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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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리뷰를 남겨야 할지 벅찬 책들이 있다. 온통 발췌문만 가득해지고 내 문장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기가 힘든……. 보뱅의 책들이 그렇다. 아름답다는 말로만은 표현할 수 없다. 그가 보는 세계는 그에게서 정화되어 글이 된다. 그 글은 아포리즘이 되고 시가 된다. 새롭게 창조된 세상이 된다.

 

원제 ‘La Folle Allure’미친 발걸음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순화하면 무분별한 발걸음이라고 하면 될까? 그러고 보니, 소설의 표제지에 인쇄되어 있는 작가의 글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이중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같은 수레에 묶여 서로 자기 쪽으로 미친 듯이 끌어당기는 두 마리 말과 같은, 기쁨과 고통, 웃음과 그늘이라는 두 줄기 피가 우리 마음에 흐르게 해야 한다. 그러니 적절한 보폭을 찾고 올바로 판단하려 애쓰는 눈밭의 기수들처럼 앞으로 나아가자. 그 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이 때론 얼굴을 때리는 낮은 나뭇가지처럼 우리를 쓰리게 하고, 목덜미로 달려드는 황홀한 늑대처럼 우리를 물어뜯는다 해도.

-크리스티앙 보뱅


이 소설에는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글이 많이 담겨 있다. “나는 진지할수록 웃는 게 좋고,……이름들은 진지하다. ()은 태어날 때부터 당신 위로 떨어지고, 나이가 들수록 두툼한 옷 속으로 스미는 가랑비처럼 점점 더 무거워진다.(29)” 타고난 혈통에 덧입혀진 의미들로 말미암아 무거워진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는 자신의 소설에서 존재의 가벼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독자에게 사유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보뱅은 이 소설 가벼운 마음에서 계속해서 탈주하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무거움으로부터 탈주다. 무거움을 견디지 못한다.

 

화자이며 주인공인 뤼시는 나는 오로르다라고 소개하고는 곧 아니 농담이다. 내 이름은 벨라돈이다. 그리고 마리 뤼드밀라, 앙젤, 에밀리, 아스트레, 바르바라, 아망드, 카트린, 블랑슈다.(29p)”라고 한다. 그녀는 그 누구도 아니고 그 누구도 될 수 있다. 한 가지 이름으로 규정되길 거절하고 규정 될 수 없다는 뜻이리라. 모비딕“Call me Ishmael”이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짧은 문장의 번역과 해석을 놓고도 독자들은 많은 의미들을 만들어 냈다. 이름으로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표적 소설이다. 반면 보뱅의 이 소설에서는 화자가 지나가며 가볍게 농담하듯 여러 가지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며, 오히려 웃음이 자신보다 강하다고 말한다. 이름조차 말할 필요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뤼시의 영혼의 친구는 늑대다. “내 첫사랑은 누런 이빨을 가지고 있다.” 두 살 때 늑대의 우리 안에서 늑대의 배에 머리를 대고 잠이 들어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들이 공포에 떨었던 것은 우리 안에서 졸고 있는 짐승이 아니라 우리 위에 적힌 빨간 글씨의 안내판이다. “두렵게 만드는 건 이름이다. 이름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실체 자체도 없다.(11p)” 늑대의 죽음과 함께 그녀의 가출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많은 이름들을 지어냈다.

 

뤼시는 서커스단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모가 있지만 특별히 누가 부모랄 것도 없이 그 공동체 내의 열세 가정에서 동시에 자랐다. 어릿광대나 곡예사 아주머니 등 어른들에게서 자랐다.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직관적이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늑대와 같고 어머니는 고양이 참새, 넝쿨식물, 소금, 꽃가루 같다.

 

뤼시는 네 살짜리 쌍둥이 동생들을 물속에 빠뜨리고, 머리위로 비둘기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싶어 세례를 주었다고 말함으로 어릿광대 아저씨의 교육을 무화시키지만, 그의 몸짓과 표정으로 표현된 복음서 이야기들을 승화된 아름다운 예술적 장면으로 기억한다.

종교에 관한 한, 나는 향유, 맨발, 머리카락, 이 눈부신 삼위일체에 머물러 있다.(41p)”

 

그녀는 글을 쓸 때 잉크로 쓰지 않는다. 가벼움으로 쓴다.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여름비의 도도한 서늘함에 침대 맡에 팽개쳐둔 펼쳐진 책의 날개들에, 일할 때 들려오는 수도원 종소리에. 활기찬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음에, 풀잎을 씹듯 수천 번 중얼거린 이름에, 쥐라산맥의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모퉁이를 돌아가는 빛의 요정 안에,…… 저녁마다 덧창을 느릿느릿 닫는 의식에,……(68p)”

 

아름다운 글이다. 그녀가 말하듯 어디에나 가벼움이 있지만, 찾기 힘든 게 우리다. 그렇게 희박해서 찾기 힘들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순하게 받아들이기! 나로서는 실천하기 힘든 태도다. 그런 기술을 장착할 수 없는 것은 불안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도 될까?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말해도 될까? 그 뒤에 다른 의미들이 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서커스단에서 태어나서 이리저리 유랑하고, 다툼이 일상인 부모가 불편하면 다른 트레일러를 찾아가고, 가출이 습관이 되어버린 아이 뤼시는 불행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 속에 감추어진 가벼움으로 글을 쓰는 능력은 그러한 삶에서 갖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렇진 않겠지만 그녀에겐 축복이 되었다.

 

마주할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고 바로 그때가 되면 생각하는 것, 어떤 일을 할 때 왜 하는지 몰라도 할 수 있다는 것, 가벼움으로 본 삶에 대한 깨달음이다.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 “사실 감정의 깊이는 사랑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때가 많다.” “부부생활을 더딘 죽음을 견뎌내는 커다란 짐승과 같다.” 그리고 궁극적인 질문 영혼은 무엇인가?”이른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은 그녀에게 이런 질문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녀는 자신의 질문들에 바람을 쐬어 주고 응시하기 위해 자주 홀로 머문다. 그녀는 누군가의 구속을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다.

 

나의 늑대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눈에 비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향해 가고 있으며, 그들이 다가오는 것 같을 때라도 실은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것과, 모든 건 처음부터 사라지며 소멸해간다는 것이다. …… 그 때문에 오히려 주저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으며, 그 생각으로 나는 이 순간에도 노래 부를 수 있다.(154p)”

 

누군가에게는 미친 발걸음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은 가벼움을 찾아가는 걸음이다. 그만큼 무게를 덜어내기가 쉽지 않으므로 갈지자로 보인다. 유목민처럼 태어나고 살았던 그녀일지라도. 수많은 의미가 담긴 시선으로 보면 그 가벼운 마음의 행보가 미친 듯 보인다. 그녀와 달리 오늘도 모든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나를 본다. 무겁다. 무엇이 나에게 더 좋은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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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7-31 15: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아서 주변에도 선물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에게는 웃다가 벅차서 눈물 나는 가벼움이었어요.
설명하기 힘들어서 독후감 쓰지 못했는데 그레이스님의 리뷰로 대리만족합니다.ㅎㅎㅎ

그레이스 2023-07-31 15:07   좋아요 3 | URL
미미님도 그러시군요.
그냥 책 한권으로 간직하고 싶은 그런 글들이죠. 뭔가 감상을 쓰는게 훼손하는 것 같은! ㅎㅎ

거리의화가 2023-07-31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순하게 받아들이기,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장들이 참 아름답네요. 저도 언젠가 보뱅 만나보겠습니다^^*

그레이스 2023-07-31 15:28   좋아요 2 | URL

정말 넘 아름다운 문장들이예요
제 책상에는 환희의 인간이 올려져 있습니다.
절판된 책들도 다시 나왔으면 좋겠네요.

페넬로페 2023-07-31 15: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 이 책 다 읽었는데~~
다시 읽으려고 해요.
제 나름의 의미를 아직 찾지 못했어요.

그레이스 2023-07-31 15:29   좋아요 3 | URL
예~
저도 다시 읽게 되면 놓친게 많은걸 알게 될 것 같아요

얄라알라 2023-07-31 19: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영광입니다!!!!

[가벼운 마음]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바로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었을 정도로 보벵의 문체와 매력적인 인간형에 반했었는데요. 그의 문장에 압도되다 보니, 찬탄만 나오지 독자로서 어떤 문장으로 정리해야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주인공이 남편을 떠나 계단을 내려올 때 내던 그 소리가, 책 읽은지 몇 달 지나고 난 지금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그레이스님께서는 ‘이름‘에 주목하셨네요. ˝ 이름조차 말할 필요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그레이스님 말씀)___ 혹 제가 이 책을 또 읽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땐 그레이스님의 시선을 상상하며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다시 읽고싶어지네요

그레이스 2023-07-31 20:1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댓글에 감동받았어요
저도 말씀하시는 그 부분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티타티티타티, 티타티타타티...~♡

제가 영광입니다^^

얄라알라 2023-08-01 12:43   좋아요 1 | URL
아!!! ㅋㅋ맞아요 그레이스님

˝티타티티타티, 티타티타타티....˝

자꾸 그 부분에서 무용수의 몸짓을 상상했는데

티타티티타티, 티타티타타티..
요거 였군요^^

2023-08-01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1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3-08-02 1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가벼운마음 진짜 좋죠!!!!! 🥹🥹🥹🥹🥹🥹🥹🥹🥹🥹🥹🥹🥹🥹🥹🥹🥹
저도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보뱅 에세이도 한권 읽었는데 이것도 좋았지만 역시 가벼운마음이 최곤거같아요.. 진짜.. 너무 좋아....ㅠㅠ

그레이스 2023-08-02 21:31   좋아요 1 | URL

다들 좋다고 하시니, 저도 뿌듯합니다.
보뱅읽기는 계속되어야 할듯요.

얄라알라 2023-08-03 0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보뱅의 파란책을 빌려왔는데 제목이 갑자기 기억이 안남이요...혹시 은오님 말씀하시는 에세이일까?^^ 기억력을 구박하며 서가로...가봐야겠습니다 ㅎ

그레이스 2023-08-03 05:14   좋아요 1 | URL
환희의 인간!
저도 그거 읽으려고 해요~~

얄라알라 2023-08-05 03:54   좋아요 1 | URL
^^ 그레이스님

온통 파란 그 책 제목은 <인간, 즐거움>이네요 저도 이후 찾아봤어요

1984books처럼 편집이 예쁘지는 않아서 말 그대로의 파란색이예요^^

저도 나중에 <환희의 인간> 읽어볼게요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3-08-05 07:59   좋아요 0 | URL
그건 없는데...
찾아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ㅠㅠ
절판된 책이군요.
도서관으로....!
 

그리스 비극을 처음 읽었을 때는 서사를 놓치게 되는 순간이 많았었다.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한권 전체를 읽는데 주석(註釋)이라는 돌부리들을 만나 흐름이 깨지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다. 재독(再讀)의 즐거움 중 하나는 처음과 달리 제법 막힘없다는 것이다. 두 독서 사이에 지식을 쌓은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확인해야 하는 사실들이 있다. 처음 읽을 때보다 오히려 참고할 책들이 많아지기도 한다. 서사는 알고 있으니 처음 겉핥기로 지나쳤던 지식을 더 찾아보는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 무엇을 더 읽어야할지 잘 보이기 때문이다.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 BIBLIOTHEKE를 번역한 이 책은 토마스 불핀치나 에디스 해밀턴, 그리고 국내작가가 쓴 그리스 로마신화와 달리 간결하여 곁에 두고 사전처럼 읽기에 편한 책이다. 호메로스나 기원전 5세기경에 활동했던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작가들도 자신의 작품에서 신화나 영웅의 이야기를 각색하고 재구성했다. 이렇게 신화책들은 구전되거나 극적효과를 위해 재구성된 것들을 기록하다보면 내용이 많아지고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공존하게 된다. 아폴로도로스는 기원전 2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던 아테나이 출신 대학자이다. 이전 기록들을 참고하여 백과사전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그래서 제목도 비블리오테케 BIBLIOTHEKE’. 고대 도시 국가의 탄생과 그 왕들의 계보와 함께 그들과 관련된 신화에 관한 정보를 주고 있다.

 

그리스 비극을 읽기에 좋은 참고서다. 예를 들자면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배경이 되는 고대 테바이의 신화와 역사를 시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특히 라이오스와 아들 오이디푸스로 이어지는 테바이의 왕위계승자들과 찬탈자들, 테바이 전쟁에 관한 기록은 두 세 페이지 안에 비극의 핵심 내용이 담겨있다. 한 줄의 문장을 비극으로 탄생시킨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한다. 아니, 복잡하고 극적인 사건을 신문기사처럼 간결하고 정확한 정보로 전달하는 아폴로도로스와 같은 기록자에게 감사하게 된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시간적으로 오이디푸스왕안티고네사이에 위치하지만 소포클레스의 현존하는 작품으로는 가장 늦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오이디푸스 왕이 분노와 죄책감으로 스스로 눈을 멀게 한 이후 시간이 흐른 후의 이야기다. 격정이 지나가고 절망했던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달라져있다. 콜로노스에 도착한 그는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나는 법 앞에 결백하며 영문도 모르고 그리 했던 것이오.(549)”라고 말합니다. 진실을 알게 되었던 때, 죽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으나 세월이 흘러 고통이 가라앉고, “홧김에 지난날의 과오를 너무 지나치게 벌주었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그때서야 비로소 도시가 나를 억지로 나라에서 내쫓으려 했다.(437~440)”라고 회상합니다. 콜로노스에 도착한 그는 아테나이 시민과 테세우스에 의해 환대를 받는다. 그는 예언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과거 눈이 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비웃고 의심했던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의 위치에 서게 된다. 눈이 있으나 볼 수 없었던 것을 눈을 잃고 시간이 흐른 후 보게 되는 역설이다.

 

그를 쫓아온 크레온은, 아리스토파네스가 그의 희극에서 비판했던, 정치적이고 외교적 수사에 강한 인물이다. 그는 부드러운 언변과 태도로 감춘 욕망을 이루어내는 노회한 사람이다. 오이디푸스에게 행한 일들이 정의롭지 않음이 드러나도, 여전히 능란한 말로 변론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정치적인 인간도 안티고네라는 복병을 만나 악수를 두고 후회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 교훈적이다.

 

자신을 찾아온 폴뤼케이네스를 만나지 않으려하는 오이디푸스의 노여움에서 세월이 흐르고 깨달음이 있다 해도 여전히 성품이 변하기는 쉽지 않음을 보게 된다. 안티고네의 설득으로 내키지 않지만 아들을 만나기로 한 오이디푸스가 퇴장하고 코러스가 부르는 노래는 슬프다.

 

경박하고 어리석은 청춘이 지나고 나면

누가 고생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누가 노고(勞苦)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이오?

시기, 파쟁, 불화, 전투와 살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난받는 노년이

그의 몫으로 덧붙여지지요.

힘없고, 비사교적이고, 친구 없고, 불행 중의

불행들이 빠짐없이 모두 동거하는 노년이.”

(1229~1238)

 

힘없고, 불행한 상황은 불가피하다해도, 비사교적이고, 친구 없는, 비난받는 노년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생각해보게 한다.

 

주인공이 하데스를 향하는 장면은 호머의 오디세이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단테의 신곡의 장면과 오버랩 된다. 또한 노년의 주인공이 욕망, 수치심, 분노 등을 내려놓고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템페스트에서도 보게 된다. 오이디푸스의 죽음은 그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보상처럼 보인다. 아폴로도로스는 비블리오테케에서 앗티케의 콜로노스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탄원자로 앉아 테세우스의 환대를 받았으나 곧 죽었다.(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211p)”라고 짧게 말하고 있으나, 소포클레스는 믿음과 상상력을 통해 재현한다. 고대인들에게 죽음은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이 땅에서의 삶과는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므로, 죽음을 앞둔 인간은, 모든 정념(情念)이 사라지고, 안식을 맞이한다. 인간에게 죽음은 실존이며 영원한 숙제이고 철학적 주제일 수밖에 없다. 문학의 주제로 반복 재현되는 이유일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죽고 안티고네는 테바이로 돌아간다. 크레온은 테바이를 위험에 빠뜨렸던 폴뤼케이네스의 시체를 장사지내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벌였던 왕권다툼과 추방된 폴뤼케이네스가 아르고스의 군대를 이끌고 조국 테바이를 쳤던 테바이 전쟁이라는 역사가 배경이다. 그러므로 크레온의 명령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안티고네는 안티고네가 이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시체 위에 흙을 덮으러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명령을 어긴 안티고네를 체포해서 무덤에 가두는 크레온 앞에 다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등장한다. 소년을 의지해서 등장한 그는 올바른 숙고(생각)’이 가장 값진 재산이라고 말합니다. 그 올바른 숙고의 결과는 양보’, 자기 의지를 바탕을 한 완고함을 거두고 유연해짐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올바른 길은 하나밖에 없음을 주장(796, 685행)하는 크레온에게 하이몬이 한 충고(710, 723, 712-14, 715-17행)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하이몬과 테이레시아스 모두 배움과 양보, 그리고 실천적 지혜와 유연한 융통성을 강조한다.

 

마사 누스바움은 세계에 대해 완고하기보다는 유연하게 반응하면 세계가 품은 가치의 풍부함을 인식하는 길을 여는 한편, 충분한 만큼의 안전과 안정으로 향하는 길도 함께 열 수 있다.(연약한 선208p)” 고 말한다. 그가 말한 것처럼 크레온이 주장한 에토스의 단일성은 어리석고 추악하고 빈곤하다.

 

강태경 교수는 크레온은 페리클레스를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당시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맹주 아테네는 패권주의를 추구했습니다.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동맹국인 밀레토스(Miletus)와 사모아(Samoa)의 분쟁에 개입하여 사모아와 전쟁을 벌인다. 분쟁국의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서 전사자가 속출하자 가정장례를 국가 장례절차로 치르게 한다. 사모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한 후 페리클레스는 전몰자를 위한 장례의식에서 연설을 한다. 애도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연설을 했다. 페리클레스의 통치적 의도를 엿보게 된다.


이 작품이 디오니소스 연극축제에서 처음 상연되었을 때 아테네인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그 공로로 극작가를 사모아의 총독으로 추대했다. 이 작품은 첫 상연 이후 32년에 걸쳐 연속적으로 연극축제에 출품되었다.(『고전문헌목록』 J. 랑프리에르)


이 작품에 페리클레스를 비판하는 의도가 있었다면, 작가인 소포클레스가 사모아의 총독으로 추대됐다는 사실 또한 아이러니하다.

 

지금까지 안티고네에 대한 거의 모든 해석들은 헤겔의 논의의 변주와 반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헤겔의 영향력은 절대적(안티고네39p)”이라고 한다. 그는 비극이란 동등한 두 권리 내지는 윤리적 요청의 충돌이며 안티고네는 그러한 충돌의 역학과 그것이 종합적으로 해결되는 정--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개괄적 이해를 제시한다. “상대적으로 동등한, 궁극적으로 일면적인이 두 윤리적 행위는 각자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상호배제적이라는 점에서 참된 정의”, 곧 보다 높은 윤리적 차원을 획득하지 못하고 상호 파멸에 이른다는 것이 헤겔의 설명이다.

안티고네는 시대와 함께 재해석되어 왔다. 18~19세기 계몽주의 시대, 안티고네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이미지로 열광 받았다. 양극화와 극단적 진영논리가 팽배한 현대 상황에서 마사 누스바움의 해석이 적용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완전히 수동적인 희생자는 다른 사람을 돕는 행위를 할 수 없고 크레온과 같은 행위자는 타자를 보지 못한다. ‘운명의 칼날에 서려면 반드시 이런 식으로 질서와 무질서, 통제와 연약성 사이에서 극도로 섬세하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연약한 선2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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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7-23 22: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약한 선>의 발췌문 인상적입니다. ^^
이렇게 어려운 책을 재독하시느라 뜸하셨군요!
공부는 할수록 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ㅎㅎ

그레이스 2023-07-23 22:38   좋아요 3 | URL
^^;;
공부하는 팀이 늘어났어요.
고전 읽기 모임이 하나 더 생겨서 다시 재독 중입니다^^
재밌는데,,, 다시 읽고 논제 만드는데, 더 수월하지도 않네요.

새파랑 2023-07-24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랑 좀 다른거 같아요 ㅋ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깊이의 차이가 느껴집니다~!!

그레이스 2023-07-24 01:02   좋아요 1 | URL
;;
다 각자 읽는 프레임이 다를 뿐이죠.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3-07-24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름을 잡을 수 있다고 하시니 혹하네요.
근데 저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샀던 것 같은데.. 심지어 읽었던 것 같은데..?? 본가에 있나 찾아봐야겠어요^^;;

그레이스 2023-07-24 18:02   좋아요 1 | URL
ㅎㅎ
완전 공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의 구성요소를 플롯, 성격, 조사, 사상, 장경, 노래로 정의했다. 그 가운데 극중 사건의 순차적 배열방식인 플롯을 비극의 생명이라고 강조한다. 비극의 소재가 널리 알려진 신화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관객은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다. 알고 있는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전개하는가에 따라 관객의 감동은 달라지게 된다.


그는 <오이디푸스 왕>을 좋은 플롯의 예로 제시한다. 극을 이끌어가는 플롯의 세부분은 급전발견파토스. <오이디푸스 왕>에서 사자(使者)의 등장은 상황의 역전, “급전(peripeteia)”을 이룬다. 동시에 역전된 상황(급전)을 통해 어떤 중대한 사실 또는 진리에 대한 발견(anagnorisis)”을 가져 온다. 한순간에 급전과 발견이 일어나, 극적 긴장감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플롯을 갖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이 비극에서 오늘 안에라는 예언적 대사의 반복이 보여주듯이 하루라는 시간 안에 완결됨으로 그 긴밀성을 더하고 있다.

 

급전(急轉, peripeteia)이란 사태가 반대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변화는 위에서 말했듯이 개연적으로 또는 필연적 인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오이디푸스에서 그 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자는 오이디푸스를 기쁘게 해 주고 그를 모친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줄 목적으로 왔지만, 그의 신분을 밝힘으로써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발견(anagnorisis)이란 그 말 자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무지(無知)의 상태에서 지()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등장인물들의 행운에의 숙명을 지녔느냐 불행에의 숙명을 지녔느냐에 따라 우호 관계로 들어가기도 하고, 적대관계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발견은 오이디푸스에 있어서와 같이, 급전을 동반할 때 가장 훌륭한 것이다. (시학11)”


오이디푸스 왕을 재독하면서 시학과 함께 오이디푸스왕 풀어 읽기도 다시 읽었다. 이 책에는 고대 디오니소스 극장과 그리스 비극과 관련된 유물, 현대 다시 재해석되어 올려진 공연 사진들이 실려 있다. 타이론이 거스리(Tyrone Guthrie)가 연출의 1945년 런던공연(로렌스 올리비에 주연), 1955년 캐나다 스트랫포드 공연 시 타냐 모이세비치가 고안한 가면들, 1952년 독일 다름슈타트 공연, 미로슬라브 마챠첵(Miroslav Machacek)연출의 1963년 프라하 공연, 막스 라인하르트(Max Leinhardt)연출의 1910년 뮌헨·1912년 런던·1920년 베를린 공연의 사진들이다.

 

그리스비극의 기원과 공연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기원전 6세기 중반 아테네에서 디오니소스의 도시라는 축제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발전했다. 5세기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의 맹주가 되면서 주변 국가에서도 참여하는 행사가 되었다. 연극은 경연형식으로 이루어졌고 비극 3편과 목양신극(Satyr Plays:반인반수의 목양신들이 등장하는 노래와 춤으로만 이루어진 연극) 1, 또는 희극 3편과 목양신극 1편이 하나의 작품으로 출품되었고, 10개 부족의 대표자들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여 투표의 형식으로 그 우열을 가렸다.(오이디푸스왕 풀어 읽기174p)”

 

고대 그리스의 극장은 객석 테아트론(theatron:theatre의 어원), 객석을 접하고 있는 반원형 또는 원형의 무대인 오케스트라(orchestra:원래 원형이라는 뜻), 단상 무대인 스케네(skene:scene의 어원)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는 아고라에 목재로 극장을 만들었다가 객석이 무너지는 사고 후, 산비탈을 이용해 만든 것이 디오니소스 극장이다.

다른 요소들로는 가면(character:원래 가면을 뜻), 코투르나이(kothurnai, 높은 신발)이 있다. 가면은 세명의 배우가 일인다역을 하거나 대규모 공간에서 표현적 연기를 위해서 필요한 장치다.


이 중 가장 새롭게 의미를 발견한 것이 객석을 의미하는 테아트론이라는 단어의 어원과 관련한 것이다. 테아트론(theatron)본다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단어 테아오마이(theaomai, θεαομαι)유심히 관찰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보편적인 원리나 본질을 통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theory도 여기서 파생되었다. 김헌 교수는 객석 테아트론은 무대와 오케스트라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을 통찰(테아오마이)하라는 요청을 받는 자리라고 말한다. 유심히 관찰하는 태도, 그리스의 비극이 현대에도 새롭게 재해석되고, 거기서 독자나 관객이 통찰을 하는 원리다.

 

오이디푸스 왕에는 긴장감과 극적인 반전을 이루는 장면, 충격적 형상 외에도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리스의 역사를 알고 있다면 그 시대 아테네의 정치와 관련된 문제 제기도 포착하게 된다. 사건이 일어나는 곳은 테베라는 고대 도시국가이지만, 소포클레스는 아테네의 상황을 대입시켜 비판하고 있다. 코러스의 합창을 통해 아테네 전통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음을 알게 된다. 크레온과 오디세우스의 대화에서는 참주와 귀족 간의 견제와 갈등을 읽게 된다.

오이디푸스 왕의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는 코러스는 신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보아 소포클레스는 전통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델로스 동맹의 시대를 살고 있는 그로서는 평화를 깨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역병의 원인에서 출발하여 추적해간 오이디푸스가 닿은 진실은 그가 누구인가이다. 신탁을 피해 도망치지만 그 부르튼 발은 테베와 델포이와 코린트 사이를 헤매고, 세 갈래 길에서 저주를 이루게 된다. 스핑크스로부터 테베를 구하고 지도자가 된 그는 오만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이다. 눈먼 테이레시아스가 볼 수 있는 오이디푸스의 존재와 운명을 눈뜬 오이디푸스 스스로는 볼 수 없는 아이러니, 이오카스테가 향을 피우며 신탁을 기원하는 자욱한 연기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사신의 초라한 모습이 바로 아폴론의 현현이고, 진실을 가진 자라는 역설을 읽게 된다. 스스로 눈을 찔러 피를 흘리는 그의 참혹한 모습은 두려움과 연민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한다고 하지만, 현재의 시간을 사는 나는 그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를 생각해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느끼는 한 연약한 인간의 절망감,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죄의식, 피해갈 수 없었던 자신의 무지와 무능에 대한 분노, 오만했던 시간들에 대한 비웃음과 처벌이었을까?


기원전 5세기 후반, 즉 플라톤이 유년 시절을 보낸 시기의 아테네는 인간의 힘에 대한 맹렬한 갈망과 활기찬 자신감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이때 아테네인들은 인간 삶이 갖가지 형태로 운에 가장 크게 노출됨과 동시에, 통제 불가능했던 우연성을 인간의 진보를 통해 사회적 삶에서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다.(『연약한 선』마사 누스바움 221p)”

이 문장때문에 이 책을 레퍼런스로 추가했다.


(갖고 있는 <시학>은 둘 다 절판된 책이라 같은 저자의 재출간 된 책을 같이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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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30 0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극에 관해 유익한 공부가 된 셈입니다.

그레이스 2023-06-30 09:07   좋아요 0 | URL
그런듯요
희곡 몇개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미미 2023-06-30 1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이디푸스 왕>읽다 말았는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연극으로 인물과 그에게 벌어진 상황을
읽고 통찰하는것은 참으로 입체적인 경험인듯 합니다.
관련 책들로 다방면에 걸쳐 뼈속까지 읽어내려 노력하시는 그레이스님 너무멋짐요~♡

그레이스 2023-06-30 14:2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재독하니 옛날에 지나쳤던 것들이 다시 보이네요

새파랑 2023-06-30 14: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이디푸스왕이 재미있는 이유가 있었군요~!! 오래전 작품임에도 전혀 위화감이 없더라구요 ㅋ

그레이스 2023-06-30 18:14   좋아요 1 | URL
예 맞아요
지금도 적용할 지점이 많죠~!

서니데이 2023-07-07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이디푸스는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책으로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오래전에 산 책이 집에 있는데 지금도 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그레이스님, 더운 여름입니다.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7-08 14:07   좋아요 1 | URL
예~
서니데이님도 건강하게!
 
발 없는 새
정찬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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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통 그림자극 홍루몽을 보고 나오면서 주인공은 실재와 허구, 있음과 없음에 대한 상념에 빠진다. 이 소설은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허물고, 있음이 없음이 되고 없음이 있음이 되는 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죽을 때야 비로소 땅에 내려앉는다는 발 없는 새’, 장궈룽(장국영)과 워이커씽이 그런 존재다. 장궈룽은 실재고 워이커씽은 허구다. 작가는 장궈룽의 비극적인 결말에 허구의 인물 워이커씽과의 조우를 끌어들인다패왕별희의 감독 첸카이거의 회상을 통해 이들의 만남을 재구성한다. 장궈룽이 패왕별희의 주인공 뎨이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이 워이커씽이다. 매이란팡(매란방)은 중국 경극배우로 실존인물이다. 이 매이란팡이 장궈룽이 연기했던 뎨이의 모델이다. 매이란팡과 장궈룽 사이를 허구인 워이커씽이 잇는다. 장궈룽은 패왕별희이후 뎨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영화 속 그의 연기를 보면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뎨이의 잘려나간 여섯 번째 손가락처럼 모친의 사랑을 상실한 유년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허구 속 인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고단한 날개짓을 하다가 죽음으로 안식을 얻었다. 워이커씽 역시 그 영혼이 쉬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허구적 공간에 살았던 실존인물 장궈룽의 삶을 실재 역사를 통과한 허구의 인물 워이커씽과 직조하며 시작하는 이 소설은 있음이 없음이 되고 없음이 있음이 되는(9p)” 세계를 창조한다.

 

워이커씽에게는 난징 대학살이라는 비극적 현대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이 비극이 그를 만들었다. 난징이 그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은 이 땅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기에 그는 난징대학살의 문제를 계속해서 탐구하고 규명하려 애쓴다. 땅에 내려앉기 위하여.

 

아이리스 장은 난징 대학살을 통해 감춰진 참극을 세상에 고발했다. 그녀는 인터뷰와 조사, 집필 과정에서 만난 난징의 심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참혹은 그녀로 하여금 길을 잃게 했다. 난징이 발 없는 워이커씽을 낳았고, 아이리스 장에게서 발을 가져갔다. 두 사람 모두 인류라는 실존적 공간에 디딜 곳을 찾지 못하는 발 없는 새.

 

위안부로 난징에 끌려갔던 조선의 여인들, 히로시마에서 인류의 종말과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들, 그들은 모두 돌아갈 곳을 잃은 사는 동안 그 영혼이 쉼을 얻을 수 없었던 존재들이다. 일본, 한국, 중국의 예술가들은  예술에서 구원을 찾기도 하고 오히려 침몰되기도 한다. 첸가이거가 전자라면, 미시마 유키오와 같은 작가가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허구적 서사를 현실 쪽으로 끌어오려고 했던 미시마 유키오의 시도는 극단적 행위로 이어졌다. 영화감독 첸가이거의 나의 홍위병 시절은 큰 울림을 주었고, 그의 영화는 그에게 구원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 그의 작품을 보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다. 중국이 나아가고 있는 현재의 방향에 발을 맞추고 있는 그의 행보는 역사와 그 시대의 사유를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의 한계를 생각하게 된다. 혹시 그것이 중국인으로 태어나 그곳에서 발을 딛고 사는 방법은 아닐지?

 

소설 속 워이커씽은 첸카이거와는 다른 방향에서 찾는다. 그러나 세상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는 난징대학살과 같은 잔인하고 참혹한 범죄의 근원을 천황숭배에서 찾는다. 홀로코스트와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전체주의가 아닌 숭배! 그러기에 그들은 죄의식을 갖지 않는 듯 보인다. 그 숭배는 홍위병의 폭력 안에도 존재한다.

 

한중일의 근현대사를 이룬 사건과 인물들과 허구의 인물들이 조우하고 마주쳐 생성한 이야기는 장자의 몽상처럼 여겨진다. 장자가 나비인지 나비가 장자인지.... 워이커씽은 비극에서 탄생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다. 장자가 나비를 보듯, 나비가 장자를 보듯, 희생자가 가해자를 보아야 하고 가해자가 희생자를 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은 언뜻 선문답 같지만, 가해자가 가해자임을 고백해야 한다는 말에 힘을 싣고 보면, 폭력과 비극으로 점철된 과거사를 정리하는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패왕별희를 다시 봤다. 뎨이는 중국의 근현대사-청나라의 패망, 중일전쟁, 문화혁명 등-를 통과하며, 경극배우로서 영욕을 누린 인물이다. 그의 잘려나간 손가락은 가슴 아픈 가족사를 상징한다. 불운한 역사와 비극적인 가족사는 서로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으며, 역사의 수레바퀴는 개인을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결박해서 몰고 간다.

 

아이리스 장의 난징대학살과 션판의 홍위병이라는 책을 보았을 때와 달리, 영화패왕별희』, 『인생』,『붉은 수수밭(홍까오량 가족)』, 『사람아 아, 사람아!와 같은 문학에서 더 실재를 경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은 삶과 결혼했다는 들뢰즈의 말이 다시 내 안에서 인용된다. 그렇게 허구가 실재가 되고 실재가 허구가 된다. 나는 그 실재가 된 허구에서 삶의 진실과 가치를 길어 올린다.


『길 저쪽』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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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6-23 1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리뷰는 역시 명품입니다! 저는 정찬 작가의 작품을 이 책으로 처음 접했는데요. 장국영 이야기를 다루고 중국 근현대사 관련해서 나온다는 배경만 아는 상태에서 읽었어요.
그레이스님 글 읽으니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느껴지고 더욱 풍성한 읽기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다시 리뷰하는 느낌으로 읽고 가네요^^

그레이스 2023-06-23 10:37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정찬 작가의 다른 책도 읽게 되네요.

미미 2023-06-24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징대학살 >과 <발없는 새>를 읽고 <패왕별희>를 다시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 난징대학살도 홀로코스트만큼 깊이있게 연구되어져야겠죠?
정도가 다를 뿐 그 혐오와 잔혹성만큼은 결코 과거형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3-06-24 11:58   좋아요 1 | URL
저는 모옌의 <붉은수수밭> 읽을때 <난징대학살> 함께 읽었어요.
충격이었죠.
<패왕별희>는 이 소설을 읽은 후에 봐서 그런지 다르게 다가오더라구요.
 
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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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상실의 슬픔에 깊이 잠겨있는 고백이다. 신의 사랑, 영원한 생의 소망으로 위로받기를 유예하고 깊은 애도의 터널을 통과한다. ‘사랑한다‘는 독백은 죽음에 대한 역설이다. 상실에 대한 이렇게 아름다운 글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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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6-17 1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 보뱅 책이네요^^

1984Books 대표님은 어쩜 이렇게 보뱅 책들 표지를 우아하게 깔맞춤 하셔서 출간하셨는지
보뱅의 문장과 어울리고, 쎈스가 그냥 아주!!

그레이스 2023-06-17 15:39   좋아요 1 | URL

저도 표지 넘 맘에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