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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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이 된 이후 게으름이 더욱 어려워졌다. 부지런하다는 게 아니다. 끝나지 않는 육아와 회사 일 속에서 잠시라도 쉴 틈이 나면 그 시간이 아까워서 쉽게 잠들거나 편히 쉬지 못한다. 뭐라도 해야만 될 것 같은 초조함 속에서 공부 또는 다른 활동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나만의 현상은 아닌 보편적인 현대인의 모습이다.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고 여가 시간이 많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 긴 시간에 뭔가를 하기 위해 안절부절한다. 자기개발을 위해 외국어나 다른 자격증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는 등 여전히 바쁘게 살아간다.

개미와 베짱이 동화책에서 보여지듯 게으름 또는 가만히 쉬는 건 나태, 태만 그리고 사회에서의 낙오를 연상시키게 하기 때문이다.

"빨리빨리" 사회 속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소설가 로버트 디세이 (Robert Dessaix)는 게으름을 찬양한다.

정확한 표현으로 제대로 쉬는 법을 이야기한다. 따로 목적이 있는 쉼이 아닌, 우리가 잠을 다음 날에 있을 에너지를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잠을 자기 위한 휴식을 할 것을 이야기하고 느긋한 상태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게으름을 이야기한다.

그 게으름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에 앞서 저자는 바쁘게 살아가는 삶의 실체를 말한다.

쉼없이 일만 하는 삶이야말로 노예의 삶이라고 강력하게 지적한다. 예전 <곁으로>라는 김응교 교수님의 문학 에세이에서 자기 개발은 자본주의의 도구로 살아야 할 나의 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뛰는 삶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의 도구로 쓰이는 삶이라는 맥락과 같음을 느낄 수 있다.

그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 시간의 온전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여가의 목표이다.

일이 아무리 즐겁고 유용하거나 필요할지라도,

본질적으로는 일종의 노예상태다.

그렇기에 여가의 첫째이자 으뜸가는 목표는

우리를 우리 시간의 주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일할 때는 결코 시간의 주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의 개념을 뒤집는 저자의 주장은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어떤 활동이든지 해야만 하는 삶. 가만히 있지 못하게 우리 자신을 채찍질하는 삶은 자신을 끊임없는 노예상태로 만들어왔다.

목적이 없이 휴식 자체를 즐기는 삶이 중요한다. 그리고 그 휴식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멍 때리기 대회>처럼 과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시간 낭비인가 의문을 제기하며 우리에게 목적 없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이야기한다.

목적 없이 걷기, 놀이 , 텔레비젼 보기 등 여러 방법이 있지만 저자의 '독서예찬'을 결코 빼 놓을 수 없다.


독서에는 영화를 보는 일보다 더 많은 것이 개입되는데,

훨씬 더 많은 상상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활짝 펼친 상상력은 하루를 천 년처럼 만드는 힘이다.


독서는 당신이라는 존재의 만화경을 흔드는 것과 같다.

결국 독서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다.


게으름을 악덕으로 여기는 이 사회 속에서 가만히 있을 것을 예찬하는 저자의 글은 우리 현대인들이 과연 제대로 쉬고 있는지 진지하게 묻는다. '여가' '휴식'의 뜻을 새롭게 정정하며 여러 방법에 대해 품격 있게 쉴 수 있으며 제대로 쉬는 것인지를 알려준다.

틈만 나면 뭔가를 시도하는 나 자신에 비해 잠을 자거나 영화를 보는 남편을 책망했던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휴식 속에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는 가장 중요한 교훈을 이야기해 준다.


행복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워야 하는 게 아니다.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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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 생리하는데요? - 어느 페미니스트의 생리 일기
오윤주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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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생리 경험은 생리혈이 묻은 나의 팬티를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짓던 엄마의 모습이였다.

어리둥절한 내게 엄마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생리대를 주시며 앞으로 생리대를 착용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였을까. 내게 그 이후로 생리는 숨겨야 할 것, 조심해야 할 것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친구들끼리 생리에 대해 말 할 때도 귓속말로 '그 날이야'라고 조심스레 말하고 생리대를 살 때도 점원들은 보이지 않게 신문지에 별도 포장을 해 주거나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 주었다.

그렇게 생리는 내게 남에게 말 할 수 없는 나만의 문제였다.

나의 몸인데도, 여성의 일반적인 현상인데도 불구하고 왜 쉬쉬해야만 하는가? 저자 오윤주씨는 2017년 발생한 생리대 발암물질 파동으로 인한 여성의 몸에 대해 무책임한 정부의 모습을 보며 충격과 분노를 느끼며 자신의 몸을 제대로 알기 위한 시작의 첫걸음으로 생리 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그 생리 일기가 바로 《네, 저 생리하는데요》로 출간되었다.

《네, 저 생리하는데요》 의 저자 오윤주씨는 '생리'라고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는 현실, 귓속말로 이야기하며 같은 동성끼리도 생리에 대해 이야기하기 꺼리는 이 현실 속에서 저자는 여성의 생식기에 대한 '언어의 부재'에 주목한다.

남자들에게 확실한 생식기의 명칭이 있지만 여성에게는 정확한 생식기의 명칭마저도 주어지지 않고 단지 임신과 출산의 도구로만 인지되는 현실 속에 여성의 생리 또한 정확한 명칭이 정해지지 않았음을 말한다.

그 '언어의 부재'는 침묵을 강요하고 남들에게 공개적인 담론이 될 수 없는 현실로 이어졌다. 왜 여성의 생리가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되어야 하는가?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유롭게 발화할 수 있는 분위기이다.

월경이라 부르든, 생리라 부르든, 정혈이라 부르든,

어떤 용어든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발화하고 호명할 수 있는

그 힘이 중요하다.


가장 무서운 것은 침묵이다.

생리를 돌려 말하는 표현 중 '그 날'이나 '그것'은

너무 특정성이 떨어지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침묵시키는 언어라는 점에서 최악이다.


저자는 생리일기를 써 내려가고 친구들과 생리에 대한 경험담을 나누며 생리 경험이 똑같은 사람이 없이 모두 다른 경험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월경 전 증후군으로 겪는 우울증과 감정 기복등을 더 깊게 알게 되고 자신의 몸인데도 매달 겪는 현상이 다름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몸을 받아들이게 된다.

몸의 불규칙한 호르몬 치료제로 복용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경구 피임약'으로 분류하고 '사후 피임약'으로 명명하거나 성병예방을 위해서도 필요한 콘돔을 굳이 임신 억제제라는 용도로만 가르치는 이 현실이 여성의 생식기를 여성의 몸이 아닌 단지 임신과 출산이라는 용도로 받아들여왔음을 강조하는 글 속에 이 사실 속에 무지했던 나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여성의 몸에 대해 여성이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회. 조신하고 순결할 것을 강조하며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사회 속에 결국 여성들의 몸에 대해 침묵을 지킨다면 결코 이 현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생리대 발암물질에 대해서도 여성들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며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수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는 자신의 솔직한 경험담을 담은 이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하며 여성들이 연대할 것을 주장한다.

나 자신 또한 수십년을 침묵을 강요받는 사회 속에서 살아왔다.

첫 경험 때 엄마가 내게 당당하게 설명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과거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내 딸둥이들이 커서 생리를 하게 될 때 축하와 함께 생리에 대해 설명해 줄 것이다.

이제 우리의 몸을 당당하게 이야기하자.

우리의 몸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닌 우리의 권리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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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삶을 훔친 여자 스토리콜렉터 75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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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 여인이 있다.

사랑스런 두 아이, 방송국 스포츠 분야에 근무하는 남편, 파워블로거, 아름다운 외모..

집값이 비싼 런던에 자가 주택까지..

그리고 그녀는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여인이 있다.

슈퍼마켓 종업원, 떠나 버린 애인, 종교 집단에 의해 가족으로부터 등져야 했던 불행한 과거..

그녀 또한 새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그 두 여인,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여자 매건과 불행의 대명사인 듯한 여인 애거사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완벽해 보이는 매건의 일상을 관찰하며 그녀의 행복해 보이는 일상에 중독된다.

바라보기만 했던 매건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만들 수 없을까? 자신에게 없는 행복에 대한 갈망에 애거사는 매건의 행복을 훔친다. 그리고 그 때부터가 진정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완벽한 삶을 훔친 여자』의 저자 마이클 로보텀은 애거사가 매건의 아이를 훔치면서부터 벌어지는 애거사의 심리에 집중한다. "알고 있어. 알고 있어."라고 불안해 하지만 행복한 척 아닌 척 불안해 하는 애거사와 모든 걸 가진 듯 하지만 실상은 풍전등화처럼 불안했던 매건의 일상이 무너져가며 매건의 심리가 함께 그려진다.

그 과정 속에 소설은 극한의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모든 사람들이 아슬아슬한 일상 위에 살아가지만 모두 행복을 가장한다. 두 아이와 남편, 평범한 일상 속에 행복해 하는 듯하지만 그 모습을 감추고 행복을 가장한다. 매건의 남편도, 애거사의 일상도..

그 불안함 속에 서로의 민낯이 드러나며 작가 마이클 로보텀은 읽는 이에게 또 다른 긴장감을 선사한다.

왜 애거사는 이토록 아기에게 집착했을까? 나는 그녀가 처음으로 빼앗긴 권리가 엄마가 되는 권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의가 아닌 타인에 의해 힘없이 빼앗겨야만 했던 엄마가 되는 권리.

그 속에서 애거사의 일상과 행복은 갇혀져 버렸다. 그리고 그 처음 빼앗겼던 권리에 대해 집착하며 갈망했던 게 아닐까?

아이 엄마로서 애거사와 매건의 관계를 지켜보며 나와 여동생의 관계를 떠올렸다.

똑같은 두 아이 엄마지만 양육의 도움자 없이 홀로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내 자신과

시부모님의 든든한 지원과 동생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주는 남편을 둔 여동생..

동생을 부러워하는 마음 속에 애거사의 심정이 공감이 갔다. 실상은 차차하고 밖에서 보이는 행복의 표면적 모습이라도 갖기를 소망하는 그 마음.. 과연 애거사를 욕할 수 있을까?

내가 동생에게 부럽다는 말을 자주 했었지만 동생은 나름대로 겪는 고충에 대해 말한다.

"나도 시부모님이 돌봐주시니까 겪어야만 하는 스트레스가 많아."

밖에서 보기엔 완벽해 보이지만 실상 우리 모두는 아슬아슬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결코 완벽한 행복은 없다. 그저 매건이 깨달은 것처럼 우리가 가진 것들을 소중하게 대하며 살아갈 수 있을 뿐.


우리가 빛의 가치를 알려면 어둠이 필요하고,

우리가 운전대를 붙잡고 잠드는 것을 막으려면

길의 과속방지턱이 필요하다.


그들은 사랑받는다. 열망된다. 우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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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법원 - 사법농단, 그 진실을 추적하다
권석천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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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상 초유, 전 대법원장과 그 부하들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는 모르는 그들만의 세계에서 짐작만 할 뿐 실체를 알 수 없는 그들의 민낯이 이탄희 전 판사의 증언으로 인해 온 국민들에게 실체를 드러냈다.

권석천 중앙일보 기자의 책 『두 얼굴의 법원』은 개별적인 독립 기구로 작동해야 할 판사들이 대법원장을 필두로 한 법원행정처의 세력이 판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압박하는지, 이탄희 전 판사의 인터뷰 및 다른 판사들의 인터뷰를 통해 법원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두 얼굴의 법원」의 큰 그림은 앞 표지에 설명하듯, 이탄희 전 판사가 사표를 두 번 제출하게 된 이유이다.

그가 제출한 두 번의 사표는 양승태 사법농단의 전말이 밝혀지는 것과 맥락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저자 권석천 기자는 먼저 법원의 많은 소모임 중 '국제인권법연구회'안의 '인권 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모임에 대해 설명한다.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공동학술대회 개최를 준비하기에 앞서 이 대회를 막기 위한 상부의 압박이 조금씩 드러나며 법원 내에 긴장감이 쌓여가고 이 긴장감은 기획총무를 맡고 있는 이탄희 판사에게 압박으로 다가온다.

긴장 속에 이탄희 판사는 안양지원에서 법원행정처로 인사이동을 받게 되고 인수인계를 받게 되는 중 자신의 발령이 단순한 발령이 아닌 계획적인 인사였음을 직감한다.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압박하기 위한 코드 인사임을 부인하지 않는 상부와 판사 개별 동향을 파악한 문서가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이탄희 판사는 그 개별 동향 파악 문서, 즉 판사들의 블랙리스트 작성이 자신의 새로운 임무임을 직감한다. 충격과 함께 고민하던 이탄희 판사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그의 사표를 철회하기 위한 움직임과 안양 지원으로의 복귀, 그리고 언론에 밝혀지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이 펼쳐진다.

『두 얼굴의 법원』은 그 법관이 독립적 주체가 되지 못하고 살아남기 위해 상부의 관료 조직에 충성해야만 하는 그들의 조직논리에 대해 집중한다.

헌법에 법원의 주인은 시민이라고 명기함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장을 주인으로 섬기며 대법원장을 필두로 행정처의 코드에 맞는 재판을 하는 그들의 민낯을 폭로한다. 전화 한 통화에 판결이 달라지고 법리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면? 그들을 판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들은 '법복 입은 정치인'이라고 말한다.

이탄희 판사의 사직서로 인해 사법농단이 밝혀지고 진상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내부의 잘못을 드러내고 새롭게 거듭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바쁘고 외부로부터의 개입을 막기 위한 그들의 진상조사는 미봉책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물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블랙리스트 파일의 실체를 드러내길 거부한 1차 조사, 실체는 밝혀졌지만 영향력이 없어 법적 효력이 없다는 추가 조사까지 법원은 자신들의 자정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 검찰의 수사를 받는 형국에까지 이른다.

사법부가 한 목소리를 내야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그들만의 조직 논리 속에 진실을 밝히기를 꺼리는 법원의 모습은 그들 스스로 법관이 아닌 일개 정치인과 다름없음을 자인하는 형태이다. 대한민국의 법을 수호하기 위한 게 아닌 살아남고 출세하기 위해 더럽고 비겁해도 상부의 지시에 따르는 그들의 모습을 '악의 평범성'이라고 명명한다.

정권이 바뀌고 새 대법원장이 취임했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조직 논리 속에 벗어나지 못하는 법원은 여전히 자신들에게 비춰진 의혹만을 부인만 할 뿐 신뢰를 주지 못한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그들은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자신들의 세력을 비호하기에만 급급하다.

그들의 부끄러운 민낯은 한 유망하고 성실한 판사를 두 번이나 사표를 씀으로 법원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조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과연 희망은 있을까? 저자와 이탄희 전 판사는 그 답을 우리 시민들에게 함께 찾아가자고 제안한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시민들의 분노 속에, 행동 속에 희망이 조금씩 자라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잊지 말자. 희망은 그들에게 잊지 않다.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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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밤의 양들 - 전2권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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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뿌리 깊은 나무> 등으로 유명한 이정명 작가의 신작 「밤의 양들」을 처음 펴 보았을 때 낯선 배경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의 전작들만큼 조선 시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리라 생각했던 나의 기대는 첫 페이지에서 펼쳐지는 예루살렘 이야기는 너무 낯설었고 과연 이정명 작가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이야기를 과연 잘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또한 있었다. 무엇보다 기독교도인 내게 예수의 이야기가 <다빈치 코드>처럼 성경의 이야기를 부정하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밤의 양들》은 성경의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유월절을 앞두고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쫓아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로마의 속국이지만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이스라엘, 그 곳에서 로마의 백부장을 죽인 죄로 마티아스는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하루 하루 죽을 날만 기다리는 마티아스에게 새벽 갑자기 들이닥친 병사들에 의해 끌려간 마티아스는 이스라엘 성전 수비대 조나단으로부터 성문에서 발견된 소녀의 시체를 보여주며 살인범을 잡을 것을 명령한다.

살기 위해 열심히 사건을 추적하지만 범인을 잡기에 앞서 다음 날 또 다른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며 이 일련의 사건들을 쫓는 중 마티아스는 이 시체들이 예수님이 살려 주신 기적을 받은 자들이며 현장에서 발견 된 증거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물건임이 발견된다. 예수를 거짓 선지자라 믿으며 이 살인 사건의 주범이라는 확정 하에 범인을 쫓는다.

이정명 작가는 성경 속에 그려진 각 장면들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예수를 따르지만 자신이 그리던 메시야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이대로 예수를 따라도 괜찮을 걸까 고민하는 제자들의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그려지는 유다의 배신.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순례자들의 행렬과 빵을 굽는 빵공장의 모습.

로마의 속국이지만 자신들의 신 여호와를 섬기며 로마의 황제를 섬길 것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모습.

로마의 총독과 성전 수비대의 갈등 등

성경 속에 그려져 있지 않은 그 배경 속의 모습이 작가의 필력에 의해 생생하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이 《밤의 양들》에서 예수를 살인자로 확정하며 살인 사건을 쫓아가는 마티아스가 예수가 어떤 이인지 알아가며 그가 느끼는 고뇌와 그의 변화는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거짓 선지자라 생각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아진 인생이였던 그의 하류 인생.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대의를 위해 희생당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던 그에게 예수의 가르침과 창녀 마리아의 손길은 혼란이자 자신이 이제까지 알아 왔던 모든 것들에 대한 부정이였다.

그 혼란 속에서 변화하는 마티아스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위해 진실을 거부하는 기득권층의 모습은 과연 누가 밤의 양들인지 작가는 보여준다.

비루한 삶이였지만 끝내 진실을 포기하지 않았던 마티아스.

자신들의 믿음을 위해 거리낌없이 진실을 포기했던 기득권들.

그 모습 속에 성경의 빈 공간들을 저자는 또 한 편의 드라마처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저자가 후기에서 말했드 허구이다.

하지만 저자는 한 비천한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 과정을 성경 속의 이야기와 함께 하나의 감동으로 완성해 나간다.

마티아스를 통해 보여주는 삶과 그 과정 속에 과연 누가 비천한 삶인지 진지하게 묻게 된다.

성경 속의 이야기를 부정하는 내용이 아닐까 걱정했던 내 우려가 무색하게 이정명 작가는 성경의 이야기의 빈틈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풍성하게 채워준 깊은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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