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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오늘은 내 인생이 먼저예요
이진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1월
평점 :
대한민국만큼 타인에게 참견하기 좋아하고 잣대가 많은 나라가 있을까?
특히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욱 많은 간섭과 판단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미혼일 때는 "너 이렇게 해서 시집
가겠니?" "여자답게 조신해 봐라."
"여자 30살 넘으면 고물된다. 빨리
빨리 시집가라."부터 시작해서 결혼 후
쌍둥이 딸을 낳은 후, 나는 나름대로 힘들게 키워온 것 같은데 주위에서는 여전히 나에게 훈수를 둔다. 아이 머리가 길면 잘 묶고 다닐 수 있겠냐는 둥, 청소나 살림이나
잘 하겠냐는 둥, 살림을 그렇게 잘 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힘드냐는 둥 내게 들려오는 훈수에 나는
내 나름대로 힘들게 살아온 것 같은데 이러한 주위의 말을 듣고 있다보면 내가 과연 잘못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런 내 마음에 혼란기가 찾아올 때 내가 결코 잘못된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책을 만났다.
작가는 어린 시절 뜨거운 물에 데인 상처로 팔에 큰 흉터가 있다. 그 흉터로 인해 남자를 만날 때도 그 흉터로 인해 고민해야 했고 더운 여름날 남들의 이목이 두려워 반팔 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흉터가 누구의 책임이건 흉터를 감당하고 살아가야 할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임을
고백한다.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 해도 나에게 생긴 일이고
그런 나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것도 책임져야 하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이다. -23p
그 깨달음 이후 남들의 이목보다 자신의 더위가 더 중요해졌고 반팔 옷을
입게 되었다는 작가의 고백을 통해 우리가 관심이라고 표한 말이 남에게는 돌팔매가 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관심보다는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인정해 주는 것인데 왜 우리들은 이러한 인정에 인색할까.
같은 여자라서 그럴까? 작가가 결혼을 앞둔 친한 동생에게
던져주는 충고는 많은 공감을 받았다.
"너무 노력하지 마." 남자들은
결혼만 하면 아내가 잘 해 줄거라는 믿음으로 효도를 아내에게 위임해 버리고 여자들만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시부모님께 잘 하려고 노력하며
종종대지만 차츰 느껴지는 남편과의 괴뢰와 서운함에 지쳐가는 마음... 이건 정말 내 이야기였다. 그 서운함 끝에 이제 더 이상 나 혼자 노력하지 말자.. 기대도
하지 말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라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 누구도,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물어봐주지 않았다. -88p-
세상이 정해 놓은 길, 나의 판단과 선택은 중요하지 않는 가장 정형적인 삶.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세상이 정해놓은 길..
다른 선택을 하기엔 너무 많은 사회의 편견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삶..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이 아닌데 그 길이 정답이라고만 은연중에 강조하며 정작 그 인생의 당사자인 내게 물어봐 주지 않았던
삶을 말하는 메시지를 보며 눈물이 났다.
나 역시 시골 부모님 밑에서 노처녀인 나를 답답해 하며 결혼이 인생의 정답인 마냥 수많은 재촉과 독촉속에 떠밀리듯 사람을 만났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내게 행복하느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를 낳고 힘들어하는 내게 어른들이
해 주신 말씀이
"다 그렇게 산다.", "우리도 다 그렇게 살았다.", "편하게 아이 키우는 사람 있는지 아냐?"였다.
다 그렇게 산다는 말.. 나는 나인데 주변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나를 묶어 내 힘듬과 나의
사정을 보편화시켰다. 그리고 그 말 속에 나는 외로워져갔다.
나의 아픔과 상처는 다른 사람과 결코 똑같을 수 없는데 왜 나를 바라봐 주지 않는 걸까.
나 역시 다 그렇게 산다는 말로부터 다시 회복되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어느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누구나 각자 자신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털털해서, 요리도
잘 못하고 아이들 머리도 예쁘게 묶어주지 못해도 괜찮다. 그냥 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잘하자고
말해주는 작가가 고맙다.
결국 내 아이들을 남이 대신 키워주는 것도 아니고 책임을 나눠주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인생은 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닌 나는 나의 삶을 산다. 그러니 내 인생이 먼저고 내가 먼저다.
내 편이 생긴 것 같은 든든한 응원군을 만난 기분이다.
내가 힘들 때, 주위의 참견으로 마음이 피곤할 때 두고 두고 꺼내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