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설교만 한다면

그건 목사가 아니라 어릿광대잖아.


- 최대위, 『생각 많은 판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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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눈으로 본 예수 - 주님을 사랑한 첫 여성 제자들 이야기
레베카 맥클러플린 지음, 김은홍 옮김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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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여성도 장로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업로드 한 적이 있다. 꽤 보수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댓글이 몇 개 기억에 남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나더러 “성경을 바꾸려는 사탄의 하수인”이라며, 성경에 분명 장로는 “남편”이어야 한다고 써 있으니 여성은 장로도, 목사도(이 말은 하지도 않았지만, 논리적인 귀결이기는 했다) 될 수 없다고 홀로 선언하는 댓글이었다(지금은 삭제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의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자체는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문화적 배경 아래 쓰이고, 특히 우리의 경우 (상징적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번역의 번역 과정을 거친 후에야 성경을 손에 들 수 있는 상황에서, 그 자구 하나에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이는 건 조금은 우스운 일이다. 그건 성경을 귀중하게 보는 태도가 아니라 우상시 하는 모습일 뿐이고,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보다 수천 년 전 성경이 쓰였던 당대의 문화에 집착하는 복고주의일 뿐이다(물론 이 둘을 가리는 게 때로 어렵기도 하다).


무식함이야 죄는 아니지만, 무례함은 분명 회개해야 할 악이다. 나는 그 댓글에서 자기 의에 충만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예수님을 비난했던 복음서 속 어떤 이가 떠올랐다. 교회의 직분이란 성별이나 인종이 아니라 그 일을 할 수 있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맡는 게 옳다. 내가 알기론 그게 바울 서신 속 핵심 주장이다.





이런 성경 속 문화적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영역 가운데 하나가 여성에 대한 시선, 처우, 지위에 관한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여전히 보수적인 기독교계에서는 여성에 대한 교회 내 지위나 역할에 차등을 두고 있다. 더더욱 황당한 건 자신들의 그런 태도가 마치 성경에 의해 지지되는 것인 양 고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기독교가 전성기를 맞았던 중세 이래로 교회 내 여성의 지위는 결코 높지 않았다. 그럼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틀렸느냐, 그들의 신앙에 문제가 있었느냐는 반문은 강력하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또한 판단착오와 오해로 많은 실수를 하듯, 그들 또한 자신들이 속했던 문화적 상황 속에서 성경의 진리를 오해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동등하다는 갈 3:28의 진리가 적어도 교회 안 삶 속에 실현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최근의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이 갖는 또 하나의 우려도 공감이 되긴 한다. 소위 여성주의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신학 전체를 여성의 입장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에 대한 두려움과 반발이다. 극단주의적 페미니즘의 발흥으로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도 그 폐해를 목격한 사람들이 이쪽 역시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개인적으론 이쪽 역시, 남성 중심의 신학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시대적 한계에 파묻힌 시도라고 본다. 하지만 일단 여성이라는 말만 나와도 색안경을 끼게 만든 것도 사실이고.





자, 서론이 좀 길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여전히 교회의 직분이나 의사결정구조, 지위 등에서 소외되고 있는 교회 내 여성들에 대한 위로, 나아가 복음서 속 여성들의 중요한 역할에 대한 재발견을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예수를 동성애자나 흑인으로, 하나님을 어머니로 묘사하지 않고서, 오로지 복음서 내 기록에 근거해 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그러니 보수적 기독교인들도 안심하시라).


저자에 따르면 복음서에서 여성들의 증언을 뺀다면 우리는 손에 들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예수의 탄생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마리아의 증언 때문이었고, 그분이 자신을 처음으로 생수의 근원으로 소개하셨던 자리에 함께 있었던 것은(그래서 그 대화의 내용을 우리에게 알려준 증인이었던) 사마리아 여인 한 명 뿐이었다.


사실 이미 복음서에도 열두 사도 뿐 아니라 여러 여성 제자들의 존재가 언급되어 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유명한 여성 제자였고, 그분과 함께 여행을 다니지는 않았더라도 곳곳에 그분을 따르는 여성제자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분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것도, 부활의 첫 증인이 된 것도 모두 여성제자들/증인들이었다.


책 제목처럼 이미 복음서는 ‘여인들의 눈으로 본’ 증언이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이 오직 여성들이 더 우월하다는 극단적 주장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자(저자는 그런 뉘앙스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오늘날 일부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되고 억압되고 있는 상황에서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책은 복음서 속 여성이 등장하는 본문들을 골라, 그 행간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풀어가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의 논리적 전개에 큰 무리가 없고, 결론도 그리 과격하거나 하지 않다(책 제목이 ‘여성의 관점으로 본’이 아닌 것에 주목하자). 하지만 복음서 안에 이렇게 여성들의 증언이 큰 비중을 차지했던가 하는 작은 놀라움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목에 ‘여인들의 눈으로 본’이라는 수식어구가 붙어있지만, 책은 기본적으로 복음서의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꼭 여성이라는 주제가 아니라도 복음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도 충분히 선택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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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홀 문화인류학 4부작 1 : 침묵의 언어 이상의 도서관 46
에드워드 홀 지음, 최효선 옮김 / 한길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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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유튜브 콘텐츠를 촬영하면서 추천받은 책이다. 필리핀 선교사로 10년 넘게 사역하시던 분이었는데, 타문화권에서 일을 하는 게 어디 쉬울까. 우리에겐 당연하게 여겨지는 많은 관행들이, 실은 인류의 보편적인 관습이 아니라 특정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무엇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면 결코 이런 일은 제대로 해 낼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시니 한 번쯤 읽어 볼만하다.


책 제목인 ‘침묵의 언어’는 비언어적 언어(의사소통 수단)을 가리킨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다양한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곤 한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표정으로 말할 수도 있고, 특정한 제스처는 거의 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앞서도 말했듯, 특정한 지역에서, 특정한 문화와 전통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말을 하지 않아도 자명한 무엇이지만, 그 영역 밖으로 나가면 전혀 다를 수 있다.




대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한 학기 동안 수어를 배운 적이 있다. 그 학기를 지나서는 딱히 쓸 데가 마땅히 없기도 해서 더 익히지 않는 바람에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여전히 기억이 나는 게 몇 개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손위 남자 형제를 가리키는 수어였다. 가운데 손가락만 펴고 나머지 손가락은 모두 접은 채로 손바닥을 자신 쪽을 향하게 해서 들어 올리는 거였다. 그렇다. 꽤 많은 나라들에서 욕으로 사용되는 그 제스처와 너무나 비슷하다(그래서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건지도). 당연히 수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좀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동작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우리는 이런 문제에 쉽게 부딪히곤 한다. 흔히 어떤 나라 사람들은 이렇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게으르고, 저 나라 사람들은 탐욕스럽고, 또 다른 나라 사람들은 속을 드러내지 않고 하는 것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런 편견들은 사실 우리와 다른 그들의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대로 그 사람들을 평가하고 있는 것.


앞서 말한 선교사님과의 대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시간에 대한 다른 감각 부분이었다. 우리 달리 도심지를 제외하고는 교통수단이 지프니 말고는 거의 갖춰지지 않은 필리핀의 경우, 정확한 시간에 약속을 잡는 것이 애초에 무리라는 것. 이런 걸 모른 채로 필리핀인들이 약속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 스텝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오해가 쌓이면 결국 의견 충돌로 이어지고 종래에는 갈등으로 치닫게 된다.





책은 이런 다양한 영역들에 대한 실제 사례들과 저자가 정리한 비언어적 언어의 다양한 양상들을 잘 제시하고 있다. 문화 간 차이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물론 이 책이 우리나라에 출판된 것만 해도 2013년이니 벌써 10년 전이고, 원서는 무려 1959년에 나왔으니 그 사이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이전보다는 좀 더 나은 이해를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미 당시에도 미국 정부는 이런 문제를 두고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했다니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나 싶다. 우리나라는 불과 1년 후 4.19 혁명이 일어날 정도로 이승만 정부의 극심한 정치 부패가 나라를 망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기초적인 인문학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단순한 사례들의 나열을 넘어, 저자 나름대로 이런 다양한 영역들의 정리를 통한 체계화까지 시도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 책보다 좀 더 세련된 책들도 분명 있겠지만, 역시 근본을 손에 드는 게 주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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