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가장 최근에 나온 도연명 전집이다. 각 시마다 그리고 시의 수마다 해석을 붙였다. 이 해석을 다 읽기에는 시간도 많이 걸릴뿐더러 어떤 때는 시를 감상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짧은 지식을 가진 나에게는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함께 읽었던 『도연명을 그리다』의 저자 위안싱페이의 해석을 참고하고 있어서 병행 독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화가들의 그림의 제재가 되었던 귀원전거(歸園田居), 음주(飮酒), 책자(責子), 오류선생전(五柳先生專), 의고(擬古),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중점적으로 감상했다. 그리고 부록에 붙여진 심약(沈約)의 「도잠열전(陶潛列傳)」, 소명태자(昭明太子)의 「도연명문집 서문(陶淵明 文集 序)」, 위안싱페이의 「도연명의 향년에 대하여」를 통해 도연명이나 그를 세상에 소개한 소명태자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아주 유익한 자료였다.
<음주> 20수는 한 세트의 시다. 당연히 같은 시기, 즉 의희 13년 가을에 지어졌을 것이다. 이해 9월은 유유(劉裕)가 북벌해 장안(長安)까지 이르렀고, 다음 해 6월에는 상국(相國)이 되고, 송공(宋公)에 봉해지며, 최고 예우인 구석(九錫)이 내려졌다. 2년 뒤 7월 유유는 송왕(宋王)으로 승진하고, 그다음 해 6월 유유는 바로 찬탈해 황제를 칭한다. <음주> 20수는 마침 진 왕조가 장차 망하고, 유유가 찬탈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에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연명은 일찍이 유유의 참군(參軍)을 지냈고, 유유의 권세가 날로 높아지던 무렵이니, 자연스레 어떤 사람은 도연명에게 다시 나가 유유에게 의탁할 것을 권했을 것이지만 도연명은 단호히 거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음주> 시 안에
쯧쯧 속세의 어리석은 놈들아, 咄咄俗中禺
또한 마땅히 황기를 따라야지. 且當從黃綺
잠시 이 마실 것 함께 즐기시길, 且共歡此飮
저의 수레는 돌릴 수 없다오, 吾駕不可回
한번 갔으면 곧장 마땅히 그만둘 일이지, 一往便當已
무엇을 하려고 다시 우유부단하는가? 何爲復狐疑
깨달으면 응당 돌아옴 생각해야지, 覺悟當念還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도 버려지나니. 鳥盡發良弓
등의 문구가 있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소생(邵生), 삼계(三季), 벌국(伐國) 등의 말로서 진나라가 망하게 될 것을 암시했다.
-953p, <도연명의 향년에 대해>⟪도연명연구⟫ 위한싱페이
「음주(飮酒)」라는 시를 감상하며 나 역시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와 정서를 그렇게 읽었다. 출사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달리 수레를 돌려 세상과 이별했던 것은 그가 살았던 격랑의 시대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고뇌 가운데 시작되었으나 후에는 즐거움으로 변하는 것 같다. 국화 한 송이에서, 술이 익어 갈건에 술을 거르는 행위에서, 갑자기 술을 들고 찾아온 노인과의 대화에서, 산중에 들려오는 닭의 울음소리에서… 그런 작은 것들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마음. 필사적으로 보였던 그 마음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일치가 되는 순간을 다음 시에서 발견했다.
42-5.
사람 사는 곳에 오두막 엮었으나,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 없구나.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럴 수 있는지,
마음 멀어지니 땅은 절로 외지노라.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고,
유연하게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
산기운은 해 저물면서 아름답고,
날던 새 서로 더불어 돌아오누나.
이 안에 ‘참된 뜻’이 있으니,
말하려 하나 이미 말 잊었노라.
-361p, 「음주(飮酒)」 중 제 5수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따고, 유연하게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는 도연명의 시 중 절창으로 여겨진다. 그 의미를 여러 번 되새기다가, 바로 그가 지향했던 삶의 순간을 불현 듯 경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시에는 적막함, 외로움, 작별의 아쉬움, 그리움, 고뇌도 있지만, 흥취가 넘치고, 재미있는 순간들도 등장한다. 술과 관련된 시가 주로 이런 정서가 많았는데 그는 마음이 어지러운 것을 가라앉히기 위해, 더 나아가 자신을 잊고 일치되는 순간을 적극적으로 즐기기 위해 술을 마시고 흥취를 즐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손님들 있어 늘 함께 머물러 지내는데,
취향은 까마득하게 경지를 달리하네.
한 선비는 늘 홀로 취해 있고,
한 사내는 한 해 동안 깨어 있네.
깨고 취해서 또한 서로를 비웃나니,
말을 해도 각기 받아들이지 못하네.
-388p, 「음주(飮酒)」 제 13수
술을 그쳐볼까(止酒)는 술을 끊을 수 없는 이유를 대는 재미있는 시이다. 번역이 재미있게 된 것 같다. 애주가들이 좋아할 만한 시라는 생각이다.
맛있는 것은 채마밭 아욱에 그치고,
크게 기뻐함은 어린아이에 그치네.
평생 동안 술은 그치지 아니하나니,
술 그치면 마음에 기쁨이 없기 때문.
저녁에 그치면 편히 잘 수가 없고,
새벽에 그치면 일어날 수가 없네.
날이면 날마다 그걸 그치고 싶으나,
몸의 순환이 그쳐서 다스려지지 않네.
……
417p 「술을 그쳐볼까(止酒)」 중
「책자(責子)」라는 시에서 그는 종이와 붓을 싫어하는 아이들을 보고 실망감을 짧은 시 한 구절에 담고(“아들놈이 다섯이나 있다 하나, 모두 지필을 좋아하지 않네” -『도연명을 그리다』), 술이나 마셔야겠다고 마무리 한다. 그 실망감을 억지로 감추려는 것인지 아니면 생긴 본성대로 살라고 놓아주는 것인지 잘 알지는 못하겠다. 웃음과 함께 그의 마음을 지나간 서늘한 한 가닥 바람을 느꼈다. 부모 마음은 똑같으리라는 생각에…….
그는 어떤 마음으로 도화원기를 썼을까? 어떤 권세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농사 짓고 고기 잡아 굶주릴 걱정 없이 한가할 때 시 짓고 사는 마을을 그렸을까? 도화원 사람들이 나가서 말하지 말라고 부탁을 했건만 떠나면서 길목마다 표시를 해두고 밖에 나와 사실을 알리는 방문자가 얄궂다. 독자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마을을 다시 찾지 못하는 엔딩에서 안도한다. 도연명의 마음도 같았으리라.
그가 지키고 싶었던 도화원은 그의 마음이었을까? 시시때때로 세상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휘저어지지 않으려 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