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세가 된 폴 블릭은 손자 루이의 얼굴에서 어릴 때 보았던 형의 표정을 본다. 그리고 폴이 8살이던 해에 10살이던 형 뱅상의 죽음을 떠올린다. 침착하고 확신에 차 있으며 사랑받던 형. 빨리 형보다 더 강해지고 싶었던 폴은 유년의 한 복판에서 상실을 경험한다. 그와 함께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숨어있던 독점에 대한 욕망이 숨길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낸 경험으로 상처를 입는다. 형의 물건 사륜마차 모형을 훔치는 것. 그것이 형과 함께 무덤 속에 들어가게 될까봐. 아버지는 형의 카메라 브라우니 플래시 코닥을 건네주었다.
그의 기억은 1958년 TV로 축구시합을 보며 프랑스를 응원했던 형과 보낸 마지막 여름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사적인 사건들은 1958년부터 시작하여 프랑스의 현대사와 함께 씨실과 날실로 쉬지 않고 직조된다. 드골, 퐁피두, 데스탱, 미테랑, 시라크 대통령의 시대와 함께 사춘기, 사랑, 결혼, 자녀, 일, 사별, 상실, 파산 등의 폴 개인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유년시절, 드골을 비판하고 옹호하는 두 파로 나뉘어 토론을 벌이던 친척들의 식사자리를 기억한다. 그리고 아버지 와 형제들에 대해서 당시 프랑스와 닮았다고 이야기 한다.
「그 시대 우리 가족은 이러했다. 불쾌감을 주고 고루하고 반동적이고 너무나 슬픈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프랑스라는 나라와 닮아 있었다. 수치와 가난을 극복했기 때문에 여전히 살아 있음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나라. 농무를 경멸하여 그들을 노동자로 만들고, 그 노동자들에게 기능적이지만 추한 건물로 꼭 들어찬 괴상한 도시를 건설하게 하여 지금은 아주 부자가 된 이 나라와 닮아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자동차의 기어 박스는 삼단에서 사단으로 바뀌었다. 나라 전체가 가동 증속창치로 변속된 속력으로 작동되기 시작했다고 할만 했다.
이러한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 샤를 드골과 총리 퐁피두 사이에 끼어 있는 소심한 청소년의 경우엔 특히 더 그랬다.…」 32P
사랑, 섹스, 결혼, 외도. 그리고 극치의 순간에서 불구와 같은 감정의 상태를 토로하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을 읽으며, 불편함과 소설의 방향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계속 이런 이야기만 하고 끝내려나? 하고. 자전적 소설 같은데 은밀하고 사적인 부분을 너무 세세하게 다루고 있어 당혹스럽기도 했다. 읽어가면서 그가 항상 부딪치는 벽은 어쩌면 형의 죽음 앞에서 형의 물건에 대한 욕망이 폭로되었던 기억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그것에 놀라고 상처 입었을 것이라는 사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욕망을 억압하고, 무심하고 고립되어, 기이한 모습의 편력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사회주의 성향의 가정에서 자란 폴이 애덤 스미스 신봉자를 자처하는 철저한 자본주의자 안나와 결혼한다. 변화하는 정치적 상황, 국제정세는 그의 아내와 처가의 사업을 흥하게도 쇠하게도 하고, 생태와 숲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자신의 사진가로서의 작업에 성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미테랑 신봉자였던 어머니와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삶을 사는 아내의 집안 사이에서 무심하고 개인적이고 고독한 삶을 산다. 한 번도 투표를 해본 적이 없는 것이 보여주듯 어느 쪽에도 소속되고 참여하지 않는다. 아내가 자신의 사업에 고용되어있는 노동자들을 해고함으로 경제적 위기를 넘기려고 하자 다시 생각해보라는 조언을 하기도 한다. 완강한 안나앞에서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 철저히 자유롭게 자신이 가진 신념대로 살려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의 결혼과 성공이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느 곳에도 구속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 그를 자유롭게 할까?
「“폴, 나는 이 세상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겠어. 누군가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게임의 규칙을 바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375p
딸을 잃고 사업도 잃은 장인의 말이다.
세상은 대통령이 바뀌고, 파업과 혁명과 전쟁이 일어나고, 정치·경제·문화 모든 것이 변화한다. 나도 몰래 규칙을 바꾼 것처럼…. 내게 친절한 것 같다가도 거센 파도가 되어 내가 탄 배를 후려치기도 한다.
폴이 프랑스라는 사회로부터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차단하며 살았지만 결국 그도 그 영향을 벗어날 수 없듯이 개인은 역사와 사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의 의미가 생각난다. 선택을 하고 함께 해야 하는 필요에 대해서….
아내의 죽음과 파산 후 그는 여전히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 정원 일로 돈을 번다.
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찾아가며 마음을 열려고 해보지만 반응이 없는 상황 앞에 절망 한다. 어느날 정원 일을 하다가 그는 문뜩 딸이 갇힌 그 광기와 자신을 가둔 그 세계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따금 나는 마음 약하게도 마리와 나 사이에, 그러니까 그녀의 광기와 나 사이에 어떤 세계가 있다고 믿었다. 또 어떤 때에는 내 삶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제껏 딸과 결코 가까이 있은 적이 없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이런 느낌은 11월 어느 날 저녁에 난처하게 확인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랫동안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조금씩 나를 가두고 있는 불순물을 상징적으로 벗으려고 애를 썼다.」 385p
그는 자신이 놓치며 산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사람!
그는 왜 카메라 앵글 안에 자신의 가족을 넣지 못했을까? 사물, 나무, 곤충들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셔텨를 누르지 못했을까? 그가 달아났던 카메라 앵글과 암실, 그리고 정원은 자신을 가두는 병동이었다.
폴은 딸 마리를 데리고 행복했던 추억이 있는 피레네 산맥의 어느 정상을 오른다. 그리고 그 정상에서 딸을 끌어안는다.
나의 무심함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와 타인이 자유롭고 존중되기 위해서는 적당히 무심하고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감정이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들키지 않고 숨기기 위해 나를 가두는 습관은 아닌지?
가족이나 주위의 많은 사람이 내가 필요한 순간에 나에게 도움이나 위안이 되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오래 걸어서 그곳에 도착했다. 내 딸을 두 팔로 안았다. 죽은 나무를 얼싸안는 느낌이었다. 그녀는자기 앞을 똑바로 응시했다. 우리는 세상 꼭대기에서 겨우 균형을 잡고, 허무의 끝에 서 있었다. 내 가족 모두를 생각했다. 그 의혹의 순간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나와 함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 그들은 나에게 어떤 도움이나 위안도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놀라지도 않았다. 인생은 우리를 다른사람과 묶어놓고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존재의 시간에, 우리가아무 것도 아니라기보다는 차라리 단지 그 무엇이라는 것을 믿게 하는보일 듯 말 듯한 가는 줄에 지나지 않으니까. -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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