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틀비와 바틀비들
엔리께 빌라―마따스 지음, 조구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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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의 영광 또는 장점은 글을 잘 쓰는데 있다.

어떤 이의 영광 또는 장점은 글을 쓰지 않는 데 있다.

- 장 드 라 브뤼예르

 

 

 

 

 

에스파냐 현대문학을 지탱하고 있는 작가들 중 단연 돋보이는 작가, “가장” 지적이고 재치있으며 독창적이기까지하다는 세간의 평가에 딱 들어맞는 작가 엔리께 빌라-마따스를 <<바틀비와 바틀비들>>로 처음 만났다.

바틀비, <<모비 딕>>으로 더 유명한 허먼 멜빌의 1853년작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이 맞다. 월가의 잘나가는 변호사의 일을 돕는 필경사, 일을 잘하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I would prefer not to.)”라는 말만 내뱉게 된다는 기이한 설정, 그런 막무가내 직원을 내쫓지 못하여 변호사가 사무실을 옮긴다는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 엔리께 빌라-마따스는 바틀비의 말에 주목, 어떤 것보다 하지 않으려는 작업에 열정적인... 하여 세상에 어떤 요소에든지 거부감을 느껴 결코 글쓰기를 포기하거나, 책 한두 권을 쓰게 된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글쓰기를 포기한, 무(無)에 이끌린 작가들을 모두 바틀비라 통칭, 자신 역시 바틀비라 불쌍한 외톨이라는데... 바틀비들을 추적하느라 행복하다고 하니, 또 그 과정에서 글을 쓸 수 없다던 이가 우리말 번역으로 299페이지나 되는 글을 썼으니 바틀비 중 가장 행복한 바틀비가 아닐지.

여튼! 우리의 탁월한 작가는 무수한 바틀비들의 다양한 절필 원인들- 자기가 가구라고 느껴, 가구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어 이제는 쓸 수 없다는 작가도 있었다!-을 추적하며 사실과 허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데 어디까지가 진짜고 거짓인지 헷갈리지만 무척이나 유쾌했다.

글을 쓸 수 없다는 데에서 출발한 글쓰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놀라웠고 이런 글을 써 세상에 발표한 작가는 더욱 감탄스러웠다. 소담출판사에 복 있으라! 바틀비들이 되었다고 해도 책에 실린 그대들은 영원히 사랑받으며 기억될 것이다. 정녕 그대들이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이 온대도 그대들의 모든 행위가, 존재 자체가 아름다울 것이니 바틀비들이여, As you like it(뜻대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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