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Child in Time]덕분에 메가박스(코엑스 점) 'Film Society'라는 상영관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십수년 자주 다니던 영화관이었는데, 요런 소규모(30석) 상영관을 운영하는 줄 몰랐어요. 


http://megabox.co.kr/?menuId=specialcontent-lounge&majorCode=06&minorCode=0602





명절 연휴에 혼자 영화를 봤네요. 서울, 경기권 전역에서 [Child in Time]의 유일한 상영관이 "메가박스 필름소사이어티" 뿐이기에 2좌석 예매를 했어요. 영화보자고 초대를 해도, 다들 쉬고 싶어하더라고요. 저도 자알 쉬었습니다. 혼자 영화보는 거, 힐링이네요. 

예약했으나 비어 버린 좌석에는 노트북 가방과 선물받은 영화 포스터 2장을 눕혀 놓고, Venti 사이즈 뜨거운 라떼 마시며 93분짜리 영화, 잘 보았습니다. 



저처럼 "이언 매큐언" 때문에 극장 찾은 분들 많을 것 같아요. 저는 그랬어요. 2019년, 알라디너 고수 분들이 큐피트 화살을 한 방향으로 날리시길래, 그 주인공 "이언 매큐언"이 도대체 어떤 글을 쓰는가 궁금해서 작년에 조금 읽었지요. [Child in Time]은 아직 읽지 못했어요. 번역판은 2020년에 출간되었더라고요. 메가박스 필름소사이어티에서 "이언 매큐언 기획전" 상영중이니, 팬인데 모르셨다면 한 번 찾아보세요. 



트레일러로 내용을 살짝 엿본데다가, 다른 분들 리뷰에서 '부성애'가 키워드로 올라오기에, 줄거리를 짐작했지요. 아이를 갑자기 잃고(아마 유괴당했을테고), 삶이 피폐해진 그러나 아이를 기다리는 부부의 이야기일거라고. 물론, 그 내용입니다. 헐리우드 영화스타일 반전은 없었습니다. 아이는 계속 부재하고, 주인공의 상상의 세계에서 이야기하고 웃고 손을 내밀 뿐. 

*

그러나, 그렇게 밋밋한 드라마는 이언 매큐언 스타일이 아니죠. 이 안에, 영국 정부의 육아정책에 대한 비판, 어린이와 유년기 예찬, 치유와 인간 간 소통의 매체로서의 음악 등 여러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냅니다. 영화 보고 나와서, 거진 2시간 내내 이 영화와 소설, 그리고 배우에 대한 서칭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제게는 참 와 닿는 영화였어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 두 장의 스틸컷을 보면 아주 다른 느낌일 거예요. 주인공이 응시하는 대상은 물론 다른데, 시공간을 초월해서 연결되어 있어요. 타임머신 탄 것도 아닌데, 물질 세계를 넘어서서 존재와 존재가 교감하는 장면입니다. 인간의 용어를 빌자면 '세대generation'을 넘어섰고, 직선상의 시간 도형이 구부러져 한 점에서 만나는 장면입니다. 

의미 깊습니다. 

*

만약 이런 식으로 존재, 특히 아이들의 존재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남의 아이도 내 아이, 모르는 아이도 우리 모두의 아이가 될 수 있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겠다는 소박한 생각도 해봤습니다.

**

위 사진 속, 주인공은 아직 그 '넘나드는 존재들의 끈'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래 사진 속에서 어떤 대상을 응시하며 미소지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연결성에 대한 감을 잡았기 때문이죠.

제게는 어떤 긴 영화리뷰보다도 이 두 장의 사진이 의미깊게 남을 것 같아요.

*

오늘 내일 사이로 [Child in Time]의 상영관이 zero가 될 듯 합니다. 혹 못 보시는 분들은 나중에 원작 소설을 읽으시면 되겠네요. 저도 그렇게 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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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물결 일렁임 없는 잔잔함을 사람들은 "온화한 성품"이라 좋게 말하지만,

실은 자기 보호 본능일 수 있죠. 

감정의 진폭이 높아지면, 바로 몸으로 반응이 와서 며칠 손해보니까 스스로 "온화하게" 길들여온 것일지도.

'욱' 했다가 아파서 며칠을 그냥 보냈어요. 그래도1월 8일에 개봉했다는데 더 미루기 싫어서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보러 다녀왔습니다. 



실은 이 페이퍼를 쓰며 영화 제목 처음 제대로 알았네요.  이제야 부제의 의미심장함이 눈에 들어오는 군요. 

"The Rise of Skywalker"

반쪽의 이름으로 존재하던 자가 이름을 찾은, 동시에 이름 부여받은 이야기. 단수인데 실은 복수인 이름. 마찬가지로  Force 역시 단복수를 흐리는 명사이자 동사이겠죠. 



잔병치레 끝물에 보아서 더 이입했던 것일까요? 줄거리야 뭐 예상했던 그대로(영화 씬들에 은근 복선이 널렸습니다) 뻔히 전개되었지만, 전혀 재미와 감동을 상쇄시키지 않았어요. 누군가는 정치적 풍자극이라고 해석하는 [DOGVILLE](2003)을 지극히 사적인 복수극으로 몰입해 보며 쾌감느꼈던 언젠가처럼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역시 우주서사극인데 지극히 개인적 화두로 끌어내려 놓고 보았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 혹은 "부메랑 효과". 


개인에게나, 혹은 사회에서나 "부메랑 효과"에 요새 관심이 꽂혔습니다.


[스타워즈] 이야기하다 "아닌 밤중 홍두깨" 격이지만, 오늘도 호주의 화재가 걱정입니다. 캥거루나 코알라 사진과 함께 재난 스펙테클로 소비되는 모습, 솔직히 불편합니다. 몇년 전 호주가 기후변화대응이 느린(불량한) 나라로 지목되었는데 한국은 그보다 더 낮은 단계로 평가되었다는 기사에 불안해집니다. 

뭉크의 "절규" 배경 하늘의 붉은 빛이, 실은 당대 인도네시아 대화재의 영향을 사실적으로 반영한 것이라는 글을 읽고 "재미" 있었는데, 반성합니다. 결코 호주 하늘의 붉은 빛은 재미있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현시점에 얽혀 있고, 시공간을 엮으며 얽혀있는 문제들이 많기에 걱정입니다. 걱정인형을 끌어안고 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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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아트센터 큐브 미술관을 늦은 오후에 찾았는데, 주차장이 만차 수준이었어요.


 '설마? 에릭 요한슨전 이처럼 인기? 성남시민의 문화적 욕구가 이처럼 뜨겁뜨겁? 1월 2일을 시작으로 고작 3일 지났는데 설마 벌써 입소문이 이렇게나 빠름빠름?'


예, 예측이 맞았더군요. 만차 수준의 주차장 상황은 바로 에릭 요한슨 전의 뜨거운 인기 덕분이었어요. 주말에는 도슨트가 없다는데도 로비가 관람객들로 말 그대로 '바글바글바글'이었습니다. 



저는 예약을 하고 온게 아니어서 현장에서 티케팅했는데요. Early Bird 할인 기분 좋게 받았습니다. 무려 50%에 입장권을 구매했는데 카운터에 여쭈어보니 후에 N차 관람 이벤트가 있다네요. 기존 티켓 가지고 재구매할 경우, "1+1"의 티켓을 얻을 수 있대요. 이날 제가 3장의 티켓을 구매했으니 오케이! 다음 번에 6명까지 커버 되는군요. 여느때라면 티켓을 관람 후 바로 버리는데, 잘 보관해두었습니다.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했을 때보다 입장권이 1000원씩 비싸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의문이 풀렸습니다. 이번 성남전시에서 에릭 요한슨의 2019년 작품을 비롯, 서초동에서 선보이지 못한 작품 7점이 추가로 소개되거든요. 전시장의 마지막 방에서 이 7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한 작품만 소개를 하자면 바로 "내게 시간을 다오 Give me Time"



무거워보이는 회중시계에 묶여 시계의 무게를 이겨내려듯 달리는 이는, 예! 맞습니다. 스웨덴의 환타스틱한 아티스트 에릭 요한슨 그 자신이죠. 저런 시계를 특수제작했을까요? 에릭 요한슨은 자신의 작품 메이킹필름 역시 직접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이 작품, [Give me Time]의 경우 소품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제작과정에 대한 상상은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예술의 전당 전시에서 이미 에릭 요한슨에게 흠뻑 빠지신 팬이라면 이 7작품을 위해서라도 성남 다시 찾을 이유가 확실해집니다. 전시장 곳곳에 관람객들을 위한 포토존도 마련해 놓았기에 에릭 요한슨 특유의 초현실주의적인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인생샷 시도해보기에 충분합니다. 



"Impossible is possible"


불가능을 가능으로! 에릭 요한슨은 아이디어를 캡처해서 상상을 최대한 그럴싸한 이미지로 연출해냅니다. 이미지를 구상하고 사진을 찍고, 포토샵으로 세상 유일무이의 작품을 만들어내지요. 

메이킹 필름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그의 작품제작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https://www.erikjo.com/behindthescenes



사진 속 Daybreaker가 조작하는 새벽을 여는 기계를 에릭 요한슨이 직접 나무틀에 그리고 만들어내더라고요. 


이 놀라운 작품 역시, 놀라운 시도로 현실화시킨 이미지입니다. 작품 속 작은 사람 한 명, 네네, 바로 에릭 요한슨이죠. 나머지는 과연 어떻게? 직접 전시장에서 메이킹 필름으로 확인하세요. 







이 스케치가,

자, 

이런 이미지의 작품으로 거듭났습니다. 


그 많던 전시작 중에 특히 제게는 인상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 역시 인상 깊었습니다. 슈트를 입고, 출근하는 회사형 인간을 연상시키는 이 남성은 오로지 한 개의 풍선을 들었는데요. 바로 아래가 낭떠러지입니다. 사진 속에서 도로표지판에는 "One Balloon P.P"라고 적혀 있거든요. 그 메시지를 충실히 따라 오로지 한 개의 풍선만 들고 발을 내딛는데 과연?


중의적 의미로 저는 보았어요. 제 해석을 이 블로그에 담지 않으려고요. 여기서는 에릭 요한슨이라는 작가가 얼마나 독특하고 생각이 깊은 아티스트인지 탄복하기로만 할게요. 



어제 관람도 무척 좋았지만, 너무나 붐비었던 관계로 저는 N차 관람 시도하렵니다. 

2시 5시 도슨트 시각 맞춰서 재방문 하려해요. 

많은 분들이 성남아트센터 에릭 요한슨 전 찾았으면 좋겠네요. 에릭 요한슨이 성남의 탄천 풍경을 배경으로도 이런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겠지? 있다면 어떤?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왜냐면, 그의 작품을 통해 접한 스웨덴의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서요. 어떤 풍토에서 성장하면 저렇게 상상력의 입구가 아예 만들어진적도 없다는 듯,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대다수 성인들은 상상력 상자에 봉인이 채워진 듯 밍밍하게 사는 데 말이예요. 부러워해야하는 걸까요? 누군가 혹은 시스템에 반해 항변해야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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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1-05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처에 살면서도 에릭 요한슨 작품전이 열리는 줄 몰랐네요. 얄라얄라북사랑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01-07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8 0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1-19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런 페이퍼는 왜 이달의 당선작으로 안뽑아주는거에요?
알라딘
외눈박이 -ㅅ-
 


2019년, 마음이 바쁘다보니 노트북을 떠나기가 불편했던 걸까? 그저 게을렀던 걸까? 공연장 많이 못 찾았다. 12월 31일 마지막 날이기에, 좀 사람 많은 공간에서 놀아보자는 심정으로 혜화동의 "판트스틱전용관"을 찾았다. 전용관이라지만 실은 이 부근 상권이 쇠락해가는지라 바로 옆 건물 1층은 비어있고, 부근 빌딩 상황이 좋아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호기롭게 빌딩 한 층 전체를 전용관 삼았다니 그만큼 퀄리티 보장된 공연이란 뜻일까? 





공연장 찾기 전 궁금해서 다른 선배(?) 관람객들의 리뷰를 살펴보니, 배우에 대한 정보가 없어 아쉬웠다는 평이 많다. 12월 31일 석정홀딩스빌딩 4층에서 라이브로 펼쳐진 공연의 팜플렛에도 배우들의 실명을 찾을 수 없다. 궁금하면 못 참는다. 검색하다보니, 이 공연 워낙 전국 방방곡곡에서 오랫동안 공연되어 온지라 배우들이 계속 바뀐다. 

마찬가지로 인근에 전용관을 확보하고 롱런공연 중인 "사랑하면 춤을 춰라"가 배우들을 아이돌화하여, 배우들 사인이 들어간 굿즈등을 판매하는 것과 사뭇 다른 전략이다. 




배우가 궁금하다는 것은, 그 만큼 배우들이 열연했다는 뜻일 테다. "국악" 뮤지컬을 표방하는 작품인 만큼, 해금, 가야금도 등장하고 심지어 사물놀이용 징이나 꽹과리도 동원된다. 한국무용 살짝, 비보잉 살짝, 살짝 살짝 춤 사위도 등장한다. 

창으로 "오빤 강남 스타일"하고 노래도 부른다. 성실한 배우들이 온 노력으로 작품의 빈틈을 메우는구나하는 생각에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음향 조율이 안 된 건지, 너무 소리가 커서 정작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는 부분에서 대사 전달력이 떨어졌다. 

무대 전환의 속도나 진행, 무대 공간 활용, 

줄거리.

예전에 이 작품이 인기를 끌었을 10년전쯤, 아니 7~8년 전쯤의 모양새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고민을 좀 더 했더라면, 좀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을텐데.


2020년을 하루 앞 둔 마당에, 1990년대 풍의 공연이라니, 놀라웠지만 더욱 놀라운 점은 관객들이 진심으로 즐기고 좋아하는 듯 보였다는 점이다. 엉덩이를 부채로 툭 치고, 막대기로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치고, 상대의 모자를 통통 두드리며 도발하는 그 간단한 제스처가 수십회나, 80분 동안 수십 회나 반복되는 데도 반응이 뜨거웠다. 


다시 말하지만,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다. 

해금불던 배우는 관객 대부분에게 생소했을 해금의 소리를 제대로 들려주었고

까불이 캐릭터로 등장한 배우(구글링으로 사진 스캔 해보니 오래 이 작품에 출연중인 듯 하다), 

창을 담당하던 체구 작은 배우(이분은 무용 전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노래보다 춤이 아주 좋았다)

등등

배우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 박수 열심히 치고 왔습니다. 


"환타스틱"이 2020년형 공연으로 거듭 성장하기 위한, 디테일과 줄기 모두 변화가 필요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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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홀릭 2020-01-02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두번 봤어요 전용관이 혜화로 옮겼군요 스토리는 좀 약하지만 보는 동안 유쾌했어요

얄라알라 2020-01-03 13:04   좋아요 1 | URL
사랑하면 춤을 춰라
도 맞은편 부근에 전용관에서 공연되는데
요건 좀 더 성인 취향에 춤이 전문적이에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스쳔 베일을 보러 새벽 극장을 찾았습니다. [겨울왕국2] 스크린 독점관련 문제제기 덕분일까요? [Ford vs Ferrari] 상영회차가 상당합니다.  새벽인데 상영관 좌석이 5-60%는 차 있습니다. 

읽을 수 있는 언어는 한국어 영어 뿐이지만 웹서핑해보니 [포드 vs 페라리], 해외에서도 호평 일색입니다. 하기야, 크리스천 베일이 주연인데요. 그는 연기를 위해 '고무줄 몸무게'의 리스크를 안고가며 캐릭터와 하나 되는 노력으로 유명하지만, 그 이상입니다. [Vice]의 딕 체니 캐릭터를 분석하며 딕 체니가 자주 쓰는 어휘를 적은 노트를 들고 다니며 입에 착착 그 말들이 붙도록 노력했다는데요. 이번 [포드 vs 페라리]를 찍으며 물론 카레이싱을 따로 배웠죠.  까다롭고도 무뚝뚝한 Ken Miles 캐릭터 표현을 위해, 입을 앞으로 돌출시켜 "나 불만있다. 그래서?"의 표정을 반영구화장처럼 입었네요. 


[이퀼리브리엄]에서 반해서, 그의 영화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의 인터뷰 동영상을 샅샅이 뒤지며 "크리스천 베일" 조각 모으기를 했었지요. 그는 캐릭터 연구가 재미있다고 합니다. 자료가 없으면 아무리 문필력이 좋아도 쥐어짜 쓸거리가 없듯,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없이는 아무리 연기경험 많은 배우일지라도 연기에 실패할 것 같아요. 이런 연기의 신, 크리스천 베일을 알아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참 다행입니다. 


[포드 vs 페라리] 관람 포인트를 짚어주는 유투버들이 많더라고요. 더분에, 르망 경주의 의의, 귀족 스포츠로서 카레이싱의 역사, 레이싱을 두고 유럽과 미국의 자존심 대결이 어떤 맥락에서 일어났는지 등등 배웠어요. 하지만 저는 애시당초 오로지 크리스천 베일을 보러 극장 찾았기에, 계속 이 배우만 생각합니다. 



 [포드 vs 페라리]에서 켄 마일스(크리스천 베일)은 [Le Grand Bleu]의 주인공 자끄를 연상시킵니다. 그 둘 모두, 세속의 평범한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어떤 경지, 어떤 조우의 순간들을 만끽합니다. 언어화할 수 없는. 언어로써 타인에게 전할 수도 없는 황홀감. 초월감. 

비록 켄 마일스는 고도로 정교한 Machine이라는 매체를 통해 "7000RPM"으로 상징되는 일상성을 넘어버리고, 자끄는 광활한 바다에서 돌고래를 통해 다른 생명종의 세계와 만나지만 말입니다. 아, 또 차이가 있습니다. 자끄는 그 초월감에서 느끼는 편안함에 끌려서 현실의 끈을 놔 버리지만 켄 마일스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르망 경주 결승선 끊는 시점에서의 그의 타협(?)은 켄 마일스가 세속의 규범들에 전적으로 냉소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니까요. 




[Ford vs Ferrari]에서의 크리스천 베일은 서부영화 [투 유마 3:10]에서의 댄 에반스와 일관된 속성을 보여줍니다. 

세속의 가치에 연연하지 않는 어떤 뚝심 고집, 고결하기까지 한 약속 지킴. 알고보니 두 영화의 감독이 같아요. 

제임스 맨골드입니다. 켄 마일스는 GT40개발을 위해 무려 1000시간의 시승을 했다하고, [투 유마 3:10]에서 댄 에반스는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사명을 목숨을 걸고 묵묵히 수행합니다. 두 주인공 모두 한 순간, 사라지죠. 허망하게 죽어요. 그런데 어떤 전기를 읽었을 때만큼이나 감동이 강렬합니다. Pale Blue Dot, 지구 위에서 스티브 잡스건 마르크스건 마릴린 먼로건 모두 하나의 더 작은 점이라면 이왕 찍고 가는 거 온점, 찌~진찐하게 찍고 가는. 조용히 찐하게 찍고 가는 모습.

 자크처럼 돌고래를 따라 저 세계로 건너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점을 꾹 눌러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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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9-12-29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완전히 크리스천 베일 때문에 봤어요!!!!!!!!!!!!! 영화 너무 좋았어요!!!!!ㅠㅠ 그런데 님의 글을 읽어보니 제가 모르던 것도 알게 되었어요.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건 생각을 안하고 켄 마일즈만 검색을 해서 읽고 그랬거든요. 지금도 영화에서 제가 좋아했던 크리스천 베일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였어요!!

2019-12-29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