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두더지의 딱 한 가지 소원 푸른숲 새싹 도서관 25
비키 콘리 지음, 엘렌 매지슨 그림, 양병헌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벽 새소리가 샤워기 물줄기처럼 시원하게 아래로 쏟아진다는 걸, 이렇게나 한참 어른이 되서야 알다니! 매일매일 지져귀며 새벽 커튼을 열어주었을 새들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새들의 황홀한 소리에 04시 40분 쯤 잠에서 깼던 날 새벽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이 경험때문일까, 나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미치도록 부러워하는 가시 두더지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그림책 [가시 두더지의 딱 한 가지 소원]에서 두더지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다. 적어도 노래 비슷한 소리라도 한 번 내고 싶어했다. 노래 부르고 싶은 열망이 강할 만큼, 새들의 노래를 귀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들었다. 공기를 잔뜩 들여마셨다가 내뱉으며 어떤 소리라도 내보려 안간 노력을 기울였다.



무대에서 추고 싶어서, 현란한 춤사위가 그리는 물결들을 단 한 줄도 놓치지 않을새라 뚫어지게 바라보며 뇌에 입력시켰던 시기가 있었다. 따라 그리기도 했고, 기록하기도 했다. 무대 아래에서..... 그러니, 나무 아래에서 노래하는 새들을 동경하며 올려다보는 두더지의 간절함을 어찌 모르리.



간절히 원해도 달은 커녕, 달 그림자 조차 만져보기 어려운 처지라면 마음이 비뚤어질만도 한데, 두더지는 그러지 않았다. 소리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새와 동물들의 합창 연습에서 소외되었지만 마음 비뚤게 쓰지 않았다. 대신 응원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구경했다. 그런 정성이 통했던 것일까? 가시 두더지가 자신의 가시를 유용하게 쓸 기회가 왔다. 지휘봉으로 썼다. 비록 성대 밖으로 소리를 빼내지는 못하지만, 귀에 담아내는 소리들을 어우러지게 지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HURRAY!



감출 길 없이 "어른"의 뻣뻣함(혹은 경직된 사고)로 그림책과 만나지만, 그래도 사는 데 필요한 지혜는 아이 어른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 진정 원한다면 욕심을 비워라. 계속 갈구하라. 준비하라. 자기 충족적 희망보다는 타인에게도 이로울 수 있는 꿈꾸면 더 보람도 크다.

어른 눈높이의 해석이라서 딱딱한 교훈만 뽑아내려 들었나보다. 다른 이유로 [가시 두더지의 딱 한가지 소원]을 권해본다. 일러스트레이션이 아름답다. 자연의 유선형과 파스텔톤을 담아낸 그림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실제 저자 비키 콘리는 그림책의 맨 앞장에서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사하도록 도와준 실비아, 팝, 핀, 아누에게"라고 적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주 작고 슬픈 팩트 라임 그림 동화 23
조너 윈터 지음, 피트 오즈월드 그림, 양병헌 옮김 / 라임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Gerd Alatman / CC0



"팩트," "팩트 체커," "팩폭(팩트폭력)"

이 단어가 영어사전에서 내려와 일상용어가 된지 한참인 듯 싶다. 특히 JTBC의 "팩트체크"를 비롯, 각종 미디어 채널에서 팩트 검증을 일상화하다보니, 어린이들도 "팩트"란 단어를 많이 쓴다. 그래도 그림책 제목까지 꿰찰 위상인줄은 몰랐다. 제목이 [아주 작고 슬픈 FACT]이다. 이 "FACT" 앞에 붙은 형용사가 의아하다. 팩트는 언제라도 힘이 지니지 않는가? 거짓, 가짜 뉴스 따위를 압도해버리는 진실의 힘이라고 배웠는데, 왜 팩트가 작고 슬플다고 할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람들이 FACT를 FACT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덮어버리기까지 한다. [아주 작고 슬픈 FACT]에서는 사람들이 FACT를 땅 속 깊숙히 묻어 버리는 설정을 제시했다.


팩트는 슬펐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꼈다. 그러나 비록 땅 속에 묻혀 세상에 얼굴 내밀 기회를 차단당했더라도, 땅 속에서 연대할 팩트들을 만났다. 진실을 이렇게 묻어버릴 수는 없어! 힘을 합하여 소리를 크게 내자 갇혔던 상자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FACT를 꽁꽁 묻어버렸듯, 또 다른 누군가는 꽁꼼 숨긴 FACT만을 찾아다닌다. 그림책에서는 "팩트 수색대"라고 이름붙여 주었다.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 팩트 수색대의 노력 덕분에 팩트들은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물론, 먼저 가짜 팩트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도 배웠겠지만.




팩트들을 존중하고 관심 가져줄 때, 거짓뉴스들에 전염병처럼 퍼지며 주인행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팩트인지를 알고 구별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다. 사실 팩트를 팩트로 구성하는 이면의 힘에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어린이 수준에서는 일단 거짓말에 휘둘리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기!

진실은폐와 진실추구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를 [아주 작고 슬픈 FACT]는 귀여운 '팩트' 아이콘들과 경쾌한 컬러감으로 쉽게 풀어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만해 보이지만 만만하지 않은 푸른숲 새싹 도서관 26
줄리아 사그라몰라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녕하세요? 어떻게들 지내시나요? 코로나 19 팬데믹의 이렇게 오래 갈 줄 몰랐던 건 저뿐 아닐 테죠? 의료 지식과 기술이 없으니 아픈 이들을 도울 엄두는 못 내겠고, '사회적 거리' 지키기라도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코로나 방역에 작은 힘을 보태왔어요. 이런 힘들이 모이면 인류가 코로나 숙주로 도장찍히기를 거부하며, 바다로 휴가도 가고 아이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갈 줄 알았죠. 아니었네요. 코로나는 여전히 진행현인데다가 엎친 데 덮쳐서 중국에서는 돼지독감에 흑사병 사례가 보고되잖아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니 많이들 힘드시죠? Corona Blues에 더해, 심지어 "심리 방역"이라는 용어가 공중파 뉴스에서 인용되더라고요. 인구의 상당비율이 코로나로 인한 사회관계의 변화로 우울감을 느끼며, 앞으로 이것이 사회문제화될 거라는 경고였죠.


[만만해 보이지만 만만하지 않은]을 소개하려다가 이야기가 코로나 샛길로 한참 갔네요. 이 귀여운 그림책 어느 페이지에서도 '우울,' 'Blues,' '근심, 걱정' 등의 단어가 등장하진 않아요. 대신 작가 줄리아 사그라몰라(Giulia Sagramola)는 어른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들을 "만만해 보이지만 만만하지 않은" 무언가로 형상화했지요. 그림책에서는 시커먼 선 뭉치로 표현했어요.




질기게 계속 따라다니는 만만하지 않은 요 녀석은 집에서 숙제할 때도, 병원에서 접수하며 대기할 때도, 심지어 학교 수업받을 때도 계속 따라다녀요. 떼어 낼 수가 없나봐요. 게다가 나만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 단짝 친구도 낯선 어른들도 따라다니네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만만해 보이지만 성가스럽고 만만하지 않은 것을 못본 채 할까요? 무서워서 그냥 은둔할까요? 이 그림책의 주인공은 대범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바로 공생이지요. 마치 인류가 바이러스 박멸이 불가능한 상황(사실 바이러스는 인류 생존에 큰 기여를 합니다)이라면 어떻게해서 전략적으로 현명하게 공존할까를 고민하듯이요.



내내 질기게 따라다니던 그 성가스러운 존재를 잘 어르고 달래서 깜찍한 헤어밴드로 변형시켜낸 소녀의 유연한 대응이 놀라워요. 기특하고요. 배우고 싶습니다. 마음이 무겁게 하는 문제에 짓눌려 있는 어른들에게 특히 필요한 지혜가 아닌가 합니다. [만만해보이지만 만만하지 않은]은 어려운 심리치료 용어 하나 쓰지 않고도,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고마운 그림책이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igsticks and Harold and the Incredible Journey: Candlewick Sparks (Paperback)
Milway, Alex / Candlewick Press (MA)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로 공공도서관도 임시 휴관하고, 평소 자주 찾던 미술관이며 극장 가기도 꺼려지는 요즘, 책이 가장 큰 오락거리입니다. 누군가가 도서관 반납카트에 올려놓은 책을 덥썩 집어왔는데 Nice Choice! "incredible"여행이라는 부제처럼, 재미있기가 Incredible합니다.  첫 권 읽자마자 바로 다음 권들을 도서관 희망도서에 신청해놓았습니다. 


유투브 검색해보니 작가 Alex Milway는 젊은이군요. 작가가 투영되어 있는지, 이 시리즈의 두 주인공, 돼지 Pigsticks과 햄스터Harold 역시 젊은 혈기에 넘치는 캐릭터입니다. 


엉뚱하고 충동적이지만 실행력 있는 주인(고용주) Pigsticks와 약간 아둔하지만 충실한 부하(짐꾼) Harold라는 짝패는 [돈키호테]등 많은 문학작품에서 보아온 조합입니다. 익숙한데도 전혀 진부하지가 않네요. 


우선 여행의 동기면에서 차별됩니다. 

Pigsticks는 혈통있는 집안 출신인데, 업적을 세웠던 조상들과 달리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조상들을 넘어서는 위대한 성취를 이루고자 도전거리를 모색하던 중 '모험가'로서 'the End of the World'에 닿아보고자 결심합니다.  '살아 돌아옴'으로써 조상보다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생각했죠.(맞아요! 생존 자체가 최고의 성과입니다!) 조상님은 모험에서 살아오지 못했거든요. 문제는, 모험가기 위해 필요한 엄청난 짐들을 대신 날라줄 수행원이 필요데요, 많은 후보자를 인터뷰해봤지만 흡족하지 않습니다. 그냥 단독 모험가로 출발하기로 결심한 Pigsticks앞에, 햄스터가 나타났습니다. 힘도 세고 정직한 Harold입니다.




정작 모험의 동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고 일상을 살고 싶어하는 Harold를 거의 반 강제 설득한 Pigsticks은 Harold에게 배낭을 짊어매게 합니다. 케이크 1개, 2개, 나중에는 3개로 늘려, 협상을 잽싸게 마무리했거든요. 이쯤해서 불공정에 예민한 독자라면 살짝 기분이 안 좋아지는데요. 


예를 들어


맨 몸으로 가볍게 달랑달랑 걸음을 옮기는 Pigsticks가 너무 재밌고 신이 나서 숨이 안 쉬어진다고 할 때, 그의 짐을 다 짊어진 짐꾼 Harold 역시 숨쉬기 어려워하는데요. 다른 이유에서 입니다. 정글의 아나콘다에게 몸통죄임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장면, 상상이 되시나요?


"This is wonderful!" said Pigsticks. "I can hardly breathe for all the fun I'm having"


Harold was also struggling to breathe, but he wasn't having quite so much fun.


본문 34쪽




여행이라고는 해변 놀러가 본게 전부인 햄스터 Harold가 정글을 통과하고, 사막을 건너 높은 산에 오르려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무지막지하게 무거운 짐까지 지고요. 힘들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Harold에게  Pigsticks는 "임무 완수 후 케이크"로 꼬셔댑니다. 슬슬 화가 치미네요. 요거 이기적 얌체 캐릭터 아냐?



다행히, 주인공 Pigsticks도 그렇게 몰염치한 캐릭터가 아님을 알게해주는 씬이 등장합니다. 굶주린 염소 한 떼에 둘러쌓여 있는 위기의 순간, Pigsticks가 Harold를 들러 엎고 날쌔게 달려 도망치는 씬이 바로 그것이지요. 아, 돼지가 햄스터에세 의리를 보이는구나! 하지만 효력은 없었어요. 염소들은 너무나 배가 고파서 끝까지 이 두 초짜 모험가를 따라 왔거든요. 


마지막 페이지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보여주듯 두 모험가는 안전하게 마을로 돌아왔어요. 줄거리는 사실상, 별 새로울 내용 없는데, 이 책이 정말 재미있는 이유는, 대사의 묘미가 있어요. 드러내놓지 않고 웃기거든요. 시리즈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직접 읽어봐야 은근히 웃긴, 그 대사의 맛을 느끼실 수 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 흠 찾기는 쉬운데, 제 흠은 안 보였나 보다. 

[아키시]라는 그래픽 노블을 집에 들여와서, 휘리릭 맛 보기를 하면서 '아프리카의 가난, 인권 그런 얘기겠구나' 속단했다.

한 방 제대로 먹었다. 아키시는 밝디 밝고 귀여운 아이이며, 주인공의 이름을 그대로 딴 이 그래픽 노블은 자연스러운 일상, 어린이다운 상상, 독특한 아프리카식 유머가 가득했다. 한 마디로, 유쾌한 작품이었다.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삶에 지친,' '소외된' 그런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는데!

"아프리카"를 뭉뚱그려 '검은 대륙,' '고통, 가난, 지체,' 등의 이미지로 타자화시켜온 그 숱한 시선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 안의 통제 안된 편견이 그냥 치고 올라왔을 때, 나는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도 고개 숙여 사과하는 한 방식이다. 



아키시의 저자, 마르그리트 아브에는 서아프리카 코르디부아르 태생이다. 열두 살에 파리로 와서 유학 생활을 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요푸공의 아야>로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수상했고, <아키시>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았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이야기의 배경은 서아프리카이며, 주인공 역시 아프리카 소녀인데 보통 깜찍하지가 않다.

족히 천 권 이상 그림책을 보아왔다고 자부하는데도 <아키시>처럼 독특한 개성의 책은 처음 만나본다. 어쩌면 내가 무지해서 미처 상상 못 해본 세계의 이야기인지라 새로운 것인데, 마치 작품 자체가 무척 개성적인 것처럼 돌려 말하는지도 모른다. 아키시는 그냥 귀여운 소녀, 친구 욕심 많고 칭찬받고 싶고 대장 되고 싶은 아이인데, 나는 자꾸 '아프리카 소녀'를 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유난히도 '주술'로서 불임을 치료하는 장면이나, 말라리아를 앓다가 꾼 꿈을 판타지 영화처럼 풀어낸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것을 보면 나는 <아키시>에서 이국적인 것, 내 경험 세계에서 흔히 보지 못한 것들만 보려 하고 또 찾아낸지도 모르겠다. 반성한 척하면서 일도 반성하지 않은 것이다. 

그나저나 이런 사랑스러운 아이의 이야기는 혼자 보기 아깝다. 나 같은 어른보다도 아키시 또래의 어린아이들이 많이 찾아주었으면 한다. 작가 마르그리트 아부에가 어린 시절 대륙을 건너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면서도 작가의 꿈을 꾸고 또 실현한 점도 진심 응원한다. 아키시의 다른 시리즈를 찾아 읽는 것으로 응원을 행동으로 보여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