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지음 / 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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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른여덟이 되던 해 어느 날 사랑과 건강을 한꺼번에 잃고 삶의 의미에 대해 반추하다 남은 생을 글을 쓰며 살아가기로 결심한 뒤 지금껏 네 권의 책을 냈다. 특유의 솔직함과 남다른 표현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를 읽어 보고 두 번째 책이다. 저자는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한다. 글이지만 속 마음을 드러내니 읽는 독자는 차라리 편하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속내를 내놓지 않는다. 나부터도 말을 잘한다 재밌다고 하지만 힘들때는 속에 말을 잘 하지 못한다. 말을 하면 속이라도 편할텐데 말이다. 들어 줄 사람도 없겠지만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솔직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나는, 실은 인생의 근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내면의 벙어리로 지낸 과거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 되어서까지, 내게 적지 않은 수의 친구들이 있었지만 내 진짜 속내, 아니면 아니라고,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너희가 알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데 28년이 걸린 것이다 그때까지의 내게 친구란, 나에 대해 마음대로 넘겨 짚어도 그런가보다 하고, 무슨 일이 있든 무슨 말이 오가든 나는 그저 늘 들어주고 맞춰 주어야 하는 존재였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떠나가면 나는 겉으로 표현은 잘 안 하지만 속으로는 꼭 목련처럼 매달린다. 누렇게 말라붙은 이파리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쿨한 게 다 뭔지. 사람이 좋아서 하는 일에 부끄러운 게 있으랴. 하는 생각이다. 문제는 매달리는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인데, 내 생각에 이별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헤어지고 나서도 그 책임을 증명하는 행동은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니 빌어도 모자랄 판에 보고 싶어 죽겠으니 빨리 돌아오라 떼를 쓴다.

 

오늘은 책을 읽다가 화자가 80년대의 어느 날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문득 만약 내가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산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난 인생의 수많은 것들을 되돌려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결론은 그러기는 싫었다. 이유는 엄마 때문이었다. 그때로 돌아가도 엄마는 여전히 내 엄마이고 내 곁에 있을 테지만, 어쩐지 지금의 엄마는 여기에 그대로 있고, 과거로 돌아가서 만난 엄마는 새롭고 또 다른 사람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글을 쓰겠다는 사람에게 글을 잘 쓰려면 매일 꾸준히 써라. 하루도 거르면 안 된다와 같은 말들이 과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말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런 조언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아도 아마 그러고 있는 사람들,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쓰는 게 글일 것이기 때문이다.

 

 

 

글이란 건 뭘까. 종종 내게 글쓰기에 대해 물어오는 분들이 있을 때면 나는 그분들이 왜 무엇 때문에 글을 쓰려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준비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나 또한 그게 되어 있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여전히 내게 이 일이 생계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받는 것만 같아 약간의 서글픔을 느낀다. 먹고 사는 방편으로 하는 일들의 가치를 폄하하는 게 아니다. 단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은 한 사람의 오랜 염원에 관한 이야기랄까. 그러나 어쩌면 내가 끝내 바라던 바를 이루고, 내가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완벽한 답을 찾는다면, 그래서 이른바 결론이란 것에 다다르게 되면, 그것으로 난 더 이상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노력하고 갈구해도 삶이란 건 끝내 피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는 거라고, 그게 실망할 일은 아니지만 어떤 이의 마음속엔 끝내 미련으로, 스스로에 대한 누추함으로 남아 그렇게 쓸쓸하게 남은 여생을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작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진짜 살아 있는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이렇다 할 꿈 없이도 살아가고, 그렇게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도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는 그래서 어딘가 한 명쯤은 당신 평범해요, 하나도 안 특별하다고요. 근데 그게 뭐 어때요? 이렇게 말해주는 작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할 수 있으면 그게,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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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 김제동의 헌법 독후감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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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김제동 1974년생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는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한 달에 평균 5000, 많을때는 2만 명까지도 만난다. 그는 사람들이 웃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방송인이다. 그럴 때 있으시죠?책을 중고서점에서 다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을 펼치는데 어쩌면 이렇게 글을 잘 썼는지 감탄이 절로 난다. 헌법을 읽고 쓴 독후감 형식의 에세이다. 고양이 그림과 김제동씨 그림을 첨부해서 재미있게 써내려간 글을 읽다가 웃다가 한다.

 

 

 

헌법 책을 읽고 재미있다고 한 제동씨 읽고 시험 안 치니까 정말 재미있었어요 이 말에는 공감이 간다. 내가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리지만 시험이 아니기에 재미가 있는 것처럼 헌법이 재미가 있었다는 것인가보다.

 

 

헌법 371항을 보고 마치 연애편지의 한 구절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른여섯 가지 사랑하는 이유를 쫙 적어놓고 마지막에 추신을 붙인 거죠. "내가 여기 안 적어놨다고 해서 널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 법 조항이 그렇게 감동적일 수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또 재밌더라고요. 읽고 시험 안 치니까 정말 재미있었어요. p5

 

 

우리는 모두 남의 집 귀한 딸과 아들이다. 한때 뒤집기만 해도 박수를 받았던 사람이다. 헌법이라는 체계는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잖아요. 우리 헌법에 제일 많이 나오는 구절이 '모든 국민은' '누구든지' 대한민국 국민이면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여러분이 저를 부를 때 여러 가지 호칭이 있죠. 방송인, 연예인, 개그맨, 사회자 등등 그중에서도 저는 '사회자' 로 불리는 게 제일 좋아요. 사회자는 마이크를 여기저기 배달하는 게 일이잖아요. 제가 한창 광장에서 이야기할 때 저더로 "본업에 충실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저는 사실 본업에 충실했습니다. 사람들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스피커 역할을 조금 한 거죠. 대한민국에 이렇게 헌법을 얘기하는 사회자가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 아닌가요?

 

 

"헌법은 귄리 위에 잠자는 사람도 보호받도록 되어 있어요."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힘을 모을 때, 그때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지난 겨울 우리가 광장에서 확인한 게 아닐까 싶어요.

 

 

  

 

땅콩 안 까줬다고 무릎 꿇이지 않는 사회,

함부로 소리 지르거나 물컵 던지지 않는 사회,

인간이 인간에게 모멸을 퍼붓지 않는 사회,

인간이 인간의 존엄을 지켜줄 수 있는 사회.

저는 행복 추구권이 행복할 권리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해야 하니까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뭘까요? 나는 나의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고, 당신은 당신의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다, 나는 당신의 생각에 반대할 권리도 있고, 찬성할 권리도 있고, 당신도 나의 생각에 반대할 권리도 있고 찬성할 권리도 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할지라도 누군가가 당신의 말할 권리 자체를 빼앗으려 한다면, 기꺼이 당신 편에 서서 함께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잖아요.

그런데 아직 그게 잘 안 되어 있죠. 말하기가 겁나죠? 겁내지 말고 쫄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시집도 좋아하는지 중간 중간 시 인용문도 있다.

어느 할머니가 예순 넘어서 쓴 시

[나도 쓸 수 있어]

이게 무슨 글자더라?

물을라치면 아홉살 손자

할머니 그것도 몰라

휑하니 가버렸다.

 

무릎 수술끝내고 보험금 타러 가니

이름 쓰란 소리에 가슴은 방망이질

남편 불러 내 이름 쓸 적에

숯덩이 내 가슴 숨쉬기도 싫더라

- 소망반 이옥자

 

 

만약 우리가 인간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위헌입니다. "사는 게 왜 이래, 삶 사는 게." 이런 말이 나오면 헌법에 반하는 상황인 거에요. 모여서 얘기해봐야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돈이 없어도 안 되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그렇게 행복하지만도 않다고 연구 결과도 말하고 있습니다. 일정 액수 이상을 벌기 시작하면 소득이 늘어나도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고 하잖아요, 그러나 생활의 기본적인 수요는 충족되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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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진
이완우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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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진

 

 

몽진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왕조실록(實錄)을 보관하던 춘추관(春秋館)과 충주사고(史庫), 성주사고(史庫)가 병화로 소실 된 후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史庫)의 실록과 어진(御眞)의 이안과 보존 과정을 자유로운 상상과 서정성 짙은 문체로 그려 낸 역사소설이다.

 

당시 조선은 왜적의 침입에 맞서 백성을 보호하고 실록을 지켜낼 능력이 없었다. , 15924월 부산 포로 쳐들어 온 왜적의 선봉대는 채 2개월도 못 되어 한양을 점령하는 등 전 국토를 유린 하였으며, 결국 선조와 세자는 평양으로 피란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초야(草野)에 묻혀 살던 이름 없는 어떤 사람들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달려갔고, 또 어떤 이름 없는 사람들은 실록과 어진을 지키기 위해 전주 사고로 달려갔으며 수백 일 동안 산중에서 그것을 지켜냈던 것이다. 

 


역사소설이라 신청하는데 망설여졌다. 역사책은 읽기에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도 재미가 있다. 몽진은 역사소설이다. 역사소설은 역사가 아니다. 역사소설은 역사에서 착안해 창작한 소설일 뿐이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상상력에 의해 탄생된 허구라는 점을 강조한다. 임진왜란 당시 실록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이 엿 보인다. 올해가 3.1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한지 100년이 되는 해이니 이 책을 읽는 것도 의미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왕조실록과 태조어진의 이안과 보존과정을 자유로운 상상과 서정성 짙은 문체로 그려낸 역사소설

 

 

사내는, 차라리 하루 빨리 왜적이 나타나기를 바랐다. 보이지 않는 적보다 보이는 적과 싸우는 것이 더 나으리라 생각했다.

소문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커지다가 마침내 걷잡을 수 없는 괴물로 변해버렸다. 한양을 점령했으니 이제 곧 잠시 비켜 놓았던 이곳을 향해 왜적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왜적들은 남자들과 아이들은 모두 죽이고 여자만 잡아간다는 말도 들렸으며, 또 왜놈들은 사방을 볼 수 있도록 머리 뒤에도 눈이 있으며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있어서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다는 해괴한 소문도 꼬리를 물고 들려왔다.

 

 

 

일 년 전, (殿)(궁궐이라는 뜻)에 모셔진 어진을 담당하는 참봉에 제수 되었을 때 사내는 임금님의 은혜에 감복하여 눈물을 흘리며 삼배를 올렸을 뿐 아니라 조상을 모신 사당에 임금님의 은혜에 감복하여 눈물을 흘리며 삼배를 올렸을 뿐 아니라 조상을 모신 사당에 분향하며 자신을 나랏일에 쓰일 수 있도록 보살펴 준 조상의 은혜에 마음 깊이 감사해 했었고 나라와 임금님을 위하여 신명을 바칠 것을 맹세했었다.

 

저 멀리 산 아래로 아득히 맞닿아 있는 하늘이 이제 막 트기 시작하는 미명의 이른 새벽 부처님을 모셔놓은 작은 방 옆에 붙어 있는, 스님들이 안거하는 동안 머무는 숙소에서 나온 노인은 희미한 미명에 의지해 절벽을 뒤로 돌았다. 그러자 마치 숨겨놓았던 물건이 들통이라도 나듯 갑자기 어둠속에 웅크리고 있는 석굴이 나타났다. 석굴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찾지 않는다면 예상조차 할수 없는 곳에 거짓말처럼 존재하는 석굴, 석굴 앞에 이른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석굴은 입구가 사람 키를 훨씬 넘을 만큼 높았고 안은 넓고 깊었다. 많은 양의 실록을 숨겨놓고도 사람 여럿이 기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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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송정림 지음, 채소 그림 / 꼼지락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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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어쩌면 내 마음 같을까? 제목이 마음에 든다. 이 책은 요즘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쉬어가라는 메세지를 전해준다. 열심히 살고 있으면서 때때로 우울감이 찾아오는 평범한 젊은이들을 위해 써졌다고 하였다. 책이 오자마자 딸이 읽었으니 많이 공감 하는듯 하다. 이 책이 따뜻한 위안이 되기를...

   

 

    

서울의 주택가 골목을 걸어간다.

스무 살의 나를 만난다.

무슨 일에 선지 울고 있다.

막막한 어깨를 지닌 그녀에게

내가 말해준다.

"괜찮아,다 괜찮아질 거야."

 

제주도의 올레를 걸어간다.

작은 골목에서 뛰어노는

열 살의 나를 만난다.

내가 말해준다.

"더 신나게, 맘껏 놀아도 돼."

 

 

산다는 것은

내 마음과 꼭 닮은 것들을

반갑게 만나기 위한 과정이다.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일제히 자기 빛깔을 내며 피어나는 꽃들.

꽃 폭탄을 맞은 마음이

콩닥콩닥거린다.

 

순간, 사랑하는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잘 지내냐는 인사를 건네고 싶어진다.

꽃이 지면 덜컥, 가슴이 내려앉으며

그의 안부를 단정지어버린다.

 

어떤 빗줄기는 내리는 게 아니라

하늘로 통통통 음표처럼 솟아오른다.

어떤 빗줄기는 내리는 게 아니라

작은 포탄 소리를 내며 내 가슴에 직진해 온다.

그리고 가슴속에 무차별 공격을 시도한다.

공격당한 보고픔과 그리움이 난리를 친다.

 

고달픈 사람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걷고

아픈사람은 구부리고 걷고

성급한 사람은 보폭을 크게 하며 걷고

욕심 많은 사람은 발을 꾹꾹 눌러서 걷는다.

사람들은 그렇게 각자의 인생처럼 걸어간다.

    

 

 

 

 

"이 작은 별에서 아무리 떨어져 있다 한들,

두 사람의 거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람을 고독하게 만드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공간이 아닙니다."

 

 

남을 비방하기보다 자신에게 더 엄격한 사람

강자에게 비굴하지 않고 약자에게 관대한 사람

그 어떤 세상의 평이나 모함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가는 사람.

생의 포인트를 톡톡 살리는 이런 사람은 진실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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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음,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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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카의 장갑

 

 

소설에 나오는 루프마이제공화국은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를 모델로 하는 가상의 나라이다. 실제로 오가와 이토는 본문 삽화를 맡은 히라사와 마리코와 여러 번 라트비아를 방문해 사전 취재를 했다고 한다. 라트비아는 과거 수차례 강대국의 점령과 박해르 받았던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마리카는 건국 30년 만에 나라를 빼앗기고, 남편과 생이별을 하는 역경을 겪지만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끗끗하게 살아간다.

 

 

 

 

마리카가 태어난 날 아침, 할머니는 곧바로 작은 엄지 장갑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루프마이제공화국의 겨울은 몸시 추워서 엄지장갑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꼭 드는 엄지장갑을 갖고 있습니다. 마리카가 태어난 곳은 루프마이제공화국. 루프마이제공화국은 마리카보다 한 달쯤 먼저 탄생했습니다.

 

밖에서 뛰어 놀기 좋아하는 마리카에게 수공예는 커다란 골칫거리. 코가 촘촘하고 엄지 부분의 문양을 맞추기 힘든 까다로운 엄지장갑 뜨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루프마이제공화국에는 중요한 규칙이 있었는데, 열두 살이 되면 누구나 수공예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것.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혜와 기술을 익히기 위한 시험으로 남자아이들은 바구니를 엮거나 못을 박고, 여자아이들은 실을 잣고 수를 놓고 엄지장갑을 떠야 한다. 닷새에 걸친 시험을 모두 치르고 난생처음 앓아눕는 마리카. 마침내 보결이라는 단서가 붙긴 해도 마리카는 시험에 합격했고, 이로써 맡은 바 책임을 다할 때에야 행복을 누릴 자격을 갖게 됨을 깨닫는다.

 

열다섯 살이 된 마리카는 같은 춤 동아리에서 청년 야니스를 사랑하게 된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 무렵 마리카는 한 가지 큰 결심을 했다. 야니스를 위해서 엄지장갑을 뜨기로 한 것이다. 고백은 부끄러워서 못하니까 말로 표현하는 대신 엄지장갑에 마음을 담아서 전한다.

 

엄지장갑은 털실로 쓴 편지 같은 것

 

엄지장갑을 야니스에게 직접 건네지 않고 친구에게 전해달라고 하였다. 건국 15주년 축하 행사 때였다. 눈에 익은 엄지장갑을 보았다. 마리카가 선물한 엄지 장갑을 꼈다는 것은 야니스가 마리카의 마음을 받아들였다는 증거이다. 마침내 마리카는 그에게 프러포즈를 받는다. 청혼을 수락하기 위해 복잡한 문양이 들어간 결혼식용 손가락장갑 뜨기에 돌입해야 하는 마리카. 이제 마리카는 장갑 뜨기가 전보다는 훨씬 좋아졌다.

 

두 사람이 결혼한 지 5년 만에 루프마이제공화국이 얼음제국에 무력으로 병합되는 불운이 닥친 것이다. 사람들은 춤과 노래를 빼앗기고 민속의상 착용도 금지되었지만, 혹한의 긴 겨울을 나기 위한 엄지장갑만은 유일하게 허용된다. 힘든 시절이지만 마리카와 야니스는 서로에 대한 사랑에 의지해 소박한 일상을 꾸려나간다. 꿀벌을 치고, 일주일 치 흑빵을 굽고, 엄지장갑을 뜨고, 동식물 가족을 보살핀다. 둘이 손을 잡고 숲속을 거닐고, 여름이면 호수에서 물놀이를 하고, 나란히 그네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보고, 온실 방에 마주 앉아 도토리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그러나 얼음제국은 그런 소박한 행복을 더는 허용하지 않는다. 야니스에게 연행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마리카는 그가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소망하며 밤새 엄지장갑을 뜬다.

  

  

계절은 돌고 돌아 야니스가 떠나고 오 년이 지났다. 마리카는 서른다섯 살이 되었다. 하지 축제 전날, 우체국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소포를 전해준다. 소포를 뒤집어보니 발신인이 모르는 사람이다. 진흙투성이의 다 해진 엄지장갑을 못 본 척할 수도 없었나보다..이 사람은 장갑을 주워서 생면부지의 마리카에게 소포로 부쳐 주었다. 장갑 안에는 야니스가 넣어 둔 마리카 주소와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마리카가의 일흔 살 되던 해에 루프마이제공화국은 독립을 되찾았다. 마침내 기나긴 겨울의 시대가 끝났다.루프마이제공화국이 독립을 되찾은 지 칠 년 만에 마리카도 조용히 여행을 떠났다. 이 고장의 풍습은 사람이 죽으면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민속 의상을 입은 마리카의 손에는 야니스의 장갑으로 다시 뜬 엄지장갑이 끼워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여행을 떠났다.

 

이 소설은 작은 장갑 나라에서 가르쳐준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담았다. 읽고 나니 마음이 푸근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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