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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너무 몰랐다 - 해방, 제주4.3과 여순민중항쟁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은 중고등학교에서 국사수업, 특히 우리나라 근현대사 부분에 관한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모르겠다.
학력고사 세대인 나의 경우를 상기해 보자면 근대사 부분, 특히 일제침략기 언저리로 오면 거의 학기가 종료되고, 현대사부분은 대체로 신탁통치 등과 관련된 분단의 배경 등을 간단히 학습하면 시험보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특히나, 학력고사에서 국사는 의미를 파악하기 보다는 무조건 암기였다(그리고, 몇차례 응시했던 공공기관의 입사시험도 마찬가지 였다). 하지만 국사시간이나 세계사 시간은 언제나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다만, 학생인 나의 능력이 부족했고 국사선생님들을 잘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시간, 휴식을 취하는 시간으로 추억될 뿐이다.
군생활을 할 때였다. 줄을 잘 섰는지 어쨌는지 다른 사람에 비해서 일찍 고참 반열에 올랐고, 오랬동안 왕고참 레벨로 집권하여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 덕분에 내무반에 있던 태백산맥 10권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시절 나에게 태백산맥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지금 다시 읽으면 그때의 놀람이 되새겨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월의 힘으로 더 넓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은 간직하고 있다.
태백산맥을 읽고나서 나의 후임병임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5~6살 정도 위였던 걸로 기억되는 서울에 잘나가는 운동권 출신인 형과 밤에 초소에서 근무하면서 우리 현대사에게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돌베개 출판사에서 나온 "다시쓰는 한국현대사(다현사)"와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으면서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생각하면, 그래도 대한민국의 대학생인데, "내가 몰라도 너무 몰라구나!"하고 반성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반성도 잠시...그때의 감정은 시간의 흐름속에 퇴적물이 쌓여갔고, 해방직후 현대사에 대한 관심은 나에게 하루하루 다가오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재사에 잊혀져 갔다.
코로나가 한창이나 기세를 부리던 시기에 맞이하였던 제주 4.3 희생자 추모식은 재택근무를 하였던 덕분에 잠시 근무지인 책상을 이탈해서 TV로 생중계되는 화면으로 볼 수 있었다.정확한 워딩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통령님의 연설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신문에서 찾아 보니 연설의 내용중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마음을 무겁게 한 것 같다.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시켰다”
“4·3의 해결은 결코 정치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웃의 아픔과 공감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태도의 문제”이다.
“국제적으로 확립된 보편적 기준에 따라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치유해 나가는 ‘정의와 화해’의 길”이다.
"동백꽃 지듯 슬픔은 계속되었지만 슬픔을 견뎌기에 오늘이 있다면서 아직은 슬픔을 잊자고 말하지 않겠다. 슬픔속에서 제주가 꿈꾸었던 내이을 함께 열자고 말씀드린다"
TV생중계가 끝나고 신문기사를 보면서 퇴적되었던 젊은 시절의 기억이 다시 떠 올랐다. "나는 너무 몰랐다. 이제는 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작년에 조금 읽다가 중단하고 숙성중이던 도올 선생님의 책을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대한 느낌은 내가 올고자 했던 4.3제주항쟁이나 여순민중항쟁에 대해서 친철하게 팩트위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기술된 그런 책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우리 현대사의 커다란 아픔이었던 두 사건에서 고통받은 인민의 아품을 역사적인 뿌리에서 출발해서 아래로 거슬러 내려오면서 짚어주고 있고, 특히나 당시 해방직후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나 미국, 소련 등 국제관계의 알력등을 선생님 특유의 목소리로 깊이 있게 전달해 주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벅찼다.
상세한 내용은 연표로 대체하여 상세한 내용과 실질적인 아픔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좀 더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이 책을 덮고 나서 문득 해방직후 우리나라의 현대사적 출발이 마치 마리오네트 인형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미국,중국, 소련 등 열강의 정치적 이해관계라는 복잡한 줄에 매달렸던, 그리고 지금도 매달려 있는 대한민국.
그 마리오네트 인형의 또 다른 연결 고리에 매달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줄의 요동침에 따라, 아무 이유없이 덩달아 고통받고 흔들렸던 슬픈 우리 민중들.
그 슬픈 마리오네트 인형의 거대한 고통과 비애가 책을 읽는 동안 복잡하게 얽힌 줄을 타고 계속해서 마음에 전해지고, 그 전류가 머리와 가슴에 진한 공감을 일으켜서 마음을 무겁게 한다.
선거가 끝났고, 이제 우리나라는 새로운 출발을 해야하는 시점이다. 해방후 첫번째 국회의원 선거부터, 또 첫번째 대통령 선거부터 여러차례 새 출발을 해왔지만, 어쩌면 우리나라는 거대한 짐을 지고 뚜벅이며 걸어간다고 느끼지만 제 자리에서 허우적대며 혜매이고 있는 한마리 낙타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2020년의 새 출발의 힘찬 발걸음과 그 목적지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