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로 대박나고 싶어요 - 성공적인 출간 데뷔를 위한 웹소설 작법 입문서
한윤설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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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치고는 다소 촌스럽고 원색적이다. 잭팟을 터뜨리고 싶은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제목만 보면 웹소설을 써서 성공하고 싶은 저자의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막 웹소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일반 독자를 부추기는 선동 구호 같기도 하다. 말하자면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성공 스토리를 웹소설을 통해 실현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두 여기 여기 모이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책을 읽기만 해도 성공에 반쯤 발을 걸친 듯한 환상에 빠져들게도 한다. 내가 그렇게 읽었다면 제목을 선정한 출판사나 저자의 의도는 성공한 셈이다. 웹소설이란 게 바로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인간의 욕망이나 정서를 소설이라는 가상 세계를 통해 구현하는 게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난 첫 출간 당시 '억대 수익을 찍는 거 아니야?'라며 설렜었다. 작가가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출간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하지만 내 첫 출간작은 억대 연봉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경험을 발판 삼아 다음 작품을 준비했고 지금은 몇 년째 억대 연봉을 버는 웹소설 전업 작가가 되었다."  (p.6 'Prologue' 중에서)


'성공적인 출간 데뷔를 위한 웹소설 작법 입문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현직 웹소설 작가인 한윤설이 들려주는 웹소설 작가 입문자를 위한 A to Z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들어 웹소설을 읽는 독자가 주변에서 많아진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변변한 웹소설 작법서 한 권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무척이나 반갑다. 현직에 있는 웹소설 작가가 웹소설 작가 입문자를 위한 안내서를 세상에 내어 놓았기 때문이다. 1장 '독자를 부르는 웹소설의 시작', 2장 '성공을 부르는 웹소설을 쓰자', 3장 '출간을 부르는 웹소설을 기획하자', 4장 '돈을 부르는 웹소설을 출간하자', 5장 '평생 웹소설 작가로 생존하기', 마지막 '당신의 시작', 부록 '웹소설의 모든 용어를 모았다!'로 구성된 이 책은 웹소설 작가 입문자가 아니더라도 웹소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캐릭터의 성격을 잘 설정하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건 캐릭터의 서사다. 캐릭터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보려면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보게 되고 그걸 이해시키려면 서사, 즉 캐릭터가 살아온 삶이 필요하다. 캐릭터의 서사와 함께 성격을 설정해 보도록 하자. 캐릭터의 서사는 구체적일 필요는 없지만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시간을 겪었는지에 따라 현재의 성격이 나타나게 되니, 한 문장으로라도 정리해 두는 편이 좋다."  (p.97)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웹소설을 단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어쩌다가 인기를 끌었던 웹소설이 종이책으로 출간되었다면 혹시 읽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마트폰을 통해 웹브라우저로 소설을 읽어 본 적은 없다는 얘기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었던 데는 까닭이 있다. 여전히 생명을 유지하는 개체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나이기에 현재 유행하는 것들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하나의 의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마트폰 속에는 흥미로운 영상이나 사진 등 독자를 유혹하는 다양한 매체가 존재하는데 그런 여타의 유혹을 뿌리치고 웹소설, 즉 문자 텍스트를 읽는 독자가 존재한다는 건 나로서도 꽤나 흥미로운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웹소설 작가를 굉장히 쉽게 생각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모든 직업에는 그만한 고충이 있다. 학교 다닐 때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이 있다. 전단지만 붙이면 돈을 준다고 하니 소위 요즘 말하는 '꿀알바'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함께 신이 나서 달려갔지만, 결국 한 시간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돌아섰다. 쉬운 일이라는 건 없었다. 내가 쉽게 얕잡아 본 일만 있을 뿐이었다."  (p.268)


한여름 뙤약볕에도 없던 모기가 요 며칠 비가 내리면서 활동이 왕성해졌다.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난 지도 한참인 것 같은데, 아침저녁으로 소소리바람이 부는 요즘 모기 입이 비뚤어지기는커녕 더없이 쌩쌩하기만 한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는 모기를 주인공으로 하는 웹소설을 쓴다면 대박일까? 아니면 쪽박일까? 모르긴 몰라도 후자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모르는 일이다. 어느 날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작가가 우리 앞에 짠 하고 나타나 우리의 편견이나 선입관을 뒤엎는 반전 드라마를 쓰게 될지... 언제 어디서나 반전 드라마는 있게 마련이니까. 그날을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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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가을은 시간 시간이 아쉽다. 아쉬움은 때로 단풍으로 물든다. 지천에 널린 아쉬움과 그리움이 메마른 햇살에 슬몃 거둬들여질 무렵이면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 그제야 우리는 짧은 가을이 왔다 갔음을 실감한다. 누렇던 마가목의 열매가 유혹하듯 빨갛게 익어가던 어느 가을날의 석양. 그 기억을 가슴에 품는 날 우리는 아쉬움의 흔적을 탈탈 털어 또 한 해가 가는구나, 하얗게 퍼지는 겨울 입김 속으로 허전함도 함께 펼쳐 보는 것이다. 해마다 속으면서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 나아지겠지, 헛된 희망을 저마다의 가슴에 한껏 품어 보는 것도 어쩌면 날씨가 추워서이거나 희망을 품는 데는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었는지도...


어제는 '2024 서울 세계 불꽃 축제'가 있었다. 축제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가 107만여 명이라고 하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우리가 이렇게 짧은 가을 동안 웃고 즐기는 사이 중동의 한 나라에선 4만1천82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일이다. 이중 신원이 확인된 3만 4천344명 중 약 3분의 1에 달하는 1만 1천355명이 어린이였으며, 여성은 6천297명, 노인은 2천955명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대개 숫자에 굼뜬 면이 있어서 사망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한 그 비참함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다. 아우슈비츠를 직접 방문해보지 못한 사람은 끔찍했던 당시의 상황을 피부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정치권, 네타냐후를 비롯한 극우 시오니스트들은 인종 말살 정책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나는 이스라엘 국민 전체가 그토록 잔인하다고는 믿지 않는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유대인 전체가 그럴 리도 없고 말이다. 다만 네타냐후를 비롯한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잔인함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말 인간도 아니다. 감정이 없는 자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학살할 수 있을까.


지지율 20%의 우리나라 대통령도 해외 순방을 떠났다. 대한민국 국민의 공적이 된 그 여인도 함께 말이다. 30조 이상의 천문학적인 액수의 세수 부족을 초래한 이 정부에서 해외 순방은 정말 뻔질나게 다니고 있다. 방문하는 국가의 언론에서 그렇게 비아냥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안면에 철판을 깔았는지 전혀 부끄러움을 모른다. 하기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해외여행 한 번 가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 현직에 있을 때 열심히 다니는 게 본인으로서는 남는 일일 게다. 순방국에서 받는 그와 같은 융숭한 대접도 대접이려니와 여행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가을을 시샘하는 탓인지 하늘은 종일 흐려 있다. 바람은 선선하고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클래식 선율은 아련하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기에 김인자 작가의 포토 에세이 <사과나무가 있는 국경>을 읽고 있다. 시를 쓰다가 '여자가 뭘?' 하는 소리에 발끈하여 20년간 100여 개국을 여행했다는 책날개에 적힌 작가의 소개글이 눈에 띈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니 그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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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생활자
황보름 지음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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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관계의 정리가 필수적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유로 타인에 의해 지배되거나 휘둘리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관계의 밑바탕에는 영리적인 목적도 있을 수 있고, 친밀감이나 애정이 근본 이유일 수도 있다. 물론 둘 다인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말이다. 그런 까닭에 오랫동안 유지되던 타인과의 관계를 일거에 정리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제부터 내 삶을 내 마음대로 살아야겠다' 굳게 다짐을 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자연인이 되어 산속 깊숙이 숨어들지 않는 한 얽히고설킨 관계를 정리한다는 게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걸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관계에 미련을 두지 않은 채 그저 방에 틀어박혀 행복에 겨워하는 작가들의 이런 글을 읽을 때면, 나도 관계에 대한 고민과 감정에서 벗어나 나를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나도 그저 집에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는 게 좋은 사람일 뿐이라고. 단지 그것뿐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도 가벼워지고 생각도 정리됐다. 좋아하는 일이나 계속 좋아하면 되겠다고."  (p.43~p.44)


보름의 에세이 <단순 생활자>를 읽는 독자들 중 상당수는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보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볼 필요도 없이 유유자적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삶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막상 그와 같은 환경에 처한다면 현실적인 고민은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단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단순한 삶에 적응하지 못할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언제나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근시안적 사고의 한 개체일 뿐이다.


"나는 미래에 외로워질 걸 걱정하나. 콩알만큼 걱정하긴 하겠지만, 삶의 방식을 바꿀 만큼 걱정하진 않는다. 심각하게 걱정해본 적 없다는 이다. 이건 마치 배우자가 있는 누군가가 다양한 형태의 이별 후에 올 외로움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 누군가가 눈앞의 배우자와 충만한 오늘과 내일을 누리려 노력하듯, 나 역시 내게 주어진 것들로 충만한 오늘과 내일을 도모하고 있다. 더더군다나 미래를 미리부터 걱정해서 뭐하나, 하면서 산 지 오래됐다. 걱정에 대해서 만큼은 근시안적 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p202~p.203)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생활을 다룬 이와 같은 에세이를 읽었을 때의 좋은 점은 멀게만 느껴지던 작가가 한 걸음 가까워졌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황보름 작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었을 때는 그렇고 그런 소설가 중 한 사람쯤으로 여겼었는데, 이 책을 통해 작가가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는 사실도, LG전자에서 개발자로 몇 번의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다는 사실도, 언니네 집에서 얹혀살다가 독립하였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작가의 이웃이 된 느낌이었다.


"내게 휴식은 비어 있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비어 있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건, 시간 속에 나만 들어가 있는 걸 말한다. 시간 안으로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한다. 사회적 시선, 압박, 재미없고 고리타분한 말들. 지치지 않고 찾아오는 불안, 걱정, 두려움도."  (p.234)


나이도 일정한 크기로 소분하여 냉동실에 꽁꽁 얼려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람의 나이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삶의 방식으로 허투루 쓰는 시간 없이 흐르는 시간을 알뜰하게 쓸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황보름 작가처럼 '다른 삶들을 흘긋거리며' 꾸준히 살펴보다가 '저렇게 살고 싶은 삶'을 만나야 한다. '가슴이 반응하고 시선이 멈추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삶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서 과감히 고개를 돌'려야 한다. 오늘은 토요일. 딱히 할 일도 없는 하루였지만 단순 생활자 황보름 씨로부터 한 수 배운 느낌이 든다. 단순한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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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후문을 통과하여 편도 1차선의 작은 도로를 건넙니다. 오른쪽에 있는 초등학교 건물을 등지고 나는 매일 아침 오르는 산의 입구, 그 낡은 계단을 향해 발을 내딛습니다. 하늘엔 손을 길게 뻗으면 닿을 듯한 먹구름이 둥둥 떠다닙니다. 오늘은 개천절. 휴일의 나는 평일에는 가지 않던 더 먼 곳까지 가곤 합니다. 참나무와 아카시아 나무가 빽빽한 군락을 이루는 산의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먹이를 찾는 청설모도 만나고 마른 낙엽을 뒤지는 참새떼와 마주하기도 합니다. 산의 정상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깔딱고개를 힘겹게 통과하면 완만한 구릉을 만납니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입니다. 구릉의 중심부엔 수십 년 된 소나무 군락이 있고, 주변에는 굴참나무와 산벚나무도 보입니다. 나는 소나무 둥치를 등지고 앉아 건너편 능선을 바라봅니다. 부쩍 낮아진 기온과 숲을 통과하여 불어오는 바람에 나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이른 아침의 풍경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합니다. 나는 그렇게 소나무 둥치에 기대어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나의 등산 일기와는 다르게 정치권의 뉴스는 하루가 다르게 터져 나옵니다. 그것은 대개 대통령실에서 비롯된 뉴스입니다. 어처구니없고 실소가 터지는 일은, 정치인도 아니고 특별한 관련도 없어 보이는 영부인의 행보가 정치권을 들었다 놨다 한다는 사실입니다. 주가 조작의 방조범 혹은 공범으로 의심되어 조사를 받았던 것은 물론 고가의 화장품 세트와 양주, 디올백 등을 받아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는 등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을 일을 그렇게나 많이 하고도 모자랐는지 마포대교 위에서 경찰을 향해 일장 훈시를 하는, 이른바 대통령 놀이에 심취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공천개입과 당무개입 논란에 의심되는 녹취록과 증거가 속속 등장함으로써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보에 다들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불법과 탈법을 넘나들고 갈수록 점입가경인 그녀의 행보에 대해 법적으로 덮어주기 위한 검찰의 눈물겨운 충성 경쟁 또한 이 정권의 특색 중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당당하다면 특검을 수용하고 구속이 된다면 대통령의 특권인 사면권을 행사하면 될 터인데 대통령은 오직 거부권만 생각하고 다른 대안은 안중에도 없는 듯합니다. 그런 대통령을 믿고 어느 여인은 미친년 달밤에 널뛰듯 막무가내 행보를 하고 말입니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국가를 운영하는 시스템도 없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미개한 나라 중 하나라는 것을 요즘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게 나라냐?'는 말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는 요즘입니다.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배추 한 포기의 가격이 만 원을 넘나들고, 깻잎 한 장 가격이 100원 안팎인 미친 물가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와중에 어느 여인의 막무가내 행보가 대한민국 국민의 화를 돋웁니다. 긴 여름을 빠져나왔건만 여전히 여름에 머무는 듯 열이 납니다. 머리에서 치솟는 열기는 바깥 기온이 떨어져도 좀처럼 식지 않습니다. 불현듯 가을을 맞은 우리는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라는 말로 이 가을을 영문도 모른 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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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의 과학 탐사기
민태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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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자신이 속한 국가나 민족에 대한 역사적 지식은 있게 마련이다. 많고 적음의 정도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특정 역사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오롯이 당사자의 몫으로 남는다. 그것은 어쩌면 다른 어떤 사람도 침해할 수 없는 사적 자유의 영역으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평가를 밖으로 표출하는 문제는 또 다른 영역에 속한다. 나의 생각이 너와 다른 것처럼 나의 생각이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생각하는, 이른바 주류의 생각인지 일부 소수의 구성원인 비주류의 그것인지에 따라 비판과 지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역사는 방대하지만 작금의 시점에서 드러나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고, 그와 같은 일부분의 역사마저도 역사학자와 같은 전문가가 다수의 일반인에게 보여주고, 해석하고, 설명을 곁들이는 건 선별을 거친 것임을 감안할 때 우리가 접하는 역사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던져진 뉴라이트 사관 역시 일제 식민지 치하에 대한 역사적 해석에 기인하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우리나라가 강제로 병합되고 3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의 통치 과정에서 자행된 불법적이고 강압적인 인권 유린의 사료와 증거들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볼 것이며 이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어느 선까지 용인하고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해방 후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과학은 민족의 미래를 여는 열쇠이자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도구였지만, 이념은 우리를 분열시켰고,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를 공격하기도 하며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대립의 역사가 우리 과학에 남긴 상처는 컸다. 무엇보다 거침없이 세계를 누비던 그 생생한 기록을 잊게 했다."  (p.294 '에필로그' 중에서)


<조선인 만난 아인슈타인>은 제목만큼이나 생소한 내용의 책이다. 책의 저자인 민태기 박사 역시 공학도임을 감안할 때, 책은 단순히 과학 관련 사료와 증거의 나열이 아닐까 지레짐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가 발굴하여 정리하고 상황에 맞게 맥락을 설명하는 과정은 어느 역사가의 기술 못지않게 매끄러울 뿐만 아니라 흥미롭게 전개된다. 가뜩이나 역사의 암흑기라고 불렸던 일제 식민지 시기와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던 한국 전쟁 시기에 우리 선조들이 추구했던 과학 발전의 원대한 꿈은 일반인들이 알지 못했던 생경한 분야이기도 했다. 1895년 서재필의 귀국에서부터 우리 민족에게 처음으로 아인슈타인을 소개했던 황진남이 1970년 오키나와에서 사망했던 쓸쓸한 기록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암흑기에 있었던 우리 선조들의 과학 대국의 꿈을 사료와 함께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이념에 의해 도외시되고 찢겼던 우리의 과학사를 되살렸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하겠다.


"이처럼 당시 과학자들은 동시대의 최신 과학 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최규남은 1936년 5월, 4회에 걸쳐 아직 생소했던 '로켓' 과학과 달 탐사 전망을 소개하고, 6월에 일어난 개기일식을 6회에 걸쳐 설명하며 태양의 흑점과 코로나에 대한 연구를 알린다. 또한 1935년 처음 발견된 델린저현상에 대해 5회에 걸쳐 소개하며 전자기파와 태양 활동을 연결시켰다. 이 모두가 일간지에 실린 과학 칼럼이다."  (p.170)


책은 단순히 사료나 당시의 잡지나 신문에 실린 기사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당시 세계의 과학 이슈와 새로운 이론을 소개함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들이 우리 선조들이 민족의 역량과 과학 발전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애를 썼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함은 물론 열악한 환경에 놓였던 당시의 우리 선조들이 세계 과학의 흐름에 동참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게다가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미처 몰랐던 과학계의 유명 인사들과 그들의 업적을 새로 알게 되는데 그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처럼 태평양전쟁은 합성섬유 전쟁이기도 했고, 그 중심에 교토국제대학의 조선인 과학자 리승기와 고분자화학 이론을 만들던 이태규 그리고 고무를 연구하던 박철재가 있었다. 리승기는 전쟁 중에 일본 군부에 불만을 표하다 투옥된 채로 1945년 해방을 맞게 된다. 교토 국제대학의 강사로 근무하던 박철재 역시 이 무렵 헌병에 잡혀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재일조선인 과학자들은 광복 후에 더욱 큰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p.187~p.188)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고, 인류가 화성으로의 이주를 꿈꾸는 21세기 첨단 과학의 시대에 케케묵은 역사를 알아서 도대체 뭐에 쓰겠는가? 하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화 선진국 대한민국을 이룬 기반도, 과학 발전을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기초 체력도 모두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 우리 선조들의 땀과 눈물이 모여 현재에 이르렀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이웃 나라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우리들의 조상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잊는다는 건, 나아가 잘못된 역사를 가르친다는 건 어쩌면 세계사의 무대에서 우리 후손이 설 자리를 빼앗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이 세운 역사를 타인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해석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자신이 지나온 과거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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