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미술관 - 세계 미술관 기행 3
다니엘라 타라브라 지음, 김현숙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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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길을 잃는 꿈, 다시 같은 그림 앞으로 돌아오고, 그렇게 헤매다가 아이들과 만나 웃으면서 잠이 깼다.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주 오래 전 같기도 하고, 잠시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파리에 루브르가 있다면 마드리드에 프라도가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경험이었다. 오늘날의 프라도 미술관은 명실상부한 회화작품의 보고다. 1819년 '왕실 박물관'으로 문을 연 이후, 왕실과 수도원 소유 작품들의 국유화와 구입으로 회화 소장규모는 압도적이다. 2(3)까지 방들로 이어지는 전시실을 채운 작품들은 경탄을 불러 일으켰다. 프라 안젤리코, 벨라스케스, 고야, 엘 그레코, 무리요,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히에로니무스 보스, 티치아노, 루벤스, 램브란트, 알프레히트 뒤러……. 무지막지한 작품들의 연속, 골라서 보는 것도 벅찬 곳이다. 몇 번을 방문해야 다 볼 수 있을까?

 

미리 공부하고 갔음에도 아이들이 2(3)부터 내려오면서 지도에서 볼 작품을 픽하고 작전을 짜지 않았다면, 0(1)부터 군중들과 함께 움직이다가 마지막에는 지쳐서 놓친 작품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이것도 봐야 돼를 외치며(조그맣게^^) 멈추었고, 작전대로 움직이는 아이들과 헤어졌다가 겨우 따라잡곤 했다. 발바닥이 불이 나는 듯한 통증을 참으며 0(1)까지 도착하는 동안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Las Meninas>,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십자가 강하>,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등의 작품들 앞에 조용히 앉아 선생님 얘기를 듣고 있는 열 명 남짓의 유치원 아이들을 자주 목격했다. 딸이 ! 처음으로 부럽다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막내와 달리 미술 감상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둘째도 이번 여행 중 프라도 미술관이 제일 좋았다고 한다. 프라도 미술관 하나 보기 위해 마드리드에 가도 비용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다. 바르셀로나를 향하는 기차 안에서도,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경외에 가까운 감상으로 본 후에도 여전히 프라도를 아쉬움으로 기억했다.

 

이 책에는 프라도 미술관의 탄생과 왕가와 귀족들의 작품 수집 열정, 역사적인 배경, 궁정화가들과 스페인에 머물던 이탈리아 화가들의 작품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전시된 중요 작품에 대한 해설과 역사적 배경 설명도 자세히 하고 있어 도움이 된다. 벨라스케스와 펠리페 4세의 관계, 그가 그린 당시 스페인 왕가의 그림 들은 당시 스페인과 프랑스 네덜란드의 역사를 소환한다. 또한 궁정화가였던 고야와 알바공작부인 그리고 고도이의 관계 역시 작품에 대한 해설을 통해 알게 되는 이야기다. 프라도 미술관에 가려고 한다면, 이 책과 함께 스페인 예술로 걷다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 스페인 예술로 걷다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었다. 서로 보완되는 점이 있다.(나중에 페이퍼로 쓸 예정)


프라도 미술관에는 스페인 미술사의 세 인물 벨라스케스와 고야, 그리고 엘 그레코 작품을 위해 전시실로 여러 개의 방이 할애되어 있다. 그리고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작품들도 걸려있다. 하루에 다 감상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브레다의 함락>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고, 고야의 <180853>과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십자가 강하>는 나의 시선을 오랫동안 붙잡았다. 예수님과 마리아의 춤동작과도 같은 팔 모양과 기울어진 몸의 포즈는 시리도록 푸른색과 함께 다른 형태의 '피에타'로 다가온다. 책으로만 공부했던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에서의 소실점은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왔다. 제단화의 형태로 그려진 히에로니무스보스의 <쾌락동산>의 기괴함은 눈을 돌리고 싶은데 자세히 보게 되는 이중적 감정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여기서 뒤러의 그림 <자화상><아담과 이브>를 만나는 게 얼마나 행운으로 느껴지는지! 인상적이었던 전시실은 고야의 귀머거리 집에서 뜯어온 작품들로 이루어진 검은 그림'들의 방이다. 벽지에 그렸던 작품들이라 훼손이 된 자국이 있다. 여기에 <파묻히는 개>가 있었다. 처음 이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이런 그림을 그렸던 고야는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한참 생각하게 했었다. 개의 절망적인 상황과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던, 그러나 무시무시한 적막만이 둘러싼 그 고독에 전율했었다. 그리고 <사투르누스>도 있었다. 자식을 잡아먹는 그의 눈에 서린 고통과 공포! 몸의 쇠락과 상실의 고통으로 인한 난청(청력상실)을 겪으며 자신을 이 어두운 집에 가두던 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작품들이었다.

 

미술관 안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서운하기도 했지만, 사진 찍느라 감상에 방해되지 않아 좋았다. 건물 주위에는 벨라스케스와 고야, 그리고 무리요의 동상이 서있다. 스페인에서 그들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화가인가를 의미한다. 고야는 공사 중인 입구에 서 있어서 가려져 있었고, 무리요는 패스, 벨라스케스 동상 앞에서 잠시 사진을 찍었다.

1128일 마드리드는 아직 가을이었다. 초록의 상록수들 사이에 낙엽수들이 붉은 색으로 물들고 있었고, 벨라스케스의 하얀 동상 앞에는 사진 찍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전시실 벽을 채운 그림들이 떠오른다. 꿈속에서 나는 그 방들을 오가며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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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12-06 04: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방금 돌아오셨으니 기억이 생생한 가운데 쓰신 기록이라 더 잘 읽었습니다. 저는 곧 스페인 여행을 할 참이라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그레이스 2023-12-06 06:32   좋아요 1 | URL
아!
그러세요?
제가 다시 설레네요^^
계절은 여기보다 한달정도 늦다고 보면 됩니다.
행복한 여행되시길 바래요~~

새파랑 2023-12-06 0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페인 다녀오셨군요~! 완전 부럽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즐거운 관람이 되셨을거 같아요~!!

그레이스 2023-12-06 08:16   좋아요 2 | URL

좋았습니다.
넘 바쁘다가 간 여행이라... 마드리드를 넘 짧게 다녀와서... 언제 다시 갈지, 아예 못 갈지 모르지만 마드리드에는 한번 더 가고 싶네요.

호시우행 2023-12-06 07: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족여행으로 2008년 스페인에 갔을 때 들렀던 프라다 미술관이 생각나게 합니다. 글 잘 읽었어요.

그레이스 2023-12-12 10:27   좋아요 1 | URL
다녀오셨군요.
다른 계절의 마드리드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레삭매냐 2023-12-06 09: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루브르에 갔을 적에는
플래시만 사용하지 않으면 사진
찍어도 된다 했는데...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물론 사진 찍지 말라고 해서 모
두가 안 찍는건 아니었지만요.

프라도 뮤지엄에 다녀 오셨다니
고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아, 나도 가고잡다 에스파냐~!

그레이스 2023-12-06 09:58   좋아요 3 | URL
^^
마드리드 왕궁에서 어떤 남자아이가 사진 찍다가 엄청나게 큰소리로 창피당하는걸 봤어요.
게다가 프라도에는 거의 전시실마다 한사람씩 안내원이 앉아있어서^^
전 사진 못찍게 하는게 더 좋은 듯요.
오롯이 감상만 하다 나올 수 있어서...!

언젠가 꼭 가시길!

페넬로페 2023-12-06 11: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프라도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는군요.
여행 다녀오면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오래 전 같기도, 또는 내가 거기 갔다 온 건 맞나, 하는 기분~~공감합니다.
근데 제게 지금 아련한 정취로 더 오래 남아 있는 건 그냥 여행지에서의 공원 벤치, 카페 테라스같은 멍때렸던 공간이더라고요 ㅎㅎ
사그리다 파밀리아, 가고 싶습니다.

그레이스 2023-12-06 12:01   좋아요 3 | URL
^^
사그라다 파밀리아!
감동이었습니다.
갑자기 오르간 연주 음악이 울리는 바람에 울뻔했어요.
완전히 다른 세계 다른 장소에 있는듯 했지요^^~♡
 

목로주점을 다시 폈다. 어떤 책은 먼저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나 갖고 있던 책을 뒤늦게 읽었을 때 그런 경우를 만나면 아쉬움은 두 배가 되고, 나의 게으름을 탓하게 된다. 벌거벗은 미술관에서 공공 박물관과 루브르 궁전의 개방에 대한 의미는 목로주점의 한 장면을 기억하게 했다.

 

“18세기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은 근대적 개념의 박물관의 연원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혁명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벌거벗은 미술관158p)”고 저자는 말한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의 집권 과정에서 수집한 물품을 전시해서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물품들은 나폴레옹이 점령지에서 가져온 탈취물이긴 했지만, 그것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한 프랑스의 이 열린 박물관은 곧 유럽 각지에 국가 단위의 대규모 박물관이 들어서는 19세기 박물관의 시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고 양정무 교수는 말한다.(이견이 있다는 것도 인정)

 

1682년 루이 14세는 프랑스 왕궁을 베르사유로 옮기고, 루브르 궁전에는 여러 왕립 기관들이나 협회들 특히 미술 아카데미와 공예 공방이 자리하게 된다. 한편, 왕실 수집 미술픔의 수장고 역할도 하게 된다. 1725년부터 루브르의 살롱 다폴롱(Salon d’Apollon)‘이나 살롱 카레(Salon Carré)‘에서 살롱전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이 살롱전은 국가적 이벤트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 4년 후인 1793, 프랑스 정부는 이 공간을 국가 소유의 미술품을 정기적으로 공개하는 공공 미술관으로 모든 시민에게 개방한다.


구체제의 심장이었던 왕궁을 모든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개방한다는 것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었고, 이곳을 과거의 지배층으로부터 몰수한 미술품으로 채운다는 것도 놀라운 결단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시민들은 미술관으로 개방된 루브르 궁전의 회랑을 걸으면서 새로운 세계가 왔다는 것을 충분히 느꼈을 겁니다. 왕실의 권위를 과시하게 위해 건설된 웅장한 회랑이 이제 시민들의 공간이 되었고, 지배층만이 누려왔던 미술품들을 직접 보고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겁니다. 루브르 이전에 세워진 유럽의 초기 미술관들도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을 어느정도 예견했지만, 지배층이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시민들의 주도하에 확실하고 극적인 변화로 이끌어낸 공이 바로 루브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벌거벗은 미술관161~163p)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에서 제르베즈와 쿠포의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과 함께 하기로 계획했던 파리 시내 산책은 폭풍우로 인해 무산된다. 기왕에 옷까지 차려입은 그들은 루브르 박물관을 향한다. 색색의 우산을 받쳐 든 그들의 행렬은 행인들에게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제공해 주었지만, 지나간 시대 왕궁을 향하는 빈민가 사람들의 행진은 시대적 은유를 우리에게 던져 준다.

 

루브르에 도착한 그들은 이어지는 살롱들과 수많은 그림들 앞을 차례로 지나간다. <메두사호의 뗏목>이라는 그림 앞에 잠시 머물렀을 뿐, 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아폴론 관에 도착한다.

 

아폴론 갤러리에서 무엇보다 하객들을 감탄하게 만든 것은 그곳의 바닥이었다. 장의자의 다리가 비치는 바닥은 거울처럼 투명하게 빛났다. 르망주 양은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들어 눈을 감았다. 모두들 고드롱 부인에게 조심조심 발을 떼어놓으라며 주의를 주었다. 마디니에 씨는 일행에게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금박과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목이 뻐근하게 아팠고, 뭐가 뭔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는 살롱 카레로 들어가기 전에 창문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샤를 9세가 민중을 향해 총을 발포한 발코니입니다.”(목로주점1126p)”

 

일행은 <가나의 혼인잔치> 그리고 <모나리자> 앞에 머무른다. 그들의 감상은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여전히 계속 이어지는 그림들, 또 그림들, 여러 성인(聖人)들과 의미를 알 수 없는 기이한 표정의 남자와 여자들, 온통 시커멓게 칠해진 풍경들, 노랗게 변해버린 동물들, 강렬하고 요란한 색채들로 이루어진 인간과 사물의 뒤엉킴, ……수세기 동안 이어져 내려온 예술과 고대인들의 섬세한 소박함, 베네치아인들의 화려함과 네덜란드인들의 풍성하고 빛나는 삶이 무지를 드러내는 어리둥절한 눈빛 앞에서 차례로 지나갔다. (목로주점1128p)”

 

그들은 살롱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이곳저곳을 헤매며, 지루한 행진을 한다. 출구를 찾지 못해 하마터면 갇힐 뻔한 그들은 폐관을 알리는 경비원의 안내로 루브르의 뜰로 나온다.

 

생애 처음으로 박물관이란 곳, 방들이 이어지는 왕의 궁전에서 길을 잃는 그들의 모습이야말로 파리 서민의 생생한 관람 경험이란 생각이다. 문화의 근대적 정의(定義). 그럼에도 이 장면에 가슴이 뭉클했다. 결혼식 주인공들과 하객의 행렬이 루브르의 작품들 앞에서 행위예술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작품 안에 남겨진 에밀 졸라의 체취다. 비평가, 예술가들의 친구, 후원자인 그는 자신의 작품 안에 미술의 이미지들을 새겨 넣었다.

 

벌거벗은 미술관의 저자와의 만남이 동네 도서관에서 있었다. 주제는 '루브르 박물관 인문 여행'. 루브르의 역사와 건물의 구조와 수집품들에 대한 개관, 각 전시실 작품들과 프랑스 역사를 버무린 듣기 편하고 기분 좋은 강의였다. 강의를 들으며, 못보고 지나친 것들이 너무 많았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다시 또 가볼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꼭 봐야할 작품 목록들이 눈앞을 지나간다. 돌아와서 관련된 책들을 뒤적거렸다.


저자의 '난처한' 시리즈도 좋지만, 하나 소개하자면 상인과 미술이다. 사인받으려고 책을 내밀자 처음 쓴 책이라고 반가워한다. 그러면서 "재미없지 않아요?" 하는데, 물론 난처한 시리즈나 벌거벗은 미술관처럼 쉽고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웠다.난처한 미술이야기 6권에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것 같기는 하다.


딸과 함께 한 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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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1-15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상인과 미술>이 탐나서 구매하려고 보니 품절로 뜨더라구요. 그래서 중고로 구매하려고 보니 가격이 ㅎㄷㄷ
그리고는 잊혀졌는데, 그레이스님이 다시 일깨어주시네요..^^
벌거벗은 미술관은 여러번 눈에 밟혔는데...읽을만 한가요? 이런 미술관 시리즈 관련 책은 미술관련 저작자글이 꼭 내더라구요..그래서 관심이 뚝 떨어졌다는...거의 유명한 그림의 되새김질인데...이제는 좀 거시기하더라구요. 그래도 쌈박한 글을 만나면 반갑지만...그런 비율이 좀 적은지라...그레이스님의 벌거벗은 미술관이 괜찮다면 저도 구매해서 좀 볼까 합니다..ㅎㅎ

근데 <목로주점>은 읽었는데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아요. 그냥 좀 재미없었다는 인상은 강하게 남아 있는데...흠..^^;;

그레이스 2023-11-15 10:30   좋아요 1 | URL
ㅎㅎ
벌거벗은 미술관 재미있어요.
학예사 시험 준비 중인 제 딸도 저도 하루 정도 걸려 읽은 책이라 yamoo님 난이도가 어떠실지 모르겠어서... 에잉 넘 쉽다 그러실 수도 있지만, 암튼 ‘난처한‘시리즈 난이도로 생각하시면 좋을 듯요.

재밌고 쉽지만 사이사이 짚어주는 역사와 미술사의 중요한 장면들 중 놓치고 있었던 것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yamoo 2023-11-15 16:28   좋아요 1 | URL
오~~ 그렇군요! 벌거벗은...구매해야 해야 할듯하네요..
목로주점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 될 듯해요..^^;; 전혀 기억나지 않으니...

근데 따님이 학예사 시험 준비중이라니...헐~~ 대단합니다!!

레삭매냐 2023-11-16 18: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저두요 !

20년 전에 첨 루브르 갔을 적에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 탕이었답니다.

뮤지엄 중앙을 장식하고 있던 니케
여신의 조각상부터 시작해서...

그리고 어디선가 만난 님프 조각은
정말... 그 시절의 사진들을 좀 찾아야
쓰겄는디... 당최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절친이 그 시절 사진들 찾아다가 블
로그에 올리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했더니만 소설
을 쓰라고 하대요 ㅋㅋㅋ

모나리자는 정말 쬐그매서 감흥이...

그레이스 2023-11-16 18:20   좋아요 2 | URL
ㅎㅎ
모두 모나리자 쪽으로 몰려가서 다른 전시실은 한가하다는 ...!
담번에 가면 다른 전시실도 더 보고, 저녁때 박물관 카페에 머물러 보고도 싶어요^^

서니데이 2023-12-05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12-06 10:15   좋아요 1 | URL
아!
감사해요
서니데이님!~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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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가 죽어 있던 그날 아침(9p)

직박구리를 묻어주고,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던 철이는 가슴 속에 치밀어오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슬픔일까, 아니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까?” 생명 안에 내재되어 있는 죽음을 불현 듯 실체로 직면한,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보아버린 자의 두려움과 슬픔일 수 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 감정은 마치 상점의 쇼윈도 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볼 수는 있지만 손으로 만질 수는 없는.(16p)“이란 표현에서 수상함을 발견한다. 인간이 감정을 이런 식으로 느끼나?

 

막연한 추상으로 먼 곳에 머뭇거리던 죽음이 어느 날 급습하여 아버지의 몸을 관통해서, 나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의 그 예리한 통증은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지상에 숟가락 하나현기영 11p)”

 

대부분 발작적인 구토증, 흉통, 손끝의 저림, 눈물 등 즉각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철이에게는 그 분출이 거치는 단계가 있는 듯 보인다.

 

철이는 휴머노이드다. 스스로를 인간으로, 휴먼매터스의 연구원인 최박사를 자신의 아버지라 여기고 있던 철이의 정체는 곧 드러난다. 등록되지 않은 휴머노이드를 검거하는 요원들에 의해 잡혀 수용소로 보내진다. 그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독자는 연민을 느끼게 된다. 철이는 수용소에서도 오랫동안 자신이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은 어떤 느낌일까? 후에 자신에 대한 자료를 찾아 나선 철이의 기억은 항상 직박구리가 죽어있던 그날 아침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이 흔들리던 그 순간에서 시작한다. 존재의 근원이 흔들리고 딛고 있는 지반이 사라진 주변을 둘러싼 모든 관계와 사물이 무의미해지는 그런 경험이 아닐까?

 

철이가 아버지라고 여겼던 최 박사는 가장 인간다운 휴머노이드,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그대로 가지고 인간의 문화적 유산을 계승해나갈 휴머노이드(94p)”를 연구했다. 철이는 그게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철이가 갖고 있는 성품은 만들어질 당시 입력된 데이터들과 최박사가 철이에게 했던 교육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철이에게서 보여지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공감능력, 배려심 등은 가장 이상적인 인간성의 재현이라고 볼 수 있다.

 

철이가 수용소에서 만난 선이는 인간의 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클론이고, 민이는 애완용으로 제작된 휴머노이드다. 인간이 해야 할 노동이나 물질적 활동 뿐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까지 휴머노이드에게 역할을 맡기게 되면서 인류는 존재할 이유를 상실한다. 의식은 데이터화 되어 사라진다.

 

몸이 파괴되거나 수명이 다한 휴머노이드는 인공 뇌를 활성화 시켜 의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 의식으로만 존재하는 상태는 마치 전신마비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데이터 망을 이용해 자신이 살던 휴먼매터스 위를 조망하는 자유를 보여주기도 한다. 애초에 인간의 육체를 가진 존재로 만들어진 철이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몸으로 해왔는가 새삼 깨닫는다. 작가는 민이의 재활성화라는 문제를 통해 다른 몸을 가진 존재는 처음 존재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될까? 라는 질문을 하지만, 철이가 의식으로 있을 때나 두 번째 몸을 갖게 될 때, 다름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순으로 그 질문을 의미 없게 한다.

 

몸이 낡아 그 생명을 다해도 구조요청만 하면, 의식으로는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철이는 더 이상 존재하길 거부한다.

 

여기서 구조되더라도 육신이 없는 텅 빈 의식으로 살아가다가 오래지 않아 기계지능의 일부로 통합될 것이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자아라는 것이 사라진 삶. 그것이 지금 맞이하려는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295p)”

 

자작나무 숲에 누워 있는 철이는 직박구리가 죽어있던 날 아침을 회상한다. 의식이 사라지는 완전한 소멸의 순간 그가 회상한 그 장면은 철이 안에 심겨진 궁극의 인간성이 아닐까? 그 인간성이란 유한한 육체를 갖고 있는 인간의 죽음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인간의 조건이 윤리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수용소의 문제, 생명 윤리, 인간의 조건, 죽음, 마음의 실체 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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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1-07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영하 작가는 계속 책을 내고 있군요!
한국 작가들 작품을 안 읽은지 너무 오래 되어 요즘은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궁금하긴 합니다.
요즘 한국 작가들 책들 보면 정말 예쁘게 잘나와 매우 읽고 싶게 만드는 거 같긴한데....읽어야할 세계문학 대기작이 넘쳐나서 읽을 수가 없어요..^^;; 그럴수밖에 없는게 김영하보단 부차티가 매우매우매우 좋아서...그런 순환의 연속..ㅎㅎ 한국작가들은 잠정적 후순위로 계속 밀리네요...하하~

그레이스 2023-11-07 11:44   좋아요 1 | URL
김영하작가의 읽어본 작품 중에 좋았어요.
항상 뭔가 걸리적 거리는 구석이 있었는데,,,
<검은꽃>, 소재는 좋았고 초반 내용도 좋았는데 뒤로 갈수록 읽기 힘들었구요
<엘리베이터...>는 처음부터 힘들었구요

항상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스토리 구성력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제 생각!
제게 좋았던 작품은 <살인자의 기억법>이었는데... 이 작품 추가했습니다.
자료 풀이 좀 넓어지고, 구성력도 더 좋아졌단 생각입니다.
이런 평가할 자격이 있나 싶지만요.
제생각입니다.^^

새파랑 2023-11-07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의 별 다섯이군요~! 이 작품 너무 감동적이라고 하던데~!!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들이 떠올라서 왠지 손이 안가더라구요 ㅎㅎ

그레이스 2023-11-07 19:11   좋아요 1 | URL
저도 클라라와 태양이 생각나긴 했어요
그런데 그 작품과는 결이 다른듯요.
이시구로는 모호한 면이 있는데,,, 이건 차이가 있는듯요
뭐가 좋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읽는데 어려움이 없어서 하루 안에 읽는게 가능하더라구요.
마음 감정 이런 것에 꽂힌다면 추천합니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말한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우리에게 친근한 존재이다. 우리가 첫 페이지를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알베르토 망구엘 15p)”


우리는 이 트로이 전쟁에 관하여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서, 이 일리아스라는 서사시 안에서 신화나 예술작품을 통해 익숙한 파리스의 심판’, ‘트로이의 목마’, ‘라오콘의 죽음등과 같은 사건들을 만날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이 서사시 안에서는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시점, 5일간 전투 이야기다. 일리아스는 한 영웅의 분노와 딸을 빼앗긴 아버지의 슬픈 기도로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 영웅의 화해와 죽은 아들의 시체를 찾아 돌아간 한 아버지의 슬픔으로 마치고 있다. 그러니 첫 페이지를 열기 전 까지는 친근하다는 역설의 설득력에 미소를 짓게 된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는 이 서사시에는 분노가 그 한축을 이루고 있다. 아킬레우스가 분노때문에 전투에서 물러나고, 그로인해 많은 그리스 전사들이 희생될 때, 그를 설득하는 포이닉스의 알레고리는 인상적이다.

 

사죄의 여신들은 위대한 제우스의 따님들이지만

절름발이고 주름살투성이고 두 눈은 사팔뜨기여서

미망(迷妄)의 여신 뒤를 열심히 따라다니는 것이 그들의 일이오.

그러나 미망의 여신은 힘이 세고 걸음이 빨라 사죄의 여신들을

크게 앞질러 온 대지 위를 돌아다니며 인간들에게 해를 끼치지요.(9502~506 )”

 

또한 아킬레우스가 분노를 거두고 전투에 참여할 것임을 선언할 때, 아가멤논이 변명처럼 말하는 운명의 여신(모이라), 복수의 여신(에리뉘스), 그리고 아테(미망의 여신)에 관한 예화(19) 역시 유명한 알레고리이다. 일리아스에 대표적인 두 알레고리에서 두드러지는 사죄, 운명, 복수, 미망(迷妄)이라는 단어들은 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정신이다. 아가멤논의 변명은 히랍인의 사고방식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고 한다.

 

일리오스의 들판에 여기저기 쓰러져있는 전사들의 시체들, 그들을 수습하기 위해 하는 하루 동안의 휴전과 화장(火葬)은 이 서사의 한 축을 이루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보게 된다. 그리고 무구들! 출정하기 위해 그들이 갖추는 무장의 리스트와 묘사들, 죽은 자의 무구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 또한 중요한 장면들이다. 아가멤논, 파트로클로스, 아킬레우스의 무장 장면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에서 그들의 운명을 가르는 암시를 발견하게 된다.

 

신들의 개입과 싸움은 사실상 이 전쟁의 운명이 정해져 있는 가운데, 5일간의 전세의 향방을 결정하는 힘이다. 그 각각의 전투는 무언가 인간들에게 그 운명의 선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여지를 주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부분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다른 시점과 해석과 결론에 이르게 된다.

 

부풀리고 소용돌이치며 아킬레우스를 쫓아오는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를 표현하는 은유와 직유는 이 서사시의 장관을 이룬다. 일리아스에서 절정을 아킬레우스의 전투 장면으로 꼽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아킬레우스를 찾아가는 프리아모스의 모습에서 감정의 극치를 경험한다.

 

세 번을 읽었어도 여전히 새롭게 발견되는 것들이 많은 작품이다. 읽을 때마다 참고할 책들이 많아진다.

처음 읽는다면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책이 강대진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이 책이야 말로 호메로스의 참고서라고 할 수 있다. 서사시의 구조, 출정한 국가의 지도와 참모의 리스트, 각 권마다 해설-중심사건, 인물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다. 초보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쉽게 서술한 점이 돋보인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이펙트는 내가 처음 참고했던 책이다.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신뢰가 간다. 이 책에는 호메로스 문제, 사본, 트로이 유적 발견, 호메로스의 작품이 철학자들과 베르길리우스와 같은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 학자들의 논쟁에 관한 저자의 탐구가 실려 있다. 더불어 망구엘의 감상들이 담겨 있는 유려한 문장들은 호메로스를 읽지 못한 독자를 유혹한다.

 

우리가 아는 한 가장 오래된 이 두 은유는 우리에게 인생 전체가 하나의 투쟁이자 여행이라고 말해준다(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15p)”

은유는 당연히 일리아스』 『오딧세이아이다. 은유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지 …… 독서 중독자들이 겪는 공통된 증상이지 않을까?

애덤 니컬슨의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망구엘의 탐구 작업을 더 깊고 자세하게 다뤘다. 그 역시 호메로스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청동기와 청동 무구, 지중해를 둘러싼 문명과 그리스인들의 정착지, 이동과 교류의 역사, 유적과 발굴, 연구자들, 사본들, 발견자들에 대해 서술해 간다.

일리아스에는 목록시들이 등장한다. 그리스에서 출정할 당시의 함대의 목록과 10년이 지난 시기 트로이아 해변에서 출정을 다짐하는 전사들의 목록, 그리고 헤파이스토스가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새겨 놓은 형상의 목록이다. 목록시에 관해 도움을 받은 것이 움베르토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 호메로스와 그 이후 문학과 예술에 나타나는 리스트에 관한 글들이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독자라면 어떻게 편집되어 있을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리아스에서 자칫 덫이 되기 쉬운 목록시를 고양된 정서로 흥미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아킬레우스의 방패> 안젤로 몬티첼리 1820

시몬 베유의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는 저자가 일리아스를 감상한 글이다. 그녀는 이 전쟁을 일으키고 지속시키는 것은 힘이라고 한다. 승리자건 물질이건 힘과 접촉하면, 힘의 불가피한 효과 아래 놓인다. 힘은 사람을 사물로 변화시키는 본성을 갖고 있다. 일리아스는 이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승리의 영광을 꿈꾸며 전쟁에 참여한 전사들은 마침내 전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전쟁은 죽음을 품고 있다. 이것이 일리아스를 보는 그녀의 생각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호메로스 세계에서 시는 패배한 자와 죽은 자에게 속한 것이며, “호메로스 안에서는 진정한 승리자란 없다(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알베르토 망구엘 89p)”고 말한다. 시몬 베유는 호메로스는 승자나 패자를 찬양하지도 경멸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으며, “놀라운 공평함이 일리아스를 이끈다(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시몬 베유 57p)”고 말한다. “운명이 결정한 한계 속에서 신들이 전권을 갖고서 승리와 패배를 배분(같은 책 57p)”할 뿐이다.

 

전사들은 모두가 형벌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는 시몬 베유의 해석이 유독 더 가슴을 울리는 것은 지구 다른 편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들 때문일 것이다. 매분 매초 죽음의 가능성을 자각하며,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고서는 하루에서 그 다음 날로 넘어갈 수 없는(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시몬 베유 41p)”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은 가슴 밖에서는 서식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서식하는 것은 질투, 미움, 공포,

그리고 악의, 그리고 야망, 그 가까운 곳에

사랑의 서식지가 있다…….

-Phases월리스 스티븐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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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0-29 2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쟁은 전쟁을 원하는 이들이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전쟁의 피해는 전쟁
을 원하지 않는 애꿎은 이들이
감당하게 되는 역설이 문제지요.

미망이라는 키워드에 꽂히네요.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음...

과연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와 오디
세이아를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
미망의 단계에 들어섰나요.

그레이스 2023-10-29 22:13   좋아요 3 | URL
미망에 빠졌죠.
그리고 다시 벗어나기도 하고,,, 한 개인의 분노가 공동체 전체를 미망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운 일입니다.

서곡 2023-10-30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사들은 모두 형벌을 받는다......덧붙이자면 전쟁 지역의 모든 개체들이 그러하리라 생각됩니다 현재에도 만연한 폭력과 전쟁 앞에 무참해집니다. 잘 봤습니다 한 주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3-10-30 09:29   좋아요 2 | URL
예 그렇죠. 전장이란 말이 필요없는게 현대전이니까요 ㅠ
서곡님도 10월 잘 보내시고 11월 행복하게 시작하시길요~

미미 2023-10-30 1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생 전체가 투쟁이자 여행이다.‘이 말이 저에게 와닿네요. ‘힘은 사람을 사물로 변화시킨다‘는 말도요. 전쟁에도 그 외 힘이 작용하는 어떤 경우에든 적용되는말 같아요.

우크라이나에 이어 가자 지구도 전쟁상황이니 가슴아프고 두렵기도합니다. ㅠㅜ

그레이스 2023-10-30 13:11   좋아요 2 | URL
처음 읽었을 때와 달리 그런 말들에 꽂히는게 지금 상황때문이란 생각도 했습니다.
언제든 적용될수 있겠죠
평화는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같은 비극을 되풀이 해서 안타깝고 두렵네요ㅠ
 
순례 주택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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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유쾌한 독서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그 흐름을 거스르며 사는 것은 투쟁하거나 소외되거나 무리를 떠난 캐릭터가 되기 쉽다. 순례 씨라는 캐릭터는 작가가 말했듯 우리가 만들어놓은 세상에 대안이 될 삶의 방식을 사는 사람이라고 할까? 만일 이 이야기를 순례씨를 주인공으로 그녀의 삶이나 마음을 통해 풀어 갔다면 식상했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 수림이가 가족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어른들의 모습과 순례 씨의 특별한 삶을 그리고 있어 재미있었다. 순례 씨의 생각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녀가 지향하는 삶이 투명해서 그녀의 선택은 분명하다. 자본과 계층의 문제에 매몰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우리에게 단순하고 명료한 메시지를 전한다. 식상하지 않게.

 

김 순례 씨는 세신사 일을 해서 번 돈으로 1층 양옥집을 샀다. 순례씨는 그 집을 때탑이라 불렀다. 주변지역이 개발되고 지하철역이 들어오면서 집값이 두 배로 뛰고, 집의 일부분이 도로로 편입되면서 많은 보상금을 받았다. 땀 흘리지 않고 얻은 재산에 불편한 마음을 갖는 게 바로 순례 씨의 경제관념이다. 그래서 빌라(현 순례주택)를 짓고, 임대료는 시세대로 받지 않고 순례 씨가 먹고 살만큼만 받는다. 홀로 아이 둘을 키우는 조은영 미용실 원장은 우리 식구는 이 순례 주택을 딛고 일어섰어요.(11p)”라고 자주 말한다. 이 빌라야 말로 필요에 의해 공유경제를 실천하는 장이다. 옥상을 함께 쓰는 공간으로 공유하고, 누구든지 이 공간에서 먹을 수 있도록 라면과 김치, 커피를 채워놓는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게 밤에만 옥상에 혼자 있다가 조용히 내려가는 401호 영선 씨의 새벽을 방해하지 않는 순례주택 사람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배려를 본다. 순례 주택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주거의 문제점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새로 지어진 아파트 원더 그랜디움에 주인공 오수림의 가족이 살고 있다. 엄마는 빌라촌 아이들이 단지내 학교에 다니는 것 때문에 아파트값이 더디게 오른다고 속물적 성향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다. 버릇처럼 솔직히 말해서로 시작하는 노골적인 인터뷰 내용이 나가는 바람에 거북마을 빌라촌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아파트 카페에서도 퇴출되었다.

수림의 아버지는 대학 시간 강사다. 언니 미림은 공부만하는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캐릭터! 수림이를 낳고 엄마가 몸이 아팠던 까닭에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순례 씨의 손에서 자랐다. ‘1인 가족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2이라 생각하는 수림이는 순례주택이 더 편하다. 엄마는 그런 수림이를 서운해 하면서도 동시에 불편해한다.

 

원래 이 아파트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집이었다. 딸과 사위가 전임교수가 될 때까지만 도와달라는 부탁에 집에 들어와 살고, 함께 사는 게 불편한 할아버지가 오랜 연인이던 순례 씨의 빌라 201호에 살았다. 수림이의 부모님은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으로 과시하고 구별 짓고, 허위와 허영만을 쫓는 스노비즘을 보여준다. 그리고 수림이는 그런 가족들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다.

 

작가는 수림이의 가족과의 갈등, 가정의 역기능성, 계층 간 갈등 등의 문제를 순례주택이란 공간 안에서 풀어간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수림이 부모님은 파산상태에 이른다. 아파트를 떠나 갈 곳이 없었던 그들을 받아준 곳이 순례 씨의 순례주택이다. 수림이네 부모님은 거북동 빌라촌 순례주택에 살면서, 어른들이 그렇듯 절망적으로 변화가 없지만, ‘진정한 어른으로 변해갈지 기대하게 된다.

 

우리가 도시 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경계의 문제를 보게 된다. 순례주택의 옥상 공유는 임대주택과 분양 아파트가 함께 있는 주상복합건물의 고층으로 통하는 비상계단을 막아 화재 대피로를 차단함으로 인해 생긴 분쟁에 대한 뉴스를 떠올리게 한다. 빌라촌 애들과 어울리는 게 걱정됩니다(28p).”라고 했던 수림이 엄마의 인터뷰는 흔한 이야기라, 얼굴이 붉어지는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이 순간 특별히 생각나는 시가 있다. 신철규 시인의 슬픔의 자전이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중슬픔의 자전신철규)


그 아이가 자신의 슬픔의 크기를 말하기 위해 동원한 단어가 지구, 그 지구만큼 슬펐다는 표현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시인의 표현처럼 처음 자전을 시작한 행성처럼 먹먹했다도로와 건물이 그어놓은 우리 안의 경계와 구별짓기가 아이들의 가슴에 이 지구만큼 큰 슬픔을 새겨놓은 것이다그 아이의 상상 속에 가장 큰 세계인 그 지구를 이런식으로 조각내고 황폐화시킬 수 있는 힘을 우리가 갖고 있다는 게 비극이다.

 

순하고 예의 바르다는 의미의 순례(順禮)에서 순례자(巡禮者)에서 따온 순례(巡禮)로 개명한 순례 씨의 정신이 담긴 곳이 순례주택이다. 순례 씨는 통장에 천만 원이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잔액을 털어서 함께 먹고 나누고 돕는데 사용하고, 더 이상 재산을 불리지 않는다. 불의하게 벌어 가족만을 위해 쓰는 남편과 이혼하고 땀 흘려 벌어 아들을 키웠다. 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받으려 하자, 자신의 재산은 국경 없는 이사회에 기부하기로 한다


지구별을 순례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삶, 이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해법이고 위로다.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순례 씨와 같은 사람이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가 겪는 많은 사회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순간순간 내가 순례 씨가 되어보는 것도 좋다. 꿈같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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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0-22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갈때마다.이.책 사서쌤이.추천도서러.세워두셔서.제목을.많이 봤는데, 순례를 ritual이라.생각했어요 그레이스님 깔깔 웃게.만든 작품이라니.호감 더.상승

그레이스 2023-10-23 06:33   좋아요 1 | URL
요즘 중학교 추천도서로 뜨더라구요.
전 어른들이 보아야할 책으로 추천합니다.
촌철살인의 속시원한 부분들도 있어요^^

아! 그리고 읽는데 2시간정도 걸린것 같아요.

yamoo 2023-10-23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즐겨 읽는 분야는 아니지만 간만에 그레이스 님의 리뷰를 보니 반갑네요..^^

그레이스 2023-10-23 09:3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3-10-24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잠깐
도서관에 들러서 빌리려고 했는데...
실패했네요.

집에 가면서 빌릴라구요.
기대 중입니다.

그레이스 2023-10-24 22:02   좋아요 1 | URL
^^
빌리셨나요?
즐독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