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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위하여
이토 히데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7월
평점 :
슬픔은 또 다른 슬픔으로 상쇄되지 않는다. 더구나 가족을 잃은 극단의 슬픔은 인간의 모든 감정을 압도한다. 결국 적절한 애도의 과정과 시간의 경과만이 그 거대한 슬픔의 회오리로부터 조금씩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그렇다고 슬픔의 잔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토 히데노리가 쓴 <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위하여>와 같은 상실의 고통과 애도의 전 과정을 담은 책을 읽고 있노라면 잊었던 슬픔이 장마철의 먹구름처럼 몰려오곤 한다. 물론 이 책은 사람이 아닌 반려견이나 반려묘 등 반려동물과의 영원한 이별, 말하자면 펫 로스를 경험한 이들에 대한 설문 조사와 그들의 특별했던 경험담 그리고 다양한 경험과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빠른 치유와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를 돕는 방법을 모색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가족이나 친인척 등 가까웠던 사람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을 애도하고 그들을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안내하는 책은 무수히 많이 나왔지만 펫 로스와 상실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동등한 무게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펫 로스를 경험한 반려인들의 슬픔이 사회 구성원 전반의 지지와 위로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를 처리하는 제반 시설 역시 체계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환경에서 펫 로스를 경험한 반려인 중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사랑했던 반려동물의 죽음을 수용하고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친절한 안내서가 필요했음을 절감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생각해 볼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정작 '그날'을 맞고 나서야,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 여겼던 충격에 실제로는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p.7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구성은 꽤나 길고 복잡하다. 프롤로그에 이어 제1장 ''펫 로스'란 무엇인가?', 제2장 '첫 준비는 '좋은 홈닥터'', 제3장 '실록-나의 펫 로스', 제4장 '펫 로스에 관한 설문 조사 45인의 이야기', 제5장 '마지막 '준비'는 '이별의 의식'', 제6장 '반려동물을 잃으면 꽃으로 장식하자', 제7장 '미국 '펫 로스'의 최전선' 제8장 '탤런트 가미누마 에미코 씨의 경우', 제9장 '배우 단 미쓰 씨의 경우', 제10장 '슬픔을 다독일 방법은 있는가?', 제11장 '새로운 반려동물을 맞는다'를 끝으로 '에필로그'가 이어진다.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8장과 9장에서 연예인의 펫 로스 경험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늘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연예인에게 있어 자신이 사랑하던 반려동물의 죽음에서조차 마음껏 슬퍼하지 못한다는 건 다른 일반인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비극이다.
"가미누마 씨는 '새로운 개를 키우는' 것을 '치사한 방법'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펫 로스에 관한 취재를 계속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그것은 펫 로스로 고생하는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죽은 반려동물을 깊이 사랑했고, 그들을 객관적으로 보았으며 온 힘을 다해 행복하게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p.213)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개나 고양이는 주로 목줄을 하지 않은 채 풀어놓고 키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동물을 키우는 용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개는 주로 가족이 남긴 음식물을 처리하는 것은 물론 성장한 후에는 식용으로 팔기 위한 목적이었고, 고양이는 무엇보다도 집 안팎에 들끓는 쥐를 퇴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지금처럼 온전히 사람과 동물 사이의 친밀한 관계가 목적이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길에서 개의 배설물을 밟는 일은 다반사였고, 우리 집 개와 다른 집 개가 길에서 흘레붙는 장면을 보는 일도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가구의 소득이 증가하는 것과 비례하여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이 급격히 증가했다. 애견인, 애묘인이 증가하면서 동물의 권리도 빠르게 신장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인간에 비해 수명이 짧은 반려동물과의 동거는 필연적으로 펫 로스로 인한 상심과 그리프 워크 과정 및 그에 필요한 제반 시설과 제도 정비가 절실한 시점에 이르고 말았다. 그것은 이제 일부 반려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 역시 이를 지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민트의 죽음을 계기로 3년에 걸쳐 펫 로스에 대해 취재했는데, 지금 뜻하지 않은 곳에 착지한 기분이다. 처음에는 펫 로스를 '극복'하는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지만, 애당초 펫 로스는 '극복'해야 할 것, 즉 끝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로쿠뇨의 말대로, 오히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의 '시작'으로 파악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펫 로스는 극복되지 않는다. 펫 로스와 공존하면서 그 슬픔까지 자기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 그것이 반려동물과 행복한 인생을 산 주인이 걸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p.277 '에필로그' 중에서)
비가 갠 하늘엔 잠자리 몇 마리가 날고 있다. 무더위를 예감하려는 듯 말이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심지어 식물까지도 생명이 있는 한 서로서로 감정을 교류하면서 외로움을 달랜다. 그러나 습관처럼 주고받던 어떤 행위가 멈추고, 감정의 교류마저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인간의 상심과 우울은 대체할 수 없는 좌절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에게 남겨진 삶을 이어가야만 한다. 땅속에서 6~7년 동안 유충으로 살다가 지상으로 올라와 2~3주일의 번식활동 후 죽음을 맞는 매미에 비하면 우리가 키우는 반려동물은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의 곁을 지켜주는가. 곧 있으면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겠지. 우리의 깊은 상심을 이해한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