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운동이라고는 (+ 마라톤이라는 희미한 추억을 뒤로 한 채) 걷기만 하는 나의 입에 담을 단어는 아닌 듯한데, 소위 "테니스 엘보우"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테니스 라켓은커녕 파리채 한 번 휘두른 적 없이 팔꿈치를 귀하게 모셔 주었건만, 웬 통증이 이리 지독한가? 샤브샤브 야채 가위질과 양치질할 때 비명이 절로 나오더라. 외투에 팔을 넣을 때도 비명을 삼킨다. 아픈 이유가 궁금해서 기억을 뒤져봤자, 가끔 4~5시간씩 소파에 널브러져 핸드폰과 노느라 팔목과 팔꿈치를 지지대 삼은 정도? 그런데도 '테니스 엘보우' 통증이라니, 매우 부끄럽다. 엄살 부려서 더 부끄러운데, 매일 물리치료 받고 약 처방도 한 달 치나 받았다.


문제는, 




커피 머그잔도 왼손으로 받들어 양손으로 드는 처지에, 이 많은 책들을 한 번에 들고 왔다는 것이다. 처음엔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만 빌릴 계획으로 도서관을 찾았다. 그러나....언제나 그랬듯이, 새 책 앞에 선 나는 황홀한 기대감에 팔꿈치 통증 따위는 홀딱 잊었다. 대출가능 최대치로 꽉꽉 채워 빌리고는 흐뭇해서 비실비실 웃음이 나오는 걸 숨기며 도서관에서 걸어 나왔다. 지금 이 녀석들은 내 집 서가에 자리잡았는데, 막상 앉혀놓고 보니 이 녀석들을 들고 온 사람, 참 우악스럽게 힘자랑 했지 싶다. 한 팔로 들고 올 수 있는 분량이 아니다.

*

이건 마치, 뭐랄까, 제 자식이기 때문에 20킬로가 넘는 어린이도 번쩍 안아올릴 수 있는 엄마의 괴력에 비유할까? 팔꿈치가 그렇게 아팠는데도 번쩍 이 녀석들을 업어 온 나는 뭔가... 안 읽은 새로운 책들을 보면 가슴이 설레고, 더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올라오는 나는 뭔가... 물리치료나 받으러 가자. 



댓글(21)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oolcat329 2023-02-07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책들 본 순간 엘보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나보네요.
저희집에 테니스 광이 있어서 그 고질병을 잘 아는데 얼른 나으시길 바랍니다.

얄라알라 2023-02-08 00:20   좋아요 1 | URL
네, coolcat님.
‘고질병‘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 흑..^^:;;
저도 가볍게 생각했다가
만성통증이라는 의사 선생님 설명 듣고 당황했어요.

감사드립니다. 얼렁 통증 줄일 수 있도록 당분간 스마트폰을 적게 해야겠습니다 ㅎ

레삭매냐 2023-02-07 1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역시 책쟁이들의
책에 대한 욕심이란.

저도 책 대출 한도가 꽉
차 버렸답니다. 반납해야
하는데 말이죠...

얄라알라 2023-02-08 00:19   좋아요 2 | URL
꽉찬 대출 권수에서 한 권씩 반납하며 숫자 낮춰나갈 때의 쾌감...

그 역시 책쟁이들이 아는, 즐기는!

레삭매냐님의 책 욕심에 비하면 저는 찍 소리도 못합니다요!^^

다락방 2023-02-07 1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걸 다 어떻게 들고 오신 거에요 ㅠㅠ (방금 서점에서 책 사서 백팩에 책 8권 있는 사람)

얄라알라 2023-02-08 00:10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8권..새책으로 8권...
다락방님의 8권 두께가 어쩌면 13권 두께일지도..

백팩이 남아나셨나요?^^;;;;
저는 알라딘에서 얼마전 ‘짐 많은?? 책 많이 나르는??˝ 요런 문구로 굳즈 판매할 때 아주 큼지막한 가방 하나 사서, 요긴하게 쓰지만 그 가방도 많아야 10권 수용인 듯 합니다. 욕심이 가방 솔기 튿어지게 할까봐 조심조심하지만 조만간 솔기 터질 것 같습니다 ㅎ

그렇게혜윰 2023-02-07 20: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테니스엘보는 안 써야 낫는다던데요 ㅠㅠ 전 어제 당근으로 엄마책 받아왔는데 19권.....20분 걷는데 곡소리 날 뻔요 ㅠㅠ

얄라알라 2023-02-08 00:11   좋아요 1 | URL
ㅎㅎㅎ20분..19권...아, 그러실만 합니다....어깨에 멍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그러시다가 어깨 멍 드실 것 같아요. 살살, 조금씩 읽으시어요(라고 말씀드리기엔, 제 이 포스팅이 떳떳하지 않네요 ㅎㅎ)

그렇게혜윰 2023-02-08 08:34   좋아요 0 | URL
전 끌어안고 왔어요! 어깨에 메고 오신 거예요? 😭

건수하 2023-02-07 2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마트폰 엘보도 있다더라고요… 저도 코로나 시절 삼시세끼하며 왔는데 오래갔답니다. 지금도 무리하면 아프구요.. 얄라알라님, 치료 잘 받으셔요!

얄라알라 2023-02-08 00:13   좋아요 2 | URL
ㅎㅎ수하님, 저 아까 걷다가 폰으로 수하님 댓글 확인하고 순간 걸음 멈춘 것 있죠 ㅎㅎ바로 답글 쓰고 싶어서 ㅎ

수하님께서 일깨워주신 그대로, 저는 ‘스마트폰 엘보‘입니다. 요 2~3달 사이에,‘무비어퍼컷‘이라는 유투버의 모든 동영상을 단 하나도 안 빼놓고 다 보았거든요^^;;;;;;


수하님께서도 엘보 통증에서 벗어나시길요.
감사합니다.

singri 2023-02-07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부림은 언제나 옳긴하지만 ;;
잘 나으시길.

얄라알라 2023-02-08 00:18   좋아요 0 | URL
singri님 감사합니다.

명함 내밀기도 부끄러운 통증으로 야단을 떠는 저를 반성하고 있었어요. 조금이지만, 통증을 느끼니 다른 분들의 행동반경이나 움직임에 좀 관심이 생기더라고요...안 아플 땐 별 생각 없이 살다가요...

근데 ˝책부림˝이라는 말 좋은데요^^ 언제나 옳습니다 ㅎ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은오 2023-02-08 05: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얄라님 옆으로 누우셔서 팔꿈치와 팔을 모두 소파에 붙이세요!!! 자세가 중요합니다. 얄라님 팔 소중해....😭 - 와식인간 은오 올림

얄라알라 2023-02-09 17:24   좋아요 0 | URL
그러잖아도 최근 겨울호랑이님이셨던 것 같은데, 전라도 화순 와불 사진 올려주셔서 유심히 보았더랬어요 ㅎㅎ
와식이 중요한 거군요^^

와식인...이 단어 아주 맘에 드는걸요^^

독서괭 2023-02-08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아… 앞으로는 도서관 가실 때 백팩을 준비하시는 건 어떨지요? 안 써야 낫는다고 하니ㅠㅠ 어서 나으셔서 더 많이 들고오시길 빕니다 ㅎㅎ

얄라알라 2023-02-09 17:23   좋아요 0 | URL
누군가 그러시더군요. 책욕심 많은 사람은 아예 가방을 큰 거 사지 않도록, 원천 봉쇄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제가 알라딘 굳즈로 나온 대형 캔버스 백을 산 후에 한 쪽 어깨가 찌그러지려 합니다 ㅎㅎ

근데 더 많이 들고오라고요?^^ ㅎㅎ독서괭님의 애정어린 응원에 저, 힘자랑 조만간 하겠습니다. ㅋ

고양이라디오 2023-02-09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한도가 몇 권입니까 ㅎㄷㄷ

팔꿈치 조심하시고ㅠ 얄라님 글과 댓글들을 보니 저도 어서 책 읽고 싶네요!ㅎㅎ

얄라알라 2023-02-09 17:24   좋아요 1 | URL
이름을 빌려쓰고 있습니다. 제 욕심을 제 이름으로만 다 채우지 못합니다^^;;;;ㅋㅋ

2023-02-09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0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언플래트닝 Unflattening]

온라인 친구분의 책 곳간에서 소개받은 후, 시간차를 두고 두 번 읽었습니다.

매우 놀랍게도 저자 닉 수재니스(Nick Sousanis)는 이 만화 형식의 논문으로 컬럼비아 대학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생각하는 방식, 제도권에서 학문하고 학위로 인정하는 방식, 텍스트와 시각 우위로 위계 세우는 방식 등등에 도전하는 비주류의 시도가 'PhD dissertation'으로 인정받았다니, 솔직히 충격입니다. 그 과정에 관여하고 협업한 많은 이들의 유연성에도 감탄합니다. 




저자는 현재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수이자 인정받는 예술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https://spinweaveandcut.com/

닉 수제니스는, 이름뿐인 "융합"조차도 잘 팔리는 한국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언플래트닝" 융합을 보여줍니다. 번역자 배충효는 "Unflattening"을 "입체화"로 옮겼는데, 저는  "Unflattening"은 예측 가능하고 단조로운 평면성과 이분적 사고를 극복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용어는, 2차원 평면공간을 배경으로 한 소설 [플랫랜드 Flatland](1984)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 같습니다.



 











모든 작품이 그러하지만, [언플래트닝]은 특히나 더 직접 책장을 넘겨 보셔야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본문 외, "작가노트"와 "참고문헌"을 샅샅이 훑으며 행복했습니다.

세상 해석하는 방식이 독창적이고 다름을 밀어내지 않고 부드럽게 포용하는 어른을 만나면 항상, '당신은 어떤 환경에서, 무엇(누구)의 영향받으며 자랐나요?' 이 질문이 떠오릅니다. 쉬운 말로, '엄마아빠가 어떤 분이세요?'


그 궁금증이 [언플래트닝] "작가노트"를 읽으며 상당히  해소되었거든요. 작가노트에는 저자의 형아, 엄마, 아빠가, 등장한답니다. 저자의 아버지 역시 제도권 교육현장에서 혁신적 방식으로 교육하려 고군분투하셨던 분이고, 어머니도 평범하신 분은 아닐 겁니다. 닉 수제니스가 그린 배는, 부모님이 직접 나무를 깎아 만드신 카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하니까요. 형아 존 수재니스 역시 어린이 닉에게 '원더랜드'급 상상력을 키워준 짝꿍입니다. 


[언플래트닝]

마지막에는 3페이지에 걸쳐 스케치가 담겨 있습니다. 본격 집필 전, 전체적인 구상을 했던 흔적인가 봅니다. 텍스트와 길게 나열된 인용에서 권위를 얻는 기존 방식과 얼마나 구별되게 박사 논문을 구상하고, 실물로 완성해냈는지 추정하게 해줍니다. 

이 소중한 책을 알게 해준 온라인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2-12-15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읽고 싶네요!! 멋지다!! 마지막 올려주신 스케치는 우리 막내 생각이 나네요. 좀 과장해서.^^;;;

얄라알라 2022-12-15 23:24   좋아요 0 | URL
^^ 아! 라로님, 저는 라로님의 자제분께 ˝엄마아빠가 어떤 분이세요?˝ 묻지 않아도 되겠네요.
라로님께서 길러내신 어머니이시니까요.

전 그림을 안 그려봤고, 그래서 못 그리기 때문에 더욱더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질투나게 부럽습니다^^;

서니데이 2022-12-15 1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얄라알라님, 알라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12-19 11:2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저는 북플마니아는 아니고, 서재의 달인에 뽑아주셨어요.
이렇게나 저렇게나 모두 감사드릴 일이지요. 덕분입니다. 서니데이님께서도 꾸준히 포스팅 쉼 없이 올리시는 와중에 이웃님들 살뜰하게 챙겨주셨으니 북플 마을을 따뜻하게 한 공로상도 받으셨음 좋겠네요^^

해피 월요일 보내세요

서곡 2022-12-15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 이 책 읽었어요 전자책으로 봤습니다 꼼꼼하게 읽지는 못 했는데 쓰신 글 참고해야겠습니다!

얄라알라 2022-12-19 11:24   좋아요 1 | URL
네, 서곡님께서도 이미 접하셨군요. 전반부에 참신함에 ˝홀리듯˝ 읽다가, 후반부는 약간 김이 빠지는 느낌을 두 번 리딩할 때마다 느꼈지만, 그래도 놀랍고도 놀라운 시도라 평가하고 싶어요^^

다음에 또 읽으신다니 좋습니다요^^

겨울호랑이 2022-12-15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얄라님 2022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선정 축하드려요. 항상 좋은 글과 따뜻한 답글로 지난 한 해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연말연시 보내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

얄라알라 2022-12-19 11:23   좋아요 1 | URL
^^ 겨울 호랑이님, 서재를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추운 겨울 실감하게 하는 날씨인데 건강 유의하시고
내년에도 자주 서재 들락날락 하겠습니다. ^^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transient-guest 2022-12-16 0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2년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논문을 만화형식으로 출간하고 학위를 받았다니 꿈처럼 들리네요. 세상이 계속 바뀌고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얄라알라 2022-12-19 11: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transient님,
저 책에 담긴 활자를 타이핑 하면 A4 몇 페이지나 나올까? 생각하며 읽었는데, 짧은 글에 이처럼 심오한 생각들을 녹여냈다는 게, 그 작업을 혼자 했다는게 참 놀라웠어요.

지도교수와 커미티의 개방성에도 놀랐고요^^

transient님도 축하드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자마 파티에 동생들을 초대했더니, 짐채만한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 왔서 놀랬더라는 지인의 말에 함께 웃었다.

좋아하는 건, 무거워도 무겁지 않은 법이다. 

2리터 생수 6개 묶음에 휘청하는 엄마가, 12kg 아가를 가뿐하게 안아 올리듯, 

나는 책 더미를 안아 들고 산에 오른다. 

무겁지 않다(고 세뇌한다). 하긴 맥주 6캔이었던들, 안 무겁다 했겠지? 

*



브루노 라투르 [실험실 생활: 과학적 사실의 구성]

레슬리 컨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 등등.

이번에 초대한 책들은 하나같이 가볍지 않다. 

[바디 멀티플]이 가장 반가운 책이지만, 산을 내려오도록 어떤 책부터 읽을지 마음을 정하진 못했다. 



왜냐하면....


[Born into my grandmother]

[우리는 셀크남]

[아기가 태어나면]

[How to prevent the next pandemic]

을 이미 나란히 읽고 있기 때문이다....

책 욕심도 독이 될 수 있다고 빨간 버섯이 혀를 멜롱 내민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ini74 2022-07-25 1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좋아하는건 무거워도 무겁지않자요 공감합니다 ㅎㅎ 앗 숲모기도 조심하세요 알라님 진짜 독하더라고요 ㅠㅠ

얄라알라 2022-07-26 16:58   좋아요 2 | URL
아. 맞아요. 숲 모기가 바지를 뚫고 들어온다고 최근 알라딘 서재 댓글에서 보았어요. 신발도 뚫고 들어오죠~

좋아하는 건 무거워도 무겁지 않고
좋아하는 책은 종일 봐도 피곤하지 않고...

그레이스 2022-07-25 11: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빨간 버섯, 왠지 무섭네요! ㅎㅎ
제가 첫아이 안고 있는것 보시고 쌀 한자루 주고 가져가라하면 가져가겠냐고... 자식이니까 안고 가는거지! 하신 엄마 말씀이 생각 납니다.
책 더미와 맥주...ㅋㅋ

얄라알라 2022-07-26 16:59   좋아요 2 | URL
쌀 한자루 들라면 들겠냐...ㅋㅋ
이 말씀 아주 귀에 윙윙, 많이 들어본 기분인데요^^

복날 보양식보다는 맥주가 땡깁니다

그레이스님 시원한 오후 보내시고 계시길
 


유토피안 미래를 보여주는 영화, 뭐가 있을까요? 0.001%의 '호모 데우스'가 화성을 식민화하고 99.999 % 호모 사피엔스들은 [메트릭스]의 배양기 안에서, 스크린을 두드리며 도파민을 얻는 미래? 왜 온통 음울한 상상뿐일까요? 영화나 소설뿐만 아닙니다. 어린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환경 교육' 과잉 부작용인지, 지구적 재앙과 멸망을 숙명으로 믿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에게 "재활용자원분리배출" 협조를 구하면, '(분리배출 하나 마나) 어차피 쓰레기 되는데 왜 해요?' 하는 회의적인 역질문을 듣습니다. 비록 아이들이 예의를 갖춰 말하지만, 마치 '어른들만 아는 진실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이미 더럽혀놓았으면서, 우리에게 분리 배출 교육은 왜 시켜요? 어차피 뒤엉켜 다 쓰레기로 처분되는 걸 어른들은 이미 알잖아요?'라고 항의하는 것 같아 뜨끔했던 적도 있습니다. 아마도 신문 기사나 환경 교육 등을 통해, 어린이들이 음울한 미래관과 어른에 대한 불신을 다져온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최근 "20대"만 가입할 수 있다는 글쓰기 모임에 "실수로" 가입했다는 40대 활동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환경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감 면에서 20대와 40대 사이 세대 차이를 느꼈다고 합니다. 20대가 훨씬 더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고 피해의식과 무력감을 크게 느낀다는 뜻입니다. 그 추정이 설득력 있다면, '왜 그럴까? 젊은이들이 왜 미래를 더 어둡게 생각할까? 환경의 측면에서, 어떤 미래를 상상할까? 암울한 상상이 지배적이라면 누가 그 마음을 다독여주어야 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우연히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그림책을 만났습니다. [The Extraordinary Gardener]라는 제목 그대로, 표지에 아름다운 꽃나무가 그득합니다. 화초에 물 주는 꼬마가 주인공이고요. 대단한 반전이나 특별한 에피소드 없어도 이 그림책에 제 마음이 끌린 이유가 있습니다. 주인공 꼬마, Joe는 항상 초록의 미래를 꿈꿉니다. 상상 밖으로 나와 작은 실천도 하며, 변화를 기다리는 여유도 있습니다.





그랬더니, 상상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바로 "Joe's world grew from ordinary to extraordinary!"랍니다! 상상만으로는 임박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희망 한 스푼의 영혼 부스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함께 상상해서, 희망의 집합적 힘이 얼마나 큰지 함께 경험하고 싶어집니다. 오랜만에 그림책 포스팅을 올리는 이유입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베터라이프 2022-06-03 18: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얄라님 ^.^ 오랜만에 얄라님 글에 댓글을 남기게 되네요. 아마 많은 분들은 이대로 개발 논리에 함몰되어 탄소를 무분별하게 배출하다보면 지구 환경이 과연 어떻게 될지 장담 못하다는 점은 다들 인지하고 계실텐데요. 자본주의가 막대한 소비를 바탕으로 존속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환경 이슈에 대한 다국적 기업의 이익이 상충되고 그런 결과로 도쿄 의정서라든지 파리 기후 협약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죠. 지금도 태평양에 거대한 쓰레기 섬이 나날이 확장하고 있는데, 사실 우리는 후손들의 미래를 담보 맡아서 살고 있는 거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국 같은 경우는 의회나 정치인들이 환경론자들과 기후전문가들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국은 다국적 기업의 이해관계가를 몹시도 중요하게 고려하는 나라라서 반환경 로비에도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 연유로 현재의 세태 반영이 미래의 환경에 대한 거의 대부분의 작품과 논저에 반영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한편으론 인류가 자본주의를 제대로 개선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이익논리에 너무나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자본주의와 환경문제는 거의 모든 주제에서 맞물려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얄라알라 2022-06-03 18:20   좋아요 3 | URL
베터라이프님^^ 반갑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은 까페에서 1회용기 쓰지 않기 등 다양한 노력이 강도 높게(?) 이뤄지고, 실제 분리배출 국민협조도 잘 이뤄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다만 국토면적 대비 배출하는 쓰레기 양이 어마무시인지라,
베터라이프님께서 일깨워주시는 대로 글로벌 차원에서의 얽힘 문제도 무시할 수 없고 심각하지만
당장 이 땅에서 발생되는 쓰레기도 참 걱정이네요.


[침묵의 봄] 읽고, 제가 레이첼 칼슨 세대와 달리, 어쩌면 새 소리에 둔감하다, 아예 새소리 등 청각적 풍요에 대한 경험과 기대 자체가 없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꼬마들의 반응을 보면서 제 낮은 기대치보다, 더욱 낮은 기대치를 보았어요.


베터라이프님 서재 놀러가면 좋은 책 추천 받을 게 많을 텐데, 고르려면 고민이 되겠죠?^^

베터라이프 2022-06-03 18: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에 쓴 리뷰 책들은 아주 재미없는 것들이네요 ^^; 재미없는 사람이 쓰는 재미없는 리뷰이니 뭔가 환상적인 콜라보 같네요 ㅠㅠ 항상 얄라님의 글을 잘 보고 있습니다. ^^

바람돌이 2022-06-04 13: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제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아나가려고 할 때 생기는 문제가 이런 것들이죠. 저는 역사를 가르치다 보니 근현대사를 가르치면서 이런 자괴감을 많이 느껴요. 우리나라는 왜 이래요? 하는..... 그래서 최근 몇년간은 그런 자괴감이 아니라 변화의 가능성과 실제를 보여주기 위한 노력들을 많이 기울이는 편이고요. 어떤 문제에서든 문제를 집어내는 것이 변화의 노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지로 가는 게 너무 쉬운 길인듯싶기도 하고요.

얄라알라 2022-06-04 14:59   좋아요 1 | URL
아...다른 영역에서도 비슷한 ‘체념, 자포자기 우울의 정서‘를 느끼시고 계시는 군요.

비단 어린이들뿐 아니라, 제 자신도 그런 하락의 정서를 자주 느끼는 것 같아요. 방금, 쪽글 하나를 올리고, 스크롤 내리다가 바람돌이님께서 주신 댓글 읽었거든요. 방금 쓴 제 글도, ‘어쩔 수 없지‘의 톤이었던 지라, 반성하면서도....‘그럼 어떤 게 필요한 걸까?‘ 고민하게 됩니다.

바람돌이님 행복한 토요일 보내시기를

감은빛 2022-06-05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이미 늦었을 거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제가 학생들에게 환경교육을 시작한 때가 이미 10년 전이었어요. 초등학교 때 저에게 기후변화 강의를 들었던 제 큰 딸은 이제 고등학생이구요.

최근 2년동안은 코로나 때문에 학교로 강의하러 가질 못해서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하지만, 마지막 학교 강의를 했던 2019년에는 청소년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속으로는 매우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너희들의 미래는 훨씬 더 심각하고 어둡고 무서울거야. 미안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기후학자들이 말하는 티핑 포인트는 곧 다가오거나 벌써 지난 것은 아닌가 싶어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