어는 상어인가?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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