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책임 - 한홍구 역사논설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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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다 <역사와 책임>

한홍구 교수 저 <역사와 책임>을 읽고/  2015. 4., 271쪽, 한겨레출판


지진이나 기상이변과 같은 천재지변(天災地變)은 어떤 대비책을 세우더라도 인간의 힘으로는 아직 속수무책이다. 미리 예측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자연은 인간의 예측을 쉽게 뛰어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재(人災)는 다르다. 인재는 인간의 오만과 무책임과 탐욕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특히 몇몇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의 시스템과 구조나 문화, 정치와 제도가 왜곡되어 있으면 인재가 끊임없이 발생하게 된다. 2014년 세월호 참사도 인재에 해당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세월호 참사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발생했고, 참사 이후의 과정 역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해경과 해양수산부의 무능함과 무책임은 ‘해피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청와대와 행정부 그리고 여당은 대형 참사에 대응할 능력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과오와 치부를 감추는 데 급급했다. 언론과 방송은 정부와 공안기관이 불러주는 데로 받아쓰면서 진실을 은폐하고 오히려 정부와 함께 피해자와 선의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진실을 규명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겁박한다. 야당은 쓸모가 없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하면서 300명 넘는 승객들에게 버려두고 속옷 바람으로 도망가는 선장(이준석)과 선원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결사항전”이라며 라디오에 녹음기를 틀어놓은 후 한강다리를 끊고 먼저 도망친 이승만과 국방장관, 관료, 정치인을 떠올리게 한다. 이승만이 다시 환생한 것처럼, 대통령 박근혜는 국내에서 대형 정치사회적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늘 해외로 줄행랑을 친다. 귀국하면 늘 “가만히 있으라” “색출, 엄단”이라며 국민들을 협박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전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행정부와 정치권과 언론의 모습에서 한국현대사의 숱한 기억들을 떠올린다고 한다. 저자 한홍구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은 역사학자인 저자가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세월호 참사’와 똑같은 장면을, 아니 21세기에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현대사를 돌아보았다.


저자는 현재 집권세력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과 집권세력의 모습에서 찾기 시작한다. 당시 이승만과 집권세력은 ‘북진통일’이라는 호언장담만 일삼다가 정작 전쟁이 발생하자 서울시민을 버리고 야반도주했다. 그리고 미군을 따라 서울에 돌아온 후, 그들은 ‘부역’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을 사수하고 지킨 서울시민 수백 만명을 재판도 없이 즉석에서 학살하고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고 연좌제로 묶어버렸다. 당시 ‘처리’된 부역자는 약 56만 명이었다.

또한 이승만과 국방장관의 지시를 받아 한강다리를 폭파한 일선 장교와 육군참모총장은 폭파의 책임을 뒤집어 씌고 처형되고 살해되었고..


1960년 4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마산상고 김주열 고등학생의 죽음은 이승만과 집권세력의 실탄 발사를 통한 강경진압 때문이었다. 당시 김주열 등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직발사하도록 지시하고 그 시신을 바다에 유기한 자는 마산경찰서 경비주임 경위 박종표였다. 

박종표라는 자는 1949년 4월에 반민특위에서 ‘아라이 겐기치’라는 이름으로 일제의 악질 헌병 보조원으로 활동했던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지시를 받은 친일 경찰들의 습격으로 무력화된 반민특위는 그해 8월 박종표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박종표는 4월 혁명 후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감옥에 갇혔으나 일본군 장교 출신 박정희의 군사정권은 5.16 쿠테타 이후인 1968년 그를 풀어주었다.)

반민특위 해체 이후 일제의 악질 고등경찰 노덕술이 헌병으로 업종을 바꿔 서울시민을 부역자로 몰아 학살했고, 박종표는 반민특위 이후 헌병보조원에서 경찰로 업종을 바꿔 이승만의 충견이 되어 김주열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던 것이다.


해방 후 분단과 전쟁을 거쳐 악질 친일파들이 독립세력과 양심세력을 대거 학살하면서 대한민국의 권력을 거머쥔 것이 현재까지 이어진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공안 권력의 비밀인 셈이다. 그 후예들이 지금껏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공안권력은 대한민국 수구세력의 중추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수많은 마피아 집단들은 다 여기서 파생된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해피아’뿐 아니라 재정경제부 출신의 ‘모피아’, 국토건설부 출신의 ‘건피아’, 교육부 출신의 ‘교피아’ 등등 정부 부처 개수만큼이나 많은 관료 출신 마피아를 하나하나 따질 수 없어 ‘관피아’라 부른다.

공안 권력의 형님, 아우, 삼촌, 조카, 언니, 오빠, 누나, 동생들이 각계각층의 마피아가 되어 빨대 하나씩 꽂고 설계 변경하고 노후수명 연장하고 규제 완화하고 서로 전관예유 전통 물려주고 밀어주고 당겨주며 오순도순 사이좋게 대한민국을 운영해왔다. 다 밟아버린 줄 알았던 빨갱이들이 되살아나기 전까지.”(40쪽)


이 책의 2~3부에서는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공안권력을 이용해 양심적인 인사들과 애꿎은 시민들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례와 진정한 ‘국기문란 반역자’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통합진보당, 그리고 애국민주인사들을 간첩으로, 내란으로 조작하여 학살하고 탄압한 사례를 보여준다.

4부에서는 ‘한국 사법 엘리트가 살아가는 법’을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보여준다.

5부에서는 박근혜-새누리당 정권이 ‘영구적으로’ 미군에게 넘겨준 대한민국의 군사작전권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그리고 ‘전통야당’과 ‘정권교체’를 부르짖는 현재의 야당들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보여준다. 현재의 보수 야당이 왜 근본적인 한계를 넘어서기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최악의 현대사를 보내온 대한민국이 그나마 어느 정도의 공동체와 양심과 자유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에게 희망이나 가능성이 있는가. 저자의 대답은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해방 후의 역사만 보더라도 세월호보다 더 끔찍하고 광범위한 참사를 당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대통령이라는 자가 한강다리 끊고 도망가고 선장이라는 자가 혼자서 속옷 바람으로 도망쳐도, 기관장, 항해사, 갑판장 등속이 다 무책임하게 도망쳐도 대한민국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시민 대중들이 간직한 복원력 때문이다. 믿을 것은 우리 자신밖에,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온 역사밖에 없다. 호흡을 길게 가져야 한다. 

세월호 사건 이후 아마 백 번도 훨씬 넘게 강연을 다니면서 세월호 사건의 역사적 뿌리에 대해, 세월호 사건을 통해 본 한국 현대사에 대해 목이 터져라 외치고 다녔던 말로 머리말을 마치고자 한다.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 자신에 내재한 이 복원력밖에 없다. 더이상 대한민국호를 책임지지 않는 자들,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이들이 움직여야 한다.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다.”(11쪽)


"바로 잡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


-인상 깊은 문장-


“한국 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밴 플리트(James Award Van Fleet) 장군의 스물여섯 살 새신랑이었던 아들은 아버지의 예순 살 생일을 축하해주고 얼마 후 북한 지역으로 출격하였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미군 장성의 아들 중에 아버지와 함께 한국 전쟁에 참전한 사람이 145명이고, 이 중 35명이나 전사하였다고 앞에 인용한 페런바흐는 쓰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장관이나 국회의원, 고위 장성의 아들 중에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희생된 경우가 있는가? 과문이지만 들어본 적이 없다.”(43쪽)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며 전화를 끊은 사무장 양대홍은 부인의 애타는 전화에는 응답하지 않고 끝내 퇴선 지시를 내리지 않은 무전기를 꼭 쥔 채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구명조끼 가모자라자 "내 거 입어” 하고 선뜻 벗어준 학생, 그와중에 아기부터 탈출시키던 아이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끼고 살아가기에 너무나 아이들 곁에서 선생 노릇 하고 싶어 했던 교감 선생님, 아이들과 함께 가라앉은 선생님들, 그리고 겨우 매점에서 물건 파는 어린 알바생이면서 "선원은 맨 마지막에 나가는 거야. 너희들 다 구하고 나갈 거야"라며 세월호의 악마들, 대한민국호의 악마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어마어마한 책임 감을 보인 박지영....... 


이들이야말로 구조변경에 노후수명 연장에 과적에 규제 완화에 온갖 비리와 뇌물로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우는 대한민국호가 여태껏 가라앉지 않고 항해할 수 있는 숨은 복원력이었다.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 자신에 내재한 이 복원력밖에 없다. 

더 이상 대한민국호를 책임지지 않는 자들,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이들이 움직여야 한다.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다."(51쪽)


[ 2016년 8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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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시진핑을 말한다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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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드 배치’를 계기로 중국과 갈등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 미국이 배치하고 있는 ‘싸드’가 ‘북핵’을 빌미로 ‘중국에 대한 적대적 군사행위’로 인식하고 있다. 그에 따라 한국에 대해 일종의 ‘단계적인 경제보복’ 조치를 취하는 중이다. 중국의 경제보복 조치는 한국 정부의 ‘싸드 배치’ 결정이 발표된 2016년 하반기부터 단계적으로 그리고 차분하고 체계적이며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에 반해 한국정부는 ‘싸드 배치’를 결정하기 이전뿐 아니라 결정 이후까지 중국정부의 대응에 대해 아무런 예상도 대책도 수립하지 못했다. 따라서 기업과 자영업자, 관련 산업과 노동자들은 중국의 경제보복으로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중국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중국을 알기 위해서는 중국의 이념과 체제, 역사와 문화, 조직과 인물에 대해 알아야 한다. 특히 중국은 한국이나 서구체제와는 다르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중국은 중국공산당의 지배하에 시장경제형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체제다. 중국공산당의 최고지도자는 시진핑이다. 한국에는 중국공산당과 시진핑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조직이나 사람이 별로 없다. 언론도 현상만 보도할 뿐이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와 문화, 중국공산당과 시진핑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주는 학자가 있다. 바로 도올 김용옥 교수다. 하지만 김용옥은 <도울, 시진핑을 말한다>에서 단순히 시진핑의 생애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시진핑의 생애를 통해 중국과 중국공산당의 과거와 현재를 말하고자 한다.

“나는 시진핑의 바이오그라피에 관하여 쓰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인생여정을 정치권력투쟁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나의 진정한 목적은 중국현대사를 하나의 철학으로서 다루려 하는 것이다.”

도올은 기존 한국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시진핑과 중국정치를 읽어낸다. 그는 시진핑이 후진타오로부터 일시에 당, 국가, 군의 최고지위를 모두 넘겨받았다는 점에 주목하는데, 덩샤오핑이나 장쩌민이 후계자에게 권력을 이양하면서도 군사위 주석 자리만은 넘기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 “초유의 국면”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를 후진타오 시대까지 계속된 상왕정치의 종식, 4반세기를 유지해온 장쩌민 권력의 단절로 해석한다. 또 시진핑이 원로정치를 봉쇄한 것을 두고 ‘시진핑의 독주’ 식으로 해석할 문제가 아니라면서, 기나긴 적폐를 해소하고 중국의 행정체계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만 할 핵심과제의 과감한 실천이라고 본다.

도올은 또 중국의 헌법 제정 과정과 당-군-국가 체제의 형성 과정을 돌아보고, 중국정치의 저변에 깔린 ‘인치’와 ‘민본’의 정신, ‘적우제’라는 지도자 선발 방식 등을 들여다보면서 서구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중국 정치체제를 일당독재로 얘기하는 게 맞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의 5년제든 미국의 4년 중임제든 민생이나 민주주의는 거리가 먼 서구식 정치제도에 비하면, 오랜 기간 당과 행정 활동을 거쳐 8,800만 당원과 13억 인민에게 검증을 받아 단계적으로 승진하는 중국정치가 오히려 민생이나 민주주의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 같은 정치문화와 선거제도에서 ‘대통령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던 사람이 문득 맥연회수(驀然回首)해보니 대통령이 되더라’식의 상황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시진핑은 아주 우발적으로 형성된 이상적 상황의 특별한 결과의 산물이라고 쳐도, 중국의 정치적 리더는 선거라는 매카니즘에 매달리는 대신, 치세경륜에 관한 보편적 가치에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 여유를 얻는다. 그것은 민의에 충실하는 것이며, 대의를 구현하는 것이며, 공의를 창도하는 것이다. 주석이 되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다.”(243쪽)

도올이 시진핑 치세의 중국을 눈여겨보는 이유는 한민족과 한반도 상황 때문이다. 남북 긴장 문제에 있어서, 북핵 갈등 문제에 있어서, 싸드 문제까지 한국과 한민족의 평화와 미래를 위해 남북이 화해협력하고 주변 강국에 등거리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보다도 오히려 중국은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매우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남북화해를 환영하는 입장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우리 민족은 중국·일본·미국·러시아 4대강국에 대하여 항상 등거리외교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밸런싱 속에서만 우리 민족은 생존이 가능하다.
이 책은, 단순히 시진핑 개인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지성들로 하여금 중국문명을 정확히 이해하게 만들고, 한국의 정치인들로 하여금 시진핑과 같은 무게 있는 상식적 지도자가 중국을 영도하는 있는 기간 동안에 남북화해를 전진시킬 수 있는 그 많은 것을 따내도록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중국은 반만년 동안 우리의 우방이다. 미국은 몇십 년의 우방에 불과하다. 중국을 바로 이해하는 길만이 우리의 살길이다. 나는 시진핑의 정치개혁이 인류에게 새로운 빛을 던져줄 수 있기를 갈망한다.”(10쪽)

책 후반부는 200쪽이 넘는 연표로 채워졌다. 통나무 출판사 편집부에서 작성한 ‘시진핑과 그의 아버지 시종쉰의 삶을 통해서 본 중국현대사 연표’로 중국역사뿐 아니라 한국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잘 정리해서 보여준다.

도올은 근래 저서 <도올의 중국일기>와 방송 <차이나는 도올>(JTBC)를 통해 상당 분량의 중국 얘기를 풀어냈다. 모두가 <도올, 시진핑을 말한다>의 기초 정보가 되었을 것이다.

[2017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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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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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게 된 고귀한 자들은 비참하게 죽는 순간에도 이 세계 전부를 얻은 셈이에요..”

이 작품은 1930년대 초반 북간도의 항일유격근거지(한인 소비에트) 내부에서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사건, 이른바 ‘반민생단 투쟁’에 착안한 소설이다. ‘민생단’은 만주를 침략한 일제가 친일파를 조직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500여 명의 독립투사이자 혁명가가 적이 아니라 동지의 손에 의해 죽어간 사건이라하니 기막힌 사연이 많았을 것이다.

김연수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기까지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6년여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만큼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고 독립투사들의 심정에 공감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연수는 그 사이 작품을 위해 중국과 일본, 연변과 러시아, 미국과 독일을 분주히 오갔다.

“1930년대 조선인으로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조선의 독립과 혁명을 위해 먼저 중국혁명을 외쳐야 했던 시작부터 모순을 껴안았던 독립투사들, 국제주의자로서의 이중임무를 띤 채로일제가 아닌 동지의 손에 의해 봄날 꽃잎처럼 죽어간 수천의 젊은 목숨들, 자신이 누구인지는 결국 죽고 나서야 시체로서만 말할 수 있었던 그 기막힌 사연의 인물들을 찾아 작가는
관련자료와 사료들을 뒤적이고 복사하고 칼로 오려 노트에 붙여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때-그곳’이 아닌 ‘현재-이곳’에 앉아 그들의 삶과 내면을 짐작하기란 말 그대로 ‘상상불가’의 영역이었으니. 작가가 내린 결론은 적어도 그들이 죽어간 연변 땅에 가서 소설을 쓰는 일이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설이었기에 그 갈증과 열망은 더했다.”(출판사 소개글)


<밤은 노래한다>는 죽음 직전의 연인이 써 보낸, 한 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버린 한 장의 편지에서 시작된다.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저마다의 사연과 핏빛 서러움을 간직한 이들이 몰려든 북간도 땅을 배경으로, 박도만, 최도식, 안세훈, 박길룡 등 혁명과 새로운 시대를 꿈꿨던 네 명의 젊은이들과 그들의 친구인 이정희라는 신여성, 그리고 만철(滿鐵)의 조선인 측량기수로 이정희를 사랑했던 주인공 김해연에게 찾아온 잔혹한 운명, 가혹한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인을 꿈꾸었지만 내지인마냥 일본인과 함께 일하고 술을 마시며 그저 운명적인 단 하나의 사랑을 맘에 품었다가 어느 순간, 조국과 이념, 혁명과 죽음에 직면하면서 세계의 복잡한 이면에 눈떠가는 한 남자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연인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손을 저주하며 삶을 저버리고자 했지만 다시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 또 한 하나의 순정에 가슴 치는 애틋한 연애기이기도 하다.

“북간도 고난한 삶의 흔적이 몸으로 스며든 사람들의 얼굴이 인화지 위에 검은 꽃처럼 피어나”듯 이번 소설의 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만철(滿鐵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직원으로 대련에서 일하다가 용정으로 파견된 김해연은 측량작업을 하면서 간도임시파견대의 중대장인 나카지마 타츠키 중위와 친해지게 되고, 박길룡(박타이=양도생)의 소개로 이정희를 알게 된 뒤, 그들과 종종 술자리를 가졌다.

독립군이자 혁명조직의 일원이었던 이정희는 이 모임을 통해 토벌대의 정보를 수집하여 조직에 보내다가 발각되자 김해연에게 어서 피하라는 메시지를 내포한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김해연은 일본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으면서 과거 공산주의운동을 하다 전향하여 영사관 경찰보조원으로 있던 최도식을 만나게 된다. 조사를 받고 풀려난 김해연은 대련으로 돌아갔으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대련 봉판정의 아편굴에 빠져들게 되고, 직장에서 쫓겨난 뒤에는 다시 용정으로 돌아와 이정희가 목을 맨 나무에 자신도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한다.


김해연은 죽지 않고 살아났으나 그 심리적 후유증으로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는 용정의 한 사진관에서 일하게 되는데 하필 그 사진관 역시 혁명조직과 연결된 곳이었다. 그곳에서 심부름하던 여옥이라는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을 사람으로 대해준’ 야학 선생님을 통해 ‘혁명의 도리’를 깨친 뒤 이슬을 맞으며 조직의 연락원으로 일해온 순수하면서도 열정을 지닌 여자다.
“엉겅퀴나 산국(山菊) 날카로운 이파리들이 종아리에다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적어놓았습지”라고 당당히 말하는 여옥과 김해연은 서로 누구랄 것도 없이 사랑에 빠진다. 김해연은 고등공업학교 시절의 은사인 나카무라 선생의 권유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여옥과 함께 경성으로 떠나기로 한다.

경성행을 얼마 앞둔 어느 날, 김해연과 여옥, 그리고 사진관 식구들은 여옥의 언니 결혼식에 참석하러 유정촌에 가다가 운명처럼 토벌대의 습격을 받는다. 그 일로 여옥은 오른쪽 다리를 잃고, 다른 사람들은 다 죽고, 김해연만 홀로 살아남게 된다. 다리를 잃은 여옥은 혁명조직의 재봉대에서 일하게 되고 김해연 역시 유격근거지에 남아 혁명의 격랑에 휩쓸리게 된다.


중국공산당은 만철 직원 출신인 지식분자 김해연의 입당을 승인하고, 그를 대련으로 다시 보내 사업을 시키려 한다. 대련으로 떠나기 전, 여옥에게 인사를 하려 유격대장 박도만과 함께 약수동으로 향하던 김해연은 중간에 토벌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방향을 바꿔 어랑촌 소비에트에 이 사실을 알리러 갔다가 민생단 혐의자로 체포된다.

만주에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조선의 독립과 혁명을 위해 싸우려면 먼저 중국혁명부터 해야 한다는 현실적 입장의 ‘국제주의자’ 박도만과 동만에서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모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견딜 수 없었던 민족적 성향이 강한 중국공산당 순시원 박길룡(=박타이)은 민생단 문제로 격돌하게 되고, 결국 박길룡이 박도만을 사살하고 만다. 학생 시절부터 얽힌 이들의 관계가 이렇게 파국으로 치달은 것은 비극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살아남은 김해연은 혼미한 정신으로 권총을 품고 ‘잔인한 세계’에 맞서서 “결코 무너지지 않을 세계를 저격”하려고 용정의 총영사관으로 찾아가 최도식을 죽이려 한다. 누구라도 죽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총영사관 앞에서 조직의 일원인 서일남에게 발견된 김해연은 최도식을 죽일 수 없었다. 대신 그는 간도임시파견대의 중대장 나카지마를 찾아가 그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

김해연은 나카지마를 납치하여 어랑촌 근거지에 고립된 주민들을 빠져나가게 하는 것을 나카지마의 석방 조건으로 내건다. 지팡이를 짚은 여옥도, 중국공산당과 결별하여 오직 조선 사람만으로 조선혁명군을 조직하겠다던 박길룡도 이때 포위를 빠져나온다. 그러나 한 발 총성이 울리고, 박길룡은 죽음을 맞는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김해연은 다시 용정으로 가, 총영사관 경찰을 그만두고 만주중앙은행 용정사무처에서 일하고 있는 최도식을 찾아가 그 모든 혼돈의 진원지가 된 정희의 마지막 모습과 정희의 편지가 전해진 사연을 듣는다.


“정희가 내게 보낸 처음이자 마지막 서신. 그 한 장의 편지로 인해서 그때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움직이던 내 삶은 큰 소리를 내면서 부서졌다.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그처럼 간단하게 무너져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이 세계가 낮과 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나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부끄러워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출판사는 김연수 작가가 일찍부터 타인의 배제, 확고부동한 이분법의 세계―조국, 민족, 이념보다는 ‘인간의 조건’에 매료되었다고 평가한다. 일제 강점기하, 중국과 일본, 조선의 점이지대(漸移地帶)였던 북간도의 지리적, 역사적 배경과 조차지 ‘영국더기’를 둘러싸고 전해지는 가슴 저릿한 사연들은 소설가로서 저버릴 수 없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더구나 엄혹한 세계에서 조선의 해방과 사회적 평등이라는 고상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일신의 안위를 버리고 혁명에 투신했던 동지들이 서로를 일제의 간첩으로 몰아 마치 마녀사냥을 하듯 무차별 처형을 감행하고 급기야 3,4년 만에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 기막힌 ‘민생단 사건’의 사연은 더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민생단 사건’과 만주의 항일독립운동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한 몸 바친 독립투사이자 혁명가들이었지만, 한국사회에서 ‘민생단 사건’에 대해 언급하거나 연구하는 것은 금지된 것처럼 보인다. 진보적인 지식인이나 학자 중에서 극히 일부만 그 사건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민생단 사건’을 비롯한 만주에서의 항일무장독립투쟁의 주축이 민족주의 세력(좌파와 우파를 포함하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방 이후 한반도 남단을 장악하고 지배한 것은 반일 독립투사나 항일운동가들이 아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제에 빌붙어 일신의 안녕과 부귀를 추구한 친일파와 민족부역자들, 그리고 기회주의자들이 해방과 동시에 또다시 미군정에 빌붙어 ‘반공’과 ‘친미’를 외치며 한국사회의 기득권과 권력을 장악했다. 그들은 지배했던 한국사회의 70년 현대사에서 만주에서의 민족주의와 좌파 성향의 독립운동, 무장투쟁에 대한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눈과 입을 틀어막았던 것이다.

만주항일무장투쟁과 ‘민생단 사건’이 기피되었던 또 다른 이유로는 북한과의 ‘대결의식’ 또는 남한 지배계층의 ‘정당성 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만주항일무장투쟁이 조선노동당과 국가의 형성,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상적, 문화적 뿌리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지도부 또는 지배계층 스스로도 그런 부분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현대사에서 정당성이 턱없이 부족한(없는) 남한의 지배계층 입장에서는 항일무장투쟁과 ‘민생단 사건’이 남한사회에 알려지는 것이 죽도록 싫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싶었던 이유는, 이 작품이 만주의 항일무장투쟁과 ‘민생단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한민족의 근현대사가 궁금한 부분도 있었지만, 북한에서 정치와 사상적인 측면에서 지주로 삼는 ‘주체’와 ‘자주’라는 개념의 출발이 바로 ‘민생단 사건’을 겪은 북한 지도부의 1세대에서 비롯되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고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알게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다는 점에서, 1927년 낡은 세계를 부숴버리겠다며 밤마다 영국더기 동산교회에 모여 열에 들뜬 목소리로 혁명을 떠들어대던 네 명의 중학생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뒤질세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서둘러 선언했지만, 그들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건 당신도, 나도,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마찬가지다.”(247쪽)

인터넷과 세계화로 인해 지구촌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21세기에도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연결된 만큼 사람 사이는 멀어지고 개인들은 더 고립되고 외로워지는 것 같다. 혼란과 갈등의 수준 역시 인터넷 이전 시대에 못지 않다. 각 개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밤은 노래한다>의 시대적 배경은 인터넷도 없고, 대중매체도 변변치 않았던 1930년대다. 더군다나 동아시아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격변기였다. 조선반도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짓밟히고 더렵혀졌다. 일제와 그 주구들의 날선 감시와 곳곳에서 도사리는 총구를 피해다니기도 벅찼다. 조선인 모두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수 없다. 그런 시대적, 지리적 상황에서 패기와 열정만 있었던 20대의 조선 청년이 만주 벌판을 뛰어다니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민생단 사건’으로 숨져간 수많은 조선 청년들과 항일독립투사들의 명복을 빈다.

-인상 깊은 문장


“먼저 사랑이 오고, 행복이 오고, 질투심과 분노가 오고, 그리고 뒤늦게 부끄러움은 찾아온다. 나카지마와 정희를 향해 까닭 모를 분노를 느꼈던 그때의 일이, 편지를 펼쳐 그 안에 씌어진 글을 읽고 나서도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크게 놀라지도 않았던 일이 지금은 너무나 부끄럽다.”(48쪽)


“1933년 여름, 유격구에 있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누구인가? 하지만 이 물음의 정답은 없다. 그들은 조선혁명을 이루기 위해 중국혁명에 나선 이중 임무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은 중국 구국군이 일본군에 패퇴한 뒤에도 끝까지 투쟁한 가장 견결하고 용맹스런 공산주의자이자 국제주의자였던 동시에, 한편으로 일단 민생단으로 몰리게 되면 제아무리 고문해도 절대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던 일제의 앞잡이들이었다. 누구도, 심지어는 그들 자신도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날, 박도만이 유격구에서 빠져나갈 작정이었다고 해도, 혹은 유격구를 생명으로 보위할 마음이었다고 해도, 나는 그 두 가지 모두를, 혹은 그 어느 쪽도 믿거나 믿지 않을 도리밖에 없었다. 1933년 간도의 유격구에서 죽어간 조선인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간도의 조선인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객관주의란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주관으로 결정되는 가혹한 세계뿐이었다.”(213쪽)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시체만이 자신이 누군지 소리 내 떠들 권리를 지녔다. 시체가 되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납득했으니. 유격구에서 나는 수많은 시체를 봤다. 그 시체들은 저마다 이렇게 떠들었다. 나는 민생단으로서 동지들의 골수를 적에게 팔아먹었다. 나는 혁명을 보위하기 위해 내 살과 피를 팔아먹었다. 그 아우성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간도 땅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은 죽지 않는 한,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경계에 서 있었다.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민생단도 되고 혁명가도 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항상 살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건 다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므로, 시시때때로 운명이 바뀐다는 뜻이므로.”(248쪽)


“그거 알아사 씁네. 내사 동무한테 애당초 맘도 없었는데 이 손일랑 그만 정이 붙어버렸소. 동무 처음 왔을 때, 송 영감이 희대의 영웅이 나왔다며 떠들었습지. 마작하다가, 혁명하다가, 특무질하다가 목 매달리는 사내는 많아도 여자 때문에 자기 목을 매는 사내가 간도 땅에 흔치는 않습지. 그런데 용정 나가는 길에 마바리에서 손 아프다고 우는 걸 옆에서 보니 그 맘은 또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런 생각이 듭데. 마음이야 어디 붙었는지 내사 모릅지. 하지만 손이야 눈에 보이니 만져주고 싶었습지. 그러다 그만 정 깊이 들어버렸소.”(273쪽)


“나는 광주 코뮌에 참가했던 조선인 공산주의자요. 내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잊어버린 적은 있어도 내 조국을 잊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소. 지금까지 나는 수많은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계급과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소. 국민당 특무들에게, 일본 제국주의 군대들에게, 헌병들에게, 지주들의 사병들에게 그들은 처참하게 죽어갔소.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소. 고문당할 때 비명을 지르는 사람조차 본 일이 없었소. 하지만 여기 동만에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죽어가고 있소. 이런 게 진정한 공산주의의 길이라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오. 나는 동무와 계급이 먼저냐, 민족이 먼저냐를 따질 마음이 없소. 우리에게는 필요한 건 오직 우리만의 나라, 우리만의 국가일 뿐이오. 그게 바로 모든 조선인의 꿈일 뿐이오.”(278쪽)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
이젠 그걸 알겠어요. 이미 너무 늦었지만. 그러기에 말했잖아요. 지금까지 내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그러니까 당신과 그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때, 이 세상은 막 태어났고, 송어들처럼 힘이 넘치는 평안 속으로 나는 막 들어가고 있다고. 사랑이라는 게 우리가 함께 봄의 언덕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이라는 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이겠네요. 그런 뜻일 뿐이겠네요.”(324-325쪽)

[2017년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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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 - 위키리크스가 발가벗긴 대한민국의 알몸
김용진 지음 / 개마고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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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016년) 10월 경 페이스북 친구를 통해, 위키리크스가 2010년 가을 폭로한 미국 국무부의 기밀 문서 중 한국과 관련 내용을 파헤친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된 이상 읽어야 했다.

위키리크스가 미 국무부의 기밀문서 25만 건을 <가디언>, <뉴욕타임즈>, <슈피겔>를 통해 폭로했음을 알게되었을 때, 필자는 당연히 대한민국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및 한반도와 관련하여 미 국무부와 주한미대사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국내 주요 정치권이나 언론, 학계 어느 곳에서도 미 국무부 기밀문서와 관련하여 기본적인 정보만 기사로 내보낼 뿐, 한국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관심도 적었고, 언론으로서 자세한 내용을 파헤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몇 년 뒤 김용진 기자에 의해 기밀 문서 중 한국 관련 내용이 책으로 출판되었지만, 도서 정보를 자주 접하는 필자도 알지 못했다. 다행하게도 페이스북 친구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이것 또한 SNS의 힘이면 힘이라고 할 것이다.)


 

‘KOREA’란 단어가 들어간 미 국무부 비밀전문이 1만4,165건이고, 주한 미국 대사관이 작성한 것만도 1,980건에 이른다. 이 책은 바로 그 주한 미 대사관 작성 비밀 외교전문을 통해 권력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 한 비밀들, 미국은 알지만 정작 우리는 모르는 ‘대한민국의 실체’에 대해 심층분석했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과 아프간 파병, UAE 원전 수주, 독도 문제, 론스타, 한미 FTA 등 한국 사회를 격동시킨 사건들의 뒤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만의 밀담과 비밀협상들이 그 대상이다. 비밀문서에 기록된 충격적인 내용들은 ‘공식적인 발표’ 뒤에서 굴러가는 ‘진실’을 보여준다.


 

미국은 이명박이 서울시장이었던 시절부터 그를 유력 대통령 후보로 보고 주시하고 있었다. 대선 과정에서도 다른 후보들보다 이명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는데, 미 대사관이 작성해 보고 가운데 정동영 관련 문건이 9건인데 반해 이명박 관련 문건은 26건이나 된다.

이명박은 미국 입장에서매우 유용한 존재이기도 했다. 미 대사관은 MB를 “매우 친미적인 스탠스”를 보이는 유일한 후보로 평가하고 그에게 호의를 보였다. 그리고 미국은 이명박의 당선을 매우 반기며, 자신들의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2008년 2월 21일 전문, 366쪽)


 

하지만 미국은 MB를 좋게만 바라본 것이 아니다. MB의 모든 측면을 철저하게 분석했다. 미 대사관은 이명박 대통령을 “포퓰리스트”라며, “휴고 차베스의 보수파 버전”으로 간주했다.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747 공약은 ‘포퓰리즘의 산물’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MB가 복지에 대한 요구를 ‘포퓰리즘’이라고 폄하한 것과 대조적인 부분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자질과 배경을 “국법을 느슨하게 해석하는 삶을 살았다”며 냉철히 적시하면서 그의 당선은 “어떤 특별한 정치 기술이나 정책 비전보다 일차적으로는 좋은 운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렇게 몇 년간 정보를 모은 ‘MB 사용설명서’를 가지고 MB정부를 요리하기 시작했다.


 

한국 내 친미 사대주의 성향의 인사들은 미국의 개입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보다 미국의 편에 서서 적극 협력했다. 대통령부터 관료들에 이르기까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부끄러운 친미 사대주의 행동을 일삼았다. 2007년 대선이한창일 때 이명박캠프의 유종하 선거대책위원장이 버시바우 대사를 찾아가 BBK 스캔들의 핵심인 김경준의 한국 송환을 연기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이명박 후보가 미국의 요구에 철저하게 따를 것임을 약속했다.(2007년 10월 31일 전문, 255쪽)

이명박 진영의 불법부정 행위는 대선 운동 기간 중에 미국에까지 마수를 뻗치면서 스스로 미국의 먹잇감, 놀잇감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명박정권의 주요인사들도 강한 친미 성향을 내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인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미국 대사관의 오랜 정보원”이라고 불릴 정도다. 그는 1997년 대선 때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미 대사관에 조사 결과를 알려주기도 하고, 2007년에는 MB의 최측근으로서 선거 동향을 알려주고 차기 정부의 인선 정보를 미리 흘리기도 했다. 또한 그 밖의 여러 정보원들이 고위관리의 인사나 주요
정책들을 미국에 줄줄 흘리고 미국 입장에서 조언해준다. 예컨대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론스타에 대한 금융위 결정사항을 미리 미국 대사에게 알려주고 대응 방법을 조언해주기까지 했다.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와 정부 각부처의 인사들만이 친미 사대주의자이고 미국의 간첩과 정보원은 아니었다. 한국의 주요 권력층 주변과 정계, 정부관료들부터 NGO나 노동조합에 이르기까지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의 간첩이었고 정보원이었다.

저자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한 미 대사관의 외교전문 전체를 대상으로 미국의 정보원들을 검색한 결과, ‘청와대 정보원’이 가장 많았다. 이외에 국회, 외교통상부, 통일부, 국방부 순이다. 국정원이나 기무사쪽은 CIA나 국방정보부쪽의 정보원이 다수일 것이다.

예를 들어, 2007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이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제15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해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회담할 당시, 회담 사흘전 청와대 경제담당 비서관은 미 대사관 참사관을 만나 노무현 대통령이 회담에 응하는 대책을 미리 알려주었다. 청와대의 통일안보전략 비서관은 2007년 남북회담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제공하였다. 외교통상부 북미1과장은 대통령 신년연설 내용도 사전에 미 대사관에 제공하였다. 또한 2007년 대선 당시 청와대는 정동영 후보를 지원하지 않았고 ‘이명박이 당선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손을 놓았다.(그랬던 사람들이 국민들을 속이고 지금도 야당에서, 정부조직에서, 연구소와 언론에서 비열하게 애국자인 것처럼, 진보적인 것처럼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 정보원들은 노무현 정부가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는 데 별다른 열의가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대신 노무현 지지자들은 무소속 문국현 후보를 위해 일하고 있거나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의 2012년 대선 캠페인을 이미 시작했다고 한다. 노사모 남동지부 수장이자 현재 청와대 행정관인 김태환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모두 각자의 길로 갔다’며 ‘아무도 자발적으로 정동영의 캠프에 합류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승리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애석해 하며 인정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109201734421&mode=view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A&nNewsNumb=201111100009


 

한국의 정치인과 관료들이 이렇게 미국에 ‘알아서 기었으니’ 미국이 한국에서 원하는 목적을 얻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이런 사실이 드러난 이상 한국의 바깥에서 한국 정부를 ‘꼭두각시’라고 조롱해도 대꾸하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관철시킬 목표를 설정하고, 치밀하고 철저한 정보 수집과 관리를 바탕으로 개입 작업에 나섰다. 주한 미 대사관은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을 때부터 ‘한국 대통령 당선자에게 개입하는 위한 게임플랜 Game Plan for Engaging the ROK President’(50쪽)를 수립하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 대사관이 선거가 끝난 직후 본국에 발송한 전문은, 이명박정권의 출범을 맞아 쇠고기 시장 개방과 이라크
파병 연장, 한미 FTA 비준을 한국 정부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몇 년 뒤 상황은 미국의 목표가 거의 대부분 달성되었음을 알려준다. 미국산 쇠고기는 2008년 4월 시장이 개방됐다. 이라크 자이툰 부대의 파병도 무리없이 연장됐다. 한미FTA는 미국에 더 유리해진 재협상을 거쳐 날치기 통과됐다.


 

미국의 계획대로 진행된 것은 이것들만이 아니다. 미국은 2008년 3월에 “훈련 및 장비 지원을 위한 한국군의 아프간 파병”을 한국 관련 우선순위 목록에 올려놓고, 9월에 5억 달러를 지원해줄 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또한 2009년 4월에는 각 동맹국가에 아프간 지원금을 할당했는데 한국에는 5억 달러가 배정됐다. 일본에 이어 가장 많은 액수였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2011년 4월에 아프간에 5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위키리크스 공개 문서에는 미국의 끈질긴 지원 압박과 그에 굴복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미국이 2008년 2월 설정한 목표 중 하나인 5년 동안 지속되는 방위비분담협정(그전까지는 2년 정도 기한이었음)도 2008년 말 호놀룰루에서 미국의 뜻대로 타결됐다.


 

MB정부가 미국에 끌려 다닌 것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례는 쇠고기 시장 개방 문제다. 2008년 4월 이명박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시장 개방을 결정하자 한국에서는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선물로 그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그런데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문서들은 정말로 그런 ‘빅딜’이 있었음을 확인시켜준다.

MB의 측근인 현인택 전 통일부장관은 1월 18일에 버시바우 대사와 만나 한미 정상회담 장소로 “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라고 말했으며, 버시바우 대사는 다음날인 1월 19일에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 위원장 등과 만나 “이 대통령의 성공적인 방미 등을 보장받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 도착할 때에 맞춰서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시장 개방에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고 못을 박으며 쇠고기 시장을 개방할 것을 종용했다. 그리고 MB측은 정말로 국민들의 눈을 피하면서 쇠고기 시장 개방을 약속한다.(2008년 2월 21일 전문, 124~125쪽)


 

미국의 요구에 따라 쇠고기 시장 개방을 약속했으면서도, 총선 전 여론을 의식하여 공식적인 사인은 하지 않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둔 뒤 곧바로 쇠고기 시장 개방에 나섰고, 이명박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로 초대돼 부시 대통령과 미국산 스테이크 만찬을 즐겼다.

한미 재협상 문제에서도 미국에 굴복하며 국민들을 속이기는 마찬가지였다. 2009년까지만 해도 이명박정부는 FTA 재협상은 절대 없다며 확언했고, 2009년 11월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내 얼굴을 걸고서라도 재협상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정부는 비공식적으로 미국측에 재협상 의사를 내보이고 있었다.(2009년 2월 21일 전문, 267쪽)


 

그리고 결국 한국 정부는 미국과 재협상에 들어가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줬다. 한미를 빨리 비준하기 위해 미국에 양보를 거듭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미국 역시 한국과의 체결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는 미국 비밀전문 기록이 있다.

“한미 FTA는 다음 세대에도 한국을 미국에 묶어둘 핵심 요소이며, 또한 미국이 동북아시아에 정착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 가운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상호 간의 본질적인 교역 이익에 더해서 동북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헌신과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기에 한국을 더욱 미국에 묶어놓는다는 측면에서 한미 FTA의 상징적 효과는 막대한 것이다.”(2009년 11월 5일 전문, 272~273쪽)


 

미국은 한미 FTA가 자신들에게 막대한 실질적, 상징적 이득을 준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내색하지 않고 재협상을 통해 더 많은 이득을 얻었다. 반면 한국측은 미국이 FTA를 원하고 있는 상황을 유리하게 이용하지 못하고, 조속한 비준에만 매달려 일방적으로 끌려 다닌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런 무대 뒤에서의 밀약이 여론에 공개되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특히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각종 포장을 했다.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그런 ‘포장술’ 내지 언론 회피 꼼수를 미국측에 설명하기까지 한다.(2008년 12월 18일 전문, 108~109쪽)


 

미국의 요구에 따라 아프간을 지원할 계획이지만, 그렇게 여론에 비춰지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미국 정부의 요구를 모른 척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프간 지원이 워싱턴의 정치적 압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아프간의 상황과 아프간 국민들을 염려하기 때문에 나왔다고 보이게” 해야 한다고 포장 기법을 조언해주기까지 했다. 이 전문을 보고받고 미 국무부는 한국 정부가 언론을 상대하는 방식에 대해 통찰력을 얻었다며 극찬했다.

정부는 이렇게 있었던 논의를 없던 것처럼 숨기는 것 말고도, 원전 수주나 자원외교 성과를 마구 부풀리면서 다른 식으로 국민들을 속이기도 했다. 원래부터 한국이 수주하기로 돼 있던 UAE 원전을 치적으로 치장했으며 별다른 실익도 없는 볼리비아 리튬 개발과 쿠르드 유전 개발 사업을 몇 억 달러짜리 자원외교 성과라며 포장해왔다. 하고도 안 한 척, 안 하고도 한 척, 끊임없이 국민을 기만해왔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기밀문서를 통해 본 한국 정부와 대통령의 모습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비굴하고, 부끄러우며, 한심하다. 미국의 요구와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굴복하고서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갖은 꼼수를 쓴다. 정권의 부끄러운 치부는 어떻게든 감추려고 하고, 있지도 않은 성과를 치적이라며 크게 부풀린다. 국민들의 안전과 이익보다, 정권의 체면과 자신의 보신을 우선시하는 모습은
분노를 일으킨다. 한국인들이 5년여 동안 익히 짐작하고 있던 것들을 이 책은 확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증언으로 확인해준다.

하지만 이것을 단지 대통령 한 명, 한 정권의 문제로만 축소시켜도 안 될 것이다. 미국 영향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들 모르게 중대한 결정을 해온 것은 어느 정권, 어느 권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권력은 기본적으로 기만·위선·은폐의 습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파적 시각을 떠나서 권력이 감추려 하는 진실들을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알리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번에 공개된 위키리크스 문서와 그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의 발간은 정보의 민주화에서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책으로 인해 그동안 ‘자신들만 알고 우리는 모르게’ 한국 사회를 움직여왔던 권력자들은 그 부끄러운 알몸을 까발리게 됐다.


[2017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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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비밀의 종말 - 가디언이 심층취재한 줄리언 어산지의 모든 것
데이비드 리.루크 하딩 지음, 이종훈.이은혜 옮김, 채인택 감수 / 북폴리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책은위키리크스 다룬 , 마르셀 로젠바흐와 홀거 슈타르크 공저 <위키리크스,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2011, 21세기북스)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의 <위키리크스,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2011, 지식갤러리)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었지만, 권과 달리 5년이 지난 뒤에야 읽게 되었다. 

김용진의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 : 위키리크스가 발가벗긴대한민국의 알몸’>(2012 개마고원) 읽은 , 위키리크스와 관련된 책을 읽어보려고 찾다가 <가디언> 기자들이 출간한 <위키리크스, 비밀의 종말> 인터넷서점에서 찾았다.


앞서 마르셀 로젠바흐와 홀거 슈타르크 공저 <위키리크스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의 <위키리크스,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 읽은 , 개인적으로 줄리안 어산지와 <위키리크스> 대한 최종 평가를 내리지 못했다. 

어산지가 <위키리크스> 설립한 취지와 이념, 정보공개 원칙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지했지만, 그가 <위키리크스> 운영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잘잘못을 따지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 <슈피겔>지의 기자인 마르셀 로젠바흐와 홀거 슈타르크는 어산지에 대해 높이 평가했고, <위키리크스> 설립시 어산지와 함께했던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는 권력의 비밀정보를 공개하는 것에는 적극 찬성했지만, 어산지가 <위키리크스> 운영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비판적이었다. 돔샤이트-베르크는 어산지와 결별한 독자적으로 폭로사이트(http://lsk.pe.kr/2847) 개설했지만 지금까지 <위키리크스> 만큼의 성과를 보여주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 위키리크스 설립부터 줄리안 어산지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가디언> 기자 명은 세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숱한 사건들의 뒷이야기들을 파헤치고정보 메시아혹은사이버 테러리스트 모순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줄리언 어산지의 모든 것을 책에 담으려 했다. 


호주 출신의 줄리안 어산지는 무명의 해커에서 이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 만든 줄리언 어산지는 무명의 해커로 출발했다. 위키리크스는 익명의 정보 제공자가 제공하거나, 자체적으로 수집한 사적 정보 또는 미공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웹사이트다. 주로 정부의 비밀을 폭로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모토가우리는 정부들을 연다(We open governments)”이다. 

위키리크스가 지난 년간 공개한 기밀문서의 숫자가 세계의 언론들이 지금까지 통틀어 공개한 것보다 많다.


2006년에 위키리크스를 만든 어산지가 유명해진 것은 2010년이 되어서였다. 그가 이름을 널리 알린 계기는 연속으로 폭로한 일련의 전쟁 기밀문서 때문이다.

위키리크스는 2010 4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이라는 제목의 38분짜리 비디오 파일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2007 이라크에서 로이터 통신 소속 현지 기자와 주민들이 미군 헬기의오인 공격으로 숨지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비디오는 당시 인터넷과 신문, 방송을 통해 세계에 공개됐다. 제대로 확인도 없이 인명을 살상하는 장면을 세계 사람들은 분노하지 않을 없었다. 

그리고 그해 6월에는아프가니스탄 전쟁 일지 폭로했다. 이것은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면서 기록해온 7 6900건의 미공개 문서들이다. 

10월에는이라크 전쟁 기록 공개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작성한 40 건의 문서들이다. 여기에는 이라크와 이란 국경에서 숨진 모든 사람에 대한 정보가 상세히 담겼다. 수감자 학대에 대한 보고서도 폭로됐다.


결정타는 11월에 공개한 미국 국무성의 외교전문이었다. 

미국의 외교관들이 현지에서 유력인사를 만나고 작성한 다양한 정보를 담은 기밀문서였다. 문서들은 25 건이 넘어 한꺼번에 공개하지 못하고 순차적으로 세계에 뿌렸다. 전문을 공개했다는 뜻에서 폭로는케이블(전문) 게이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국이 우방의 유력인사들과 나눈 이야기를 노골적일 정도로 상세하게 담은 이들 문서 때문에 미국은 외교적으로 곤란한 처지가 됐다. 하지만 튀니지 같은 경우엔 국민들이 오랫동안 염원하던 혁명을 이뤄낼 있었다. 튀니지 주재 미국 재외공관에서 전송된 외교 전문에 튀니지 지배층의 부패와 월권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케이블 게이트전문은 <위키리크스, 비밀의 종말> 수록됐다. 


<가디언>위키리크스 설립 초기부터위키리크스 독점정보계약을 맺었다.

위키리크스의 설립자는 줄리언 어산지는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 폭로의 과정에서 아주 영리하게 행동했다. 그는 힘과 영향력, 신뢰도가 높은 영국의 전통적인 신문사 <가디언> 독리, 미국의 잡지사들과 손을 잡았다. 어산지는 자신이 폭로하는 내용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해 전통적인 매체에 위키리크스가 담고 있는 방대한 자료를 독점적으로 제공하여 기사화하게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행동이 자유언론과 관련 있는 정의로운 행동이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도 성공했으며 스타의 지위로까지 발돋움할 있었다. 


책의 감수자는 책이 어산지와 위키리크스가 어떻게 하나의 세포에서 하나의 개체로 성장했는지를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가장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와 처음 접촉하고 세계에 비밀을 폭로할 계획을 함께 세웠던 영국 최고의 권위지 <가디언> 기자들이 썼기 때문이다. 

<가디언> 기자들이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받고 가장 먼저 일은 방대한 디지털 자료를 이용할 있는 검색 엔진을 구축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자료의 타당성을 검증할 아프간과 이라크 분쟁에 관해 상세한 지식을 가진 해외특파원들과 외교 분석가들 폭넓은 전문 인력을 은밀히 영입했다. 

모든 작업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 인력 지원과 끈기를 필요로 했다. 정보를 분류하고 파악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그렇게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다루었던 언론사는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자료 전체는 대략 3 단어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1971 <뉴욕타임스> 폭로한 국방성 관련 문서가 250 단어에 불과했음에 비추면, 방대함을 짐작할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어산지와 그의 팀이 세계의 내부 고발자로부터 제보 받은 방대한 문서를 살펴보고 검증하고 분석하고 가치를 따져 보도할 있는 능력이 없었다고 평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산지가 파트너로 잡은 <가디언> 전통의 인쇄 매체들이 방대한 내용을 살펴보고 확인까지 가치를 평가하고 이를 대중에게 알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점을 간파한 어산지도 자신이 제보 받은 기밀문서를 통째로 언론에 보냈고 확인 작업, 중요도 결정, 그리고 보도 시기까지 모두 언론에 맡겼다. 결과 위키리크스는 엄청난 위력의 폭로를 세계를 상대로 효과적으로 하는 성공했다. 위키리크스와 <가디언> 상생관계가 시너지를 발휘한 것으로 평가한 셈이다. 


<위키리크스> 등장하여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권력의 비밀정보들을 폭로했지만, 세계는 아직도 온갖 비밀정보와 비밀권력, 비밀행위 등이 지속되고 있다. 오바마와 미국 정부, 미국의회  역시 집권 8 동안 <위키리크스> 폭로했던 비밀정보에 대해 진실을 밝히거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 전쟁범죄에 대해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고, 정치적으로 책임지지도 않았다. 미국 언론과 미국인들 역시 폭로된 범죄에 대해 눈을 감았다. <위키리크스> 노력이절반의 성공 거두었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결국, 개인이나 일부 집단이 권력의 어두운 비밀을 폭로하는 것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미국인 개인, 전세계인 개개인이 뭉쳐 비밀권력과 비밀정보를 무너뜨리고 국가와 정부, 정치경제와 삶의 주인으로 자각하고 나설 때만이 어떤 변화도 가능할 있을 것이다. 


[ 2017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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