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거나 일별하다가 제목이든 저자 이름이든 좋은 책을 기억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그런 것은 왜 기억하느냐?고 묻곤 한다. 그런데 좋은 책을 다 읽을 수 없기에 읽지 못하는 책들을 필요한 경우 활용하기 위해 제목이나 저자 이름, 출판사 이름 중 하나라도 기억하는 것이 좋다. 보관함에 책을 담아두지만 급할 때는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많은 책을 담아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눈에 띄는 내용을 얼핏 읽고 좋다고 생각해 (이름 등을 기억하지 않고) 담아두기만 하면 그런 경우가 생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필요하다 싶으면 담아두고 중요한 책은 저자 이름이나 책 제목을 기억해야 도움이 된다. 어떤 책이 유용한지 여부는 내가 쓰는 글의 성격에 좌우되지만 결국 기억에 좌우된다. 저자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유사시에 이용하기(인용하기) 위해서이지만 머리 속 어느 구석엔가 자리하는 세부 내용들을 떠올려 도약의 계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이 쌓인다. 현실에서도 쌓이고 온라인에서도 쌓인다. 그 만큼 피로도도 가중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3년은 지질해설 근무 4년차의 해다. 내 포지션의 기본이 수업(受業)이 아닌 근무이기에 공부를 많이 할 여건이 아님을 감안하더라도 내가 지질에 대해 알아내고 현장에 활용한 정도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친구에게 이제야 공부가 뭔지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어떻게 해야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공부가 되는지 알 것 같다는 말이다.

 

지질 공부는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든다. 연천에서 살아남으려면 지질은 물론 역사, 고고학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주의(注意)가 산만하지만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서울 해설까지 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분주하기까지 하다. 물론 이로 인해 이런 해설 저런 해설을 해야 하는 내 사정은 좋은 추억거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오늘 퇴근 하고 집 앞에 와 있는 책을 주워들며 감사함과 흥분을 느꼈다. 내가 공저자로 참여한 책이 저자(의 한 사람)인 내게 온 것이다. 공저자들의 글 제목을 일별하고 내 글의 제목에만 창의적이라는 글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쓴 글은 ’창의적 공공역사가가 되는 길‘이다.

 

고양에서 문화해설을 하는 페친에게 출간 소식을 알리자 그는 책 출간이 자신 같은 사람의 마지막 도전이라는 말을 했다. 마지막이라 하기는 그렇지만 그것이 의미 있는 도전임은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어떻든 나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전했다. 이는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은 지구과학 책을 이것 저것 읽으며 보내고 있다. 인문학 책을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10년전 한창 과학 책을 많이 읽을 때는 그래도 한 권을 다 읽고 서평도 쓰고 넘어갔지만 지구과학 책은 사정이 다른 듯 하다. 해설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는 까닭에 완전히 이해하려는 약간은 강박적인 생각이 독서를 더디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4년전인 1999년 철학자 이정우 교수의 ‘담론의 공간’에서 “아날 학파는 사건들로 시끄러운 역사의 표면 아래에서 거의 무의식과도 같은 평형들을 밝혀냈다.”는 글을 읽었다. 당시 내가 ‘담론의 공간’을 읽은 것은 동(同) 저자가 2년전에 낸 ‘가로지르기’를 읽으며 느낀 참신감(斬新感)을 지속적인 공부로 이어나가려는 의도에서였다. 그 이후 성과는 시원치 않았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올해 6월 최호근 교수의 ‘역사 문해력 수업’을 읽었다. 이 책에서 ‘아날학파의 거두‘ 페르낭 브로델에 관한 글을 만났다. ’역사적 시간의 세 층위; 파도(波濤)의 시간, 해류(海流)의 시간, 해구(海溝)의 시간‘이란 글이다. ’역사 문해력 수업‘은 ’담론의 공간‘을 읽은 데다가 지질을 공부하는 내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파도의 시간은 변화무쌍한 것 같지만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파악하기 쉬운 사건의 시간이다. 해류의 시간은 흐름을 타고 전개되는 시간으로서 이를 포착하려면 세대와 세기의 단위가 필요하다. 해구의 시간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구조적 단위의 시간이다. 이런 비유는 이야기의 끈’에서 철학자 김상환 교수가 선보인 비유를 연상하게 한다.

 

김상환 교수는 위대한 창조는 묵직한 습관의 지층에 습곡과 변동을 일으키는 용암의 분출과 같다는 말을 했다.(244 페이지) 해구가 지질 용어이듯 지층(地層), 습곡(褶曲), 용암(鎔巖) 분출(噴出)도 지질 용어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이런 참신한 비유를 접하고 실재 성과를 내려면 공부하는 사람은 구체적 적용 예를 찾아야 한다.

 

우선 판구조론 및 해저확장설 등의 지구과학 내용을 숙지하고 레이첼 카슨의 ‘우리를 둘러싼 바다’ 처럼 해양 과학자가 쓴 문학적인 동시에 엄밀한 과학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훈련된 눈으로 현실을 분석하면 된다. 이런 작업은 글쓰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글쓰기는 특별히 현장에서 내용을 전하는 해설사에게는 더욱 필요한 일이다.

 

다시 김상환 교수의 글을 참고하자면 글을 쓴다는 것은 가장 알맞은 표현을 찾으려 이미 쓴 글을 다시 고쳐 쓰는 것이다. ‘공공역사를 실천중입니다’에서 나는 해설사는 학문과 이야기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관계를 조율하는 사람이라고 썼다. 그리고 새로운 자료를 자신의 기존 이야기 풀pool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유연성을 갖추기 위해 건조한 글은 감성적인 글로, 감성적인 글은 엄격한 글로 만들어 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도 썼다.

 

지구과학 공부 - 인문 공부, 그리고 두 학문을 아우르는 일관된 시각을 갖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화해설사: 창의적인 공공역사가가 되는 길'이란 글로 '공공역사를 실천중입니다'의 공저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한 나는 문화해설사겸 한탄강(연천) 지질공원 해설사다. 이 이중의 정체성이 마음에 든다. 인문과 자연에 두루 정통하고자 하는 지향성이 반영된 프로필이기 때문이다. 어제 이**교수님께서 "여러 분야의 분들과 큰 활동을 하시는군요"란 말씀을 해주셨다. 이번 공저 참여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어서 더욱 기쁘고 감사하다. 지난 6월 공들인 프로젝트의 탈락으로 낙심하고 있던 차에 예상하지 못한 제의를 받고 기꺼이 참여했다. 훌륭한 분들과 함께 해서 기쁘다. 문화해설사이자 한탄강(연천) 지질공원 해설사는 현재까지 나 말고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고생물학과 지질학을 가르치는 도널드 프로세로의 책에서 두 가지 예를 만난다. 하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직한 경우다. 전자의 예는 자기들의 삶을 더 낫게 해주는 바로 그 체계,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기꺼이 받아들이곤 하는 그 체계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예다.('화석은 말한다' 39 페이지) 이와 관련해 프로세로는 "자연세계는 일괄 거래와 같다. 당신이 좋아하는 사실과 싫어하는 사실을 골라 가질 수 없다."는 말을 들려준다.

 

후자의 예는 위대한 발견은 꽤 우연히 이루어지지만 과학의 경우 세렌디피티(예기치 못한 발견)가 작동하려면 우연 속에 숨은 새롭고 예기치 못한 발견의 의미를 연구자가 알아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지구 격동의 이력서 암석 25' 273 페이지)

 

'화석은 말한다'에서 저자는 과학과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는 강한 믿음 체계를 가진 사람들 가운데에는 과학에 대해 두 길 보기를 하려는 이들이 많다는 말을 한다. 세계가 가진 대부분의 측면에 대해서는 자신의 믿음 체계가 설명한 바를 받아들이면서도 자기에게 필요하면 언제 어디에서나 과학적인 설명과 발전까지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화석은 말한다' 39 페이지)는 뜻이다. 돈 때문이든 여가선용 때문이든 신앙과 배치되는 '지질'에 근거한 해설을 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있었다. 천문학의 이론들은 수용하면서 지질에 대해서는 복잡한 자세를 가진 독특한 경우였다.

 

책상 위에 철학 교수 제임스 스미스, 천문학자 제니퍼 와이즈먼 등 25인이 함께 쓴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란 책이 놓여 있다. 친구가 선물해준 책이다. 과학책 두 권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정인경 선생의 '내 생의 중력에 맞서'와 함께 알려준 책이었다. 이에 친구는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를 두 권 주문해 내게 한 권을 주었고 정인경 선생의 책은 한 권을 주문해 자신이 가졌다. 따로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자는 말과 함께.

 

여담이지만 25인이 쓴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는가?'는 24인이 쓴 출간 예정의 책인 '공공역사를 실천중입니다'를 연상하게 한다. 이런 컨셉의 책이 가진 장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나저나 전기한 복잡한 인물이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를 읽었다면 어땠을까? 아니 그는 확고한 믿음 때문에 그런 책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연구자는 우연 속에 숨은 새롭고 예기치 못한 발견의 의미를 알아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말을 공부하는 사람은 우연히 만난 책에서 새롭고 예기치 못한 단서를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로 활용하고 싶다. 이는 누구보다 나에게 먼저 하는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